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나라?"

 

"이게 나라냐?" 하고 광장에서 외치던 겨울을 보내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비정상적인 상황이 하나하나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어 기쁜 요즘입니다. 이번에는 서울대병원이 고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의 사망원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변경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질병에 의한 자연사가 아닌 외부 요인에 의한 사망이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죠.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시위 도중 박근혜 정권의 충견이었던 경찰의 물대포 직사가 원인이 되어 돌아가신 것이 너무도 분명한 사건이었습니다.


출처 - 뉴시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서울대병원의 주치의 백선하 교수는 백남기 농민의 사망을 지킨 3년 차 전공의에게 사인을 병사로 기재하라고 지시하고는 국정감사에서도 백남기 농민의 유족이 적극적 치료를 원치 않아 치료를 시행하지 못해 사망 종류를 병사로 기록했다고 재차 주장했죠. 

 

당시에도 대한의사협회 지침에 따라 외인사로 기록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으며, 심지어 대한의사협회의 지침을 만든 이윤성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도 외인사로 적었어야 했다고 쐐기를 박았죠. 하지만 주치의인 백선하 교수는 사망진단서 작성이 주치의 고유 권한이라며 끝까지 우겼습니다. 이 때문에 박근혜 정권 차원에서 서울대병원 주치의에게 유·무형의 압력이 있었거나 백선하 교수 스스로 곡학아세한 것은 아닌가 하는 비판도 많았습니다.


출처 - 매일경제


하지만 겨울이 지나 봄이 오는 자연의 순리처럼 박근혜가 탄핵당하고 구속된 후 정권이 바뀌자 비정상적이었던 일들이 하나하나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유족과 시민단체의 이의 제기에 서울대병원은 의료윤리위원회를 통해 백선하 교수가 진단서 작성 지침을 위반한 것으로 확인하고 백선하 교수와 사망진단서를 작성한 전공의에게 정정을 권고했다고 하죠. 하지만 백선하 교수는 끝내 권고를 거부했고 직접 사망을 보고 진단서를 쓴 전공의의 동의하에 사망진단서를 병사에서 외인사로 정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번 사망진단서 변경으로 백남기 농민의 직접 사인은 심폐정지에서 급성신부전으로 변경됐습니다. 기존에는 급성경막하출혈에 따른 급성신부전에 의해 심폐정지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했지만, 이번에 수정된 사망진단서에서는 중간 사인을 패혈증으로 적시하고 패혈증의 선행사인으로 외상성경막하출혈을 지목했습니다. 사실상 뇌출혈을 일으킨 직접적 사망원인이 경찰의 물대포라고 인정한 겁니다. 이와 동시에 서울대병원은 사인 정정이 너무 늦어진 데 대해 백도라지 씨를 비롯한 유족들에게 공식적인 사과의 뜻을 밝혔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유족과 백남기투쟁본부는 사망진단서 정정은 당연한 일이며 늦게나마 정정이 이뤄져 다행이라고 밝혔습니다. 유족들은 그동안 사망신고를 할 경우 사인이 기존 진단서대로 병사로 굳어질 확률이 높다고 판단하여 고인의 사망신고조차 못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족과 백남기투쟁본부는 백선하 서울대병원 교수와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의 사죄와 당시 병원장과 안종범 경제수석의 사적 만남 등을 철저히 조사해 밝혀야 한다는 주장을 밝히는 한편 함께해준 국민의 힘으로 승리했다며 도움을 준 모든 국민의 성원에 감사의 뜻을 보냈습니다.


출처 - 중도일보


표창원 의원의 "만시지탄이지만, 고맙습니다"라는 메시지나 은수미 의원의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은 일제히 '늦었지만 진실이 바로 잡혀 다행'이라는 뜻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적폐의 아성인 자유한국당은 사인 변경을 상식적으로 납득할 국민은 거의 없다는 해괴한 소리를 해서 국민의 공분을 샀죠.

 

