지난 7월 29일 국회 법사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법원행정처장에게 아동 성착취 사이트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인 손정우에게 1년 6개월의 낮은 형량을 선고한 것이 부적절하지 않느냐는 질의를 했습니다. 이에 대해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은 법원 처벌이 약했다는 지적에 많은 비판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렇다면 법원은 알고서도 손정우에게 면죄부를 쥐여준 셈입니다.


출처 - 투데이코리아


손정우는 재판에서 4000여 명에게 성착취물을 7293차례나 판매한 혐의가 인정되었으나 이 모든 행위가 단 한 건의 죄로 간주되어 징역 1년 6개월이 선고되었죠. 국민의 법감정과 지나치게 동떨어진 판결이어서 국민이 분노했지만 미국 송환조차 법원의 불허 결정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동 성범죄에 엄격한 미국에서라도 처벌받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우리나라 법원은 솜방망이 처벌을 이미 내린 상황이라, 미국 송환 결정을 하면 제 얼굴에 침뱉기라고 생각했는지 결국 불허하고 말았습니다. 인도거절사유에 해당하는 바가 없었는데도 판사 재량에 따라 이뤄진 불허 결정이어서 논란이 큽니다.


출처 - 청와대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불허 결정을 내린 강영수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를 격하게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대법관 후보 자격을 박탈하라는 청원이 올라온 뒤 삽시간에 50만 명이 지지를 하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대법관 후보라는 사람이 시대에 뒤떨어진 성인지 감수성과 아동 인권에 대한 기본 관념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서 체면치레만 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시민들의 인식이 반영된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미국 송환 불허의 여파는 국제적으로도 적지 않았습니다. 국제적인 NGO인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 7월 15일 "대한민국은 아동에게 정의로운 나라인가? 세계 최대의 아동성착취 범죄에 대해 엄중한 처벌을 하고자 미국 법무부는 강제 송환을 요구하였지만 법원은 사법주권행사의 관점에서 이를 불허하였다. 사법부가 공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정의의 가치는 아동인권 수호가 아니라 사법권한의 방어에 무게를 두었다. 그러나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라 국가는 아동에게 특별한 보호를 제공하여야 하는 책무를 지닌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세계 최대의 아동성착취 범죄에 대한 사법부의 관용적 판결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이러한 결정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엄중히 촉구한다"라는 논평을 내기도 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미국 법무부와 연방검찰 또한 미국 송환 불허 결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실망의 뜻을 밝혔습니다. 미국 법무부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아동 성 착취 범죄자 중 한 명에 대한 법원의 인도 거부에 실망했다”고 밝혔습니다. 외신들도 일제히 한국 법원의 송환 불허 결정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보였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손정우의 아동 성착취물을 받은 일부 미국인들은 이미 징역 5~15년을 선고받았는데 정작 운영자는 1년 반 만에 풀려났다고 강조했습니다. BBC 한국 특파원은 한국에서 달걀 18개를 훔친 40대 남성이 받은 형인 징역 1년 6개월이 손정우의 형량과 똑같다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출처 - Laura Bicker 트위터 / 뉴시스


이 때문에 일정 기준에 부합하면 판사의 재량으로 형량을 감해주게 되어 있는 작량감경권을 없애거나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셉니다. 손정우의 경우 반성문과 구속 중 결혼해 부양가족이 있다는 점이 형량을 감해주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런 작량감경 없이 제대로 된 형량이 내려졌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징역 10년형까지는 받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죠. 이것도 한참 부족합니다만 적어도 지금 손정우가 받은 1년 6개월이라는 어이없는 형량은 아니었을 거라는 얘깁니다.


출처 – 연합뉴스


최근 진행 중인 n번방 성착취 범죄에 대한 재판 과정도 손정우 건과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어 시민의 분노가 들끓고 있습니다. 지난 7월 10일 아동 성착취물 1300여 개를 제작 판매한 박씨에게 젊고 형사 처벌 전력이 없고 반성하고 있으며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가 선고됐습니다. 젊으면 젊다고 늙으면 늙었다고 봐주면서 솜방망이 처벌을 하니 "디지털 성착취는 솜방망이 판결을 먹고 자란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 아닐까요?

출처 - 경향신문

 

《경향신문》이 성폭력 범죄 재판을 담당해본 현직 판사들과 심층 인터뷰를 한 기사는 판사들이 빠르게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에 대한 무지하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요즘 성착취물이 예전처럼 비디오 같은 물리 매체로 퍼지는 것도 아니고 톡 비밀방을 통해 크라우에 올려져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지고 이를 암호화폐로 구매하는 과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현실과 동떨어진 판결이 나온다는 겁니다. 여기에 더해 뉴스를 보지 않고 사건 기록만 보다 보니 사회적 기준과 멀어지게 되고 가해자나 피해자를 활자로만 인식하다 보니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피해 심각성 이해가 떨어지는 탓도 큽니다. 가해자가 얼마나 파렴치한지, 피해자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들어볼 기회가 없이 재판이 끝나버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판사가 성인지 감수성을 갖추지 않았다면 재판 과정에서 2차 가해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출처 - SBS


