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카탈루냐 자치의회가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먼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라 카탈루냐 독립에 대해 마치 경상도가 대한민국에서 독립하겠다는 식의 어이없는 행동이란 느낌을 받는 분들도 계실 법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국가의식 그리고 성립의 역사는 유럽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역사적으로 영토와 민족의 변화가 그리 크지 않았고 최근 600년이 넘게 국경과 민족의 변화가 없었던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은 같은 땅도 시기에 따라 여러 민족, 여러 문화권이 얽히고설켜 역사가 굉장히 복잡했습니다. 특히 스페인이 자리한 땅은 유럽 기독교권이었다가 이슬람 영토가 되었다가 수복된 곳으로, 민족적 문화적 부침이 심했죠.


출처 - JTBC

 

카탈루냐의 독립에 대한 열망은 뿌리가 깊습니다. 아라곤 왕국의 일부였던 카탈루냐는 1469년 아라곤·카스티야 왕국의 합병으로 세력이 약화된 이후 1714년 국왕 펠리페 5세에 점령되어 스페인에 귀속되었습니다. 보통 스페인어라고 하는 카스티야어는 이베리아반도 대부분을 차지했던 카스티야 왕국에서 유래한 것이죠. 하지만 카탈루냐인들은 스페인 주류인 카스티야인들과 문화·역사·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300년간 지속적으로 분리·독립을 요구해왔습니다. 1936년 스페인 내전 후 프랑코 총통의 독재 아래 카탈루냐는 여러 차례 독립운동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코는 자치권을 박탈하고 카탈루냐의 문화와 언어를 말살하려고 대대적인 탄압을 벌였습니다. 이런 역사 때문인지 자신들을 카탈루냐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스페인 사람으로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상당하다고 합니다. 카탈루냐인들은 스페인에서 독립하든 안 하든 간에 자신들이 카탈루냐인으로 불리길 원했습니다. 카탈루냐에서는 스페인 국기보다 카탈루냐 국기를 찾는 것이 더 쉬우며, 일반 학교 수업도 스페인어보다는 카탈루냐어(카탈란)로 진행되는 경우가 더 많죠. 물론 일상어도 카탈루냐어입니다.

 

출처 - 한국경제

출처 - 서울신문

 

잠재되어 있던 카탈루냐의 독립 움직임에 불을 지핀 것은 경제 위기였습니다.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 후 스페인의 카탈루냐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독립 찬성 여론이 힘을 받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카탈루냐의 면적은 스페인 전체의 6퍼센트에 불과하지만 국내총생산(GDP)의 20퍼센트 이상이 이 지역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카탈루냐가 스페인 중앙정부에 납부하는 세금만 매년 160억 유로(약 21조 7000억 원)에 달합니다. 지역 전체 국내총생산(GRDP)의 8퍼센트에 달하는 돈을 중앙정부에 납부하지만 정작 돌아오는 혜택은 적다는 불만이 쌓여왔습니다. 카탈루냐로서는 애초에 스페인에 속했다고 생각도 안 했고 돈도 넉넉한 데다 인구 수도 스위스와 맞먹는 수준이다 보니 독립을 못 할 게 뭐가 있느냐는 생각을 할 법합니다.

 

출처 - BBC


카탈루냐가 지난 2014년 11월 한 비공식적인 독립 투표에서 540만의 투표권자 중 200만 이상이 투표에 참여했고 지방정부는 80퍼센트가 분리독립을 지지했다고 선언했습니다. 2015년 분리주의자들이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자 이들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민 투표를 추진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는 스페인의 분리를 부정하는 스페인 헌법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에 스페인 중앙정부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맞서 카탈루냐 자치정부는 지난 10월 1일 분리·독립 찬반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치렀습니다. BBC, AFP통신 등에 따르면 스페인 정부는 오전 9시 투표가 시작되자마자 카탈루냐 제1 도시인 바르셀로나의 주요 투표소들에서 투표용지와 투표함을 강제 압수 조치했다고 합니다. 이날 투표소 곳곳에서 투표를 지지하는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했고, 경찰이 곤봉을 휘두르고 고무탄을 쏘며 강제 해산을 시켰습니다. 결과적으로 4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부상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분리독립 주민투표는 90퍼센트의 압도적인 찬성률로 가결되었습니다. 하지만 투표율은 43퍼센트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에 독립에 반대하는 카탈루냐 시민들이 투표 자체를 보이콧했다는 분석도 나와 주민투표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점도 있었습니다. 

