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자 수구 언론과 일부 경제지들이 일제히 최저 임금을 성토하고 나섰습니다. 최저시급이 너무 많이 인상되어 결국 폐업해버릴 수밖에 없다는 식의 인터뷰 기사를 짜냈는데요, 하지만 진짜로 최저시급이 문제였을까요?

출처 - 경향신문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올해 최저시급 인상률이 16.4퍼센트로 7530원이니 기존에 비해 가파른 오름세를 보이긴 했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는 혹시 모를 자영업자들의 충격을 줄이고자 1인당 13만 원씩 최저임금을 지원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현장의 자영업자들은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입을 모읍니다. 정부와 언론이 서로 다른 각도에서 만만한 최저임금 얘기만 하고 있는데, 진짜 문제는 임대료를 올리는 건물주와 가맹비를 올리는 프랜차이즈 본사라는 것이죠.


인건비가 올랐으니 부담이 는 건 맞지만, 애초 최저임금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습니다. 식당을 운영해도 원래 최저임금 수준으론 하겠다는 사람이 없고 파출부 일당도 월급 기준으로 따지면 250만 원이 넘습니다. 그러니 월급 기준 190만 원 미만이 대상이 되는 정부 일자리 안정자금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얘깁니다. 최저 임금조차 보장하지 않는 업장이 아직 많지만 현장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최저임금 인상은 부차적인 문제라는 말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실제로 한국노동연구원이 내놓은 2015년 논문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대체로 학자들은 최저임금이 물가상승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 해도 매우 미미한 수준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아예 연관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을 감소시킨다는 주장도 뚜렷한 근거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02년 16.6퍼센트 인상으로 그 폭이 컸을 때나 2010년 2.8퍼센트로 인상 폭이 최저였을 때나 고용률 추이는 58~60퍼센트대로 사실상 변화가 없었습니다. 가진 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해고의 핑계로 쓸 뿐, 최저임금 인상률과 고용률 사이에는 아예 관계가 없어 보일 정도입니다.

 

사실관계가 이런데도 경총과 보수 세력은 최저임금 정부지원 4조 원 때문에 국민 혈세가 허비되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몰락한다고 아우성입니다. 마치 나라가 망하기라도 할 듯 야단을 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왜 한 해 대기업에 지원되는 어마어마한 지원금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걸까요? 2014년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대기업에 지원된 금액이 '126조 원'이었다고 합니다. 내역을 보면 국가 연구개발예산의 대기업 보조금이 1조 4397억 원이고, 세액공제 등 비과세 감면혜택이 7조 1063억 원이며(전체 기업 몫의 75%를 차지), 4대강 관련 등 공공조달(대기업 나눠먹기)이 12조 8359억 원이었습니다. 또 산업은행·정책금융공사·수출입은행들이 대기업에 대출·투자·보증을 한 규모가 104조 9677억 원이었다고 하는군요.

출처 - 경향신문

 

국고를 탕진하는 재벌과 대기업의 횡포도 문제지만, 자영업자들에겐 평균 인건비의 3배가 넘는 임대료가 실질적으로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임대료 앞에선 최저임금 인상 같은 건 작은 문제에 지나지 않습니다. 경기 불황으로 매출은 꾸준히 감소하는 반면 임대료와 관리비는 최소 연 5퍼센트씩 꾸준히 오르니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정부가 올해부터 상가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 임대료 인상 상한을 9퍼센트에서 5퍼센트로 낮췄지만, 법정 임대료 상한을 지키는 건물주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갖은 편법으로 임대료를 인상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영업자는 사업을 접게 만들어버리죠.


출처 - 한겨레


프랜차이즈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에게 본사가 뒤집어씌우는 로열티도 임대료만큼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한 피자 체인은 자영업자가 4000만 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동안 2배인 8000여만 원을 로열티 및 광고비 명목으로 가져갔습니다. 야간에만 아르바이트를 쓰고 365일 쉬지 않고 15시간씩 일하는 편의점주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점주가 월 450시간 이상을 일해 번 돈과 같은 돈을 본사 로열티로 가져가니까요. 계약상 정해진 매출이익의 24퍼센트를 본사가 가져갑니다. 이 편의점은 상위 20퍼센트에 속하는 장사가 잘 되는 점포라 이나마라도 된 것인데요, 여기에 아르바이트 최저 임금만큼 나오는 신용카드 수수료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워킹푸어'라는 말밖에 안 남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자영업자들에게 최저임금 인상이 화두가 되는 건 오른 폭이 커서가 아니라 사실상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돈이 인건비밖에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임대료와 수수료, 가맹비 등은 어떻게 할 수 없이 뜯기는 돈이니까요. 이런 구조적 문제 때문에 약자가 약자를 쥐어짤 수밖에 없는 구조가 양산됩니다. 상황이 이러니 최저임금으로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지 말고 임대료와 수수료, 가맹비 조정 등 시급히 필요한 쪽에 언론이 조명을 비춰주길 바랍니다.