무엇보다 유사 판례에 대한 집착이 국민적 법감정과 동떨어진 판결을 하게 한다고 합니다. n번방 사태 이후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진행한 판사 대상 설문조사 결과 아동 성착취물 제작 범죄의 기본 영역으로 징역 3년이 적절하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는 것이 이를 방증합니다. 판사들은 일반적인 가중요소를 감안하면 징역 5년이 적절하다고 했는데, 원래 이런 범죄는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수십 년에 걸쳐 솜방망이 처벌을 해오다 보니 갑자기 판례에서 한참 벗어난 중형을 자기 혼자 선고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판사들은 여태 판결하던 대로 한 건데 '국민들이 갑자기 왜 이래' 하고 반문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한다는 겁니다. 이를 보면 솜방망이 처벌이 n번방 사태를 초래했으며 사법부가 공범이라는 시민들의 구호가 허투루하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사법부는 대법원 양형위원회 등을 통해 아동 성착취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형량을 더 높이는 등 여러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하는데요, 과연 납득할 만한 결과가 나올지 의심스럽습니다. 지난해 성접대 의혹 영상의 인물임을 확인하고도 무죄를 선고했던 김학의 별장 성접대 사건만 떠올려봐도 지금의 사법 체계 안에서는 대안이 없는 일로 보이니까요.


출처 - 한국일보


지난 7월 27일 손정우는 서대문 경찰서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습니다. 미국 송환을 막으려고 아버지가 고소한 혐의인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을 수사하기 위해서였죠. 법무부와 경찰은 우리나라에서도 엄한 처벌을 내릴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그럴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손정우는 대부분의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 범죄에 대한 형량은 최대 징역 5년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 정도입니다. 그가 미국으로 송환됐다면 20년형 감이었죠. 아동 성착취 혐의까지 미국에서 일찌감치 시작했다면 징역 1000년은 우습게 나왔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에선 범죄수익 관련 사건으로는 아무리 많아 봐야 3년 이하 정도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자칫 집행유예가 될지도 모릅니다. 성착취물 판매 수익이 수십억 원이 넘는다는 얘기가 있는데 3000만 원도 안 되는 벌금이라면 그야말로 껌값 아닌가요? 

 

출처 - MBC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PD수첩〉은 지난 4일 손정우가 1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후 갑작스럽게 의문의 여성과 혼인신고를 했고, 이후 2심에서 1심에 비해 6개월이나 감형된 형량으로 최종 선고받은 점을 취재하여 보도했습니다. 부양가족의 존재가 감형의 요인이 된다는 점을 손정우가 이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풀기 위해 제작진은 손정우를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는 여러 명의 지인을 직접 만나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손정우의 한 지인은 "(손씨의) 결혼에 대해 알지 못했다"며 "손씨가 (여자친구에게 범죄사실을) 속이고 만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지인은 "결혼은 혼자 할 수 없지 않냐. 감방 가기 전에 아내가 있고 아기가 있었더라면 과시하는 걸 좋아해서(친구들에게) 한 번은 보여줬을 거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지인은 "손씨의 아버지가 국제결혼 중개업을 할 줄 아니까 외국인이라고 혼인신고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출처 - MBC

 

한편 손정우의 아버지는 〈PD수첩〉 취재진이 "해외 여성을 아들인 손씨에게 소개한 거냐"라고 질문하자 "그걸(국제결혼 중개업) 할 때가 몇 년 전인데 옛날이야기를 지금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 "그쪽 부모님이 반대해서 혼인 무효 소송을 해 (결혼생활이) 끝났다"라고 답했습니다. 손정우의 지인들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종합해서 보자면 제대로 된 결혼 관계도 아니었는데, 법원은 이를 근거로 형량을 감해준 꼴입니다. 

 

출처 - MBC

 

〈PD수첩〉은 손정우가 어렸을 때 야동 사이트를 만들고는 친구들한테 자기 홈페이지라고 자랑했다는 지인의 말과 중학교 때 자퇴를 한 뒤 연락이 안 되다가 20대 초판에 갑자기 "조만간 아우디 r8끌고 올테니 기다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지인의 말도 소개했습니다. 이를 보면 손정우가 성착취 영상물을 판매하여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건은 예정된 일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PD수첩은〉 방송을 끝맺으며 어린이와 청소년은 디지털 성범죄에 치명적일 수 있으며 IT 강국이 성범죄에는 무방비하다는 오명을 벗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손정우 사건이 또 하나의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서는 안 되는데, 참 답답한 현실입니다.

MBC에 최승호 사장이 취임하고 신임 이사진이 구성되어 첫 이사회를 하자마자 달려간 곳은 세월호합동분향소였습니다. 최승호 사장 이하 본부장 등 7명은 분향대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습니다. 무거운 표정으로 304명의 희생자께 헌화했는데 최승호 사장은 방명록에 “MBC의 잘못을 사죄드립니다”라고 남겼습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출처 - 미디어오늘


세월호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라는 희대의 방송 참사를 일으킨 것이 이명박근혜 정권의 적폐들로 가득 찼던 MBC였기 때문입니다. 이후로도 그들의 세월호 참사 왜곡 및 유가족 헐뜯기는 차마 언론이라고 할 수 없는 지경이었죠. 그 언론장악의 희생자였던 최승호 PD가 MBC의 사장이 되었으니 MBC를 근본부터 쇄신하기 위한 첫 행보가 아닌가 싶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명박근혜 정권이 끝나고 그 적폐들이 해임되어 파업도 끝이 났지만 MBC 전임 사장들이 싸질러놓은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정권의 폐부를 찌르는 유능한 언론인들은 어이없는 이유를 대며 자르더니 기자라고 불러도 되는지조차 의심스러운 경력기자라는 사람들을 헐레벌떡 채용해 언론인으로서의 비판의식도 균형감각도 찾아볼 수 없는 이명박근혜 정권 비호 뉴스들만 쏟아냈습니다. 한때 뉴스의 대명사였던 MBC 뉴스데스크는 언론으로서의 신뢰도와 시청률 모두 최하위로 곤두박질쳤습니다. 언론사의 얼굴인 뉴스가 이 정도였으니 기타 제작현장은 말할 것도 없을 정도였죠.


