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가 드디어 폐지됩니다. 법이 제정된 지 66년 만이며, 지난 2012년 헌법재판소의 합헌 판결 이후 7년 만입니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해당하는 형법 조항 제269조 1항, 제270조 1항에 대한 위헌 여부 판단에서 헌법불합치 4명, 단순위헌 3명, 합헌 2명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날 뜻깊은 판결이 나와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출처 - JTBC


'헌법불합치'는 위헌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지만 위헌처럼 해당 법이 즉시 무효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해당 법률의 공백에 따른 혼란과 대처를 고려해 한시적인 시간 안에 개선 입법을 하라는 판결입니다. 헌재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국회에서 법을 개정하도록 주문했습니다. 이 기한이 지나도록 개선 입법이 되지 않으면 그 법률들은 위헌 판결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무효가 됩니다.


출처 - 청와대


이번에 헌법불합치 판정으로 사라지게 될 조항은 낙태한 여성에게 징역 1년 이하 또는 벌금 200만 원 이하를 선고하도록 한 269조(자기 낙태죄)와 낙태를 도운 의사 등에게 징역 2년 이하를 선고하도록 한 270조(동의낙태죄)입니다. 수많은 여성과 여성의학과 교수들이 안 그래도 힘든 때에 이 법으로 인해 큰 고통을 받았습니다. 보통 이 문제를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대결로 보곤 합니다만, 관련된 사건들을 보면 이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대 기존의 가부장적 사회와 국가 간의 대결 구도였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겁니다. 생각비행도 이런 시각에서 여러 차례 낙태죄 폐지에 관해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출처 - 시사IN

여성 탄압의 굴레, 낙태죄 폐지하라! : https://ideas0419.com/669

혜화역 시위와 낙태죄 폐지, 여성 인권 신장 계기 되길 : https://ideas0419.com/840

낙태 여성 조사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압수수색한 경찰 : https://ideas0419.com/911

 

사실 이번 낙태죄 위헌 판결은 어느 정도 예상되었습니다. 7년 전 헌법 소송이 합헌으로 판결이 나기는 했지만 4:4, 문자 그대로 턱걸이 합헌이었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진보하고 개인의 인권에 대한 존중이 높아지며 낙태죄라는 법은 사실상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리얼미터 현안 조사에서도 남녀노소,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국민 10명 중 6명은 낙태죄 폐지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유일하게 60대 이상만이 찬성과 반대가 팽팽했으나 미세하게 낙태죄 폐지 찬성의견이 높았습니다. 여성들의 시각은 어땠을까요? 낙태죄 폐지 찬성 응답 비율이 75%가 넘었습니다. 2010년까지만 해도 낙태 찬성 비율이 33%에 불과했던 점을 보면 인식이 참으로 많이 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와 여성의 인권에 대한 배려와 감수성이 진보한 것입니다. 이번 헌재의 결정은 헌법불합치냐, 단순 위헌이냐의 갈림길이었을 뿐입니다.


출처 - SBS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4명의 헌법재판관은 "모자보건법상의 정당화사유에는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갈등 상황이 전혀 포섭되지 않는다"며 "사회경제적 이유로 인해 낙태 갈등 상황을 겪고 있는 경우까지도 예외없이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의 유지 및 출산을 강제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한다는 점에서 위헌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태아의 생명은 여성의 보호를 포함할 때 실질적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죠. 다만 "자기낙태죄 조항과 의사낙태죄 조항에 대해 각각 단순위헌 결정을 할 경우, 임신기간 전체에 걸쳐 행해진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게 됨으로써 용인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이 생기게 된다"고 하여 유예를 두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것입니다.


출처 - 한국경제


단순위헌 의견을 낸 3명의 헌법재판관은 한발 더 나아갔습니다. "임신 제1삼분기(마지막 생리기간의 첫날부터 14주 무렵까지)에는 어떠한 사유를 요구함이 없이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숙고와 판단 아래 낙태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며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옹호했기 때문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와 반대로 합헌 의견을 낸 2명의 헌법재판관은 "사회·경제적 사유에 따른 낙태의 허용은 낙태의 전면 허용과 동일한 결과를 초래해 생명경시 풍조를 유발할 우려가 있다"며 "우리도 태아였다"는 다소 감정적인 표현을 동원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이성적으로 더 막을 방법이 없음을 드러내는 증거가 아닐까요? 종교계에서 말하는 것처럼 태아와 출생한 사람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인데, 이건 현행법상으로도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애초에 우리나라 형법은 태아를 임산부 신체의 일부로 보거나 임산부 폭행 등 어떤 행위로 인해 태아가 사망하여도 태아의 사망만으로는 임산부에 대한 상해죄나 태아에 대한 살인죄가 인정되지 않습니다. 태아는 살인죄의 객체조차 아닌 셈이죠. 그저 낙태죄에 있는 부동의낙태죄에 해당할 뿐입니다. 태아가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면 과실치사나 살인죄로 처벌해야 할 것인데 말입니다.


출처 - 뉴스1


종교계가 이야기하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충분히 공감해야 하겠지만, 그것을 적용하는 잣대와 방향이 너무나 잘못 되어 있었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동안 낙태죄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보다는 여성을 지배하고 협박하는 수단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더는 존속해서는 안 되는 악법입니다. 최근 5년간 전국 법원에서 이뤄진 낙태 관련 판결 80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는 가히 충격적입니다. 여성을 고소한 사람 대부분이 그 여성을 임신시킨 남자친구 또는 남편, 또는 그 남성 측의 가족이었기 때문이죠. 특히 이혼 소송이나 양육권 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거나 이별을 요구하는 여자친구를 붙잡기 위한 수단으로 낙태죄를 악용하고 있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마치 불법촬영물로 여성을 협박하는 남자들처럼 낙태 사실을 소문내겠다며 낙태죄를 이용해 여성들을 협박하는 도구로 삼고 있었던 겁니다. 낙태죄에 국가와 남성의 책임이 쏙 빠져 있다는 질책은 바로 이런 지점에서 제기된 것입니다. 태아가 성인과 다름없는 생명이라고 주장하고 싶었다면 누구보다 그 생명을 잉태한 여성을 협박하고 생명을 책임지지 않으려 했던 남성을 가장 무겁게 처벌했어야 했을 텐데 말이죠. 현재 낙태죄가 폐지되었으니 낙태 이력을 남기라고 악플을 달고 다니는 남성들은 여성을 자신들의 통제 아래에 두려는 참으로 한심한 부류일 뿐입니다. 