 

결국 스페인으로부터 분리독립을 추진하던 카탈루냐 자치정부는 독립 절차를 잠정 중단하고 스페인 정부에 대화를 요구하고 나서게 됩니다. 그 배경에는 카탈루냐 중심도시 바르셀로나에 본사를 둔 기업들의 엑소더스(탈출)가 있었습니다. 스페인 증시의 아이벡스(IBEX)35지수를 구성하는 핵심 대기업 가운데 7곳이 바르셀로나에 본사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 기업이 카탈루냐 지역의 부와 힘의 원천이며 일자리도 여기서 나옵니다. 그런데 카탈루냐가 독립 움직임을 보이는 와중에 6개 대기업이 본사 이전을 결정했습니다. 무엇보다 카탈루냐 최대 은행이자 스페인 3위 은행인 카이사방크가 발렌시아로 본사를 옮기기로 한 소식은 이 지역 기업과 주민에게 충격을 안겼습니다. 또한 카탈루냐 2위 은행인 방코 사바델도 이전 결정을 내리면서 카탈루냐 경제는 크게 흔들렸습니다.

 

출처 - 한국경제

 

결국 카를레스 푸지데몬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은 10일 밤(현지시각) 자치의회 연설에서 "카탈루냐와 스페인 간 관계 재정립을 위해 대화가 필요하다"며 의회에 "독립 승인 절차를 몇 주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소라야 사엔스 데 산타마리아 스페인 부총리는 이날 "민주주의자 간 어떤 대화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혀 사실상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시사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스페인 중앙정부와 카탈루냐 자치의회가 대립하던 와중에 결국 지난 10월 27일(현지시각) 카탈루냐 자치의회 의원 135명 가운데 야당 의원 50여 명이 퇴장해 82명만으로 치른 표결에서 70명 찬성, 10명 반대, 2명 기권의 결과가 나와 카탈루냐 자치의회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했습니다. 카탈루냐 의회의 독립선포안이 가결되자 분리독립에 찬성하는 시민들이 환호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출처 - YTN

 

이 소식을 접한 스페인 상원은 찬성 214명, 반대 47명, 기권 1명의 결과로 헌법 155조 발동과 이에 따른 정부의 조치를 승인하기에 이릅니다. 스페인 헌법 155조는 자치정부가 헌법을 위반하고 스페인의 공공 이익을 현저히 저해할 경우 중앙정부가 자치정부를 상대로 자치권 몰수를 포함해 필요한 모든 조처를 다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죠. 상원의 승인을 얻은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는 긴급국무회의를 소집해 카탈루냐 자치 수반과 각료들을 해임했습니다. 아울러 카탈루냐 자치정부와 함께 자치의회도 해산한다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카탈루냐 지방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조기 선거는 12월 21일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출처 - YTN

 

 스페인 정부는 앞으로 카탈루냐 자치경찰 지휘권을 빼앗고, 자치정부 청사 건물, 금융과 IT 기반시설, 공영 TV와 라디오 방송사를 접수할 것으로 보입니다. 카를레스 푸지데몬 카탈루냐 자치수반은 반역죄로 최장 30년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고 하죠. 그러나 카탈루냐 자치정부 공무원 20만여 명과 산별 노조, 독립파 시민들은 중앙정부에 맞서 강력히 저항할 분위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스페인 정부가 카탈루냐에 공권력을 투입한다면 최악의 유혈충돌 국면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출처 - AFP 연합뉴스