출처 - 뉴스1


MBC는 최승호 신임 사장에 이어 부사장에 변창립 아나운서 등 각 본부장에 대한 임원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조직도 개편하여 보도본부 내에 탐사보도부를 신설하고 이명박근혜 정권의 눈엣가시라 해체됐던 교양제작국을 시사교양본부로 격상해 다시 만들었습니다. 또 뉴스콘텐츠센터를 설치해 영상취재부의 기능을 부활시켰고 프로그램 제작본부는 사장 직속 조직으로 개편했습니다.


출처 - MBC


한편 MBC 최승호 사장은 MBC재건위원회를 통해 MBC 정상화와 인적 쇄신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MBC의 얼굴이었던 〈뉴스데스크〉에 먹칠을 한 배현진 아나운서는 8일부로 교체되었고, 십수 명에 이르는 아나운서들이 떠나가도록 만들고 이와 맞먹는 숫자의 아나운서들이 부당 전보되도록 만든 책임이 큰 신동호 아나운서에게도 합당한 책임을 묻겠다고 했습니다.


출처 - 뉴스1


같은 8일 이용마 기자를 비롯해 부당하게 해직된 언론인 6명은 모두 MBC로 돌아왔습니다. MBC 구성원들은 레드카펫을 깔고 그들의 복직을 우레와 같은 박수로 반겼습니다. 부당 해직 기간에 병을 얻은 이용마 기자가 휠체어를 타고 등장해 안타까움과 기쁨이 교차하는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한편 전임 안광한 사장이 만든 MBC의 유배지인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와 신사업개발센터는 사라졌습니다. 이에 따라 정권에 거슬리는 프로그램을 만들었거나 파업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유배지 등 비제작 부서로 밀려났던 기자, PD 등이 제작부서로 속속 돌아오고 있습니다. MBC가 '다시 만나면 좋은 친구 MBC 문화방송’이 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시선'과 '제작 능력'을 갖춘 이들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환골탈태가 시작되나 봅니다.


그런데 MBC에 남아 있는 적폐들은 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김장겸 전 MBC 사장 체제에서 선임된 문화방송 이사들이 억대 규모의 특별퇴직위로금을 주지 않으면 사퇴하지 않겠다며 새로운 MBC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죠. 정권의 비호가 사라졌으니 돈이라도 챙겨야겠다는 심보입니다. 1인당 3억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어 총 20억이 넘을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 노컷뉴스


이명박 정부 당시 소말리아 해적단에게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이 치료를 받고 내지 않은 치료비를 국가가 대신 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오늘(14일) 아침 보건복지부가 밝혔습니다. 석 선장의 치료비는 모두 2억 5500만 원이었는데 국민건강보험에서 낸 8800만 원을 뺀 1억 6700만 원을 받지 못해 아주대병원은 이를 결손 처분한 바 있습니다. 석 선장을 아덴만의 영웅으로 칭송하며 자기 칭찬에 바빴던 이명박과 정부가 이를 나 몰라라 한 겁니다. 이명박 정부는 석 선장이 소속된 삼호해운이 경영난으로 파산하면서 내지 못한 치료비를 모른 체했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정부 홍보는 할 대로 다하고서는 정작 영웅에게는 도움의 손길을 뻗지 않은 겁니다. 수십조를 4대강에 퍼붓고 자원외교로 탕진할 시간은 있었어도 국민을 살릴 시간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국민을 개·돼지로 취급한 겁니다. 박근혜와 박근혜 정부는 더 노골적이었죠.

 

      출처 - MBC 〈PD수첩〉

 

지난 12일 〈PD수첩〉은 'MBC 몰락, 7년의 기록'이란 제목으로 7년간 MBC에서 벌어진 일들을 파헤쳤습니다. 아울러 2010년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이 작성한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을 공개했습니다. 이 문건은 이명박 전 대통령 정권 당시 국정원이 MBC를 장악하기 위해 작성한 시나리오였습니다. 문건의 내용에 따라 정권에 불리한 의제와 이슈를 다루는 시사 프로그램들은 퇴출 대상이 되었습니다. 

 

김재철, 안광한, 김장겸, 백종문, 박상후 등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 채워진 MBC가 이명박근혜 시절 동안 몰락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사필귀정이라 할까요. 이명박근혜 정권의 대표적인 적폐였던 언론장악이 오랜 시간 동안 치열한 투쟁을 거친 지금에 이르러 제자리로 돌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이미 저질러버린 잘못이 산재해 있어 단숨에 정상화되기는 어렵겠지만 공중파에서 제대로 된 언론의 모습을 볼 날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출처 - 한겨레

 

호전되어 가는 MBC를 보며 KBS가 못내 안타까웠는데 이제 돌파구가 보입니다. 방통위는 최근 감사원으로부터 업무추진비 유용 혐의가 적발된 강규형 KBS 이사에게 해임 사전 통보를 하고 해임 절차에 돌입했습니다. 이 1명의 자리만 바뀐다면 KBS 노조가 요구하는 고대영 사장 해임이 가능한 상황이라서 KBS 파업 사태도 종지부가 찍힐 것으로 전망됩니다. 참 언론으로 다시 태어날 MBC와 KBS를 응원합니다.

