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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가 걷고 있습니다.
제주도 산방산과 단산 사이 선뮤지엄(명상학교)을 출발한 이들은
시계방향으로 제주도의 바닷가를 한 바퀴 돕니다.
침묵하며 걷지만 이들은 몸으로 말합니다.
“지구야, 미안해.”
“자연아, 사랑해.”
이들과 동행할 수 없었던 어떤 남자가 노래 하나를 띄워 보냅니다.

천 번이고 다시 태어난대도 그런 사람 또 없을 테죠.
슬픈 내 삶을 따뜻하게 해준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런 그댈 위해서 나의 심장쯤이야 얼마든 아파도 좋은데
사랑이란 그 말은 못해도 먼 곳에서 이렇게 바라만 보아도
모든 걸 줄 수 있어서 사랑할 수 있어서
난 슬퍼도 행복합니다.

나 태어나 처음 가슴 떨리는 이런 사람 또 없을 테죠.
몰래 감춰둔 오랜 기억 속에 단 하나의 사랑입니다.
그런 그댈 위해서 아픈 눈물쯤이야 얼마든 참을 수 있는데
사랑이란 그 말은 못해도 먼 곳에서 이렇게 바라만보아도
모든 걸 줄 수 있어서 사랑할 수 있어서
난 슬퍼도 행복합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도 그대 웃어준다면 난 행복할 텐데
사랑은 주는 거니까 그저 주는 거니까
난 슬퍼도 행복합니다.
난 울어도 행복합니다. [각주:1]

걸어서 동행하지 못한 어떤 남자는
지구에, 자연에 머리 숙여
사랑처럼 이렇게 노래 부르고 있었습니다.
슬프지만 따뜻하게,
울지만 행복하게.


  1. 〈이승철 -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본문으로]
과거, 과거는 앉아 있는 시간만큼만 유효하다, 남자, 남자의 쉼터, 바다, 바닷가, 오동명, 오동명의 바다소풍, 올레길 7번 코스, 유행, 잃어버린 시간, 제주 숲길, 제주 오름길, 한라산

한 남자가 바닷가에 혼자 앉아 있다.
바다는 파도로 육지를 향하고
남자는 잃어버린 시간으로 과거에 묶이지만
육지로도 과거로도 건너가지 못한다.
들고나는 파도로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짓고 다시 지운다.
바다가 남자를 꼼짝없이 잡아놓은 세 시간.
멀리서 밀려오는 첫 파도가 바닷가에 미치기 전에
남자는 바다 언저리에서 일어난다.
한라산에 눈을 두고 바닷가를 끼고 걷기 시작한다.
남자가 다시 앉아 쉴 터는
그도,
나도,
그 누구도,
모른다.
과거는 돌이키지 못해도 또 걸을 뿐이고
바다는 깨어져도 또 파도로 일 뿐이다.
마냥, 마냥, 마냥...
그저, 그저, 그저...
흰 거품으로 일 때만 파도이듯
과거는 앉아 있는 시간만큼만 유효하다.



고속도로로 변하는 자연의 길, 서울의 명동 거리, 오동명, 오동명의 바다소풍, 올레길 7번 코스, 유행, 제주 숲길, 제주 오름길

왜들 이러는지 모르겠다. 오래전에 버젓이 있던 길을 새로 난 길인 양 이름을 붙여 또 길을 낸 듯 설쳐댄다. 제주도에 올레길이 그러더니 이젠 둘레길인가, 제주도의 조용한 숲길을 파헤치기 시작하고 있다. 길은 이름이 아니며 유행으로 만들어질 도로 같은 길이어서는 안 된다. 길을 사랑한다는 자들이 이런 짓거리들을 해대고 있으니 그들의 이중적인 행위에 유행을 쫓기 좋아하는 국민이 야단법석이다.

제일 많이 간다는 올레길 7번 코스는 서울의 명동 거리와 다를 바가 없다. 자연의 길이 아니라 사람으로 빼곡하니 사람의 길, 저잣거리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앞에선 담배를 피워대고 담뱃재가 날아들어 사람의 눈을 찌르는 불쾌한 곳이 되어버린 올레 7번 코스 길.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소리에 자연의 길을 걷는 건지 저잣거리를 걷는 건지 분간이 안 된다. 바닷길을 저잣거리로 만들더니 이젠 제주 오름길, 숲길까지 황폐화하려고 작정을 한다.

