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최근 묻지마 칼부림 사건, 빈발하는 성범죄 등으로 사회적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안전망에 관해 생각해보려 합니다.

자살률이 대변하는 '삶의 질'

얼마 전 우리나라 국민의 ‘삶의 질’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펴낸 <오이시디 국가의 삶의 질 구조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보면, 한국은 자체 분석한 ‘삶의 질’ 조사에서 10점 만점에 4.2점을 받아 34개국 가운데 32위를 차지했습니다. 
 

논문을 쓴 이내찬 한성대 교수는 OECD 행복지수 조사 지표에 소수에 대한 관대성, 국가 신뢰도, 지니계수(소득 분포의 불평등도를 측정하기 위한 계수), 빈곤율, 여성차별, 지속가능성,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라는 7개 지표를 추가하여 새로운 지표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예전 조사에서는 22~24위로 중하위권에 있었던 우리나라가 새 지표를 추가한 삶의 질 조사에서는 최하위권으로 떨어졌습니다. 

삶의 질 지표의 수치를 대변하기라도 하듯 한국은 OECD 국가 중 8년간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습니다. 2010년 우리나라의 하루 평균 자살자는 42.6명으로 연간 1만 5566명에 달합니다. 인구 10만 명당 31.2명으로 OECD 평균(12.8명)의 2.4배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 2위인 일본(21.2명)과도 큰 격차를 보이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infographicworks.com)

현대 사회에서 자살률은 경제변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1인당 국민총소득(GNI, 한 나라의 국민이 일정 기간 생산활동에 참여한 대가로 벌어들인 소득의 합계로서, 실질적인 국민소득을 측정하기 위하여 교역조건의 변화를 반영한 소득지표)가 2000년 1만 1292달러에서 2010년 2만 562달러로 1.8배나 높아졌지만,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000년 13.6명에서 2010년 31.2명으로 2.3배나 증가했습니다. 2000년 기초생활보장제를 도입하고 2008년 기초노령연금제, 장기요양보험제를 시행하는 등 주요 제도가 정비된 것과는 상반된 결과입니다. 복지 선진국인 스웨덴의 자살률(10만 명당 11.7명)이 OECD 평균과 비슷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살률이 높은 원인을 낮은 사회보장제도에서 찾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출처: 연합뉴스)

우리나라에서 자살은 10대 사망 원인 중 남성의 경우 4위, 여성의 경우 5위에 해당할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입니다. 아직 꽃피지도 못한 청춘들이 좌절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사회를 향해 분노를 터트리는 이유에 관해 더 나은 삶을 누릴 기회가 사라졌다는 절망에서 기인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의 기회나 직장생활을 통한 삶의 질 개선의 문이 저소득층에게 점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사회 전반의 잠재적 불안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급증하는 아동 대상 성범죄

최근 성범죄를 다룬 기사가 신문과 방송을 도배하다시피 했습니다. 특히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가 급증하고 있는 심각한 상황입니다. 이런 범죄가 사람의 왕래가 없는 구석진 곳에서 발생할 것으로 흔히들 예상하지만, 사실상 아이들이 주로 활동하는 곳에서 많은 사건이 일어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사람들은 성범죄가 발생하면 '사회안전망'을 구축하여 구조적으로 문제를 풀 생각보다는 일단 자신의 아이를 돌보거나 챙기는 데에만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범죄율이 높아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얼마 전 《한겨레》에 실린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조한혜정 교수의 칼럼(<한 아이를 위해선 온 마을이 필요하다>)은 우리 사회가 왜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기사 일부를 소개합니다.

정말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우고 싶은가? 그렇다면 대책의 핵심은 이런 ‘아저씨’들을 양산하지 않는 데 있다. 요즘 농촌에 가면 고향에 내려와 어슬렁거리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 그들이 종종 아이들에게 집적거린다는 걸 동네 사람들은 알고 있지만 서로가 안면이 있고 함께 살아야 하는 처지라 모른 척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마을 공동체의 순기능은 사라지고 오히려 역작용을 하는 상황인 것이다. 중소도시나 대도시도 마찬가지다. 이번 경우에도 아이가 길가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도 벌을 받고 있거니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다는 이웃이 있었다고 한다. 아무도 남을 돌보지 않는 상황에서는 계속 끔찍한 사건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자기 한 몸 추스르기 힘든 부모들은 점점 늘어날 것인데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돌봄의 인프라’는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왜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하는가? 안전한 마을을 만들지 않고는 아이를 낳아 키우기가 점점 힘들어질 것이다.  ……  지역 주민자치센터나 공공회관에 부모들이 모여 사랑방을 마련하고 동네 아이들을 함께 돌본다면 끔찍한 일들을 많이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피시방 한켠에 구직 상담이나 살아가는 어려움을 토로할 수 있는 응접실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어떨까? 스스로를 살리고 서로를 돕는 주민들이 주도하는 마을에서는 약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성범죄나 세상에 복수를 하겠다는 ‘묻지마 살인’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한 이유

얼마 전 의정부역에서 벌어진 묻지마 칼부림 사건 이후로 언론을 통해 알려진 관련 범죄만 해도 7건이나 됩니다.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대개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이거나 혼자 사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장기간 경제적으로 빈곤하게 생활했거나 가족이나 친구로부터 소외된 경험이 범죄의 원인이 된다는 얘긴데요, 최근 여의도 흉기난동 사건의 피의자 김모 씨(30) 역시 가족과 몇 년째 떨어져 살고 있었으며 회사를 그만둔 뒤 생활고에 시달리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OECD 회원국들은 1인당 GDP가 높을수록 '위험 방지 지출'을 많이 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위험 방지 지출은 노령, 질병, 실업, 재해와 같은 위험에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복지 지출(Social Expenditure)을 의미합니다. 앞서 우리나라의 높은 자살률이 경제변수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렸는데요, 위 통계를 보면 자살률과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 비율 간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경제적인 성장은 이뤘지만 사회복지 지출은 아직 많이 부족한 실정이니까요. 

