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

 

지난 3월 10일 대통령 박근혜를 국민의 이름으로 파면한 날, 생각비행이 한 권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10년 차 초등교사가 학교의 폐쇄적인 문화, 수직적이고 억압적인 교사와 학생의 관계, 다른 집단에 비해 교사 집단에 ‘이상한 사람’이 많은 이유, 교육계 전반의 무능과 폭력성 등의 문제를 면밀히 살피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합리적인 의문과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교육 문제는 복잡하고 실타래처럼 얽혀 있습니다. 해결하기가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교사가, 교사의 이름으로, 교사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매일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선생님'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이 숱한 고민의 한 축을 떠안으려 하지 않고서, 산적한 교육의 문제가 저절로 풀리길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교실과 학교 현장에서 경험한 사례를 중심으로 대한민국 교육계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더 많은 사람과 고민을 나누기 위해 2016년 4월부터 《딴지일보》에 저자가 인기리에 연재했던 글을 다듬고 보완하여 책으로 엮었습니다.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라는 10년 차 초등교사의 미스터리 추적기는 재미있을 뿐 아니라 귀담아들을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 '보통 사람'이 '이상한 선생'으로 변하는 이유


여느 직장이나 조직에 비해 교사 집단에 이상한 사람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교직이라는 직업 자체를 지원하는 사람들로부터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넉넉하진 않지만 고정적인 수입에 비교적 여유 있는 휴가를 즐기며 안정된 삶을 꾸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교직을 찾는다. 그렇다면 안정성을 추구하는 욕구가 큰 사람들 사이에 어떤 특성이 발견되는가? 아니면 교사들이 처한 직업 환경의 특수성이 이상한 교사를 양산하는가?


학창 시절, 교사들에게 크게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교사 개개인은 대체로 평범한 사람들이다. 대체로 학교에서 중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고, 선생님이나 부모님 말씀을 충실히 따르는 축에 속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무난히 학교를 졸업하고, 착실하게 임용시험을 준비해 교사가 된다. 소득 수준, 생활양식, 교양 수준도 평범함에 가깝다. 상류층은 아니지만, 딱히 현재의 상황을 뒤엎어야 할 필요가 있는 사회경제적 계층도 아니다. 이들은 학생 신분으로 학교를 다니다 선생으로 학교에 취직하기 때문에 평생 학교가 바라는 도덕적 가치판단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서 '양심을 어기는 것'과 '관습을 위반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온몸으로 느끼며 기존 세력과 마찰을 빚기에는, 너무 착하게 순리대로 살아온 '보통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보통 사람들'은 사회 주류의 가치관, 체제의 속성을 충실히 반영한다. 과거 한국 사회는 (현재보다 더욱) 차별, 권위, 폭력에 무감각했다. 공부 못하는 아이, 가난한 집 아이를 차별하는 것이 당연했고, 교사의 권위와 폭력은 당연한 것을 넘어 '도덕적'인 것이었다.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한없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과거 교사들의 면면은, 그들 딴에는 나름의 도덕적 가치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학교는 사회에서 가장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기관 중 하나인데, 어떻게 학교에서 그토록 많은 교사가 비리와 악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의문은 이렇게 풀린다. 즉 당대의 '보통 사람들'인 교사가, 당대의 가장 보편적인 도덕적 가치를 집약적으로 실현해내는 곳이 학교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의 나긋한 성품 자체를 잘못으로 볼 순 없지만, 사회심리학자의 연구에서 드러나듯이 판이 이상하게 짜이면 가장 위험한 존재로 변모하는 이들이 바로 이 '보통 사람들'이다. 이들은 맹목적으로 체제에 순응해 본인이 의식하지도 못한 채 악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 모난 데 없는 성격, 주위 환경과 충돌하지 않으려는 속성이 맹목과 무비판으로 이어지는 길의 윤활유가 되기도 한다. 유대인을 강제수용소로 보낸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폴 티베츠, 베트남에서 500명을 학살한 윌리엄 콜리, 프랑스 공화국의 사형 집행인 아나톨 데블레가 그러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의 극적인 반전이 학교, 군대, 감옥을 비롯한 특정 공간에서 자주 표출되는 것은 그 조직의 구조가 가진 극적인 단순함, 폐쇄성, 그리고 권위 때문이다. 군대에는 계급이 있고, 경찰과 교도관들에게는 법의 집행자라는 권위가 주어진다. 오늘날 학교는 과거와 달리 권위와 폭력을 행사하기 쉽지 않은 환경으로 변모하긴 했으나 교사에게는 여전히 학생들을 평가할 권한이 주어져 있다. 교사는 평가 기준을 설정하고, 시험문제를 내고,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권한으로 지금도 여전히 학생에게 절대적 권력을 행사한다.

 

 

출처 -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

 

 

▶ 바보 양성소 교대, 이상한 학교의 커리큘럼

 

교대 졸업생 중 한 명으로서 저자는, 교대에서 보낸 4년간의 시간이 예비교사로서 자신을 성장시키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건전한 비판의식을 갖춘 성인으로 성장하는 데 방해 요소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교대는 1학점을 받기 위해 한 달은 리코더, 한 달은 피아노, 한 달은 클래식 듣기 식으로 학생들을 내몬다. 이런 주먹구구식 커리큘럼은 교수들 자리 챙겨주기 외에는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넓고 얇게 배우는 대부분의 방법적 내용은 실제 교육 현장과 연계되지 않는다. 교대에서 아무리 피아노로 애국가 반주하기를 연습해봤자 학교 현장에는 피아노 자체가 없고, 지루함을 참아가며 몇 단원의 성취 기준 따위를 달달 외운들, 현장에 나오면 무용지물이 된다. 많은 교대생이 '우리는 졸업해서 초등교사가 안 되면 고등학교 졸업자와 다르지 않다'고 한탄하는 이유가 이런 현실에서 기인한다. 수많은 예비교사가 리코더를 불고, 뜀틀을 넘고, 학습 모형과 초등학교 성취 기준 등을 외워가며 4년을 보내지만, 대학 졸업자로서 전공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도 없고 성취감을 맛볼 수 없는 환경 속에 존재한다.