출처 - 조선일보


강남 논현동 영동시장 골목에는 방송으로 유명한 백종원의 식당들이 즐비했습니다. 쿡방이 인기를 끌며 이 상권에 새로운 가치가 더해지게 되고 급기야 이 거리는 속칭 백종원 거리로까지 불릴 정도였는데요. 이 거리에서 백종원의 가게들이 빠지고 있다고 합니다. 최저임금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백종원조차 치솟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죠. 

 

가게가 밀려난 곳에는 대기업 팝업스토어나 프랜차이즈 본사 직영점이 속속 들어서고 있습니다. 이 정도 급이 아니면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죠. 이로써 사람들은 저렴하고 먹을 만한 식당을 잃었고, 강남구청은 관광객이 찾아올 정도의 관광자원인 먹자골목을 잃었다고 아쉬워합니다. 이런 가운데 쾌재를 부르는 자들은 누구일까요? 문제의 핵심을 잘 가려내어 판단해야 할 때입니다.

 

컴퓨터라는 이름이 생소했던 옛날부터 사람들 사이에는 컴퓨터와 인공지능, 로봇의 발달에 의해 언젠가 인간이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어 진정한 자유를 구가하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컴퓨터와 인공지능 그리고 로봇의 발달이 현실화되어 인간의 노동을 하나둘 대체하기 시작하자 현실적인 문제가 대두했습니다. 

 

노동에서 해방되는 것도 좋고 자유를 구가하는 것도 좋은데, '대체 어떻게 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 겁니다. 현재 세상에서 노동 없는 부는 극히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허락될 뿐입니다. 부동산, 금융 등 자산을 가진 극소수의 최상위층 말입니다.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과학기술의 발달로 노동 없는 세상이 도래할 기미를 보이는데 말입니다.


출처 - 한겨레


인공지능과 로봇에 의한 일자리 소멸의 최첨단에 세계적인 기업 아마존이 있습니다. 한때 아마존은 인터넷 서점 혹은 온라인 쇼핑몰 정도로 인식되었으나 지금은 물류, 배송, 오프라인 매장 등은 물론 인공지능(AI)을 내장한 가전기기를 판매하며 여전히 성장 중입니다. 아마존은 '에코(Echo) 프로젝트'를 통해 실용적인 인공지능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마련하고 컴퓨팅의 세대교체를 꾀하고 있습니다. 아직 미국에 한정된 얘기긴 하지만 이쯤 되면 사실상 라이프 서비스(Life Service)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출처 - 아마존 에코

 

지난 9월 1일부터 오늘(6일)까지 베를린 국제가전박람회(IFA)가 개최됩니다. IFA는 1924년을 시작으로 올해 57회째를 맞이하는 세계 최대의 가전 및 멀티미디어 전문 박람회로 글로벌 50개국 1800개 이상의 업체가 참가하고 23만 명의 참관객이 찾아오는 전시회입니다. 바로 이 IFA에서 아마존이 생각하는 미래가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생활가전과 음성인식 인공지능을 연동하는 스마트홈이 화두로 떠오른 것이죠. 

 

아마존의 음성 인식 AI 비서 '알렉사'와 연동된 스피커인 아마존 에코는 이미 전 세계에서 5000만대가 넘게 팔려 실질적으로 이번 국제가전박람회의 트렌트를 이끌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LG전자는 이번 박람회에서 생활가전에 음성인식 인공지능을 연동하여 스마트홈을 강화한 다양한 제품을 시연했습니다. 예를 들어 "알렉사, 로봇청소기 켜줘" 하고 말하면 LG 로봇청소기가 청소를 시작하는 식이죠. 비단 LG전자만이 아닙니다. 전 세계 가전기기 생산업체의 방향이 비슷했습니다. 이번 국제가전박람회의 트렌드가 인공지능, 음성인식 등 스마트홈을 완성하는 방향으로 잡혔으니까요. 앞으로 사용자는 아마존 에코, 구글 홈 등 '알렉사'나 '구글 어시스턴트'를 탑재한 기기를 통해 음성만으로 가전을 손쉽게 제어할 수 있게 되겠죠.

