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할 길은 멀지만 희망은 있어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몇 년간 내수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탓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이 많아졌습니다. 정부는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펴서 낙수효과를 기대했지만, 넘치는 물은 대기업이 자체적으로 거둬들이니 시민에게 돌아갈 '낙수'는 없었습니다. 높아지는 물가와 팍팍한 살림 때문에 많은 시민이 한숨짓고, 수익이 달리는 중소기업의 연초 시무식은 시무룩한 분위기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1퍼센트에 대한 99퍼센트의 불만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입니다. 뉴스에 등장하는 대기업 회장의 주가조작 및 횡령사건, 그들을 봐주는 검찰, 국민의 동의 없이 밀어붙이는 민영화 논란, 끝을 모르고 오르는 물가와 등록금으로 말미암아 99퍼센트에 해당하는 국민의 불만은 극에 다다랐습니다. 미국의 시민은 우리보다 먼저 불만을 표출했습니다. 99퍼센트의 돈을 투자라는 핑계로 갈취하며 호화롭게 살아왔던 미국 월가의 금융종사자들을 향해 가진 것 없는 시민이 칼을 뽑아들었습니다.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한 금융종사자들을 심판하기 위해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흐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드높습니다. 이러한 때에 99퍼센트 위에 군림하며 여전히 사리사욕을 채우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어려운 이웃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베푸는 사람들도 존재합니다. 이른바 '기부 천사'들입니다. 이름처럼 베풂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양심이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것이지요. 1990년대에 IMF 시기를 거치면서 한국 사회는 이 땅의 가진 자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세간에 오르내리는 것도 이러한 상황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오늘은 '기부'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오래된 기부문화를 간직한 해외의 사례를 먼저 살펴보고, 우리 사회의 현실을 돌아보면서 올바른 기부문화를 세우려면 과연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해외 기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해외에선 어떤 방식으로 기부가 이뤄지고 있을까요? 우선,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소비자의 권익을 향상하는 방향으로 다양한 환원 방식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넘어서 기업의 사회참여(CCI)로 이어저, 더욱 개개인의 삶에 밀착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미국에서는 굵직한 재벌들의 통 큰 기부가 하나의 문화를 이뤄왔습니다. 존 D. 록펠러는 스탠더드 오일이라는 독점기업을 만들어 석유 이권을 챙기면서 엄청난 부를 축적했습니다. 거대한 트러스트는 독립 석유업자, 정유사, 운송회사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회유, 공갈, 협박, 인수·합병 등의 술책으로 자신의 이권만을 강화하면서 경쟁사를 고사시켰습니다.

여성 저널리스트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은 악덕기업인 스탠더드 오일과 석유재벌 록펠러의 음흉한 뒷거래와 비열한 상거래 문제를 파헤쳐 《매클루어 매거진》에 19번에 걸쳐 탐사보도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로써 록펠러의 실체를 미국의 국민이 오롯이 이해하게 되었고, 독점기업이 자본주의적 질서를 얼마나 파괴하는지를 실감했습니다. 국민의 반감을 스탠더드 오일은 연방정부에 의해 해체되고 맙니다.

그런데 부당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던 록펠러는 '기부'를 통해 자신의 선한 이미지를 다시 세우려 했습니다. 그는 시카고 대학교를 설립했고, 록펠러재단을 세워 의학 연구에 크게 이바지하는 한편, 교회와 학교 등의 문화사업에도 힘을 기울였습니다. 미국 최초의 의학연구소인 록펠러의학연구소를 세운 사람도 록펠러였습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축적한 돈을 사회에 환원하여 록펠러만큼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이를 찾기는 어려울 정도입니다.

앤드류 카네기와 존 D. 록펠러(출처: 위키피디아)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 또한 노동자를 착취하며 축적한 자금을 이용하여 엄청난 기부활동을 벌였습니다. 그는 당시로써는 천문학적 액수인 2500만 달러를 기부하여 워싱턴 카네기협회를 설립했습니다. 워싱턴 카네기협회는 공공도서관 건립을 지원하는 단체입니다. 이 협회 덕분에 미국 전역에 2500개의 도서관이 생겼습니다. 이 외에도 카네기는 카네기회관, 카네기 공과대학, 카네기교육진흥재단 등을 설립하여 교육과 문화 분야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카네기홀은 지금도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공연장 가운데 하나로 유명 인사들이 오르는 무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기부'는 개인과 회사의 어두운 면모를 감추면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한 방편이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기업이 이런 의도로 기부합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리 돈을 버는 과정이 투명하고 정당하지 않으면 기부를 한들 예전만큼 직접적인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시민의식이 그만큼 성숙해졌기 때문이지요.

기부라는 방법은 세대를 거쳐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계 부자 순위에서 앞다투는 인물인,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과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 빌 게이츠입니다.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출처: 위키피디아)

2010년 《포브스》는 세계 셋째 부자로 워런 버핏을 선정했습니다. 2006년에 그는 자신의 재단의 85퍼센트에 해당하는 370억 달러를 '빌앤드멜린다게이츠재단'을 포함한 여러 자선재단에 기부하겠다고 약정서에 서명했습니다. 서구에서는 부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하는 게 일반적인 일이지만, 버핏은 잘 운영되고 있는 재단을 찾아서 조건없는 기부를 약속했습니다. 어떠한 이익을 바라지 않는 순수한 기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버핏은 실질적인 기부 외에도 상속세 폐지에 반대하면서 세금을 더 내겠다고 해서 많은 사람에게 찬사를 받았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운영체제(OS)인 '윈도'와 '엑스박스(XBOX)라는 게임기를 만든 마이크로소프트의 설립자인 빌 게이츠도 기부에 관한 한 빼놓을 수 없는 명사입니다. 빌 게이츠는 항상 세계 최고의 부자 순위에 이름을 올렸는데요,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부자로 1995~2007년까지 연속으로 1위, 그리고 2009년에 다시 1위 자리에 올랐습니다(2010~2011년에는 2위).

세계적인 갑부인 빌 게이츠가 부자 순위에서 떨어지게 된 이유는 2000년 빌앤드멜린다게이츠재단을 설립하여 기부 사업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이 재단은 공공도서관과 고속통신망 개선에 힘쓰는 한편 대학생 장학금 조성, 중국의 결핵 퇴치, 소아마비 퇴치, 빈곤층을 위한 모바일 금융서비스 사업, 결핵 백신 개발연구, 말라리아 백신 개발연구, 어린이 치료약품 연구비, 빈민 지역 교육환경 개선, 저소득층 장학사업에 이르는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국의 기부문화, 어디까지 왔나

우리 사회에서 기부에 대한 인식은 어떨까요? 최근 들어 기부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많이 나아진 편이지만,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이 공존합니다. 우선 대기업 총수의 기부활동에 대해서 죄를 지은 후 그것을 면피하려는 방편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음 창업자 이재웅 씨는 SNS를 통해 경제 5단체의 구명운동을 비판했다.

2011년 11월에 SK 총수 형제의 비리가 밝혀지면서 검찰이 수사에 나선 뒤 처벌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경제 5단체는 탄원서를 내고 SK 총수 형제의 선처를 요청했습니다. SK 최태원 회장이 비리를 저지르고 사면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난 범죄여서 세간의 비난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대기업 총수들이 처벌받을 때마다 경제단체의 탄원이 이어지는 것에 대해,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창업자 이재웅 씨는 "배임, 횡령, 비자금이 기업가정신과 무슨 상관"이냐며, 그들의 비리를 눈감아준 사외이사나 감사위원회에게도 일침을 날렸습니다.

