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이제 곧 겨울입니다. 눈도 내리겠지요. 푸름을 자랑하던 나무도 낙엽을 떨구며 겨울로 향하고 있고 2012년도 11월을 넘어 2013년을 향해 달려갑니다. 올 1월에 세웠던 계획을 온전히 이루지 못했더라도 한 해를 잘 보내겠다던 생각은 간직하면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내년을 준비하며 보냈으면 합니다. 

2012년은 12월에 있을 대통령선거로 마감합니다. 대한민국의 정계를 둘러보면 많은 정치가가 입문할 때 다짐했던 첫 마음을 잊고 사는 듯합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정치를 시작한 사람이 없진 않겠지만, 대개는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정계에 들어왔겠지요. 부디 그 초심을 기억하고 실천하기 바랍니다. 특히 대통령이 될 유력 후보들이 출마하면서 했던 말을 끝까지 지키기 바랍니다.

 


초심

눈 오는 아침은
설날만 같아라

새 신 신고 새 옷 입고
따라나서던 눈길
어둠 속 앞서가던 아버지 흰
두루막 자락 놓칠세라
종종걸음치던 다섯 살
첫길 가던 새벽처럼

눈 오는 아침은
첫날만 같아라

눈에 젖은 대청마루
맨발로 나와
찬바람 깔고 앉으니
가부좌가 아니라도
살아온 흔적도 세월도
흰 눈송이 위에 내리는
흰 눈송이 같은데

투둑, 이마를 치는
눈송이 몇
몸을 깨우는 천둥 소리

아, 마음도 없는데
몸 홀로 일어나네
몸도 없는데
마음 홀로 일어나네

천지사방 내리는 저 눈송이들은
누가 설하는 무량법문인가

눈 오는 아침은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첫날만 같아라

많은 사업가가 기업을 처음 시작하던 때의 마음을 잊고 지냅니다. 자신의 부를 위해, 돈에 대한 욕심으로 사업을 시작한 사람도 있겠지만, 대개는 노동자와 사회에 보탬이 되는 기업가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사업을 시작하고 기업을 키우려고 열심히 노력했을 겁니다. 하지만 욕망이란 괴물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런 순수한 사람들의 초심을 앗아갑니다.

초심을 잃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과연 어디에서 차이가 생겼을까요. '조금'과 '지금'의 차이가 아닌가 합니다. 아주 조금, 조금만 더 사업체를 키운다면 사회를 위해, 직원들을 위해 무언가를 실천하겠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조금'을 기다리는 사업가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실천할 기회가 오지 않습니다. 사업체가 커가는 사이 변하는 자신을 합리화하기 바쁘고, 거래처에 부담을 지우고, 직원의 노동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악덕 기업주로 변해버립니다. 반면 초심을 잃지 않는 사업가에게는 '지금'이 중요합니다. 현재 상황에서 자신이 처음 생각한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다음이 아니라 바로 지금 초심을 실천하려 합니다. 

시인은 초심을 "눈 오는 아침은 / 설날만 같아라"라고 표현하는데, '눈이 오는 아침'이 '설날'로 이어지면서 눈에 이입된 초심의 이미지가 확대되는 효과를 거둡니다. 어린 시절 설날은 흥분되고 기다려지는 가장 풍요로운 날입니다. 떡국과 맛난 음식, 세배하고 받는 세뱃돈 등 어린 시절의 설날을 생각하면 언제나 설레는 기억뿐입니다. 이런 기억은 "종종걸음치던 다섯 살 / 첫길 가던 새벽처럼" 새 신에 새 옷 입고 아버지를 놓칠세라 따라가는 다섯 살 아이의 설레면서도 조급한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이렇게 시인은 설빔을 입고 아버지를 따라 설을 보내러 가는 다섯 살 아이의 마음으로 ‘눈이 오는 날을 설날 같다’고 초심을 묘사합니다. 시인에게 초심은 다섯 살 아이의 마음으로 설날을 맞는 벅찬 감정인 셈입니다. 

어린아이의 초심은 "눈 오는 아침은 / 첫날만 같아라”처럼 눈이 오는 첫날 아침의 이미지로 성장하여 어른의 눈으로 '초심'을 생각합니다. 초심은 다섯 살 어린아이의 천진한 설날에서 새로운 계획을 세우며 다시 힘을 내어 살아야 하는 첫날로 변화합니다. 지나온 모든 흔적을 덮는 눈, 아무도 밟지 않는 눈, 그것을 보는 시인은 처음 품었던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는 첫날을 느낍니다.

