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지난번 기사(한글 반포 565년, 한글의 현실은?)에서 우리의 글자인 한글이 얼마나 우수한지 알아보았습니다. 또한 한글은 지배층이 아니라 백성의 문자생활을 편안하게 하겠다는 세종대왕의 의지가 담긴 민주글자임을 확인했습니다. 가까운 나라 중국에서 "조선에 사람을 보내 문자를 배워야 한다"는 말을 했을 정도로 한글은 배우기 쉽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우수한 문자체계였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한글을 지금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오늘은 한글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던 안타까운 역사를 돌아본 다음 한글을 아름답게 살려 쓰고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단체를 여러분께 소개하려 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한글을 홀대했는지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 한글을 사랑하는 마음을 되새겨보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창제시기부터 푸대접을 받은 훈민정음

한글,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훈민정음은 창제 이전부터 수많은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집현전 학자였던 최만리는 한자를 버려선 안 된다며 기존에 사용한 이두(한자의 발음을 따와서 글자를 만드는 방법)를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죠. 하지만 세종대왕은 이런 신료의 반대를 무릅쓰고 훈민정음을 창제하고서 서두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훈민정음 서두(출처: 위키피디아)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로는 서로 (의사)소통하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에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그 뜻을 (글자에)실어서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내가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개의 글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서 날로 씀에 편안하게 할 따름이다.

우여곡절 끝에 반포된 훈민정음에 대한 반응은 계층에 따라 달랐습니다. 지배층인 양반들은 훈민정음이 아닌 한문 위주의 생활을 고수했습니다. 그들은 한글을 언문(諺文, 상말을 적는 문자라는 뜻으로 속되게 이르던 말), 암클(여성들이 쓰는 글)이라고 비하하기까지 했습니다.

반면 여성과 서민층에선 훈민정음을 환영했습니다. 편지나 계약서를 쓰는 데 훈민정음은 유용하게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궁궐에서 생활하는 궁녀들이 주고받는 편지에 많이 썼다고 합니다. 훈민정음은 처음엔 조금씩 확장되었으나 몇 년 전에 발견된 정조의 어찰을 보면 왕도 훈민정음으로 편지를 썼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겨레의 문자인 한글을 탄압한 일본 제국주의

근대로 넘어오면서 한글은 체계적으로 정비되기 시작합니다.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 한글을 '국문'이라고 하고, 모든 법령은 국문을 바탕으로 삼고 한문 번역을 붙이거나 국한문을 섞어서 쓰도록 했습니다. 민간에선 주시경이 《대한국어문법》을 저술하여 한글을 정리했고, 이후 많은 학자가 한글은 지속적으로 연구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조선어학회 같은 모임에서 한글 연구와 보급을 지속함으로써 많은 이가 한글을 깨쳤습니다.

조선어학회 회원들-수난동지회 기념(출처: 네이버 지식사전)


하지만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점령하자 백성의 한글 생활은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일제는 한국인을 압박하는 방법으로 1936년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을 공포했고, 1939년 4월부터는 학교에서 국어과목을 없애고, 신문과 잡지를 폐간시켰습니다. 그 대신 모든 학교에서 일본어로 수업을 받고 '가나'로 된 책을 읽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암울한 시기에 '조선어학회 사건'이 터집니다. 일제는 한국어 사전 편찬을 주도한 순수 학술단체인 조선어학회를 독립운동 단체로 몰아 관련자를 구속하고 혹독한 고문으로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구속된 33명 중 16명을 '조선민족정신을 유지한 내란죄'를 적용하여 함흥형무소에 가뒀습니다. 이때 돌아가신 분들도 계십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조선어학회는 해산되었고, 한국어 사전 원고가 증거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여러 부분이 사라지는 안타까운 일도 겪어야 했습니다.