반면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와 수학·과학 성취도 추이변화 국제비교 연구(TIMSS)에서 늘 우수한 결과를 보이는 성공적인 핀란드 교육의 이면에는 '철저한 교사 교육'이 있다. 단순 비교는 어렵더라도 주목해서 봐야 할 지점은 분명히 있다. 핀란드에서는 정규학교 교사가 되려면 반드시 석사학위를 취득해야 한다. 학급 담임교사(초등교사)는 모두 교육학을 전공하고, 교육학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쓴다. 과목 전담교사(중학교, 고등학교 교사)는 해당 과목의 석사학위를 취득 후, 별도로 교육대학의 교사 교육과정을 거친다. 또한 핀란드의 예비 초등교사들은 ‘교육학’을 중심으로 공부한다. 한국의 교대 커리큘럼과 임용고사가 '교육과정' 중심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아울러 핀란드 교사 양성 과정은 현장 실습을 중요시한다. 핀란드의 예비교사들은 실습 전문학교에서, 실습을 전담하는 교사에게 최소 6~9개월 정도 현장 교육을 받는다. 한국의 예비교사들이 4년간 통틀어 1~2개월 정도의 교생실습을, 별다른 기준 없이 배정된 교실에서 하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교대에서 배운 내용, 임용시험을 준비하며 공부한 내용이 현장과 연계되지 않으니, 신규 1~2년 차 내내 헤매고, 상처받고, 소진되다가 3년 차쯤에 방전되어 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무엇보다 핀란드에는 임용고사가 없다.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부터 확실하게 뽑고, 철저히 교육해서 교육학의 전문가로 양성한다. 핀란드 교사들은 현장에서 전문가로서의 자율성을 인정받고(교과서도 스스로 선정할 만큼), 공무원으로서의 지위를 보장받는다. 교사들의 노동조합 가입률이 95퍼센트를 넘고, 공익에 기여한다는 자부심과 신뢰 속에 직업 만족도 또한 대단히 높다. 반면 한국에서는 교대생 대부분이 임용고사를 보기 위해 유명 강사에게 강의를 듣는다. 강의비, 교재비, 자료 복사비 등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어째서 대한민국은 초, 중, 고등학교는 물론이고 국가에서 설립한 교사 양성 대학의 학생들마저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가?


이처럼 허무맹랑한 교대의 커리큘럼과 폐쇄적인 학교 구조 속에서 예비교사들은 치열하게 생각하고 고민할 기회가 적다. 이렇게 4년을 보낸 학생들은 '교원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말 뒤에서 위선의 겹을 쌓는다. 초등학교 6학년 사회 교과서에서 '위안부'라는 말이 빠지고, 박정희가 '지속적 경제 성장을 주장하며 유신을 선포했다'고 기술해도 교사는 충실히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 그런 중립적인 교육의 결과는 어떤가? 허술하기 그지없는 사고와 편 가르기의 폭력이 만연한 사회다. 지역주의의 폐단을 가르치지 않고, 계급문제를 논하지 않고, 독재자 박정희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보인 결과가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로 드러난다.


 

▶ 책임지는 교사가 답이다!

 

스스로 고민하는 교사를 만들지 않는 교육, 체제에 무비판적인 '보통 사람'을 양산하는 교사 양성 과정 때문에 무수히 많은 교사가 학교 현장에서 자신을 관리하고 통솔하는 이들의 권위에 순응하거나 집단의 목표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상한 선생으로 전락하고 만다.


보통 사람들이 이상한 선생으로 변모하는 데에는 학교 특유의 폐쇄적인 문화 또한 한몫한다. 일반적으로 교사들은 자기 반 교실 문을 굳게 닫고 여간해서는 공개하지 않는다. 1년에 몇 번 있는 공개 수업은 일상적인 모습이 아닌 경우가 많다. 교사들 간에도 학생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는 세세히 알지 못한다. 다른 교사가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하는지는 다른 상황의 대화 속에서 혹은 학생들이 전해주는 말이나 행동 등을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 교사는 내 학생, 네 학생을 따져가며 교육해서는 안 된다. '교육의 중심을 학생'에 두고 교사들이 서로 배우고, 나누고, 필요하다면 날 선 비판도 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두어야 한다. 수직적이고 억압적인 교사와 학생의 관계, 다른 교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는 폐쇄적인 학교 문화는 이상한 교사들의 횡포에서 학생들을 구해내는 데 엄청난 방해요인이 된다. 그러므로 교사는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뿐 아니라 이웃 학교, 나아가 지역과 국가의 경계까지도 허물어야 한다. 자신이 내는 목소리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교사들은 입 다물고 하라는 대로만 하라'는 교육 당국의 명령에도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 환경은 신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과 특수한 이해관계에 결부된 인간들이 만든다. 그러므로 교사의 권위, 교육 시스템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고 인간이 만든 환경의 부산물에 불과한 것을 절대적 기준인 양 휘둘러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이 증언하듯, 성스러운 장막을 두르고 있던 교실은 그 어떤 곳보다 폭력이 난무하는 장소였다. 난무하던 폭력의 많은 부분이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진화되어 재생산되고 있다. 누구 좋으라고 있는지 모를 성스러운 장막 따위는 이제 걷어내야 한다. 교실에 필요한 건 신의 장막이 아니라 인간들 사이의 신뢰다.


먹고사는 문제에만 혈안이 되어 있고, 시민의 의무와 권리에 무관심하고, 자신의 계급적 이익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하고, 선동의 먹이가 되고, 민주주의의 원칙을 짓밟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인류가 어렵게 쌓아 올린 민주주의의 가치들을 파괴한다. 그런 사람들을 길러내는 교육은 존재할 필요도 존재할 가치도 없다. 배움이 아이들을 고통스럽게 해서는 안 되지만, 지적 갈망과 가능성을 방임하는 교육이어서도 안 된다. 교육이 사회화와 재생산의 도구로만 기능한다면 학교와 교사는 존재하지 않는 편이 낫다. 학생들은 세계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세계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교사들의 지적 헌신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

 

김현희 

1982년에 대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일반 대학교를 2년쯤 다니다 자퇴했다. 이후 교대에 입학하여 2007년 3월에 초등교사가 되었다. 교사생활 초기에는 주로 고학년 담임을, 최근 몇 년간은 영어교과 전담을 맡아 일했다. 2016년 4월부터 《딴지일보》에 ‘SickAlien’이라는 닉네임으로 학교에 관한 글을 연재했다. 영화 보는 것이 취미인 평범한 한국의 평교사다.