 

나날이 퇴보하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

 

"정권에 비판적인 멘트를 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 말씀드릴까요? 뉴스데스크에 광고가 24개 정도 붙고 하나당 5000만 원 정도 호가합니다. 근데 제가 그만둘 무렵 광고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중소기업 하나 남았습니다. 그래서 대포 광고했습니다. 회사가 돈을 안 내지만 이름만 쓰는 겁니다. 서너 개 회사 이름을 써서 내보낸 적이 있는데, 그 회사에서 전화 와서 돈을 줄 테니 이름을 빼달라고 합니다. 제가 그때 청와대도 조지고 삼성도 조지고 군도 조지고 국정원도 조지던 때였거든요. 그래서 그 회사의 상무에게 왜 그러십니까? 물었더니 '저쪽'에서 어제 광고 잘 봤다고 매일 아침에 전화가 온다는 겁니다. 국정원이 그런답니다. 그렇게 오래전 일이 아닙니다. 지금은 제발 그런 짓을 안 하길 바랍니다만."


―MBC 뉴스데스크에서 물러난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중에서


신경민 의원의 발언대로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우리나라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나날이 위축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 초기에 파업을 불사하며 국민을 대변했던 MBC가 이제는 TV조선과 어깨를 겨루며 박근혜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한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죠. 그 정점은 얼마 전에 터진 MBC 녹취록 파문입니다.


출처 - 뉴스타파



MBC가 증거도 없이 기자와 PD들을 해고했다는 녹취록



"그때 최승호하고 박성제 해고시킬 때 그럴 것을 예측하고, 알고 얘들을 해고시켰거든, 그 둘은. 왜냐면 증거가 없어… 그런데 이놈들 가만 놔두면 안 되겠다 싶어 가지고 해고를 시킨 거예요" - 2014년 4월 1일 녹취록


MBC 고위간부의 밀담, "그 둘은 증거없이 잘랐다"(뉴스타파)

 

2012년 170일간 이어진 파업의 도화선이었던 김재철 사장은 끝내 해임됐지만, MBC는 붕괴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청자에게 친숙했던 아나운서들이 한 사람씩 회사를 떠났습니다. 시사교양국 분리 해체로 해당 PD들은 예능 프로로 발령이 나거나 스케이트장 관리직 등 전문 분야와 상관없는 곳으로 좌천되기도 했습니다. 파업에 대한 보복이자 정권에 비판적인 PD들의 싹을 자르려 한다는 비판적인 여론을 무릅쓰고 MBC는 정당한 인사권이라며 이를 무시해왔죠. 그런데 지난 1월 25일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폭로한 녹취록은 세간의 의혹이 사실이었음을 증명합니다. 해고의 직접적 피해자들은 후안무치한 녹취록이 공개되자 기가 막힌다고 토로했습니다. 당시 최승호 PD는 4대강 사업이 사실상 대운하 사업이라는 사실을 파헤쳤으나 김재철 당시 MBC 사장은 방송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방송을 불허한 MBC 결정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하자 일주일 후에 방영되긴 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에 잘 보여야 했던 경영진은 최승호 PD를 비롯해 정권 비판적인 시사교양국 PD들을 한 사람씩 찍어낼 궁리를 했죠.

 

출처 - 한겨레


문제의 녹취록에는 라디오는 새빨갛다며 눈엣가시인 패널은 교체를 지시하고, 국부이신 이승만 프로그램은 좌파뿐인 MBC 내부에 만들 놈이 없으니 외주 제작을 해야겠다는 내용도 나옵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법통인 임시정부를 폄훼하면서 말이죠. 또한 MBC 노조를 비판한 극우 인터넷 매체의 편집장을 만난 자리에선 방송 출연과 외주 청탁을 주고받는 말이 오고 가기도 했습니다. 녹취록을 통해 의도된 부당 해고, 프로그램 제작 자율성 개입, 진보 언론 탄압 행위 그리고 청탁 비리까지 천태만상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PD수첩>의 기수였던 백종문 PD의 타락


이 녹취록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백종문 미래전략 본부장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녹취록에서 최승호 PD 등을 증거 없이 해고하고 비판적 시사 프로그램을 못 하게 통제하고 있다며 자랑스레 말한 그가 바로 <PD수첩> 출신 PD이기 때문이지요.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이 변절하여 일제에 부역하는 셈이랄까요?