외국어에 밀려 홀대받는 한글

1945년 8월 15일, 감격스러운 해방을 맞이하여 드디어 자유롭게 한글을 쓸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제 한글을 쓴다고 막을 외부세력도 없고, 한글을 쓴다고 해서 잡아가는 세상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광복 후 66년이 지난 현재 한글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요? 자유롭게 한글을 쓸 수 있는 여건임에도 한글은 영어에 밀려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어 열풍은 어릴 때부터 시작해 12년간 공교육에서도 계속 이어집니다. 한국은 원어민 수업, 영어 과외 등으로 한글을 제대로 배우기보다는 영어를 더 열심히 배워야 하는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가면 영어에 대한 수요는 더욱 증가합니다. 대학교 들어가자마자 학생들은 취업을 위해 열심히 영어를 배웁니다. 유명 토익학원에 다니며 높은 토익점수를 얻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에 반해 한글에 대한 관심은 극히 미미합니다. 체계적인 작문 교육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담아 글을 쓰기도 어려워 합니다. 게다가 일본어와 영어의 영향으로 수동형의 언어활용이 급증했고, 영어 단어를 한글에 섞어 쓰기도 하는 등, 한글의 정체성마저 훼손하는 이상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시민패트롤' '서울리뉴얼' '시니어패스' 등 이상한 한영혼용 표기를 시나 도 같은 행정기관이 남발하고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가 내세우는 구호들. 대부분 영어로 되어 있다.


직장, 군대, 공공단체 등에서 어려운 한자말, 일본어 잔재, 한영혼용 단어 등을 남발하는 문제가 심각합니다. 예를 들어 특별한 발표를 할 때 'Keynote 한다'는 말을 쓰거나 'Presentation 한다'는 말을 더 자연스럽게 느끼거나, 영어 단어를 섞어서 말하는 것을 고급스러운 언어생활로 착각하는 이도 많습니다.

최근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을 상징하는 구호를 내걸고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요,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은 'Hi Seoul - Soul of Asia'라는 영어 구호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는 한글을 사용하면 왠지 촌스럽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렸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늘날 한글을 무시하는 세태를 잘 지적한 글이 있어서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마더하세요"?... 이건 학대입니다>

한글을 아름답게 씁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글을 아끼고 가꾸는 노력을 이어가는 단체도 있습니다. 한글 관련 단체라고 해서 하는 일이 거창하거나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마음만 먹으면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소개하면서 우리의 말글살이를 개선하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한글문화연대


먼저 소개해드릴 단체는 '한글문화연대'입니다. 한글문화연대는 외국어 남용으로 오염되어가는 한글을 가꾸어 우리 문화와 학문을 발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단체입니다. 1999년 12월에 준비위원회가 구성되어 2000년 2월 정식으로 창립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글문화연대의 활동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글맞춤법을 널리 알리고 교육하는 한글맞춤법 교실 운영, 방송에서 아름다운 우리말을 널리 알리고 아름다운 언어를 사용한 사람을 뽑아 '올해의 아름다운 언어상' 시상, 문화답사, 한글 관련 전시, 한글무늬 옷 제작·배포와 같이 다양한 방법으로 한글의 소중함을 알리는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2006년부터는 '우리말 사랑꾼/우리말 해침꾼'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는데요, 우리말 사랑꾼에는 한글을 멋진 디자인으로 승격시킨 디자이너 이상봉 씨를 비롯해 전교생을 이끌고 한글 관련 역사터를 견학시킨 중학교 선생님까지 다양한 분들이 선정되었네요. 우리말 해침꾼에는 〈무한도전〉 프로그램, 강호동 씨, 공정택 전 서울교육감이 선정되었습니다. 통신사인 KT도 선정되었는데요, 그 이유는 'Olleh'라는 국적 불명의 신조어를 만들어 홍보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밖에도 한글문화연대는 '새말 찾기 공모전'을 열어 새로운 우리말을 만드는 행사도 개최했으며, 한글무늬 자료집(무료로 이용이 가능)을 만들어 한글을 디자인하고 보급하는 일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네이버 한글한글아름답게


한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누리꾼에게 알리는 데 포털 사이트 네이버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생각비행은 네이버를 사용하지 않습니다만, 2008년 10월 한글캠페인을 시작한 네이버가 '나눔고딕/나눔명조 글꼴'을 무료로 배포한 일은 칭찬하지 않을 수 없군요. 단순한 글꼴 배포에 그친 게 아니라 네이버 자체 디자인에도 나눔고딕과 나눔명조 글꼴을 적용하여 많은 사람이 나눔 글꼴을 사용하게끔 유도했습니다. 상업적인 포털 사이트답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대견했습니다. 