 

"눈에 젖은 대청마루 / 맨발로 나와 / 찬바람 깔고 앉으니 / 가부좌가 아니라도"라는 표현에서, 어른으로 성장한 시인이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설날을 맞이하는 다섯 살 아이의 설레는 시각과, 오랜 시간 현실과 맞서 싸우면서도 초심을 잃지 않고 버티는 현재의 시점으로 떨어지는 흰 눈송이를 봅니다. 그런 마음이기에 "살아온 흔적도 세월도 / 흰 눈송이 위에 내리는 / 흰 눈송이 같은데”라고 자신이 걸어온 세월과 초심을 돌아볼 수 있었겠지요.
  
일관된 삶을 이어가려고 노력하는 시인이지만 혹여 초심을 잃을 수도 있을까 싶어 자신을 경계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런 심정이 "투둑, 이마를 치는 / 눈송이 몇 / 몸을 깨우는 천둥 소리"라는 표현에서 잘 드러납니다. 아주 작은 눈송이가 이마에 떨어졌을 뿐인데도 시인은 그것을 천둥소리로 느끼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초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이지요. 시인에게 이러한 충격은 지금까지 견지해온 삶의 무게에서 기인합니다. 그 충격이 "아, 마음도 없는데 / 몸 홀로 일어나네 / 몸도 없는데 / 마음 홀로 일어나네"와 같은 깨달음으로 이어집니다. 천지에 내리는 눈송이를 보며 누가 설하는 무량법문인가 하고 스스로 묻지만, 사실 시인은 이미 답을 얻었습니다. 고승의 설법이 아니더라도 시인의 이마를 적시는 흰 눈송이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하고 잊지 말아야 할 초심을 일깨워주었기 때문입니다. 눈을 맞으며 깨달음을 얻은 시인이 눈 내리는 아침을 새롭게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래서 아마도 "눈 오는 아침은 /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 첫날만 같아라"라는 표현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제 곧 서울에도 첫눈이 내리겠지요. 흩날리는 눈을 맞으며 지난날의 흔적을 지우려 하기보다 어린 시절 품었던 이상과 올바름을 간직하고 있는지, 그리고 현재 여러분의 삶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백무산
1955년 경상북도 연천에서 태어났다. 1984년 《민중시》 1집에 <지옥선> 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80년대 노동의 삶에 관한 관심을 시적으로 형상화하기 시작한 그는 자본의 무한 잡식성을 비판하고 자본의 가치를 넘어서는 인간의 근원에 대한 생각들을 시에 담아내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90년에 출간한 그의 두 번째 시집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는 '정치 조직을 통한 노동자 계급의 권력 획득'을 선언하며 노동계급의 투쟁을 직설적으로 노래했다. 1988년 말부터 1989년 초까지 약 4개월여에 걸쳐 진행된 울산 현대중공업 대파업투쟁을 한 편의 완결된 장시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작가의 실제 삶이 문학적 표현으로 투영된 흔치 않은 경우라 할 수 있다.
시집으로 《만국의 노동자여》《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인간의 시간》《길은 광야의 것이다》《초심》《길 밖의 길》《거대한 일상》《완전에 가까운 결단》《그 모든 가상자리》 등이 있다. 1989년 제1회 이산문학상, 1997년 제12회 만해문학상, 2007년 제6회 아름다운 작가상, 2009년 오장환문학상, 제1회 임화문학상 등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이제 곧 10월의 마지막 날이 옵니다. 그날이 되면 라디오에선 어김없이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란 노래가 하루에도 몇 번씩 전파를 탑니다. 그리고 그날 밤엔 무슨 까닭인지 술을 마셔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그리움을 담은 노랫말 때문이겠지요. 

10월의 마지막 밤이 오는 길목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마음을 노래한 유하의 시를 읽었습니다. 언어 기교가 뛰어나지만 그 때문에 무게감이 좀 떨어진다는 느낌을 주는 시인 유하, 하지만 그의 시에는 ‘끌림’이 있습니다. 아마도 최근 시인들이 쓴 시들이 읽기에 어려움이 있는 반면 시인 유하의 작품은 파격적인 면이 있으면서도 어렵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당신

오늘밤 나는 비 맞는 여치처럼 고통스럽다
라고 쓰다가, 너무 엄살 같아서 지운다

하지만 고통이여, 무심한 대지에서 칭얼대는 억새풀
마침내 푸른빛을 얻어내듯, 내 엄살이 없었다면
넌 아마 날 알아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열매의 엄살인 꽃봉오리와
내 삶의 엄살인 당신,