 

출처 - 데이타넷

 

2015년 130만 달러였던 스마트 스피커 시장 규모는 올해 2070만 달러로 급증할 전망입니다. 기업들이 이처럼 오디오 전쟁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거의 모든 가전에 적용할 수 있을 만큼 확장성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오디오는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기술과 연동되어 스마트홈의 기본이 됩니다. 오디오를 통해 인공지능이 사람과 소통하는 시대가 도래한다는 의미입니다.

 

출처 - 한겨레

 

아마존이 내다보는 미래는 스마트홈과 같은 생활가전 부문만이 아닙니다. 아마존은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부터 새해 첫날까지 일주일 동안 세계적으로 10억 개 이상의 상품을 배송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고객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주문한 상품을 13분 만에 받았다고 할 정도였죠.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물류 유통 구조에서 이런 속도는 사람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아마존의 놀랄 만한 신속한 배송은 미국 물류창고 20곳의 시스템과 4만 5000대의 기계에서 비롯됩니다. 

 

주문이 들어오면 거대한 암 리프트인 로보-스토가 물류 창고 재고품들을 찾아 바닥으로 내립니다. 이때 화물 운반대 밑으로 로봇 청소기 같은 작은 로봇 키바가 들어가 배송 데스크를 향해 이동합니다. 우리나라의 설이나 추석 같은 대목에 사람들이 물류 창고를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아마존 물류 창고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조용하고 정확하게 로봇들이 움직이며 마지막 확인 장소에 서 있는 인간 앞으로 상품을 가져다줄 뿐이죠. 먼 미래의 일이 아닙니다. 현재 아마존 물류 창고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며 조만간 확인하는 사람조차 필요 없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일반적입니다.

 

배송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영국에서 드론을 이용한 배송이 성공한 바 있고 아마존이 낸 특허 중에는 자율주행차를 활용한 배송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아예 물류창고를 고고도에 항공모함처럼 띄워놓고 함재기처럼 드론이 상품을 배송하는 시스템도 특허를 낸 상태입니다.


출처 - 아마존


'아마존 고'는 또 어떤가요. 지난해 말 아마존이 딥러닝 인공지능을 활용해 계산대 없는 매장을 표방하여 선보인 아마존 고는 계산대가 없었습니다. 고객이 매장에 들어가 상품을 가방에 담아 나가면, 상품의 모양과 가격 등을 학습한 인공지능이 그 찰나 사이에 이를 정확히 인식해 사전에 등록된 고객의 인터넷 계좌에서 자동으로 결제하기 때문이죠.


아주 편하고 신속한 쇼핑 덕분에 마치 SF영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필요 없어지는 인간의 일이 한둘이 아닙니다. 물류센터에서 기본적으로 물건을 옮기는 사람은 물론 택배기사, 운전기사, 항공 조종사, 주문과 결제를 위한 상담원 같은 일자리가 필요 없게 됩니다. 특히 계산대의 계산원이 사라진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 치명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경력이 단절된 사람이더라도 특별한 교육 없이 그나마 쉽게 취업할 수 있는 흔한 일자리였기 때문이죠.


출처 - 중앙일보


계산원이 없는 가게는 한국의 일상 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로디지털단지 안 맥도널드에는 무인 주문 기계가 있습니다. 카드를 꽂고 터치스크린을 조작하면 사람을 거치지 않고도 자신이 먹고 싶은 햄버거를 주문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사람이 있는 계산대와 함께 운용되고 있지만, 한 국가의 최저임금을 가늠하는 '빅맥지수', 최저임금 일거리를 뜻했던 '맥잡'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던 맥도널드에서도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방향을 뚜렷이 하고 있는 것이죠.


