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초기에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문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박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수석 대변인으로 임명되고, 대통령 취임 후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되어 탄탄대로에 오른 것 같았던 윤창중. 그런데 채 3달이 되기도 전에 박 대통령의 미국 순방길에 동행했다가 전격 경질되고 말았죠. 주미 한국 대사관 파견 직원이었던 여성을 성추행하는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었습니다. 대통령의 최측근이 저지른 황당한 사건은 어쩌면 그 이후 박근혜 정부의 인사 참사와 지금의 탄핵 정국을 예견하게 해주는 사건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탄핵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박근혜 대통령의 사람들은 여전히 대한민국의 국격을 추락시키고 있으니까요. 최근에는 칠레 주재 한국 외교관의 성추행 사건마저 터졌습니다.


출처 - 유튜브



지난 15일 칠레 지상파 방송인 카날13의 시사고발 프로그램 〈En Su Propia Trampa(자신의 함정에 빠지다)〉는 공식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ensupropiatrampa/videos/1147618558619176/ )을 통해 칠레 주재 한국 외교관인 박정학 참사관이 현지 미성년자를 성추행하는 장면이 담긴 예고편을 공개했습니다.


출처 - YTN


예고편에서 박정학 참사관은 대낮에 미성년자에게 성적 표현을 하며 목을 끌어안고 키스하려는 모습을 보였으며, 저항하는 미성년자의 손목을 잡고 강제로 집 안으로 끌어들이는 경악스러운 모습도 보였습니다. 〈En Su Propia Trampa(자신의 함정에 빠지다)〉는 프로그램은 함정을 파고 대상자가 걸려드는 장면을 찍어서 보여주는 시사고발 프로그램입니다. 예고편에 등장한 미성년자는 배우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 리 없는 박정학 참사관은 계속해서 미성년자를 방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강제로 신체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나중에 프로그램 진행자인 에밀리오가 등장해 "지금 당신이 뭘 하고 있는지 압니까? 당신이 미성년자에게 한 행동들은 한국에서도 칠레에서도 범죄입니다"라고 몰아붙이자 아무 말도 못 하던 박정학 참사관은 에밀리오가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자 허리를 숙이고 손을 붙잡으며 제발 신고하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사정합니다. 이런 장면까지 보고 나면 어떻게 저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외교를 담당하는 참사관으로 일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집니다.



출처 – YTN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박정학 참사관의 미성년자 성추행은 한두 번이 아니어서 현지 교민들 사이에 유명했다고 합니다. 박 참사관을 몰아세운 시사고발 프로그램 역시 실제 성추행을 당한 여학생과 부모가 제보해서 제작된 것이라고 합니다. 방송에 출연한 여학생의 부모는 "내 딸도 저런 상황에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출처 - YTN


박정학 참사관은 칠레에서 한국 문화, 그러니까 칠레 10대들에게 인기 있는 한류와 K-POP을 전도하는 담당자였습니다. 이를 이용해 K-POP 그룹의 팬클럽이나 한류 드라마를 좋아하는 10대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준다며 집을 방문해 성추행을 일삼기 일쑤였다고 교민들은 전합니다. 심지어 12살짜리 소녀를 성폭행한 혐의까지 받고 있으니 무슨 말을 더하겠습니까? 한류와 K-POP에 호감도가 높은 칠레에서 한 사람의 잘못으로 대한민국의 이미지가 실추되다 못해 혐오감마저 주는 이 일을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칠레 교민들은 이전부터 박정학 참사관의 문제를 계속해서 제기했으나 별다른 조처가 없어 이번 사태로 치달았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번 성추행 사건은 박정학 참사관 개인의 범죄가 아니라 대사관과 외교부 전체의 관리와 감독이 소홀했음을 보여주는 일례입니다. 박근혜 정부 초기에 터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이 칠레 현지에서는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었다는 말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현재 칠레 교민들은 가해자와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문자 테러를 당하고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교민들을 살피고 불편을 덜어줘야 할 외교관이 오히려 민폐 덩어리에 범죄까지 일으키다니 박근혜 정부가 어디까지 썩었는지 그 뿌리까지 본 느낌입니다.


출처 - 이뉴스투데이


현재 외교부는 박정학 참사관의 직무를 정지시켰다고 밝히며 조만간 국내로 소환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칠레 검찰 당국이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는 하는데 외교관의 면책특권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논란이 예상됩니다. 한국에서 형사고발을 포함한 법적 조치와 중징계를 추진한다고 하는데, 윤창중의 전례를 볼 때 과연 제대로 처벌이 될지 의심스럽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윤창중의 성추문 사건으로 시작된 박근혜 정부의 외교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휘청거리며 체면도 잃고 실리도 잃고 말았습니다. 세월호에 탄 국민이 수장되던 시간에 올림머리를 하고 미용 시술을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인 박근혜 대통령 자신은 비선실세에 휘둘려, 아니 한통속이 되어 국정을 농단하다 탄핵이 된 마당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외교관이 미성년자를 성추행하는 패륜 사건마저 터져 나와 대체 국격 파탄의 끝이 어디인지 종잡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과연 이게 나라입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있으라'는 말은 세월호 희생자들이 아닌 그들 스스로에게 해야 했을 말이 아니었을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1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가정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합니다. 복 많이 받으시고 계획한 일 모두 성취하시기 바랍니다. 독자 여러분의 사랑과 관심이 있었기에 생각비행은 꿋꿋하게 지난 한 해를 무사히 보낼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2015년 한 해 동안 생각비행이 포착하여 기사화한 내용을 중심으로 2015년을 정리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흘러간 시간을 잘 정리해야 새로 시작하는 2016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늠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출처 - 교수신문