네이버의 '한글한글아름답게' 기획은 일회성 행사로 그치지 않고 2009년에 아름다운 한글 손글씨 공모전을 개최하여 한글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널리 알렸습니다. 그 이후 공모전 당선작으로 새로운 한글 글꼴을 만들어 배포하고 한글 관련 콘텐츠를 개발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최근에는 잉크를 30퍼센트나 절약할 수 있는 '나눔글꼴에코'를 만들어 배포했으며, 누구나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아름다운 한글 문서서식을 무료로 배포했습니다.


국립국어원은 합리적인 국어 정책 추진에 필요한 체계적 조사, 연구와 언어 규범 보완 및 정비를 수행하고 국가 언어 자원을 수집하여 통합 정보 서비스를 강화함으로써 국민 언어생활의 편익을 증진하며 국민의 원활한 의사소통 증대를 위하여 국어 사용 환경을 개선하고 한국어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기 위하여 설립되었습니다. 외래어표기법, 어휘/용어정보, 표준어규정, 어문규정 질의응답, 온라인 강의, 배움마당 등의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표준어 규정, 한글 맞춤법 등의 어문 규정을 준수하여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하는 한국어 사전입니다. 예전엔 민간 출판사나 대학 연구소가 한국어 사전 편찬사업을 주도해왔으나, 기존 한국어 사전에 오른 표제어 표기가 일치하지 않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를 개선하고자 표준국어대사전을 편찬했습니다만, 우리는 물론 일본조차 쓰지 않는 낱말(한자말)까지 실어놓은 탓에 한자말 비중을 부풀렸으며 일제가 우리말을 한자말로 바꿔 쓴 낱말을 그대로 실었고, 남북한 언어를 아우르려는 욕심에 1992년에 나온 《조선말 대사전》을 그대로 베껴서 섞어냈다는 비판도 받고 있습니다. 인터넷 시대에 앞으로 더 많은 이가 사용할 표준국어대사전이 그 이름에 걸맞게 유용한 사전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말 배움터'는 누구나 쉽게 인터넷에서 바른 우리 말글을 배울 수 있도록 돕는 평생교육사이트입니다. 초·중·고등학생들은 배움터와 글쓰기교실, 어문 규정, 철자검사기 등을 통해 바른 우리 말글살이의 바탕을 다질 수 있고, 일반인은 자신이 쓴 글의 잘못이나 일상생활에서 자주 범하는 오류를 교정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말과 글의 연구·통일·발전을 목적으로, 1908년 8월 31일 주시경, 김정진 등이 창립한 '국어 연구 학회'를 모체로 탄생한 단체입니다. 한글날 제정(1926),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1933), 표준말 사정(1936),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 제정(1940), 초·중등 교과서 편찬(1945), 큰사전 편찬(1957), 우리말 다듬기(1967), 한국 지명 총람 편찬(1986), 한국 땅이름 큰사전 편찬(1991), 우리말 큰사전 편찬(1991), 국어학 자료 은행 구축(1992), 한글학회 한글정보(컴퓨터 통신 서비스) 개설(1994), 국어학 사전 편찬(1995) 등의 일을 해왔습니다. 1996년에는 비영리 학술단체로는 처음으로 누리집(홈페이지)을 만들어 누리그물(인터넷)을 통하여 갖가지 정보를 제공하고 정보 교환의 마당을 마련해 놓고 있으며, 정기 간행물로 기관지 한글, 문학한글, 교육한글, 한힌샘 연구, 한글 새소식 등을 펴내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한글을 아름답게 살려 쓰자는 노력을 기울이는 단체가 많이 있습니다. 한글날을 기념하는 마음으로 국가지정 공휴일로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우리말과 우리글을 외국어 홍수 속에서 지켜내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우리의 한글을 세계화하는 노력에 대해 다음 번 기사에서 소개하려 합니다. 표음문자로서 어떠한 소리라도 옮겨 적을 수 있는 한글의 우수함이 사라지는 세계 각국의 언어를 보존하고 되살리는 데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지난 10월 9일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지 565년이 되는 한글날이었습니다. 꼼꼼히 살피면 한글날을 기념하는 행사, 학술대회, 문화 이벤트가 여기저기서 열렸지만, 시민단체나 행사 관련자를 제외하면 일반인의 참여는 저조한 상황입니다. 한글을 사랑하는 마음을 되새기기 위해서라도 한글날을 다시 국가지정 공휴일로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한글 관련 단체와 개인이 많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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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출처: 위키피디아)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1446년(세종 28) 음력 9월에 반포된 한글은 초기부터 많은 벽에 부딪혔습니다. 조선왕조시기 내내 국가의 글자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쉽게 익힐 수 있고 읽고 쓰기에 매우 편리했던 까닭에 궁궐에서는 궁녀를 중심으로, 민간에서는 아녀자와 아이들을 중심으로 널리 쓰였습니다. 한글소설 같은 문학의 발전은 한글의 저변을 확대하여 결국 현대에 이르러 대한민국의 정식문자가 되었지요.