 

1990년대 <PD수첩>은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를 표방하며 성역 없는 비판을 추구했습니다. 당시 백종문 PD는 그런 <PD수첩>의 기수였습니다. 지금도 제목만 들으면 알 만한 '의혹 기도원에서 생긴 일'(1993.03.26), '죽어서도 사람대접 못 받는 외국인 노동자들'(1994.01.25.), '의혹 영생교를 벗긴다'(1994.02.15), '사람대접 받고 싶어요 외국인 근로자들의 절규'(1995.01.17), '시대유감! 우리 사회의 노래심의'(1995.10.17), '80년 5월 광주 이 얼굴들을 아십니까?'(1999.05.18) '고문 이근안 뿐인가'(1999.11.09) 같은 대표작으로 종교, 정치, 사회문제 등 문자 그대로 성역 없이 비판의 목소리를 내던 사람이었죠. 그랬던 그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변절 끝에 정권의 충견이 된 것일까요? 웹툰 <송곳>의 명대사처럼 서는 곳이 달라지면 보이는 풍경도 변하기 때문일까요? 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며 후배들을 이끌어주었어야 할 사람의 변절을 보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출처 - 노컷뉴스


윗물이 탁한데 아랫물이 깨끗할 리 만무하지요. 지난 8일 MBC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긴급설문조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한반도 사드 배치와 관련해 의도된 결과를 얻기 위해 편향된 질문을 했다는 주장이 나와 충격을 안겼습니다. MBC는 미국의 사드 한반도 배치 필요성에 대해 국민의 67.8퍼센트가 공감하며 25.8퍼센트가 그렇지 않다고 답해 사드 배치 찬성 의견이 두 배 이상 많았다고 보도한 바 있으나 여론조사 설문지 전체 내용을 보면 원문 질문 자체가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맞서기 위해..."라며 사드의 필요성을 전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답변으로 공감한다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도록 짜여 있었습니다.

 

이 밖에도 국회 쟁점 법안에 대한 국회의장 직권상정과 관련된 이슈에 대해 마치 국회선진화법이 법안 처리를 가로막는 악법인 양 질문을 던져 직권상정 찬성으로 투표를 유도하는가 하면 노동개혁에 관해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도록 질문지 자체를 조작하고 있었습니다. 지극히 편향된 프레임으로 짠 설문이라 엄밀히 설문조사라고 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이 밝힐 정도입니다.

 

출처 - 미디어오늘


이 설문조사 왜곡 논란을 취재하던 《미디어오늘》 기자에게 MBC 최기화 보도국장은  "개새끼야. 어디서 내 정보를 알아낸 거야. 싸가지 없는 새끼 아냐"라고 원색적인 쌍욕을 퍼부어 문제가 되기도 했죠. 기자가 "욕하시면 안 되죠"라고 말하자 "욕이고 지랄이고 간에 내 개인정보를 네가 왜 아냐. 네가 녹음을 하든 말든 마음대로 해"라고 마치 시정잡배처럼 말을 늘어놓았습니다.


하지만 초록은 동색, 가재는 게 편이라죠? 이런 사달이 나고 직접적인 증거도 명확함에도 박근혜 정권 인사로 가득한 방송문화진흥회는 MBC 백종문 미래전략본부장을 재임했습니다. 자신들의 충견을 쓰다듬어준 셈입니다. 최근 MBC 대주주이자 관리감독기관인 방문진은 MBC 녹취록 논란의 장본인 백종문 본부장과 질의응답 시간을 갖기로 했으나 보수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하는 방문진 여당 추천 이사들은 녹취록 파문은 선거철을 앞두고 기획된 정치공작이라는 MBC 측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미디어오늘》 보도 내용처럼 방문진 이사들이 백종문 본부장의 일방적인 해명을 듣고 내릴 결론은 뻔합니다. '사적인 자리에서 나눈 개인적 의견일 뿐이고, 업무상 불법행위가 있다면 법적으로 처벌받으면 되는 일이므로 방문진은 이 문제에 더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이겠지요.

 

 

언론 및 표현의 자유 vs 테러방지법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가 시작된 날 우리나라 주요 방송사의 기사 타이틀은 위와 같았습니다. MBC와 KBS는 '정치쇼'로 치부했고, SBS는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고 있다며 우회적으로 비난했습니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의견만 옳다는 것을 전제하고 정한 제목이니 프레임 자체가 왜곡되었다고 봐야 하겠죠.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무슨 이유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필리버스터를 강행했는지 제대로 알려주는 방송은 JTBC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는 공중파 3사의 프라임 뉴스 상황이 이러하니 시청자가 제대로 된 정보를 접할 수 없고 왜곡된 의견을 사실로 인식하기 쉽습니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이 언론 장악에 열을 쏟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거겠죠.


국제적인 저널리스트 단체인 '국경 없는 기자회'는 매년 세계언론자유지수 순위를 발표합니다. 세계 각국·지역 보도의 자유도에 순위를 매김으로써 검열 상황, 제도장치, 투명성, 인프라 등의 항목으로 세계 180개국·지역을 채점해왔습니다. 2015년 2월 12일에 발표한 '세계언론자유지수 순위 2015'에서 한국은 전체 180개 조사 대상국 중에서 60위를 기록했습니다.