출처 - 중앙일보


다국적기업인 맥도널드만이 아닙니다. 숭실대 앞 한 테이크아웃 커피점에 가면 주문 결제를 할 수 있는 키오스크가 눈에 들어옵니다. 터치스크린으로 커피 종류, 컵 크기, 얼음 유무, 샷 추가 등 사람과 얘기를 통해 결정하고 결제해야 했던 것들을 일목요연하게 화면에서 처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매장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은 900원, 주문부터 커피를 손에 쥐기까지 3분이 채 안 걸린다고 합니다. 효율 면에서 사람과 비교가 안 되는 기계가 도입되어 가격과 시간을 대폭 절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출처 - 중앙일보


금융권의 변화도 확인됩니다. 올해 9월부터 은행이 종이통장의 신규 발행을 중단한다고 밝혔죠. 하지만 갑작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금융감독원이 2015년부터 추진해왔던 일이니까요. 2017년 8월까지는 계도기간 비슷하게 종이통장을 없애는 고객에게 인센티브를 주도록 유도하는 1단계였고, 2단계로 넘어가는 시점이 바로 지금입니다. 9월부터는 종이통장을 발행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종이통장을 발행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새로 은행에 계좌를 개설하는 신규고객과 60세 미만인 고객에게는 종이통장을 발행해주지 않습니다. 기존 고객들은 이 대상에 적용되지 않으므로, 종이통장 재발급을 할 수 있으며 60세 이상 고객은 2, 3단계 계획에서 모두 예외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쭉 종이통장을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한편 오프라인 지점을 줄이고 고객 상담을 인공지능형 챗 봇에게 맞기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은행 혹은 금융 투자사도 있습니다. 한 컨설팅 업체에 따르면 연 평균 6000만 원 정도 드는 경영 지원 분야 업무를 로봇 소프트웨어에 맡기면 비용이 660만 원으로 최고 88% 저렴해지기 때문에 기업의 기술 도입은 가속화될 조짐입니다.


출처 - 산업일보


편하게 주문하고 빠르게 배송받고 줄 서서 기다리지 않아도 되며 취향에 맞춘 정밀한 소비를 할 수 있게 되는 세상. 그런데 이런 서비스를 누릴 돈은 어디서 나올까요? 극소수의 기술 엘리트를 제외하고는 할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없어지는 일자리 소멸을 대가로 누리는 편한 소비란 그 자체로 모순이 아닌가 합니다.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의 발달로 이대로라면 기계들이 하지 못하는 3D업종이나 최저임금 수준의 비정규직 허드렛일만 인간에게 허락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는 까닭입니다.

 

미국에서는 1050만 개의 일자리가 인공지능과 로봇기술로 위기를 겪을 것이라는 보고가 나오기도 했죠. 노동이 사라지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로봇세, 인공지능세를 국가가 거둬들여 전 국민이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하자는 기본소득론도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에게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걱정과 기대가 소용돌이치는 오늘입니다.

하지만 지난번 기사를 통해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공포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인공지능 같은 유행에 함몰되어 기계화 기술의 등장으로 우리의 고용 형태가 악화되고 있다는, 하청사회의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존의 일자리 파이가 줄고 그 줄어든 파이를 차지하기 위해 '을들'은 서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결국 문제는 개인이 해결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는 세력이 우리 사회의 '갑들'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갑'을 더 부자로 만들어주는 기술을 만들지, '을'을 자유롭고 풍요하게 만들어주는 기술을 만들지는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의 문제입니다. 우리 안의 편견을 깨고 화합하는 세상을 위해 노력한다면 인공지능에 의해 내 일자리가 사라질 것을 고민하는 일은 줄어들 겁니다. 인공지능 같은 신기술에 대한 걱정보다 우리에게 시급한 일은 하청사회를 살아가는 '을들'의 단단한 연대가 아닐까 합니다. 인공지능 기술이 지속가능한 갑질의 조건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천국도 지옥도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7530원. 내년도 최저임금이 진통 끝에 도출되었죠. 전년 대비 16.4퍼센트 인상되어 2000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이래 가장 높은 폭의 상승률이라고 합니다. 이명박근혜 정권의 기업 퍼주기 정책에 의해 지난 10여 년 동안 최저임금 상승률은 2~6퍼센트대로 내려앉은 바 있습니다. 이번 최저임금 협상은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과정 중 하나였습니다. 이로써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에 한 발짝 더 다가서게 되었습니다.