출처 - 한겨레


당연하지만 박근혜 정권 아래에서 벌어진 민중 시위를 살인 진압한 경찰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대포를 쏜 장본인인 경찰은 초비상이 걸렸습니다. 유족과 시민단체들의 줄기찬 사과 요구에도 묵묵부답이던 경찰 측은 지난 16일 이칠성 경찰청장이 처음으로 직접 나서서 사과의 뜻을 표명했습니다.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사에서 열린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이칠성 경찰청장은 "그동안 민주화 과정에서 경찰에 의해 생을 마감한 박종철, 이한열 등 희생자를 비롯해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유명을 달리한 백남기 농민과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 및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경찰의 공권력은 어떤 경우일지라도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절제된 가운데 행사돼야 한다"면서 "경찰의 지나친 공권력 행사로 국민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다시는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앞으로 일반 집회시위현장에 살수차를 배치하지 않을 것이며 사용 요건을 최대한 엄격하게 제한하겠다" "이는 대통령령인 '위해성 경찰장비의 사용기준 등에 관한 규정'으로 법제화함으로써 철저하게 지켜나갈 것"을 약속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게 나라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가 촛불개혁 10대 과제에 포함했던 사건 진상 재규명 조사가 탄력을 받을 전망입니다. 유족 측에는 그동안 국가의 폭력으로 고통받은 데에 대한 합당한 배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경찰 쪽에서는 책임자 문책과 처벌이 뒤따라야 합니다. 아울러 조사 와중에 박근혜 정권 차원의 외압이나 회유가 있었다면 명명백백히 밝혀 다시는 시민의 억울한 죽음이 일어나지 않도록 못을 박아야 할 것입니다.

 

생가비행은 고 백남기 농민이 살인 물대포를 맞고 사경을 헤매고 있을 상태 때부터 박근혜 정부에 책임을 물었습니다. 아울러 국민을 짓밟고 소통을 단절한 권력자의 말로가 어떠했는지를 묻고 성찰을 촉구하는 기사를 계속해서 올렸습니다.

 

 

백남기 농민의 안타까운 죽음은 우리에게 국가의 존재 이유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광장에서 생각비행은 청소년들에게 사회의 문제를 고민하게 하는 책을 기획했습니다. 인생, 삶의 태도, 사회와 국가 등에 대한 생각을 스스로 자유롭게 키워나가도록 도와주는 책 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플라톤은 자신이 사랑했던 조국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점령당하고, 망가지는 민주정치를 봐야 했으며, 우매한 아테네 시민의 손에 존경하는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죽임을 당하는 모습마저 목도해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올바름이란 무엇일까?"
"올바르게 사는 것이 행복할까, 아니면 올바르지 않게 사는 것이 행복할까?"
"올바름이 국가에서는 어떻게 생기는 걸까?"

 

플라톤은 지중해 주변 국가들 돌아다니며 많은 철학자, 수학자, 성직자 등을 만나고 돌아와 학생들을 가르치며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을 기록했습니다. 그 책이 바로 《국가》입니다.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자신의 생각을 풀어냈습니다. 


혼란한 아테네의 정치를 개혁하려고 했던 이유, 어떤 사람에게 나라의 통치를 맡겨야 하는가, 그런 통치자에게 어떤 교육이 필요한가, 바람직한 ‘이상 국가’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 왜 철인(哲人)이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플라톤은 《국가》를 통해 밝혔습니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이 ‘국가 혹은 올바름에 대하여’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죠.

 
생각비행이 광장에서 기획한 책, 《플라톤, 이게 나라다!》를 읽으면 당대의 고민을 삶으로 풀어낸 플라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울러 그리스의 정치, 사회의 문제를 지금 우리 사회가 마주한 현실과 비교하여 생각할 수 있습니다. 

 

 

플라톤, 이게 나라다!》는 서양철학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어렵게만 생각해서 잘 읽히지 않는 고전인《국가》를 청소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플라톤의 고민을 이 시대에 풀어내는 청소년이 늘어난다면, 다가오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지금과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요?

 

출처 - 뉴시스

 

질문이 느낌표가 될 때까지 최고의 사상가들과 우리 청소년들이 함께 고민을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아울러 고 백남기 농민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 시대의 청소년들이 가슴 깊이 간직하길 바랍니다.

 

"지옥은 텅 비었고, 모든 악마들이 여기에 있도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희곡 〈템페스트〉에 쓴 구절입니다. '1% 대 99%'라는 구호가 상징하는 자본주의의 불평등한 현실을 월스트리트의 실상 폭로로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책, 《모든 악마가 여기에 있다》의 제목이 바로 이 구절을 빌려 쓴 것이기도 합니다. 셰익스피어가 쓴 구절을 우리 사회에 적용한다면 이 글의 제목 "지옥은 텅 비었고, 모든 악마들이 헬조선에 있도다"가 될 겁니다. 어떻습니까? 실제로 그러하지 않습니까?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시위에서 경찰이 직사한 살인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1년여 동안 사경을 헤매던 백남기 농민이 지난 25일 숨졌습니다. 억울한 죽음 자체가 참담한 일인데, 더 잔악한 일은 그다음부터였습니다. 국가공권력에 의해 명백히 살인을 당한 분에게 대통령이 사과하고 배상을 말해도 늦을 이때, 박근혜 정부의 선택지는 다름 아닌 독재정권 시대에 횡행하던 시체 탈취와 강제 부검이었으니까요.


