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수준이 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만, 지난 11월 1일 YTN이 보도한 <[2022 대선] 안철수 대선 출마, 캐스팅보트의 위력?>이라는 뉴스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대선출마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의 환담을 두고 이정미 정치부 기자가 전달한 내용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출처 - YTN

 

[안철수 / 국민의당 대표 : 저는 서울시장에 당선이 되면 도중에 서울시장 그만두고 대선에 나가는 일은 없다, 그렇게 말씀드린 겁니다.
[이준석 / 국민의힘 대표 : (안철수 후보가 출마선언, 야권 표 분산 지적 나오는데….) 무운을 빕니다. (알겠습니다.)]

...(중략)...


여기에 대해서 아까 이준석 대표의 말, 짧아서 제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답한 게 무운을 빕니다. 보통 행운을 빕니다라고 얘기하잖아요. 이것을 말을 바꿔서 안철수 대표에게 무운을 빈다, 운이 없기를 빈다라고 짧게 약간 신경전을 펼쳤습니다.

 

출처 - YTN

 

처음 이 보도를 봤을 때 말문이 막혔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무운(武運)’을 '무운(無運)'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냥 넘길 일은 아니겠지요. 그것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중요한 정치 이슈를 보도하는 정치부 기자가 하는 말이니까요. 혹시나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신입기자라서 긴장했거나 한자어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세대여서 벌어진 일종의 해프닝이 아닌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만, 알고 보니 17년 차 선임기자로 경력이 상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쯤 되니 걱정이 더 커졌습니다. 생각비행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문해력 저하와 이를 부추기는 언론의 심각성에 관한 글을 여러 번 올리기도 했으니까요.

 

실질문맹률 OECD 최하위권 대한민국의 슬픈 초상https://ideas0419.com/457
'사흘'이 급상승 검색어가 되는 사회, 무엇이 잘못된 걸까? : https://ideas0419.com/1087
세계가 열광하는 K-콘텐츠, 정작 우리의 한국어 사용 능력은? : https://ideas0419.com/1229

 

사람이기에 의도하지 않은 실수를 범할 수는 있습니다. 평소 잘 아는 단어라도 특정 상황에서 혼동할 수도 있는 일이죠. 하지만 이번 YTN 보도를 보면 정치부 기자가 '무운'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전달하고 있는데도, 앵커 두 사람은 이를 정정해주지 않고 그냥 넘깁니다. 이런 점 또한 큰 문제가 아닐까 싶군요. 

 

출처 - 네이버

 

하지만 진짜 문제는 보도 말미에 발생했습니다. 제작진이 YTN 이정미 정치부 기자에게 발언에 문제가 있었다는 언질을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보도 말미에 용어를 혼동했다거나 미처 잘 몰랐다고 밝히고 정정할 기회가 있었다는 얘깁니다. 그런데도 이정미 기자는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를 변명으로 때워버립니다. 제작팀의 지적에 대해 이정미 기자는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제가 아까 이준석 대표의 발언에 무운을 빈다에서 무운을 행운이 없는 없을 무 자라고 해석을 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조금 전에 저희 팀에서 전달을 해온 걸 보니까 이 무운이 한자어로 무에 전쟁 이런 무술 무 자를 쓰게 되면 전쟁 따위에서 이기고 지는 운수라는 의미가 또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준석 대표가 어떤 의미로 한 것인지 중의적인 표현을 만약에 썼다면 단순히 비난하기보다는 결투에서의 운수에 대해서 언급을 한 걸 수도 있다는 지적이 들어와서 이것은 제가 나중에 이준석 대표께 어떤 의미였는지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이정미 기자는 자신이 해석한 '무운(無運)'이 맞다고 우기며 무운이라는 말을 중의적으로 쓸 수 있는 말인 양 호도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준석 대표에게 어떤 의미로 말한 것인지 확인하겠다고 합니다. 이 정도 상황에 이르면 기자정신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군요. 헛소리를 하는 건 기자인데 왜 부끄러움은 시청자의 몫일까요? 자신이 틀릴 리 없다는 오만함, 잘못을 지적해줘도 고치려 하지 않는 뻔뻔함, 잘못을 남에게 돌리는 책임전가를 보면서 정치부 기자가 정치인이 다 됐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잘못된 보도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시인하고 신속하게 바로잡는다"는 기자 윤리강령을 되새길 때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일반 회사에서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실시간 공개 행사, 아니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이 타사와의 공식 미팅에서 17년 차회사원이 저런 소릴 했다고 가정해보죠. 상대 회사에 얕보이는 건 둘째 치고 최악의 경우 회사에 대한 신뢰에 치명타가 되어 계약이 무산될 수도 있습니다. 말과 글을 전문으로 하는 분야가 아닌 일반 기업이더라도 그냥 넘길 일이 아닌데, 말과 글로 먹고사는 기자가 제작진이 실수를 바로잡아주어도 뻔뻔하게 변명을 늘어놓으니 윤리 의식이 있긴 한 건지 의구심이 듭니다. 정치인의 말실수는 대서특필하면서 같은 언론의 실수는 슬쩍 넘기는 언론의 풍토도 문제입니다. 가재는 게 편이요,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이 생각나는군요. 국어를 제대로 배우려면 언론의 사설, 논설, 기사를 읽으라고 하시던 어르신들의 말씀이 그야말로 옛말이 되어 버린 세태를 안타까워해야 하는 걸까요?

