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대법원은 “정부 또는 국가기관의 정책 결정이나 업무 수행과 관련된 사항은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며 “이러한 감시와 비판은 이를 주요 임무로 하는 언론보도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될 때 정상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감시와 비판에 관한 한 성역이 없으며 언론보도의 자유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증명한 중요한 판결이었습니다.
광우병 보도 논란과 《PD수첩》재판
광우병 보도 논란은 2008년 4월 《PD수첩》이 방영한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방송에서 《PD수첩》은 미국 도축장의 '다우너 소(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하는 소)'를 도축하는 모습과 인간광우병 환자로 추정하는 여성의 이야기, 그리고 한국인이 광우병 쇠고기를 섭취할 경우 인간광우병에 걸릴 위험성이 높다고 보도했습니다.
방송의 파장은 컸습니다. 방송이 공개될 즈음 이명박 정부는 한미 쇠고기협상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고 부위 대부분을 자유롭게 수입할 수 있도록 합의한 바 있습니다. 2008년 5월 5일 그 합의문이 공개되었는데요, 이에 대해 축산농가의 반대가 거셌고, 광우병의 위험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우려 또한 컸습니다. 무엇보다 광우병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는 상황에서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탓에 각계 각층으로부터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협상 타결 직후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됐다"고 말하였고, 협상 관련 논란이 일기 시작하자 "소비자 선택의 문제"라는 무책임한 발언을 했습니다. 결국 5월 초 청계광장 앞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렸습니다. 광우병 촛불집회의 시작이었죠. 일부 연예인이 미니홈피에 광우병에 대한 의견을 내어 눈길을 끌었고, 몇몇 웹툰 작가는 만화로 광우병에 대한 위험성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시민이 거리로 나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서명운동(100만 명 이상이 참여했음)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광우병에 대한 시민의 공포가 반영된 웹툰, 포스터, 로고
출처: 경향신문 |
2009년 12월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PD수첩》의 조능희 CP, 김보슬 PD, 김 모 작가에게는 징역 3년을, 송 모 PD와 이 모 PD에게는 각각 징역 2년을 구형했습니다. 이에 대해 《PD수첩》 변호인단은 "비판보도를 했다고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사법주의 판결에 대해 《PD수첩》 제작진과 변호인단은 검찰이 쇠고기 협상단 등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PD수첩》제작진을 기소한 사건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2010년 1월 20일 재판이 열렸는데요, 법원은 《PD수첩》 제작진 전원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다우너 소, 아레사 빈슨 허위 번역,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의 모든 혐의를 부정했고, 《PD수첩》의 SRM 수입 보도 판결에 대해서도 허위 보도가 아니라며 《PD수첩》 제작진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2010년 12월 3일 검찰의 항소로 열린 2심 공판에서도 법원은 《PD수첩》제작진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재판부는 다우너 소가 광우병에 걸렸다는 부분, 미국인 아레사 빈슨의 사망원인이 광우병이란 부분, 한국인의 MM형 유전자와 광우병의 관계 등에서 일부 허위사실이 인정되나 명예를 훼손하거나 업무를 방해하려는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언론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한 우리 헌법에 비춰볼 때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2011년 9월 2일 대법원은 기소된 《PD수첩》 제작진 5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대법원은 "보도내용 중 일부가 객관적 사실과 다른 허위사실의 적시에 해당하지만, 국민 먹거리와 관련된 정부 정책에 대한 여론 형성에 이바지할 수 있는 공공성 있는 사안을 보도 대상으로 한 데다, 보도내용이 공직자인 피해자의 명예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고 악의적인 공격으로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명예훼손의 죄책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정정보도에 대한 내용도 추가되었습니다. 대법원은 다우너 소가 광우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보도, 아레사 빈슨의 사망원인이 광우병이라는 보도, 대한민국 국민이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더 크다는 보도에 대해선 허위사실을 확정하고 이에 대해 "우리 국민이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더 크다는 보도" 부분은 정정보도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이명박 정부의 새빨간 거짓말
최근 위키리크스가 미국 외교 전문을 공개했습니다. 그 안에는 한국과 관련된 내용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이 국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미국 쇠고기 수입과 관련하여 이명박 정부가 국민을 속였음이 백일하에 드러났습니다. 먼저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외교 전문의 내용을 보시죠.
출처 : 한겨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습니다. 이상득 당시 국회부의장은 이명박 대통령을 ‘뼛속까지(to the core) 친미·친일’이라고 표현하며 미국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까지 이야기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게다가 전여옥 의원이 했던 말은 더 가관입니다. 한국민들이 중국인 유학생의 난동 사태보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 더 격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친한 친구나 가족과의 싸움이 가장 심각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이명박 정부와 여당의 친미적 행보에 대해 미국은 호의적 반응을 보였습니다. 미국 외교 관계자들은 외교 전문에서 이 대통령에 대해 '유머 감각이 뛰어난 쾌활한 교섭 대상자'(2008년 2월 21일), '우리(미국)와 함께 헌신적으로 일하는 강한 친미주의자'(2009년 9월 24일), '사실상 모든 주요 문제에 미국을 지원하는 성향'(2009년 11월 5일)을 지녔다고 평가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미국 측과 만나 쇠고기 시장을 조속히 개방하겠다고 약속했음이 위키리크스에 의해 폭로되었다는 점입니다.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하여 어떠한 ‘사전협상’도 없었다고 했던 이명박 정부의 해명이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에 초청받기 위해 부시 미 대통령에게 쇠고기 협상을 갖다 바쳤습니다. 더구나 개방을 약속한 뒤 4월 총선을 고려해 그 이후에 공식 조인하자고 했으며,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은 타결 후에 주한 미 대사를 만나 수입재개를 6월 재보선 이후로 연기해 달라는 요청까지 했다고 합니다. (관련 기사: <위키리크스> "MB, 방미전 쇠고기 개방 약속")
구린 게 많은 이명박 정부로서는 탐사보도로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알린 《PD수첩》이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입니다. 이후 이명박 정권하에서 진행된 '탐사보도 죽이기' 과정을 보면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고, 국민의 눈과 귀를 막으려는 어처구니 없는 시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PD수첩》 옥죄기로 탐사보도를 억압하다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알린 탐사보도를 시작으로 《PD수첩》은 가혹한 여정을 밟아야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하에서 검찰은 제작진을 강제 체포했고, 《PD수첩》작가의 이메일을 공개하는 등 인권 침해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PD수첩》은 촌철살인의 탐사보도로 많은 이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럴 때마다 《PD수첩》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을 간단히 정리했습니다.