 

카탈루냐는 독립을 원하지만 세계정세는 스페인 중앙정부를 지지하는 추세입니다. 유럽연합(EU)은 27일 카탈루냐 자치 의회가 독립국선포 안을 가결한 데 대해 일방적인 분리독립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스페인 중앙정부가 우리의 유일한 대화 상대"라고 천명한 겁니다. 최근 영국이 EU 탈퇴 선언(브렉시트)을 한 마당에 카탈루냐의 분리독립까지 이뤄지길 바랄 리 없겠죠. 스페인은 EU에서 다섯 번째로 경제 규모가 크고 EU 전체 인구의 9퍼센트를 차지하는 주요 국가입니다. 이에 따라 EU는 카탈루냐의 독집이 향후 EU 통합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며 사태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27일 "카탈루냐는 스페인의 필수불가결한 부분"이라며 나라를 통합된 상태로 유지하려는 스페인 정부의 노력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미 국무부 헤더 노어트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내고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인 스페인과의 위대한 우정과 지속적인 파트너십을 향유해왔다"며 "두 나라는 공유하고 있는 안보와 경제적 우선 사항들을 진전시켜 나가기 위해 긴밀하게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독일도 "이런 종류의 독립선언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스페인 정부 편들기에 나섰습니다. 독일 정부의 스테픈 자이베르트 대변인은 "스페인의 주권과 영토의 통합은 침범할 수 없다"면서 "카탈루냐에 의한 일방적인 독립은 이런 근본적인 원칙을 훼손한다"고 말했습니다. 스코틀랜드로부터 분리독립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영국의 테리사 메이 총리도 카탈루냐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메이 총리는 이날 성명을 통해 "영국은 카탈루냐 자치의회의 일방적인 독립선언을 인정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카탈루냐의 독립선언은 스페인 법원에서 불법으로 규정한 주민투표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처럼 세계 주요국이 카탈루냐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 상황에서 카탈루냐가 독립을 고수할 경우 경제적 고립을 초래할 위험도 큽니다. 카탈루냐의 독립 선언이 있기 전인 지난 23일(현지시각) 카타루냐주 주요 기업협회는 중앙정부와 자치정부 간 갈등으로 인해 지역 사회와 경제의 혼란 장기화를 경고한 바 있습니다. 협회는 자체 웹사이트에 공개한 성명에서 "카탈루냐에서 지배권 부재, 사법체제 불확실성, 대중의 소요사태가 벌어지는 극적인 상황이 계속되는 시기가 전개될 것"이라고 밝히면서 "카탈루냐 자치정부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할 경우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며 "특히 지역 경제와 일자리 측면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협회는 이 같은 상황을 막기 위해 조기 지방선거가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죠.

 

출처 - 뉴스1


카탈루냐의 독립 선언은 쿠르디스탄, 스코틀랜드 등 세계 여러 국가에 영향을 끼치게 될 전망입니다. 이 때문에 전 세계에서 카탈루냐 독립 선언이 앞으로 어떻게 귀결될지 주목하고 있습니다. 과연 카탈루냐 자치정부와 스페인 중앙정부의 대립은 역사 속에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요? 귀추가 주목됩니다.

 

유럽과 영국의 운명을 가를 것으로 점쳐지던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가 아시다시피 박빙의 승부 끝에 부결되었습니다. 투표를 앞두고 어느 쪽으로 결정되든 영국 정치계, 나아가 유럽 정세에 큰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오늘은 스코틀랜드의 독립 열망과 독립 투표 과정, 그리고 부결이라는 결과가 영국과 유럽에 불러올 후폭풍에 대해 살펴본 이후 왜 이런 정치, 사회적인 변화에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논의해보려 합니다.