지난 25일 백남기 농민이 사망하자마자 경찰은 서울대병원을 압수수색하고 법원에 부검 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당했죠. 하지만 재청구 끝에 28일 법원의 부검 영장을 발부받습니다. 법원은 부검 방법과 장소에 관해 유족의 의사를 반영할 것을 전제로 영장을 발부했다는 핑계를 달았지만, 유가족과의 합의가 아닌 협의만으로도 영장을 집행할 수 있게 했기 때문에 경찰이 독재 시대처럼 대부대를 이끌고 강제 집행으로 시체를 탈취할 조건을 갖춰준 것입니다.


출처 - SBS


당연한 얘기지만 유가족은 백남기 농민의 부검을 명백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시위 당시 CCTV 화면과 다른 증거들을 봐도 경찰이 직사한 살인물대포에 의해 발생한 뇌출혈이 그동안의 투병과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임이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경찰이 이토록 집요하게 강제로까지 부검을 집행하겠다는 것은, 독재 시대 때처럼 어떻게든 법의학적 원인을 만들어 고인이 물대포가 아닌 지병으로 숨졌다는 소리를 하고 싶기 때문일 겁니다. '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는 핑계가 저들에겐 절실한 겁니다. 악마가 따로 없습니다.


외신은 평화로운 장례식을 왜 수백 명의 경찰이 감시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국가공권력에 의해 사망한 사람의 장례식을 국가공권력이 감시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도 안 되고 말도 안 되는 처사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지난 28일 마이나 키아이 유엔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백남기 농민의 사망 소식과 관련해 경찰의 물대포 사용에 대해서는 독립된 기관에서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진상조사를 통해 가해자에게 상응하는 처벌을 하고 유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키아이 유엔보고관은 유가족이 부검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고 한국 정부에 촉구했습니다.



출처 - 서울신문


이 땅의 악마들을 제외하고는 백남기 농민의 부검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서울지방법원 판결문에 경찰이 직사살수로 백남기 씨에게 뇌진탕을 입게 했고 응급차량에까지 직사살수를 해 이때의 경찰의 시위 진압은 의도적이든 조작적이든 실수든 그게 뭐든 간에 위법한 것이었다고 명시하는 법적 판단이 이미 나왔기 때문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게다가 경찰은 살수차 운용 지침을 위반한 당사자이므로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직사살수할 때는 안전을 고려해 가슴 이하 부위를 겨냥해야 한다고 했지만 지켜지지 않았고, 최루액 혼합살수도 경고살수 없이 처음부터 섞어 쓴 것 또한 지침 위반이었습니다. 살수차 사용 중 부상자가 발생한 경우 즉시 구호조치하고 지휘관에게 보고한다는 지침을 지키긴커녕 구호하러 온 응급차량에까지 직사살수한 것이 영상자료로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경찰이 법과 지침을 어겨 공권력을 남용해 무고한 시민을 죽인 것이 너무나 명백합니다.


출처 - 뉴스타파


출처 - 이데일리


지금까지 다양한 정권에서 무고한 시민이 시위 도중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왔습니다. 하지만 독재정권의 후예인 노태우 정부 때도 내무부 장관을 경질했고, 하다못해 이명박 정부조차 대통령이 사과하고 경찰청장 내정자가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에서는 경찰청장이 사과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평화로이 고인을 보내드려야 할 장례식장을 되레 경찰들로 봉쇄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이 헬조선임은 명백합니다. 헬정치로 무고한 시민을 죽이기 때문입니다. 지옥에 있어야 할 악마들이 헬조선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법원이 부검 영장을 발부하자 백남기 농민의 딸인 백도라지와 백민주화 씨 등 유족 대표는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만든 이들의 손이 다시 아버지에게 닿게 할 수 없다"고 하며 사인이 명확한 만큼 부검은 필요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막을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아버지를 지키겠다"고 말했습니다. 자식 된 도리로 아버지를 고이 보내드려야 할 이때 경찰과 언론의 괴롭힘에 대응해야 하는 유가족들의 비통한 마음이 애처로울 따름입니다.

출처 -민중의소리

출처 - 경향신문

출처 - 오마이뉴스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야간이라 영장집행이 어렵다며 29일 중 영장 집행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백남기투쟁본부는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입구에서 철야 농성을 벌이며 대응할 예정입니다. 장례식장 앞에서는 촛불문화제가 이어지고 있으며 조문객 행렬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야당은 백남기 특검을 추진할 태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유가족의 안위가 우선입니다. 딸들이 아버지의 장례식을 무사히 치르기를 두 손 모아 바라야 할 정도로 대한민국이 망가졌다는 현실이 참으로 슬픕니다. 다시 한 번 백남기 농민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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