출처 - 한국여성민우회


녹색당은 헌재의 결정에 대한 논평에서 "여성들이 겪어온 고통을 생각하면 너무 늦은 결정이지만, 오늘이라도 이런 결정이 나온 것을 환영한다"며 2020년 12월까지 국회는 법개정 논의를 통해 여성의 자기결정권, 안전한 임신중지권 그리고 평등한 재생산권의 실질적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법개정을 해야 한다. 만약 이 과정에서 또다시 낙태죄를 변칙적으로 존속시키려 하는 시도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각 정치세력은 2020년 총선에서 낙태죄 폐지방안에 대해 책임있는 정책을 내놓고 유권자들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 녹색당

 

낡은 시대의 법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입니다. 헌재의 결정에 따라 국회는 적극적인 개정 입법을 시작해야 합니다. 아울러 낙태 시술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등 행정적인 지원은 물론 의료계에 대한 교육과 지원 역시 필요하겠죠. 교육 현장에서도 현실적인 피임 방법 등에 대한 구체적인 성교육이 동반되어야 하며, 여성들에게는 임신 중단 상담을 위한 가이드를 제공할 수 있는 장소나 행정요원이 필요합니다. 많은 준비가 필요하겠지만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시대로 나아가는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2011년 언론계의 최대 화두는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출범이었습니다. 온갖 특혜 속에서 출범한 종편이 저널리즘의 위기와 방송의 공공성 악화를 가져온다고 우려한 언론노조와 《한겨레》《경향신문》《한국일보》《경남도민일보》 등은 1면 하단에 백지 광고를 내며 강력하게 항의했습니다. 저희도 종편 개국을 반대하는 뜻으로 종편 개국이 우리 사회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 알리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1퍼센트의, 1퍼센트에 의한, 1퍼센트를 위한 종편 개국)

여야는 지난해 12월 말까지 미디어렙법안을 처리하기로 했으나 양측이 이견을 보여 자꾸 처리가 미뤄졌습니다. 그러다 2012년 1월 5일 소관 상임위원회인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문방위)에서 미디어렙법이 통과되었습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13일 오전 전체회의를 열어 미디어렙 법안을 처리하려 했으나 해당 상임위의 여야 합의안이 아닌, 수정안이 올라온 것으로 나타나 논란 끝에 통과되지 못하고 정회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한나라당 미디어렙 법안 처리를 끄는 속내가 따로 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경선이 끝나는 15일 민주당 지도부로 강경파가 많이 들어오면 현재 잠정 합의된 미디어렙법이 틀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미디어렙 처리에 미온적이었던 한나라당이 법안 처리 마지막 단계만을 남겨두고도 종편 편들기를 하면서 법안을 무산시키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2012년 들어서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미디어렙법. 오늘 생각비행은 미디어렙이 과연 무엇이고, 그것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최근 문방위를 통과한 미디어렙법의 문제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자세히 소개하려 합니다.

미디어렙, 그것이 알고 싶다

한국방송광고공사

'미디어렙'은 매체를 뜻하는 미디어(Media)와 대표자를 뜻하는 레프리젠터티브(Representative)를 합성한 용어로 방송사의 위탁을 받아 광고주에게 광고를 판매해주고 판매대행 수수료를 받는 회사를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우리말로는 '방송광고판매대행사'라고도 하죠. 이런 대행체제는 방송사가 광고를 수주하기 위해 광고주에게 압력을 가하거나 자본가인 광고주가 광고를 빌미로 방송사에 영향을 끼치는 문제를 일부 막아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미디어렙은 취급하는 매체의 종류, 방송국과의 관계, 운영주체와 설립자본에 따라서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 취급하는 매체의 종류에 따라서 같은 종류의 매체만 취급하는 방식과 다른 매체를 함께 취급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둘째, 특정 방송국의 광고만을 취급하는 자회사 방식, 방송국의 자회사이지만 타 매체 광고도 판매하는 방식, 방송국과 관련 없이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방식으로 나뉩니다. 셋째, 설립자본과 운영주체에 따라 공영매체기업의 자회사 방식으로 운영하는 공영 미디어렙, 민영방송사 자체에서 운영하거나 매체기업과는 관계없이 운영하는 민영 미디어렙, 국가에서 직접 관리하는 국영 미디어렙 등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의 미디어렙은 어떤 방식에 해당할까요? 1981년 1월 20일 한국방송광고공사(Korea Broadcast Advertising Corporation, KOBACO)라는 미디어렙이 설립되었습니다. 국가가 방송광고를 독점하여 공급하는 형태의 미디어렙 방식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방송광고공사에서 받은 광고를 방송으로 내보내고 그에 맞는 수수료를 받는 형식으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공영 미디어렙을 통해 진행되었던 한국의 미디어 광고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점차 변화합니다. 

방송광고시장을 노리는 하이에나 종편

1998년 2월 김대중 정부의 출범과 함께 광고산업의 경쟁력을 위해 방송광고제도 개혁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1999년 말에 통과된 통합방송법은 한국방송광고공사의 방송광고 독점대행제도를 폐지하고 새 미디어렙을 설치하며, 방송광고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 방송의 제작·편성과 광고영업 분리를 제도화하기 위해 방송의 직접 광고영업과 미디어렙에 대한 방송사의 출자를 금지했습니다. 이때 민영 미디어렙 신설이 논의되었으나 신문사와 시민단체 등이 거세게 반대하여 실행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방송광고시장은 본격적인 변화를 맞이합니다. 2008년 1월 27일,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 방송법 73조(방송광고 등) 5항(지상파방송사업자는 한국방송광고공사 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방송광고판매대행사가 위탁하는 방송광고물 이외에는 방송광고를 할 수 없다)을 근거로 한국방송광고공사의 판매대행 독점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리고 2009년까지 새로운 미디어렙 법안을 만들라고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국회는 3년 넘게 미디어렙 법안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출처: 뉴시스

2009년에 이르러 이명박 정부는 방송법, 신문법-미디어법을 개정하고 통과시켜 신문·방송의 겸업을 허가했습니다. 미디어렙 법안의 공백 상태를 틈타 언론의 하이에나와 같은 종편들이 2011년 10월 직접 영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여기에 SBS 등 지상파도 가세할 채비를 하면서 방송광고시장은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2011년 12월 1일, 개정된 미디어법에 따라 종편이 출범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종편에 온갖 특혜를 선물한 결과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종편의 직접광고 허가는 기존 미디어에 큰 피해를 안기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출처 : 한겨례

실제로 2011년 말부터 신문과 중소방송 PP(방송채널사용사업자), 지역방송 등 각종 매체의 광고수익이 크게 줄어든 상황입니다. 여론 다양성을 떠받치는 큰 기둥이 허물어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한나라당은 5일 밤 문방위에서 종편에 특혜를 주는 미디어렙법을 야당의 반대 속에 단독으로 처리했습니다.

