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테슬라가 미 증권거래위원회에 경영진 공식 직함을 바꿨다며 자료를 제출했습니다. CEO인 일론 머스크는 테크노킹(Technoking of Tesla), CFO(최고재무관리임원)인 잭 커크혼은 코인 마스터(Master of Coin)가 이제부터 공식 직함이라고요. 우스울 정도로 특이한 직함 변경 소식에 혹시나 가짜뉴스인가 싶었지만 진짜였습니다. 테슬라의 경영진 공식 직함 변경 관련 뉴스는 암호화폐의 위상이 달라졌음을 시사합니다. 특히 '코인 마스터'라는 테슬라 CFO의 직함을 보면 테슬라와 일론 머스크가 암호화폐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사인으로 봐도 무방할 듯합니다.

 

출처 - CNN

 

시장은 이를 호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암호화폐의 대표격인 비트코인 가격은 이미 고점이라고 생각했던 5000만 원을 넘어 6000만 원, 급기야 지난 14일 오전에는 1비트코인에 7000만 원을 넘어섰습니다. 그러고는 이틀 뒤 총시가의 10%가 폭락했죠. 7000만 원짜리가 하루아침에 6000만 원으로 주저앉은 겁니다. 일론 머스크, 빌 게이츠의 말 한마디에 비트코인 시장의 희비가 교차하는 걸 보면 이게 도박이 아니면 대체 뭐가 도박인가 싶을 지경입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루머 하나에 수많은 사람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져도 괜찮은 것인가 싶어 생각이 많아집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이 자신은 암호화폐를 단 한 개도 갖고 있지 않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단언한 이유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출처 - 한국경제

 

암호화폐의 근간이 되는 블록체인 기술은 주목할 만합니다. 잘 사용할 경우 투명한 거래와 보안을 보장하는 혁신적인 기술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지 않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러니까 암호화폐라는 허상을 치워버려도 블록체인은 남는다는 얘깁니다.

 

출처 - 연합뉴스

 

최근 암호화폐가 환경오염과 기후위기를 촉진한다는 문제의식이 공유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인생을 망치고 무엇 하나 생산해내지도 못하면서 돈만 빨아들이는 줄 알았더니, 환경오염과 기후위기를 부른다니?' 하고 놀라시는 분도 많을 겁니다. 암호화폐가 환경오염이나 기후위기와 관련이 있는 이유는 실물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암호화폐를 존재하게 하기 위한, 채굴하기 위한, 거래하기 위한, 이 모든 과정에 전기를 쓰기 때문입니다. 비트코인 거래를 위해 클릭 몇 번 하는 건데 무슨 전기를 그렇게 사용할까 싶으시겠지만, 사실 암호화폐는 실로 막대한 전기를 소비하고 있습니다.

 

출처 - BBC

 

케임브리지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재 비트코인으로 인해 연간 121.36테라와트시가 소비되고 있다고 합니다. 수치만으로는 체감이 잘 안 되실 수도 있는데요, 이는 아르헨티나의 연간 전력 소비량을 넘어서는 소비량이라고 합니다. 현재 비트코인의 연간 전력 소비량은 네덜란드, 아랍에미리트, 아르헨티나를 넘어 노르웨이와 맞먹습니다. 이런 나라들이 전기를 적게 쓰는 나라인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전기를 많이 쓰는 30개국에 들어가니까요. 그러니까 비트코인은 이미 전 세계에서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30개국 중 한 나라 전체 사용량에 버금가는 국가급 전기를 소모하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출처 - 연합뉴스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전체 비트코인 네트워크에 필요한 전력량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전기를 많이 쓰는 미국 내에서 상시 작동 대기 중인 가정용 기기가 연간 소비하는 전력량에 맞먹는 수준입니다. 그렇다면 리플, 이더리움 등 유명한 다른 암호화폐가 소비하는 전력까지 생각하면 '가상화폐'로 낭비되는 전력이 대체 어느 정도일지는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암호화폐는 고안된 방식 그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비트코인을 채굴하려면 암호화폐 네트워크에 연결하는 고사양의 컴퓨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비트코인 채굴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복잡해지고 어려워지죠. 이 때문에 더 성능이 좋은 컴퓨터를 쉬지 않고 가동해야 합니다. 암호화폐 채굴에 사람들이 열을 올리자 전 세계 컴퓨터 부품이 암호화폐 채굴기에 쓸려 들어가는 바람에 정작 컴퓨터 부품이 필요한 곳에 원활한 공급이 되지 않아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거나 그래픽카드 같은 주요 부품의 가격 폭등으로 실물 경제가 잠식되기도 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출처 - 대시 뉴스 코리아