 

한 해를 마무리할 때면 대학교수들이 그해를 함축하는 사자성어를 꼽곤 합니다. 2015년을 상징하는 사자성어는 "혼용무도(昏庸無道)"였습니다. 이는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의 실정으로 나라 전체의 예법과 도의가 송두리째 무너져버린 상태를 말합니다. 세월호 사태로 비탄에 빠진 국민을 오히려 빨갱이로 몰아붙이고, 메르스 사태 때 국정 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해 숱한 국민이 죽어 나가게 만들었으며, 친일·반민족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꾀함으로써 자신의 과거를 세탁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종내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일본에 헐값에 팔아먹으며 민족반역자의 핏줄임을 스스로 증명했습니다. 네, 모두 박근혜 대통령에 관한 얘깁니다. 박근혜 정부 3년 차, 대한민국 사회를 지칭하는 단어인 '헬조선'처럼 2015년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최악이었죠.

 

 

사상 초유의 연말재정산으로 막을 올린 2015년 박근혜 정권

 


출처 - 한겨레

 


2015년을 열자마자 13월의 월급을 기다리던 대다수 직장인이 세금 폭탄을 맞았습니다. 연봉이 적은 사람이 높은 사람보다 세금을 오히려 더 내게 되는 등 문제가 많았는데요, '서민 증세'라는 여론이 터져 나오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새누리당은 사상 초유의 연말재정산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해 혼란을 가중했습니다. 2016년 연말정산은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지 걱정되는군요.



박근혜 정권의 연속된 인사 대참사

 

출처 - 기자협회보

 


박근혜 정권은 초기부터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이 해외에서 의전 중에 성추행 파문을 일으키며 인사 참사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박근혜 정권의 인사 참사는 이후로도 계속되었습니다. 박근혜란 암군 곁에 제 이익 차리기에 바쁜 간신들만 모였으니 당연한 결과겠지요. 그 와중에 총리 후보가 된 이완구는 싸구려 조폭 영화에나 나올 법한 대사를 읊으며 대한민국 언론을 난도질했습니다. 병역비리 정도에 그치면 그나마 청렴한 사람으로 보일 정도로 박근혜의 인맥은 어처구니없는 수준이었죠.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선거 캠프의 불법 대선 자금 수사의 핵심이 될 수 있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도 있었죠. 잘 길든 검경과 사법부가 없었더라면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이 오락가락할 수 있는 사안이었습니다.



메르스 사태, 살아남기조차 힘들었던 2015년


출처 - 경향신문

 


여름으로 들어갈 무렵 메르스 대란이 일어났습니다. 박근혜 정권의 무능하고 무책임한 초기 대응으로 무고한 국민이 죽어갔고 또 많은 사람이 슬픔과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이 사태를 초래한 데 대해 백배사죄를 해도 모자랄 판이었으나 유체이탈화법으로 실무자들을 족치기 바빴습니다. 그야말로 2014년에 있었던 세월호 참사의 재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대통령을 위시한 위정자들로 인해 해마다 수많은 국민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니, 올해는 또 어떻게 지내야 할지 2016년이 벌써 두려워집니다.



국정원의 계속되는 민간인 사찰

 

출처 - 한겨레

 

 



박근혜 정권의 성립에 일조한 국정원이 불법 대선 개입도 모자라 해킹툴을 활용하여 민간인을 불법 사찰하고 이런 사실의 실체가 드러나려 하자 담당 직원을 자살로 내몬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의 무능함과 전근대적 운영방식이 만천하에 공개되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자신의 스마트폰이 사찰 대상이 될까 봐 전전긍긍해야 했습니다. SNS에서는 "마티즈 태우러 온다"는 말이 높으신 분들에 의해 자살 당한다는 동의어로 쓰이게 되었죠. 지금 돌아봐도 아찔한 정국이었습니다.



노동개악과 헬조선

 

출처 - 경향신문

 



숨돌릴 틈도 없이 하반기에 들어서자 박근혜 정부는 임금피크제로 노동개혁의 기치를 올리더니 노동개혁을 빙자한 '노동개악'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합니다. 더욱 팍팍해진 취업 문턱은 결국 극단적 좌절을 낳아 '노오오오력'조차 무의미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른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은 우리에게 이땅은 '헬조선'일 뿐이라는 자괴감마저 들게 했습니다. 1년도 안 된 신입사원마저 희망퇴직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회장의 아들은 전무로 승진했던 두산 사태만 봐도 대기업 중심으로 경제의 틀이 짜인 대한민국의 상황을 알 법합니다. 이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근간이 삼권분립마저 무시한 채 국회의장에게 노동개악을 위한 법안을 직권상정하라고 사실상 명령을 내려 논란의 대상이 되었죠.