 

 

차례

 

책을 펴내며 | 교사의 책임

 

01 10년 차 초등교사가 푸는 교육계 미스터리
이상한 선생 질량 보존의 법칙 | 내가 만난 이상한 교사

 

02 권력에 취한 교사들
합리적 의심 | 교사의 권력과 권위

 

03 교권 추락은 교사 스스로 만든 역사
교권은 학생으로부터 나온다 |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 교사의 적은 누구인가 | 다시, 이상한 교사

 

04 보통 사람들
권위에 순응하는 사람들 | 위험한 보통 사람들

 

05 교직윤리를 새롭게 정립하자
교직을 바라보는 관점 | 교사의 직업윤리

 

06 관성의 법칙
사례1. “에어컨 좀 틀어주세요!” | 사례2. 배구, 배구, 배구! | 관성의 법칙

 

07 교사의 적은 학부모?
극성맞은 학부모라는 프레임 |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 교감, 교장도 교육 현장으로 나오라 | 학부모는 교육의 협력자

 

08 교사로 산다는 것
“너는 공부 잘해서 좋겠다” | 학교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 교사 S와 교사 B | 아둔함과 사악함

 

09 교대는 바보 양성소
예비교사를 바보로 만드는 커리큘럼 | 왜 교대에는 이상한 교수가 많은가 | 교대가 배출한 교사들 | 2년제 교대를 나온 선생님이 내게 남긴 것

 

10 전교조, 분열이 아닌 확장으로
전교조 조합원이 되기까지 | 개혁은 아래로부터 | 학생의 이익은 교사의 이익과 함께한다 | 연대를 위한 물리적 공간 | 받수 받으며 떠나게 하자

 

11 참을 수 없는 도덕 교과서의 경박함
합리적인 판단 능력 성장을 방해하는 도덕 | 감정과 생각을 강요하는 도덕 | 낡고 불완전한 관념을 강요하는 도덕 | 자기계발, 정신승리, 과도한 긍정을 강요하는 도덕 | 현실과 맥락이 없는 공허한 도덕

 

12 유아 수준의 대통령, 어린이 수준의 학교
대통령의 도덕적 수준 | 도덕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13 급식도 교육이다
폐쇄적인 부서 이기주의와 학교 급식 문제 | 부당한 대우에 시달린 막말 조리종사원들

 

14 관료제 유토피아
무상급식, 복지인가 시혜인가? | 무책임의 윤리, 악마는 디테일 속에 | 마법의 단어: 빨갱이, 종북좌파, 외부세력 | 부실 급식 사태 속 괴물, 관료주의 | 학교운영위원회는 왜 급식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까?

 

15 교사의 지적 헌신 그리고 민주주의
‘융합’, 학습에 늘 효과적인가? | 구체적 조작 활동을 많이 하는 것이 항상 옳은가? | 학생들이 전문가처럼 지식을 ‘융합’ ‘창조’할 수 있을까? | 지식 교육이 필요 없다는 헛소리 | 지식은 끊임없이 변한다 | 지식은 구속이 아닌 자유다

 

우주적 상상력을 과시하며 1000만 관객 동원을 눈앞에 두고 있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인터스텔라>. 인기가 어찌나 많은지 요즘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며 허니버터칩을 먹는 게 한국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올 정도입니다. 오늘은 우주적 상상력의 즐거움을 주는 영화와 달리 노동자의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애환을 그려낸 영화 <카트>입니다.

 

<카트>는 대형마트 비정규직과 정규직 직원들이 부당하게 해고를 당한 뒤 노조를 결성해 사용자 측의 횡포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려낸 영화입니다. 2007년 7월 비정규직법 시행을 전후로 벌어진 이랜드 리테일 소속 유통업체 계산원 노동자들의 투쟁을 극적으로 재구성했지요. 당시 상암 월드컵경기장역 근처를 지나가 본 분이라면 홈에버 앞에서 연일 벌어지던 파업 투쟁을 기억하실 겁니다. 우리 생활에 밀접한 마트 비정규직의 파업을 모티브로 하고 있기에 이 영화는 아주 현실감 있게 다가옵니다.


출처 – 카트 누리집



영화 카트의 실화, 2007년 이랜드 홈에버 사태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영화 카트의 모티브는 2007년 이랜드 홈에버 사태였습니다. 당시 이랜드 그룹은 2년 이상 근무한 상시고용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을 앞둔 시점에, 홈에버의 계산원 등 비정규직을 포함해 계열사 근로자의 700여 명을 해고합니다. 이 중에는 계약 기간이 끝나지도 않은 근로자도 많았습니다. 이랜드 그룹은 일방적으로 해고를 통보하고 그들의 일을 외주 용역으로 전환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해고된 노동자들은 사용자 측의 불합리한 조처에 반발하며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 있는 홈에버를 점거하고 농성에 돌입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희생 끝에 마무리되어 노동자가 계산대로 돌아가기까지 이 사태는 510일이나 이어졌습니다.


출처 - 프레시안


비정규직보호법은 2년을 초과해 기간제 근로자로 근무하는 경우 무기 계약 근로자로 전환하도록 법으로 보증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기업이 정규직 전환을 막기 위해 이 법을 악용해 노동자를 고용한 뒤 2년이 되기 전에 해고를 일삼는 작태를 보여왔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고용 불안이 본격화된 출발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요. 생각비행이 출간한 책,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 설명서》의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시점이 2년인 경우에, 이 기간이 끝나는 시점에 계약 만료 없이 계속 근무하게 되면 입사일로부터 2년이 되는 바로 다음 날부터 더 이상 기간제 근로자가 아닙니다. 계약 기간이 끝나고 '상당 기간' 더 근무를 해야만 갱신이 인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법이 명확하게 '2년'을 정해놨기 때문입니다. 만약 2년이 넘은 며칠 후 회사에서 계약 만료를 통보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기간 만료에 따른 계약 해지'가 아니라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를 일방적으로 '해고'하는 것과 같습니다.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 설명서》 105쪽

14. 계약 기간이 끝났는데 재계약 없이 계속 일하고 있으면 어떻게 되나요?


이처럼 계약 기간에서 하루만 넘어도 근로자의 신분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탐욕적인 기업들은 기를 쓰고 2년 안에 해고하려고 열을 올리는 이유가 됩니다.



억울하지 않으려면... 아는 것이 힘!