대기업 총수들은 구속될 때마다 면피용으로 기부를 약속했다. 하지만 그 약속이 제대로 이행된 적은 없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의 총수들이 범법을 저지르다 사면될 때마다 하는 '의례적인 기부 약속'이 있습니다. 사회환원을 약속하거나 기부재단을 만들겠다는 공언입니다. 현대기아자동차의 정몽구 회장은 불법을 저지르고 사면되면서 5000억 사재를 출연해 기부재단을 만들었습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특별사면된 후 1조 원 규모의 사재를 출연해 재단을 만들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대기업 총수들이 잘못을 인정하면서 기부를 약속하고, 재단을 만드는 일이 무엇이 잘못된 것이냐 하는 반론도 있을 법하지만, 불법적인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사면을 받을 때마다 '기부'와 관련된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하는 것은 왠지 씁쓸하지 않습니까?

대기업 총수 외에도 우리 사회에서 기부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을 남긴 사건은 또 있습니다. 사람들이 십시일반 하여 모은 돈을 좋은 일에 써달라며 재단에 기부했는데, 이를 유용하고 착복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무한도전>은 여러 방법으로 성금을 조성해 기부해왔습니다. 해마다 그들의 활동 내용을 담은 달력을 만들어 판매한 기금을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사용해달라며 기부를 해왔죠. 그런데 <무한도전>의 기부금을 받은 '전국소년소녀가장돕기시민연합중앙회'는 학생들에게 돈을 되돌려받는 수법으로 8000여만 원이라는 거액을 챙겼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연말이면 여기저기서 보이는 '사랑의 열매', 다들 아실 겁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라는 단체는 연말연시가 되면 성금을 걷어서 이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해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2011년 3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예산을 부적절하게 사용한 직원 32명이 징계처분을 받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업무용 법인카드를 워크숍 경비, 부서회식비 등으로 부적절하게 사용했습니다. 많은 시민이 호주머니에서 꺼내어 십시일반으로 모은 귀중한 성금을 터무니없이 사용한 것이죠.

또 있습니다. 미소금융재단 사업이라고 들어보셨는지요? 시민단체가 자생적으로 운영하는 무담보 소액대출사업인데요, 저소득·저신용자들에게 무담보로 저금리의 창업운영자금을 빌려주어 자활을 돕는 사업입니다. 그런데 미소금융재단 사업의 사업자 선정 절차부터 잡음이 일기 시작하더니 결국 대표가 서민 대출용으로 지원받은 23억여 원을 빼돌리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서민을 위해 사용해야 할 대표가 소중한 자금을 자신의 주머니에 챙기는 인면수심의 일을 벌인 셈입니다.

그래도 이름 없는 기부는 이어진다

기부가 면피용으로 전락하고, 각종 기부단체가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지만, 따뜻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이름 없는 천사들의 기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부 방식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과거에 단체나 학교 위주의 기부가 성행했다면, 이제는 시민이 '작은 기부재단'을 만들어 돕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부모님께서 남기고 가신 유산으로 부모님 명의의 재단을 만들어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이 이런 일을 맡아서 운영하고 있는데요, 2002년 첫 사업을 시작한 이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랍니다. 또한 돈으로 기부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부하는 '재능기부' 같은 방식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작년에 삼성의 백혈병 환자에 대한 소식이 세간에 알려지자, 이들을 돕기 위해 '드라큘라'라는 모임이 생겼습니다. 이들은 수혈이 필수적인 악성 빈혈이나 림프종 환자들이 큰 비용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헌혈을 하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SNS를 통해 직접 투자를 받는 소셜펀딩

이 외에 소셜펀딩이라는 방식의 기부방식도 생겼습니다. 소셜펀딩은 웹사이트에 특정 프로젝트를 제안하면 방문자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입소문을 내주고, 프로젝트에 공감하는 불특정 다수가 소액을 기부 또는 투자함으로써 프로젝트를 실현하는 방식입니다. 이미 해외에선 이와 같은 방식으로 많은 엔젤 기부자를 모아 사업화한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내수시장이 어려워도, 가파르게 오르는 물가 때문에 살림살이를 걱정해도,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남모르게 어려운 이웃을 위해 선행을 베푸는 분들이 존재합니다. 연말연시가 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선행이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립니다. 아프리카 아동을 위해 1억 800만 원을 쾌척한 군밤할머니의 사례나, 12년째 전화로 기부금액이 있는 장소를 알려주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전주의 한 얼굴 없는 천사, 구세군에 2억을 기부한 90살 노부부의 선행 등을 보면 아직도 우리 사회에 희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실감합니다.

바람직한 기부문화의 정착을 위하여

지금까지 해외의 기부문화와 한국의 기부문화를 비교해보았습니다. 해외 사례와 비교할 때 우리 사회는 기부문화가 잘 정착되어 있다고 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았습니다. 대기업과 재벌은 여전히 면피용으로 기부를 벌이고 있고,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꼼수가 여전히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민의식을 성장과 더불어 개인 차원의 기부문화도 날로 성숙해지고 있습니다. 남모르게 베푸는 선행, 청년들의 봉사활동, SNS를 이용해 필요한 사람에게 투자금을 유치하는 소셜펀딩과 개인 재단에 이르기까지 그 방법은 날로 다양해지고 참여하는 이들의 수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여러분도 기부활동에 동참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어려운 학생이나 이웃을 직접 지원하는 방법부터 특정 기관을 정기후원하는 방법, 돈이 아닌 재능을 기부하는 방식 등, 찾으려 한다면 얼마든지 여러분에게 적합한 방법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바람직한 기부문화의 정착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참여로부터 시작됩니다. 추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이웃을 생각하는 따뜻한 기부에 동참해보시기 바랍니다.


리영희 선생(출처 : 위키피디아)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12월 5일, 어제는 리영희 선생이 돌아가신 지 1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7묘역에서 추모식이 열렸습니다.

대한민국의 진보적 언론인이자 사회 운동가이기도 했던 리영희 선생은 언론 자유를 신장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고양하는 일을 하면서 군사정권에 의해 많은 고초를 겪기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뜻은 아무도 꺾지 못했습니다.

생각비행은 리영희 선생 서거 1주기를 맞아 고인의 생애를 간략하게 돌아보면서 대한민국 언론의 현실과 문제점을 고민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리영희, 자유언론과 민주주의의 투사

리영희 선생은 평안도 출신으로 고등학교 시절 상경했습니다.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말미암아 숙식과 학비를 전액 지원해주는 한국해양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 당시 리영희는 여수·순천사건을 목격합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국군에 자원입대하여 통역장교로 근무하면서 국민방위군 사건을 접했습니다. 이때 리영희는 미군 고문단 장교와 함께 미군의 보급품을 빼서 국민방위군으로 징집된 이들을 도왔습니다. 이후 거창 양민학살사건도 겪었는데요, 자신이 속한 부대인 11사단 9연대가 그 사건을 자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전쟁에 대한 회의감과 국군 고위간부들의 부정부패에 분노를 느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결국 제1공화국 정부에 대해 강한 혐오감으로 드러납니다. 