 

 

스코틀랜드 독립의 역사

 

출처 - BBC

 

멜 깁슨이 스코틀랜드 독립투사 윌리엄 월레스로 분한 영화 《브레이브 하트》를 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영국은 원래 하나의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역사에서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합병하고 통일신라가 된 것처럼, 잉글랜드가 무력으로 다른 왕국을 완전히 통일한 것도 아닙니다. 영국의 인터넷 주소인 'uk'를 보면 아시겠지만 영국의 공식 명칭은 'United Kingdom', 즉 왕국들의 연합인 연합왕국을 의미합니다. 

 

현대에 와서는 미국의 연방제와 비슷해지긴 했지만, 그마저도 엄밀히 말하자면 또 달라 기본적으로 수평적인 관계의 국가가 하나의 이름 아래 모인 EU나 UN 같은 연합체에 가깝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300여 년 전 영국이란 이름으로 하나의 나라가 되긴 했으나 스코틀랜드가 연합에서 탈퇴할 독립 명분이 그때부터 존재해온 셈이죠. 어린이들이 즐겨 읽는 《먼나라 이웃나라》라는 책에서는 과거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만으로 이루어진 '국제' 축구 대회 장면을 묘사하면서 복잡한 영국이라는 나라의 관계를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민족적, 역사적으로 반목하긴 했으나 스코틀랜드가 진짜로 독립을 꿈꾸기 시작한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이 몰락하면서부터가 아닐까 합니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스코틀랜드 경제를 떠받치던 조선과 철강 등의 중공업이 쇠퇴하고 대처 총리의 대규모 민영화 조처로 스코틀랜드는 경제적으로 몰락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은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출처 – 20세기 폭스/유니버셜 스튜디오

 

본격적인 스코틀랜드 독립의 불씨를 키운 세력은 스코틀랜드국민당인 SNP입니다. 그들은 노동당보다도 더 좌파에 속하는 정당으로 민영화가 한창이던 1970년대부터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30년 동안 스코틀랜드 의회에서 다수당이 되지 못해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SNP는 2007년 총리를 배출해 집권하는 데 성공하더니 2011년 선거에서 승리해 스코틀랜드 의회 다수당에 등극합니다.

 

30년간 한결같이 스코틀랜드 독립의 기치를 내건 SNP는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주민 투표를 밀어붙였습니다. 2012년에 영국 정부는 설마 주민들이 독립에 찬성할 리가 있겠느냐는 생각으로 이 투표에 합의해줍니다. 이로써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는 현실화되었습니다.

 

 

독립 찬반 세력의 인식, 문제는 경제야!

 

 

 

SNP의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가 탄력을 받은 데에는 2011년 당시 글로벌 경제 위기에 따른 영국 정부의 긴축 경제가 큰 요인이 되었습니다. 당시 보수당이 집권하던 영국 정부는 스코틀랜드 정부에도 혹독한 긴축을 요구했습니다. 민영화로 망가진 경제적 어려움에 역사적으로 핍박받았던 소외감이 겹쳐진 상황에서 계속 압박이 들어오자 SNP를 중심으로 스코틀랜드 여론이 폭발했습니다.

 

영국 정부의 긴축을 거부하더니 궁극적으로 이럴 거면 차라리 독립해 우리끼리 더 잘사는 나라를 만들자는 공감대가 조성되었습니다. 여론을 현실적으로 뒷받침한 건 영국 원유 매장량의 절대다수를 가진 북해 유전이 스코틀랜드에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독립하면 이 자원을 모두 스코틀랜드 경제를 위해서만 쓸 수 있다는 거죠. SNP는 이 석유 자원을 바탕으로 노르웨이식 복지국가가 될 수 있다는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스코틀랜드 주민의 반응은 영국 정부의 예상과는 달리 폭발적이었습니다. 독립 반대가 많은 상태로 출발했으나 투표를 한 달 앞두고는 독립 찬성쪽 여론이 기세를 올리면서 스코틀랜드가 정말로 영국에서 독립해버릴지도 모른다는 예측도 나왔습니다. 2014년 초까지만 해도 스코틀랜드가 영국에서 독립하려 한다고 하면 모두 코웃음 쳤을 텐데 말입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영국 정부는 최대한의 자치권 보장과 각종 권리를 스코틀랜드에 양보하겠다는 약속을 하며 브라운 전 총리가 주민들을 대상으로 스코틀랜드 독립에 반대해 달라는 유세를 하는 상황에 도달했습니다.