영화 <카트>에서 태영이는 수학여행비를 벌기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급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오히려 따귀를 맞습니다. 태영이의 여자친구가 분을 참지 못하고 편의점 유리문을 깨자 편의점 사장을 포함해 세 명이 경찰서로 끌려갑니다. 급히 경찰서를 찾은 태영이의 엄마(선희)가 아들에게 묻습니다. 왜 그랬느냐고. 그때 태영이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억울해서..."


사실 그 심정은 마트에서 파업 중이던 선희가 싸우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그저 계속 일하게 해달라고, 우리를 투명인간 취급하지 말아라고 하는 소박한 바람뿐이었는데, 이토록 냉혹한 현실과 마주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분기탱천해 편의점 사장한테서 아들의 급료를 기어이 받아낸 선희는 아들에게 돈을 건네며 힘들게 번 돈이니 네가 받아 쓸 권리가 있다고 얘기해줍니다.
 

출처 – 카트 누리집


사실 이런 상황은 영화에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도 노동법을 잘 모르는 사회 초년생한테서 이른바 '열정페이'라며 뜯어먹는 나쁜 어른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애초에 억울할 일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게 가장 좋겠지만, 당장 현실이 바뀌지는 않기에 당하지 않으려면 역시 '아는 게 힘'입니다. 노동법을 안다면 아르바이트든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반드시 근로계약서를 쓰셔야 합니다.
 

2.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 조항

근로계약에서 정한 임금이 '최저임금'에 모자랄 수 있습니다. 주로 급여 수준이 적은 경비직, 생산직, 일용직, 아르바이트생의 경우에 이런 일이 많이 발생합니다. 최저임금은 최저임금법에 의해 매년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되고 고용노동부 장관 고시로 이듬해 적용됩니다. 근로계약에서 정한 임금이 그 해 최저임금보다 적으면 사용자는 그 차액을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강행법규인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 설명서》 82쪽

07. 근로계약서에서 무엇을 살펴봐야 하나요? 중 <근로계약서에 있더라도 효력이 없는 규정들>


근로계약서를 썼더라도 악덕 사장이 네가 서명한 계약서니 지키라고 강요하더라도 효력이 없는 규정에 관한 내용은 잠자코 넘어가지 마세요. 최저 임금보다 낮은 금액을 임금으로 지급했다면 사장의 잘못입니다. 아르바이트비와 별도로 법에 따라 처벌받게 할 수도 있으니 당당하게 나가시기 바랍니다.


출처 – 카트 누리집


이는 비정규직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 너무 만연해 있어 무심코 넘어가곤 하는데 원래 같은 일을 하는 근로자라면 정규직/비정규직에 따라 급여를 차별할 수 없습니다.


2007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일명 '비정규직 보호법')에서는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임금 등 근로조건에 정규직과 차별을 둘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비정규직 차별이 있다면 노동위원회에 차별 시정을 신청하고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이때 차별에 대한 입증 책임을 '사용자'가 지도록 해서 사용자가 차별이 없었음을 입증하지 못하면 차별로 인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 설명서》 353쪽

55. 비정규직이면 정규직과 비슷한 일을 해도 월급이 적은 건가요?


다만 이 경우 법적 표현이 미비해 현실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나 노무사 등 전문가의 판단이 필요한 경우가 빈번합니다. 따라서 비슷한 상황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을 때는 가급적 함께 행동하는 편이 좋습니다. 노동위원회에 차별신청을 할 때에는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대표자를 선정해 진행할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있다면 도움이 되겠지만, 일반적으로 비정규직은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어렵고, 차별 시정의 문제에서는 정규직 노조가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시정이 됨으로써 혜택을 볼 수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들과 충분히 논의한 후 신중하게 진행하는 편이 바람직합니다. 단독으로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전문가의 조언을 구해 향후에 있을 상황을 충분히 예측하고 진행한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뭉치면 강하다! 

노동조합이라는 하나의 대안


아이 급식비와 수학여행비를 버는 선희, 싱글맘 혜미, 면접만 50번 넘게 떨어진 취업 준비생 미진, 나이가 들었어도 안락한 생활을 꿈꾸기 힘든 순례... 영화 <카트>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뭉쳐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보여줍니다. 노동조합이 뭔지 노동법이 뭔지 몰랐던 사람들이 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점차 변화되는 모습을 포착합니다. 노조는 근로자의 당연한 권리이자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영화 <카트>에서처럼 또는 뉴스에서 흔히 보이는 장면처럼 노사 간 충돌이 생길 때 노동자의 연대를 막는 공권력 행사가 비일비재하니까요.


출처 – 카트 누리집



노동조합 활동과 관련해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라고 합니다. 불이익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해고, 퇴직 강요, 전보, 대기발령 등 신분적인 불이익 대우가 있고 차별적 승급, 강등, 각종 수당의 차별적 지급 등을 통한 경제적 불이익 대우도 있습니다. 이 밖에도 다양한 형태의 정신적 불이익이나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방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사용자가 부당노동행위를 하면 노동위원회에 권리를 침해받은 근로자나 노동조합이 구제신청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노동위원회에서 부당노동행위로 판정하면 구제명령을 내리는데 구제명령의 내용은 각 신청 취지에 따라 다릅니다.

 

노동조합이 여러 활동을 할 수 있지만 '정당한' 활동이어야 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정당한 쟁의행위(파업 등) 중에는 민형사상 책임이 면제되고 현행법 외에는 노동조합법 위반을 이유로 구속되지 않습니다. 정당한 쟁의행위에 참여한 것을 이유로 해고 등 불이익 취급을 할 수 없고, 파업으로 중단된 업무를 대체근로자나 파견근로자를 통해 수행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 설명서》 441~443쪽

73.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 불이익이 있나요?


그렇지만 영화 <카트>가 잘 그려내듯이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이라도 현실에서 무력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정권이 정책 차원에서 노조를 핍박하는 경우 더더욱 어렵습니다. 준법투쟁조차 불법으로 낙인을 찍어 기소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영화 <카트>에서도 공권력이 투입되어 마트를 점거했던 근로자를 모조리 연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출처 – 카트 누리집



준법투쟁은 겉으로는 파업이나 시간 외 근로 거부나 연차휴가 사용 등 근로자에게 법이 보장한 정당한 권리를 집단적으로 행사하거나 작업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입니다. 이런 집단행동으로 인해 근로 제공의 양이나 질이 평소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실상 노무 정지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파업이나 태업을 하지 않고도 사업 운영에 큰 지장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준법투쟁으로 생긴 피해를 본 사용자들은 이것이 불법이라고 주장하면서 불법쟁의에 대한 다양한 제재 조치를 취해 노동조합의 준법투쟁을 막으려 합니다.