오늘날 한글의 우수성은 세계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한류 열풍과 더불어 최근 일고 있는 K-POP 열풍 때문에 한글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날로 주목받고 있는 한글을 과연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지 돌아볼 때가 아닌가 합니다.

한글날은 지났지만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문자에 관해 이야기하고 뒤돌아보는 일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출판사인 생각비행으로서는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몇 회에 걸쳐 [한글을 사랑합시다]라는 기획으로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고, 한글을 대하는 우리의 현실을 짚어본 뒤, 어떻게 하면 한글을 좀 더 바르게 사용하고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모든 사람이 쉽게 깨우치는 민주문자, 한글

한글의 우수성은 이미 많은 사람이 증명했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한글은 표음문자입니다. 우리가 내뱉는 말을 발음대로 옮겨 적을 수 있죠. 사람들의 대화, 동물의 소리, 자연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그대로 옮길 수 있는 훌륭한 문자체계가 바로 한글입니다. 표의문자인 한자의 경우 지식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해석하는 데조차 시간이 걸립니다.

이 때문에 언어학은 '지배자의 문자'와 '민주문자'를 구별하기도 합니다. 지배자의 문자는 국가의 소수 지배자만 알고 있는 문자로 중국의 한자, 이집트의 그림문자,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쐐기문자)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런 글자는 과거 왕조시기에 존재했으며, 글자를 쓰거나 해석할 줄 아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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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지배자의 문자인 수메르 문자(출처: 위키피디아)


이와는 달리 민주문자는 대부분이 쉽게 습득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영미권의 알파벳과 대한민국의 한글이 대표적입니다. 민주문자는 글자를 읽고 쓰기가 쉬운 까닭에 사람들이 정보를 쉽게 공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민주문자인 한글의 창제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쉽게 책으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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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때 편찬된 삼강행실도. 그림과 글에 대한 설명이 한글로 적혀 있다.(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아들이 부모를 죽인 패륜범죄 때문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종대왕은 《삼강행실도》라는 책을 제작하여 사람들을 일깨우려고 했는데요, 그 책은 그림과 쉬운 설명으로 삼강오륜(三綱五倫)[각주:1]을 설명합니다. 실제로 이 책이 얼마나 보급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560여 년 전에 공공교육이라는 실로 엄청난 변화의 씨앗을 내포한 문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계가 인정한 한글의 우수성

한글의 우수성은 중국에서 먼저 인정했습니다. 중국은 예로부터 한자를 자국의 문자로 사용해왔는데요, 사실 쓰기도 어렵고 글자를 익히려면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중국의 대문호 루쉰이 "한자가 망하지 않으면 중국이 망한다"(漢字不亡, 中國必亡)는 이야기를 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후, 중국 정부는 가장 먼저 쉬운 한자 만들기를 단행했습니다. 이에 중국 한자는 간체자와 번체자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간체자는 기존의 번체자와 달리 획수가 적고, 쉽게 쓸 수 있는 한자입니다. 그런데 간소화한 한자라 해도 배우기란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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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부는 문맹퇴치의 해법을 한글에서 보았다. (출처: MBC 한글날 특선다큐 - 한글의 힘)