최저임금을 받는 저소득층의 고혈을 빨아 부를 축적한 기업들은 이번 최저임금 협상안에 대해 반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을과 을의 싸움을 부추기는 형국에 휘말린 것인 소상공인들조차 이번 최저임금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이번 최저임금안이 현장감이 결여돼 실효성이 없고 대안으로 내놓은 정부의 정책도 최저임금 상승 부담에 미치지 못하는 한시적 방안이라며 법적대응과 집단행동을 예고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합니다. 작지만 사장 직함을 달고 있는 자영업자 소상공인 대부분은 회사에 다니면서 쥐꼬리만 한 월급에 실망하고 열심히 일한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에 질린 나머지 생업을 찾았을 텐데, 입장이 바뀌었다고 손바닥 뒤집듯 최저임금 상승에 대해 욕하는 건 너무 이율배반적인 처사가 아닐까요?


출처 - 오마이뉴스


물론 대기업과 보수언론은 이보다 더합니다. 최저임금 상승을 일선에서 체감하기에 갈팡질팡할 수 있는 소상공인들의 사례를 마치 자신들의 사례인 양 끌어들여 기사를 남발하고 있고, 한편으로는 해외 사례를 왜곡해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 침체를 부른다는 식의 자극적인 보도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중앙일보》는 〈맞벌이 40대 “내 월급 그대론데 가사도우미 돈 올려줄 판”〉이란 기사를 내며 최저임금 인상에 고통받을 가정의 사례까지 끄집어냈습니다. 하지만 일반 국민은 이에 대해 어리둥절해 하고 있습니다. 요즘 같이 어려울 때 가사도우미까지 쓸 정도로 여유 있는 집안에서 최저임금 몇천 원을 고민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을뿐더러 기사를 통해 대기업과 부유한 보수언론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그 저열한 심리가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죠.

출처 - 경향신문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소상공인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저임금 3조 원을 포함해 총 4조 원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소상공인들에게 부담이 될 임금 부담액을 정부가 보조해준다는 얘깁니다. 그러자 보수 언론은 이제 왜 국민 세금으로 최저임금을 메우느냐며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2014년 대기업을 세금으로 지원한 금액은 126조 원입니다. 각종 비과세 혜택 등은 별도이며 만약 위기에 처하면 공적자금 등으로 살려낸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이 모두 세금이었습니다. 최저임금에 들어가는 4조 원은 아깝고 밑 빠진 독 같은 기업들을 위해 쏟아부은 126조 원은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모순을 대체 어떻게 설명할는지 궁금합니다. 설마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같은 구시대 '근혜체'를 쓰려는 건 아니겠죠?


출처 - 한국일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은 최저임금 위반에 대한 처벌 강화입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적발한 최저임금 위반 사례는 모두 1278건입니다. 하지만 이 중에 실제 처벌이 된 사례는 달랑 17건입니다. 1퍼센트만이 사법처리되고 99퍼센트는 유야무야 넘어가 버린 셈입니다. 이는 현장 근로 감독관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여 적발과 증명이 어려워서이기도 하지만, 법 규정이 최초 적발 시 즉시 미지급 임금을 지급하면 입건하지 않게 되어 있고 3년 안에 재적발 될 시에만 처벌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솜방망이 처벌 규정 때문에 기업들은 최저임금법을 어기고 있습니다.


설사 사법 처리까지 간다 하더라도 처벌이 미흡한 수준입니다. 미국은 징벌적 배상을 하고 있어 미지급 임금의 두 배를 지급하게 되어 있고, 영국은 고용주 자격을 15년 상실하게 되어 있습니다. 독일은 벌금만 6억이 넘어가고 네덜란드는 5년 내 재적발 시 벌금이 두 배가 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징역 3년 이하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는 데 그치고 있죠. 이조차 최대치이고 실제로는 징역형을 찾아보기 힘들고 약간의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러니 사업주들은 최저임금을 주는 대신 벌금을 내겠다고 하는 형국이죠.

