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전공부 주변 마을지도


사회적기업가 정신을 배울 수 있는 학교

사교육 시장이 수조 원대에 이르고 아이들이 살인적인 경쟁으로 내몰리는 세태에 대한 반작용인지는 모르지만, 최근 다양한 형태의 대안학교가 속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에 자리 잡은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는 자연에 기대어 사는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참교육을 실현하는 학교로 5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랍니다. 대안학교라는 요즘 말이 무색하게 반세기 전에 대안교육을 실현하는 공동체를 시작한 셈인데요. 옛말에 이르기를 "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했습니다. 농업은 천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근본이라는 뜻이지요. 그만큼 풀무학교는 다른 대안학교들과는 조금 다르게 독특한 향기를 풍기는 곳이었습니다. 풀무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홍동면 마을 공동체를 얼마 전에 생각비행이 몇 분의 독자분과 함께 방문하고 왔습니다. 그곳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볼까 합니다. 

 
최근 생각비행은《사회적기업 창업 교과서》를 출간하고 이 주제와 연관된 다양한 기사를 기획해서 여러분께 알려 드렸는데요, 저희가 기사를 작성하면서 주요하게 전하려 했던 메시지는 '사회적기업가 정신'으로 응축할 수 있습니다. 근래 사회적기업에 관한 논의가 무성합니다만, '사회적기업가 정신'에 입각한 사회적기업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첫 출발은 좋았으나 영업 이익을 내지 못해 문을 닫는 기업이 부지기수요, 초심을 잃고 영리기업으로 전환하는 사례도 많기 때문이지요. 앞으로도 생각비행은 좋은 사회적기업을 발굴해서 알리려고 합니다. 그 기획의 첫 기사로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환경농업전공부'를 선정했습니다. 사회적기업을 표방하진 않더라도 사회적기업가 정신이 투철한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풀무학교의 설립자는 이찬갑, 주옥로 선생님입니다. 이찬갑 선생님은 오산학교 출신으로 ‘교육, 기독교, 농촌’에 의한 민족 구원을 위한 교육을 평생 준비했으며, 주옥로 선생님은 감신대를 나온 뒤 홍동에서 독립 전도를 하면서 ‘진리, 학문, 자립으로 그리스도인, 농촌수호자, 세계의 시민’ 양성을 위한 중등교육기관 설립을 염원했습니다. 이 두 분은 홍동 성서집회에서 만나 뜻이 일치하여 풀무학교를 열었습니다. 이렇게 소개를 드려도 풀무학교가 어떤 곳인지 아직 잘 모르시겠죠? 여기서 풀무학교의 교육 목표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풀무학교의 교육 목표

풀무는 성서에 바탕을 둔 깊이 있는 인생관과 학문과 실제 능력에서 균형 잡힌 인격으로 하나님과 이웃, 지역과 세계, 자연과 모든 생명과 함께 더불어 사는 평민(교훈)을 기르고자 한다.