중국 정부는 어려운 한자로 말미암은 문맹률을 낮추고자 세계 여러 나라의 문자를 연구했다고 하는데요, 이웃나라인 우리나라가 1~2년 만에 문맹률을 낮추는 것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고 합니다. 한글의 우수성을 깨달은 중국의 총리 저우언라이는 "중국도 조선처럼 문자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했으며, 학자 궈모뤄는 "중국도 표음문자를 도입해야 문맹을 퇴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초기 중국 주석이었던 류사오치는 어문연구자들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기까지 했다는데요, 그 서한에 따르면 "조선에 사람을 보내 문자를 배워야 합니다"라고 말해 한글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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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의 정인지 서문. 한글의 우수성을 명쾌하게 나타내는 문장이다.(출처: MBC 한글날 특선다큐 - 한글의 힘)


중국이 인정했듯이 한글은 어느 나라보다 글자보다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으며, 일고 쓰기도 어렵지 않습니다. 훈민정음에 정인지가 서문에 써놓은 말처럼 "슬기로운 사람은 아침을 마치지 않아도 깨우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열흘 정도면 배울 수가 있는 것"이 바로 한글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글자인 한글이 과연 오늘날 어떤 대접을 받고 있을까요? 서두에 밝혔듯이 한글날은 있지만 지금은 그 뜻을 제대로 돌아볼 여력이 없습니다. 국가지정 공휴일에서 빠졌을 뿐 아니라 과거 한자에 밀려 촌스러운 글자라며 천대받았던 한글이 이제는 영어에 밀려 또다시 홀대받고 있습니다.

다음 기사에서 한글이 처한 현실을 돌아보고 이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1. 삼강은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을 말하며, 이것은 글자 그대로 임금과 신하, 어버이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다. 오륜은 《맹자(孟子)》에 나오는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의 5가지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도(道)는 친애(親愛)에 있으며, 임금과 신하의 도리는 의리에 있고, 부부 사이에는 서로 침범치 못할 인륜(人倫)의 구별이 있으며,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는 차례와 질서가 있어야 하며, 벗의 도리는 믿음에 있음을 뜻한다. [본문으로]
지난번 기사(세계가 인정한 우리의 기록유산)에서 세계기록유산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과 아울러 한국이 보유한 세계기록유산의 일부를 소개했습니다. 오늘은 지난번에 다 알려드리지 못했던 유산을 마저 설명해드리고, 현재 우리가 남기는 일상의 기록이 세계적인 기록유산으로 채택된 사례를 아울러 소개하겠습니다.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기록물


5. 직지심체요절 (2001년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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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심체요절(출처: 위키피디아)

《직지심체요절》의 정확한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입니다. 백운화상이 75세이던 고려 공민왕 21(1372)년에 노안을 무릅쓰고, 불교적 깨달음과 안목을 자각하게 하고 불교적인 가르침과 그 맥을 계승하고자 저술한 기록물입니다. 《직지심체요절》은 백운화상의 제자 석찬과 달담이 비구니 묘덕의 시주를 받아 청주 흥덕사에서 1377년 7월에 금속활자로 인쇄했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직지심체요절》의 원본은 한국이 아닌 프랑스에 있습니다. 조선시대 고종 때 주한 불란서대리공사로 서울에서 근무한 바 있는 꼴랭 드 쁠랑시(Collin de Plancy)가 수집해 프랑스로 가져간 것을 골동품 수집가였던 앙리 베베르(Henry Vever)가 경매에서 구입했습니다. 앙리 베베르가 사망하자 그의 유언에 따라 직지는 프랑스국립도서관으로 이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원래 《직지심체요절》은 상·하 2권으로 되어 있으나, 현존하는 것은 하권뿐입니다. 그나마 39장이어야 할 내용 중 첫장은 유실되고 2장부터 39장까지 총 38장만이 보존되어 있다는군요.