일본의 규슈 지역을 자전거로 두 달 돌아본 적이 있다. 그네에게도 올레길 못지않은 길이 있었다. 그러나 작은 팻말의 지도 하나가 안내해 줄 뿐이었다. 단언하건대 일본의 길은 원래의 올레길과 다를 바 없는 자연의 길이었다. 그 길은 보호되면서도 아름다운 자연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제주도의 숲길은 참으로 색다르다. 오랫동안 사람의 발에 짓밟히지 않아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낙엽이 쌓인 부엽토를 밟고 걷는 기분이 마치 탄력 있는 스펀지 위를 걷는 듯하다. 푹신하다. 그 옆으로 조릿대가 깔려 있다. 그러나 발길이 많을수록 그 길은 넓어질 수밖에 없고 넓어진 만큼 자연은 사라지고 만다.

길이 개발되어 사람들이 짓밟으면 어찌 될 것인가. 더욱이 하나의 유행을 만들고 있다면? 잘살아보자는 막무가내 박정희식 개발과 이런 개발이 다를 게 뭐가 있는가. 경제가 아닌 자연으로 장난을 치는 짓이기에 더 나쁘다. 더 욕을 먹어야 한다. 자연을 걷자던 그들이 왜 자연을 망치려고 하는지…….

제발 유행 따위로 자연의 길 걷기를 유치하고 유해하게 만들지 않길 바란다. 자연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자연스러움은 그대로 놔두는 것이다. 올레길을 앞세운 어떤 집단이나 이기적, 이권적 개입은 이제 사라져야 하고 없애야 한다. 그들이 못하면 제주도 밖에서라도 막고 지켜야 한다. 올레길 등 자연의 길이 고속도로처럼 변하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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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과 육지가 더 가까워졌다. 물론 비행기가 빠르긴 하지만 하늘을 날지 않고 바다를 건너는 길이 하나 더 생겼다. 7개월 가까이 섬에 갇혀 있다 보니 (마음으로) 육지가 그리웠다. 그래서 떠난 육지행. 이번엔 새로 생긴 바닷길을 택했다.

제주도 성산포항에서 전남 장흥 노력항을 오가는 배는 두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단다. 더구나 집에서 가깝기도 해서 이 길을 쫓아가 봤다. 무척 바람이 세던 날, 전화로 문의하니 배는 뜰 거란다. 버스를 타고 성산포항에 도착했다. 배는 무척 작아 보였고, 바람에 출렁이는 모습이 60여 킬로그램인 내 몸 흔들리는 것과 별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작아 보이는 이 배엔 사람 270여 명에 승용차도 무려 70대나 실을 수가 있단다.

육지와의 최단거리라는 이 코스는 이미 오래전, 제주도로 유배를 떠나야 할 이들의 행로이기도 했다. 더 작은 배로 남해를 넘으려다가 송시열 같은 분은 보길도에 머물러야 했고, 세상 다 떠나 고향 해남으로 내려왔다는 윤선도 같은 분도 제주도로 향하다가 역시 보길도에서 머물러 세연정(洗然亭)을 남겼다. 건너기 쉽지 않던 바닷길을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에도 탈 수 있는 이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흡족해하며 배에 올랐다.

나이가 들어서일 테지만 생전 멀미 안 하던 몸이 배를 타자마자 멀미가 인다. 아이들은 마치 롤러코스터라도 탄 듯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야단이다. 배의 가운데 자리가 흔들림이 좀 덜하다는 소리를 엿듣고 염치불고하고 자리를 옮겼다. 눈을 감고 방위 근무 때처럼 시간만 가라, 주문을 왼다. 출발하고 한 시간쯤 지났을까, 출렁임이 잦아들었다. 육지와 섬이 이렇게 차이가 크단 말인가. 하지만 더 놀란 건, 바다색이었다. 청정바다라는 남해건만 제주도 앞바다에 비하면 구정물 같았다.