난 오늘밤, 우주의 거대한 엄살인 별빛을 보며
피마자는 왜 제 몸을 쥐어짜 기름이 되는지
호박잎은 왜 넓은 가슴인지를 생각한다

입술을 달싹여 무언가 말하려다,
이내 그만두는 밑둥만 남은 팽나무 하나

얼마나 많은 엄살의 강을 건넌 것일까

누군가를 사랑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입니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것입니다. 연애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아니 연애가 쉽다는 사실을, 아니 연애는 어렵지도 쉽지도 않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연애는 쉬울 수도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연애를 ‘밀당’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연애는 쉽다거나 어렵다거나 하는 말을 하기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연애는 바로 ‘사랑’을 사이에 둔 남녀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첫눈에 서로 반해서 사랑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미워하는 감정 혹은 무관심에서 시작하여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랑을 키워 연애합니다.

“오늘밤 나는 비 맞는 여치처럼 고통스럽다 / 라고 쓰다가, 너무 엄살 같아서 지운다”는 내용을 보면 아마도 이 시의 시적 자아는 글을 쓰는 시인 자신인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아픔으로 ‘비 맞는 여치처럼’ 고통스럽다고 하다가 다시 지웁니다. 사랑의 슬픔은 일반적인 고통과 다르기 때문이지요. 그러다가 이내 시인은 “하지만 고통이여, 무심한 대지에서 칭얼대는 억새풀”이라고 다시 말합니다. 여치의 울음에서 억새풀이 부딪히며 내는 칭얼거림으로 소리의 확장에 따라 시인의 슬픔도 커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슬픔의 증폭은 사랑의 전술입니다. “마침내 푸른빛을 얻어내듯, 내 엄살이 없었다면 / 넌 아마 날 알아보지도 못했을 것이다”라는 표현을 보면 억새의 칭얼거림이 푸른 억새의 모습을 완성하듯 시인의 엄살은 사랑하는 ‘당신’에게 자신을 각인시키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이 작업은 성공했습니다.  비 맞은 여치 같은, 억새의 칭얼거림 같은 시인의 모습은 시인을 알아보게 했으니까요.

사실 시인 유하는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보통 연애가 잘 안 풀리는 건, 에고라는 함정에 빠지기 때문이에요. 우린 대개 상대방에 집중하기보단, 자기 자신에 더 관심이 가 있기 일쑤이지요. 물론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정작 스스로를 더 사랑한다는 점이 문제예요. 바로 그 때문에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무리한 행동이 돌출할 수밖에 없는 것이구요”
― 진이정 발문, <유하, 오래 오래 뒤돌아보는>, 《세상의 모든 저녁》 중에서

이 말은 젊은 나이의 유하, 아니 김병준이라는 본명을 가진 평범한 남성이 친한 선배인 진이정에게 한 말입니다. 시인은 자잘한 연애 경험을 많이 한 사람이고 그래서 실연도 많이 한 사람입니다. 많은 연애 경험으로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정작 스스로를 더 사랑한다는 점”이 연애가 안 풀리는 이유라는 결론까지 내립니다.

하지만 <당신>이란 시에서 이러한 깨달음은 무의미합니다. 자신의 고통스러운 엄살로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으니까요. “열매의 엄살인 꽃봉오리와 / 내 삶의 엄살인 당신,”이란 표현을 보면 ‘엄살이 사랑의 대상, 가장 중요한 삶 자체’가 됩니다. 꽃이 피면 열매를 맺지만 꽃은 곧 떨어지겠지요. 꽃이 시들어가면 열매는 익어갑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지요. “열매의 엄살인 꽃봉오리”에서 바로 이어지는 “내 삶의 엄살인 당신”을 위해 시적 자아는 희생할 수도 혹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유부단한 시인은 “난 오늘밤, 우주의 거대한 엄살인 별빛을 보며 / 피마자는 왜 제 몸을 쥐어짜 기름이 되는지 / 호박잎은 왜 넓은 가슴인지를 생각한다”에서 보이듯이 고민에 빠지고 맙니다. 연애가 잘 안 풀리는 이유가 ‘상대방을 사랑하기보다 스스로를 더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을 더 사랑했던 시인은 더욱 고민에 빠집니다. 우주가 별빛을 내기 위해 어둠으로 희생하는 것을 보며, 자신을 쥐어짜 기름을 만드는 피마자를 생각하고 호박꽃이 호박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지켜보며 이 둘의 사랑을 감싸주는 넓은 가슴을 가진 호박잎을 생각합니다. 아마도 시인은 ‘당신’에게 보내는 엄살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고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때문인지 “입술을 달싹여 무언가 말하려다, / 이내 그만두는 밑둥만 남은 팽나무 하나”처럼 무엇인가를 말하려 하면서도 ‘당신’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아마도 시인이 더 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아무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가지도, 잎사귀도, 몸통도 모두 주고 이제 겨우 밑둥만 남았으니까요.