문방위를 통과한 미디어렙 법안, 무엇이 문제인가

국회 문방위를 통과한 미디어렙 법안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기에 이 같은 논란을 야기하는 것일까요? 통과된 미디어렙 법안의 골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종편 채널의 직접광고를 3년간 유예했습니다. 종편채널인 조선, 중앙, 동아, MBN이 방송광고를 미디어렙에 위탁해 판매해야 하는 의무조항을 승인 시점부터 3년간 적용받지 않게 된 것이죠. 둘째, 1공영 다민영 체제가 통과되었습니다. 공영방송-KBS, EBS, MBC-의 광고영업을 맡는 1개 공영 미디어렙인 한국방송광고공사와 나머지 방송사를 관장하는 여러 민영 미디어렙 체제를 도입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 또한 문제가 있습니다. 1개 미디어렙에 출자할 방송사의 수를 명시하지 않아 방송사가 자사 미디어렙을 만들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이는 직접 광고판매와 다를 바 없습니다.

출처: 오마이뉴스

이렇게 통과된 미디어렙 법안에 대해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 10일 발간한 《미디어렙법안 통과와 방송광고판매제도의 변화》보고서에서 "방송광고의 산업적 지향과 시청률 중심의 방송 상업화로 인해 방송의 공공성 및 공익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특히 방송사 내부에 자회사 형태로 미디어렙을 두는 경우 방송편성의 독립이 지켜질 수 있을지 우려가 심각하다"고 지적했습니다. 1공영 다민영 체제에 대해 우려를 나타낸 것이죠.

보고서는 입법조사처가 그런 의견을 낸 까닭을 "방송의 상업화, 취약매체의 경영악화 등 발생가능한 방송시장의 혼란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개별방송사가 방송광고 판매에 개입하지 않도록 하는 1공영, 1민영 체제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계속해서 대두되고 있다"며 "방송의 공공성을 도모하기 위해서 소유제한, 광고판매대행자의 금지행위 등 몇몇 조항의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직접 광고와 함께 미디어렙의 소유가 방송 환경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는가를 지적한 것이죠. 

미국은 상업방송을 표방하기 때문에 미디어렙을 통해 광고를 판매하지 않고 방송사가 직접 영업으로 판매합니다. 그 결과 미국의 방송 환경은 뉴스를 비롯한 교양·시사 프로그램이나, 예능·오락 프로그램 모두 폭력성과 선정성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뉴스는 전쟁을 마치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방송하고, 잔인한 사고현장의 모습을 아무런 제재 없이 방송하고 있습니다.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서 선정적인 장면이 나오는 것은 예삿일도 아니죠. 

입장 차이로 표류하는 미디어렙 법안

출처: 오마이뉴스

이렇듯 구멍 투성이인 미디어렙 법안이지만, 언론노조는 미디어렙 법안의 통과를 원하고 있습니다. 직접 광고를 진행하고 있는 종편의 전횡으로 광고단가의 상승은 한국방송광고공사의 광고 수주를 어렵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신문사들을 비롯한 중소 방송사들의 광고수익 적자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례로 앞서 소개했듯 SBS는 미디어렙 법의 지연을 틈타 독자 영업에 나섰는데요, 이 때문에 기존에 SBS와 결합판매를 해왔던 종교방송과 지역민영방송들의 광고수주가 급감했다고 합니다. 

혼탁해지는 상황 속에서 CBS, 불교방송, 평화방송, 원음방송으로 구성된 종교방송협의회는 9일 성명서를 냈습니다. 그들은 “불교방송을 비롯한 종교방송과 일부 지역 민방들은 방송광고를 대행할 미디어렙이 지정되지 않아 광고수입이 절반 이상으로 줄어들고 있다”며 “이러한 사태가 지속될 경우 이들 방송의 경영은 파탄 지경에 이르러 생존권을 위협받을 것”이라며 절박한 상황을 토로했습니다. 이어서 한나라당이 하루 빨리 미디어렙 법안을 국회 본회의를 열어서 통과시키라며 압박했습니다.

하지만 중소 방송국의 강력한 주장에도 한나라당은 미디어렙 법안의 본회의 통과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나라당은 문방위에서 미디어렙 법안을 통과시킬 때 ‘KBS 공영성 강화 소위원회’ 구성안을 기습 상정해 통과시켰습니다. 그러고는 KBS 수신료 인상안을 미디어렙 법안과 함께 통과시키지 않을 경우, 2월 임시국회로 연기해서라도 두 법안을 함께 통과시키겠다고 버티고 있지요.

미디어렙 법안, 과연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앞서 말씀드렸듯이 현재 통과된 미디어렙 법안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 않습니다. 방송광고의 산업적 지향과 시청률 중심의 방송 상업화로 인해 방송의 공공성 및 공익성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종편의 출범으로 미디어의 생태계는 한층 더 혼탁해지고 있는 상황인데요, 이를 바로잡아야 할 미디렙 법안 조차 표류하고 있으니 미궁으로 빠지는 형국입니다.

문방위를 통과한 미디어렙 법안에 대한 의견도 상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강택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은 “협상안이 후퇴한 것이라고 해도 지금 법률에 명시를 해둬야 미디어 생태계의 붕괴를 방지할 수 있다”며 부족한 미디어렙 법안이지만 통과를 시켜놓아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김유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다른 의견을 보입니다. “종교·지역방송의 어려움도 잘 알지만 제대로 된 미디어렙법이 만들어질 때까지 참고 있으라는 압박을 해야 한다”며 언론노조의 입장을 반박합니다.

미디어렙 법안이 표류하고 있는 와중에 공중파 방송 3사는 자신의 이익 챙기기에 바쁜 상황입니다. SBS와 MBC는 자사 미디어렙을 만들어 광고판매를 시작하려 하고, KBS는 수신료 인상을 요구합니다. 강상현 연세대 교수(언론홍보영상학부)는 “입법기관이 공공성 보장이라는 미디어렙법의 큰 그림 위에서 정책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방송 3사의 이해관계에 휘둘리고 있다”며 현 상황을 비판했습니다. 또한 정치권을 향해 "지상파, 종편 등의 이해에 휘둘리지 말고, 방송산업 발전과 방송의 공적 기능이 손상되지 않도록 결정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1월 6일 《경향신문》의 사설이 잘 정리했습니다.

