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가 절정이었던 지난 주말 뉴스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리신 분들 많으실 겁니다. 지난 8일 이른 아침 서울로 향하던 KTX 열차가 탈선하는 사고가 났기 때문이지요. 지난 12일 공개된 관제 녹취록을 보면 기장이 교신을 통해 사고사실을 알렸는데 강릉역 관제사가 믿기지 않는 듯 여러 차례 되묻는 등 상당히 긴박했던 상황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열차가 탈선하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천만다행으로 사망자는 없었습니다. 승객 15명과 역무원 1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열차는 45시간 동안 운행이 중지되었습니다. 고속철도 탈선사고 하면 1998년 독일 에세데 참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사망자가 103명이나 되는 대형 사고였죠. 또한 2013년 스페인 열차 참사로 2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일도 있습니다. 이런 사례를 보면 이번 KTX 탈선사고에서 사망자가 1명도 없었다는 것은 실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사고를 조사한 뒤 국토부는 선로의 방향을 결정하는 선로전환기 2대의 케이블이 잘못 연결돼 있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서울로 향하던 열차가 정상 진행하기 위해선 선로전환기가 선로 왼쪽에 확실히 붙어야 하는데 사고 당시 틈이 벌어진 채 어중간하게 놓여 있었기 때문에 KTX가 탈선한 것으로 원인이 파악되었죠. 그런데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났듯이 코레일은 이 선로전환기가 고장 났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으나 손을 쓸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장치와 상황실을 연결하는 회선이 거꾸로 연결돼 있었던 탓에 엉뚱한 옆 선로만 점검했기 때문입니다. 코레일 상황실에는 고장 난 선로가 정상으로, 정상인 선로가 고장으로 표시되었고 문제 상황이 발생하자 현실과 정반대로 탈선한 선로가 정상이니 일단 그쪽으로 열차를 통과시키자는 판단을 한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황당한 점은 회선이 작년 강릉선이 개통되기 전부터 잘못 연결된 상태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선로전환기가 오작동하지 않았을 뿐이었죠. 그러니까 여태껏 사고가 나지 않은 게 신기한 상황일 따름입니다.


출처 - KBS


열차 탈선사고로 문제가 불거지자 KTX 강릉선 개통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 일정에 맞추려고 졸속으로 진행했기 때문이 아내냐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2년 전 강릉선 건설 중 30미터 높이로 짓고 있던 교량이 추운 날씨 탓에 철강 자재가 수축하며 지상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뿐이 아닙니다. 강릉선 공사는 부실시공과 비리로 얼룩졌죠. 당시 철도시설공단 임원들이 하청업체의 뇌물을 챙기다 징역형을 받았고 사정 당국에 발견된 부실시공과 납품 불량만도 수십 건이 넘었습니다. 이번 선로전환기도 해당 업체가 설계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한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터질 때부터 평창 동계올림픽과 관련된 이권 사업이 최순실의 잇속을 채워주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많았죠.


출처 - MBC


최근 들어 계속 발생하는 KTX 관련 사고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공기업 선진화라는 미명하에 진행된 대규모 인력 감축과 민영화입니다. 철도는 공공성을 띠어야 하는 대표적인 교통수단이지만 기술 인력과 운영 인력을 감축하고 외주로 돌리기 바빴습니다. 일반인도 집에서 리모컨 건전지를 바꿀 때는 플러스, 마이너스 극을 확인합니다. 그러니 안전과 직결되는 선로전환기의 설계, 시공, 점검 이 모든 과정이 엉망으로 진행되는 황당한 일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현장 인력과 운영 인력이 충분히 확보되었다면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는지도 모릅니다.


출처 - 한겨레


이번 KTX 탈선 사고로 드러난 열차 운행의 다른 문제점은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의 업무 이원화입니다. 열차 운행과 선로 유지·보수는 코레일이, 선로 시공과 소유권은 철도시설공단이 맡고 있죠. 이 때문에 탈선 사고의 책임 소재를 놓고 두 기관이 서로 떠넘기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원래 하나였던 철도공사가 둘로 쪼개진 것도 궁극적으로 철도 민영화를 위한 밑작업이었죠. 철도 사업에 민영 회사가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시설과 운영을 분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작업의 시작은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KTX 승무원 대량해고 및 비정규직화였습니다.