그러면서 “얼마나 많은 엄살의 강을 건넌 것일까” 하고 회상하면서 지나온 시간 동안 사랑했던 ‘당신’과 ‘당신’들을 떠올립니다. 많은 연애는  동시에 많은 실연을 동반합니다. 이러한 반복적인 경험도 연애의 기쁨과 아픔을 완벽하게 소화하지는 못합니다. 다만 다음 사랑을 만나기 위한 초석이 될 뿐입니다. “시인의 간절한 비원이 담긴 그 시집도 목석 같은 그녀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결과 잃은 것은 사랑이요, 얻은 건 시집이었으니”라고 진이정은 유하의 실연을 대신 발문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사랑과 실연을 반복합니다. 이러한 반복 속에서 상처는 경험이 되고 경험은 더 많은 사랑을 위한 밑거름이 됩니다. 사랑의 결과를 딱히 무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서로의 방식대로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을 수는 있을 겁니다. 사랑하는 이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10월의 마지막 밤을 준비하는 건 어떠신지요? 혹은 흘러간 사랑을 생각하며 추억에 잠겨 보내는 시간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유하

영화감독이자 시인으로 본명은 김병준이다. 1963년 전북 고창군 상하면 하나대 마을에서 출생하여 세종대 영문과와 동국대 대학원 영화과를 졸업했다. 1988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공모에 당선하면서 시단에 나왔다. 시집으로는 《무림일기》《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세상의 모든 저녁》《세운상가 키드의 사랑》《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이소룡 세대에 바친다》《재즈를 재미있게 듣는 법》 등이 있다. 그는 1990년 영화 < 시인 구보씨의 하루>로 영화감독으로 데뷔했으며 연출한 작품으로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하울링><쌍화점><비열한 거리> 등이 있다. 1996년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으로 제15회 김수영문학상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가을비가 마치 장맛비처럼 내리는 아침입니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아침저녁으로 기온 차가 더 심해지겠지요. 날씨가 추워질수록 사람의 온기가 그립습니다. 지난 추억으로 지나간 사람이든, 지금 만나는 사람이든,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그립습니다. 산이 갈색으로 물들고 거리에 플라타너스 잎이 말라 떨어지는 때면 사람이 더욱 그립습니다. 옷을 두껍게 입을수록, 체온의 소중함을 느낄수록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커지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있다면, 아무리 가까운 곳에 있어도 마음의 그리움이 사뭇 커지는 계절입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사람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일은 삶의 가장 큰 부분 중 하나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일은 행복입니다. 약속한 장소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일은 즐거움입니다. 황지우 시인의 얘기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약속 장소에서 기다려본 사람은 압니다. 그 사람이 남자이든 여자이든 누군가를 기다리는 건 설레는 일입니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 내가 미리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시적 화자는 약속 장소에 먼저 나가 기다립니다. 약속 장소로 다가오는 모든 발걸음 소리가 기다리는 대상으로 느껴져 가슴이 떨립니다. 바람에 흩날려 거리에서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러한 느낌은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처럼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감정입니다. 바로 설레는 마음이죠.

약속 시간이 다가올수록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라는 시인의 표현처럼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시간은 점점 가까워집니다. 오기로 약속한 대상을 시적 화자가 기다립니다. 누군가 문을 열면 그 사람일까 기대합니다. 한 사람 또 한 사람 들어올 때마다 “너였다가 / 너였다가 /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고 이내 문이 닫힙니다. 기다림의 기대가 무너질 때 설렘은 아픔으로 바뀝니다.
 
그러다 시적 화자의 마음이 “사랑하는 이여”라는 부분에서 바뀝니다. 수동적으로 더 기다리지 않고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갑니다.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는 반어적 표현에서 시적 화자의 의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약속 장소를 떠나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행위가 현실에서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지난 시간 속으로, 지난 추억 속으로 그 사람을 찾아갑니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시간과 추억으로 가는 시간도 길어집니다.

