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2019년은 우리 사회에 어떤 시기였을까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경향신문》은 2019년 디딤돌 판결과 걸림돌 판결을 선정한 바 있습니다. 인권과 사법정의를 증진한 10개의 판결을 우리 사회의 디딤돌로, 반대로 이를 저해한 판결 10개를 걸림돌 판결로 선정한 것이죠. 최고의 디딤돌 판결은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과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직접 고용 판결'이었습니다. 최악의 걸림돌 판결은 아동 성착취 동영상 사이트 운영자에게 1년 6개월에 불과한 솜방망이 처벌을 한 판결이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최고의 판결 두 가지는 생각비행에서도 경과와 결과를 여러 번 다룬 바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쟁점이었기 때문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여성 탄압의 굴레, 낙태죄를 폐지하라! : https://ideas0419.com/669


혜화역 시위와 낙태죄 폐지, 여성 인권 신장 계기 되길 : https://ideas0419.com/840


낙태 여성 조사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압수수색한 경찰 : https://ideas0419.com/911


낙태죄 헌법불합치 선고, 이제 진일보한 사회로! : https://ideas0419.com/943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직접 고용, 사람 사는 세상으로! : https://ideas0419.com/1016


걸림돌로 선정된 최악의 판결 역시 생각비행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 역겨운 범죄를 저지른 사이트 운영자의 신상공개조차 안 돼 사회적으로 큰 비난이 일었던 문제였습니다. 엄벌하려 해도 법적 근거가 정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으로 송환해서라도 수백 년 형을 받게 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시민들의 분노가 들끓은 사건이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부끄러운 대한민국, 아동 성착취 범죄 보다 강력히 처벌하라! : https://ideas0419.com/996


민변과 《경향신문》의 심사 대상이 된 판결의 기간이 2018년 11월 1일부터 2019년 10월 31일까지여서 빠졌지만, 생각비행은 2019년 12월에 있었던 두 가지 디딤돌 판결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삼성 노조 와해 관련 재판 1심 판결'과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헌재 판결'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혐의로 기소된 삼성전자 이상훈 이사회 의장과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이 법정 구속되는 등 삼성그룹 계열사 전·현직 임직원과 삼성전자 법인을 포함해 재판에 넘겨진 32명 중에 26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고, 이 중 7명이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동안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비민주적 정책이라는 각계각층의 비판에도 무노조 경영을 무슨 자랑거리라도 되는 양 떠들어왔던 삼성의 고용 문화에 철퇴를 내린 법의 심판이었습니다. 

 

출처 - KBS

 

1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나오자 삼성은 노조 와해에 대한 사과문을 냈습니다. 과거 회사 내에서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이 국민의 눈높이와 사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인정한 것입니다. 이제 1심이라 앞으로 입장을 어떻게 바꿀지 염려되는 부분이 있습니다만, 일단 삼성의 사과 분위기가 그룹 전체로 확대될 수도 있다는 기대 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삼성 그룹의 노조는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생명, 삼성증권, 에버랜드, 에스원 등에 설립되어 있습니다. 가장 최근 설립된 삼성전자 노조로 한국노총에 산하로 들어가 어찌됐든 양대 노총 산하 노조가 들어선 것은 삼성에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경영문화와 노조문화 모두 전형적인 변화가 생기는 2020년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출처 - 뉴스1


또 다른 디딤돌 판결은 '학생의 성적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 혐오표현을 금지하는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가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입니다. 이 조례 5조 1항에 학생은 성별, 종교,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국가, 민족, 신체 조건,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상황, 인종, 경제적 지위,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 병력, 징계, 성적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또한 5조 3항에는 위와 같은 이유로 차별적 언사나 행동, 혐오적 표현 등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해선 안 된다고 규정되어 있죠.