 

비트코인 채굴은 현재 중국에서 많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에너지 비용이 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중국의 전력 대부분은 석탄 등 화석연료 발전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막대한 전기 사용은 대량의 이산화탄소 배출로 이어지고 지구온난화를 가속하여 결국엔 기후위기를 촉진하게 됩니다. 빌 게이츠는 비트코인이 인류에게 알려진 다른 어떤 방법보다 거래당 전기를 많이 사용한다고 경고했습니다. 2018년에 미국 하와이대 연구팀은 비트코인이 지구온난화를 가속해 수십 년 내에 지구 온도가 2도 오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출처 - 한국경제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라는 전기차로 환경오염을 줄이고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을 널리 퍼뜨리겠다고 하더니 이제는 비트코인에 대대적으로 투자해 기후위기를 앞당기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행보입니다. 돈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암호화폐를 이대로 둬도 되는 걸까요? 경제는 물론 환경과 우리의 생존에도 독이 되는 이 광풍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암담한 상황입니다.

지난 2월 26일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의료인의 면허를 박탈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야당의 반대로 계류됐습니다. 이번 의료법 개정안은 강력 범죄를 저질러 처벌의 대상이 되더라도 의사 면허에 직접적 제약이 없다는 비판 여론이 커지며 법사위까지 온 것이었죠. 당시만 해도 민주당은 개정안을 3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통화시키겠다는 의지를 피력해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3월 16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논의할 법안에서 의료법 개정안이 제외되어 3월 내 통과는 결국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오는 4월에 있을 서울, 부산시장 보궐선거와 LH 직원들의 땅투기 의혹 같은 중대 사안의 영향으로 민주당이 입장을 유보한 것으로 보여 여야 모두 국민의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오늘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의사의 면허를 박탈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 문제를 들여다보겠습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변호사, 법무사, 공인회계사 심지어 아파트 동대표도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을 경우 면허와 자격이 박탈됩니다. 국회의원 역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의원직이 박탈되죠. 그런데 의사 면허증은 살인을 저지르 건 성범죄를 일으키 건 아무런 제약 없이 거의 자동으로 재교부되고 있습니다. 지난 6년간 취소된 의료인의 면허 재교부율이 93%에 이릅니다. 특히 2015, 2016, 2018년에는 100%였습니다. 살인으로 징역 20년 확정판결을 받았는데도 말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 의사의 본분이긴 하지만 온갖 전문직 가운데 의사 면허만 신성불가침의 영역처럼 보이는 건 이상한 일이죠.

 

출처 - MBC

 

지난달 의료법 개정안이 법사위에 계류된 건 국민의힘이 반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보건복지위를 통과한 개정안은 금고 이상의 중대범죄를 저지르고 실형, 집행유예, 선고유예를 받은 의료인의 면허를 최대 5년간 취소하고 재교부를 금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애초 여야 합의로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인데 국민의힘은 약속을 뒤엎고 힘 있는 의사들 편을 들기 바빴습니다. 이번 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90%에 달하는데도 말입니다. 국민의힘은 의사들 심기는 세밀히 살피면서 국민의 심기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국민을 개·돼지로 생각하는 당다운 모습입니다.

 

출처 - KBS

 

그런데 대한의사협회의 입장은 국민의힘보다 더 가관이었습니다. 자신들이 특별 대우를 받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이번 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의사 총파업 등으로 코로나 백신 접종을 보이콧하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으니까요. 안 그래도 좋지 않은 국민의 감정에 이들은 불을 제대로 질렀습니다. 사실 의료인들의 범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죠.