(출처: 사회적기업 창업 교과서)

어느 사회든 문제는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나라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미취업자와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 제도 강화, 사회적 고립을 겪는 이를 위한 상담 프로그램같이 '사회안전망'은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라 사회적, 심리적, 관계적 차원에 이르는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사회안전망은 브레턴우즈협정 기관들(세계은행[IBRD],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개발도상국과 동구권국가들에 차관을 제공하면서 요구한 구조조정으로 야기된 실업 및 생계 곤란자 양산이라는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고자 마련한 것으로, 이는 기존의 사회보장이나 사회복지라는 개념보다 긴박하고 과도기적인 상황에 대응하는 사회적 장치인 셈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안전망에 관한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1997년 경제위기 당시 IMF 및 세계은행이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사회안전망 확충을 요구하면서부터였습니다.

일자리야말로 가장 중요한 사회적 안전망이다

일본에서 ‘니트(Neet)’란 15~34세의 청년 가운데 일도 공부도 하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이들을 약 64만 명으로 추산했는데요, 니트에 속하는 대상을 50세까지 넓힌다면 100만 명이 훌쩍 넘습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우리나라 청년 니트족에 관한 자료를 보면, 2003년 75만 1000명에서 2010년 99만 6000명으로 약 24만 명이 늘어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전문가들은 2011년에 사상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은 것으로 추정하는데요, 이는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청년 실업자 32만 명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치에 해당합니다.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청년 실업자인 니트. 이들을 '지원'하는 일과 '예방'하는 일 사이에 과연 어느 쪽이 더 중요할까요? 양쪽 다 중요하겠지만, 니트가 되고 난 다음 지원해봐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니트는 앞으로도 계속 생길 테니까요. 급증하는 사회보장비로 말미암아 국가 재정은 점점 심각한 상태에 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출처: 민중의 소리 인포그래픽)


또한 한번 니트가 되면 사회에 복귀하려고 마음먹어도 취직이 어렵다는 문제가 뒤따릅니다. 니트 기간의 공백 탓으로 채용단계에서 불이익을 받기도 쉽지요. 20~30대 니트 모두가 50세까지 그 상태로 있는 건 아니지만, 가능하다면 상당한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예방하는 편이 전체적인 사회적 비용이 적게 들 뿐 아니라 각자에게도 훨씬 좋은 결과를 낳습니다. 

뉴욕대 정신의학 교수 제임스 길리건은 20세기 미국의 살인율과 자살률 통계를 분석하여 폭력의 메커니즘을 규명했습니다. 그는 "수치심이 고통스러울 때 이를 남에게 전가하기 위해 강력하게 휘두르는 폭력이 살인이며, 그 방향이 자신에게 향하는 게 자살"이라고 분석합니다. 그리하여 실업은 수치심을 증폭시키고 실직은 사람을 비참하게 하므로 실업률 해소가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IMF 구제금융 시기를 거치는 동안 우리 사회는 국가와 기업을 위해 노동자에게 희생을 강요했습니다. 노동계에 '비정규직' 바람이 불면서 노동자들은 무한경쟁 상황으로 내몰렸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지니계수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상승 추세를 보였고, 그 결과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제일 높은 상황에 도달하고 말았지요. 

(출처: 사회적기업 창업 교과서)

이런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노무현 정부는 사회적기업을 육성함으로써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사회적기업은 비영리 조직과 영리기업의 중간 형태로,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영업 활동을 수행하는 기업을 말합니다. 일반 기업처럼 이윤을 추구하기보다 사회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이윤의 대부분을 재투자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사회적기업 육성은 일자리 창출, 특히 경제적 취약계층의 고용과 같은 사회문제 해결에 역점을 두고 진행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사회적기업이 남긴 과제가 적지 않지만, 우리 사회에 상당히 기여한 건 사실입니다.  

이와 더불어 기업 또한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사회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면서 저소득층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기업문화가 점차 강화되는 긍정적인 흐름도 생겼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기업이 진정성을 보이며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에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한계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다시 사회로 복귀시킬 제도적인 장치가 바로 사회안전망이기 때문이지요. 