나는 제주도에 1년 반 정도를 살면서 실망이 컸다. 좋을 것 같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기후도 생각보다 여의치 않았고, 습기와 곰팡이로 거의 1년 내내 힘들었다. 이래서 다시 육지행을 고려하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육지로 넘어와 그렇게도 타고 싶던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는 내내, 이제 제주도를 불평해서는 안 된다는 어떤 당위의 압력을 받고 있었다. 남이 아닌 나 자신의 구속이었다. 제주도가 좋다며 다 물리고 들어오려는 이들을 말릴 심산으로 나부터 만나 내 말 듣고 오라 했지만, 이제는 다른 얘길 해줄 것 같다. ‘그래도 이만한 곳이 우리나라에 있나?’

하지만 역시 사람 사는 동네인지라 사람이 문제다. 자연은 그지없이 세계 제일로 꼽고 싶건만... 아쉽다. 역시 사람이 문제다. 누가 그런 거짓말을 했던가.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그건 단지 시에서나 글 따위에서나 노래에서나 할 짓거리다. 희망 사항일 뿐이다. 문학 언어의 현혹에 불과하며 유곽의 호객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어디나 사람이 문제다.

제주도로 넘어오려는 이에게 그동안 “제주도는 3박 4일용 관광지일 뿐이다”라고 말했던 나는, 이제 사람을 조심하면 제주도만큼 좋은 곳은 없다고 말하련다. 그러나 이 말은 역시 오지 말라는 말과 같을 수가 있다.

제주도에 산다 하면 다들 처음으로 하는 말, “좋겠다. 나도 거기서 살고 싶은데...” 제주도의 자연은 참으로 아름답고 길지 않은 동선이지만 멋진 곳을 많은 건 사실이다. 아무리 멋지다는 미국땅, 별것 다 있다는 중국땅도 관광지를 옮겨 가려면 며칠이 걸리기도 한다. 그러나 제주도는 그렇지 않다. 작은 곳에 멋진 풍광이 몰려 있어 이만한 자연박물관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그러나 문제는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의식이다. 이게 문제다.

올레길이 유행을 타자 올레길을 만들었다는 집단이 길을 넓히며 자연을 훼손하고 있다. 그는, 스페인인가 하는 곳의 몇백 년 그대로의 길, 산티아고를 보고 고향에 길을 텄다. 하지만 산티아고가 올레길처럼 사람이 손을 댔던가? 사단법인 같은 걸 만들어 자연스러움을 깨는 데 개입하고 있는가? 보았다는, 그래서 그 길처럼 만들고 싶었다는 그에게 묻고 싶다. 사람이 문제라는 얘기는 바로 이런 의미다. 문제는 또 있다. 떼로 몰려다니는 여행자들이다. 그리고 제주도로 거처를 옮기려면 겪어야 할 집과 연관된 사람들의 개입이다. 무지 조심해야 한다. 옮겨 온 사람치고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무엇보다도 나처럼 쉽게 생각하고 들어온 가벼움이 더 문제다. 가벼워질 수밖에 없는 것은 육지보다 싼 듯한 집이나 땅에 쉽게 마음을 굳히며 옮겨오려는 이들의 가벼운 결정이 문제라는 얘기다.

섬에서 육지를 2시간 만에 왕래하는 배를 타고 가면서, 아주 좋은 제주도와 너무 아쉬운 제주도를 멀미하듯 이리저리 왔다갔다 출렁거려본다. 오렌지호라는 이름이 붙은 배로 향하는 사람들이 모두 오렌지색 옷을 입고 있는 듯했다. 내 마음이 잠시 감귤색인 오렌지색으로 물든다. 떠들고 담배 피우고 침 뱉는 이들에게서 어린이 같은 오렌지 마음을 기대해본다.

5월이 깊어지면 제주도, 특히 서귀포 쪽 남단 제주도는 감귤꽃 단내나는 향기로 공기가 한층 신선해진다. 5월이 되면 육지보다 제주도는 어린이 마음을 하나 더 선물 받는다. 나는 제주도로 옮겨와 작년에 처음 이 감귤꽃 내를 맡고 얼마나 황홀했는지 모른다. 제주도의 11월이 감귤이 열려 시각적 낙원이라면, 그 꽃이 피는 5월은 후각적 낙원이 된다. 제주도의 자연은 탓할 무엇 하나 없이 곱고 아름답다. 하지만 지금도 제주도는 인간의 손에 의해, 발길에 의해 망가지고 있다.

세연정 (출처 : 두산 엔사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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