 

출처 - 국경 없는 기자회

 

우리나라 언론자유지수 순위는 노무현 정부에서 최고 31위(2006년)를 기록했지만, 이명박 정부 때부터는 하락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언론자유지수가 역대 최하위인 69위를 기록했을 때는 2009년이었죠. 아시다시피 그 당시에는 미네르바 사건, <PD수첩> 등에 대한 검찰의 무리한 수사 등이 악영향을 주었습니다. 이후 이명박 정권하에서 언론의 자유는 계속 위축되어 대한민국 사회에서 유례없이 언론사 총파업 같은 행동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14년 57위, 2015년 60위라는 순위가 알려주듯이 박근혜 정권 들어 언론자유지수는 회복될 기기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생각비행은 출판사 창립 이후 이 문제를 중요하게 여겨 탐사보도를 중심으로 관련 기사를 꾸준히 발행해왔는데요,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주요한 기사를 정리해서 보여드립니다. 시간순으로 정리했으니 대한민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어떻게 위축됐는지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테러방지법이 통과된 현시점에서 우리의 현실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검사와 스폰서 사건에서 발견한 탐사보도의 가치
http://ideas0419.com/126

 

《PD수첩》 무죄판결로 살피는 탐사보도의 가치
http://ideas0419.com/220

 

사진으로 보는 '으랏차차 MBC' 공연 참관기
http://ideas0419.com/312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념하며 표현의 자유를 다시 돌아보다
http://ideas0419.com/354

 

삼일절에 돌아보는 헌법의 근본정신
http://ideas0419.com/456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주류 언론
http://ideas0419.com/470

 

<세월오월> 전시 유보, 박근혜 무엇을 얻었나?
http://ideas0419.com/493


빅브러더, 국정원의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나다
http://ideas0419.com/566

 

베이징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뉴욕엔 태풍이 몰아친다... 이는 '나비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예입니다. 사소한 사건 하나가 엄청난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최근 유럽발 날갯짓이 극동아시아에 태풍을 유발했습니다. 지난 6일 이탈리아의 업체 해킹팀이 해킹을 당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말이 좀 이상하지요? 간단히 말하자면 정부나 기관의 의뢰를 받아 해킹을 해주던 업체가 누군가로부터 해킹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우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 같았던 지구 반대편 회사의 해킹 소식이 일주일도 안 되어 대한민국의 국정원을 핵으로 한 무시무시한 태풍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해킹팀에서 유출된 내부 자료의 양은 무려 400기가 바이트에 달합니다. 여기엔 회사의 내부 문서, 소스코드, 전자우편 기록, 직원 컴퓨터의 화면 스크린샷 등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데요, 이 자료가 폭로 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에 공개되었죠.

 

 

위키리크스의 폭로, 우리 사회의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다

 

생각비행은 위키리크스와 연관된 기사를 자주 소개했습니다. 위키리크스가 대한민국 썩은 정계의 비리를 폭로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2010년 11월 28일 위키리크스는 25만여 건에 달하는 미국 기밀 외교전문을 폭로한 바 있습니다. 여기에 2007년 한국의 대선과 관련된 보고가 다수 포함되어 있어서 우리 사회에 파문을 남겼습니다. 폭로된 외교전문을 통해 이명박 정부가 국민을 속였음이 백일하에 드러났죠.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미국 측과 만나 쇠고기 시장을 조속히 개방하겠다고 약속했고,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은 쇠고기 수입 재개를 6월 재보선 이후로 연기해 달라는 요청까지 한 사실도 드러났지요.   

 

2011년 5월 25일 서울디지털포럼에서 <위키리크스 대 저널리즘>이라는 제목으로 인상 깊은 발표가 있었습니다. 생각비행이 직접 들은 내용을 정리해서 기사로 쓴 적도 있습니다. 이 발표에서 《슈피겔》 기자 마르셀 로젠바흐는 폭로 플랫폼이 미디어와 윈-윈 모델이 될 수 있다면서 폭로 사이트들이 기존의 미디어를 보완하거나 향상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위키리크스는 기존 언론이 알아내지 못하는 정보를 제공해왔고, 이는 기존 언론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냄으로써 '탐사 저널리즘'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관심이 있는 분은 생각비행의 예전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자료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이번에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해킹팀의 자료는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위키리크스 해킹팀 자료 다운로드 : https://wikileaks.org/hackingteam/emails


해킹팀은 해킹을 당한 직후 공격자들과 대중에게 자료를 퍼뜨리지 마라, 공격자들이 우리 회사에 관해 주장하는 대부분은 사실이 아니라며 사태 수습에 열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사태는 그들의 통제 범위를 까마득히 넘어버렸습니다. 이틀 후인 8일 해킹팀 대변인은 6일 해킹당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들의 고객인 정부와 정부기관에 판매한 기술에 접근할 통제력을 잃은 상태이며 극도로 위험한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출처 - 한겨레


해킹된 해킹팀의 자료에는 이 회사에서 해킹 장비를 구매한 FBI, KNB 등등 세계 여러 정부 및 정보기관 목록과 구매 대금 영수증까지 들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5163부대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소프트웨어 구매와 유지, 보수 등으로 6차례에 걸쳐 8억 8000만 원을 지불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시피 포털 사이트 댓글부터 SNS까지 광범위하게 대선 개입을 해 유죄를 선고받은 국정원의 대외용 이름이 바로 5163부대입니다.



박정희에 충성을 맹세한 국정원의 대외용 이름 5163부대

 

출처 – 오마이뉴스


지난 2013년 《시사in》의 취재에 의하면 자주 등장한 국정원의 대외용 이름은 7452부대와 5163부대였습니다. 어느 것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이 깊습니다. 북파 공작원도 한때 중앙정보부 5163부대 소속이었는데요, 5163이란 5.16 쿠데타 때 박정희가 새벽 3시에 한강철교를 넘었다는 데서 따온 이름으로 알려졌습니다. 7452부대는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일성 전 주석이 발표한 7.4 남북공동성명과 그 밑 준비를 위해 5월 2일 처음으로 판문점을 넘은 중앙정보부 이후락을 기념한 숫자라고 하죠.

