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만 바라보다 보면 그 속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사람만 바라보면 그 사람의 속이 더 보이듯이요. 그러나 보이는 것이 다 옳지만은 않습니다. 바닷속도, 사람 속도.

날치(물 위로 나니 이렇게 부릅니다. 날치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동네 바닷사람은 주둥이가 뾰족한 학꽁치라고 합니다) 한 마리가 날아오릅니다. 물을 박차고 오르려면 힘이 꽤 들 텐데도 거푸 날며 물속을 이동합니다. 노는 걸 겁니다. 굳이 필요 없을 듯한 유영을 하는 새들처럼요.

먹이를 찾으려고 나는 것만은 아니라는 건 새들로부터 오래전에 배운 적이 있습니다. 아마 물고기도 그럴 겁니다. 날아오른 물고기 한 마리를 쫓아 눈으로 따라갑니다. 앞으로만이 아닌 동근 원을 그리는 모습을 보면 물속에서 길을 잃어 헤매는 것 같진 않으니 분명 노는 것, 노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놈도 지쳤는지 아니면 내가 따라 잡질 못했는지 녀석의 놀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물속으로 깊이 들어갔나 봅니다. 내친 김에 나도 물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이럴 땐 눈을 감아야 더 잘 보입니다. 바다를 마주하고 앉아 눈을 감으며 바닷속으로 더 깊이 빠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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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 차 한 잔을 준비해 찻상에 올려놓습니다. 제주도 삼나무 찻상은 목공소에서 손수 만들어온 겁니다. 삼나무 무늬 안에 물고기 한 마리가 보입니다. 사실은 옹이입니다. 삼나무 무늬 안에 타원의 물결이 보입니다. 사실은 나이테입니다.

찻상이 바다로 보입니다. 바다를 너무 보고 온 거지요. 먹을 갈아 물고기 두 마리를 그려 넣어봅니다. 한 마리는 왠지 쓸쓸해보입니다. 바다에서 혼자 놀던 물고기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한 마리를 더 그립니다.

하나는 통통하고 하나는 홀쭉합니다. 수컷 같고 암컷 같고, 사내 같고 계집 같고…. 하나가 말을 걸어오지만 하나는 새침하게 몸을 돌립니다. 살짝만, 돌아서지 않을 만큼만. 하나가 찾아나서면 하나는 꼬리를 칩니다. 약간만, 바짝 붙지 않을 만큼만.

찻상이 바다가 됩니다. 두 뼘밖에 안 되는 작은 찻상이니 바다라기보다는 연못이 더 어울릴 듯합니다. 연못이 된 찻상에 차마 잔을 올려놓을 수 없어 바닥에 잔을 놓으니 연못가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바다가, 연못이 집 안에 들어앉았습니다. 집 안이 바닷속이 되고 연못 속도 됩니다. 찻상이 세계가 됩니다.

비가 며칠째 내립니다. 제주도는 6월 중순쯤 장마가 시작되는데, 처음 이 계절을 맞는 사람은 혀를 내두르고 고개를 젓습니다. 습기 때문이지요. 제주도 입도 2년차인 나는 그러려니 하며 더 즐겨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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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엔 물고기가 노니는 찻상 곁에 막걸리 잔을 두고 제주 막걸리(서울 가면 그곳 막걸리를 마시곤 했는데 이젠 제주 막걸리 외엔 다른 건 마실 수가 없습니다. 이곳 막걸리가 입맛에 맞는 것인지… 물이 좋아 맛도 좋다고들 합니다만)를 마실까 합니다. 바닥에 잔을 내려놓는 이유는 연못가, 바닷가, 그 곁, 가장자리에서 마시고 싶어섭니다.