...어쩌다가 조·중·동 종편과 SBS 특혜가 요체인 미디어렙법안 통과가 목전에 오게 됐을까. 한나라당은 처음부터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다. 민주당은 이런 한나라당을 견제하기는커녕 계속 끌려다녔다. 민주당은 이 정권이 미디어 산업 재편이란 이름으로 저지르고 있는 여론 다양성 및 미디어 생태계 파괴 행위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기나 한 것인가. 이런 안이한 상황인식과 전략 부재를 노출하면서 수권정당 운운하는 게 가당한 일인가. 김진표 원내총무가 “올 4월 총선에서 (승리하면) 개정할 것”이라고 했다는데 지금도 잘 못 싸우면서 그런 가정이 무슨 의미가 있나.

언론노조의 상황논리도 문제다. 지상파 3사가 미디어렙법 입법을 원치 않는 상황에서 언론생태계의 붕괴를 막기 위한 응급조치로서 문제가 많은 법이나마 우선 제정하라고 촉구하는 취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거대악을 막기 위해 작은 악은 허용하고 보자는 식의 논리는 설득력이 약하다. 한나라당이 전보다 더 후퇴한 법안을 내놓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문제가 복잡하게 얽힐수록 해결책은 본질과 원칙으로 돌아가야 보인다. 이는 편성·제작과 광고 분리라는 대원칙에 따라 제대로 된 미디어렙법 제정을 위한 논의를 다시 하는 것이다. 모든 사단의 시작은 종편이다. 그 문제를 총연출한 한나라당에 책임을 추궁할 생각은 안 하고, 계속 타협과 양보로 뜻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서두에 밝혔듯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오늘 전체회의를 열어 미디어렙법 등을 심사하려고 했지만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고 정회한 채 추후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주통합당 소속인 우윤근 법사위원장은 “의원들이 더 올 때까지 정회를 유지할 계획이지만 오늘 회의는 사실상 무산됐다”면서 “한나라당 의원들의 집단 불참에는 다소 의도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미디어렙이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 같아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합니다. 하루 빨리 올바른 미디어렙 법안을 만들어 무주공산으로 변해버린 방송광고시장을 안정시키고, 종편의 무한한 특혜를 막아야 합니다. 비교육적이고 상업적인 프로그램에 홀린 '카우치 포테이토'(하루 종일 소파에 앉아 감자칩을 먹으며 TV만 보는 사람을 일컫는 말, 텔레비전에 중독된 사람을 뜻함)를 양산하지 않으려면 표류하는 미디어렙 법안에 대해 국민이 끊임없는 관심을 보여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저희는 지는 12월 1일〈1퍼센트의, 1퍼센트에 의한, 1퍼센트를 위한 종편 개국〉이란 기사에서 종편 출범을 단호히 반대한다는 뜻을 밝힌 바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 3년 반 동안 권력과 자본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방송과 언론의 공공성은 무너졌고, 공정성마저 신뢰하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되었습니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조중동 같은 언론 괴물들에게 불법과 위법으로 종합편성채널을 선물했습니다.

오늘 《한겨레》는 "미디어렙(방송광고 판매대행사) 법안 연내 처리를 위한 여야의 협상 테이블에서 종합편성채널의 미디어렙 위탁을 2년 유예하는 안이 유력하게 거론되면서 언론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종편에 2년간 직접영업을 허용하면 이미 무너진 방송의 공공성이 더 크게 훼손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또한 방송과 언론 시장에 큰 혼란을 야기합니다.

작은 지역언론 고사 위기에 내몰려

12월 1일 <경남도민일보> 구주모 사장은 "종편의 출범으로 지역시문들은 큰 펀치 4방을 한번에 맞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날 전국언론노동조합의 종편 반대 총파업투쟁에 뜻을 같이하는 《한겨레》《경향신문》《한국일보》《국제신문》《경남도민일보》 등은 지면에 종편 개국에 항의하는 백지광고를 냈습니다. 특히 《경남도민일보》는 지난 8월 '조중동방송 광고 직거래 저지'를 위한 언론노조 총파업 당시 전국에서 유일하게 윤전기를 멈추고 신문을 발행하지 않았습니다. 수익을 내야 하는 지역신문이 신문 발행을 중지할 만큼 종편이 언론 시장을 위협하는 엄청난 문제라는 방증입니다. 

2011년 12월 1일 발행된 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투쟁특보

12월 2일자 《한겨레》 보도에서 구주모 사장은 "지역의 광고시장은 규모가 작습니다. 이마저 종편들이 저인망식 광고 직거래로 훑어가게 되면 지역 광고시장이 흔들리고 지역신문의 생존기반이 위험해집니다"라고 강변했습니다. 또한 "그간 보수 성향의 조중동이 보도했던 역량을 발휘해 종편 4곳이 반통일, 비민주적인 이념 잣대로 집중 보도를 해대면 지역의 여론도 그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크게 왜곡될 수 있다"고 염려합니다. 더구나 "보수 편향의 조중동 종편의 개국으로 앞으로 세대 간, 계층 간 갈등이 더 심해질" 것이라며,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12월10일자 《경향신문》을 보면 캐나다 퀸스 대학의 빈센트 모스코 명예교수가 "4개 종편 출범을 보는 한국 내의 우려는 합당하다"면서 "시청자의 다양한 프로그램 선택권이 크게 제한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미디어 기업에는 겸영이 이익이겠지만 시민들에게는 고통"이라는 얘기입니다.  

개국 한 달, 종편의 성적표

이런 심각한 우려가 있음에도 온갖 특혜 속에서 12월 1일 개국한 종편이 어떤 성적을 거뒀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먼저 종편 개국 성적표를 인포그래픽으로 정리한 <민중의소리> 자료를 주목해주십시오. 각종 특혜를 받고도 초라한 성적으로 출발한 종편의 모습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습니다. 
4대종편 개국 성적표 (http://www.vop.co.kr/A00000454304.html)
조중동매 종편 특혜(http://www.vop.co.kr/A00000453869.html)
** 인포그래픽은 링크를 통해 《민중의 소리》에서 좀 더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종편은 개국 첫날 방송에서 수준 이하의 콘텐츠, 선정적 보도, 사실 왜곡 등으로 저널리즘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는 보도행태를 보였습니다. 조중동 종편 3사가 처음 인터뷰한 인물은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였습니다. 프로그램 형식은 대본대로 질문과 답을 주고받은 뒤 사후 편집을 할 수 있는 사전녹화 방식이었습니다. 