《직지심체요절》이 주목받은 이유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직지를 인쇄했던 흥덕사의 창건 연대와 규모는 알 수 없지만, 《직지심체요절》 하권 간기에 고려 우왕 3년(1377)에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책을 인쇄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 독일 구텐베르그의 활판인쇄술보다 무려 70여 년이나 앞선 것으로 증명되었습니다.

6. 팔만대장경판 (2007년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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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팔만대장경판(출처: 위키피디아)

고려대장경판(대장경[大藏經]은 불교의 교조 석가모니가 일생동안 설법한 경전과 계율, 그리고 그 내용에 대해 후대의 사람들이 첨부한 논서, 주석서, 이론서를 집대성한 불교경전의 총서를 의미한다)은 13세기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8만 1258장의 목판에 대장경을 새긴, 아시아 전역에서는 유일하게 완벽한 형태로 현존하는 판본자료입니다. 고려대장경판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정확하고 가장 완벽한 불교 대장경판으로 산스크리트어에서 한역된 불교대장경의 원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고려대장경판은 인도 및 중앙아시아 언어로 된 경전, 계율, 논서, 교리 및 불교와 관련된 역사적 기록물을 집대성하여 한역한 내용과 더불어 중국어가 원문인 일부 문헌을 선정하여 수록하고 있습니다.

고려대장경판은 이미 사라진 초기 목판제작술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는 한편 고려시대의 정치, 문화, 사상의 흐름과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역사 기록물이기도 합니다. 경판 표면에는 옻을 칠하여 글자의 새김이 760년이 지나도록 생생한 상태로 남아 지금까지도 인쇄가 가능하다고 하니 그 기술이 실로 대단하지 않습니까?

《고려대장경》은 당대 동아시아 지역에 존재하던 모든 불교 경전의 내용을 집대성한 가장 방대한 문헌으로 동아시아 지역 당대 최고의 경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같은 시대의 송나라 대장경을 비롯하여 그 이전에 중국 및 일본에서 제작된 경전과 비교해 볼 때 학술적 내용 및 품질 관리에 투입된 심오한 노력은 오늘날과 비교해도 놀라운 수준이라고 합니다.

7. 동의보감 (2009년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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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출처 : 위키피디아)

《동의보감》은 많은 분이 아시리라 믿습니다. 드라마 허준을 통해 《동의보감》을 들어보신 분도 많으실 테고요. 《동의보감》은 1613년 한국에서 집필된 의학적인 지식과 치료기술에 관한 백과사전으로, 선조의 지시로 여러 의학 전문가들과 문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허준이 편찬했습니다.

《동의보감》은 동아시아 의학의 발전뿐 아니라, 사회 보건 개념의 확립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19세기까지는 유래가 없었던 예방의학과 국가적 의료 행위의 기본이라고 하는 공공 보건정책에 대한 관념을 세계 최초로 구축했다고 합니다. 또한 실용성을 주요하게 여겨 쉽게 구할 수 있는 약물 재료를 바탕으로 병이 생기기 전에 치료한다는 '양생'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이러한 우수성 때문에 《동의보감》은 2009년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의학전문가들은 《동의보감》이 질병 치료와 관련해 정신적·심리적 측면을 강조하는 동양의학의 ‘총체적 접근법’을 담고 있어, 단순한 기술적인 가치를 넘어 사회적·철학적 가치도 인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 아울러 초간본 《동의보감》의 보존 상태가 이상적이라는 점도 높이 평가되었다고 하는군요.

8. 일성록 (2011년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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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출처 : 문화재청)

《일성록》은 조선 영조 즉위 36년인 1760년부터 1910년까지의 국정 전반을 기록한 왕의 일기로 총 3243책으로 그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원래 《일성록》은 정조가 세손 시절의 일상생활과 학업 성과를 기록한 《존현각일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즉위 이후에는 규장각 각신(직원)들이 날마다 정사를 기록하는 공식적인 국정 기록이 되었다고 합니다. 《일성록》은 왕이 국정을 반성하려는 목적으로 집필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유례가 많지 않은 기록물이라고 합니다.