한국전쟁 이후 리영희는 육군 소령으로 예편했습니다. 1957년 《합동통신》을 시작으로 외신부 기자생활을 시작해, 이승만 독재에 대한 소식을 《워싱턴 포스트》에 익명으로 기고했습니다. 이승만 정권 시절 지켜봤던 국민방위군사건, 거창양민학살사건을 보면서 느꼈던 제1공화국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 결과였습니다. 이후 이승만 정권이 4.19 혁명으로 무너진 후, 리영희는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미국 연수를 다녀와 《조선일보》에서 외신부장으로 일했습니다. 이때부터 고난의 삶이 시작되었는데요, 〈아시아아프리카 외상회의,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안 검토중〉이라는 기사가 반공법에 위반된다는 혐의로 구속된 일이 발단이었습니다. 이 기사가 반공법에 위반되었다는 근거는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추진'이라는 국제회의 제안이 국익에 반하는 정보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사건에 대해 사람들은 리영희가 5.16 군사쿠데타에 반대하는 글을 《뉴 리퍼블릭The New Republic》에 기고한 일에 대해 군사정부가 앙심을 품고 있다가 덜미를 잡은 것으로 풀이하기도 합니다.


베트남 전쟁의 실상(출처 : www.life.com)

이후 리영희는 베트남전쟁 취재를 거부하여 《조선일보》에서 퇴직을 강요받는 상황에 부닥칩니다. 당시 언론들은 국가에서 보내주던 베트남전 취재를 다녀와 미군과 한국군을 미화하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리영희는 "나는 저널리스트로서, 직업적 양심과 훈련된 격식에 따라, 본 대로 있는 대로 쓸 수밖에 없습니다. 거짓은 못 쓴다는 말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베트남전쟁 취재를 거부했습니다. 평소 소신 있는 발언을 하는 리영희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던 《조선일보》는 그를 여러 한직으로 좌천시켜 결국 스스로 퇴직하게 했습니다. 

퇴직 후 외판원으로 어렵게 생계를 꾸리다가 《합동통신》으로 다시 복직한 리영희는 언론인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보였습니다. 언론 관련 연구논문을 꾸준히 펴내는 와중에 박정희 대통령은 1969년에 정권 연장을 위해 3선개헌을 국회에서 변칙적으로 통과시키고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습니다. 3선개헌을 막지 못했다는 좌절감에 빠진 민주진영은 1971년을 '민주수호의 해'로 선언합니다. 이때부터 강연회와 좌담회, 성명서 발표, 인권탄압 사례조사, 공명선거를 위한 협의회 같은 각종 반독재 시민단체가 조직되었습니다. 

그해 10월, '64인 지식인 선언'이 발표됩니다. 선언문은 총통제 분쇄, 학원탄압 중지, 구속학생 석방, 대학생 강제 입영 중단, 대학 점령군인 철수 등을 촉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선언에 언론인으로서 참여한 리영희는 언론계에서 강제 추방되기에 이릅니다. 이후 학생을 가르치는 강단에 섰지만, 리영희는 언론인으로서 독재정권을 끊임없이 비판할 뿐 아니라 곡학아세하는 언론인들을 향한 경계도 늦추지 않았습니다. 박정희 정권과 이어지는 신군부 세력은 리영희에게 끊임없이 제동을 걸었고, 그의 고난의 시간은 6월 항쟁으로 민주화가 진척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강준만 교수는 《리영희 - 한국 현대사의 길잡이》라는 책 머리말에서 리영희 선생의 삶을 이렇게 압축적으로 설명합니다.

우리는 이 책에서 리영희라는 창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큰 줄거리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 창은 어떤 창인가? 투명한 창이다. 100% 투명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리영희만큼 투명한 '인간 창'은 없으리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리영희는 순수 그 자체다. 이게 찬양처럼 들리는가? 그렇다면 뒤집어 말해 보겠다. 그는 자신과 가족의 안전과 번영에 관한 한,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능하고 무책임한 인물이었다.
'아사리판'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선 같이 따라서 미치거나 타락해야만 자신과 가족의 안전과 번영을 기할 수 있다. 선량한 보통사람들도 방어적인 수준에서 어느 정도는 그런 판에 물이 들어야만 한다. 그러나 리영희는 한사코 그런 최소한의 '방어'마저 거부했다. 미욱할 정도로 스스로 고난을 자초했다.
리영희는 아홉 번이나 연행되어 다섯 번 구치소에 가고, 세 번이나 재판받고, 언론계에서 두 번 쫓겨나고, 교수 직위에서도 두 번 쫓겨났다. 감옥에서 보낸 시간이 1012일에 이른다. 오로지 진실을 추구했다는 죄 하나 때문에 말이다.  
 
그렇습니다. 엄혹한 시절에 《전환시대의 논리》《우상과 이성》《8억인과의 대화》 같은 책을 펴내고, 1988년 《한겨레》 신문 창건에 참여해 논설고문을 지냈고, 방북취재를 추진하다 옥고를 치른 리영희의 삶을 보면 '순수 그 자체'라는 강준만 교수의 지적이 참으로 적절하다고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리영희라는 투명한 '인간 창'을 통하지 않고서 어찌 우리가 한국 언론사를 논할 수 있겠습니까?

리영희 선생은 어떠한 고난이 있어도 무너지지 않고 소신을 지켰습니다. 박정희 정권과 신군부는 리영희를 회유하고 협박하고 구속했지만, 그는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개인적 신념을 지키며 끝까지 항거했습니다. 참 언론인의 삶을 살아낸 리영희 선생이 오늘날 언론의 현실을 보면 얼마나 분개하실까요?

부끄러운 한국 언론의 현재

2011년 12월 1일 4개의 종합편성채널이 개국했습니다. 언론시장의 황폐화가 이미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명박 정권하에서 날치기 통과된 미디어법에 대해 살아생전 리영희 선생은 '파시즘의 전조'라고 질타한 바 있습니다. 

종편 채널은 시작부터 논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강호동 야쿠자 연루" "김연아 앵커" 보도에서 이미 드러났듯이, 4개 종편은 황색 저널리즘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족벌 보수신문과 방송이 보이는 어이없는 행태는 더욱 가관입니다. 한미FTA 비준동의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킨 한나라당의 행태를 비판하기는커녕 KBS 뉴스는 '해외 농산물 가격이 내려가 값싼 농산물을 먹게 되었다'는 기사를 내보내면서 한미FTA가 가져올 위험성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 등, 정부의 입장을 옹호하는 내용으로 뉴스를 채워 문제가 되었죠. 

한편 MBC는 낙하산으로 부임한 김재철 사장이 〈W〉와〈후플러스〉 같은 간판 시사 프로그램을 폐지하고,〈PD수첩〉을 비롯한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축소하는 어이없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편향적인 뉴스를 내보낸 결과, MBC 로고를 보면 환영하던 시민이 이제는 MBC 기자의 취재를 거부하고 내쫓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꼼수다 오프라인 공연 포스터

기존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는 늘 새로운 대안언론이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그중에서도 2011년 4월 28일 팟캐스트를 통해 첫 방송이 공개된〈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나꼼수>는 자신들을 그저 잡담하는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들의 잡담은 대중적 공감을 넘어 많은 시민을 거리로 나오게 하는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나꼼수>는 기존 언론이 제대로 다루지 않은 사회 이슈를 재미있으면서도 알기 쉽게 정리해주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대중적 전파력이 탁월한 새로운 비판적 여론형성 기제를 이명박 정부와 여권은 '괴담 유포자'로 지목하고 옥죄고 있습니다만, 전국언론노동조합은 <나꼼수>에 민주언론상을 수여했습니다. 대통령과 정부·여당, 거대 수구언론, 민심을 읽지 못하는 제도권 야당을 비롯한 기존의 권력집단을 향한 비판과 풍자로 국민의 눈과 귀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점을 인정한 결과입니다. 