마침내 추억의 시간이 기대의 시간으로 다시 바뀝니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라는 표현에서 느낄 수 있듯, '설렘'에서 '애림'으로 바뀌었던 시적 화자의 심경이 다시 '기대감'으로 변화합니다. 이제는 기다리는 시간이 크게 상관없습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처럼 그 사람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적 화자가 다가가는 만큼 기다리는 대상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느새 기다리는 행위가 만나러 가는 행위와 같아집니다. 가슴의 쿵쿵거림은 사랑하는 이를 향한 설렘으로 더욱 커집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는 표현처럼 그동안 마냥 기다리던 수동적 행위가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능동적 행위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쿵쿵거리는 가슴으로 여러분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니면 쿵쿵거리는 가슴으로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습니까?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만큼 설레고, 애리고, 다시 설레는 감정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은 없겠지요. 깊어가는 가을, 연필로 꾹꾹 눌러 편지를 쓰시기 바랍니다. 앞서 소개한 시인의 마음처럼 '기다림'의 행위를 '만나러 가는 행위'로 바꾸어줄 소중한 도구가 될 테니까요.

황지우

195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광주일고를 거쳐 서울대 인문대 미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연혁(沿革)>이 입선하고, 《문학과지성》에 <대답 없는 날들을 위하여> 등을 발표하며 시단에 등장했다. 하우저의《예술사의 철학》 등을 번역하며 《시와 경제》 동인으로도 참가했다. 
첫 시집이자 제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는 전통적 시 관념을 부수면서 기호, 만화, 사진, 다양한 서체 등을 사용하여 풍자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또한 《나는 너다》에는 화엄(華嚴)과 마르크스주의적 시가 들어 있는데, 이는 스님인 형과 노동운동가인 동생에게 바치는 헌시다. 
다른 예술에도 관심이 많아 1995년에 아마추어 진흙조각전을 열기도 하고, 미술이나 연극의 평론을 쓰기도 했다. 1991년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게눈 속의 연꽃》은 초월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노래했으며,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는 생의 회한을 가득 담은 시로 대중가사와 같은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시집이다. 여기에 실린 <뼈아픈 후회>로 김소월문학상을 받았고, 같은 시집으로 제1회 백석문학상을 받았다.
시집으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나는 너다》《게눈 속의 연꽃》《저물면서 빛나는 바다》《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등이 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3명의 주요 대통령 후보가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복지와 경제민주화’입니다. 세 후보 역시 이와 관련된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동안 정치권이 외면하던 복지와 경제민주화 정책이 이렇게 이슈가 된 까닭은 지난 시절 국민에게 희생만 강요한 성장 위주 정책이 더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른 정치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어야 하건만 지금까지의 정치는 절망만 확인시켜주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정권은 바뀌어도 대다수 국민의 삶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갈수록 삶의 질은 떨어지고 미래는 암울하기만 합니다. 이젠 정치인들의 희망 섞인 말에 잠시 기대했다가 이내 절망을 재확인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

누구의 입김인가 이 안개는 
살찐 死者들의 입김이지, 이 안개는
꼭꼭 숨어라 친구들이어
머리카락 보인다 이웃들이어
그리하여 잠들라
낮의 일과 불투명한 노력들은
우리들 자신의 몫이 못 되고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이
허락되기 어렵다 하더라도
피곤과 우울은 우리의 것이다!
편히 잠들라 내 이웃들이어
각성은 눈뜨면 못 쓰고
잠조차 뿌리내릴 수 없는 
아, 이땅의 가난한 영혼이
뜬눈으로 그대의 잠을 지키고 있다.

이미 많이 가진 자들이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몰려다닙니다. 온갖 행패를 부리지만 누구 하나 말리질 못합니다. 오히려 말리려는 이웃들만 피해를 보고 다칩니다. 그들에겐 법이 소용없고, 경찰도 검찰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수사하던 검찰은 그들의 회사 임원으로 옷을 갈아입고, 공무원은 돈으로 매수됐습니다. 광고의 달콤함에 빠져버린 언론은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급급하고 정치인들 역시 눈치만 살피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많은 사람이 절망하고 아파하고 있지만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없어 답답하기만 합니다. 오늘 대한민국의 모습입니다.