 

출처 - 로이터

 

언론계에서 그나마 신뢰받는 언론으로 꼽히는 YTN 기자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최근 언론에서 단어의 뜻과 관련된 논란만 해도 '사흘', '명징과 직조', 여기에 '무운'까지 더하게 되었습니다. 트럼트 전 미국 대통령 시절이긴 합니다만, 외국어였던 "long gas line"에 대한 오역까지 생각하면 대부분 일반인이 아닌 언론의 잘못이 문제였습니다. 기레기들이 왜곡을 일삼고 거짓을 전하니 사람들은 반지성주의에 물들고 결과적으로 언론의 질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듯합니다. 온갖 '밈'과 '줄임말에 찌든 기사 제목'도 모자라 기삿거리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찾는 행태를 보며 혹자는 '기레기'라는 표현조차 무색하다고 비판합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마당에 이런 현실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아 참 암담합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지만, 그 시작은 노동절입니다. 지난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존중사회 실현이 이 정부의 목표 중 하나라는 것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현재 근로자의 날인 5월 1일을 정식으로 '노동절'로 바꾸고 법정공휴일로 정하자며 5월 임시국회 처리 필요성을 주장했습니다. 그간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이 비준되고 지난해 노동자 전태일 열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는 등 변화의 흐름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노동 현장에서 일상으로 벌어지는 안타까운 청년들의 죽음을 마주하노라면, 그 노동 환경과 관련된 변화의 흐름이 너무나도 더디다는 생각이 듭니다.

 

출처 - KBS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300kg이 넘는 철판에 깔려 숨진 대학생 이선호 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다들 아실 겁니다. 선호 씨는 그날도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중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평택항에서 개방형 컨테이너 내용물 검수를 포함해 다양한 작업을 했습니다. 선호 씨는 코로나로 어려워진 가정 형편 때문에 곧잘 아버지를 따라나섰다고 하죠. 하루 9시간을 일하고 손에 쥐는 일당은 9만 8000원이었습니다. 

 

출처 - 한겨레

 

선호 씨가 일하던 노동 현장에는 문제점이 많았습니다. 원청인 동방은 현행법을 어기고 불법 파견 행위를 했습니다. 게다가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개방형 컨테이너를 다루는 일은 평소 선호 씨가 하던 업무가 아니었다고 하죠. 처음 투입되는 현장에서는 안전 교육을 통해 작업의 위험성이나 주의 사항 등을 숙지하게 되어 있지만, 실제로 그런 교육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지게차 같은 중장비를 사용하는 현장은 작업 지휘자나 유도자가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그것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선호 씨 사고는 장비 노후화가 원인이었습니다. 개방형 컨테이너의 날개가 제대로 고정되지 않아 진동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참사가 일어난 겁니다. 숱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던 현장에서 선호 씨는 안전모도 없이 안전 교육도 받지 못한 채 그야말로 주먹구구식으로 투입되었습니다.