준법투쟁이 불법인지 아닌지는 일단 준법투쟁이 쟁의행위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쟁의행위는 파업, 태업 등 주장을 관철할 목적으로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입니다. 준법투쟁의 불법 여부를 놓고 많은 법적 분쟁이 발생해왔습니다.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 설명서》 448쪽

77. 준법투쟁이 왜 불법인가요?


 

지난 12월 2일 《매일노동뉴스》가 보도한 <파업노동자 대상 손해배상 청구액 10년 새 9배 증가> 기사는 가히 충격적입니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민주노총 산하 노조에 청구된 손해배상 규모가 10년 전인 2004년 51개 사업장 575억원에서 올해는 17개 사업장 1천691억6천만원으로 대폭 늘었"으며 "2004년에는 사업장당 평균 손배청구액이 평균 11억3천만원 수준이었다면, 올해는 그 규모가 사업장당 99억5천만원으로 9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합니다. 파업 한 번 했다가 하나의 사업장에 소속된 노동자들이 떠안아야 하는 배상 규모가 약 100억 원에 달한다니 기가 막힙니다.


근래 정당한 파업에도 기업들이 엄청난 액수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해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현실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노동자가 평생토록 일해도 갚을 수 없는 천문학적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는 기업의 속내가 달리 있겠습니까? 기업의 요구에 불응하는 근로자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막고 노조의 단합을 와해하려는 심보에 불과하지요. 따라서 기업 차원에서 시도하는 막대한 규모의 배상청구는 소송의 결과와 상관없이 기업의 이익에 반하는 세력의 목소리를 잠재우는 불법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이에 미국의 법조계는 기업의 부당한 소송을 조기 각하하거나 약식판단으로 기각하고 소송 비용을 제소자에게 부담하게 하는 법리적 판단을 발전시켰습니다. 2010년 현재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27개 주에 전략적 봉쇄소송 규제법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법은 멀고 주먹이 가까운 대한민국에서 <카트>의 마지막 장면(비정규 노동자의 근무 복귀)은 510일을 투쟁한 끝에 노조 지도부가 희생하는 것을 조건으로 이뤄진 사실입니다. 절반의 성공이자 절반의 실패였던 셈이죠.



'중규직'이라는 웃기고도 슬픈 현실,

연대만이 현실을 변화시킬 원동력!


2014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영화보다도 가혹합니다. 며칠 전 박근혜 정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중규직'을 신설하겠다고 했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보호되고 있는 귀족 노조인 정규직의 권리를 빼앗아야 한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이는 영화 <카트>의 모티브가 된 이랜드 홈에버 사태 때부터 예견된 일이기도 했습니다. 

 

영화에서 정규직 대리인 동준은 양심의 가책을 받지만 대부분의 정규직은 나랑 상관없는 비정규직의 일이라며 처음에는 무시합니다. 하지만 곧 사측의 진짜 의도는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정규직까지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한 후 마트 자체를 팔아넘기려는 속셈임을 알게 되죠. 이로써 남의 일이 아니게 된 정규직들도 노조를 만들어 비정규직 노조와 힘을 합칩니다. 사측의 설득에 떠밀려 복직한 직원들과 마트 밖에서 싸우고 있던 직원들이 함께 카트를 밀며 사측과 공권력에 맞서는 장면은 그런 의미에서 상징적인 연대입니다.


출처 – 카트 누리집


이 영화를 보고 문재인 의원은 비정규직 보호법을 만든 참여정부의 한 사람으로서 사과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보호와 정규직 전환을 촉진하려는 뜻에서 비정규직 보호법을 만들었는데, 막상 법이 시행됐을 때 사용자들이 외주용역이나 사내하청으로 법망을 빠져나가는 작태를 막지 못했다고 인정하면서 말이죠.

 

비정규직 문제를 악화시키고 이제 정규직마저 망가뜨리려는 이명박근혜 정부 사람들이 과연 문재인 의원처럼 생각을 돌이킬 날이 올까요? 그날이 오게 하려면 우리는 연대해야 합니다. 비정규직도, 노동조합도, 파업도 유별나거나 특별한 사람들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의 범위를 따로 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법원은 민법 제35조(법인의 불법행위능력)를 유추 적용해 불법파업에 대한 노조의 민사적 책임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결국 파업의 정당성을 가리는 기준인 파업 주체·목적·방법(수단)·절차 중 하나라도 갖추지 못하면 불법파업이 되어 그에 따른 민사적 책임을 면하기가 어려운 구조입니다. 

 

대한민국 사회가 노동자들의 권리행사와 노동 삼권을 억압할 목적으로 제기되는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법리를 마련해가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갈 길이 멀지만 하나하나 바꿔야 합니다. 이를 위한 연대만이 현실을 바꿀 동력입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세계인의 축구 대축제 2014 월드컵이 드디어 개막했습니다. 특히 이번 월드컵은 영원한 우승 후보인 브라질에서 열려 관심이 더욱 뜨거운데요, 안타까운 평가전 성적을 거둔 대한민국 선수단이 과연 어떤 경기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스포츠 축제인 월드컵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이는 축구를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만은 아닙니다. 정재계 관계자들도 월드컵 시즌이 되면 큰 관심을 보입니다. 브랜드 가치 상승과 그에 따른 경제 효과 때문인데요. 과연 브랜드 가치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출처 - 매일경제