채널A(동아)는 1일 밤 메인 뉴스와 2일 오전 뉴스에서 방송인 강호동 씨가 일본 야쿠자와 연루됐다는 의혹을 보도해 선정적인 뉴스로 시청자의 눈길을 끌려고 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은 채 23년 전 일을 무리하게 보도했기 때문입니다. JTBD(중앙)은 예전 TBC가 정권에 비판적인 방송을 하다가 언론 통폐합으로 문을 닫았다는 내용을 담은 프로그램을 내보내는 한편 편성 시간을 메울 콘텐츠 부족으로 TBC 시절 프로그램인 <쇼쇼쇼>와 <청실홍실> 등 1970년대 프로그램을 방송하기도 했습니다. 

종편은 요란하게 개국했지만 이처럼 상식 이하의 방송으로 시청자를 기만했습니다. 그 결과 4개사의 첫날 시청률은 초라했습니다. 인포그래픽 자료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종편 프로그램 가운데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JTBC의 메인 뉴스 <뉴스 10>가 고작 1.215%에 그쳤습니다. 시청률 조사기관인 TNmS는 개국 첫날 종편의 평균 시청률이 모두 0.5%를 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0.3~0.5%대의 시청률은 1000가구 중 3~5명이 시청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날 지상파들은 5~9%대의 시청률을 기록한 것과 대조적인 결과입니다.

이처럼 종편 프로그램 수준이 기대 이하인 데다가 시청률도 예상보다 낮은 탓에 종편 광고 단가 책정 논란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종편 4사는 거대 신문을 등에 업고 지상파 대비 70% 수준의 광고 단가를 요구해왔습니다. 기업 대부분이 종편 광고 단가를 지상파의 25% 수준으로 보는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지나친 요구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식이라면 앞서 《경남도민일보》 구주모 사장의 염려대로 지역신문은 생존을 염려해야 할 상황이 벌어집니다. 종편은 신문과 방송의 힘을 이용하여 기업으로부터 광고비를 약탈할 기세여서 광고시장은 무법천지로 변하고 정상적인 거래와 시장 질서가 무너질 상황에 처했습니다. 

미디어렙 법안 제정이 시급하다

채널A가 광고주에게 배포한 프로그램 가이드를 보면 "보도상품 패키지를 진행할 경우 30분짜리 '광고주 맞춤형 특별기획 프로그램'을 제작·방송해준다"고 홍보했습니다. 실질적으로 광고와 프로그램을 맞바꾸는 거래를 제안한 것이어서 앞으로 얼마나 많은 기업 맞춤형 프로그램이 쏟아질지 우려를 금치 못하겠군요. 이런 식이라면 종편이 기업의 홍보 창구로 전락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진실을 오도하고 특정 기업의 이익을 위해 취사선택한 정보를 제공하는 방송이 어떻게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겠습니까?

미디어렙 법안 제정이 시급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미디어렙이 무엇인지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경남도민일보》 투쟁특보에 실린 기사를 인용하겠습니다.

어려워요! 미디어렙?

Media Representative로 우리말로 방송광고 판매대행사입니다. TV, 라디오 등 방송광고를 방송사가 광고주와 직접 거래하지 않고, 중간에 판매 대행사를 통하게 하는 것입니다. 보도·제작과 광고영업을 분리해 특정 기업과 집단에 유리한 뉴스(프로그램)을 제작하거나, 방송사가 기업들의 약점 등을 잡아 광고를 강매하는 등 나쁜 짓을 막는 안전판 역할을 합니다. 또 광고비를 멋대로 올리는 것을 조정하고, 시사 고발, 교양, 다큐 같은 좋은 프로그램이 계속 방송되고, 지역과 중소·종교 방송사를 지원해 다양성을 지킬 수 있게 하는 제도입니다. 

-2011년 12월 1일자 《경남도민일보》투쟁특보 3면 내용 중에서

전국의 언론노동자들은 미디어렙법 제정 투쟁을 지난 6월부터 시작해서 8월 총파업 투쟁을 단행했고, 9~11월에도 집중적으로 투쟁했습니다. 미디어렙 문제는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과 맞물린 심각한 문제입니다. 언론노동자들은 2008년부터 언론악법 저지 투쟁을 벌였습니다. 그 핵심은 신문과 방송의 겸영입니다. 이를 허용한 종편은 권력의 입맛에 맞게 언론을 장악하고, 여론을 독과점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결과입니다.

한나라당은 2009년 7월 22일 대리투표, 재투표라는 있을 수 없는 불법을 저지르며 언론악법을 날치기로 통과시켰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미디어렙법 제정을 미루면서 조중동 방송이 광고영업을 직접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습니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헌법재판소가 지난 2008년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의 방송광고 판매독점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후 지금까지 미디어렙법을 새로 만들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디어렙법이 새로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조중동 방송은 광고영업을 직접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송사의 광고 직거래는 언론의 공공성 파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그 폐단이 심각합니다. '광고주의, 광고주에 의한, 광고주를 위한' 방송으로 변질될 테니까요. 조중동은 전체 신문시장의 75%를 차지하는 독과점 신문입니다. 상품권, 자전거로 독자를 매수해서 세를 불려 왔습니다. 독자 수를 늘리려는 의도는 단 하나입니다. 한정된 광고시장에서 종편의 매출을 끌어오기 위한 꼼수인 것이죠. 지금 같은 샹황을 묵과하면 경쟁력이 약한 지역언론이 몰락해 민주주의적 가치마저 훼손할 수 있습니다. 

SNS, 종편의 마수에서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라

한 트위터 사용자가 아이패드로 타임라인에 새롭게 도착한 메시지들을 살피고 있다. 사용자들은 트위터로 뉴스를 소비하기도 하고, 다른 사라용자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또 다른 사회적 관계를 맺어나간다. (출처: 경향신문)

종편 개국으로 보수와 친재벌의 목소리가 커지는 이때 SNS는 언론의 자유를 수호할 마지막 보루입니다. 제도언론에 대항할 독립언론과 시민 저널리즘으로서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승부수를 띄우고 있습니다. SNS는 제도언론보다 빠르고 거짓을 폭로하는 데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이미 10.26 서울시장 선거에서 그 영향력이 검증되었습니다. 

지난 1년 사이 한국에서 트위터 이용자 중 상위 1%의 점유율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체 계정 수는 2011년 9월 19일 현재 392만 7519개로 2010년 8월 31일의 112만 6206개에 비해 3.5배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1인당 평균 팔로어 수는 68명에서 87명으로 늘었고, 팔로어 링크 수는 4.5배 증가해 계정 증가 수를 웃돌았습니다.

이원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SNS상에서 새로운 생각의 수용>이라는 논문에서 트위터의 비이성적인 정보 확산이나 트위터 사용자들이 객관적 판단 없이 타인의 정보를 받아들여 퍼뜨린다는 통념을 반박했습니다.  이원재 교수는 "누군가를 쫓아가는 메커니즘이 트위터에 분명 존재하지만 순식간에 지나간다"면서 "그 후에는 스스로 판단하면서 그런 경향을 거부하는 강력하게 나타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새로운 정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SNS를 통한 괴담 유포를 우려하는 것은 과장"이라고 일축했습니다.