 

출처 - JTBC

 

그러므로 선호 씨의 죽음에는 국가의 책임도 있습니다. 평택항이 국가의 기간시설인 만큼 정부가 안전 관리 감독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평택항은 노동자의 신원 확인 같은 기초적인 절차도 밟지 않았습니다. 보안 교육이나 안전 교육은 물론 근로계약서를 쓴 적도 없죠. 그런데 정말로 끔찍한 일은 사고가 발생한 직후 현장의 대응이었습니다. 300kg이 넘는 컨테이너 날개에 깔린 선호 씨를 구하러 간 사람은 같이 있던 외국인 노동자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는 당장 119에 신고하라며 무거운 컨테이너 날개를 들어 올리려다 허리를 다쳤습니다. 그런데 정작 주변에 있던 한국인 현장 인원들은 119 신고보다 윗선에 보고부터 하고 있었습니다. 사고를 당해 생명의 빛이 사라져 가는 상황에서 컨테이너 날개에 깔린 선호 씨를 30여 분이나 방치한 겁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사고 현장을 마치 중계라도 하듯 원청에 보고부터 한 행태를 뒤늦게 알게 된 선호 씨 아버지는 그야말로 피가 거꾸로 솟았겠지요. 아버지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아들 선호 씨의 이름은 '삶의 희망'이었다고 합니다. 아들의 허망한 죽음이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되고 자식을 둔 대한민국의 부모가 이 일을 다 알아야 한다며, 선호 씨 아버지는 기자들에게 얼굴도 이름도 가리지 말라고 호소했습니다.

 

출처 - MBC

 

원청인 동방은 선호 씨가 사망한 지 무려 20일이 지난 지난 12일에야 공식적으로 사과했습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언론 앞에서 보이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였을 뿐, 정작 유가족에게는 기자회견을 알라지도 않았습니다. 피해자와 유족에게 직접 하지 않는 사과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출처 - 미디어스

 

선호 씨 같은 청년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대하는 언론의 태도도 문제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또 한 청년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를 뒤흔든 한강 의대생 실종 및 사망 사건입니다. 똑같은 청년의 죽음이지만 언론의 접근과 보도 방식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한강 의대생 사건은 사건 초기에 미스터리물을 다루듯 선정적 기사를 양산하더니 급기야 장례식장의 추모사까지 생중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숱한 기자들의 선정적인 추리 극장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에 반해 평택항 선호 씨의 사망 사건은 거의 묻히다시피 했다가 SNS와 커뮤니티 등에서 문제를 제기한 끝에 뒤늦게 언론 보도를 타기 시작했죠. 하지만 두 사건의 기사량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를 보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두 사건 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가 안타깝게 사망한 사건이고, 자식을 먼저 보낸 아버지의 애끊는 마음이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왜 이렇게 언론의 보도 시점과 보도 방식이 다른 건지, 그 이면에 어떤 이유가 작동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부모와 사고 당사자의 사회적 지위가 이런 이상한 보도 양상의 원인이라면, 참으로 치가 떨리는 일 아닐까요? 극단적으로 다른 언론의 대응 양상이 누군가의 죽음을 모욕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출처 - JTBC

 

올해 노동절을 맞아 전태일 열사의 일기장 원본이 50년 만에 처음 공개되었죠. 스물두살 청년 전태일의 일기장 맨 앞장에는 단 두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내일을 위해 산다. 절망은 없다.’