월드컵, 올림픽의 브랜드 가치와 경제효과

KDI(한국개발연구원)은 2001년 5월 <2002 한일월드컵 경제파급 효과>라는 보고서를 낸 바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월드컵의 직접효과로 총 3조 4707억 원의 지출을 통하여 부가가치 5조 3357억 원, 생산유발효과 11조 4797억 원, 고용 35만여 명이 창출되는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또한 월드컵의 국가홍보효과는 올림픽을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어 국가 이미지 제고 효과가 매우 클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수출증대, 관광 및 스포츠마케팅산업 진흥, 지역경제 활성화 등 무형의 간접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한편 영국의 앳킨슨 연구팀은 영국 국민을 대상으로 2012년 런던 올림픽의 무형적 가치(intangible value)를 조사한 바 있습니다. 특히 국제 스포츠 대회가 사회 부문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했는데요, 영국 국민은 올림픽을 통해 청소년이 스포츠 활동에 참여하는 동기 부여의 계기가 된다는 점을 가장 큰 효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다음으로 국민통합, 영국 국민으로 자부심 고취, 올림픽 대회 시설 유산, 장애인 올림픽을 통한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 대회 준비과정에서 환경의 질 개선, 건강한 생활 촉진, 올림픽 기간의 다양한 사회문화 이벤트 순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번 브라질 월드컵은 어느 정도의 경제효과를 가져올까요? 《비즈니스워치》의 분석에 따르면 브라질이 월드컵을 통해 누리게 될 경제부양 효과는 국내총생산(GDP)의 1.5퍼센트에 해당하는 240억 달러(2조 5000억 원)에 이를 전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25만 명의 고용창출 효과도 전망되었습니다. 브라질을 방문할 관광객 수도 2014년 이후 평년보다 70퍼센트 가량 늘어나 6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었고, 이런 기대감은 곧 주가 상승으로 이어졌습니다. 브라질이 월드컵 개최국으로 선정된 2007년 한 해 동안 브라질 주가는 44퍼센트나 치솟았죠. 월드컵과 증시는 꽤 높은 상관관계를 보입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월드컵 개최국 증시는 월드컵을 치른 후 약 한 달간 다른 증시보다 우월한 수익률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참고 기사: [월드컵 이펙트]①`지상최대 이벤트` 경제효과는 (비즈니스워치))

출처 - 한국일보

월드컵에서 우승한다면 증시는 더욱 오르겠지요. 2002년 브라질을 제외하고는 1974년 이후 우승한 국가의 증시는 한 달간 시장수익률을 웃돌았다고 하니까요. 이렇듯 오늘날 월드컵과 올림픽 같은 세계적 규모의 스포츠 마케팅 시장의 힘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마찬가지여서 국가, 기업 간 경쟁도 날로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브랜드 이미지 상승에 따른 브랜드 가치의 제고는 기업과 국가에 투자 대비 어마어마한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출처 - 매일경제
 

2002년 한일 월드컵으로 KT는 100배 이익 효과

이번에는 한 기업의 수준에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지난 2002 한일월드컵 공식파트너였던 KT는 400억 원 정도를 투자해 100배가 넘는 5조 원 이상의 효과를 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2010 남아공월드컵의 경우 FIFA의 공식 파트너 6개사와 스폰서 8개사가 제휴해 쏟아부은 마케팅 비용은 20조 원에 달했죠. 공식 후원사가 아닌 다국적기업도 스포츠 마케팅으로 80조 원가량의 비용을 썼다고합니다. 마케팅 부문의 월드컵 시장 규모만 어림잡아도 무려 100조 원을 넘어서는 셈입니다. (참고 기사: 기업 월드컵 마케팅 열기 '후끈'(메트로))

출처 - 주간한국
 
2002년 한일 월드컵으로 현대자동차는 브랜드 인지도가 10퍼센트 상승해 65억 달러(6조 2200여억 원)의 경제효과를 거뒀고, 독일 월드컵에서는 96억 달러의 경제효과를 누렸다고 합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국내 기업 중 유일하게 공식 파트너로 선정된 현대/기아 자동차는 벌써부터 이번 월드컵의 최대 수혜자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기업부터 국가, 이제는 개인에 이르기까지 관리의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는 브랜드. 그렇다면 과연 브랜드는 어디에서 유래했을까요?


브랜드, 차별에서 구별로 발전하다


낙인제도는 고대 로마에도 있었다. 로마제국은 수많은 민족을 식민지로 거느렸다. 하지만 정부의 감독이 조금만 느슨해지면 어디선가 폭동이나 반란이 일어났다. 이를 예방하기 위한 로마의 형벌은 잔혹하고 무서웠다. 벌을 받은 뒤에도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평생 감출 수 없도록 얼굴에 인두로 죄명을 지져 새겼다. 한편 유럽에서는 가축한테 낙인을 찍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거론하는 브랜드(brand)라는 용어가 노르웨이의 옛말인 ‘brandr’에서 유래했다. 이 말은 ‘달구어 지진다’는 뜻으로, 이웃 목장의 가축과 내 집의 가축을 구별하기 위해 가축의 등이나 엉덩이를 불에 달군 인두로 지져 표시했던 데에서 나왔다.


이처럼 브랜드는 애초에 '차별'의 의미로 시작되었으나 점차 '구별'의 뜻으로 발전합니다. 제품을 생산한 장인의 이름을 새겨넣거나 만든 길드의 이름을 적어넣는 것에서 품질과 서비스를 보증한다는 초기 브랜드 개념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죠.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을 거쳐 미국의 동서를 연결하는 대륙 횡단 철도가 등장하면서 브랜드는 폭발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합니다. 현대로 접어들어 기업의 이미지를 대변하던 브랜드가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국가와 개인 차원의 이미지까지 구축하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가장 치열한 브랜드 각축장 중 하나가 바로 월드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브랜드가 너희를 보증하리라

2003년 문화관광부 국가브랜드 경영연구소에서 나온 <문화를 통한 국가브랜드가치 제고전략 보고서>는 1988년 서울 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견인한 국가 브랜드 가치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출처 - 문화를 통한 국가브랜드가치 제고전략 보고서
 

1990년대까지 한국의 국가이미지는 대체로 한국전쟁, 분단국가, 군부독재, 시위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경제발전, 친절한 국민성, 서울올림픽 등의 긍정적인 이미지보다 우세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제경영전략연구원의 조사결과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한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로 분쟁지역(24.7%), 군부독재, 시위(2.0%)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경제발전(9.3%), 근면, 친절한 국민성(9.1%), 서울올림픽 및 2002년 월드컵대회 개최지(7.7%) 등의 긍정적 이미지를 압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2002년 월드컵대회를 전후로 한국은 부정적인 국가이미지를 벗어나 역동적인 국민성, 우수한 기술력, 오랜 역사와 다양한 문화를 보유한 국가라는 긍정적 이미지가 확산되고 있다. 해외홍보원이 2001년 8월부터 9월까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선진 5개국 4,259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국가이미지 조사결과에 의하면, 응답자들은 한국의 전반적인 성장, 경제발전, 민주화 및 기술수준 등에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해외홍보원, 2001). 이 같은 조사결과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월드컵대회를 계기로 한국의 해외 인지도와 긍정적 이미지는 많이 높아졌다.