생각비행은 그동안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동력으로 '사회적기업'에 주목해왔습니다. 사회적기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지막지하게 경쟁하기보다는 함께 성장하는 길을 모색하는 대안적인 경제활동을 추구합니다. 성장보다는 사회적 나눔과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에 관심을 보입니다. 사회적기업이 풀지 못한 과제를 협동조합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생기고 있습니다. 저희도 우리 사회의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를 계속 발굴하고 공유하도록 더욱 힘쓰겠습니다. 많은 관심을 보여주세요!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올해 뜻하지 않게 찾아온 극심한 폭염으로 생활하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예년보다 가물어 농부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는데요, 요사이 충남권에 내린 집중호우로 이젠 물 때문에 시름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최첨단 기술시대에도 농사는 여전히 대자연의 순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올해 가뭄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듯합니다. 지난 6월 초까지만 해도 안정적이던 세계 곡물가격이 7월 들어 20~40퍼센트나 급등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미국 중서부와 남미, 러시아 등 세계 주요 곡물 생산 지역이 가뭄 탓으로 작황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1400만 톤 이상의 곡물을 수입하는 우리나라는 식량안보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곡물 자급률이 329퍼센트에 이르고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독일, 스웨덴 등 주요 선진국도 100퍼센트를 넘습니다. 자급률이 낮은 상황에서 외국 수출국의 공급량이 달릴 경우 해당 물가는 4배 이상 급등한다는 통계가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이제는 식량의 안정적인 수급을 위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실제로 1980년 전국이 냉해 피해를 당했을 때 한국 곡물시장의 80퍼센트를 차지한 미국 곡물메이저 카길사가 한국에 대한 쌀수출 가격을 세 배나 올려 요구한 전례가 있습니다. 식량과 사료용을 불문하고 우리나라가 곡물 자급률을 높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식량위기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다

1956년 이래 최악의 폭염과 가뭄이 세계 최대 옥수수 생산국인 미국과 세계 3대 밀수출국인 러시아와 남미 우크라이나 등을 휩쓸었습니다. 이 때문에 한 달 만에 세계 옥수수 생산량은 17퍼센트, 콩 생산량은 12퍼센트가 줄었습니다. 옥수수와 밀 가격은 각각 45.6퍼센트, 44.4퍼센트나 치솟았습니다. 세계 최대의 식량 수출국인 미국의 지위를 고려한다면 이런 상황은 세계적인 식량가격 폭등을 유발해 경기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 중서부 대평원의 극심한 가뭄으로 옥수수 밭이 말라가고 있다.

가뭄 때는 곡물 생산량이 줄어 가격이 오르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투기성 '곡물 사재기' 현상입니다. 이는 곡물 가격을 더욱 부추겨 안정적인 곡물가격을 유지하기 어렵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미국 시카고 상품거래소에서 2012년 9월 인도분 옥수수 선물가격은 부셸(곡물 중량 단위, 옥수수의 경우 25.4kg)당 8.10달러를 보이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옥수수 가격이 8달러대에 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2007, 2008년 곡물 파동 때보다도 높은 수준에 해당합니다. 옥수수 가격이 50퍼센트 상승하는 경우 식량가격이 평균 1퍼센트 오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왜 옥수수 가격이 중요한가?

그렇다면 옥수수 가격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식량이라고 할 때 우리는 주로 쌀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생산량이 가장 많은 곡물은 옥수수입니다. 그다음으로 밀, 쌀 순서입니다. 옥수수는 거의 모든 가공식품의 원료가 된다는 점에서 무척 중요한 작물입니다. 옥수수에서 액상과당을 추출하여 청량음료, 주스, 과자를 만들 때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주요 가공식품 1500종 가운데 약 1300종에 옥수수가 사용되고 있다고 하니 그 산업적 중요성을 짐작하실 수 있겠지요?

이렇게 중요한 옥수수를 우리나라는 얼마나 생산하고 있을까요? 놀랍게도 옥수수 자급률은 1퍼센트밖에 되지 않아 해마다 1000만 톤을 수입에 의존하는 실정이라고 하는군요. 옥수수 가격이 국제적으로 상승하면 축산 농가의 사룟값 부담이 늘어나는 까닭에 소나 돼지 등의 육류가격도 인상됩니다. 그러다 한계점에 달하면 축산 농가는 사육을 사실상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면 육류 가격은 일시적으로 내려가겠지만, 대량 도축의 파장으로 우유, 치즈, 버터 등의 생산량이 감소하여 낙농품 가격이 오르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런 식으로 곡물가격의 상승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경제운용의 기본인 물가체계를 뒤흔드는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생활비가 오르고 인건비 상승압력이 높아져 경제가 안정될 리 없죠. 최근 글로벌 애그플레이션(곡물가격상승) 공포가 확산하자 불똥이 바이오연료인 '에탄올'로 번지고 있습니다. 가뭄 때문에 옥수수 수확량이 급감했는데, 상당 물량이 에탄올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바람에 옥수수 가격폭등을 부추긴다는 얘깁니다. 56년 만에 미국 중서부를 덮친 최악의 가뭄 탓으로 지난 6월 초 톤당 200달러가 조금 넘던 옥수수 국제 거래가격은 현재 300달러를 웃돌고 있는 실정입니다.

(출처: 한국일보)

지난 2007년 제정된 에너지법에 따라 미국은 수확된 옥수수의 일정량을 에탄올 생산에 사용해왔습니다. 예정대로라면 올해는 전체 수확분의 42퍼센트인 45억 부셸이 에탄올 원료로 투입될 예정이었습니다. 사상 최악의 흉작에 거둬들인 옥수수의 절반을 에탄올 생산으로 돌려야 하니 국제 곡물가격은 갈수록 폭등할 수밖에 없는 모순을 안고 있는 셈이죠.

우리의 밥상, 무엇이 문제인가?