 

전태일 열사가 1970년 평화시장 앞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스스로 몸에 불을 질러 숨진 지 50년이 흘렀습니다. 전태일 열사가 그토록 바란 내일일 텐데 지금 노동자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우리 주변에는 노동기본권조차 적용받지 못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이 60%에 달합니다. 전태일 열사의 꿈이 이뤄지려면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고 더 많은 시간이 지나야 하는 걸까요?

국정감사가 한창입니다. 그런데 국민의힘 측 전·현직 국회의원들을 대하는 검찰과 법원의 태도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시사저널


나경원 전 의원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이 통으로 기각되면서 법조계의 제 식구 감싸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비슷한 사례였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관련해서는 70회가 넘는 압수수색이 이뤄지는 동안, 나경원 전 의원과 관련된 영장 청구는 청구 횟수도 적었지만 모든 영장 청구가 법원에서 기각되어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이 지난 7일 국회 법사위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언급한 바에 의하면 일반 국민의 영장기각률은 1%인데 사법농단 관련 영장 기각률은 90%에 이르고 나경원의 영장 기각률은 현재 100%입니다. 이건 누가 봐도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YTN


나경원 전 의원의 아들 입시비리 의혹 등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이 최근 관련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부분 기각이 아니라 통째로 기각한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특히 나경원의 선거법 위반 혐의, 스페셜올림픽 관련 의혹들은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탓에 검찰의 의도적인 봐주기식 부실 수사라는 의혹이 제기됩니다. 또한 현재 부장 판사로 재직 중인 나경원의 남편을 의식한 법조계 카르텔의 제 식구 감싸기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됩니다.


출처 - 네이버


문체부 감사 결과 나경원의 스페셜올림픽 관련 15건의 비리와 대한장애인체육회 관련 비리 5건은 모두 사실인 것으로 확인이 된 상황인데도 그렇습니다. 채용비리와 자녀 부정입학 등 죄질이 무거운 범죄만 11건입니다. 이런 나경원 전 의원과 관련된 영장이 모두 기각되는 와중에 나경원 고발인은 1년 동안 고발인 조사만 10번을 받았습니다. 이쯤 되면 누가 고발인이고 누가 피의자인지 헷갈리는 상황입니다.


출처 - 뉴시스


지지부진한 나경원 관련 범죄 수사를 보다 못한 시민단체들은 검찰이 조속히 수사하지 않으면 감찰을 청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죠. 이미 확인된 혐의들도 있는데 검찰과 법원 모두 눈치만 보고 있다는 겁니다.


출처 - MBC


한편 국회 국토위 간사로 활동했던 박덕흠 의원 일가가 보유한 건설사들이 피감기관으로부터 수천억에 달하는 공사를 수주받았다는 의혹에 대한 수사도 지지부진합니다. 박덕흠은 정치적 공세라며 현재 국민의힘을 탈당하여 무소속인 상태지만 의원직을 내놓지 않았고 의혹에 대해 당당히 밝힌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밝혀지는 의혹이 한둘이 아닙니다.

출처 - 경향신문


박덕흠 의원은 일가가 운영하는 건설사들을 통해 확인된 것만 해도 2000억 원대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단순히 이해충돌 의혹을 넘어 뇌물죄가 성립할 수 있는 것이 아닌지 따져봐야 할 정도로 중대한 사안입니다. 왜냐하면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검찰의 봐주기가 있었던 것이 아닌지 의심 가는 정황도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한겨레


2008년 건설사들의 담합, 일명 짬짜미 때도 처벌을 모면했는데요, 판결문에 박덕흠이 담합을 지시했다고 명시될 정도였지만 명목상 업체 대표가 아니라는 이유로 검찰은 기소조차 안 했습니다. 공정위에서도 대표가 아니라며 조사도 안 했고요. 당시 박덕흠은 직원을 시켜 입찰금액 등을 전달하고 17개 업체를 가담시켜 514억 원짜리 공사의 담합을 주도했습니다. 이처럼 명백히 드러난 비리를 검찰과 공정위가 짬짜미하여 수사를 하지 않는 식으로 봐주기를 한 겁니다.