1988년 서울 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일제 식민지 지배, 전쟁의 상흔과 폐허, 극단적 가난이라는 대한민국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대외적으로 크게 전환한 계기가 되었음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뿐 아니라 각국 정부는 국가 브랜드 가치 상승을 위해 점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국제관계연구소의 피테르 반함은 2001년 가을《포린 어페어(Foreign Affairs)》에 기고한〈브랜드 국가의 번영(The Rise of the Brand State)〉이라는 글에서 현대에 들어와 국가도 브랜드화되었으며 과거 외교, 경제적 계산에 입각한 전통적인 국가 경영보다 국가 브랜드 구축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지적하며 자국의 브랜드 관리가 각국 정치인의 주된 임무로 떠오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즉 상품을 파는 기업만큼이나 국가도 외교적인 목적 달성, 외국인 투자 유치, 자국 기업을 국가 이미지로 지원하기 위해 국가 브랜드 구축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다.

출처 - 국민일보

브랜드 구축과 브랜드 가치 상승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의 브랜드는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왔습니다. 기술의 국산화로 가격은 낮추되 품질을 높여 수입제품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각종 신기술 개발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소비자는 과거의 소비자와는 다릅니다. 품질도 중요하지만 품격 있는 소비를 하고 싶어하는 소비자가 늘어났습니다.

시장 상황이 변화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의 브랜드 역사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브랜드는 어떤 역사를 거쳐 오늘에 이른 걸까요? 생각비행의 신간 《브랜드 임팩트―부채표 활명수부터 카카오톡까지, 대한민국 브랜드 역사 120년》이 펼쳐낼 이야기입니다. 월드컵 시즌에 우리 토종 브랜드의 탄생, 성장, 혁신의 역사, 브랜드 가치와 사회적 영향력을 소개하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윈도XP 지원 종료, 무엇이 문제인가?

IT 세계의 일세를 풍미했던 OS인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XP 지원 종료가 일주일 남짓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컴퓨터를 아예 못 쓰게 되는 것이 아니고 윈도 업데이트 지원이 중단되는 것 정도로 웬 호들갑이냐 싶은 분이 계시다면 생각을 바꾸시는 편이 좋습니다.

자동차도 10년이면 폐차를 고려할 세월인데, 윈도XP는 출시한 지 12년이 넘었다는 얘기니까요. 윈도XP가 나올 당시는 아이폰 같은 스마트폰은 고사하고 인터넷 보급이 한창일 때였고, 오늘날 공룡 포털이 된 네이버가 걸음마를 시작한 기업이었습니다. 그 유명한 지식in 서비스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던 시절입니다. 안 그래도 IT업계의 1년은 다른 업계의 10년만큼 변화가 빠르다고 하니 얼마나 오래전 일인지 이제 실감이 나시나요?

출처 - 매일경제

이렇게 오래된 OS이다 보니 윈도XP는 이제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인터넷 보안 위협이 고도화된 사회를 고려하여 나온 설계가 아니어서 땜질식 업데이트로는 대응하기가 힘들어진 겁니다. IT업계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가가 4월 8일 윈도XP 지원을 종료하면, 그 즉시 제로데이 공격(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취약점을 공격하는 기술적 위협으로 해당 취약점에 대한 패치가 나오지 않은 시점에 재빨리 이루어지는 공격)이 발생하리라 예측하고 있습니다.

4월 8일 윈도XP 지원 종료를 앞두고 세계 각국은 수년 전부터 준비에 바빴습니다. 여전히 많은 국가의 정부, 금융권, 개인이 윈도XP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은 MS와 윈도XP 기술지원 기간을 놓고 협상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국가건강서비스(NHS)가 가입자 의료정보와 같은 민감 데이터를 보안 위협에 노출시킬 가능성을 우려해 최소 1년 이상 MS에 기술지원 연장을 요청한 상태다.

일본은 특히 지방 정부가 과세 및 주거 등 민감 정보를 다루는 행정용 PC에 윈도XP를 여전히 사용중이며 대책 방안으로 인터넷선을 뽑은 상태로 쓰거나 백신SW를 최신 상태로 유지하게 하는 등 여러 방안을 고심중이다.

중국은 전체 PC의 25% 가량이 윈도XP를 사용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MS에 윈도XP의 지원기간을 연장할 것을 요청했지만, MS는 중국 정부의 요청을 거절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중국의 대형 IT회사인 텐센트, 킹소프트, 소우거우 등이 MS를 대신해 기술지원이 종료되는 4월 8일 이후 윈도XP 시스템 업그레이드와 보안기능에 대한 기술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독일은 MS에 공식적으로 지원 연장을 요청하지 않고, 운용체계(OS)를 리눅스 기반으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독일 정부의 이같은 결정은 특정 업체의 OS 종속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ATM현금인출기 해킹 비상

각국 정부가 수년 전부터 비상 사태를 대비한 데 비해 우리 정부는 아직고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은 별다른 대응방안이 없고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지시받은 바도 없다고 말하고 있고, 미래창조과학부의 주무 부서인 정보보호정책과와 소프트웨어정책과는 서로 자기 관할이 아니라며 떠넘기기에만 급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민의 개인 정보를 세계인의 공공재로 유출하고 있는 보안 불감증의 나라다운 모습입니다.

출처 - 한겨레

보안업계에 따르면 국내 윈도XP 점유율이 18퍼센트 대로 낮아졌지만 이는 공식적인 수치일 뿐 실질적으로는 25퍼센트 이상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백번 양보해 개인용 PC야 그렇다 치더라도, 윈도XP를 쓰고 있는 정부 및 공공 기관 PC, 기업용 PC에 내장된 비밀 문건과 장부들이 안전할까요? 윈도XP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4월 8일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MS Office)에 해당하는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 같은 프로그램 2003 버전도 지원이 종료됩니다.

여기에 윈도XP 계열의 내장형 OS인 임베디드 OS를 사용하는 산업용 기기나 의료용 기기, 편의점 등 점포의 출납을 정산하는 POS, 돈을 직접 담당하는 은행의 ATM에 이르기까지 윈도XP가 쓰이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이것들이 오작동을 일으키거나 금융 오류가 생긴다면 큰 혼란이 일어나겠죠. 더구나 윈도XP의 지원이 중단되고 해커들이 본격적으로 공격을 시작하면 이는 개인정보 유출과는 차원이 다른 재앙을 가져올 겁니다.