출처 - 경향신문


당시 기독교계 학교였던 서울디지텍고 교장, 이사장, 교사, 학생, 학부모들은 이 조례가 표현과 종교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죠. 거칠게 표현하자면 동성애자와 다른 종교인들을 지금까지처럼 계속 차별하고 싶다는 얘기를 한 셈인 겁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합헌임을 선고했습니다. 타인을 차별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답을 내놓은 겁니다. 이 결정은 우리 사회가 차별언행 및 혐오표현 등에 대처해야 할 필요를 인정한 것이며 이후 차별금지법 등 관련법이 제정돼야 할 정당성을 시사하므로 큰 의의가 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많았던 2019년이 저물었습니다. 조금씩이지만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2020년에는 좀 더 큰 진전이 생기길 기대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5월은 시작부터 노동절이 있는 달이죠. 하지만 이날 쉴 수 있는 노동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노동자의 힘은 단단한 연대로부터 나오지만 이를 잘 알고 있는 기업들은 법적으로 보장된 노조를 인정하지 않거나 어용노조를 세우는 방식으로 노동자들이 힘을 한데 모으지 못하도록 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일에 가장 앞장 서는 기업은 잘 알려졌다시피 삼성입니다. 무노조 경영을 마치 자랑처럼 떠들어온 기업이니까요.


출처 - JTBC


삼성전자 서비스가 노동조합 와해 시도 등에 관여한 혐의를 검찰이 수사하고 있는데요, 지난 7일 JTBC는 검찰이 '심성관리'라는 내용이 담긴 문건을 확보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 문건에는 삼성전자 서비스 영등포센터 송 모 대표가 직원 2명에게 탈퇴를 권유하고 본사에 보고한 내용 중 "심성관리를 해줬다"는 사실이 담겨 있었습니다. 검찰 조사에서 심성관리는 돈을 주고 노조원을 회유하는 방식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검찰은 송 대표가 노조원을 상대로 수백만 원을 뿌린 정황을 포착했으며, 이런 심성관리가 전국 100여 개 하청업체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졌을 것으로 보고 자금 흐름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출처 - JTBC


돈으로 회유하려 한 행위는 그나마 나았습니다. 삼성이 노조원의 죽음조차 노조 파괴 공작의 성과로 취급한 정황이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2014년 삼성전자 서비스 양산센터의 노조 분회장인 염호석 씨가 노조탄압에 항의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삼성전자 서비스 양산센터는 노조원들에게 일부러 일감을 주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노조 탈퇴를 압박했는데요, 이에 염호석 노조 분회장은 조합원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더는 볼 수 없어 먼저 가니 지회가 승리하는 날 자신을 화장해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삶을 마감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그런데 삼성전자 서비스 내부 자료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염호석 씨까지 노조 탈퇴 실적 명단에 올려져 있었습니다. 자기들이 죽음으로 내몰고는 그를 노조에서 탈퇴한 사람으로 쳐서 실적으로 둔갑시켰으니 참으로 파렴치한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염호석 씨 장례를 노조장으로 치르면 사회적 파장이 커질 것을 우려한 삼성전자 서비스 본사는 유가족에게 6억을 건네 시신을 몰래 탈취하라는 지시를 한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인면수심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출처 - 뉴시스


그런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지시를 한 본사의 윤 모 상무 및 협력업체 전, 현직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됐습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협력사의 노조 와해 공작, 이른바 그린화 작업을 추진한 인물들입니다. 삼성전자 서비스 본사보다 더 윗선, 그러니까 삼성 그룹 본사 차원의 지시 또는 묵인이 있었는지 조사를 이어갈 방침이라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영장 기각으로 차질을 빚게 되었습니다.


출처 - 뉴시스


국정농단으로 인한 총수 구속, 노조 와해 공작 수사와 관련하여 사회적 압박을 느꼈기 때문인지, 삼성전자 서비스는 지난 4월 17일 협력업체 직원 8000명을 직접 고용하고 이들의 합법적인 노조활동을 보장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삼성전자 서비스와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 서비스 지회가 도출한 합의안으로 삼성의 무노조 경영이 깨질 수 있다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과연 이 분위기가 다른 계열사의 노조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룹 총수의 안위를 고려해 발등의 불을 일단 끄고 보자는 책략에 불과할까요?

 

지난 5월 19일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자들은 염호석 열사 4주기 추모식을 가졌습니다. 노동자들은 열사가 온몸을 던져가며 그토록 염원했던 지회의 승리를 함께하지 못해 많이 아쉬워 했습니다. 그러면서 열사의 정신을 계승해 더 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위해서 정규직 전원을 조직하는 데, 더불어 삼성그룹 전체를 조직하는 데 열정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이 땅의 노동자와 국민이 잠자코 있었다면 뻔뻔한 삼성이 궁지에 내몰리는 일은 없었겠죠. 그러니 앞으로 을의 연대는 더욱 단단해져야 하고 불량 기업 내부에서 양심적 고발자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노동자를 보는 사회의 시각도 달라져야 합니다. 그런 변화만이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