그런데 왜 정부와 야당은 SNS를 규제하려는 걸까요? 서울대 장덕진 교수는 정부와 여당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매체 수단을 통제하려는 이유를 <트위터 이후의 민주주의(Ⅱ)> 라는 논문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경향신문》 12월 16일자 기사를 보면 "트위터에서 화제가 된 '투표 인증샷 놀이'와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를 경험한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한나라당에 절대 투표하지 않겠다'라는 응답률이 매우 높았다"고 밝혔습니다.

자, 이렇게 보면 결국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SNS 심의팀을 신설하고 조중동이 "괴담" 운운하며 SNS를 제재하려 하는 까닭은 국민의 자발적인 언론 활동을 두려워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방송 경영진 임명에 개입하거나, 보수언론에 종편 채널을 몰아주는 등, 언론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태도를 보인 이명박 정부 또한 SNS의 파급력을 두려워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 때문에 정부나 조중동 같은 보수언론은 여론을 좌지우지하고자 무리수를 두고 있습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은 1987년 헌법을 개정하면서 언론의 자유를 일찍이 보장했던 한국이 최근 몇 년 동안 정치와 국가안보 부문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일본과 함께 명예훼손의 가해자를 형사처벌하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라고 소개했습니다. 미국 월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형적인 보수신문인 《월스트리트저널》조차 한국의 인터넷, SNS 검열이 도를 넘었음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온라인 여론 탄압 사례 (《경향신문》 2011년 12월 9일 3면 내용 중)

2009. 1.
-검찰,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대성 씨를 온라인에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기소

2010. 2.
-선관위, 6.2 지방선거 앞두고 선거 관련 트위터 활동 규제 방침 발표

2010. 3~8.
-연평도·천안함 사태 당시 정부 발표와 다른 주장 올린 시민들 기소

2011. 10.
-선관위, 10.56 재·보선 앞두고 트위터상 유명인의 투표 인증사진 트위터 게재 등을 제한하는 지침 발표

2011. 11.
-검찰, SNS를 통한 한·미 FTA 관련 허위사실 유포자 처벌방침 발표

12월 8일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22개국 정부 대표와 민간단체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인터넷 자유'(Freedom Online) 국제회의 기조연설에서 "국경을 초월하는 인터넷에 국가 차원의 장벽을 만들려는 일부 나라들의 시도는 인터넷 자유에 재앙"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날 여러 외신이 한국 정부의 SNS 규제와 심의 착수를 보도하면서 한국의 인터넷실명제, 청소년 심야게임 셧다운제, 명예훼손죄 등을 거론하며 인터넷에서 표현자유가 억압받는 상황을 소개했습니다.

언론의 희망은 SNS에 있다

언론의 공공성을 훼손하는 종편과 인터넷 콘텐츠 심의와 차단을 맡은 방통심의위원회의 거꾸로 가는 정책에 대항할 힘은 어디에 있을까요? 저희는 SNS에 그 희망의 씨앗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통계를 보면 국내 인터넷 이용자의 67%가 SNS를 이용하고 있으며 20대와 30대는 각각 90%와 71%의 높은 이용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용자들은 SNS를 통해 얻은 정보에 대해 42.9%가 '믿을 만하다'고 답해, '믿을 만하지 않다'는 12.1%의 응답률을 크게 앞섰습니다. 12살 이상의 SNS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47%는 해당 서비스를 통해서 기존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돈독해지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친분을 쌓게 됐다고 답변했습니다. 이처럼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정보에 대한 신뢰도와 전파 구조는 급변하고 있습니다.

시청률이 낮고 그나마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종편은 안 보면 그만입니다. '채널 숨기기' 기능으로 종편을 아예 보지 않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언론이 시민의 눈과 귀의 역할을 포기할 때, 시민은 다른 대안을 찾아 떠납니다. 저희는 SNS가 그 종착지가 되리라고 예상합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트위터

309일간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위에서 투쟁했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세상과 소통한 통로는 '트위터'였습니다. 김 지도위원은 트위터 중독이었다는 얘기를 할 정도로 SNS를 통해 세상과 소통했습니다. SNS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었고,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SNS는 기존 정치질서에 균열을 일으키는 데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무상급식, 서울시장 보궐선거, 한미FTA 문제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SNS는 여론을 주도했습니다.

페이스북 이용자의 급등하는 상황을 나타낸 통계자료 (출처: 위키피디아)

한국의 상황을 넘어 세계를 한번 볼까요? 튀니지의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은 반정부 시위로 쫓겨났고, 30년 넘게 철권통치를 했던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퇴진에도 SNS, 특히 페이스북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지난여름에 일어난 영국 폭동과 미국의 월가 시위 또한 SNS를 통한 시민의 자발적인 움직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시위 장면은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고, 시대의 변화를 원하는 많은 시민이 참가하면서 그 열기가 퍼져 나갔습니다.

이런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아랍의 봄'을 이끌어낸 SNS는 그저 사이버 공간 속에 존재하는 담론의 장이 아닙니다. SNS는 당당히 기존 사회 질서의 한 축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이전의 매체와는 다르게 소통방식의 혁신을 통해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시민언론으로서 기능하는 면도 있습니다.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가 젊은층의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낸 이유는 기존 보수 언론의 보도를 더는 믿을 수 없다는 불신에서 기인합니다. SNS를 통해 직설적 풍자를 날리는 <나는 꼼수다>는 오프라인 공연으로 대중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것은 기존 인터넷 언론은 하지 못했던 새로운 변화입니다. SNS는 다른 어떤 매체보다도 관계적이며 소통하는 힘이 셉니다. 이를 잘 활용한다면 기존 대중매체가 담당하지 못한 저널리즘의 기능을 SNS가 대체할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대안언론, 독립언론, 시민언론으로서 SNS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외부의 개입이 없이도 자발적으로 자체 윤리를 확립하고 건강한 소통을 회복하는 SNS의 문화가 살아 있는 한 언론 자유를 향한 미래는 밝다고 생각합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귀를 기울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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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다수결원리에 따라 각종 사안을 결정합니다. 다수결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의사결정을 신속히 할 수 있고 많은 사람의 의견을 포용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입니다.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떤 이유로도 소수의 의견을 무시해선 안 됩니다. 충분한 토론과 언론의 자유를 보장할 때 사회는 더 건전해지며 다양한 목소리가 풍요롭게 소통될 수 있습니다. 만일 소수의 의견을 무시한다면 모든 일을 흑백논리로 판단하거나 반대의 의견을 가진 이를 '잘못된 의견'을 가진 존재로 치부해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이런 모습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2054년 미래 사회는 범죄를 예방하는 '프리크라임'이라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살인 사건을 예방하여 안전한 세상을 약속합니다. 이 시스템에서 세 명의 예지자는 미래의 살인 현장의 모습을 시각화된 영상으로 제공하는데요, 주인공인 존 앤더튼(톰 크루즈 분)은 이 영상을 다각적으로 분석하여 범행 장소와 시간을 알아낸 다음 출동해 미래의 범죄자를 체포합니다.