국정교과서 문제와 친일파 박근혜

출처 - 경향신문

 


11월부터 12월 초까지 세 차례에 걸친 민중총궐기로 극한에 달했던 국민의 분노가 조금 누그러지고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에 박근혜 정부는 느닷없이 한일외무정상회담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합의되었으며 이는 최종적, 불가역적이라고 발표해 다시금 수많은 국민을 경악시켰습니다. 아무리 아버지가 한일협정을 맺은 친일파의 거두라고 해도 21세기에 딸까지 이렇게 당당히 자기가 친일파임을 드러내리라곤 상상을 못 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생각해보면 그런 조짐은 계속 있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과 자기 아버지를 따르는 무리의 과거를 세탁하기 위해 국정교과서 파동을 일으켰으니까요. 한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생활비를 끊으려고 획책하던 박근혜 정부는 결국 사달을 내고 말았습니다. 제2의 한일협정인 12.28 합의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더는 거론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니까요. 하지만 민의를 반영하지 않은 독단적인 합의는 원천 무효이며 친일파의 본성을 드러낸 민족반역 행위를 국민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역사의 피해자를 등한시하고 정치적 야합을 벌인 박근혜 정권은 책임을 면피할 수 없습니다.



외계어를 구사한 박근혜와 아버지를 두 번 죽인 김무성

 

출처 – 페이스북


 

대한민국의 문제는 현 대통령인 박근혜와 여권의 대표이자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인 김무성으로 귀결됩니다. 생각비행이 쓴 다양한 기사 중에서 지난 1년간 독자 여러분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내용도 바로 박근혜와 김무성의 망언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말이 통하는 사람이 국가를 책임져야 할 텐데 외계어를 구사하고 망언을 일삼는 사람들이 중책을 맡고 있으니 나라 꼴이 이 지경이 된 게 아니겠습니까? 이명박근혜 정부를 살아가는 우리가 민주주의에서 선거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교훈을 반면교사를 통해 얻었다기에는 그 결과가 너무 가혹한 것 같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앞으로 2년이 더 남았습니다. 하지만 2016년 4월에는 총선이 있습니다. 드디어 조금이라도 바꿔볼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모쪼록 2016년에는 생존보다는 더 나은 삶의 가치를 고민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여러분의 선택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합니다.

 

대통령 선거 3일 전, 한밤의 경찰 수사 결과 발표

2012년 12월 16일 박근혜-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초박빙의 대선을 치르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경찰이 국가정보원 직원의 댓글 사건에 대한 긴급 중간 수사 결과 발표를 양당 후보의 TV 토론회가 끝난 직후인 밤 11시경에 느닷없이 진행하여 많은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했던 일을 기억하실 겁니다. 

2012년 12월 16일은 대통령 선거를 사흘 앞둔 중요한 시점이었습니다. 토론에서 박 후보는 "국정원 여직원이 댓글을 달았는지 증거도 없는 걸로 나왔다. 여성 인권 침해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없고 사과도 하지 않는다"며 문 후보를 쏘아붙였습니다. 이때 문 후보는 "그 사건은 수사 중인 사건이고, 지금 발언은 수사에 개입하는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출처-민중의소리

그런데 TV 토론회가 끝난 직후 한밤에 서울 수서경찰서가 긴급 브리핑을 열어 "국정원 직원 김 씨의 컴퓨터를 분석한 결과 대선후보 관련 댓글 작성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가 박 후보의 토론회 발언 내용을 뒷받침하는 셈이 된 것이죠. 예측을 불허하는 혼전 상황에서 경찰의 이례적인 심야 발표 배경을 놓고 야권은 의구심을 제기했습니다. 실제로 2013년 12월 기준으로 국군사이버사령부 직원들이 대선에 개입하는 글을 올린 것과 국가정보원 심리전단에서 트위터에 수십만 건 이상의 정치·대선 개입 활동을 한 사실이 추후 확인되어 이 사건은 더욱 확대되었으며 각계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퇴진 요구가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뷰'는 "대선 당시 경찰이 국정원 사건의 전모를 제대로 밝혔다면,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한 사람의 8.3%가 마음을 바꿔 문재인 후보를 찍어 승패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여론조사 분석 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참여연대에서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의 문제점을 잘 정리해놓았으니 다음 자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국정원의 개그본능


대선을 앞두고 경찰의 깜짝쇼가 인구에 회자하자 이에 자극을 받았는지 국정원도 주말 예능을 시작했습니다. 일요일인 지난 9일 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문제와 관련해 기습적으로 사과문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정확히는 발표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만 던졌을 뿐이니까요. 개그콘서트와 시청률 경쟁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요? 이런 중요한 사과를 아무도 주목하지 못할 일요일 밤에, 그것도 기자들한테만 기습적으로 메일을 보내놓고 넘기려 하다니 어이가 없다 못해 실소를 금할 수 없군요.