출처 - 한겨레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박덕흠은 과거 대한전문건설협회장 등을 지낼 때 친형의 아들과 출신 학과 교수의 딸, 입찰 담합을 대행한 일가 소유의 건설사 간부 아들, 전 서울시 공무원 등을 건설협회에 입사시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현재 의혹이 드러난 사람만 25명에 달합니다. 중견기업 이상의 연봉을 받는 이 협회에 들어간 25명의 낙하산 인사들의 일부는 아직도 재직 중이라고 하죠. 이 비리 의혹에 대해 박덕흠과 협회 모두 묵묵부답인 상태입니다.


출처 - JTBC


이렇게 아들을 낙하산으로 꽂아줬기 때문인지 박덕흠의 친형은 회삿돈을 횡령해 2012년 총선 당시 박덕흠의 선거에 썼다가 구속된 전력이 있습니다. 친형이 횡령한 회삿돈은 당시 한나라당 기초의원 낙선자와 지역신문사 대표 아들 등에게 들어갔습니다. 선거법 위반으로 유죄가 확정되었는데요. 박덕흠의 친형이 회삿돈을 횡령한 곳은 파워개발인데, 박덕흠이 국회 국토위에 있을 당시 파워개발이 231억 원 규모의 공사를 따낸 것으로 드러나 가족 전체가 돌고 도는 공생관계였음이 드러났죠. 이해충돌에 담합, 채용비리를 보노라면 리틀 이명박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출처 - 아이엠피터


이 정도의 비리를 저지른 사람인데도 박덕흠 관련 의혹 보도가 적은 이유가 있습니다. 언론사의 지분을 보유한 건설사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함께 의혹이 일었던 추미애 장관 아들에 대한 보도에 비하면 박덕흠 비리 관련 보도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적었습니다. 지상파 중 SBS의 최대 주주는 잘 알려졌다시피 태영건설입니다. TV조선은 부영주택이 지분을 갖고 있습니다. 《헤럴드경제》는 중흥그룹, 《서울신문》은 호반건설, 《영남일보》는 동양종합건설, 경기방송은 호주건설 등으로 언론사의 대주주 혹은 최대 주주가 건설사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마디로 언론사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권력은 정부도 시민도 아닌 토건 기업과 그 관계자들인 셈입니다. 토건족의 카르텔이 제 식구 감싸기를 하고 있으니 언론 보도의 형평성이 어그러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출처 - 뉴시스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 박덕흠 무소속 의원의 의혹을 무마하는 세력을 보면 현재 우리나라의 돈과 권력을 누가 쥐고 있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시쳇말로 기레기와 판레기, 떡찰이 서로서로 감싸는 이유 역시 드러납니다. 적폐 청산은 시작조차 제대로 못 했다는 점을 인식하고 시민이 앞장서서 기득권층을 견제할 때입니다.

지난 6월 정의기억연대가 운영하는 마포구 쉼터 '평화의 우리집' 손영미 소장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타살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고 고인이 지인들에게 검찰 압수수색과 언론의 취재 경쟁으로 스트레스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죠. 미래통합당 곽상도 의원은 손영미 소장의 사망 경위에 대해 "자살이란 결론을 미리 내놓고 제대로 조사를 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면서 음모론을 펼쳤습니다. 곽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당선인에 대해 재산 증식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었죠. 그는 윤미향 당선인과 윤 당선인의 부친, 남편이 1995년부터 2017년까지 다섯 채의 집을 모두 현금으로 샀다고 주장하며 검찰의 자금 출처 수사를 요구했습니다. 과연 사실이었을까요? 윤미향 당선인이 가지고 있는 집은 1억 8600만 원 본인 명의 아파트와 배우자 고향에 4740만 원 빌라로 총 두 채였습니다. '다섯 채'가 어디에서 나왔는가 하니 1995년 결혼할 때 산 빌라를 사고판 횟수를 단순히 더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곽상도 의원의 말도 안 되는 ‘다섯 채’ 주장을 그대로 받아 적기에 급급했습니다.