범죄 없는 세계를 약속하는 프리크라임에서 예지자의 의견은 절대적이지만, 가끔 이들의 의견이 엇갈릴 때도 있습니다. 이때 두 사람의 의견이 같다면 나머지 한 사람의 의견은 '마이너리티 리포트(소수의견)'로 무시됩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범죄 없는 완벽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야욕을 품은 한 인물의 어두운 과거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늘 다수의 의견이 옳은 것만은 아니며 때론 소수의 의견이 옳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법조계에도 '마이너리티 리포트' 있다

지난 일요일 MBC <시사매거진 2580>은 '마이너리티 리포트' 편을 방영했습니다. 조대현 전 헌법재판관을 인터뷰한 내용이 소개되었는데요, 이분은 헌법재판소 역사상 가장 많은 '소수의견( 少數意見 )'을 낸 재판관으로 유명합니다. 소수의견이란 사전적 정의로는 "의사결정이 다수결에 의해 이루어지는 합의체에서 다수의 의견에 포함되지 않아 폐기된 의견"을 말합니다. 즉 결정에 대한 반대의견이나 채택되지 않은 의견이란 얘기지요.

우리 사회는 법원조직법 15조에 따라 대법원재판서에는 합의에 관여한 모든 대법관의 의견을 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헌법재판소의 종국 결정에서는 헌법재판소법 36조에 따라 법률의 위헌심판, 권한쟁의심판 및 헌법소원심판에 관여한 재판관은 결정서에 의견을 표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규정이 있는 이유는 비록 반대 의견이라고 해도 다수의 의견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며, 특정 사건에서는 무시된 의견일지라도 시간이 흐르거나 상황이 바뀌면 언젠가 다수의 의견이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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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소수의견'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조대현 전 헌법재판관은 4년 6개월간 229건의 소수의견을 냈다. (자료 영상:〈시사매거진2580〉)


방송에서 소개한 조대현 전 헌법재판관의 소수의견은 무척이나 다양했습니다. 문신에 대한 법적 규제에 대해 "문신하기 위해서 의대 6년을 나올 필요 있느냐"며 반박했고, 차라리 문신을 하는 사람을 관리하는 자격증을 만드는 편이 낫다는 의견을 냈다고 하는군요. 사실 외국에서는 문신 시술을 조그만 가게에서 쉽게 할 수 있지만, 우리 사회에선 법적으로 의료인이 아닌 사람에 의한 문신 시술은 의료법 위반입니다. 문신을 하고 다니는 건 불법이 아니어도 시술은 전문 의료인에게서 받아야 한다는 얘기죠. 이 밖에도 조대현 전 헌법재판관은 '당구장 거리제한'이나 '노래방 주류판매 제한'과 같은 사안에도 소수의견을 냈습니다. 물론 합당한 근거를 들어 이야기했으며 허황한 논리로 의견을 개진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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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과 다르게 소수의견을 냈던 그도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했다고 인터뷰에서 고백합니다. 다른 재판관들이 다 훌륭한 분인데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인격적 문제는 아닌가 싶어서 고민했다는군요. 그래도 깊이 생각하고 내린 결론은 '자신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소수의견을 내서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은 것이죠. 그는 인터뷰 말미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신이 부족해서 결국 소수의 의견으로 머물렀다고 말이죠. 그리곤 "세월이 지나면 그게 다수의견으로 될 의견도 좀 있지 않을까요"라는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뭔가 아쉬운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경향신문》은 2011년 6월 27일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 듣고 검찰을 고발하고 싶었다”>라는 기사에 조대현 당시 헌법재판관을 인터뷰한 내용을 실은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나온 내용을 보면 <시사매거진2580>에서 말하지 않은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기사의 내용을 일부 인용하겠습니다. 

- 지난달까지 소수의견을 351건 냈다. 헌재 24년 역사와 퇴임한 역대 재판관 31명 중 가장 많다. 소수의견으로 유명한 변정수 전 재판관도 64건, 이영모 전 재판관도 65건에 그쳤는데, 왜 이렇게 많은 소수의견을 낸 것인가.
"소수의견을 작성하고 표시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두려움과 외로움을 이겨내야 한다. 다만 국민은 주권자이면서 법률과 권력의 지배를 받는 피치자이다. 나는 피치자의 입장에서 법률이 헌법에 합치되는지, 납득할 수 있는지 생각했다. 그런 관점 차이가 소수의견을 많이 만들어 냈는지 모른다.”

- 최근 헌재 내부에서 소수의견 자체를 억압한다는 얘기가 있다. 단일한 의견으로 헌재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의견의 다양성을 봉쇄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헌법재판소 의견이 나뉘는 경우 토론을 통해 가급적 의견을 통합해야 한다는 견해, 반면 민주사회에는 다양한 가치와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고 허용되므로 다양성을 헌법재판에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좋다는 견해가 갈린다. 나는 후자에 동의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반대의견 내는 것 자체를 존중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에는 내 생각을 별로 경청하지 않는다는 느낌도 받았다. 내 표현력이 부족한가 싶어 의견을 미리 써서 재판관 평의 전에 돌려보기도 했다. 그래도 동의를 얻지 못했다.”
……
- 6년간 재판관으로 느낀 가장 큰 보람은 무엇인가.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했다는 것이다. 소수의견은 법적인 효력을 갖지 못하지만, 연구관과 학자들에게 문제의식과 연구과제를 주고 싶었다. 내가 퇴임한 후에 내 의견에 대한 검토와 비판이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소수의 의견이 판례를 바꾸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대현 전 헌법재판관 같은 분이 낸 소수의견은 결국 사회적 변화를 끌어내지 못하고 그저 개인의 '사명'으로 할 일을 했다는 데서 그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분은 없으리라고 봅니다. "소수의견은 법적인 효력을 갖지 못하지만, 연구관과 학자들에게 문제의식과 연구과제를 주고 싶었다"고 얘기한 조대현 전 헌법재판관의 바람처럼 우리 사회는 민주화 진행에 발맞춰 법 적용의 외연이 차츰 넓어지는 변화를 거치고 있습니다. 그 실례를 하나 소개합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탄핵규탄 촛불집회를 경찰이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사실상  종교·문화행사 이외의 모든 야간집회를 허용하지 않았던 일을 기억하실 겁니다. 이에 대해 학계와 법조계 등에서는 경찰이 사실상 야간집회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재량권 남용에 의한 위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관련 법 조항을 한번 보실까요?