 

국정원의 대외용 이름에 담긴 뜻을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독재를 꾀하다 죽은 지 30년이 넘도록 제정신이 아니었던 국정원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더구나 대선 개입을 해서라도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려 했던 국정원의 지난 행적과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그들의 정신 상태를 약간은 이해할 여지가 생깁니다. 이런 국정원(5163부대)이 이탈리아 해킹팀으로부터 고도의 해킹 프로그램 RCS를 국민의 혈세 8억 8000만 원을 주고 샀습니다. 해킹 자료에는 구매 영수증까지 포함되어 있어 국정원도 이를 부인할 수 없었죠.



RCS, 당신의 모든 것을 감시한다


국정원이 대리인으로 내세운 나나테크를 통해 도입한 RCS는 원격제어시스템으로 스파이웨어 기반으로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을 감염시키고 감시하는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해킹팀이 RCS를 특정 사용자들의 암호화된 통신까지 모조리 감시할 수 있다고 광고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정말로 그렇다면 감시의 광범위함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쓰는 MS 윈도나 구글 안드로이드는 물론 상대적으로 보안이 좋다고 알려졌던 애플의 iOS, 리눅스뿐 아니라 블랙베리, 심비안 등 거의 모든 PC와 스마트폰 운영체제 감시가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글 지메일을 쓰거나 MS의 스카이프로 통화하거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SNS를 할 때, 아무리 암호화를 해두었다고 하더라도 키보드 입력, 음성통화, 오디오, 비디오 등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다고 합니다.

출처 - 한겨레


유출된 해킹팀의 자료를 분석한 언론의 보도를 들여다보면 국정원이 얼마나 꼼꼼하게 감시에 공을 들였는지가 드러납니다. 5163부대가 나나테크를 통해 이탈리아 해킹팀에 카카오톡 해킹 기술을 문의했다는 문서 내용이 공개된 가운데 카카오톡에서 사이버 망명한 메신저 중 인기가 높던 바이버에 관해서도 해킹 기술을 문의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바이버는 안철수, 유병언, 황교안 등이 사용했을 뿐 아니라 의원이나 비서관이 많이 쓰는 프로그램으로 유명했죠. 바이버가 텔레그램처럼 본사가 외국에 있고 도·감청 가능성이 작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기에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당시 이탈리아 해킹팀은 R&D팀에서 검토 결과 RCS 다음 버전부터 요청한 기능을 쓸 수 있을 거라는 답장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올해 초처럼 카카오톡 사태를 우려해 텔레그램으로 사이버 망명을 한들 국정원이 타깃으로 지정하는 이상 감시에서 원천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영화에서나 보던 일이 현실이 되는 실로 무서운 이야깁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국정원은 한술 더 떠서 R&D를 위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인 삼성 갤럭시S 시리즈를 비롯, 스마트폰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직접 해킹팀에 보내 분석을 의뢰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2013년엔 갤럭시S3를 직접 보냈고, 지난달에는 매우 중요한 기능 요청이라며 신제품인 갤럭시S6를 공격할 수 있는 기능을 요구하기까지 했습니다. 게다가 국정원은 전 세계에 발매된 갤럭시 S3 중에서도 굳이 국내에 발매된 모델을 보냈다고 합니다. 통신사별로 기본 탑재 어플 등이 상이하기 때문에 해킹을 위한 정확한 분석을 위해서는 대상이 되는 스마트폰을 직접 분석하는 편이 좋기 때문이죠. 이는 국정원의 변명과 달리 RCS를 국내 감시용으로 썼다는 방증입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국정원과 나나테크, 그리고 이탈리아 해킹팀의 이메일 내용만 봐도 국정원이 스마트폰 하드웨어부터 백신 프로그램, 카카오톡 등 메신저 어플 같은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총망라된 감시 기술을 끊임없이 요구해왔음이 드러난 것이죠.  


더구나 해킹팀의 해킹 공격 기술을 이용한 한국 국내 공격이 실제로 이루어진 정황도 밝혀지고 있습니다. 2013년 국정원의 요청을 받아 이탈리아 해킹팀은 공격코드를 삽입한 ‘천안함 문의(Cheonan-ham inquiry)’라는 제목의 워드 파일을 만들어 준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워드 파일을 받아 연 사용자는 해킹팀의 악성코드에 감염되어 모든 것을 감시당하게 되는 겁니다. 이는 국정원이 국내 이슈 전반에 걸쳐 무차별적인 도·감청 및 감시 활동을 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국정원의 치졸한 변명, RCS는 사용했지만 감시는 하지 않았다?


지난 13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따르면 국정원은 이탈리아 해킹팀에서 산 스파이웨어 RCS를 실제 사용한 적이 있다고 시인했습니다. 하지만 치졸한 변명을 하기 시작합니다. 국정원은 RCS를 민간인 사찰이 아닌 대공수사용으로만 썼다고 합니다. 이는 죄 없는 시민을 간첩으로 조작하기까지 하는 국정원의 행태를 볼 때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더구나 RCS는 모든 행위를 감시할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에 법이 정한 압수수색의 범위를 벗어날 가능성이 큰 탓에 이런 수사방식은 설사 영장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위법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큽니다. 현행 정보통신망법 48조와 49조에 의해서도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감청 소프트웨어를 심고 활용하는 것은 불법이니까요.