 

출처 - JTBC

 

지난 2015~2019년 전문직 성범죄 통계를 보면 놀랍게도 종교인을 누르고 의사가 1위입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의협은 성범죄로 의료 면허를 박탈하는 것을 두고 자기네가 차별을 받는 양 열을 냅니다.

 

출처 - JTBC

 

한편 뇌물을 받고 제약사가 원하는 약을 처방해서 법적 처벌을 받아도 의사는 아무런 문제 없이 의사로 행세하고 다닙니다. 4년 전 56억 규모의 제약사 리베이트 사건이 터진 뒤 JTBC가 취재한 결과 당시 연루된 500명이 넘는 의사 중 면허가 취소되긴커녕 정지된 의사조차 없었다고 하죠. 당시 제약사 대표는 징역형을, 의사 274명은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이런 상황은 개정 전 의료법으로도 재교부는 할 수 있을지언정 일단 면허 정지가 이뤄져야 하는 건에 해당합니다. 의료업계에 이런 수십, 수백억대의 리베이트 범죄가 반복되고 있는데, 의사들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현실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기에 더해 최근 문제가 불거진 유튜버들의 성형 등 병원 뒷광고까지 생각하면 의사들과 연관된 문제가 셀 수 없을 지경입니다.

 

출처 - JTBC

 

상황이 이런데도 이번 의료법 개정안에서 수술실 CCTV 의무화는 다루지도 못했습니다. 자격 없는 자에 의한 대리 수술 등이 여러 번 사회적 문제로 이슈화되었고 관련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지만 의사들은 수술실 CCTV 의무화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인권 침해, 녹화본의 해킹 우려 같은 알량한 핑계를 대면서 말입니다. CCTV의 경우 의료사고를 객관적으로 조사하고 진실을 밝혀내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의사들은 소송에서 자기네에게 불리하게 될 상황을 우려해 극렬히 반대하는 겁니다.

 

출처 - 전자신문

출처 - 아시아경제

 

수술실 CCTV 의무화에 대해 국민의 뜻은 분명합니다. 다른 전문직과 똑같이 형평에 맞는 규칙을 지키길 바랄 뿐이죠. 의사들도 이 원칙을 지키려 한다면 반대할 명분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협박까지 일삼아 가며 의료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것을 보면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의료 면허를 지키고자 하는 그들의 강력한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수술실과 신생아 분만실 등에 대한 CCTV 의무화도 마찬가지로 최선을 다해서 상식적인 처치를 했다면 CCTV는 오히려 의사들의 입장에서도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밝혀줄 열쇠가 될 텐데 말입니다. 그냥 평범하게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된다'는 선택지가 머릿속에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여야 의원들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국민의 절대다수가 바라는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3월 4일 전격적으로 사퇴했습니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행보였습니다. 온갖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를 다하도록 했고, 윤 총장 역시 그렇게 하겠다고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으니까요. 임기를 4개월 이상 남긴 채 윤석열은 검찰총장직을 사퇴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검찰총장으로 임명될 당시 윤석열은 검찰개혁의 완성을 위한 기수로 부각되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검찰총장이 되고부터 그는 검찰이란 조직에만 충성하며 검찰의 이권을 지키는데 혈안이 되어 숱한 비난을 받았습니다. 공정한 공권력 행사라는 미사여구는 취임 한 달만에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조국 일가족을 때려잡기 위해 무차별적인 공세를 보였으나 정작 자신의 장모와 부인의 비리 의혹에는 미적거리는 모습을 보여 '내로남불'의 대표적인 아이콘이 되어버렸으니까요. 검언유착 의혹에 이르면 윤 총장의 행보 자체가 우리나라가 '검찰공화국'임을 명확히 드러내는 증거였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렇게 철저하게 검찰 조직을 위해 움직이던 윤석열 전 총장이 이번에 직을 던진 이유는 중대범죄수사청 설치에 반대한다는 명분 때문이었습니다. 중수청은 검찰이 담당하던 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참사 등 중대범죄에 대한 수사를 전담하는 별도 기관을 말합니다. 검찰을 유지하는 알짜배기 권력을 놓기 싫었는지 윤석열은 중수청에 대해 법치를 말살하는 것이며 헌법 정신을 파괴하는 것이라며 극언을 쏟아냈습니다. 검찰이 독점한 기소권과 수사권이 그간 얼마나 많은 폐해를 낳았는지는 생각조차 안 나나 봅니다.