기성언론과 수구언론은 <나꼼수>라는 대안언론의 출현을 보면서 자신들의 보도관행을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또한 비언론인 출신 진행자가 만드는 <나꼼수>가 기성 언론기관 종사자들의 보도보다 국민적인 공감대를 얻는 원인이 무엇인지 통렬한 자기반성도 해야 할 때입니다.

99대 1의 모순을 타파하는 정론을 바라며

최근 온 세계가 시끄럽습니다. 미국에서는 수많은 시민이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 아래 금융권을 비롯한 사회의 부정부패 문제를 비판하고 대안을 마련하라는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유럽 각국에서도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로 말미암은 경제 파탄을 해결하라고 성난 시민이 나선 상태입니다. 우리나라도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고 한미FTA 비준 날치기 통과를 비판하면서 정부의 정책에 반기를 들고 사람들이 거리로 나서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과연 언론은 이를 제대로 다루고 있습니까? 일부 족벌신문은 1퍼센트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 거짓으로 도배된 뉴스를 내보내고 있으며, 종편까지 손에 넣은 이들이 방송까지 활용하면서 자신들의 이해를 확장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애플리케이션을 심의하는 전담팀을 신설하여 심의를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정부와 여당에 비판적인 젊은층의 SNS 접촉을 제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움직임입니다.

리영희 선생은 여러 글에서 지식인, 특히 언론인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고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회문화리뷰》에 실린 강연록 〈전환기 시대 민족 지성과 동북아 평화〉에서 일부 내용을 인용합니다.

"사상의 자유가 없는 사회에는 문화·예술이 꽃필 수 없으며, 심지어 가치중립적이라고 하는 과학·기술도 발전하지 못합니다. 한 예로 문학을 들어봅시다. 노벨문학상이 한국(남한)에서 안 나온다고 한탄하는 소리가 높습니다. 인간의 자유로운 창조활동이란 진정으로 자유로운 생각(사유·사상)이 보장되는 가운데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일본 정도의 사상적 자유의 분위기는 보장되어야만 인간 활동의 새로운 산물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반공이라는 동앗줄로 꽁꽁 묶인 사회에서 노벨문학상이 어떻게 나올 것이며 자유로운 창작물이 어떻게 나오겠습니까. 광적인 반공사상은 냉전주의와 하나가 되어서 휴머니즘을 왜곡하는 법입니다. 그것들은 다양한 인간 사상을 짓밟으면서 유일한 가치를 강요합니다."

리영희 선생은 시대의 우상을 타파하는 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우상의 정체를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철저한 리얼리스트로 살았습니다. 저항과 투쟁으로 점철된 그의 인생은 곧 한국 현대사를 이해하는 지름길이었습니다. 가려진 진실을 밝히는 일은 기자의 본분이요, 언론의 사명입니다.

수많은 언론인이 투쟁하여 이뤄낸 언론 민주화를 무효로 만들고 역행하는 이명박 정부의 독선과 아집을 비판할 대안언론이 앞으로 많이 생겨나야 합니다. 국민을 위하는 언론이라면 여당의 날치기에 침묵하고 영하의 날씨에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쏘는 행태에 침묵해서야 되겠습니까? 1퍼센트의, 1퍼센트에 의한, 1퍼센트를 위한 언론이 대한민국을 좀먹고 있는 이 시대에 고 리영희 선생의 삶을 돌아봅니다. 언론을 향한 시민의 감시가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한 시기입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지루한 장맛비가 그치고 폭염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야 여름 날씨를 느낄 수 있나 싶지만 수해 복구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계실 분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합니다. 아침에 사무실로 나와 저희는 제일 먼저 냉커피를 타는 일로 일과를 시작합니다.

시원하게 목을 축이면서 지난밤에 있었던 이야기도 나누고 신문을 돌려 읽습니다. 그런데 다들 알고 계시죠? 매일유업과 남양유업이 컵커피의 가격을 담합했다가 적발된 소식 말입니다. 양사에 과징금 128억 원이 부과되고, 임원들이 검찰에 고발되었죠. 두 회사는 컵커피 시장의 75.5퍼센트를 점유하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앞으로 서민생활 밀접품목의 담합 등 불공정 행위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위법행위를 적발하면 엄중히 제재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지만 독과점 시장에서 담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승자 독식의 사회, 과연 정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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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저희는 <재벌 3세와 경제단체 관계자의 주가조작,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실>이라는 기사에서 주가조작, 불법양도, 맷값 폭행 등의 잘못을 저지르고도 재벌이 솜방망이 처벌만을 받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지만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실은 잘못된 문제인 만큼 타개해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돈, 돈, 돈. 과연 돈이 무엇이기에 다른 사람의 자유와 일상을 짓밟고, 가정을 파탄나게 하며, 인권을 유린하면서까지 추구하는 걸까요? 오늘 《한겨레》 신문에서 경제평론가 윤석천 씨의 세상읽기 칼럼을 들여다봤습니다. <그들 몫은 당연한가>라는 제목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라지만 승자에 대한 존경과 보상이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던 저희로서는 너무나도 심한 불평등의 문제를 지적한 이 글의 내용에 깊이 공감합니다. 윤석천 씨는 칼럼을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부가 균형을 이뤄야 건강한 세상이다. 이제 그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공평을 기하는 최선의 방법은 뭘까. 불균형을 원천봉쇄할 수는 없다. 방법은 세금혁명뿐이다. 많이 벌면 많이 내도록 해야 한다. 침을 흘리며 마냥 승자를 부러워할 일이 아니다. 경제의 잔을 올릴 때가 아니다.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세상을 '조금 더 가진 자'와 '조금 덜 가진 자'의 세상으로 바꿔야 한다. 이제 그 꿈을 꿔야 한다.

사실 다 아는 이야깁니다.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걸 누가 모릅니까? 언제나 문제는 '어떻게'라는 질문에 답하는 방법에 있습니다. 과거 역사를 돌아보면 혁명으로 세상을 바꿔보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세상의 변화는 폭력과 강권으로 이룰 수 없는 까닭이지요. 결국 한 사회의 문제는 구성원의 자각과 더불어 법과 사회제도의 변혁이 병행될 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지에 관한 한 선진 국가라고 인정하는 북유럽 나라들은 앞서 이런 변화를 이뤄낸 곳입니다.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세상에서 '조금 더 가진 자'와 '조금 덜 가진 자'의 세상으로 한발 더 나아간 곳입니다.


일간지로 들여다본 우리 사회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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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우리는 현재 어디쯤 있을까요? 이런 문제의식으로 《한겨레》 신문을 찬찬히 들여다봤습니다. 머리기사가 <경찰, 집회사진 채증해 수만명 'DB 관리'>입니다. 2001년부터 경찰이 각종 시위 현장 참가자들을 채증한 사진을 영상판독 시스템에 입력해 관리해왔으며, 적어도 2만 3000여 명의 정보를 관리해왔다는 내용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1항에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음에도 대한민국 경찰은 시위 참가자를 범죄자로 취급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바로 밑 기사를 보니 "서울시가 강남구 압구정동·청담동 일대에 최고 50층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허용하는 재건축 계획을 내놓은 데 이어 1000억 원을 들여 압구정동에서 한강을 가로지르는 보행교를 짓겠다는" 구상을 밝힌 소식을 전하고 있군요.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부유층이 사는 강남권에 특혜를 주는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4대강으로 시작된 '삽질정신'을 세빛둥둥섬으로 착실히 이어가던 서울시가 이젠 대놓고 부유층을 위한 일을 시작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 많은 돈이 어디서 나올까요? 결국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낸 혈세 아닙니까?