정부는 지금까지 가격경쟁력이 없고 쌀 소비가 줄어든다는 이유로 논농사 면적을 줄이도록 유도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쌀을 비롯한 전반적인 곡물생산계획을 다시 짜야 할 시점입니다. 비록 생산비가 외국에 비해 비싸더라도 자급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식량자급률이 낮을수록 세계적인 곡물메이저들의 손에 우리의 밥상이 놀아날 위험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식량자급률이 최하위(26%)에 속합니다. 식량자급률이 낮지만 일본이나 스위스 같은 국가는 식량안보 차원에서 항시 곡물을 충분히 확보하는 체계를 갖춰놓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간 세계적인 식량위기의 전조가 보일 때마다 수입곡물 할당관세 적용, 사료구매자금 저리 지원, 조사료 재배 확대 같은 단기 대책 외에 국가조달시스템 구축, 해외농업개발, 비축제도, 조기경보시스템 운영 등의 대책을 시행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종합대책이 하나의 국가적인 시스템으로 잘 정착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세계적인 식량위기가 감지될 때마다 일시적으로 급등했던 국제 곡물가격이 몇 개월 지나 안정세로 돌아서면 국민의 관심이 떨어져 관련 대책의 추진동력이 약해지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국민소득이 높아져 가계에서 식료품 지출 비중이 낮아지고 쌀이 남아도는 까닭에 식량 부족을 우려하지 않는 인식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식량은 에너지와 달리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할 자원으로 인식하지 못했고, 국가안보 차원에서 문제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식량도 해외나 국제교역시장에서 확보해야 할 중요한 자원의 하나로 보고 비상시를 대비하는 국가안보 차원에서 다뤄야 할 때입니다.

누가 우리의 밥상을 움직이는가?

쌀 소비가 갈수록 줄어들어 우리 쌀이 남아도는 상황인데도 세계적인 개방 압력을 타고 더 많은 쌀이 수입되고 있습니다. 가격경쟁력을 상실한 우리 쌀은 오래지 않아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식량자급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분들은 저렴한 쌀을 먹는 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세계적인 곡물메이저인 카길을 비롯한 다국적 곡물상들이 추구하는 시나리오대로 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지요.

생산성이 낮은 농업에 매달리기보다 휴대전화처럼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만들어 저렴한 식량을 사 먹는다면 과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농업을 포기하면 바로 뒤이어 식량재앙이 닥칩니다. 많은 전문가는 식량이 21세기 최고의 전략 무기가 될 것이며, 그 가공할 무기가 부메랑이 되어 우리의 밥상을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나라 곡물의 자급 비율은 현재 26퍼센트대로 심각한 수준입니다. 그나마 쌀을 빼면 2.7%에 불과하죠. 한정된 토지에 인구가 많으니 낮은 식량 자급률을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러나 진실은 이런 낮은 식량자급률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멕시코의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나라의 식량위기에 한몫을 한 것은 IMF와 세계은행, 그리고 미국이 장려한 자유시장 정책이었습니다. 멕시코의 식량위기는 1980년대 초에 불어닥친 부채위기와 더불어 시작됩니다. 당시 개발도상국가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부채가 많았던 멕시코는 국제 민간은행에 대한 부채 상환을 위해 세계은행과 IMF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조건으로 세계은행과 IMF는 자체적으로 마련한 경제정책 프로그램을 멕시코 정부에 제시합니다. 고율의 관세를 비롯, 각종 무역규제를 없애고 이를 위해 멕시코 정부가 제도적으로 지원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골자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신자유주의적 관점에서 경제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요소를 제거하겠다는 노골적인 계획이 담긴 경제정책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구조조정’이란 명목으로 시행되었습니다. 멕시코 정부는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농민을 위한 각종 지원정책을 펴왔으나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이 같은 정부 지원을 모두 없애버린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구조조정으로 정부 지원이 갑작스럽게 중단되거나 급격히 줄어들자 멕시코 농업의 생산성은 크게 하락합니다. 여기에 1980년대 들어 실시한 일방적인 농산물 무역자유화 조치로 농민의 기반은 더욱 허물어졌고, 1990년대 중반에는 NAFTA가 발효되면서 그동안 자급했던 옥수수마저 수입하더니 결국 식량 수입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카길, ADM, 타이슨 같은 다국적 농산물기업들은 자기들 정부에 끊임없이 로비를 펼치고, 그 정부는 각종 무역협상 테이블에서 충실하게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미국입니다. 미국은 엄청난 농산물 수출국이며 한동안 WTO를 쥐락펴락해왔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추구하는 다자간 협상이 잘 진척되지 않으니 아예 1대 1로 만나 각국과 FTA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미FTA를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시면 큰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까 싶네요. 

대량생산 방식의 농업체계를 돌아볼 시점이 되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스스로 먹고살 수 있는 자연스럽고 현명한 농업방식에서 억지로 이탈시키고 산업화시켜 불구로 만듭니다. 자급자족의 기반 자체를 무너뜨리고 모두를 곡물메이저의 고객으로 만들어버립니다. 다국적기업인 곡물메이저는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세계 각국의 소농과 가족농을 다 죽이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전 세계의 먹을거리를 단 몇 개의 다국적 농산물기업이 주무르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스스로 먹거리를 통제할 힘을 상실한다면 우리의 목숨을 내놓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문제인식을 전 국민이 함께해야 할 때입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오늘은 과거로 시간여행을 해보려고 합니다. 국립민속박물관 야외 전시물 중에 옛사람들이 살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놓은 곳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구한말의 모습과 1960~1980년대 거리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으로 가족, 친지, 연인과 함께 나들이한다면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으실 겁니다. 자, 그러면 시곗바늘을 한번 거꾸로 돌려볼까요?