출처 - MBN
 

국정원은 '발표문' 첫머리에서 "최근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과 관련해 세간에 물의를 야기하고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린 것에 대해 진심으로 송구스럽다"고 밝힌 뒤 곧바로 해명을 늘어놓았다. 국정원은 "재판 진행과정에서 증거를 보강하기 위해 3건의 문서를 중국 내 협조자로부터 입수해 검찰에 제출했다"며 "하지만 현재 이 문서들의 위조여부가 문제가 되고 있어 저희 국정원으로서도 매우 당혹스럽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자살을 시도한 국정원 협력자 김아무개씨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정말로 죄송한 마음이 있다면 한밤중에 꼼수를 부릴 일이 아니라 책임자인 국정원장 혹은 그 상급자인 대통령이  국민 앞에 직접 나서서 진심으로 사과해야 마땅합니다. 사과란 진심과 예의를 갖춰서 해야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지요. 국정원의 사과는 꼬리자르기식으로 억지로 꺼낸 비겁한 사과로 보입니다. 여론이 나빠짐을 느껴서일까요, 오로지 종북 타령만 하던 보수 신문과 검찰도 비겁한 급선회에 동참했습니다.

대통령이 "증거자료 위조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한마디 하자 검찰은 전격적으로 국정원을 압수 수색을 했고, 보수 신문들은 남재준 국정원장 사퇴와 사태의 철저 규명을 목소리 높여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애초 대통령의 유감 표명은 사태 해결을 위해서가 아닌 6.4 지방 선거용 말치레라는 관측이 일반적입니다.

출처 - 노컷뉴스
 

향후 꼬리자르기 위험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 변호사는 "국정원이 겉으로 드러나 있는 조직이 아니며, 현재 드러난 것만 알고 있을 뿐 사건의 실체와 배후가 어디까지인지는 알 수 없다"며 "국정원이 책임지는 쪽으로 꼬리를 잘라내고, 남재준 국정원장이 정치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정도로 마무리하려 할지 모르나 이렇게 되면 배후도 밝히지 못할 뿐 아니라 수사책임자인 검찰에 대한 사법처리도 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이 같은 움직임을 두고 "특검 명분을 없애고 선거 앞두고 조기 봉합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야당이 공세를 펴기도 어렵게 돼 지방선거 정국이 여당에 유리하게 흘러갈 가능성도 있다"며 "정치적으로 과감한 선택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사건 배후와 관련해 박 변호사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라는 점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을 겨냥해 색깔론 공세를 펴기 위한 것으로 본다"며 "차기 대선 후보에 대한 싹을 자르기 위해 무리하게 하다가 덤터기 쓴 것이다. 검찰의 이런 기세라면 1~2주 안에 처벌대상자와 구속자까지 다 나오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주말 예능식 사과, 박근혜 정부의 정책인가?

그런데 이런 상황, 왠지 익숙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거의 정확히 1년 전에 이런 주말 예능식 사과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국가 공공기관과 권력자의 잘못을 한 개인에게 떠넘겨 꼬리자르기 하는 대처법은 박근혜 정권의 전매특허인가 봅니다. 세계 외교사에 길이 남을 수치인 윤창중 성희롱 사건에 대한 사과도 이와 똑같았으니까요.

출처 - 한겨레21

미국을 순방한 박근혜 대통령을 수행하던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이 한국대사관에서 자신의 수행으로 배치한 여성 인턴을 호텔 바와 자신의 호텔 방에서 성추행했다는 보도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졌던 일이 엊그제 같습니다. 정치권 안팎으로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박 대통령을 포함한 청와대의 책임을 묻는 여론이 거세지자 결국 비서실장이 대신해 대국민 사과를 하는 데 이르렀지요. 

전날까지만 해도 "사과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어오던 청와대가 주말 오전에 갑자기 사과 입장을 밝힌 배경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다음날 일간신문들이 나오지 않는 토요일에 사전 공지도 없이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한 건 유례를 찾기 쉽지 않다. 이에 이날 오후 2시에 예정돼 있던 고위 당·정·청 워크숍에서 있을 수 있는 '인사참사'에 대한 논란을 사전봉쇄하기 위한 포석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인사 책임자인 대통령은 뒤로 빠진 채 비서실장 명의의 대국민 사과문을 청와대 대변인이 주말에 기습적으로 대독했지요. 추후 가시적인 책임자도 후속조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진심이 아니라 뒤로 머리를 굴리는 사과, 예의가 아닌 꼼수에 불과한 참으로 나쁜 사과의 전형이었습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데, 잇따른 인사 실패의 결과가 1년 뒤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까지 이어진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에 대해 많은 국민이 "차라리 사과를 하지 말든가"라고 분노하며 한때 박근혜 정부의 국정지지율이 41퍼센트까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국민이 뽑아준 대표자가 국민을 우습게 보니 사과가 제대로 이루어질 리 만무합니다.


소비자 우롱하는 기업의 꼼수 사과도 여전

정치권의 하는 듯 마는 듯한 비겁한 사과 행태가 사업계까지 퍼져나간 걸까요? 국내 최대 소셜커머스업체인 티켓몬스터는 지난 3월 5일 경찰로부터 3년 전인 2011년 해킹으로 113만 명의 회원 정보가 유출된 사실을 통보받았지만, 이를 주말인 7일 저녁에야 언론에 발표했습니다. 직장인들이 다 퇴근하고 주말을 즐기기 바쁜 시간에 은근슬쩍 사과해 진정성에 의구심이 듭니다.