 1) 성서위에 학원
 학생이 재학 중 성경을 배우고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을 바른 인격교육의 바탕으로 믿는다. 
  2) 기본층의 평민
 자기와 남의 가치를 자각, 존중하면서 주어진 자기 실현과 사회 기여에 힘쓰는 기본층의 ‘깨어난 평민’은 사회 대다수를 차지하고, 이는 이 사회의 저력이자 향상의 희망이다.
  3) 머리, 가슴, 손의 조화
 입시편중 교육을 배격하고 머리(학문), 가슴(신앙), 손(노작)을 고루 발전시켜 인문․직업교육의 극단적 2원성을 극복하여 전인교육을 지향한다.
  4) 작은 학교
 한사람 한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다양한 소질과 능력을 찾아내어 스스로 배울 수 있게 돕고, 그들이 창조적 힘을 발휘하며 생활 속에서 인격적 만남을 할 수 있도록 학교 규모를 작게 한다.
  5) 전원 생활관 생활
 전원 생활관 생활을 통하여 학교는 예배하고, 배우며, 생산하고 생활하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6) 머리도 꼬리도 없다(무두무미)
 교직원과 학생은 예수를 교주로 하여 각기 자기 역할을 하면서 유기적 공동체를 이루는 일원이며 동료로서 학교 일을 민주적으로 협의, 결정한다. 
  7) 밝은 학교 생활
 학교에서 정한 10가지 약속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검소하고 고상한 가치를 추구하도록 학생문화 환경을 마련하며 개별지도, 묵학시간 활용과 교실 안팎에서의 공동학습, 자치활동을 장려하여 학교생활을 밝고 뜻있게 한다.
  8) 더불어 사는 지역과 학교
 지역의 교육적 환경을 선용하며 지역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 실현에 협력한다.
  9) 국제이해
 평화로운 동북아시아 건설을 위해 중국어와 일본어를 선택하여 배우고 일본의 자매학교와 교류하며, 재학 중 일본이나 중국으로 교류 학습을 하여 동북아의 중간 역할을 감당할 성실한 시민을 기른다.
 10) 사학의 책임
 학업이나 생활지도에 열심이고 사회에도 책임이 있는 사학의 자율적인 정신을 살린 풀무는 작은 학교로서 사람을 기르는 교육과 학교의 바른 모습을 꾸준히 추구하려고 한다. 
 
애초에 풀무학교는 고등학교 과정 위주로 학사운영을 했습니다만, 시일이 지나면서 기본 과정만 마치고는 농촌 현장에서 일할 조건이 되지 못해 전공부 과정까지 연장할 필요를 느꼈다고 합니다. 풀무학교 전공부는 시장경제와 경쟁에 대체할 세계관인 -다양성, 상호의존, 개체 속 전체, 순환, 조화, 자발적이라는- 생태의 보편법칙 실현에 농업이 가장 핵심 위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소농이 지역의 다양성을 살려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함께 나누며, 모든 이해 당사자의 참여로 농민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평화 사회 실현에 중심축이 된다는 믿음을 품고 있다고 하는군요.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농업과 농촌을 일으킬 농민을 기르고자 오랜 준비 끝에 새 세기가 시작하는 2001년에 개교했습니다. 전공부 홈페이지(www.poolmoo.net)를 보면 이런 소갯글이 있습니다.

전공부는 대도시 집중, 노동 경시, 과도한 경쟁, 엘리트 양성의 교육이 아니라 농촌교육, 민중교육, 정신교육, 실력교육과 더불어 학생 개개인의 인격과 그들이 지닌 다양하고 고유한 개성을 존중하는 인격교육, 일과 배움과 생활을 통해 개인의 머리, 가슴, 손을 고루 실현시키는 전인교육, 학교 자체가 자립하는 농사 마을 교육,
지역 속에 뿌리를 내리는 공동체 교육을 교육의 본질로 추구하는 울타리 없는 풀뿌리 주민지역대학, 마을과 더불어 사는 대안대학이 되고자 합니다.


학교와 지역은 하나다

생각비행이 방문한 홍동면은 마을과 학교가 하나라도 된 듯 구분하기 어려운 공동체였습니다. 풀무학교에서 교육받은 학생 가운데 마을에 정착한 이가 많기 때문입니다. 풀무학교는 "성서 위의 학교, 더불어 사는 평민, 일만 하면 소, 공부만 하면 도깨비, 학교와 지역은 하나다, 인생의 창업"과 같은 열쇳말로 '풀무성'을 추구해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더불어 사는 평민, 학교와 지역은 하나다'라는 지역성을 기반으로 혼자만이 아닌 공동체 모두를 위한 교육 그리고 일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동체 정신을 잃고 있는 오늘날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지역에 귀농한 사람도 많지만 어떻게 하면 지역 주민과 더불어 잘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학교 여기저기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삼았으나 이를 강요하거나 다른 종교를 차별하지는 않았다고 하는군요. 풀무학교를 다닌 분 중에 신부님, 수녀님, 스님들도 계셨다고 하니까요.

