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4년만에 언론, 방송이 초토화되었습니다. 낙하산 사장 투하, 언론악법 날치기 처리, 언론인 학살 등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막아버린 이명박 정부의 행태는 과거 신군부 세력의 과오를 답습한 것입니다. 이를 비판하기 위해 KBS, MBC, YTN 방송 3사는 연대 파업이라는 초유의 행동을 단행했습니다. 왜 권력은 언론, 방송의 자유를 억압하려 하는 것일까요? 1980년대에 언론·출판·결사의 자유를 빼앗아버린 신군부의 행태를 돌아보면 작금의 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진실을 말하지 않고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는 되풀이 되기 마련입니다.
1980년, 빼앗긴 서울의 봄
1980년 5월19일자 경향신문 1면
2. 언론·출판·보도 및 방송은 사전 검열을 받아야 한다.
3. 각 대학(전문대학 포함)은 당분간 휴교 조치한다.
4. 정당한 이유 없는 직장 이탈이나 태업 및 파업 행위를 일체 금한다.
5. 유언비어의 날조·유포를 금한다. 유언비어가 아닐지라도 ① 전·현직 국가 원수를 모독, 비당하는 행위 ② 북괴와 동일한 주장 및 용어를 사용·선동하는 행위 ③ 공공 집회에서 목적 이외의 선동적 발언 및 질서를 문란시키는 행위는 일체 불허한다.
6. 국민의 일상 생활과 정상적 경제 활동의 자유는 보장한다.
7. 외국인의 출입국과 국내 여행 등 활동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한다.
박정희 정권에서 경험한 긴급조치와 다를 게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유신체제가 막을 내리면서 새로운 세상을 기대했던 국민의 바람을 배반한 신군부 세력은 18년간 이어진 박정희 정권과 다를 바 없는 또 다른 폭압 통치를 시작했습니다.
신군부의 언론 대학살
1980년 당시 신군부 집단이 일으킨 일련의 언론 탄압 정책은 주요한 역점 사업의 하나였습니다. 보안사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측은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언론에 재갈을 물려 국민의 눈과 귀를 막았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언론을 자기네 편으로 끌어들여 마침내 체제 언론으로 변모시켰습니다.
앞서 소개한 계엄 포고 10호의 내용에 따라 신군부 세력은 진실 보도, 자유 언론을 주장하는 기자들을 유언비어 유포 및 내란 음모 등의 혐으로 구속하여 해직시키고, 광주 시민을 폭도·난동 분자·무장 폭도로 몰아 탄압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맞서 언론과 방송은 '언론 검열 철폐와 자유 언론 실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전국적으로 검열 거부, 제작 거부의 움직임이 활발해지자 계엄사 측은 5월 17일부터 언론인 검거에 착수합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5월 22일 각 언론사 사장을 보안사령관실로 초치, 선동 주모자 처벌 방침을 통보하며 협조를 부탁했습니다.
언론 탄압 조치 가운데 가장 먼저 시행된 것은 반정부 언론인 강제 해직이었습니다. <언론계 자체정화계획서>에 의하면 반체제 언론인, 반체제 인사, 불순한 자, 이들과 직간접으로 동조한 자, 편집 제작 및 검열 거부 주동 및 동조자, 특정 정치인과 유착돼 국민을 오도한 자 등이 해직 대상으로 선정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보안사는 각 언론사에 출입중인 언론대책반 요원들을 통해 해직 대상자를 선정하도록 했으며, 신군부 자신들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려고 이들을 각 언론사가 자체 숙청토록 강요했습니다. 이로써 중앙 7대 일간지에서 265명, 서울 5개 방송사가 219명, 2대 통신사가 22명이 강제로 해직됐습니다. 이후 추진된 언론 통폐합으로 강제 해직된 언론인을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많다고 보는 편이 타당합니다.