 

출처 - 조선일보

 

윤석열이 사퇴하자마자 보수극우 언론들은 찬양의 나팔을 불기 바빴습니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항하는 영웅 서사를 그리면서 야권의 유력한 대선 후보로 밀고 있습니다. 대권 후보로서 지지율이 가장 높은 윤석열은 한동안 간을 보고 있었지만 사실상 정치 행보를 시작했고 일각에선 4월 창당설까지 제기되는 상황입니다. 보수 언론은 윤석열 전 총장이 정치에 뛰어든 건 구국의 충정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포장해주기 바쁩니다.

 

출처 - 뉴스1

 

대부분의 언론은 현직 시절부터 정치검사 행보를 해온 윤석열에 대한 비판을 싣지 않고 있습니다. 윤석열은 총장 임기 완주와 정치적 중립에 대해 말해왔지만 결국 행동은 정반대였죠. 그런데도 언론은 중립의 의무가 있는 검찰총장의 정치 행보보다 정부와 여당을 비난하기 바쁜 상황입니다. 보수언론들의 보도대로 윤석열의 사퇴로 현 정권 관련 수사가 좌초된다면 윤석열은 조직을 위해서라도 임기를 채우며 끝까지 막았어야 자기 말대로 검찰총장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이런 지적을 하는 기자는 없고 유일하게 검찰 출신 김종민 변호사가 한 "무책임한 사퇴로 역대 최악의 검찰총장, 정치검사"라는 코멘트만 작게 실렸을 뿐입니다.

 

출처 - 노컷뉴스

 

윤석열 총장의 행보와 관련한 오해를 막기 위해 중수청 관련 이슈를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윤 총장의 사퇴로 중수청 설치를 막을 수 있다거나 이른바 권력 핵심부에 대한 수사가 가속될 수 있다면 모를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국민은 중수청을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검찰 조직 입장에서는 수사권이 없어지면 자기네 권력이 그만큼 줄어들게 되죠.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윤석열은 조직에 충성한다던 말과 다르게 혼자 발 빠르게 도망친 것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검찰 내부에서조차 '윤 총장이 직을 건다고 수사청을 막을 수도 없는데 자기 정치하러 나간 것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으니까요. 개인적인 정치적 지지율을 지키고자 도망쳤다고 보는 사람이 검찰 안에도 있다는 얘깁니다. 그나마 그가 검찰총장일 때는 살아 있는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자임하며 보수 세력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정치인 윤석열'로 나서는 상황에서 '검찰 개혁'이라는 국민의 열망을 떠안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그리고 또 하나 고려할 사항이 있습니다. 현직 검사가 공직선거 후보자로 출마하려면 1년 전에 사직해야 한다는 윤석열 방지법을 고려한 것처럼, 대선 딱 1년 전에 전격 사퇴한 것도 참 속 보이는 짓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그런데도 언론 어디에도 총장이 자기 살자고 조직을 버리고 도망쳤다거나, 임기를 끝까지 지키겠다던 소신을 꺾고 공수표를 날린 것에 대한 질타나 관련 보도가 눈에 띄질 않습니다. 벌써부터 보수언론은 그 앞에 줄을 대기 바쁩니다.

 

출처 - JTBC

 

게다가 윤석열이 검찰총장직을 내려놓았지만 그의 가족 수사는 지지부진입니다. 부인인 김건희가 연루된 주가조작 의혹은 공소시효가 임박했지만 검찰은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또 전시회 협찬금을 부당하게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아예 조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공소시효를 3월로 보고 있진 않다며 뭉개고 있을 뿐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공소시효로 장난질하는 건 검찰이 즐겨 쓰던 수법입니다. 이번에 한명숙 죽이기 거짓증언을 교사한 검사들이 공소시효 하루 전에 무혐의를 받고 종결되었습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이런 결론을 내려고 임은정 검사에게서 사건을 빼앗았냐며 검찰을 비난했으며 시민단체들은 공수처에 진상을 은폐한 윤석열을 고발했습니다. 담당 검사들을 즉각 수사해야 한다면서 말이죠.