출처 - 뉴스1


이번 탈선사고 당시 200여 명에 달하는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승무원은 딱 1명이었습니다. KTX가 개통되던 해 코레일이 인건비 절감을 이유로 승무원을 무더기로 해고하고 비정규직으로 돌린 결과가 바로 이것입니다. 전문성이 떨어지고 그나마 전문성이 떨어지는 사람조차 턱없이 모자라는 실정인 겁니다. 철도의 수익성 향상은 역세권 개발이나 복합환승센터, 돈 낼 가치가 있는 운행 상품 개발 등 경영의 묘를 발휘해 타개할 일이지, 안전을 외주화하여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번 사고의 책임을 지고 오영식 코레일 사장이 사퇴했습니다. KTX 해직 승무원 문제 같은 노사문제와 SR 통폐합 등에서 성과를 냈지만 기본 중의 기본인 안전문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수도권 시민들이 KT 화재로 디지털 난민이 되어 눈이 멀고 귀가 막히는 경험을 한 지 2주밖에 되지 않은 상황인데, 이번에는 시민의 발이어야 할 열차에서 대형 참사가 일어날 뻔했으니, 참 많은 고민이 듭니다. 

 

출처 - JTBC

 

촛불시민은 문재인 정부에 양극화 해소, 청년 일자리 창출 등을 국정 운영의 최우선 과제로 요구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국민의 염원을 받들어 노동을 존중하는 사회를 약속하고 출범했습니다. 노동소득 분배를 통한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인상,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노동 시간을 줄이는 주 52시간 근무제 등을 약속한 것도 그 때문이었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문재인 정부가 가운데 가장 비판을 많이 받는 부분이 바로 노동정책입니다. 최저임금 속도조절을 이야기하는 것이나 양대 노총의 반발을 무릅쓰고 탄력근로제를 확대하려는 움직임 등을 보면 문재인 정부가 초심을 유지하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출처 - 경향신문

 

지난 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여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고 현장에는 '풀코드'라고 하는 비상시 기계를 멈추는 장치가 있었습니다. 풀코드를 작동시킬 한 명만 더 있었더라도 김용균 씨는 죽지 않았을 겁니다. 서로의 안전을 지킬 '2인 1조 근무'는 강제 조항이 아니었습니다. 노동조합은 줄곧 2인 1조 근무를 요구했지만 회사는 단순 업무라며 이를 무시했습니다. 생각비행은 <풍등으로 인한 저유소 화재, 문제는 안전불감증이야!>라는 기사에서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번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다양한 징조가 있었습니다. 현장 노동자들은 컨베이어벨트 작동 상태를 살피고 정비 부서에 이상 여부를 알리는 작업이 위험하다고 계속 주장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노동자의 요구를 회사가 무시한 탓에 결국 안타까운 사고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을 돌아보게 하는 사건, 사고가 연이어 터지고 있습니다. 이를 무시한다면 대형 참사를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출처 - 《갑의 횡포, 을의 일터

 

생각비행이 출간한 책 《갑의 횡포, 을의 일터》의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하청사회의 문제 혹은 하청사회라는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하청사회가 작동하는데 필요한 거시적 구조화와 미시적 개인화라는 문제를 함께 다루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갑과 을의 위계를 재생산하는 보이지 않는 구조와 제도, 갑과 을이라는 지위를 재생산하는 주체의 태도와 문화에 대한 고찰이 필요합니다. 외주를 받는 하청업체는 대개 영세합니다. 하지만 전문가의 관점에서 보면 실무에 가장 능한 업체이며, 그 구성원이야말로 그 분야의 진정한 전문가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그런 그들을 우리 사회는 일거리를 받는 '을'이라고 부르며 홀대하고 있습니다. 갑이 을에게 주는 외주를 맡기는 업무는 위험이 크고 사회적으로 그리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일거리가 대부분입니다. 이들은 전문가다운 대접을 받지도 못한 채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책임을 뒤집어쓰고 맙니다.

출처 - 《공자, 이게 인(仁)이다!