다음으로 단행된 조치는 11월에 벌어진 언론 통폐합 조치였습니다. 1980년 11월 12일 각 언론사 대표들은 정부 기관에 소환되어 언론 통폐합 통고를 받고 이를 수락하는 각서에 서명합니다. 이는 권력이 언론을 이용하면서도 부담스러워하는 하는 속성이 잘 드러난 사건이었습니다. 결국 이렇게 해서 나온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2. 4개 경제지 중 《서울경제》가 《한국일보》에, 《내외경제》가 《코리아헤럴드》에 흡수.
3. '1도() 1지() 원칙'하에 대구의 《영남일보》가 《대구매일신문》에 흡수, 부산의 《국제신문》이 《부산일보》에 흡수, 경남 진주에서 발행되던 《경남일보》가 마산에서 발행되던 《경남매일신문》에 흡수(후에 《경남신문》으로 게재), 광주의 《전남매일신문》이 《전남일보》에 흡수(후에 《광주일보》로 게재).
4. 합동통신과 동양통신이 합병하여 연합통신으로 발족(기타 시사, 경제, 산업 등 군소 통신사는 문을 닫음).
5. 민영 방송을 폐지하고 공영 방송 체계로 바꾸어 KBS와 MBC 두 채널로 이원화.
언론 통폐합 결정에 앞서 신군부는 172개 정기 단행물에 대해서 등록 최소를 단행했습니다 당시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던 《씨알의 소리》《뿌리깊은 나무》《창작과 비평》《월간중앙》 등이 언론이 강제 해직과 때를 같이하여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쾌거
신군부 세력은 언론의 자유, 출판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억압했지만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국민의 바람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광주에서 시민이 흘린 피는 결국 역사를 바로잡았으며, 군사독재를 끝내고 문민정부가 들어섰으니까요. 수많은 기자와 시민이이 폭정의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했고 이런 각종 자료는 오늘날 다양한 형태로 역사를 돌아보게 합니다. (추천 누리집: 5.18 기념재단)
정확한 등재명은 [인권기록유산-1980년 5월 18일 군사정권에 대항해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항쟁 관련 기록물]입니다. 2010년 1월 광주 지역 인사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추진위원회'가 같은 해 3월 등재 신청서를 제출한 이후 보완과 수정을 거쳐 2011년 5월 24일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에서 등재를 권고하기로 결정하였고, 5월 25일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공식 발표했지요.
표현의 자유를 억합하는 권력에 맞선 개인의 기록물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사례(출처5.18민주화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추진위원회)
역사는 과연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신군부 세력은 언론·출판·결사의 자유를 억압했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막지 못했음을 살펴봤습니다. 1980년 시작된 신군부의 억압에 굴하지 않은 저항한 흔적은 역사에 길이 남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런 사실에서 이명박 정권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나 봅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사건은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습니다. 정연주 KBS 사장의 강제 퇴진, <PD수첩> 보도 탄압, 미네르바 기소, 김미화 씨 블랙리스트 사건, 국방부 금서 지정 파문, 이른바 '쥐 벽서' 사건, 그리고 최근 불거진 민간인 사찰 등에 이르기까지 과거 신군부 세력과 다를 게 하나 없습니다.
G20 개최 홍보 포스터에 쥐를 그려 언론 탄압을 일삼는 MB정권을 풍자한 그림 (출처: @schbard)
처음에는 해프닝으로 끝나는 줄 알았다. 경직된 사고와 권력 충성이 지나친 누군가의 ‘실수’로 보였다. 이유는 G20을 앞두고 쥐그림을 그린 대학 강사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엄청난 역풍을 경험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이렇다. 대학 강사의 행위는 정부 홍보 포스터에 낙서를 한 게 문제인지, 쥐를 그린 게 문제인지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낙서를 한 게 문제라면 그에 걸맞은 처벌(필요하다면…)을 하면 될 일이다.