출처 – 티켓몬스터 홈페이지

더군다나 티몬은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제대로 공개하지도 않았습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건 광고뿐입니다. 별도의 팝업으로 사과문을 띄우기는커녕 한참 스크롤을 내려야 보이는 홈페이지 우측 하단에 조그맣게 2011년 개인정보 유출 확인이라는 메뉴를 만들어놓았을 뿐이었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이거늘, 국익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대통령, 국정원, 검찰, 여당, 보수언론이 이렇게 비겁한 작태를 보이는데 일개 기업이라고 다르겠습니까? 그러니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 총수들이 한결같이 휠체어 신공을 선보이며 집행유예 코스로 빠져나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큰 기금을 출연하여 재단을 만들겠다는 약속으로 위기를 넘기는 술책에 국민이 하루 이틀 당한 것도 아니지요.

박근혜 정부 내내 각계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반복될 텐데 비겁한 주체들이 앞으로 어떠한 예능감으로 무장하여 국민에게 큰 웃음을 줄지 자못 기대되는군요.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최근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폄훼하는 게시물을 올려 사회적 논란을 촉발한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 광고가 중단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간 일베에는 리얼클릭, 구글 애드센스, 미디어나루 등 인터넷 광고대행업체들이 광고를 게재하고 있었습니다. 광고대행사 리얼클릭은 22일 공지글을 통해 "제휴 매체 일간베스트에서 역사인식을 왜곡하는 것은 물론 유해 정보가 많이 올라오고 있어 광고주와 인터넷 유저들을 보호하기 위해 광고를 차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일간베스트저장소

보수 우파의 집결지로 불리며 파워 사이트로 떠오르고 있는 일베 커뮤니티 회원을 얼마 전 국가정보원이 안보 특강에 초청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지난 20일 일베 회원들이 인터넷에 공개한 국정원의 초청장에 따르면, 국정원은 일베 회원을 포함해 간첩 신고를 한 보수 누리꾼들을 뽑아 오는 24일 열리는 국정원 안보 특강에 초청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갑자기 각종 뉴스를 선점한 '일베' 현상,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일까요? 도현신 작가의 [어제, 오늘, 내일 2]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뤄봅니다.   

전효성의 '민주화' 발언으로 부각된 일베 현상

얼마 전, 떠들썩한 소동이 하나 있었습니다. 2013년 5월 14일, SBS 라디오 프로그램 <최화정의 파워타임>에 출연한 아이돌 그룹 시크릿의 전효성이 “저희는 개성을 존중하는 팀이라 민주화시키지 않아요.”라고 한 발언이 구설수에 오른 것입니다. 전효성이 “민주화”라는 단어를 쓴 맥락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남을 괴롭힌다는 나쁜 뜻으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적으로 만든다는 뜻인 민주화라는 단어가 원래의 의미와는 전혀 상관없는 나쁜 말로 쓰이다니,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요?

주위로부터 반발과 비판이 거세지자 전효성은 뒤늦게 사과의 뜻을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실언으로 번진 파문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대체 전효성은 무슨 생각에서 민주화라는 단어를 부정적인 의미로 말했던 것일까요? 그것이 전효성 개인이 처음 한 발상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민주화를 나쁜 말로 쓰는 어법의 출처는 일간베스트저장소, 줄여서 ‘일베’라고 하는 한 인터넷 사이트입니다.

일베는 원래 다른 인터넷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 줄여서 ‘디시’에서 갈라져 나온 곳입니다. 일베의 모태가 된 디시라는 커뮤니티에 관해 잠시나마 설명을 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디시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회로 수많은 누리꾼의 방문으로 큰 인기를 얻었고, 한때 한국 인터넷을 대표하는 커뮤니티 사이트로 꼽혔습니다. 초창기의 디시는 상당히 좋은 사이트였습니다. 디시 접속자들은 서로를 불교에서 도를 닦는 승려를 뜻하는 용어를 변용한 ‘햏자’라는 호칭으로 대하며 존중해주었죠.

2002년 디시에 연재된 만화, <햏자의 역습>. 이 무렵, 디시 접속자들의 매너는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좋았고, 사이트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

그런데 이런 디시는 2005년 이후부터 점차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점차 존댓말이 사라지고 반말과 욕설이 나타났고, 특정 지역(전라도와 대구 등)을 모욕하고 여성을 비하하는 게시물이 마구 올라왔던 것입니다. 당시 사이트 운영자들은 이런 사태를 막거나 엄히 다스리기는커녕, 오히려 악성 게시물을 올리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디시의 타락을 방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디시에는 양식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특정 지역과 여성들을 모독하는 게시물들은 윤리적으로 나쁘니 삭제하도록 요청해서 지워졌습니다. 그러자 “그냥 재미 삼아 인터넷에서 하는 말들인데 왜 지우냐?” 하고 반발하는 사람들이 따로 일간베스트저장소라는 사이트를 만들어 디시에서 삭제된 문제 게시물들을 다시 올렸습니다. 일베의 모태가 된 디시도 2010년 무렵에는 막말과 욕설, 비속어가 들끓는 등 그다지 좋은 사이트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디시에서도 감당하지 못해 삭제된 게시물들을 모아 놓은 곳이 바로 일베였으니, 이런 유래를 본다면 일베라는 사이트 자체가 애초에 잘못된 출발을 한 곳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일베의 본질은 무엇인가? 
 