 

지나친 민영화와 지역 산업의 몰락 그리고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경제적 요인이 맞물려 시작된 스코틀랜드의 독립 움직임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경제적 장애 요인들 때문에 스코틀랜드 독립은 부결되었습니다. 우선 경제의 가장 기본 요소인 화폐부터 문제였습니다. SNP는 스코틀랜드가 독립하더라도 지금의 파운드화를 계속 쓰겠다고 했지만, 영국 중앙은행은 스코틀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다른 국가로서 재정 정책을 편다면 파운드화는 쓸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그리고 독립 즉시 스코틀랜드 몫의 국가 채무인 1000억 파운드를 지급해야 했습니다.

 

스코틀랜드는 독립하더라도 EU에 따로 가입하여 유로화를 당장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스코틀랜드의 독립이 가시권에 들어오자 파운드화 가치가 폭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은 둘째 치고 독립하게 되면 스코틀랜드 주민들의 재산 가치가 휴지 조각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작용했을 겁니다. 스코틀랜드에 주재하는 금융사들은 독립 시 잉글랜드로 이전할 것이라고 발표했으며, 서민 경제를 담당하는 소매업계도 독립 시에는 상품의 유통 비용 등이 추가되므로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많은 시민이 한때 대처가 이끌었고 현재 캐머런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 정권에 뿌리 깊은 반감을 보인다 해도, 생활의 기반이 흔들린다면 독립하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건 인지상정이었겠지요.

 

결국 글래스고 같은 대도시 한두 군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역이 반대표를 던져,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는 박빙의 승부 끝에 찬성 45퍼센트 대 반대 55퍼센트로 부결되었습니다.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가 남긴 것들


 

출처 - 연합뉴스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가 부결된 후 영국과 유럽 정세는 오히려 더 혼란스럽습니다. 우선 영국 정가에서는 독립이 저지될 경우 보장해주기로 했던 스코틀랜드 자치권의 범위가 논란의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영국 입장에서는 현재도 스코틀랜드에 상당한 자치권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영국은 스코틀랜드의 자치권을 더 확대해주는 대신 잉글랜드, 웨일스 등의 법률 제정에 참가하는 것을 제한하려고 논의 중입니다. 이 때문에 당과 세력끼리 이합집산이 심한 상태입니다. 스코틀랜드로서는 독립을 향한 승부에선 졌지만 실리는 상당히 챙긴 셈입니다. 당분간 영국 정계에서 스코틀랜드계의 힘이 두드러질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 월스트리트저널

 

한편 이번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는 처음으로 선거 연령을 16살까지 확대하여 진행되었습니다. 스코틀랜드 독립 문제에 관한 교육을 2년 전부터 수업에서 다룬 학교도 있고, 모의 투표를 통해 학생들을 교육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는 오스트리아의 사례를 본받은 변화인데,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도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스트리아가 일찍이 청소년들에게 투표권을 주기 시작한 것은 인구 노령화로 인해 65세 이상 유권자가 25세 이하 유권자 수를 넘어서면서 세대간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이는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졌죠. 아이콘은 스코틀랜드에서도 그러한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학창 시절에 몸에 배인 투표하는 습관은 평생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죠. 오스트리아에서는 학생들이 정치적인 문제들을 더 많이 접할 수 있도록 교과 과정을 바꾸었는데, 이 역시 정치 신뢰도와 투표율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 아이콘의 설명입니다. 스코틀랜드에서 주민 투표의 선거 연령이 18세에서 16세로 낮아진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에딘버러대학에서 교육 정책을 연구하는 린지 패터슨(Lindsay Paterson) 교수는 노동당과 스코틀랜드민족당(SNP) 모두 찬성하는만큼 ‘투표 연령 16세’는 곧 스코틀랜드와 영국 전역의 대세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스코틀랜드 독립, 청소년에게 묻다(뉴스페퍼민트)