쥐를 그린 게 문제가 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왜 ‘쥐’가 문제인가. 소는 괜찮고, 닭은 괜찮고, 말도 괜찮은 데 쥐라서 안 된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왜 쥐는 안 되는지 그것을 설명해야 한다. 바로 검찰이, 공안검찰이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그것을 설명하는 과정 자체가 얼마나 우스운 모습인가. 검찰은 국민이 바라는 ‘청와대 대포폰’ 몸통 찾기에는 나서지 않고 엉뚱하게 ‘쥐그림’에 집착하고 있으니 이런 검찰을 어떻게 봐야 하나. 그런데 검찰과 검찰이 진짜 그런 설명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KBS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도 아니고 현실로 벌어진 일이다. 경향신문 11월 16일자 10면에는 <‘G20 포스트 쥐그림’ 수상한 공안몰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실제 상황이다. 쥐그림을 그린 사람과 경찰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갔다고 한다.
“경찰은 이들에게 'G20에 쥐를 그린 것은 무슨 의미인가' '쥐를 그린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반복했다. 이들은 '발음이 같아서 그렸을 뿐'이라고 일관되게 대답했다.”
G20의 'G' 발음이 쥐와 비슷해서 그렸다는 데 경찰은 쥐를 그린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반복하는 상황은 웃을 수 없는 황당한 상황 아닌가. 거꾸로 경찰은 쥐가 무엇이라고, 누구라고 생각하기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가. 왜 공안검찰까지 출동했는가. ……
사실 이런 상황은 2010년 5월 표현의 자유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한국을 공식 방문한 프랭크 라 뤼(Frank La Rue)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의 우려에서 예감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라 뤼 보고관은 "한국의 표현의 자유 및 결사의 자유 현장이 상당히 열악하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한국은 경제 및 기술발전에 걸맞게 인권 및 노동기준도 개선돼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조사 결과를 지난 6월 3일 제네바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공식 발표하면서 프랭크 라 뤼 특별보고관은 한국이 의사 표현 행위에 대해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는 법률이 존재하는 나라라는 사실에 놀랐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특히 라 뤼 보고관은 한국에서 공무원이 언론과 일반시민들을 상대로 한 명예훼손 소송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보였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선진국에서는 정부나 공무원이 언론이나 시민의 비판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일을 제한하고 있으니까요. 국민이 낸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직자들이라면 국민과 언론의 감시와 비판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현 정부의 인사는 그런 당연한 권리를 명예훼손이라는 법적 근거를 내세워 억압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서슴지 않습니다. 장관이 방송국 제작진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국정원이 시민단체 대표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일도 있었으니까요. 정부의 정책에 반대한다고 겁박하는 일은 국민과 언론으로 하여금 글을 쓰거나 기사를 쓸 때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는 상황을 조장합니다.
(출처: 세계일보)
최근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디지털 화가 이하 씨가 전두환 전 대통령을 풍자한 그림을 벽에 붙이려다 검거된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 씨는 5월 17일 오전 전두환 대통령이 자신의 전 재산이라고 밝힌 29만 원짜리 자기앞수표를 들고 있는 풍자 그림을 대통령 자택 부근에 붙이다 불법광고물 부착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지난해 나치 복장을 한 이명박 대통령을 그린 그림을 공공장소에 부착해 검거되기도 했던 이하 씨는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경찰의 검거가 부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경찰은 내가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그분 때문에 상처 입은 사람들의 명예는 누가 지켜주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불법광고물 부착 혐의로 즉결심판에 넘겨져 24일 판결을 앞두고 있다고 하는데요, 과연 어떤 판결이 나올까요? 이명박 정부의 그동안 행태를 보면 안 봐도 예측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서두에 던진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왜 권력은 언론, 방송의 자유를 억압하려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 말입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국민을 위하는 권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적법한 권력이라면 나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국민을 볼모로 자신들의 세를 불리려고 하고, 국민을 쥐어짜서 자신들의 배만 불리려 하는 권력은 국민을 억압하는 동시에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법입니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제 아무리 막강한 권력이라 해도 십 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얘깁니다.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이름만 바꾼 이들은 잃어버린 그들의 십 년을 되찾기 위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엄청나게 후퇴시켰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불법을 자행하며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국토를 시멘트로 뒤덮었으며, 국민을 괴담 유포자 정도로 간주합니다.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권력 말기에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를 은폐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이들을 대한민국 국민이 그냥 넘길 리 없습니다. 진실을 말하지 않고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는 되풀이 되기 마련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이명박 정부를 과연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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