일베에 접속하는 사람들이 어떤 성향을 지녔는지, 그리고 ‘일베’라는 사이트의 본질이 대체 무엇인지를 놓고 많은 사람이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조금씩 차이는 있더라도 “일베는 인터넷의 익명성을 바탕으로 마구 날뛰는 악성 네티즌들의 집단”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입니다.

지금은 안 쓰지만, 한때 ‘키보드 워리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신상 정보가 닉네임 속에 완전히 가려진 인터넷의 특성을 악용하여, 다른 누리꾼에게 욕설과 인신공격을 퍼부으며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죠. 이런 악성 누리꾼들은 인터넷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피시통신이 운영되던 1990년대에도 존재했습니다. 어느 여중생이 “너는 걸레”라는 욕설을 듣고 충격에 빠져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뉴스도 있었지요.

일베도 근본적으로 이런 악성 누리꾼들이 모인 사이트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규모와 이용자 수가 다른 인터넷 공간보다 훨씬 방대하다는 것뿐이죠. 자신의 신분이 철저하게 비밀이니, 자신이 어떤 말을 해도 불이익이나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익명성을 근거로 평소에는 사회의 도덕적 제약 때문에 차마 하지 못하던 말들을 인터넷에 대고 마구 쏟아내는 곳이 바로 일베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일베 회원들은 사이트 내에서 어떤 도덕이나 윤리적인 제약도 지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노력하는 사람들을 “씹선비”라는 모욕적인 말로 부르며 조롱합니다. 그들의 생각에 인터넷은 어차피 가상공간이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뭐든지 마음껏 해도 되는 곳인데 무엇 때문에 현실 세계의 예의나 도덕 같은 귀찮은 제약에 얽매이느냐, 그런 자들은 착한 척하는 더러운 위선자들이다, 라는 겁니다.

일베에 온갖 패륜적인 게시물들―강아지와 수간을 하고, 6살 난 조선족 여자 아이를 집단 강간하러 모의하며, 자신들을 비판한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의 딸을 스토킹 모의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원정녀(매춘부)라고 부르며, 한국 여성들을 김치녀로 혐오하고, 전라도 사람들을 가리켜 홍어 냄새난다면서 다 죽여야 한다는 등―이 마구 올라오는 이유도 바로 인터넷의 익명성에 기댔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을 비판한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의 딸을 스토킹하겠다고 글을 올린 일베 회원들

그렇다면 일베 회원들이 욕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보는 대상은 없을까요? 물론 있습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같은 한국의 독재자들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물에 대해 욕설을 퍼붓는 일베 회원들이지만, 아직까지 이 세 사람에 대한 비방 게시물이 올라오거나 베스트로 가는 일은 없었습니다.

전두환을 전땅크라 부르며 우상화하는 일베 회원들이 만든 그림. 그들은 전두환이 저지른 광주 학살을 알고도 오히려 잘 죽였다며 무자비한 폭력을 찬양한다.

어째서일까요? 일베 회원들이 저 세 독재자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몰라서 저러는 걸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 저지른 국가적 폭력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들에 대해 분노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열렬히 찬양합니다. 한 예로 일베 회원들은 전두환 일당이 저지른 광주 학살에서 수많은 시민이 계엄군에게 무참히 살해된 사진을 보고는 “전땅크, 부릉부릉, 홍어들 냄새난다”고 댓글을 달며 신군부의 살인을 찬양하고 광주 시민을 조롱합니다.

일베 회원들이 쓰는 말들, 모두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쓸 수 없는 수준이다. (출처: JTBC)

독재자들의 무자비한 폭력을 숭상한다면 그 반대편에 선 사람들, 민주화 투쟁에 앞장선 정치인들(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을 일베 회원들은 어떻게 볼까요? 극렬히 증오합니다. 그중에서도 일베 회원들이 제일 미워하는 대상은 바로 민주화 진영에 속한 정치인인 김대중과 노무현 전 대통령입니다. 일베에서는 우리나라의 모든 문제가 바로 김대중과 노무현 때문에 벌어졌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런 믿음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생각하지 않고, 오직 김대중과 노무현을 욕하는 것이 일베 회원들의 모습입니다.

일베 회원들은 김대중과 노무현을 욕하는 데에 만족하지 않고, 그들이 평생 추구해왔던 가치인 민주주의마저 부정합니다. 일베에서 ‘민주주의’ 혹은 ‘민주화’는 모든 부정적인 뜻을 담고 있는 말로 쓰입니다. 글의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가수 전효성이 자기들 그룹이 민주화를 시키지 않는다고 한 말은 원래는 일베에서 쓰이던 표현이었습니다.

일베 회원들이 민주주의 자체를 증오한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 어떤 게시물의 밑에 그것을 반대하는 버튼의 이름을 ‘민주화’라고 붙인 것입니다.