2면을 보니 <'김여진 출연금지 규정' 각계 "MBC 출연 거부"> 소식이 있습니다. 요즘 MB로 변모 중인 문화방송이 무리수를 두고 있습니다. 시청자를 위한 변화가 아닌 정부와 권력자의 눈치나 살피고 있으니까요. 지난 토요일자 《경향신문》에서 <PD수첩> 이우환·한학수 PD에 대한 MBC의 인사발령이 부당하다는 판결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동안 MBC PD협회와 노조는 회사의 발령이 <PD수첩>에서 제작하던 '남북 경협 중단, 그후 1년'이라는 주제의 취재를 중단하라는 국장 지시를 거부한 데 따른 보복성 인사라고 반발하며 회사와 갈등을 빚어왔었죠. 결국 법원은 사측의 권리남용이라며 전보발령의 효력을 정지해달라고 제기한 이우환·한학수 PD의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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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진 씨의 출연을 막으려고 문화방송은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에 대햐여 특정인이나 특정단체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지지 또는 반대하거나 유리 또는 불리하게 하는 발언이나 행위"를 한 경우 고정출연을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지요.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논리입니까? 조국 교수는 이에 대해 "지금까지 몇몇 소셜테이너 등에 대한 각 방송사의 출연금지 제한이 개별적 차원에서 진행됐다면, 문화방송의 신설 규정은 이를 제도화한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젠 MBC 시청 거부 운동이라도 벌여야 하지 않을까 싶군요.

무더운 날씨로 안 그래도 불쾌지수가 높은데 이어지는 않 좋은 소식으로 머리가 아플 지경입니다. 4면에 이르러 겨우 반가운 내용이 보입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으로… 또하나의 '희망버스' 달린다>는 기사를 보니 금속노조가 '비정규직 없는 공장 만들기 희망버스' 발대식을 열고 23일까지 5박 6일 동안 전국 순회에 나선다고 합니다. 한진중공업 사태해결을 촉구하며 진보 성향의 학계 인사들이 릴레이 단식에 들어갔다는 내용도 보입니다.

14면을 보니 희망적인 소식이 또 하나 있습니다. "경남 거제 주민들이 국내 민자도로 가운데 가장 비싼 통행료를 가장 오래도록 징수하는 거가대교의 통행료를 내리라는 감사원 권고를 이끌어냈다"고 합니다. '거가대교 범시민대책위원회'는 2010년 12월 12일 거제 시민 2174명의 서명을 받아 감사원에 국민감사를 청구한 바 있는데요, 결국 풀뿌리 힘이 모여 부풀린 공사비 차익을 환수하거나 통행료 인하에 반영하라는 권고를 이끌어냈습니다.

각종 사회 문제의 이면에 자리 잡은 '자본'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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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치 신문을 살펴보면서 역시 각종 사회 문제의 이면에 '자본'의 논리가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가진 자는 자신의 부를 늘리려고 온갖 무리수를 동원하기 마련입니다. 여기서 저희가 처음 제기한 문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왜 우리는 자본의 벽을 넘어야 할까요? 자본은 필연적으로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익 앞에서는 자유나 평등, 인권과 같은 중요한 문제가 짓밟히고 맙니다. 2011년 한국 사회를 강타한 한진중공업 사태에서 이미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국내 한진중공업 문제는 언론 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졌으니 오늘은 좀 다른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한진중공업은 필리핀에도 조선소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그곳 수빅조선소 노동자들의 노동 처우 개선과 산재 방지를 요구하며 '희망버스'가 달린 이유는 우리의 현실과 똑같습니다. 《시사IN》 200호 <'소금꽃의 분노' 필리핀 울리다>라는 커버스토리를 보면 그 이유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필리핀 수빅만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해군기지로 사용된 곳입니다. 이곳에 한진 중공업은 2006년에 조선소를 세웠습니다. 수빅조선소에 2만 1000명의 노동자가 근무하지만 한진중공업과 직접적인 고용관계를 맺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래야 싸게 먹히니까요. 한진 수빅조선소에서 산재 사고가 잇따르자 2009년에는 필리핀 국회 청문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필리핀 현지에서 한진 수빅조선소의 별명이 'Graveyard(묘지)'였다는 사실은 그 모든 정황을 잘 대변해줍니다. 이런 나라 망신이 또 있을까요? 

기업의 본령은 과연 무엇인가

기업의 본령이 이윤을 남기는 것이라고들 합니다. 정당한 방법으로 기업이 이윤을 창출한다면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문제는 서두에 밝힌 두 업체의 담합에서 드러났듯이 자본주의적 질서를 위협하면서까지 부당한 방법으로 이익을 올리려는 재벌의 행태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등장한 거대 기업은 엄청난 탐욕으로 노동자를 착취해왔습니다. 거대 재벌의 존재는 민주주의를 위협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상업 제도는 공공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소수의 거물과 경영자를 배불리는 일에 부당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1900년대 초반 미국에서 '트러스트'는 자본주의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였습니다. 그 때문에 훗날 미국 최대의 독점 재벌이었던 스탠더드 오일을 무너뜨리는 데 공헌한 루스벨트는 연설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자선사업을 많이 했다고 해도 그 재산을 얻기까지 저지른 불법 행위를 속죄할 수는 없다."

존 D. 록펠러는 중소기업들을 '트러스트'라는 방법으로 인수, 합병하여 스탠더드오일을 거대 기업으로 키워 독점 재벌이 되었다.(왼쪽 : 독점 기업가들과 싸우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오른쪽 : 트러스트로 많은 기업을 손에 넣은 록펠러- 출처 : 위키피디아)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데 돈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돈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지는 못합니다. 기독교인 대부분에게 십일조를 열심히 하고 사회적 자선에 열심인 성공적인 재력가로 알려졌던 록펠러의 어두운 실체를 파헤친 여성 저널리스트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은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상업적 인간이다. 우리는 예술품을 자랑하지 못한다. 숙련된 기술이나 재배한 작물을 뽐낼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만들어낸 부는 자랑한다. 이 때문에 사업의 성공을 신성하게 생각한다. 사실 성공을 위해서 사용한 방법이라면 무엇이든 점점 더 폭넓은 계층에서 정당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스탠더드 오일이 지금처럼 자본을 축적하기까지 필요했던 결정적인 요인이 있다. 사실을 감추려고 속임수를 쓰고, 궤변을 늘어놓고, 중상 모략하는 온갖 방법이었다. 특히 법의 정신에 위배되는 비밀스러운 노력을 계속해서 얻은 특혜가 주효했다.
… 록펠러가 폭력과 속임수를 사용해서 목적을 달성하나는 사실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사람들은 '그건 사입일뿐이잖아.' 하고 말하면서 록펠러를 옹호한다. 즉 그 말은 학대와 속임수, 특혜에 대한 적법한 변명이 되는 셈이다.
… 그런 사업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기독교의 자선 교리에 의지한다. 우리는 실수를 범하는 유한한 인간이므로 서로 다른 사람의 약점을 용납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인간의 약점 때문에 다른 사람의 어깨에 기대어 눈물을 흘리면서 주머니를 터는 기업가의 모습으로 귀결되고 만다.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 본문 중에서


지역과 상생하는 기업 문화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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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기업에 문제가 많다고 기업에 대한 규제를 무조건 높여야 할까요? 그건 아닙니다. 교각살우(矯角殺牛 - 결점이나 흠을 고치려다 수단이 지나쳐 도리어 일을 그르침)의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기업을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오랜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업 문화는 사회의 성숙도와 궤를 같이합니다.