 

우리는 분절화되고 개인화된 관계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를 바람직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갑과 을, 원청과 하청 사이에 책임 있는 관계와 연대의 끈을 다시 형성해야 합니다. 갑과 을의 불평등이 가속화되는 하청사회는 결코 지속될 수 없으며 또 지속되어서도 안 됩니다. 이를 위해 현실에 눈감기보다 현실을 똑바로 보기 위해 눈을 부릅떠야 합니다. 을들이 하청사회를 유지하는 보이지 않는 힘, 특히 갑의 지대추구행위와 외주화를 모든 시민이 알아채고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다면 긍정적인 변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은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적인 것인 양 나라가 거꾸로 돌아갔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인 대법원까지 마수를 뻗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은 사법부 블랙리스트 파문이 일자 의혹을 극구 부인한 바 있는데요. 하지만 현재 드러나고 있는 양상을 보면 혹시나가 역시나입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이 입맛에 맞지 않는 판사들을 뒷조사하고 억압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았는데요, 판사들이 이와 같은 의혹을 본격적으로 제기하던 시점에 대법원 컴퓨터에서 2만 개가 넘는 파일이 삭제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파일 중에는 진보적 판사들의 모임과 관련된 것들도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법을 준수해야 할 대법원 차원에서 증거 인멸에 나선 것 아니냐는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출처 – JTBC 유튜브


대법원 특별 조사단이 작성한 보고서에 의하면 법원행정처의 김 전 심의관이 판사들의 인사 이동이 예정됐던 날 새벽 2시간 동안 2만 5000여 개의 파일을 삭제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김 전 심의관도 삭제 후 자리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파일 중에는 당시 논란이 뜨거웠던 국제인권법연구회와 관련된 파일도 포함됐습니다. 이 시기는 판사들이 행정처의 사법 행정권 남용 의혹을 주장하던 시기라 더욱 큰 의혹을 낳고 있습니다. 파일 삭제 나흘 전에는 인권법 연구회 관련 업무를 맡은 심의관이 반발해 사직서를 제출할 정도였으니 의도적으로 파일을 삭제했을 것이라는 심증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일부 판사들은 파일 삭제가 증거 인멸이나 공용 서류 무효죄에 해당할 수 있다며 형사 고발 조치 등이 필요하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서민들에게 크게 와닿을 문제는 KTX 해고승무원 관련 재판을 미끼로 대법원이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사법 거래를 한 정황이 드러난 상황일 겁니다. 지난 25일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공개한 문건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잘 시절 법원행정처가 2015년 2월 KTX 승무원 관련 재판 등을 미끼로 청와대와 거래를 하려 한 정황이 담겨 있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당시 대법원은 KTX승무원의 실제 사용자는 코레일이라는 1, 2심 판결을 갑자기 뒤집고 사건을 파기환송한 바 있습니다. 1, 2심 승소로 코레일로부터 미지급된 임금과 소송비용 등을 받았던 승무원들은 이 대법원 판결로 수천만 원에 이르는 돈을 회사로 돌려줘야 했습니다. 한 해고 승무원은 이 대법원 판결이 너무 억울한 나머지 한 달 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했습니다. 만약 당시 대법원이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뒷거래를 한 끝에 이런 판결을 내린 것이라면 사법 살인이라 할 수 있는 크나큰 사태입니다. KTX 해고승무원들은 헌법 질서를 어지럽힌 양승태를 구속하고 엉터리 판결로 고통을 가중시킨 당시 정부와 철도공사의 사과 그리고 복직을 요구했습니다.


출처 – SBS 유튜브


김명수 대법원장은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했습니다. 재판 개입과 판사 사찰 정황이 담긴 문건을 작성하는 데 관여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간부 등을 검찰에 고발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조사단장을 맡았던 안철상 법원행정처장도 국회에 나가 범죄 혐의가 뚜렷한 사안은 고발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미 이와 관련된 시민단체 등의 고발이 7건이나 접수되어 있어 검찰은 직권 남용 등의 혐의로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특조단은 검찰이 수사에 들어가면 합리적 범위 내에서 관련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로써 이 사태에 관련됐던 박근혜 정부 당시 대법원 판사들이 피고로 법정에 서는 초유의 일이 벌어지게 됐습니다.


출처 - 천지일보


이 모든 사태를 초래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법원 조사를 거부했습니다. 이 때문에 법조계 안팎에서는 강제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미 피해를 본 노동자들이 즐비한 마당에 사법정의를 바르게 세우기 위해서라도 대법원은 제눈의 들보부터 처리해야하지 않을까요? 신속한 수사와 처벌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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