들어가 보는 것보다 곁이 더 좋을 때가 있습니다. 바라보며 마음을 졸이던 때가 더 아름다웠던 기억이 있어섭니다. 이렇게 변죽사람이 되어갑니다. 그래서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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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제주도 바닷가엔 보말[각주:1]이 아주 통통합니다.
6월이 되면 또 고메기가 한창입니다.
보말이나 고메기[각주:2]는 아마도 바다 다슬기 종류일 겁니다.
보말이나 고메기로 죽을 쒀 먹으면 맛이 특이하고도 맛이 있습니다.
건강에도 좋다고 합니다.
5, 6월의 제주도 사람들은 바닷가 검은 돌에 붙어사는 보말이나 고메기 따는 일이 부업입니다.
부업으로 끼니를 대신할 때도 있습니다. 죽이라도 배가 든든하거든요.
이들의 간식 같기도 한 보말죽이나 고메기죽이 가끔은
제주도로 옮겨와 사는 외지인에게도 한 그릇 담겨 옵니다.
제주도 이웃인심이지요.
한 그릇의 인심이 참으로 그득합니다.
바닷가의 한 펜션에 머물던 관광객들이 바다로 나와 보말을 채집하고 있습니다.
예, 보고 있으면 어른이든 아이든 채집 같습니다. 마치 학교에 도로 내야 할 숙제라도 하는 듯합니다.
서툴러서 그런 게지요.
이런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우리도 오늘 밤 죽 쒀 먹자!”
그냥 했을 것 같은 이 말이 왜 그렇게도 웃기던지요.
‘죽 쒔다.’ ‘죽 써서 남 준다.’
평소 새겨하지 않던 이런 말들을 새겨봅니다.
이러면 죽 쑤는 일도 즐거울 때가 있습니다.
오늘은 바닷가 동네 식당에 나가 보말죽 한 그릇을 사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인심이 언제나 내 맘에 맞게 채워지진 않거든요.
인심이 박해서가 아닙니다.
인심을 기대하는 얄궂은 공짜심이 어느덧 생겨났나 봅니다.
돈 주고 사먹어도 따뜻한 인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침 장마가 시작되었다니 그릇 감싸는 두 손마저 따뜻하게 하는 죽을 더 먹고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혼자 가서는 안 될 듯합니다.
지난번 보말죽을 받으면서,
“저는 드릴 게 없는데….”
했던 말이 문득 떠오릅니다.
말 한마디도 허투루 하며 살아선 안 되겠지요.
손수 죽을 끓이는 정성은 못 나눠도 식당은 함께 가서라도 인심을 나눠야 할 것 같습니다.
막걸리도 마시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 있지만, 뭐 어떤가요.
마음을 어찌 돈 따위 것으로 환산할까요?


  1. 보말은 제주도 지방의 사투리로 ‘고둥’을 뜻한다. 고둥은 숙취, 해독, 간, 위를 보하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본문으로]
  2. 제주도에만 서식하는 연체동물. 바다에 아주 작게 더덕더덕 붙어산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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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졌어. 올레길인가 뭔가 생긴 뒤로 우리네 마당을 빼앗긴 것 같아. 사람들이 다니니 옷도 맘대로 입고 나오질 못하니, 이거야….”
“자네도 그런가? 나도 여기로 나올 땐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입고 나올 수가 없다네.”

“그전이 좋았어.”
“하기여, 우리 바다도 아닌 것을 뭐.”

“근데 왜 이렇게 섭섭한지 모르겠네.”
“그렇지? 나도 그렇다네.”

“함께 나눠야 한다지만 왠지 내 앞마당을 잃은 듯하네.”
“손님을 잘 맞아야 하지만 그들이 주인 된 기분이라네.”

“태어나서부터 주인이었을 우리가 손님 같으니….”
“그래도 외지 사람들이 우리 동네를 찾아주니 반갑긴 하지, 뭐.”

“훌쩍 지나가고 마는 사람들에게 우리 것을 너무 내놓은 것 같아.”
“기억한다지 않는가, 다들 좋다 하지 않는가, 돌아가서도 말일세. 그러면 됐지, 뭘 더 바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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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남자가 걷고 있습니다.
걷는 모습을 보면 각양각색, 나름의 자세가 보입니다.
걸을 때만 그런지, 삶이 그런지 견주어 그들의 삶 속을 들여다봅니다.
다양한 모양새지만, 보기 싫고 듣기 싫은 이들도 간간이 눈에 띕니다.
지나치게 소리를 냅니다. 그는 대화라지만 소음입니다.
담배를 피우며 걷는 이들은 바람에 담뱃재가 뒷사람에게 날리는지를 생각조차 못 합니다.
침을 뱉습니다.
걸으며 배려를 배울 수 있길 그들에게 소망해봅니다.
역시 배려하며 걷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움은 귀로도 들리고 눈으로도 보입니다.
결국 가슴에 채워집니다.
사는 모습이 다르다 하여 다양성이 보이는 건 아닌가 봅니다.
다양한 듯한 집단의 모습에서 획일적인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단체로 몰려오는 이들에게서 종종 보입니다.
올레길에선 혼자 걷는 이에게서 오히려 다양성을 엿봅니다.
다양성은 집단의 형체가 아니라 구성원 하나하나가 모여 이룬 집합의 형태입니다.
그래선지 혼자가 아름다울 때가 더 많습니다.
혼자일 때 다양한 삶의 진지한 태도가 엿보입니다.
그런 이유일까요?
올레길을 걷다 보면 “떼로 다니지 좀 말고 혼자 다녀보세요.” 하고 소리치고 싶을 때가 잦습니다.
유난히 떼 지어 몰려다니며 사는 우리나라 국민.
혼자인 게 두려운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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