 

출처 - 뉴스1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지난 6월에 비정규직 보안검색 노동자 1902명을 청원경찰 신분으로 직접 고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뉴스1〉은 '알바 하다 연봉 5000, 소리질러…공항 정규직전환, 힘빠지는 취준생' 기사에서 한 오픈채팅방 이용자가 쓴 글을 그대로 인용하는 기사를 냈습니다. 하지만 글의 내용은 허위였습니다. 뉴스를 보도한 〈뉴스1〉 기자는 "사실 여부는 공사 등에 확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보를 받아서 쓴 기사다. 그 방은 실제 인천공항 직원들이 만든 방"이라면서 "5000만원이 맞는지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다. 기사의 논조는 취준생과 청년들에 대한 공정성"이라고 했다고 하죠.


출처 -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언론의 가짜뉴스, 오보는 수없이 많지만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과 관련한 오보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며칠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고인이 남긴 의혹은 차치하고 실종 소식이 알려지고 사망이 확인된 약 7시간 동안 '기레기'들의 작태가 벌어집니다. 사망이 확인되지 않은 시점에 사망 기사를 냈다가 기사를 삭제한 언론이 있는가 하면, 지라시에 도는 정보를 사실관계 확인도 없이 보도한 언론도 있고, 경찰 브리핑 당시 고인의 자살 방법과 시신 훼손 상태를 묻는 기자들마저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언론의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난 순간이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사실 확인을 위한 최소한의 취재마저 게을리하는 기레기들에게 오보에 대한 책임의식이나 직업윤리가 있을 리 만무합니다. 힘들게 취재하느니 오보건 뭐건 자극적인 뉴스로 조회 수나 높이는 편이 훨씬 돈이 될 테니까요. 하루에도 몇 번씩 보게 되는 이런 쓰레기 기사를 걷어내려면 가짜뉴스나 오보를 양산하는 언론사에 무거운 책임을 지워야 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지난 6월 9일 가짜뉴스를 보도한 언론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악의적'으로 인격권을 침해한 행위가 명백하다고 판단한 언론사에 대해 기존 손해배상액의 최대 3배로 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 내용입니다. 


출처 - 민중의소리


지난 6월 22일 〈미디어오늘〉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가짜뉴스 보도 언론사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관련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도했습니다. 리서치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81%로 압도적이었습니다.  

 

출처 - 미디어오늘

 

정청래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의미는 있으나 기존 배상액이 너무 적게 책정되어 있어 3배라고 해도 과연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본연의 취지를 살릴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언론중재위원회가 2018편에 펴낸 〈언론관련판결 분석보고서〉에 집계된 2009년~2018년의 손해배상 청구사건 2220건을 분석한 결과 손해배상 판결 인용액은 500만 원 이하가 47.4%, 500만~1000만 원 사이가 23.4%였다고 합니다. 70%가 1000만 원 이하인 셈이죠. 국민의 알 권리를 빙자해 무분별한 오보,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언론사에게 이정도 손해배상 판결 인용액이 과연 위협이 될까요? 여름이면 계곡에서 불법 영업을 하는 식당들은 벌금 몇백, 몇천을 내더라도 한 철 장사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불법을 저지릅니다. 이처럼 기존 손해배상 판결 인용액만 놓고 보면 언론사들은 '그깟 벌금 내고 말지' 정도의 솜방망이 처벌로 느끼지 않았을까요?


출처 – 미디어오늘


정청래 의원은 지난 6월 10일에는 언론중재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하 개정안)입니다. 이 법안에는 정정보도, 반론보도, 추후보도 청구권 행사 조항에 원 보도의 지면 및 분량으로 게재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오보가 1면 10매였다면 정정보도도 1면 10매여야 한다는 얘깁니다. 현재는 피해자나 그 대리인과 내용, 크기를 협의한다고 되어 있는데, 개정안은 분량과 지면 위치를 법으로 정하겠다는 겁니다. 일반적인 스트레이트 기사가 200자 원고지 6매, 톱 기사의 경우 10매를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언론중재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정정보도문은 대부분이 3매 이하였기 때문입니다. 갈수록 선동기사와 가짜뉴스, 오보가 늘어나지만 정작 정정보도는 찾을 수도 없는 지면 구석에 처박아놓는 행태를 더는 좌시할 수 없다는 겁니다.