 

출처 - JTBC

 

윤석열은 검찰총장직을 사퇴하고 정치 행보를 시작했습니다. 100명이 넘는 기자가 들어온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도 개설했다고 하죠. 그러니 이제 명명백백하게 가족이 연루된 비리와 의혹의 진실을 밝힐 때입니다. 부인이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장모가 관련된 추모공원 사건, 측근의 친형의 뇌물수수 무마 의혹 등등 한둘이 아니죠. 법무부 장관은 신속한 수사가 이뤄지도록 수사지휘권을 발동해야 합니다. 적어도 그가 정치판으로 올라오기로 한 이상 철저한 검증은 필수 아니겠습니까?

2020년 2월 제기된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프로포폴 상습 투여 의혹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이번에 확인된 병원은 검찰의 수사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의혹이 제기된 이후 프로포폴 투여를 중지한 게 아니라 병원을 옮긴 것으로 보입니다. 이재용과 병원장 사이에는 연락책인 브로커가 따로 있었고 이재용을 '장 사장'이라는 암호로 불렀다고 하죠. 브로커가 '오늘 장 사장님이 가신다'라고 전화하면 병원장은 직원을 모두 퇴근시키고 혼자 이재용을 맞이했습니다.

 

출처 - MBC

 

직원을 다 퇴근시키고 병원장이 혼자 밤늦게 프로포폴을 투여한 것으로 미루어볼 때 경찰은 정상적인 투약은 아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재용은 작년과 똑같이 의사가 합법적으로 처치한 것이며 불법 투약이 아니라는 종전 입장을 되풀이했습니다. 지난해 해당 사건과 관련된 병원장과 간호조무사 등은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불법 투여 의혹을 받은 채승석 전 애경산업 대표도 징역형을 받았죠. 이재용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유죄가 확정된 것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문제는 이재용, 채승석 같은 내로라하는 부자들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마약을 하는 사례가 급격히 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때 '마약 청정국'으로 불린 우리나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습니다. 물론 '마약 청정국'이란 위상을 국제 기관이 부여해준 적은 없습니다. 마약을 관리하는 식약처는 마약 청정국 지위와 상한선에 대해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1970~1980년대 마약류 유통이 심각하여 1990년대 들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단속이 이뤄졌습니다. 그 결과 마약류 범죄에서 깨끗한 사회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난해 홍정욱 전 한나라당 의원의 딸이 1급 마약인 LSD를, 그것도 수십만 명이 투약할 수 있는 정도로 엄청난 양을 밀반입했지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을 뿐입니다. 추징금은 17만 8500원이었습니다. 1억 7850만 원도, 1785만 원도, 178만 원도 아닌 17만 8500원이요. 홍정욱의 딸이 귀국 직전까지 확인된 것만 9차례 투약 혹은 흡연한 것으로 조사됐던 사실을 생각하면 끼리끼리 봐주기로 일관하는 고무줄 판결이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풀어놓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이 어이없는 판결에 대해 검찰은 상고하지 않았습니다. 판사는 유명인의 자식이라고 더 무겁게 처벌받아선 안 된다는 법감정을 피력했습니다. 하지만 일반 마약 사범은 이런 대우를 받지 못합니다. LSD도 아닌 대마 밀수 사건으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으니까요. 이렇게 볼 때 1급 마약인 LSD를 밀반입하고 수차례 투약하기까지 한 홍정욱의 딸이 훨씬 가벼운 판결을 받은 까닭은 판사의 말과는 달리 유명인의 딸이었기 때문이겠죠.