출처 - 지디넷

직접적인 예로 우리나라 은행 ATM을 살펴보죠. ATM이 윈도XP와 무슨 상관인가 하고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입출금 업무를 자동화한 ATM은 키보드와 마우스를 감췄을 뿐, 일종의 컴퓨터이고 화면에 보이는 메뉴는 소프트웨어입니다. 이 ATM 프로그램이 현재 대부분 윈도XP를 기반으로 운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ATM의 수는 어마어마합니다.

21일 금융 및 ATM 업계 전문가에 따르면 국내 시중 은행에서 운영하는 ATM의 80% 이상이 윈도XP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MS가 4월 8일 윈도XP 지원을 종료한 이후에도 이들 ATM을 운영하게 되면 각종 보안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 ATM은 단순 입출금, 송금뿐 아니라 공과금 납부, 티머니 충전, 인터넷 전화 기능까지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5월 금융감독원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전체 8만대 CD/ATM 가운데 97.6%인 7만8000대가 윈도XP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은행은 심지어 더 낮은 버전인 윈도2000과 윈도CE 6.0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시중은행의 한 ATM 담당자는 “OS를 교체해야 하는데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며 “기능적인 측면에서 윈도7이 특별한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기기마다 일일이 SW를 교체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고, 단순히 OS만 바꿔서 해결될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매우 고민스럽다”고 털어놨다.


최대 97.6퍼센트, 최소 80퍼센트 이상의 ATM이 윈도XP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는 XP보다도 더 낮은 윈도2000이나 윈도CE 등으로 돌아가고 있고요. 은행권이 인력과 비용을 감축한다며 ATM만 늘려놓고 보안에는 나 몰라라 한 게 현재 우리나라 은행의 보안 실태입니다. 물론 은행은 약간의 변명은 하고 있습니다. 한번 보실까요?

17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 신한 우리 하나은행 등 주요 은행들은 1년 전부터 관련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MS 본사 지원 종료에 대비해왔다. 국민은행은 업무용 단말기, 노트북의 경우 대부분 윈도7로 전환했다. 신한은행도 다음 달 8일 전까지 영업점에서 사용하는 모든 PC를 다른 운영체제로 바꿀 계획이다. 다른 은행들도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는 업무용 PC 중 윈도XP 운영체제를 쓰는 PC인 경우에는 대부분 다른 운영체제로 변경했다. 전국의 은행 지점에 설치된 현금자동입출금기(ATM)의 90% 이상이 윈도XP를 사용해 보안에 취약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은행권과 금융당국은 ATM이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폐쇄망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운영체제 지원 종료에 따른 큰 혼란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와 달리 수익 문제가 걸린 은행권은 1년 전부터 사내에서 인터넷과 연결된 PC의 업그레이드를 마쳐가는 중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ATM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는데요. ATM은 인터넷과 직접 연결이 된 것이 아니어서 계속 써도 문제가 없다는 게 은행권의 입장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은행 ATM에서 내 돈이 털릴지도 모른단 걱정이 과연 기우에 불과할까요? 은행이 걱정 말라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출처 - MBN

시만텍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 XP 서비스 종료가 다가오면서, 문자 메시지를 통해 현금을 인출하게 하는 악성코드를 발견했다고 27일 밝혔다. 시만텍은 2013년 하반기 멕시코에서 외부 키보드를 통해 현금자동입출력기(ATM)에 저장된 현금을 인출하는 악성코드 `Backdoor.Ploutus'를 발견했다. 또 모듈식 아키텍처로 변형된 악성코드 `Backdoor.Ploutus.B'도 추가로 발견했다. 이 악성코드는 영어로도 번역돼 공격자가 다른 나라에도 이를 유포할 의도가 있었다는 게 회사측의 분석이다.


기사의 내용이 복잡하지만 간단히 말해 ATM에 설치된 윈도의 보안 취약점을 이용해 해커가 스마트폰으로 문자만 보내면 ATM에서 돈을 인출할 수 있는 악성코드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얘깁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보안전문업체인 시만텍은 하드디스크를 암호화하거나 기타 보안 솔루션을 사용할 수 있겠지만, 윈도XP를 가능한 한 빨리 최신 OS로 업그레이드하라고 권고합니다.

출처 - 조선일보

이렇게 실존하는 위협이 눈앞에 있는데 정부와 금융사들은 보안 불감증에 부족한 예산을 탓하며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습니다. 개인정보 유출처럼 ATM의 돈도 1000만 명 단위로 유출되어야 대책 수립에 나설 건가요? 

정부의 늑장 대응과 기업들의 안이한 인식, 예산 부족 등으로 이들 기기 대부분은 업그레이드를 하지 못한 채 다음달 8일을 맞게 될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은 지원 종료 이후에도 현금지급기의 90% 이상 대부분이 엑스피 또는 이하 버전으로 그대로 운용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송현 금감원 아이티(IT)감독국장은 “8일 전까지 상위 버전으로 교체하도록 권고해 왔는데, 업체들이 비용 부담과 윈도 운영체제 종속 문제 등으로 교체가 미흡했다. 강제는 할 수 없기 때문에 각사 최고정보책임자(CIO) 등에게 대책 제출 및 최고경영자(CEO) 보고를 하도록 하고 개인정보 유출 때 강력 제재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또 이들 기기와 외부망의 연결을 끊도록 지도했다고 밝혔다. 이미 예정된 종료 시한에 추가 연장까지 있던 상황에서 사실상 거의 업그레이드가 이뤄지지 않은 점은 정책상 ‘책임 방기’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승주 교수는 “엑스피 문제의 핵심은 정부의 늑장 대응이다. 최근 해킹 기술 등을 보면 인터넷 등에 연결되어 있지 않더라도 직접 기기를 통해 취약점으로부터 정보를 빼낼 수 있는데 앞으로 큰 보안 사고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뒤늦게 한국인터넷진흥원 보호나라를 통해 윈도XP 지원 종료 이후에 대응할 백신을 무료 배포하겠다거나 장차 탈 윈도 할 수 있는 리눅스나 자체 OS를 개발하겠다며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여태까지 보안에 돈을 안 들일 수 있었던 것을 오히려 능력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이런 안일함과 무능력이 만나 앞으로 큰 재앙이 벌어지지 않을지 걱정스럽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곳에서부터 밑바닥을 드러내 보이는 상황에서 창조경제를 하겠다고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