이제 대중의 인식과 브랜드 이미지는 기업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커뮤니케이션 부서와 마케팅 부서가 좋은 기업 이미지를 만드는 데 열심인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기업과 브랜드의 도덕성을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스포츠 이벤트나 대형 공연에 기업 로고를 노출하던 기업이 사회적 대의명분을 후원함으로써 도덕적으로 선한 이미지를 쌓으려고 합니다.

생각비행은 기업의 변화를 꾀하고자 최근 《지역과 상생하는 기업 핵심전략》이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기업사회참여 실천 매뉴얼'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단순히 어떤 절차를 따르면 기업의 인지도와 평판이 나아진다는 얘기를 하는 책이 아닙니다. 이 책의 저자인 닉 라킨과 베르니카 슈벨은 B2C(Business to Consumer, 기업과 소비자 사이 거래) 분야에서 대표 기업인 노키아와, B2B(Business to Business, 기업간 거래) 분야에서 유명 기업인 E.ON의 CSR 책임자였습니다. 그들은 기업이 사회 바깥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권리가 있고 의무를 가진 완벽한 사회의 구성원, 즉 기업시민(corporate citizen)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기업은 상업적 활동으로 이윤만 챙기는 존재가 아니라, 보유한 핵심 역량을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의미 있게 기여함으로써 지역사회와 상생을 추구해야 하는 동반자적 존재라고 주장합니다.

사회가 건강해야 기업이 건실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역으로 건강한 기업이 없다면 지속가능한 사회발전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기업은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야 하고, 그런 노력은 기업의 핵심전략으로 표출되어야 합니다. 그 핵심이 곧 '기업사회참여(Corporate Community Involvement)'입니다. 기업사회참여는 회사가 영업하고 있는 국가/지역/지역사회에 본국의 정부/회사/NGO가 적극적으로 사회참여를 위해 파트너십 프로젝트를 펼치는 활동을 말합니다.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TNT는 네덜란드의 세계적인 물류회사입니다. CEO인 피터 베커는 TNT가 전 세계에서 진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에 참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고민했습니다. TNT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은 간단했습니다. 운송이었죠. TNT는 항공과 선박을 보유하고 있으니 자연재해나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물품을 공급하는 기관들이 자사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유엔 세계신량계획(WFP)이라는 파트너와 함께 긴급 구호 식량을 신속하게 전달하는 프로그램인 '무딩 더 월드(Moving the World)'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베타팜(Betapharm)은 350명의 직원을 둔 독일의 일반 의약품 회사로 국내 시장에서만 60여 개의 경쟁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치열한 가격경쟁 끝에 더는 가격을 내릴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베타팜은 핵심 이해관계자인 의사와 약사의 눈에 띌 다른 기회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베타팜은 만성질환을 앓는 아이들에게 장기재가요양을 해준다는 대의명분을 채택하고 '번터 크리스(Bunter Krieis)'라는 NGO와 파트너십을 맺어 지원하고 요양보호사들을 훈련했습니다. 더 나아가 베타팜은 독일의회에 로비활동을 벌인 결과 만성질환 아동을 위한 장기재가요양이 건강보험제도의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입법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러한 활동으로 베타팜은 기업사회참여에 전략적 접근방식을 창조해냈고, 이로써 경쟁사 사이에서 차별되는 회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자, 마지막으로 다시 묻습니다. 왜 우리는 자본의 벽을 넘어야 할까요? 자본은 목적이 아닌 수단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칸트의 심오한 철학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해야 합니다. 기업은 단순히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위 두 사례에서 잘 드러났듯이 올바른 일에 돈을 쓰는 기업은 사회에서 인정을 받습니다. 역으로 지역사회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기업이 세계 유수의 기업으로 성장하지는 못합니다.

기업기부와 전략적 자선이 어느 정도 기업의 평판을 높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제는 기업이 돈으로 공헌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말로만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시대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지역사회에 참여하고 임직원들이 팔을 걷고 나서서 봉사하며 지역과 상생하는 기업만이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기업이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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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생각비행은 서울디지털포럼에서 재미있는 내용의 발표를 들었습니다. 최근 서구권을 비롯해 한국에서도 유명해진 위키리크스에 관련된 주제 발표였는데요, <위키리크스 대 저널리즘〉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발표였습니다. 강연자는 《위키리크스: 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의 저자 중 한 사람인 마르셀 로젠바흐가 맡습니다. 그는 독일을 대표하는 시사주간지 《슈피겔》 기자로, 줄리언 어산지를 직접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출간했지요. 로젠바흐의 주제 발표는 위키리크스에 대한 느낌과 함께 위키리크스와 같은 폭로 저널리즘이 기존 언론과 어떻게 협력해야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지 그 방향을 제시해주었습니다. 간단한 발표지만 건질 내용이 많습니다.

위키리크스 대 저널리즘
- 마르셀 로젠바흐(《슈피겔》 기자, 《위키리크스: 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 공동저자)
 
위키리크스가 한국에서 관심을 받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간 위키리크스가 여러 가지 비밀 문건을 발표했음에도 한국은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국무부 비밀문건 중 역대 한국의 대통령을 평가하는 내용의 문건을 발표하자 한국도 위키리크스에 관심을 보였다.

위키리크스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크게 환영하기도 하는 반면 혹평도 받고 있다. 평가가 어떠하든 위키리크스가 나온 뒤 그 영향은 무척 크다. 위키리크스 이후 미국에선 오픈리크스가 생겼고, 《월스트리트 저널》에서도 위키리크스와 비슷한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한국의 어느 언론에서도 위키리크스와 같은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 나는 줄리언 어산지와 만나 이야기하고 경험했던 위키리크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내가 위키리크스라는 존재를 알게 된 계기는 2008년 독일 해외정보국에서 조사한 내용이 위키리크스를 통해 유출된 사건에서 비롯했다. 그 존재를 좀 더 알아보기 위해 조사했지만, 간단한 인터넷 사이트와 발신자 불명의 메일 외에 단서가 없었다. 이후 집요한 조사 끝에 나는 런던에서 어산지를 만날 수 있었고 그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위키리크스는 반(反)미디어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전통적인 미디어에 반대하고, 그것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가 특히 싫어했던 내용은 전쟁보도였다. 어산지는 어떠한 정보를 유통하는 데 있어서 주관적 견해를 넣어선 안 된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처음 공개된 정보는 다듬어지고 각색되어 원래 모습을 잃고 만다. 어산지는 주관적 개입을 철저히 배제하고 원본을 공개함으로써 사람들 스스로 사건을 이해하도록 접근하는 편이 옳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줄리언 어산지가 이야기하는 〈과학적 접근방식〉이었다.

사실 위키리크스가 최초의 폭로 플랫폼은 아니다. 위키리크스 이전에도 그러한 플랫폼을 만든 사람들은 존재했으며, 익명으로 문서를 공개해왔다. 줄리언 어산지는 그런 사람들과 폭넓게 교류했으며 그들로부터 플랫폼을 배웠다. 어산지의 위키리크스가 담당한 큰 역할은 이러한 폭로 플랫폼을 세계화했다는 데 있다.