 

유럽 전체적으로는 개별 국가의 독립운동이 자극을 받아 EU로부터의 독립을 생각하는 나라가 많아지지 않을까 전망합니다. 실제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가 한창인 지난 18일, 스코틀랜드에 속한 셰틀랜드 제도 주민들은 스코틀랜드로부터 독립하는 문제로 투표하자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으니까요.

 

출처 - 월스트리트저널

 

영국 밖의 분쟁 지역들도 들썩였습니다. 스페인 북부의 카탈루냐만큼 민감한 지역도 없을 텐데요. 스페인의 부유한 지역인 카탈루냐는 오는 11월 카탈루냐 독립에 대한 비강제 주민투표를 위해 준비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스페인 중앙정부는 카탈루냐가 독립을 위한 주민투표에 대해 법률을 제정하면 헌법 소원을 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스페인의 또 다른 지역인 바스크와 벨기에의 플랑드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올해 초 베네치아 인구의 절반이 참여한 인터넷 모의 투표에서는 독립 찬성률이 무려 89퍼센트를 기록했고, 캐나다 퀘벡에서는 분리주의 정당이 집권한 바 있습니다. 역사적, 민족적 문제도 있지만 세계 경제 위기와 유럽의 불황이 심화되면서 비교적 경제적으로 유리한 지역이 국가로부터 독립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프리카나 중동, 중국 내 소수민족들의 독립과는 조금 다른 양상입니다.

 

 

출처 - chaniapost

 

결과적으로 이런 움직임 때문에 회원국들의 EU 탈퇴가 연쇄적으로 일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낳고 있습니다. 경제 문제로 극우 정권이 대두할 뿐 아니라 지역의 독립, 연합의 탈퇴까지 온갖 정치적 실험과 행동이 횡행하고 있는 유럽의 앞날이 어떻게 변화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변화하는 국제 정세에 주목하는 이유

 

 

생각비행이 먼 이국땅에서 벌어진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 과정과 그 이후의 변화에 큰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입니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민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을 치른 이후로도 두 체제는 반목과 질시를 거듭했고 그에 따라 국민은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초기에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정착을 주요한 정책으로 설정했습니다.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남북 간 신뢰를 형성함으로써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며, 나아가 통일기반을 구축하겠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출처 - 통일부

 

 

하지만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제대로 가동되지 못했습니다. 현 정부 출범 2년이 다 되도록 한 차례 남북 고위급 접촉만 있었을 뿐 제대로 된 대화조차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합니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단절된 남북관계 회복을 위한 실제적인 움직임이 없었고, 남북은 불신의 세월을 보내며 안보 불안과 실질적인 경제적 혼란을 가중시켰습니다.

 

최근 황병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김양건 조선노동당 비서의 남한 방문은 긴장된 남북관계를 해소할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세 사람이 방문하기 직전까지 남북은 상대를 자극하는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기에 실질적인 진전을 기대하기는 애초에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현실적인 인식에서 우리나라 내부에서조차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현실화하려면 미세조정을 통해서라도 남북관계가 조금이라도 개선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비판적인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정부가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한의 사과 및 재발 방지 표명을 비롯해 비핵화 조치처럼 계속해서 각을 세우는 입장을 고수해왔기에 북한이 태도 변화를 보일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는 점입니다.