 

출처 - 서울신문


 

가짜뉴스는 언론 신뢰도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뿐 아니라 피해 당사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대로 된 반론권도 보장받지 못하죠. 세계 주요 40개국에서 진행한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 한국인의 언론 신뢰도는 올해도 역시나 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2016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한 번도 바닥을 벗어난 적이 없다고 하죠. 


출처 - 서울신문 / 디지털뉴스 리포트2020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기자협회는 정청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밝혔습니다. 한국기자협회는 '[우리의 주장] 언론 보도 징벌적 손해배상제 신중해야'라는 기사를 통해 "미국에서 법은 기자들에게 손해를 입힌다기보다 기자를 보호하기 위한다는 개념이 강하다. (미국에서) 기자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경우 기자와 언론사가 악의를 갖고 해당 보도를 했다는 것을 증명해내는 것은 원고의 책무이며, 승소는 어렵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로 회사가 송두리째 날아가는 게 비일비재한 소송의 나라 미국을 두고 이게 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겠습니다.

 

출처 - 한국기자협회

 

1999년 언론중재위원회 정기세미나에서 배금자 변호사가 발표한 〈보도와 명예훼손-한미간 비교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1998년 공인이 제기한 소송에서 언론 승소율이 75%에 달한다고 하는군요. 이는 반대로 말해서 25%의 언론사는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평균 위자료는 150만~200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20~25억 원 정도입니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기사를 남발하지 못할 액수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기자협의가 우려하듯이 개정안으로 기자의 보도 활동이 다소 위축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팩트체크도 없이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기레기는 확실히 줄일 수 있게 되겠죠. 

 

출처 - 국경 없는 기자회

 

국제 언론 감시단체인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발표한 '2020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2019년보다 1단계 하락한 42위에 올랐습니다. 아시아 국가 가운데는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지만, 앞서 언급한 《서울신문》 보도처럼 국민들은 언론을 신뢰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6월 22일 정준희 교수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언론 스스로가 낮은 언론 신뢰도를 초래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정 교수는 "언론 자유도는 정권이 바뀐 이후로 높아지고 있다"면서 "(이번 조사 결과는) 언론 환경이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정도밖에 안 나오냐’는 실망감이 크게 표현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출처 -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정준희 교수는 "편향되지 않은 뉴스를 선호하는 국가들을 보면, 기성 언론이 중립적 저널리즘을 지향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예컨대 독일은 굉장히 엄격하다. 공영방송 같은 곳에 대한 신뢰감이 남아 있고, 시민들이 '(중립적 언론을 통해) 유익감을 성취할 수 있다'고 보는 태도가 형성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 교수는 “중립적 저널리즘 경험을 제공해 주지도 않았으면서 소비자가 원래 편향됐다고 말하는 건 옳지 않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YTN

 

생각비행은 일전에 〈가짜뉴스와 오보 양산하는 기레기, 비판과 감시 절실하다〉라는 글을 썼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공백 상태에 있는 것이 언론에 대한 비판과 감사가 아닌가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나쁜 언론사는 온갖 오보와 가짜뉴스로 수많은 사람과 기업을 망하게 해놓고 '아니면 말고'라며 입을 씻습니다. 언론의 자유라는 허울 좋은 방패 뒤에 숨어 자기네 이익 챙기기에 바쁜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출처 - 민중의소리

 

이제 언론, 방송에 대한 자정은 바랄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습니다. 언론, 방송에 대한 정화를 위해 오보에 대한 정정보도를 1면에 싣게 하거나 뉴스 도입부에 정해진 시간만큼 충분히 내보내도록 의무화하고 중대한 오보에 대해서는 아주 무거운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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