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보도

이완구 총리 후보자의 충격적인 언론 외압 발언

by 생각비행 2015. 2. 11.
"나도 대변인 하면서 지금까지 산전수전 다 겪고 살았지만 지금도 너희 선배들 나하고 진짜 형제처럼 산다. 언론인들, 내가 대학 총장도 만들어 주고 나, 언론인... 지금 이래 살아요. 40년 된 인연으로 이렇게 삽니다. 언론인 대 공직자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인간적으로 친하게 되니까... 내 친구도 대학 만든 놈들 있으니까 교수도 만들어 주고 총장도 만들어 주고...."


싸구려 조폭 영화의 대사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무총리 후보라는 사람이 언론인들과 식사하면서 내뱉은 말입니다. 지난 28일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는 《중앙일보》 《한국일보》 《경향신문》 《문화일보》 등 중앙 일간지 기자들과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자기 자랑을 시작합니다. 전화 한 통에 종편 프로그램 패널이 바뀌었으며 언론사 인사에 개입한 내용까지 자랑스럽게 떠들었습니다. 자기 말 한마디면 당사자는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 죽는다고 말이죠.


 

출처 - 미디어오늘


이쯤 되면 언론 마피아의 보스 행세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당시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진 후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언론인들을 앞에 두고 이런 이야기를 꺼냈으니 일종의 압박성 발언을 한 셈입니다. 흠이 있더라도 덮어달라는 부탁은 말이 좋아 부탁이지 식사 자리에서 꺼낸 압박성 발언은 당장 투기 의혹 기사를 내리는 것은 물론, 앞으로도 관련 기사를 쓰지 말라는 소리나 다름없습니다. 

 



위 내용은 당시 식사 자리에 있던 《한국일보》 기자가 녹취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일보》 정치부 데스크는 이 녹취내용을 기사화하지 않습니다. 그냥 사장될 뻔한 녹취록은 새정치민주연합의 김경협 의원실로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6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완구 총리 후보의 발언이 공개되었습니다. 이때 이완구 후보는 자신이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며 녹취록이 존재하면 공개해보라고 으름장을 놓았으나 KBS 보도와 새정치민주연합을 통해 녹취록 내용이 공개되자 꼬리를 말고 기억에 없다며 발뺌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이후 녹취록 내용이 추가 공개되면서 부정부패를 막기 위한 목적의 김영란법을 이완구 총리 후보가 막고 있었다는 사실도 폭로됩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언론인들이 여태까지 받아먹던 콩고물을 못 받아먹게 될 거라면서 말이죠.


 





출처 - JTBC


KBS 뉴스9을 통해 공개된 녹취록과 추가 공개된 녹취록 때문에 큰 파문이 일었습니다. 당연합니다. 행정부의 제2인자가 되려는 사람이 언론을 직접적으로 통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기 때문이지요. 정상적인 나라라면 검찰이 바로 수사에 들어가야 할 만한 일대 사건입니다. 공개된 녹취록 내용을 의식해서인지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는 청문회가 시작되자 언론 통제 의혹에 대해 통렬하게 사과한다며 엎드렸습니다.


 

출처 - 한국일보


이런 과정에서 언론들의 대응도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우선 애초에 녹취록 내용을 기사화하지 않은 《한국일보》 데스크의 문제가 큽니다. 녹취한 기자는 편집국에 사실을 보고했으나 데스크는 이완구 총리 후보자의 언론관에 문제가 있으나 사적 자리였으니 보도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다른 매체의 기자와 데스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종편 등 수구언론은 기자의 녹취 사실과 이를 야당에 건넨 것 자체가 언론 윤리에 어긋난다며 물고 늘어졌습니다.

출처 - 미디어오늘


언론 윤리 운운하는 언론의 모습은 스스로 정권의 충견이라는 자기고백에 다름아닙니다. 비리 의혹이 불거진 국무총리 후보가 청문회를 앞두고 기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한 발언을 사적 발언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보셨겠지만 취재원은 절대 쓰지 말라면서 정보를 넘겨주기도 하고 혼잣말이라며 보도 자제 요청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적 자리에서 한 발언이 정국을 흔들고 보도된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가 남이가"로 지역 차별 논란을 불러온 초원 복집 사건만 해도 그렇습니다. 녹취 역시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이 하는 것은 불법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을 떠나 식사 자리에서 나온 발언이 공적인 영역에 영향을 끼치는 사안이라면 기사화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것이 기자의, 언론의 윤리가 아닐까요? 자주 출입하는 곳이니까 누이 좋고 매부 좋고 하는 식으로 슬쩍 넘어가려는 건 언론이 취할 태도가 아닙니다. 

출처 - 연합뉴스


지금까지 드러난 이완구 총리 후보자의 비리 의혹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우송대 석좌교수 재직 당시 1시간 짜리 특강을 6번 하고 5500만 원을 받은, 이른바 황제 특강만 해도 그냥 넘길 일이 아닌데, 병역 비리 의혹이나 부동산 투기도 어느새 기본 옵션이 된 것 같습니다. 이번 청문회를 통해 차남의 재산을 공개하지 않은 점이 추가로 지적되는 등 박근혜 정권만큼이나 총리 후보자 개인도 비리와 의혹의 백화점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행정부의 제2인자가 되려는 사람이 언론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려고 하고, 실제로 통제해왔다는 사실은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겠지요. 이명박 정권이 언론에 재갈을 물린 것도 모자라 실질적인 압력으로 언론을 통제하는 사람이 행정부에서 공개적으로 권력을 휘두른다면 대체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 지 누구도 모릅니다.

출처 - 미디어스


언론의 자성과는 별개로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는 치명적인 외압 의혹 앞에 자진 사퇴함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밝혀진 발언들을 토대로 그가 얼마나 어떻게 언론을 통제하고 있었는지 제대로 된 조사에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로 사퇴 의사를 밝혔던 정홍원 총리는 되돌이 인사로 놀랍게도 거의 1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안대희, 문창극에 이어 이번 이완구까지 하나같이 비리와 구설에 올라 교체할 총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홍원 총리의 사퇴를 유임으로 처리한 박근혜 대통령의 결정도 우습기 짝이 없지만, 이렇게나 인재가 없는 박근혜 정권의 무능함은 역사에 길이 남을 코미디가 아닌가 합니다. 이러다가 정홍원 총리의 임기가 박근혜 대통령보다 길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