출처 - 경향신문


이름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그간 최저임금은 사실상 최고임금으로 통해 왔습니다. 사람이 최소한의 생활이라도 하기 위해 이 정도는 줘야 한다는 임금을 뜻하는 액수지만, 사실상 지금까지 이 금액만 맞춰주면 아무리 일을 더 시켜도 더 줄 필요 없다는 식으로 인식되어온 것이죠. 실질적인 최저임금 정착과 이런 역설을 막기 위해서는 현장 근로 감독관을 늘리고 확실한 실태 파악과 철저한 단속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더해 징벌적 형태로 벌금이나 미지급 임금을 토해내게 하는 법을 제정하고 철저히 집행해야 합니다. 사업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사람들을 쥐어짜서 번 돈을 빼앗기는 것일 테니까요. 2017년에 최저임금 상승의 발을 떼었으니 다음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적정임금을 생각할 때입니다. 돈보다 사람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선 돈을 벌어야 합니다. 하지만 극심해지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 인공지능(AI)과 로봇의 등장으로 사라지는 인간의 일자리 등 우리의 고민이 깊어지게 하는 사회문제가 가득합니다. 축적해놓은 자본이 없는 대부분의 시민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여 생활을 영위하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반면 어떤 이들은 '금수저'로 태어나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고 어마어마한 부를 누리며 삽니다.

 

출처 - KBS

 

내년도 최저임금을 확정하기 위한 최저임금위원회가 법정 심의기한 내에 노사 합의를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지난 29일 최저임금위원회는 정부세종청사에서 6차 전원회의를 열어 2018년도 최저임금안 합의를 시도했지만, 노동계는 최저임금보다 54.5% 인상한 '1만 원'을, 사용자 측은 2.4% 오른 '6625원'을 제시해 합의하지 못했습니다. 최저임금 협상이 법정 심의기한을 넘김에 따라 최저임금위원회는 7월 3일 오후 3시에 7차 전원회의를, 7월 5일에 8차 전원회의를 각각 열어 노사 간 협상을 이어가기로 했다고 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사용자는 가급적 저렴한 비용으로 노동력을 사려 하고, 노동자는 사회적 불평등을 일소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발탁되는 기회를 보장하고, 결과적으로 다 같이 잘사는 사회를 추구해야 한다고 당위적으로 생각합니다. 최저임금을 합의하는 일이 쉽지가 않은 까닭입니다. 입장에 따라 의견이 갈리는 것이죠. 이는 통계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통계청에서는 고용형태에 따라 한시적 근로자, 시간제 근로자, 비전형근로자로 분류해 조사하고 있는데,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 근로자 수가 644만 4000명으로, 전체 근로자 중 차지하는 비중이 32.8퍼센트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노동계는 노사정이 합의한 부분에 더해 정규직 중 임시·일용직도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합니다. 이에 따르면 비정규직 비중은 지난해 55.1퍼센트에 달합니다. 노사 양쪽 비정규직 통계 비중이 22.3퍼센트 포인트 차이가 남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SBS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2016 비정규직 노동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8월 비정규직 평균 임금 수준은 정규직 평균의 절반 수준인 53.5퍼센트였다고 합니다. 조사가 시작된 2003년 이래 정규직과의 임금 격차가 가장 크게 벌어진 겁니다. 정규직 근로자의 임금 수준을 100으로 봤을 때 비정규직 근로자의 월평균 상대임금을 가늠해 보면, 2003년부터 2008년까지는 60퍼센트대 수준이었으나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실물경기 위축과 고용부진에 시달리며 2009년 54.6퍼센트대로 급락한 뒤 정규직과의 차이가 벌어졌습니다.

 

소득이 사회적 불평등을 낳는 유일한 요인은 아닐지라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핵심 요인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소득 격차 관리는 민주주의 사회의 지속성을 위해 매우 중요한 사안입니다. 이 때문에 하나의 해결책으로 '기본소득제'가 거론됩니다.


출처 - 뉴스1


기본소득제란 일반적으로 일을 하든 안 하든, 소득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일정한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라는 격언이 있긴 하지만 수백 가지 물고기 잡는 법을 배운 고학력자가 있다 한들 어장이 없으니 실업자밖에 더 되겠습니까? 편중되어 문제지 지금 세계에는 물고기가 넘치도록 많으니 창고에 가득한 물고기를 썩기 전에 나눠주자는 식으로 이해해도 될 법합니다.


출처 - 중앙일보


복지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을 중심으로 기본소득 실험이 진행 중입니다. 이름은 같은 기본소득이지만 나라 사정에 따라 내용은 조금씩 다릅니다. 스위스는 지난해 6월 만 18세 이상 모든 성인에게 매달 300만 원, 미성년자에겐 78만 원을 지급하도록 하는 기본소득안을 국민투표에 부쳤으나 압도적인 표차로 부결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기본의 복지 제도를 없애버리고 기본소득만을 제공하겠다고 했기 때문이죠.