줄리언 어산지가 이야기한 과학적 접근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첫째로 아무리 중요한 문건을 공개하더라도 사람들이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센지는 유명한 저널리스트가 아니었다.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지 그가 신발을 신지 않고 양말만 신고 다녔기 때문에 알아보는 사람은 몇몇 있었다. 하지만 저널리스트로서 그의 존재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 때문에 어산지는 미디어와 손을 잡았다. 미디어에 기밀정보를 제공한 순간, 줄리언 어산지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

둘째로 정보를 줘도 그것을 이용해 재해석할 사람들이 부족했다. 어산지가 이야기한 과학적 접근을 다시 이야기해보자. 그는 제대로 된 기밀정보를 사람들에게 알리면 각자 그것을 해석하고 판단하리라고 생각했다. 어산지는 그러한 역할을 할 사람을 네티즌과 블로거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하나의 외교 문건이 공개되었다고 해보자. 내가 몸담은 《슈피겔》만 해더라도 그 자료를 해석하고 기사화하기 위해 50여 명의 전문 기자가 협업한다. 외교 문건만이 아니다. 그 밖의 여러 문건도 마찬가지다. 문건이 공개되어도, 거기에 쓰인 언어는 전문용어이고, 자신들만 아는 약자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정확한 지식이 있어야 해석 가능한 내용이 많다. 이러한 문건을 한 명의 블로거가 해석하기란 쉽지 않다.

이에 줄리언 어산지는 자신이 비판했던 미디어에 협력하게 되었다. 그는 블로거들이 유일한 원래 정보를 활용해 새로운 해석을 내놓고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키리크스가 미디어와 손을 잡긴 했지만, 아직은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선 편집의 문제다. 어산지는 문서 원본을 공개하는 방식을 원칙으로 삼았으나 내가 속한 《슈피겔》만 하더라도 공익에 맞는 자료만을 공개한다.

다음으로 정보를 제공한 사람의 성격도 다르다. 기존 언론에 정보를 공개한 사람들은 자신이 공개한 정보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를 확인한다. 즉 공개한 정보로 무언가 바뀌길 기대하는 바람이 있다. 하지만 위키리크스에서 제공한 정보와 정보제공자는 그 다음 과정에 대해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저 정보를 제공한 데서 끝난다.

이러한 불편한 관계는 결국 위키리크스의 변화를 가져왔다. 위키리크스와 같은 형태의 플랫폼이 기존 미디어에 생겼으며, 이는 위키리크스와 미디어의 윈-윈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미디어가 하지 못했던 점을 보완하는 새로운 모델로 제시된 것이다. 물론 위키리크스 자체는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결론은 위키리크스 그 자체로 성공할 수 있는 모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기존의 미디어와 협력해 성공을 거둘 수밖에 없는 모델이었다. 하지만 위키리크스는 기존 미디어에 분명히 큰 도움을 주었다. 위키리크스는 기존 언론이 알아내지 못한 정보들을 공개했다. 기존 언론이 하지 못한 일은 해낸 셈이다. 이러한 모습은 〈탐사 저널리즘〉의 필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 위키리크스는 전통적인 미디어와 협력하여 성공했다.
- 문서에 대한 관심이 적극적으로 증가
- 위키리크스 자체에 대한 관심도 증가
- 2010년 기부금은 기록적인 수치를 기록
- 여러 논란에도 아무런 피해가 없었음
- 오히려 외교 전문들이 튀니지의 민주화 운동에 힘을 실어주었을 가능성이 있다.

※ 우리의 경험은 이와 같다.
- 폭로 플랫폼과 미디어의 관계는 윈-윈 모델이 될 수 있다.
- 기존의 저널리즘을 대체할 도구는 없다.
- 폭로 사이트들이 기존의 미디어를 보완하거나 향상할 수 있다.
- 플랫폼 운영자들은 책임감 있게 운영해야 한다.

폭로적 사고방식의 기원을 찾아서


어떻습니까? 로젠바흐의 주제 발표 내용에서 도움을 좀 받으셨는지요? 생각비행은 '탐사보도'라는 화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블로그에서 탐사보도의 의미와 역사, 한국의 대표적인 탐사보도 프로그램 등을 소개해왔습니다.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탐사보도의 간략한 역사와 대표적인 언론인을 한 명 소개하려 합니다.

20세기 초에 언론 발행인들이 탐사보도를 시도한 일은 자연스럽게 얻은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는 이런 보도 방식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용어조차 정립하지 못한 시기였으니까요. 신문, 잡지 발행인들은 "편안한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고, 고통 받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려고 남용과 사기, 악용의 현장을 캐고 다닌다는 개념을 어떤 말로 부르든 간에 이로 말미암아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리라는 점"을 직감했습니다. 이런 언론 보도를 시행하려면 엄청난 취재비를 들여야 했습니다. 또한 비용이 많이 드는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도 컸습니다. 무엇보다 원고를 완성하려면 숙련된 기술로 광범위한 편집 작업을 거쳐야 했습니다.

하지만 잡지와 신문사 발행인들은 곧 자신이 가진 권력과 책임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심층적인 언론 보도는 점점 더 복잡해지는 사회, 불공정한 사회, 부패한 사회를 대중에게 설명하는 수단이 되어 다양한 위험을 무릅쓰고 활짝 꽃 피우게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저널리스트 겸 철학자인 월터 리프먼(Walter Lippmann)은 새로운 종류의 저널리즘이 등장했다고 말했습니다.

“새로운 저널리즘은 공직 활동의 기준을 재계의 특정 영역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추문을 들춰내고, 누구나 사업에 참견할 수 있다고 여기는 탓에 사업가들은 할 말을 잃을 정도로 놀랐다.” _《아이다 미네르바 타벨》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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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 미네르바 타벨

수많은 기업이 명멸한 극심한 격변기였던 1900년대에 여성 저널리스트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Ida Minerva Tarbell, 1857. 11. 5~1944. 1. 6)은 한 기업의 이면을 파헤치는 탐사보도를 시작했습니다. 여성에게 투표권조차 없던 시대에 여성 저널리스트 타벨과 존 데이비슨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 1839. 7. 8~1937. 5. 23)의 대결은 현대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습니다. 록펠러는 독점기업 스탠더드 오일을 이끈 재계의 거물로 미국의 석유산업을 대표하는 어마어마한 인물이었으니까요.

20세기 초에 미국에서 많은 트러스트가 산업화 이후의 산업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좀 더 명확히 말하자면, 트러스트는 산업 너머의 산업이었으며 법 테두리 바깥에서 산업을 독식하는 괴물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타벨은 세계를 지배하는 최고의 경제 집단을 파헤치겠다는,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기획에 착수합니다. 이 기획특집은 20세기를 규정하는 중요한 투쟁 가운데 하나였고, 실제로 미국적 대서사시가 되었습니다.