학교 소개는 이 정도로 하고 학교 주변을 좀 둘러볼까요?


갓골 목공소


학교 근처에 갓골 목공소가 있습니다. 곡괭이를 달아 만든 문이 멋지지 않습니까? 그 어떤 장식 자재보다도 훌륭합니다. 육중하고 든든하면서도 시골스러움이 묻어납니다. ^_^


목공소 내부는 생각보다 넓고 공구도 많았습니다. 도시에 자리 잡은 여타 목공소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분은 목공소의 주인이자 풀무학교에서 목공일을 가르치는 선생님입니다. 도시에서 생활하다 홍동마을로 귀농했다고 하는데요, 처음에는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정착하기가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지만 스스로 출자한 자금과 풀무학교의 도움을 받아 이 목공소를 차렸다고 합니다. 이제 목공소는 이 마을 아이들에게 목공일을 가르치고 마을 안의 크고 작은 목공 관련 일도 도맡아 하는 명물이 되었습니다.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일을 찾아 자신의 일로 만든다는 말씀을 들으니 지역과 함께 크고 함께 산다는 의미를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밝맑도서관 가는 길

도서관 입구


이제 막 문을 연 밝맑도서관도 다녀왔습니다. 풀무학교 주변에 있는 생협이나 가게, 느티나무 헌책방 같은 곳까지 풀무학교 학생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전공부 학생들이 생활하는 기숙사는 한 장 한 장 스스로 벽돌을 쌓아 만들었다고 하는군요.

풀무학교 전공부 기숙사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환경농업전공부



졸업식이 아닌 창업식을 하는 학교


학생들은 스스로 또 함께 공부하며 일하는 즐거움을 찾습니다. "일만 하면 소, 공부만 하면 도깨비. 우리는 일도 하고 공부도 하는 사람이 되자"라는 개교 정신 아래 학생들은 다양한 과목을 공부하고 학교 실습지에서 공부한 내용을 직접 몸을 놀려 터득합니다. 지역 봉사활동도 빼놓을 수 없지요.

풀무학교 전공부가 다른 학교와 다른 점은 학생이 주축이 되어 학교 생활과 행사를 꾸려나간다는 점입니다. 교사와 학부모는 어디까지나 도움을 줄 뿐 학생 위에 군림하지도 않고 반대로 다 해주지도 않는다고 하네요. 대학은 물론 직장에 들어간 자식 주위를 맴도는 헬리콥터 부모나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젊은이들이 되지 않도록 이끄는 교육법이라고 하겠습니다. 학교 구성원 각자가 주체적인 사람이 되어야 공동체 역시 건전하게 운영해 나갈 수 있으니까요.

전공부 교무실


갓골생태연구소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전공부는 농부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어서 농업을 중심으로 실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전교생이 농업에만 매달리지는 않습니다. 학생 스스로 잘하는 일을 찾아 자기실현을 할 수 있고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일을 찾도록 배려합니다. 이에 따라 학생은 농사를 짓거나, 목공을 하거나, 제빵을 하거나, 도서관을 운영하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등 스스로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갑니다. 
풀무학교는 교육과정을 마치면 '졸업식'이 아닌 '창업식'을 한다고 합니다. 일반 대학교에서 졸업 논문을 제출하는 것처럼 학생들이 각자 하고 싶은 사업 하나를 선정하여 지속 가능한 일로 일구어 보는 과정이 풀무학교의 마지막 커리큘럼이라니,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지 않습니까?