 

최근 외교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기본 골격은 유지하면서 수정·보완하는 작업이 이뤄질 것을 시사했습니다. 외교안보분과위 관계자가 지난 2일 "정부가 작업해온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발전 방안도 참고해가며 기존 내용을 어떻게 보완할지 위원들끼리 논의하고 있다"고 밝힌 내용이 이런 변화를 시사합니다. 하지만 일각에선 대북 정책의 일대 전환이 아닌 세부 조정만으로 꽉 막힌 남북관계를 풀기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비판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를 둘러싼 국제 정세를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핵심은 중요한 정치, 사회적인 판단의 배경에 경제 논리가 숨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도 결국 안보 논리가 두 체제의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한계를 담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남북한은 통일을 향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이는 남한과 북한 양측에서 동시에 진행되어야 할 전략적인 문제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두 나라 간의 소통과 교류 향상이 필수적인 과제입니다.

 

이 시점에 작년에 진행된 서울국립대학교 산하 전국여론조사연구소 설문조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남북통일을 희망하는 한국인이 50퍼센트 미만이라는 내용인데요, 조사 대상자는 그 이유로 재정상 부담 문제를 들었다고 합니다. 44퍼센트 이상의 응답자들이 북한과 통일될 경우 감수해야 하는 비용 지출을 원하지 않는다고 답변했습니다.

 

지난 1일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의 효과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고 있다고 합니다. 정은미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주최 '통일준비와 대북정책, 국민의 평가와 기대' 학술회를 통해 "조사결과 통일대박론 공감률은 31.4%수준이었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연초 통일대박론, 독일 드레스덴 선언, 주요 일간지 통일 연속 기획보도, 통일준비위원회 출범 등 통일 관련 사회적 분위기 형성 노력에 비해 통일 열망이 크게 높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는 통일대박론이 개인 이익을 증진하는 담론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습니다. 이는 북한정권을 대화와 타협을 할 수 있다고 보는 대북신뢰도가 35.8퍼센트에서 27.5퍼센트로 지난 1년 사이에 8.3퍼센트 포인트 감소함으로써 2007년 조사 이래 최저 수치라는 현실과 맞물려 있는 결과이며 동시에 "통일은 대박"이라는 대통령의 립서비스와 박근혜 정부의 실질적인 행보가 일치하지 않은 결과이기도 합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통일 한국의 경제적 잠재력 추정>이라는 주제로 2014년 4월 18일자 경제주평에서 "통합의 시너지 효과가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남북한이 유라시아 경제권 확장 수준에 도달할 경우 통일 한국은 2050년에 세계 7위의 높은 경제력을 보유"하게 되고 "한국의 경제가 ‘유라시아 경제권 확장 시나리오’에 따라 성장할 경우, 달러화 기준 실질GDP는 2050년에 6조 8,767억 달러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리고 "통일 한국의 경제적 잠재력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남북한 통합 이전에 다음과 같은 과제들이 선결되어야 한다. 첫째, 북한 개발을 위한 재원 조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통일한국의 정치·경제적 편익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해도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 셋째, 남북경협 활성화를 통한 남북한 소득격차 축소 및 통일비용 절감을 도모해야 한다. 넷째, 북한의 개혁·개방 지원으로 북한 변화 분위기 유도해야 한다. 다섯째,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최근 북한 역대 최고위급 대표단이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하고 우리 당국자들과 면담하고 돌아갔으나 남북관계에 어떤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날지 가늠하기는 어렵습니다. 고위급 대표단의 일시적인 방문을 그동안의 불신을 일거에 해소하고 남북관계를 급진전시킬 계기로 삼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10월 말 혹은 11월 초로 예정된 2차 남북고위급 접촉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함과 아울러 근본적으로 남북 간의 대화를 지속할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 더 중요해 보입니다. 이번 기회를 잘 살려 북한의 변화만 기다리던 이명박 정부의 실패한 대북정책에서 벗어나 박근혜 정부가 능동적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보이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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