독점 재벌을 무너뜨여성 저널리스트,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

여기서 잠깐 아이다 타벨을 모르시는 분을 위해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타벨은 펜실베이니아에서 석유 저장 용기 제조업을 시작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석유산업의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겪은 인물입니다. 석유업계에 종사하는 아버지와 남동생의 영향으로 소규모 석유 생산업자들과 스탠더드 오일의 부당한 경쟁을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석유 개척기 시대에 새로운 희망을 품고 사업을 시작한 수많은 석유 생산업자, 정유업자, 운반업자는 모두 록펠러의 희생양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생산하는 석유의 95퍼센트를 독점한 스탠더드 오일은 타 기업을 흡수·통합하고 사세를 확장해 거대한 트러스트를 만든 재벌기업의 전형이었습니다. 록펠러가 세운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의 화려한 성장 이면에는 뇌물 수수와 협박, 담합, 위법 행위, 폭력적 행동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타벨은 펜실베이니아 주 미드빌에 있는 앨러게니 대학에서 공부한 재원이기도 합니다. 그 당시 여성이 대학 교육을 받는 일은 드물었으나, 교육의 중요성에 일찍 눈뜬 부모의 영향으로 타벨은 폭넓은 세계를 경험합니다. 파리로 유학을 떠난 타벨은 생계를 유지하려는 목적과 사실을 보도하는 언론의 역할에 대한 관심으로 본국(미국)에 있는 여러 언론 매체에 글을 기고합니다. 이때 《매클루어 매거진》이라는 잡지의 발행인이었던 새뮤얼 시드니 매클루어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인 아이다 타벨을 기자로 발탁해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에이브러햄 링컨을 심층적으로 파헤치는 연재기사로 엄청난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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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클루어 매거진

정치권의 부패와 각종 사회 문제에 대한 심층적인 시사가 쏟아지는 시기에 매클루어와 타벨은 역사 이래 최고의 갑부인 록펠러와 스탠더드 오일의 추문을 파헤치는 연재기사를 기획했습니다. 그 내용을 들은 타벨의 친척과 친구, 동료는 록펠러의 엄청난 재산과 그의 무자비한 성향을 염두에 두고 타벨의 안전을 걱정했습니다. 록펠러의 응징을 경험한 바 있는 노쇠한 아버지도 그녀를 설득했습니다. 하지만 타벨은 그런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용기 있는 행동을 한다며 칭찬하는 말을 듣고 당황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정당한 역사적 작업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 일을 시작했다. 우리는 옹호자가 아닐뿐더러 비판자도 아니었다. 우리는 모든 독점기업 중에서 가장 완벽한 기업이 과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탐구하려는 저널리스트였을 뿐이었다.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인가?” 

타벨이 조사를 시작할 무렵,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해 반트러스트 운동이 상승세를 탑니다. 1901년 9월 6일에 무정부주의자로 자처하는 암살자가 매킨리 대통령을 총으로 저격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일로 시어도어 루스벨트 부통령이 대통령 직무를 이어받았습니다. 루스벨트는 저널리스트들과 개혁적 성향의 정치인들과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한 연설에서 국가가 큰 기업의 재산 문제와 맞붙어 싸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자선사업을 많이 했다고 해도 그 재산을 얻기까지 저지른 불법 행위를 속죄할 수는 없다.”

루스벨트가 스탠더드 오일을 필두로 하는 트러스트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자 트러스트를 반대하는 법정 소송이 급증했습니다. 사법부의 활동이 전개됨에 따라 빛을 본 자료가 바로 타벨의 탐사보도였습니다. 폭로기사에서 타벨은 특히 스탠더드 오일과 록펠러의 정직성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우리는 상업적 인간이다. 우리는 예술품을 자랑하지 못한다. 숙련된 기술이나 재배한 작물을 뽐낼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만들어낸 부는 자랑한다. 이 때문에 사업의 성공을 신성하게 생각한다. 사실 성공을 위해서 사용한 방법이라면 무엇이든 점점 더 폭넓은 계층에서 정당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스탠더드 오일이 지금처럼 자본을 축적하기까지 필요했던 결정적인 요인이 있다. 사실을 감추려고 속임수를 쓰고, 궤변을 늘어놓고, 중상모략하는 온갖 방법이었다. 특히 법의 정신에 위배되는 비밀스러운 노력을 계속해서 얻은 특혜가 주요했다. …… 록펠러가 폭력과 속임수를 사용해서 목적을 달성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사람들은 '그건 사업일 뿐이잖아.' 하고 말하면서 록펠러를 옹호한다. 즉 그 말은 학대와 속임수, 특혜에 대한 적법한 변명이 되는 셈이다. …… 그런 사업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기독교의 자선 교리에 의지한다. 우리는 실수를 범하는 유한한 인간이므로 서로 다른 사람의 약점을 용납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인간의 약점 때문에 다른 사람의 어깨에 기대어 눈물을 흘리면서 주머니를 터는 기업가의 모습으로 귀결되고 만다.”

타벨은 갖은 시련과 압박에도 탐사보도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결국 스탠더스 오일에 대한 폭로와 이를 뒷받침하는 록펠러 인물 탐구를 통해서 미국의회와 주의회, 연방정부, 주정부 안에서 개혁적 활동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정부 기관 밖에서도 법원의 판결과 대중 운동이 전례 없이 활발하게 일어났습니다. 《매클루어 매거진》에 1902년부터 장장 19회에 걸쳐 〈스탠더드 오일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록펠러와 기업의 비리를 통렬하게 파헤친 폭로기사로 말미암아,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는 1911년 연방대법원으로부터 기업분할 명령을 받아 해체되기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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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벨의 폭로기사는 스탠더드 오일의 명성에 흠집을 냈다. 1909년 2월 3일, 루터 대니얼스 브래들리는 《시카고 데일리 뉴스》에 실은 만평에서 스탠더드 오일이 조용히 관련 회사를 포섭하는 방식으로 계속해서 확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 언론, 무엇을 배워야 하나

자, 여기서 100년이 지난 우리의 현실을 한번 돌아볼까요? 최근 자동차 부품제조업체인 유성기업 노조원의 파업에 공권력을 투입한 일로 온 사회가 시끄럽습니다. 정당하게 파업을 한 500여 명의 노동자를 30개 중대 2000여 명의 병력을 투입해 연행한 경찰의 행위를 보면 참 기막힙니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노동자를 탄압하던 정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일부 보수 언론은 “1인당 연봉 7000만 원이 넘는 회사의 불법 파업을 국민이 납득하겠느냐”는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의 발언을 빌려 거짓 정보를 확대·재생산함으로써 유성기업 노동자를 공격했죠.

또 이런 일도 있습니다. GS그룹 계열사인 GS칼텍스가 영세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바이오 디젤 사업에 진출한다고 하여 문어발식 확장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SK와 애경이 절반 가까이를 점유한 바이오 디젤 시장에 삼성 또한 진출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관계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재벌이 원가 절감을 이유로 MRO 계열사를 만들어 문구나 공구류 같은 소모품마저 손대기 시작하면서 그 분야에서 뿌리내리고 일하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된 바 있습니다. 100년 전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이 진실을 알리는 필봉으로 무너뜨린 거대 재벌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괴물로 존재하고 있으며, 날로 그 세력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노동자의 기본권을 무시하고 재벌과 대기업의 배만 불리는 말도 안 되는 경제 논리에 귀를 기울이는 국민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우리 국민의 의식수준도 높아졌고 ‘톨레랑스’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습니다. 모두 지난 100년간 오로지 ‘진실’을 위해 빛과 같이 살다간 언론인들이 토대를 닦은 탐사보도의 힘 때문입니다. 거대 트러스트의 실상을 취재해 스탠더드 오일을 무너뜨린 아이다 타벨의 삶과 기자정신은 부의 힘이 절대적이지 않으며, 부패의 고리를 파헤치는 탐사보도의 역할이 이 시대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역사는 그대로 반복됩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판치는 재벌의 문제를 돌아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아이다 타벨과 그의 기자정신을 깊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진실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일깨워주는 제2, 제3의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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