생각비행이 방문한 풀무학교는 자기실현과 공동체를 동시에 배려하는 '사람 냄새'나는 사람을 키우는 곳이었습니다. 오늘은 풀무학교를 중심으로 소개했습니다만, 홍동마을은 갓골 생태농업연구소, 풀무학교 생활협동조합, 느티나무 헌책방, 그물코 출판사, 갓골 어린이집에 이르기까지 '사회적기업가 정신'을 배울 수 있는 기업의 보고였습니다. 앞으로 이 마을의 모습을 좀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소개하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_^


희망제작소 소기업발전소에서 청년 소셜벤처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인 <희망별동대>를 진행합니다.
<희망별동대>는 이루고 싶은 간절한 '꿈'과 '희망'을 품은 청년들에게 희망제작소의 노하우와 네트워크 및 각종 자원을 연결해줌으로써 지속가능한 사회적기업을 만들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이번 3기 희망별동대는 특별히 국내 다양한 중간 지원 기관들-카이스트, 완주CB센터, 수원사회적기업협회 등-과
함께 파트너십을 강화하여 희망씨앗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육성할 계획이라는군요.

자세한 내용을 보시려면 위 사진을 클릭하세요.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감동을 전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요? 이런 고민을 하는 분들을 위해 생각비행은 《설득의 스토리텔링》을 출간하고 블로그에 설득이나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연관된 기사를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좀 흥미로운 접근으로 여러분께 '설득의 비밀'을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201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다 부문 후보로 올라(12개 부문) 알짜배기 4개 부문(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의 상을 석권한 영화 <킹스 스피치>는 설득의 비밀을 알려주는 유쾌한 영화입니다. 1939년 세기의 로맨스라는 스캔들을 일으키며 왕위를 포기한 형 에드워드 8세 때문에 버티(조지 6세)는 본의 아니게 왕위에 오릅니다. 왕으로서 권력을 가지고 명예를 누리게 되었으나, 한편으로 책임감과 사명감을 짊어진 그가 두려워하는 게 있었으니 다름 아닌 '마이크'였죠. 버티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마이크 앞에만 서면 말을 더듬는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잘해보려고 무던히 노력하지만, 점점 국왕의 자리를 버겁다고 느낍니다. 그를 지켜보는 아내 엘리자베스 왕비와 수많은 백성도 애가 타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버티가 왕위에 오른 시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한 위험천만한 시대였습니다. 불안한 정세 속에서 자신들을 이끌어줄 좋은 지도자를 원하는 국민을 위해 그는 아내의 소개로 괴짜 언어 치료사인 라이오넬 로그를 만납니다. 삐걱거리는 첫 만남 이후 두 사람은 예전과 다른 기상천외한 치료법으로 말더듬증을 극복하고자 도전합니다. 영화는 이 과정을 보여주면서 남을 설득하고 이끌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자신감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자신감이란 자신을 인정하고 긍정하는 마음에서 비롯합니다. 버티는 어린 시절부터 엄혹한 부왕을 향한 두려움과 무슨 일이든 자기보다 더 잘하는 형(에드워드 8세)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렸습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엄혹한 시절에 그는 왕족으로서 사명감과 책임감을 통감하고 다방면으로 노력합니다. 하지만 재능이 있어도 그것을 을 제대로 풀어놓지 못하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법이죠. 트라우마가 되어 버린 어린 시절의 두려움과 열등감 때문에 버티는 줄곧 자신을 인정하지 못했고, 그 결과 수많은 대중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 하고 말문이 막히는 말더듬증에 시달립니다. 말로 백성과 소통해야 하는 왕으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었죠.



이에 괴짜 언어 치료사인 라이오넬이 내놓은 치료법은 유머와 위트로 버티의 긴장을 풀어주고 칭찬으로 자신감을 북돋워 주면서 친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왕으로서 항상 수직적 관계 속에 살다 보니 친구가 없는 조지 6세를 "버티"라고 부르며 라이오넬은 '평등'한 관계에서만 우러나올 수 있는 '소통'을 이야기합니다.
《설득의 스토리텔링》의 저자 이안 커러더스도 성공적인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비법으로 자신감을 꼽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당신에게서 권위가 보이지 않는다면 청중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거들먹거리며 거만하게 행동하라는 뜻이 아니다. 이 기회를 빌려 당신이 가진 기량을 자신감 있게 발휘하라는 말이다. 