 

출처 – 청와대 청원 게시판

 

이른바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 총수와 한때 대선 후보로 거론된 사람의 친딸은 불법 마약으로 재판대에 섰지만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데 그치자, 점점 많은 이들이 마약을 찾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출처 - MBC

 

작년 10월 부산 해운대 도심에서 연쇄 추돌사고를 낸 운전자는 강력한 합성대마를 흡입하여 환각 상태였습니다. 시속 100km 과속으로 포르쉐를 몰다 연달아 승용차들을 들이받은 운전자와 동승자는 텔레그램을 통해 합성대마를 구매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출처 - SBS

 

한편 이런 사고 현장에서 인명을 구해야 하는 소방관이 마약에 손을 댄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달 용산구 주택가에서 한 남성이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마약에 취해 덜덜 떨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는 필로폰을 여러 차례 투약했다고 실토했는데 알고 보니 현직 소방경이었습니다. 소방학교에서 교육과 훈련을 담당하는 사람이 마약에 절어 있다니 대체 마약이 어디까지 파고든 건가 싶습니다.

 

출처 - SBS

 

이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마약 사건사고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지난 2월에는 서울 강남의 한 오피스텔에서 2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는데 함께 있던 남성과 필로폰을 투약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두 사람은 인터넷 카페를 통해 그날 처음 만났다고 하죠. 지난 1월에는 택시에 두고 내린 가방을 찾기 위해 택시기사에게 수차례 전화해 독촉한 손님을 수상하게 여긴 택시기사가 가방을 경찰에 전달했더니 마약이 발견된 일도 있었습니다. 이 밖에 20대 남녀 3명이 설날에 강남 호텔에서 대마와 해피 벌룬이란 마약을 하다 경찰에 적발됐고, 한 편의점에서는 30대 여성이 마약을 투약한 채로 강남 거리를 배회하다 들어와 살려달라며 마약을 했다고 말해 출동한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습니다.

 

출처 - 뉴스1

 

이런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최근 마약에 손대는 사람들은 이재용이나 홍정욱의 딸 같은 속칭 '셀럽'들만이 아니라 학생, 직장인, 주부 등 일반인인 경우가 대폭 늘었습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9월까지 검거된 마약사범만 8639명에 달하며 9월 한 달 기준으로 801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23.9% 증가한 수치입니다. 이와 관련해 홍정욱의 딸을 비롯한 고위층에 대한 관대한 판결이 마약류 범법 근절을 어렵게 만든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검찰이 내놓은 2018년 마약류 범죄백서를 보면 1심 재판 결과는 실형 52.4%, 집행유예 40%, 벌금 4%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그중에 재벌가 자제나 유명인에게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진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출처 - 뉴스1

 

마약류 관련 범죄는 형량을 늘린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 골치가 아픕니다. 마약중독자 치료보호제도 지정병원에서 일하는 천영훈 인천 참사랑병원 원장은 최근 마약 중독으로 찾아오는 환자 중 20대 초반과 여성의 비율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고 언급합니다. 그렇게 된 원인 중 하나로 마약을 구하기가 너무 쉬워졌다는 점을 꼽습니다. 청소년들이 호기심으로 구글 검색이나 텔레그램을 이용해 손쉽게 LSD, 엑스터시, 허브 등을 구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겁니다. 천 원장은 국내 마약 상습 투약 인구가 5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확산 속도인데 2015년도에 1만 명을 돌파한 이래 5년 만에 2배로 늘었다고 합니다.

 

출처 - 서울신문

 

하지만 천 원장은 마약 초범이나 재범을 무조건 교도소에 보내면 안 된다고 제안합니다. 교도소에서 마약류 중독자들을 모아놓으면 전국적 공급망 정보를 얻어서 출소하게 되므로 마약 중독을 오히려 키워서 나오는 꼴이라는 겁니다. 천 원장은 현재 있는 치료명령제도를 적극적으로 확대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한때 우리나라는 마약 범죄율이 낮았지만 이제는 마약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위상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SNS를 통해 청소년들까지 손쉽게 마약에 손댈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인터넷 무법지대인 암호화된 웹사이트 일명 '딥웹(deep web)'에서 비트코인으로 마약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시대적 변화를 인식하고 마약 근절을 위해 기관 간 공조는 물론 제도 개선, 새로운 입법 등이 절실한 때입니다. 이제라도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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