집시법 제10조
(옥외집회와 시위의 금지 시간) 누구든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집회의 성격상 부득이하여 주최자가 질서유지인을 두고 미리 신고한 경우에는 관할경찰관서장은 질서 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도 옥외집회를 허용할 수 있다.

헌법 제21조
1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과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2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3 통신·방송의 시설기준과 신문의 기능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4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헌법 제37조
1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2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집시법 10조는 해진 뒤 옥외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 “집회의 성격상 부득이해 주최자가 질서유지인을 두고 미리 신고하는 경우에는 관할 경찰관서장은 질서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옥외집회를 허용할 수 있다”는 단서규정을 두고 있습니다만, 경찰은 1989년 단서조항 신설 뒤 한 차례도 야간집회를 허용한 일이 없고, 이에 따라 시민단체 관계자들도 아예 야간집회 신고를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야간 집회 금지법은 이제 역사 속 유물이 되었지요. 2008년 박재영 서울 중앙지법 판사가 집시법상 '야간집회 금지'는 위헌임이 명백하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했고, 이에 대해 헌재는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집시법)의 야간옥외집회 금지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기 때문입니다. 《한국경제》 2009년 9월 24일 <헌재 "옥외 야간집회 금지 시간대 정하라">라는 기사를 보시죠.

헌법재판소가 (2009년 9월) 24일 야간집회를 금지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10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은 '야간'이라는 막연한 표현이 헌법상 보장된 집회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번 결정에 따라 해당 조항은 개정이 불가피하게 됐지만 야간집회를 무제한 허용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헌재 측은 "전체적으로 야간평화를 교란할 수 있는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것은 옳지만 명확한 시간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헌법불합치 결정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해당 법 위반으로 재판 중인 사건은 법 개정시까지 영향이 불가피해 한동안 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시간대를 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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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촛불집회로 수백명이 재판 중인 사건의 민감성을 반영하듯 재판관들의 의견은 위헌 · 헌법불합치 · 합헌으로 갈렸다. 그러나 위헌결정을 내리기 위한 정족수인 6명에 1명이 모자라 헌재법상 '헌법불합치'결정이 내려졌다. 위헌성을 인정하면서도 관련법의 취지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으려는 헌재의 고민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위헌 결정을 내린 이강국 소장 등 재판관 5명의 의견 요지는 집시법 10조가 헌법 21조 2항 취지에 정면 위배된다는 것이다. 법률에 의한 국민 기본권의 과도한 침해를 금지하는 헌법 37조 2항에도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또 일본 독일 영국 등 각국 입법례를 보더라도 야간옥외집회규정은 별로 없는 데다 러시아 프랑스 등 규정이 있더라도 사문화돼 있다는 점을 또 다른 근거로 들었다.

이와 달리 민형기 목영준 재판관 2명은 입법당국의 재량상 공공질서를 위해 집회의 시간 · 장소 · 방법적 제한을 둘 수 있다고 판단,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봤다. 야간은 시민들의 평온이 특별히 요청되는 상황인데 집회참가자는 감성적이 되고 폭력적 돌발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다. 그러나'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 집회 금지'라는 광범위한 시간대를 설정한 것만은 과잉금지 원칙에 벗어난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어떤 시간대에 옥외집회를 금지할지는 입법자의 판단에 맡긴다"고 밝혔다.

이렇게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의 야간집회 금지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의 입장은 국민의 기본권을 더욱 폭넓게 보장할 필요성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야간집회 금지법에 위헌성이 있다는 해석에 어느 재판관이 낸 소수의견이 바탕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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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자료: 시사매거진 2580)

1994년 변정수 전 재판관은 야간집회를 허용하자는 소수의견을 냈지만 그 당시에는 소수의견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소신 있게 그런 의견을 개진하지 않았더라면 야간집회 허가제의 위헌성을 밝혀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소수의견을 단순히 몇몇 사람들의 의견이라고 치부해버려서는 안 되며, '틀린 것'으로 판단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의견일 뿐이지 틀린 것은 아니니까요.

소수의견 속에 사회 변화의 씨앗 있다

<시사매거진 2580>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편을 보면서 소수의 의견이 큰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군사정권 시절을 지나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한국 시민은 각자의 권리와 자유를 누리는 데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권리를 요구하는 데 어른이나 학생, 저소득층이나 고소득층의 구분은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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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 등록금 요구하는 촛불집회 현장

각자 헌법이 보장한 자유와 평등의 권리를 누리는 삶이 중요함을 깨달으면서 한때는 소수의 의견으로 무시되고 폄하되었던 권리도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소수자가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기도 어려웠지만, 인터넷 시대를 거쳐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발달로 이제는 누구나 자신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게 되었고, 흩어져 있던 소수의 의견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짓밟힌 미선이, 효선이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촛불을 들고 사과를 요구했던 대한민국 국민은 2004년 당시 야당의 일방적인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무효화하기 위해 다시 힘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를 외치며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와 한미FTA의 부당함을 외쳤습니다. 

2011년 현재 대학생들은 엄청난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고자 금요일마다 청계천 광장에 모여서 반값등록금을 외치고 있습니다. 또한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에서 200일이 넘도록 노동자의 권익을 주장하는 김진숙 씨를 지지하는 수많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희망버스'에 올라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저 멀리 제주에서는 평화의 섬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부당함에 동조하는 시민의 참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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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100도씨(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어떻습니까? 혹시 '혼자의 의견'이라서, '어차피 되지 않을 건데'라는 생각에 망설이는 분이 계십니까? 어쩌면 여러분 머릿속에 있는 그 생각이 가깝거나 먼 미래를 바꿀지도 모릅니다. 비록 지금은 답이 보이지 않고, 미래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냄비에 가득 담긴 물에 열을 가하면 서서히 온도가 높아져 100도에 다다랐을 때 끓어 넘치기 마련입니다.  '지금이 바로 99도'라고 생각하는 분이 우리 사회에 많이 계십니다. 그러니 좋은 나라를 만들고, 좋은 미래를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서 우리 앞에 산적한 문제를 향해 함께 연대하며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이 바로 99도다'라는 마음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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