그러니 다음번에 사람들 앞에 서게 되면 기억하라. 그들은 무언가 듣고 싶어 한다.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설득의스토리텔링 상세보기


라이오넬은 버티와 소통하며 말더듬증을 치료하고 나아가 백성과 친근한 벗이 되어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조지 6세의 아버지인 조지 5세는 백성과의 평등한 관계와 소통을 중요시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백성은 곧 나를 일컫는다."

<킹스 스피치>에는 왕족뿐 아니라 그 시대를 대표하는 다른 위인도 여럿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인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끌고 영국을 지켜낸 의회의 수장 윈스턴 처칠이 있군요. 영화 속에서 처칠은 아직 수상이 되기 전의 모습입니다. 처칠은 선천적인 구강 구조 탓에 말을 잘하게 되기까지 각고의 노력을 해왔다는 경험담을 들려주며 조지 6세의 힘을 북돋아 줍니다. 역사상 위대한 연설가 중에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처칠조차 누군가를 말로 설득하는 일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설득의 스토리텔링》의 저자는 다양한 영화를 예로 들어 '설득의 비밀'을 이야기하는데요, <킹스 스피치>라는 영화를 예상했던 걸까요? 본문에 이런 내용이 있거든요. ^^

경영진은 술 취한 사람이 몸을 가누기 위해 술집 카운터에 몸을 기대듯 파워포인트를 사용한다. 세상이 불안하게 느껴질 때 파워포인트로 짠 거창한 계획이 그들을 받쳐주는 지지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만약 처칠이 요즘 시대에 태어나서 자랐더라면 노트북을 불살라버렸을 것이고, 파워포인트의 슬라이드에는 다음과 같은 말만 적었을 것이다.

나의 제안

-  피
-  땀
-  눈물

나는 당신이 파워포인트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진 않는다. 하지만 다음번에 파워포인트를 사용할 때는 이렇게 해 보라. 사진이나 그래프를 보여 주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것이다. 파워포인트는 그런 용도로는 아주 제격이다. 그 외에는 사용하지 마라. 특히 문자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파워포인트를 사용하지 마라. 입이 있지 않은가? 문자로 전달할 것이라면 차라리 말로 표현하는 것이 낫다.

설득의스토리텔링 상세보기


<킹스 스피치>라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절에 오늘날 파워포인트와 같은 소통의 도구는 무엇이었을까요? 다름 아닌 '마이크'였을 겁니다. 조지 5세는 왕족이 앞으로 이 앞에서 연기하는 광대가 되어야 한다고 열변합니다만, 버티로서는 그 앞에 서기만 하면 말을 더듬게 되는 공포의 대상일 뿐이었죠.

하지만 버티는 마지막 연설을 시작하면서 '기술'이 '설득'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담아 진정성 있는 호소를 하지 않는다면 마이크를 거쳐 라디오에서 울려 퍼지는 그의 목소리는 그저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설득을 도와주는 파워포인트라는 도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슬라이드를 현란한 기교로 채워서 다른 이의 눈을 현혹하더라도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킹스 스피치>는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는 행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무엇을 전달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영화입니다.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이나 면접을 앞두고 계신 분들이라면 이 영화를 보시고 그 감흥을 《설득의 스토리텔링》으로 재정리하시길 권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달라질 테니까요!  



킹스 스피치
감독 톰 후퍼 (2010 / 오스트레일리아,영국,미국)
출연 콜린 퍼스,제프리 러시,헬레나 본햄 카터
상세보기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의 피해 상황으로 세계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 유일의 피폭국인 일본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싫겠지만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상황은 시간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습니다. 천재인 대지진에 도쿄전력, 일본 정부의 무능력과 실책이란 인재까지 더해져 발생한 상황이라 보는 이를 더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도움을 받기로 한 이상 모쪼록 일본에 살고 계시는 분들께 더는 큰 피해가 일어나지 않기를 빕니다.