1978년에 출간된《나는 별아저씨》에 실린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 이라는 시 속의 사회와 오늘날 1퍼센트가 지배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다르지 않습니다. “누구의 입김인가 이 안개는 / 살찐 死者들의 입김이지, 이 안개는 / 꼭꼭 숨어라 친구들이어 머리카락 보인다 이웃들이어”라는 표현에 드러났듯이 ‘살찐 死者들의 입김’은 안개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안개는 마을을 뒤덮습니다. 그 안개에 갇히면 죽습니다. 死者의 입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자는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숨기를 권합니다. 
死者는 보통 死者가 아닙니다. 살찐 사자입니다. 지금도 살찐 死者가 대한민국의 99퍼센트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낮의 일과 불투명한 노력들은 / 우리들 자신의 몫이 못 되고 /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이 / 허락되기 어렵다 하더라도 / 피곤과 우울은 우리의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노동자의 몫이 부족한 나라, 밝은 미래가 오리라는 불확실성 속에서 과연 노력이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은 나라, 99퍼센트가 꿈꾸는 희망이 1퍼센트의 희망에 무참히 짓밟히는 나라에서 힘없는 이웃과 친구들에게 남은 것은 ‘피곤과 우울’뿐입니다. 

살찐 死者들이 1퍼센트가 돼서 99퍼센트에게 절망을 안기고 있지만 ‘너희도 희망을 가지면 우리처럼 될 수 있어’ 하고 언론이, 공권력이, 정치가들이 거짓을 근사하게 포장하는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이 발표된 1970년대 말을 지나 수십 년이 흘렀건만 2012년 오늘도 이런 거짓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99퍼센트의 희망을 품은, 우울함과 피곤함에 지친 이들이 서로의 어깨를 안으며 서로 지켜내고 있습니다. “편히 잠들라 내 이웃들이어 / 각성은 눈뜨면 못 쓰고 / 잠조차 뿌리내릴 수 없는 / 아, 이땅의 가난한 영혼이 / 뜬눈으로 그대의 잠을 지키고 있다”는 정현종 시인의 표현처럼 이 땅의 가난한 영혼이 뜬눈으로 살찐 死者로부터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키고 있습니다.
 
시인은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면서도 그 희망이 현실에서 이루어진다고 확신하지는 못합니다. 현실의 희망이 피곤과 우울로 끝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희망을 잃은 이웃들이 편히 잠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믿고 싶기에 시인은 死者의 입김을 피하라고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소리칩니다.

시인은 이 시의 제목처럼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을 이야기하며, 거짓을 쓰러트리는 진실의 힘을 꿈꾸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정현종 시인은 시를 마무리하면서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기 위해 말없이 현실의 벽과 싸우고 있는 '가난한 영혼'이 우울하고 피곤한 이웃의 밤을 지키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거짓 희망을 직접 쓰러트리지 못하는 현실이 못내 답답하지만, 시인의 얘기처럼 거짓 희망에 맞서서 끊임없이 싸우는 이들이 있기에 우울하고 피곤한 몸을 누이며 희망을 꿈꿔봅니다.

이제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정치 이벤트인 만큼 많고 많은 말이 우리를 현혹합니다. 서민 경제를 살리겠다느니,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이룩하겠다느니, 대선 후보자들과 주변 인물들이 세상을 뒤바꿀 것처럼 쏟아내는 말의 홍수에 시달릴 지경입니다. 우리는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말과 행동의 간극을 보며 마음의 진실함을 확인합니다. 99퍼센트의 국민에게 희망을 주겠다고 모두 한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이때에 지키지 못할 사람의 약속에는 속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생각해서 스스로 무엇이 옳은지 분별하는 눈을 키워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정현종
193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재학 시절 대학신문인 《연세춘추》에 발표한 시가 연세대 국문과 박두진 교수의 눈에 띄어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등장했다. 1966년에는 황동규, 박이도, 김화영, 김주연, 김현 등과 함께 동인지 《사계》를 결성하여 활동했다. 1970∼1973년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로, 1975∼1977년에는 《중앙일보》 월간부에서 일했으며, 1977년 신문사를 퇴직한 뒤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부임해서 시 창작 강의를 했다. 1982년부터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에 정년퇴임 했다.
저서로는 시집 《사물의 꿈》《나는 별아저씨》《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한 꽃송이》《세상의 나무들》《갈증이며 샘물인》《견딜 수 없네》 등이 있다. 시선집《고통의 축제》《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이슬》 등이 있으며 시론집《숨과 꿈》과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충만한 힘》 등 다수의 번역서가 있다. 한국문학작가상, 연암문학상, 이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경암학술상(예술부문)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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