게시물 밑의 반대 버튼 이름을 민주화라고 붙여놓은 일베 사이트

이것이 일베 회원들의 핵심 정체성입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같은 개발 독재자들은 찬양하면서 민주화를 추진한 김대중과 노무현 같은 정치인들은 증오하고 있는 겁니다. 국민들의 인권을 유린하며 폭력을 휘두른 독재자들을 좋아하고, 민주주의를 추구한 정치인들은 미워하는 일베 회원들. 도대체 왜 그런 걸까요?

원래 일베라는 사이트 자체가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쓸 수 없었던 반도덕적이고 패륜적인 게시물을 모아놓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니 일베를 만들고 이용하는 누리꾼들은 ‘도덕’이라는 가치관 자체를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도덕적인 가치인 민주화를 추구한 정치인들을 위선자, 거짓말쟁이, 사기꾼, 나쁜 놈이라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또한 일베 회원들은 도덕적인 제약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분출하는 행위 자체를 즐깁니다. 그러니 무자비한 학살과 폭력을 휘두른 독재자들을 솔직하고 진실하다고 보면서 좋아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다른 관점에서, 일베 회원들은 약자를 혐오하고 힘을 숭배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미워하는 대상들은 하나같이 한국 사회에서 약한 집단입니다. 전라도는 박정희 시절부터 차별을 받았고, 한국 여성은 오랫동안 남성 우월주의의 희생양이었으며, 김대중과 노무현은 한국의 주류 권력 집단과 보수 언론으로부터 빨갱이 소리를 들으며 살아온 약자들이었죠. 반면 일베 회원들이 찬양하는 독재자들은 모두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강자들입니다. 이승만은 4.19 혁명으로 쫓겨났지만 아직도 뉴라이트 같은 보수 단체들로부터 국부 대접을 받고 있으며, 박정희는 죽어서도 국민이 제일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인식되고 있고, 그의 딸이 2013년에 대통령으로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전두환은 권좌에서 밀려났지만 막대한 재산을 이용해 일가족이 상류층에 편입되어 떵떵거리고 있으며, 황제 경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부의 보호도 받고 있습니다. 독재자들을 추종했던 세력은 지금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핵심 집단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일베 회원들의 눈에 세 독재자가 절대 강자로 보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약자를 미워하고 힘을 숭상하는 집단이라니, 왠지 꺼림칙하지 않습니까? 독일의 나치가 바로 이런 자들이었습니다. 특히 나치의 우두머리인 히틀러는 이 세상에는 오직 강자만이 살아남을 권리가 있으며, 약자들은 존재할 자격도 없으니 모조리 죽여야 한다고 굳게 믿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히틀러는 집권하자마자, 독일 국민 중에서 불치병과 난치병 환자 및 장애인 같은 약자들은 국가에 부담만 주는 쓸데없는 방해물이라고 여겨 모조리 독극물로 독살해 버렸습니다. 일베 회원들은 히틀러 같은 극악무도한 파시스트 독재자가 우리나라에서 나오기를 바라는 걸까요?

일베는 사회 실패자들의 모임이 아니다

일베가 악명을 떨치자, 이를 분석하는 사람 중에 “크게 문제 삼을 것 없다. 일베는 어차피 가난한 저학력자들이 주류를 이루는 별 볼일 없는 집단에 불과하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베를 단순히 사회 부적응자들의 모임 정도로 보는 인식은 너무나 안이합니다. 일베는 저소득층이나 저학력자들만 가려서 받는 사이트가 아닙니다. 일베를 이용하는 사람 중에는 예전에 진중권 씨와 토론을 벌인 ‘간결’ 같이 하버드로 유학 갈 정도의 고학력자도 있으며, 국정원과 깊은 관계를 가진 정규직 종사자도 많습니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예전에 운동권 출신으로 국회의원이 된 임수경 씨의 아들이 죽었다는 인터넷 뉴스 기사에 “잘 죽었다” “꼴 좋다”는 식의 악성 댓글을 단 누리꾼들은 철없는 청소년이 아니라 대기업 간부와 중소기업 사장과 같이 지극이 정상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가 말한 것처럼, ‘악의 평범성’이 드러난 사건이기도 했지요.

이러한 이유로 저는 일베 현상이 두렵습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이 일베 같은 사이트에 열광한다는 것은, 곧 보통 사람들 사이로 파시즘이 자연스레 스며든다는 사실을 의미하게 때문입니다.

실제로 영국의 역사가 마크 마조어가 그의 저서인 《암흑의 대륙》에서 밝힌 사실에 의하면, 제2차 세계대전 직전 대부분의 유럽 젊은이가 파시즘의 강렬한 매력에 자발적으로 매료되었으며, 경제대공황 등의 위기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는 민주주의 체제를 무능하다고 여겨 혐오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그 당시 유럽과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요? 일베에 제일 많이 접속하는 계층은 10대와 20대 젊은이들인데, 이들이 독재자를 찬양하고 민주화를 부정적인 의미로 쓴다면, 자발적으로 파시즘에 환호하고 민주주의를 경멸했던 유럽 젊은이들을 흉내낸다는 지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봅니다. 일베의 하루 접속자 수는 400~500만에 이릅니다. 대략 우리나라 인구의 10퍼센트 정도가 매일 일베에 접속한다면, 이는 그저 무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한국의 보수 세력과 일베의 결탁 현상

지금은 잠잠하지만 작년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불과 며칠 앞두고 민주당은 국정원이 전국 70여 개의 비밀 지점에서 ‘오늘의 유머’ 같은 국내의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마다 박근혜 후보를 찬양하고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리는 이른바 댓글 정치 공작을 벌여왔다고 폭로했습니다.