요즘 각 언론의 헤드라인을 유심히 살펴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이번 일본의 대재앙과 관련해 대지진과 쓰나미, 원자력발전소 멜트다운 위험 문제 옆에는 꼭 주식시장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망자가 수만 명을 헤아리게 될지도 모를 '일본 전후 최대의 위기'라는 이 사태를 다루면서 국제적인 주식시장에 대한 기사와 국내 증시에 관한 내용을 함께 다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날 주식시장은 단순히 경제적 지표뿐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 세계에서 한 국가가 안전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평가하는 경제적 척도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원래부터 주식(증권)은 극단적인 위험으로부터 큰 이익을 취하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할 목적으로 만든 것이니까요.


1488년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희망봉을 발견하고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 항로를 개척함으로써 유럽과 동양 사이에 직접 무역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른바 대항해 시대의 서막인데요. 이로써 유럽 사람들은 동양의 금은보화와 진귀한 물자를 배로 싣고 유럽으로 되돌아가 되파는 해상무역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바다'라는 대자연이었습니다. 개척 항로 무역을 통한 이익은 태풍을 비롯한 예상할 수 없는 천재지변을 극복해야만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해적선의 약탈까지 염두에 둬야 했습니다. 성공하기만 하면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지만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걸어도 안전을 보장하기 힘든 위험천만한 성공률 때문에 사람들은 '고위험 고수익'이라는 극단적 투기성 무역을 위해 주식 형태의 증서를 발행함으로써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증권의 시작이지요.

이런 동서양 해상무역이 나날이 발전하자 1602년 마침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설립되었습니다. 그러니 세계 증권시장의 역사는 이제 400년이 조금 넘는 셈이군요.


유럽에서 시작되었으나 현재 세계경제와 주식시장의 중심은 미국, 그중에서도 월스트리트라고 할 수 있죠. 250여 년 전 뉴욕 월스트리트를 따라 맨해튼 쪽에 유럽에서 들어오는 수입품을 하역하는 선착장이 있었는데, 물품 대신 송장(invoice)을 근거로 거래가 이뤄졌습니다. 화폐가 없던 시절이라 은으로 만든 막대를 사용해 거래를 시작했는데 이것이 곧 뉴욕 증시의 시작이라고 하는군요. 이 전통에 따라 아직도 뉴욕증시는 주가를 소수점이 아닌 1/8단위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대항해 시대와 마찬가지로 다른 세계끼리의 무역이 주식의 시초가 되었네요.

그리고 1789년 미국 정부는 남북전쟁 비용을 조달하고자 최초로 정부채권을 발행했고 뒤이어 은행·보험사들이 거래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천재지변에 이어서 이번에는 전쟁이라니 주식의 역사에서 위험성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인 듯합니다. 하지만 이런 위험성은 결국 투기로 말미암은 고공비행 끝에 1929년 주가 폭락과 더불어 대공황을 유발합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 셈이지만 이때부터 미국에 증권감독원이 생겨 주식시장에 증시 안정을 위한 제대로 된 규정과 감독기관이 등장했습니다.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1930년 일제강점기에 '취인소'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우리나라 증권시장은 해방 이후 1956년 현대적인 의미의 증권거래소를 개장했지만, 상장회사도 투자자도 여력이 거의 없던 시절인지라 거래는 미미했습니다. 그러다가 1960년대 말 자본시장 육성에 관한 특별법과 1970년대에 들어서 투자신탁회사가 설립되어 기관투자자의 시대가 시작되었고, 기업공개촉진법의 반강제적인 도입으로 1970년대 말부터 상장기업이 비약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국제화 단계에서 삐끗하게 되어 1997년 IMF 사태가 터졌죠. 이를 극복하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코스피(KOSPI) 지수가 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유럽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 우리나라든 원인이 무엇이건, 과열 후 폭락 그리고 재조정은 주식시장에서 거치지 않을 수 없는 단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더구나 국가 간의 주식시장은 점점 더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이렇듯 역사적으로 주식은 시작부터 위험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과연 이번 일본 대지진과 주가 위기가 세계 경제와 주식 역사 속에 어떤 족적을 남기게 될까요? 부디 대재앙을 이용해 폭리를 취하려는 간사한 세력이 나타나지 않기만 바랄 뿐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