 

출처 - 연합뉴스


국가의 안위를 위해 백신 프로그램 같은 역할을 담당해야 할 국정원이 국가의 면역체계를 망가뜨리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국민을 사찰하고 감시하며 스스로 컴퓨터의 악성코드와 똑같은 존재로 타락한 것이죠. 생각비행은 <메르스 정국에 SNS 감청법 발의한 새누리당>이란 기사에서 지난 6월 1일 새누리당 의원들이 감청 설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이른바 SNS감청법을 발의한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번에 유출된 해킹팀 자료를 통해 알게 된 사실들을 미루어볼 때 새누리당의 SNS감청법 발의와 국정원의 미친 짓거리 사이에 어떠한 연결고리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군요.   

 

새정치민주연합 송호창 의원에 의하면 미래창조과학부가 인가한 감청 장비 현황과 기관별 보유 감청장비 사이에 70여 대의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를 신고할 의무가 없는 국정원이 이 70여 대를 운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주인을 무는 개라면 마땅히 재갈을 물려야 하겠지요. 국민을 위법 감시한 국정원은 단죄함이 마땅합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삼아 도·감청에서 자유로운 국민의 사생활을 보장함과 아울러 국정원 활동을 법으로 규제할 제대로 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해킹 프로그램으로 국민을 사찰했을 가능성이 커지자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13일 당 차원에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규명에 나섰습니다. 이번 사안은 야권 전체의 초당적 차원에서 협력해야 할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2012년 당시 국정원의 대선 개입과 댓글 공작이 사실로 드러난 마당에 또다시 국정원이 불법사찰을 지속했음이 드러난 이상 문제의 근원이 된 국정원을 철저히 조사해 책임자를 발본색원하고 처벌함이 마땅합니다. 국정원이 사용하는 예산이 국민을 사찰하고 감시하는 해킹 프로그램 도입에 사용된 것 자체도 문제거니와 그들이 하는 일을 아무도 알 수 없게 되어 있는 구조 자체가 참으로 비정상적인 상황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번 사건을 '국정원 불법사찰 시즌2'로 규정하고 국회 차원의 대응을 시사한 것과 상반되게 새누리당은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는 것도 참 의아한 상황입니다. 초록은 동색이기 때문일까요?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의 선거 개입 상황이 드러난 시점에 새누리당이 이를 '국정원녀 감금 사건'으로 규정하면서 야권 전체를 싸잡아 비판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불법 도청 사건으로 하야한 닉슨을 기억하라

 

1972년 6월 발생한 워터게이트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미국 대통령 닉슨의 재선을 위해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공작반이 침입해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되어 체포된 사건이었죠. 워터게이트 사건을 통해 닉슨 정권은 의도적으로 선거를 방해했고, 부정적인 방법으로 정치 헌금을 받았으며 탈세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죠. 결국 1974년에 닉슨은 대통령직을 사임합니다.

 

미국 정보기관의 무차별적인 도·감청은 유명한 일입니다. 독일 메르켈 총리를 포함한 각국 정상의 휴대폰을 불법 도청한 사실이 드러나 전 세계적인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요. 하지만 최근 미국은 정보기관의 무차별 도·감청을 끝낼 미국 자유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오랜 악습의 고리를 끊어낸 것입니다.

 

지난달 말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국가정보원을 비공식 방문했음이 드러났습니다. 대체 왜 그 시점에 국정원을 방문했는지 참 궁금해집니다. 6월 1일 새누리당 의원들이 SNS감청법을 발의한 이후라는 걸 시기적 우연성으로 넘겨야 할까요? 지난달 22일 다음카카오가 언론사의 기사에 정부나 기업이 해명하거나 반박할 수 있게 하는 댓글 서비스를 내놓겠다고 발표하고 이를 7월에 시행하겠다고 한 것이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일이었을까요? 최근 터져 나온 국정원 해킹 프로그램 구매 사건을 국민의 자유를 옥죄려는 정부의 움직임과 엮어서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모르는 어마어마한 일이 이면에서 진척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과연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참으로 어안이 벙벙할 따름입니다.

  

앰네스티 디텍트 누리집: https://resistsurveillance.org


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는 보안 전문가들과 디텍트(DETEKT)라는 보안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NSA의 도·감청 비리를 폭로한 이후 정부가 감시 목적으로 컴퓨터에 심어 놓은 도·감청 스파이웨어를 찾아낼 목적으로 만든 프로그램입니다. 이번 이탈리아 해킹팀의 RCS 스파이웨어가 있는지 추적하는 기능도 포함된 모양입니다. 혹시 컴퓨터가 도·감청 스파이웨어에 감염되어 있는지 걱정되는 분이 계시다면 앰네스티 디텍트 누리집에서 내려받아 점검해보시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깨어 있는 시민이라면 국가기관의 불법을 용인해선 안 됩니다. 서서히 드러나는 국정원의 실체를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배후에 누가 있는지 밝혀낼 일입니다. 국민을 감시하고 표현의 자유를 옥죄려는 이는 그 누구라도 일벌백계하여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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