경복궁 경내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은 우리 민족의 생활사와 관련된 방대한 민속자료를 상설 전시공간과 야외 전시공간으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우리 민족 고유의 생활양식, 풍속, 관습 등을 조사·연구하고 생활 민속 유물을 수집·보존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 전통문화를 보급·선양하며 국제 문화 속에서 한국 문화를 부각하고자 설립되었죠. 이곳을 찾는 방법은 [국립민속박물관 누리집]에 잘 나와 있으니 참고하세요.

국립민속박물관 입구 풍경


국립민속박물관은 1945년 11월 8일 한국 민속학의 선구자인 송석하(宋錫夏)의 수장품을 중심으로 서울시 중구 예장동 2번지에 '국립민족박물관'으로 처음 창립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많은 변화를 거쳤고 1992년 10월 30일 국립중앙박물관 소속에서 문화부 1차 소속 국립민속박물관으로 직제 개편되어 1993년 2월 17일 경복궁 내 건물로 이전 개관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1993년 3월 6일 문화부에서 문화체육부로 소속이 변경되었고, 1998년 2월 28일 문화체육부에서 문화관광부로, 다시 2008년 2월 29일에 문화관광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로 소속이 변경되었습니다. 민족 고유의 시설과 자료는 변함없이 자리를 지켰건만, 정치적 이유로 소속이 계속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 안내도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누리집)


오늘 생각비행이 여러분께 소개할 곳은 '추억의 거리'입니다. 이곳은 구한말과 1970~1980년대 거리 풍경을 실물 크기 그대로 재현해놓은 야외 상설 전시장의 한 부분입니다. 약 1900제곱미터 면적에 기존에 있던 개항기의 전차, 한약방, 포목전을 재정비하고 1970~1980년대 일상 속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다방, 식당, 만화방, 레코드점, 이발소, 양장점, 사진관 등을 똑같이 재현해놓았습니다. 연세 지긋한 분은 이곳에서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으며 어린이들은 옛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체험할 수 있으니 교육 자료로도 가치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제 추억의 거리를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

포목전


포목전은 비단과 포목을 판매하던 상점을 말합니다. 전시창에 기술되어 있는 설명 끝 부분에 '육의전'이라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육의전이란 조선 후기에 정부로부터 특권을 받은 시전(市廛) 중 6개의 큰 시전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육의전의 구성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전'은 하나의 상점을 뜻하는 용어가 아니라 같은 물종을 취급하는 상인들의 단체를 의미합니다. 그들은 정부가 건축한 공랑(公廊)점포에서 영업했는데요, 그 위치를 현재 종로 1, 2가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육의전의 의무는 정부수용품 조달이었습니다. 육의전은 자신들이 취급하는 물종을 다른 상인으로 하여금 거래하지 못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가리켜 금난전권(禁亂廛權)이라고 합니다. 난전은 전안(廛案:숙종 32년부터 실시한 제도로, 시전에서 취급한 물종과 상인의 주소, 성명을 등록한 상행위자 대장)에 등록되지 않은 자나 판매를 허가받지 않은 상품을 성 안에서 판매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결국 육의전은 쉽게 말하면 특권적 어용상인의 단체였던 것이죠.

죽물전


플라스틱 제품이 나오자 죽제품을 찾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었다는 설명이 인상적입니다. 중국과 태국 상품이 전통적인 국산 죽제품을 내몬 양상을 보면 전 세계에서 값싼 상품이 유통되는 오늘날의 모습과 다르지 않군요. 요즘은 중국산이 없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공산품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지 않습니까? 일전에 MBC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아보기>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관심이 있는 분은 꼭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양태전


양태전은 갓을 전문적으로 거래하는 상점을 말합니다. '양태'는 '갓양태'와 같은 말입니다. 우리 속담에 "양탯값도 못 버는 놈"이라는 표현이 있는데요, '제 밥벌이를 못하여 장가도 못 들 녀석'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이 갓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재미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도로가 잘 포장되어 있지 않았던 조선 후기에 신분이 높고 재력이 있는 사람은 비 올 때 나막신을 신었습니다. 나막신이 흙길에서 얼마나 유용했을지 그 유용성에 조금 의구심이 들긴 하지만 세를 과시하는 용도로는 확실한 기능이 있지 않았을까 싶군요. 구멍이 숭숭 뚫린 짚신에 비하면 버선발이 덜 젖기는 했겠지만 우산조차 없던 시절에 나막신이 적절한 비 대비책은 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빗길에 어딘가로 행차하려면 가마를 타지 않는 이상 발 젖을 각오는 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한약방


개항기 한약방의 모습을 재현한 모습이라고 합니다. 서랍이 많은 전통 가구에 각종 약재가 빼곡히 들어찬 모습은 요즘 한약방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듯합니다. 지금도 약재를 써는 작두를 흔히 볼 수 있지요. 예전엔 한약방이 약국이기도 하고 병원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진료는 의사에게 받고 약 조제는 약사가 하는 식으로 분리되었지만 예전 약방의 풍경은 사뭇 달랐겠지요.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허준>에서 의술이 뛰어난 의원집에 환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풍경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요, 오늘날 을지로에 해당하는 구리개에서 이런 모습이 다반사였겠지요.