- 제작진 강제 연행 (檢, ‘PD수첩’ 제작진 또 체포)
-《PD수첩》 작가 이메일 공개 (검찰 《PD수첩》 작가 이메일 공개…"'막걸리 보안법' 공안 사건인가")
- 대법원의 무죄 판결에도 사과한 《PD수첩》(《PD수첩》무죄 MBC ‘이상한 사과’)
검사와 스폰서 관련
- 최승호 PD를 비롯한 《PD수첩》제작진 좌천 (《PD수첩》 제작진 좌천, MBC 보복인사 논란>)
4대강 사업 의혹
- 김재철 사장이 사규위반을 이유로 방송보류 지시(MBC 김재철 사장 "'《PD수첩》 4대강 비밀팀', 방송 보류하라" 지시(종합))
- 8월 24일 방영되었음. (MBC PD수첩 ‘4대강 수심 6m의 비밀’ 방영 이후)
한강르네상스 관련
- 오세훈 시장 관련장면 모두 삭제관련(MBC 노조 PD수첩 외압설 제기 “오세훈 시장 관련장면 모두 삭제해야만 했다”)
이명박 대통령 무릎 기도 사건
-《PD수첩》 부장, 무릎 기도 사건에 대한 입막음 지시('MB 무릎 기도사건' 보도 PD수첩 '입막음')
경악스러운 《PD수첩》의 현재 상황
-《PD수첩》 한 PD의 노트북에는 '훔쳐보지 마세요, 제발. 고맙습니다'가 적혀있다. 그런데 이 문구는 독일어다. 이 글을 못 읽어서인지 《PD수첩》김철진 팀장의 PD 사찰은 계속되고 있다. 믿지 못하겠다면 요즘 시사교양국 곳곳에 증설된 CCTV 화면만 분석해 봐도 안다. 《PD수첩》의 팀장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PD, 작가, AD의 책상을 열어보고 노트북의 내용을 뒤적이는지. 그래서 요즘 《PD수첩》에는 굳게 잠긴 서랍이 많다. (7월 19일 MBC 노보에 실린 글)
지금까지 상황을 살펴보면 《PD수첩》 제작진이 처한 상황은 시급합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PD수첩》은 영리병원 문제, 한강 개발의 문제점, 재벌가 일감 몰아주기 같은 굵직굵직한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라고 할 만합니다.
권력에 대해 성역 없는 감시를 해야 하는 언론의 역할을 생각할 때 탐사보도의 가치는 빛을 발합니다. 탐사보도를 통해 억울한 사건이나 은폐·조작된 사건들이 제대로 알려짐으로써 사회를 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하에서 탐사보도는 설 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신문사나 방송사도 점차 탐사보도를 홀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주요 광고주인 대기업이나 정치권력을 가진 자들과 마찰을 빚기 때문입니다. 자본에 굴종하면 언론사와 방송사는 눈치를 보면서 결국 탐사보도를 축소하게 됩니다.
미국과 유럽의 비영리 저널리즘
비영리 저널리즘은 2005년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생겨났습니다. 프로퍼블리카라는 비영리 저널리즘 매체는 2년 연속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프로퍼블리카는 의료진의 반강제적인 안락사 사건을 심층취재하여 진실을 밝혀냈고, 금융회사들이 어떻게 부동산 거품을 조장해 고객에게 손실을 입히고 금융위기를 초래했는지에 관해서도 심층취재했습니다. 이 두 건의 탐사보도는 프로퍼블리카에 퓰리쳐상의 영예를 안겼습니다.
한국에선 아직 비영리 저널리즘이라 할 만한 언론이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몇 년 전부터 UCC를 이용하여 사회의 이면을 실시간으로 전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몇몇 분이 힘을 모아 소규모 방송국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아직 심층적인 탐사보도 같은 결과물을 내놓지는 못했지만, 현장의 상황을 어느 언론보다 빠르고 객관적으로 전달하여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PD수첩》과 같은 탐사보도가 설 자리를 잃고 있는 마당에 비영리 저널리즘에 대해 연구하고 이를 실현할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언론의 정화를 위해 힘쓰는 여러 단체가 있으니 힘을 합쳐 기금을 조성하여 비영리 저널리즘을 구현할 통로를 만들면 어떨까요? 지금 우리 사회엔 탐사보도가 더 늘어나야 합니다. 이번 대법원 무죄판결로 《PD수첩》이 '우리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로서 성역 없는 탐사보도를 통해 사회를 정화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PD수첩》을 비롯한 다양한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힘을 얻어 당당히 취재하고 국민의 눈과 귀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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