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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임대료에 뺨 맞고 최저임금에 화풀이해서야

by 생각비행 2018. 1. 29.

새해가 되자 수구 언론과 일부 경제지들이 일제히 최저 임금을 성토하고 나섰습니다. 최저시급이 너무 많이 인상되어 결국 폐업해버릴 수밖에 없다는 식의 인터뷰 기사를 짜냈는데요, 하지만 진짜로 최저시급이 문제였을까요?

출처 - 경향신문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올해 최저시급 인상률이 16.4퍼센트로 7530원이니 기존에 비해 가파른 오름세를 보이긴 했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는 혹시 모를 자영업자들의 충격을 줄이고자 1인당 13만 원씩 최저임금을 지원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현장의 자영업자들은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입을 모읍니다. 정부와 언론이 서로 다른 각도에서 만만한 최저임금 얘기만 하고 있는데, 진짜 문제는 임대료를 올리는 건물주와 가맹비를 올리는 프랜차이즈 본사라는 것이죠.


인건비가 올랐으니 부담이 는 건 맞지만, 애초 최저임금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습니다. 식당을 운영해도 원래 최저임금 수준으론 하겠다는 사람이 없고 파출부 일당도 월급 기준으로 따지면 250만 원이 넘습니다. 그러니 월급 기준 190만 원 미만이 대상이 되는 정부 일자리 안정자금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얘깁니다. 최저 임금조차 보장하지 않는 업장이 아직 많지만 현장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최저임금 인상은 부차적인 문제라는 말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실제로 한국노동연구원이 내놓은 2015년 논문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대체로 학자들은 최저임금이 물가상승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 해도 매우 미미한 수준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아예 연관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을 감소시킨다는 주장도 뚜렷한 근거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02년 16.6퍼센트 인상으로 그 폭이 컸을 때나 2010년 2.8퍼센트로 인상 폭이 최저였을 때나 고용률 추이는 58~60퍼센트대로 사실상 변화가 없었습니다. 가진 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해고의 핑계로 쓸 뿐, 최저임금 인상률과 고용률 사이에는 아예 관계가 없어 보일 정도입니다.

 

사실관계가 이런데도 경총과 보수 세력은 최저임금 정부지원 4조 원 때문에 국민 혈세가 허비되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몰락한다고 아우성입니다. 마치 나라가 망하기라도 할 듯 야단을 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왜 한 해 대기업에 지원되는 어마어마한 지원금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걸까요? 2014년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대기업에 지원된 금액이 '126조 원'이었다고 합니다. 내역을 보면 국가 연구개발예산의 대기업 보조금이 1조 4397억 원이고, 세액공제 등 비과세 감면혜택이 7조 1063억 원이며(전체 기업 몫의 75%를 차지), 4대강 관련 등 공공조달(대기업 나눠먹기)이 12조 8359억 원이었습니다. 또 산업은행·정책금융공사·수출입은행들이 대기업에 대출·투자·보증을 한 규모가 104조 9677억 원이었다고 하는군요.

출처 - 경향신문

 

국고를 탕진하는 재벌과 대기업의 횡포도 문제지만, 자영업자들에겐 평균 인건비의 3배가 넘는 임대료가 실질적으로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임대료 앞에선 최저임금 인상 같은 건 작은 문제에 지나지 않습니다. 경기 불황으로 매출은 꾸준히 감소하는 반면 임대료와 관리비는 최소 연 5퍼센트씩 꾸준히 오르니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정부가 올해부터 상가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 임대료 인상 상한을 9퍼센트에서 5퍼센트로 낮췄지만, 법정 임대료 상한을 지키는 건물주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갖은 편법으로 임대료를 인상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영업자는 사업을 접게 만들어버리죠.


출처 - 한겨레


프랜차이즈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에게 본사가 뒤집어씌우는 로열티도 임대료만큼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한 피자 체인은 자영업자가 4000만 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동안 2배인 8000여만 원을 로열티 및 광고비 명목으로 가져갔습니다. 야간에만 아르바이트를 쓰고 365일 쉬지 않고 15시간씩 일하는 편의점주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점주가 월 450시간 이상을 일해 번 돈과 같은 돈을 본사 로열티로 가져가니까요. 계약상 정해진 매출이익의 24퍼센트를 본사가 가져갑니다. 이 편의점은 상위 20퍼센트에 속하는 장사가 잘 되는 점포라 이나마라도 된 것인데요, 여기에 아르바이트 최저 임금만큼 나오는 신용카드 수수료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워킹푸어'라는 말밖에 안 남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자영업자들에게 최저임금 인상이 화두가 되는 건 오른 폭이 커서가 아니라 사실상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돈이 인건비밖에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임대료와 수수료, 가맹비 등은 어떻게 할 수 없이 뜯기는 돈이니까요. 이런 구조적 문제 때문에 약자가 약자를 쥐어짤 수밖에 없는 구조가 양산됩니다. 상황이 이러니 최저임금으로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지 말고 임대료와 수수료, 가맹비 조정 등 시급히 필요한 쪽에 언론이 조명을 비춰주길 바랍니다.


출처 - 조선일보


강남 논현동 영동시장 골목에는 방송으로 유명한 백종원의 식당들이 즐비했습니다. 쿡방이 인기를 끌며 이 상권에 새로운 가치가 더해지게 되고 급기야 이 거리는 속칭 백종원 거리로까지 불릴 정도였는데요. 이 거리에서 백종원의 가게들이 빠지고 있다고 합니다. 최저임금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백종원조차 치솟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죠. 

 

가게가 밀려난 곳에는 대기업 팝업스토어나 프랜차이즈 본사 직영점이 속속 들어서고 있습니다. 이 정도 급이 아니면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죠. 이로써 사람들은 저렴하고 먹을 만한 식당을 잃었고, 강남구청은 관광객이 찾아올 정도의 관광자원인 먹자골목을 잃었다고 아쉬워합니다. 이런 가운데 쾌재를 부르는 자들은 누구일까요? 문제의 핵심을 잘 가려내어 판단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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