이 때문에 국정원 여직원이 머물고 있다는 강남의 한 오피스텔을 습격해, 어서 나오라고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지요. 거의 이틀을 버틴 끝에 여직원은 나오기는 했습니다만, 대선을 이틀 앞둔 시점에서 조사를 벌인 경찰은 민주당이 문제 삼은 대선 관련 게시물을 그 여직원이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적이 없다는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대선이 끝나고 나서 경찰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국정원 여직원은 이명박 정권을 옹호하고 북한과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는 게시물을 오늘의 유머에 무려 91건이나 올린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국정원 직원과 일베 회원이 손잡고 정치 관련 게시물들을 인터넷 사이트에 계속 퍼다 날랐다는 보도. (출처: JTBC)

더욱 놀라운 사실은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이 ‘대북 심리 정보국’이라는 별도의 부서까지 만들어가며, ‘오늘의 유머’와 ‘보배드림’과 ‘뽐뿌닷컴’ 같은 국내의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에다 국정원 여직원이 한 것과 똑같은 일을 집중적으로 벌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정부 기관이 개입된 정치 공작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국정원 여직원은 일베의 회원인 이모 씨와 함께 일베의 글을 오늘의 유머에 여러 번 인용했으며, 자신이 만든 아이디를 5개나 빌려주었다고 합니다(2013년 5월 6일 JTBC 방송 내용). 이렇게 보면 일베가 단순한 유머 사이트로 머물지 않고, 국정원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보수 세력과 손잡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력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저 혼자만의 염려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올해 2월 28일, 국정원은 일베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극우 논객인 변희재 씨를 초청해 국정원 직원들을 상대로 종북주의자를 비판하는 내용의 강연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또한 5월 24일, 국정원은 일베 회원들을 초청하여 식사를 대접하고 상품권과 시계를 선물하는 행사까지 열었습니다.

국정원에서 초청 전화가 왔다고 말하는 일베 회원


일각에서는 일베의 서버가 디도스 트래픽이 40기가까지 초과되었는데도 이를 막아냈다는 점을 들어서 혹시 일베가 국정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서 운영되고 있는 사이트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일베가 비단 18대 대통령 선거만이 아닌, 한국 보수 세력과 알게 모르게 결탁하여 앞으로 투표권을 갖게 될 젊은 유권자들을 상대로 민주화 세력을 폄훼하고 박정희와 전두환 등 독재자로 상징되는 보수 세력을 향한 지지를 심어주려는 작업을 인터넷에서 하고 있다는 것이죠.

대표적인 극우 논객인 조갑제 씨는 일베 회원들이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을 도운 1등 공신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일베 회원들도 자신들이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자랑스러워하는 걸 보면, 일베가 정치적 사이트라는 의문이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최근 5.18 광주민주화항쟁 기념일을 전후로 종편에서 보도한 5.18 광주 북한군 개입설을 확산하는 일베와 달리 조갑제닷컴에서 이를 허구라고 주장하는 글을 올린 이후 조갑제 씨를 일베 회원들이 종북좌파로 규정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일베에 대한 최종 평가

처음에는 그저 저질 유머 사이트로 출발한 일베는 어느새 하루 접속자 50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방문자 수를 자랑하는 거대 사이트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일베가 우리 사회에 끼친 악영향은 너무나 커서, 이제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언론이 일베를 부정적으로 다루는 상황입니다.

2012년 5월,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일베 회원들이 보인 태도는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그들은 성추행 의혹을 일으켜 나라의 위신을 실추시키고 피해자의 마음에 상처를 준 윤창중 전 대변인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성추행 의혹 사실을 처음 폭로한 사이트인 미시USA가 “친노종북 사이트”라는 엉뚱한 음모론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베 회원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뿐이었습니다.

스스로 일베 회원임을 입증한 논객 변희재 씨가 제기한 종북 발언에 발끈한 미시 USA 회원들.

한국사회에서 사회, 경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심리적 자존감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베 현상을 일종의 심리적 방어기제의 현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문화평론가 최영일 씨는 “일베의 유해성을 놓고 적대시해서 때려잡는다고 사라질 문제가 아니다”며 “성매매를 단속한다고 없어지지 않듯이 일종의 사회심리적인 집단현상이 있는데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현상을 덮어버리면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이런저런 평가와 염려와 비난에도 일베는 존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저것 다 떠나서 “그저 재미삼아서 일베를 하는 건데 뭐가 나쁘냐?” 하고 의문을 품는 분이 혹시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재미삼아 한 일이라고 해서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재미삼아 고층 아파트에서 던진 돌에 사람이 맞아 죽고, 재미삼아 불을 질렀다가 사람이 타죽는다면 그저 재미로 한 일이라고 넘길 일은 아니니까요. 불특정 다수를 향한 비방성 발언과 인격모독 등의 행위도 정도를 벗어나면 그저 넘길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타인의 인격을 현저히 폄훼하는 행위에 대한 자정능력을 잃어버리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공유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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