자, 이제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1970~1980년대 풍경으로 눈을 돌려보겠습니다.



30대 중반 이후 세대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거리 풍경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름보일러가 없던 시절 월동 대비는 연탄을 들여놓는 일부터 시작하곤 했습니다. 행여 연탄이 비에 젖을까 비닐로 덮고 문단속을 철저히 하던 시절의 추억이 아련하군요. 연탄 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얼마나 많습니까? 눈길에 넘어지지 말라고 아침이면 연탄을 깨서 길가에 흩뿌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라면은 꼭 구공탄에 끓여야 제맛이었죠? 이런 추억 때문인지 안도현 시인은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를 썼습니다. 연탄을 소재로 쓴 안도현 시인의 작품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두루 실려 있습니다. 그래서 '연탄 시인'이라는 별명도 있지요. 다음 작품은 아주 유명해서 여러분도 다 아실 겁니다.

너에게 묻는다
                           _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흔하디흔한 연탄재에서 이런 깊은 감성을 찾아낸 시인의 마음이 연탄불만큼 따뜻합니다. 최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의원인 도종환 시인의 시와 산문을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16종의 중학교 교과서에서 빼도록 출판사들에 권고한 사실이 밝혀져 문인단체의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안도현 시인이 "도종환 시인의 시를 중학교 교과서에서 추방시켜야 한다면 저의 작품들도 교과서에서 모조리 빼주기 바랍니다"라고 심경을 밝히기도 했더군요. 문학작품은 동시대의 기억을 공유하는 소중한 문화적 자산입니다. 그런데 정치적인 잣대를 들이밀어 교과서를 함부로 재단해서야 되겠습니까? '자유민주주의'를 들먹이며 역사교과서를 운운했던 일부 역사가들과 이번 문학작품 배제 권고로 물의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국립민속박물관 내 '추억의 거리'를 둘러보며 인생공부부터 다시 하기 바랍니다.


구멍가게나 이발관이 옛 모습 그대로 재현되어 있군요.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담배부터 이발 도구 등이 그 시절 모습 그대로 남아 있네요. 벽에 붙은 각종 상품 광고까지 똑같습니다. 학교는 반공교육에 앞장섰고 전국 어디를 가든지 간첩신고 번호와 반공 표어 하나쯤은 붙어 있었죠.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복덕방(福德房)은 부동산중개업과 부동산중개업소를 지칭하는 용어로 우리 사회에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복덕방이란 용어가 주역에서 말하는 '생기복덕'에서 기인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복과 덕을 가져다주는 곳이라는 말에서 유래했으니 참 정겹지 않습니까? 1970~1980년대 시절 복덕방은 물물교환이 일어나는 장터이자 정보를 주고받는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복덕방 벽에는 이런저런 전단이 늘 붙어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요즘 부동산중개소를 보면 어떤 물건이 얼마라는 식의 정보만 나열되어 있는데요, 이와 비교하면 예전의 복덕방은 그 이름처럼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었죠. 복덕방 가게 문을 골대로 삼아 축구를 하다 주인아저씨에게 혼나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분도 계실 듯합니다.


여기는 다방입니다. 들어갈 수 없는 가게도 있는 반면 다방은 내부를 공개하고 있어서 들어가 앉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팥빙수 200원, 쌍화차 200원, 커피 150원, 위스키티 300원, 꿀차 150원이면 언제쯤 시절의 물가인지 궁금하군요. 음료를 판매하지는 않으니 미리 준비해서 다방에 둘러앉아 옛 추억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전쟁과 평화>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군요. 이 영화는 1956년에 킹 비더(King Vidor) 감독이 제작했고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멜 페러(Mel Ferrer), 헨리 폰다(Henry Fonda) 등이 열연했지요. 1977년 컬러판으로 재편집되었는데요, 상영시간이 무려 208분에 달합니다.


<스타워스> <슈퍼맨> <카사블랑카> <고고 얄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불후의 명작 영화 포스터가 색이 바랜 모습으로 재현되어 있습니다. 참 꼼꼼하게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볼거리가 더 풍성해지는 '추억의 거리'에 또 하나의 명물이 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우리네 삶에서 먹을거리를 파는 가게를 빼놓을 수 없지요. 아니나 다를까 정겨운 국밥집을 재현해놓았더군요.


지금도 장사를 하는 곳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하게 잘 재현해놓았더군요. 들어가서 좀 더 가까이서 자세히 볼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이렇게 옛 모습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만화가 왜 그리도 재미있었을까요? 꿈과 희망이 자라는 곳이 곧 만화방이 아니었나 싶네요. 여기 전시된 만화는 제가 어린 시절 보던 만화보다 더 이전의 만화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만화를 실물로 보려면 부천에 있는 [한국만화박물관]을 방문해보시기 바랍니다.     


여기는 학교입니다. "학교종이 땡땡땡~" 노래에 나오는 수업종이 바깥에 달려 있네요. 교실을 보니 겨울에 도시락을 난로 위에 올려두고 데워서 먹던 모습까지 잘 재현해놓았군요. 요즘 아이들이 초록색 나무책상과 걸상을 알 리 없지요. 책상 한가운데에 선을 그어놓고 넘어오면 모두 자기 것이라고 우기던 시절도 그립습니다.  