출처 - 중앙일보


원래 기본소득제는 복지 축소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경제적 우파가 고안한 제도입니다. 기존 복지 제도를 폐지하고 현금 지급으로 단순화하자는 겁니다. 정부 입장에선 복잡한 공적부조나 사회보험 등에 드는 행정비용까지 절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 중앙일보


한편 핀란드에서는 올해부터 만 25~58세 실업자 가운데 2000명을 무작위로 뽑아 매달 68만 원을 2년간 지급하는 실험이 진행 중입니다. 이 역시 중도우파의 작품이지만 사정은 조금 다릅니다. 복지 천국이라고 얘기하는 핀란드이기에 실업급여가 줄어들까 봐 취업을 기피하는 현상을 해소하고 근로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기본소득을 도입한 것에 가깝다고 하죠.


출처 - 중앙일보



이런 이유로 기본소득제는 정통 좌파의 비판을 많이 받는 제도입니다. 소비를 전제로 한 친시장적 정책이라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겁니다. 부익부 빈익빈 같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저소득층과 독거노인에게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나라에서는 기본소득제를 도입하더라도 기존 복지제도는 유지하되 현금수당을 얹어주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습니다. 기본소득제를 실험 중인 복지 선진국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사회안전망 자체가 촘촘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특히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은 현실적으로 대체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기본소득제의 취지에 동의하더라도 재원 마련 문제로 현실성이 있겠느냐 하고 걱정하는 분이 많습니다. 전 국민에게 월 30만 원의 현금을 지급하는 완전 기본소득제를 도입하려면 연간 180조 원의 예산이 듭니다. 이 때문에 한신대 강남훈 교수처럼 개인의 모든 소득에 10퍼센트의 이른바 시민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도 있습니다. 세금 부담이 늘지만 돌려받는 걸 생각하면 80퍼센트 이상의 가구가 순이익이라고 합니다. 한편 카이스트 이광형 교수처럼 로봇에 세금을 매기는 로봇세 신설을 주장하는 쪽도 있습니다.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로봇에 세금을 매기면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할 수 있고, 그 로봇을 설계, 제조, 소유한 상위 1퍼센트에 대한 소득재분배 기능도 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한편 일각에선 이런 현금의 직접 지급이 도덕적 해이를 불러와 취업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사람을 양산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고려대가 진행한 장학금 실험이 결과적으로 순기능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습니다.


출처 - 중앙일보


고려대는 지난 2016년부터 성적 우수자에게 주는 장학금을 폐지했습니다. 대신 저소득층 학생을 위한 혜택을 늘렸습니다. 저소득층 장학금, 학생자치 장학금 등으로 배분했고, 기초생활수급자에겐 학기 중은 물론 방학에도 매달 30~50만 원의 생활비를 지원했습니다. 소득 1~5분위에 해당하는 2400명의 등록금을 전액 면제했고 저소득층 학생이 교내 근로를 하는 경우 근로장학금을 1.5배 지급했습니다.


출처 - 중앙일보


도입 당시에는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받을 돈을 뺏었으니 학생 전체의 학습 의욕을 꺾고 그 돈으로 흥청망청하는 학생이 많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를 뒤집고 시행 1년 만에 학생들의 성적이 달라졌습니다. 생활비와 등록금을 벌기 위해 돈벌이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니 공부하는 시간이 늘어난 겁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오늘날 대학은 돈 많은 집안 자식들이 공부를 더 잘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돈 없는 집안 자식들은 공부하기 위해 직접 돈을 벌어야 하니 알바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게 되고, 이 때문에 시간과 체력 소모로 정작 공부를 못 하는 악순환에 빠져 있었습니다. 고려대 장학금 실험은 이런 문제를 타파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저소득층 장학금으로 학생들의 자존감이 올라간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순기능이라 할 수 있겠죠.


출처 - 중기이코노미


고려대 장학금 실험은 학교가 학생의 기초 생활비를 방학에도 지원해줬다는 면에서 기본소득제와 비슷하면서도 그 대상이 기초수급생활자였다는 점에서 정통 좌파들이 주장하는 저소득층에 대한 집중 지원이 빛을 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갈수록 심화하는 양극화 문제와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경제 체제의 변혁 앞에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일까요? 함께 고민하고 답을 찾을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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