마지막으로 보여드릴 곳은 의상실입니다. 동네마다 양장점과 의상실이 하나쯤은 있었습니다. 참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옛날 옷도 나름대로 세련된 멋이 있는 것 같습니다. 패션은 돌고 돌기 때문일까요? 사진으로 보셔서 아시겠지만 '추억의 거리'는 아이들과 함께 가면 더없이 좋은 곳입니다. 부모님이 예전에 어떻게 살았는지를 설명해주고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이만한 배움터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돌아오는 주말에 '추억의 거리'로 나들이 계획을 세워보시면 어떨까요?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어느 날 우연히 흥미로운 기사를 보았습니다. 《직지》의 고장인 청주에서 1인 1책 펴내기 운동을 한다는 짤막한 기사였습니다. 일생을 살면서 자신이 쓴 글을 책으로 엮어서 내는 일은 특별한 경험이겠지요. 물론 쉽게 주어지는 기회도 아니고요.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 《직지》를 탄생시킨 세계기록유산의 고장인 청주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몇 년째 1인 1책 펴내기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생각비행은 지역사회를 살리는 커뮤니티 비즈니스에 관심을 두고 《아이디어 하나가 지역경제를 살린다》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의 내용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우선 지역주민을 끌어안는 비즈니스여야 한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회성 비즈니스여서는 안 됩니다. 일시적인 성공으로 지역에 그 나름의 이익을 안겨준다고 해도 지속가능한 일이 아니면 지역주민의 공감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
지방에는 아직도 많은 자원이 잠자고 있다. 뭔가 시작해보고자 하는 사람은 지방에 있는 '무형의 자산'을 발견하고 발굴했으면 한다. 탄소, 산소, 질소, 수소라는 4가지 원소로 수억 가지의 물질을 만들어내는 유기물처럼 아이디어 자체도 하나의 자원이기에 지역자원을 잘만 활용하면 수많은 매력적인 상품이나 서비스를 창출하여 고용을 일으키고 이익을 낼 가능성이 감춰져 있다.

1인 1책 캠페인은 비록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은 아니지만, 지역문화 활성화라는 점에 있어선 큰 의미가 있으며 벌써 5회째를 맞이하여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린 사업이 되었습니다. 청주고인쇄박물관을 생각비행이 직첩 찾아가 취재했습니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합니다.
- 청주고인쇄박물관 운영사업과 직지사업담당을 맡고 있는 이관동 계장입니다.
 
먼저 청주고인쇄박물관을 소개해주시죠.
- 이곳이 직지박물관이 아니라 고인쇄박물관이라서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이 계실 수 있는데요, 청주고인쇄박물관은 《직지》를 비롯하여 옛날 서적이나 인쇄와 관련된 내용 등을 망라하여 전시하는 박물관입니다. 이곳이 자리한 곳은 흥덕사지 바로 옆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흥덕사지는 1983년 택지개발을 하면서 발굴된 곳인데요, 현재 사적 31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흥덕사지에서 《직지》를 인쇄한 금속활자가 출토되었는데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사용한 활자보다도 앞선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를 기념하고 한국 인쇄술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하고자 흥덕사지 옆에 청주고인쇄박물관을 건립한 겁니다. 제가 속해 있는 팀에선 1인 1책 사업과 금속활자주조전수관 및 근현대인쇄전시관 건립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금속활자주조전수관과 근현대인쇄전시관은 2007년 청주가 문화특구로 지정받아 진행되는 사업입니다. 전수관은 내년 2~3월에 완공되고, 근현대전시관은 내년 연말께 완성될 예정입니다.
 

직지사업담당 이관동 계장

전수관은 금속활자를 만드는 장인을 양성하는 곳인가요?
- 맞습니다. 중요무형문화재 금속활자장 101호인 분께서 직접 오셔서 청주에서 금속활자를 만드는 장인을 키우는 곳이 될 겁니다. 1층에는 전시장과 체험관을, 2층에는 작업장을, 3층에는 사무실과 수장고 등을 배치할 예정입니다.

박물관에서 1인 1책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민선 4기에 들어서면서 청주만 1인 1책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5회부터는 청주, 청원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 프로그램은 25군데에서 강사진을 두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1인 1책에 참여하신 분들에게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설명하고 책 쓰기와 관련된 기본적인 지식 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런 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직지》를 제작한 청주라는 지역에 사는 시민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로 시작한 캠페인이었습니다. 인쇄 문화의 중심지인 청주에서 1인 1책 펴내기 행사를 진행함으로써 많은 시민이 자신의 기록을 모아 직접 책으로 펴내면서 지역문화의 우수성을 느끼고 긍지와 자부심을 갖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이에 더해 독서진흥운동도 함께 도모했습니다. 이러한 의도대로 청주, 청원 시민의 만족감과 자부심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습니다.

1인 1책과 연관된 주제는 어떻게 선정하나요?
- 시민 각자의 다양한 이야기가 주제입니다. 예를 들면 일기나 인생 이야기 또는 수기처럼 주제에는 한정이 없습니다. 작년에 대상을 받은 분의 경우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책이었거든요. 어떤 대학생이 어학연수를 다녀와 느낀 점을 엮은 책도 있었죠. 이처럼 각자 마음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글로 엮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1인 1책을 내는 일에 교육과 책 출간 지원을 해주는 곳은 전국에서 아마도 청주시밖에 없을 겁니다. 청주시에서 특수 시책으로 시행하는 사업이기도 합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이 많군요.
- 네. 그렇죠. 다양해요. 참여하신 분 중에 장애가 있는 분도 계십니다. 몸이 불편해서 글을 쓰기 어려운 상황인데도, 최대한 자신이 쓸 수 있는 만큼 글을 쓰시다 돌아가신 분도 계셨어요. 열심히 글을 쓰셨지만 책으로 나온 것을 보지 못하셨지요.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1인 1책 행사 홍보영상

1인 1책 운동에 어떤 분이 참여하는지 궁금합니다.
- 참여하는 분들 역시 다양합니다. 학생부터 70세 노인에 이르기까지 연령대도 넓습니다. 70세 노인분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겪은 다양한 경험과 과정을 정리했습니다. 어떤 분은 회식 자리에서 있었던 건배사를 정리하셨어요. 회사에 다니다 보면 회식이 잦잖아요. 그런 회식 때마다 나오는 다양한 내용의 건배사를 정리해서 책으로 펴내신 분도 계세요.

이런 사업을 처음 시작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듯합니다. 일반인이 글을 쓰고, 책을 펴내는 일에 접근하기가 쉽지는 않으니까요.
- 네. 쉽지 않았어요. 많은 분이 글을 써서 책으로 낸다면 부족한 글솜씨 때문에 창피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을 많이 하시더군요. 시작하고 1, 2회 때까지는 운영이 쉽지 않았습니다만, 3회 때부터 점차 참여하는 분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1인 1책 행사의 정점은 출판기념회인데요, 이런 모임을 보시면서 느끼는 점이 많지 않았을까 싶어요. 앞서 이야기한 책을 쓰고 돌아가신 장애인의 미담, 다양한 주제로 채워진 책의 내용을 보면서 청주와 청원의 시민이 공감하고 와 닿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1인 1책 운동으로 출간된 책들

1인 1책 펴내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강사분들에 관해서도 소개해주시죠.
- 문인협회에 소속된 분, 등단한 작가분 가운데 공모를 해서 선발합니다. 총 25명을 선발합니다. 현재 청주에 20명, 청원에서 5명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2월부터 시작해서 책을 마무리하는 시점인 11월까지 프로그램이 운영되는데요, 일주일에 3시간씩 참여자를 지도합니다. 

이제 많은 분이 참여하실 것 같은데요, 몇 분 정도를 선발하는지요?
- 신청자가 많아 모든 분에게 기회를 드리지는 못합니다. 일정 기간 원고를 받아 심사하고 통과된 분에 한해 출판비용을 보조합니다. 지금은 신청자 중에 150명을 선정합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5회를 진행했으니 청주, 청원 시민 중 600명이 넘는 분이 직접 책을 쓰고 출간하는 경험을 하신 거죠. 선정된 분의 원고는 30권 정도를 인쇄해서 제작하는데요, 20권은 작가에게 드리고 10권을 저희가 씁니다. 8권은 청주 지역 도서관으로 보내어 보관하게 하고, 1권은 출판기념회에서 전시하고 남은 1권은 직지협회에서 보관합니다. 직지협회는 1회부터 지금까지 출간한 모든 책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1인 1책 행사를 마친 후 참석자들의 반응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초반에는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하셨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참석자들의 호응 변화도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 출판기념회를 할 때 참석자들의 반응을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참석자의 가족을 비롯하여 지인들도 함께하는데요, 그들의 표정을 보면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인생을 살아가면서 책 한 권을 내는 일이 쉽지는 않으니까요. 자신의 노력으로 책을 쓰고 많은 사람 앞에서 그 결과물을 전시하는 일은 모두를 기쁘게 한다고 봅니다. 

책갈피로 만들어진 1인 1책 출판기념회 초대장

1인 1책 행사를 앞으로 어떻게 운영하실 계획인지 듣고 싶습니다. 
- 여담이지만 타지방 자치단체에서 우리 사업을 무척 부러워합니다. 벤치마킹을 하기도 하고요. 가까운 이웃동네에서 많이 부러워하고 있고요, 다른 광역시에서 1인 1책 행사를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건네기도 합니다. 이렇게 많은 곳에서 관심을 보이고 지켜보는 만큼 저희가 이 행사를 지속해서 발전하도록 열심히 꾸려가야겠죠. 이를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통해 1인 1책에 관한 관심을 더 늘려갈 예정입니다. (책갈피를 보여주며) 이게 지난해 초청장인데요, 대개 초청장은 한번 보고 그냥 버리잖아요? 자원낭비가 되기 쉽죠. 그런데 저희는 초청장을 책갈피 형태로 만들어 보냅니다. 초청장을 받은 분은 그것을 책에 꽂아두고 사용하게 될 것이고, 이로써 1인 1책 행사를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겁니다. 이런 작은 아이디어부터 시작해서 횟수를 거듭하면서 책의 내용도 더욱 다양화할 예정입니다.

오랜 시간 함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혹시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이 1인 1책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지요? 
- 아쉽지만 1인 1책 행사는 청주, 청원에 거주하는 시민을 대상으로 지원합니다. 오는 12월에 열릴 출판기념회 때 오셔서 시민이 직접 만든 책도 구경하시고 다양한 말씀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1인 1책 행사의 참모습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