《일성록》은 조선 후기의 역사 기록뿐 아니라 18세기~20세기 사이 동서양의 정치 및 문화 교류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어서 세계사적으로 사료적 우수성과 중요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일례로 그 당시 동아시아 국가들은 서양의 과학과 기술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는데, 《일성록》은 당시 과학과 기술이 어떻게 국내에 전파되었는지에 관한 상세한 기록을 담고 있어 동아시아를 비롯한 세계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또한 《일성록》은 19세기 서양의 제국주의적 팽창 과정과 그에 따른 충돌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어 그 당시 국제질서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며, 서민의 청원서와 이와 관련된 여러 조치를 포함하고 있어 18세기 하류 계층의 변화가 국제적인 현상이었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일성록》은 편찬 목적, 구성 방식, 내용 면에서 독특한 성격을 보입니다. 근대 이전 역사 기록물은 주로 과거 사건을 다루는 반면 《일성록》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동시대의 기록을 담고 있으며 국가를 통치하는 데 참고하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으로 편찬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일성록》은 사건을 정돈되게 기록하고 있으며 참고용으로 주석을 달고 있는데요, 이는 조선시대의 다른 역사 기록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신하들의 상소문, 외교문서 등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과 원본으로서의 가치를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현 시대의 기록이 세계기록유산으로 인정되다

9.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록물

앞서 8건의 세계기록유산으로 우리 조상이 기록을 남기는 일에 얼마나 철저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하루하루의 기록을 남김으로써 후세에 도움을 주고, 현실정치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려는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리의 선조가 남긴 기록유산은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변용할 수 있는 역사적 사료요, 우리의 현재와 과거 사이에 끊임없는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록물'이 《일성록》과 함께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이런 기록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품은 사람들도 있었고, 국내 일부 우익단체는 등재 반대 청원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김황식 총리가 국회에서 답변한 "이미 역사적 심판이 내려진 것인 만큼 그런(우익단체의) 의견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심사하는 국제자문위원회(IAC)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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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18 기념재단)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록물'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의 발발과 군사정권의 진압, 이후 진상 규명과 보상 등의 과정과 관련해 정부, 국회, 시민, 단체 그리고 미국 정부 등에서 생산한 방대한 자료를 포함하고 있는 기록물입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은 아시아 여러 나라의 민주화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민주화 과정에서 진상규명 및 피해자 대상 보상 사례를 이끌어내어 여러 나라에 좋은 선례가 되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세계의 학자들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과거 청산에서 가장 모범이 되는 사례라고 말했을 정도죠. 다른 국가의 과거 청산 작업이 단편적으로 이뤄진 반면 5.18민주화운동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명예 회복, 피해 보상, 기념사업의 5대 원칙이 모두 관철되었기 때문입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록물'은 크게 3가지 종류로 나뉩니다. 첫째, 공공기관에서 생산한 문서로 정부의 행정 문서, 군 사법기관의 수사 재판 기록 등입니다. 둘째, 5.18광주민주화운동 기간에 각종 단체가 작성한 문건과 개인이 기록한 일기, 기자들의 취재수첩 등입니다. 셋째,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종료된 후, 진상규명과 관련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국회와 법원 등에서 생산된 자료, 주한미국대사관과 미국 국무성과 국방부 사이에 오고간 전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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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관련 개인 기록물. 개인이 작성한 기록, 일기장, 신문 스크랩 등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다는 예를 보여주었다(출처 : 5·18민주화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추진위원회)


여기에서 생각비행은 둘째 종류에 해당하는 개인의 기록물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록물'에는 앞서 소개한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에 포함되지 않는 자료가 있으니, 이것이 바로 개인이 작성한 기록물입니다. 올해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록물' 등재 심사를 받을 때 국가기록물과 함께 제시된 기록물은 어느 시민의 일기, 신문 스크랩북, 그리고 한 여고생의 일기였습니다. 이런 개인의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 기록물은 자신이 본 현재의 상황을 여과하지 않고 기록했다는 사실입니다. 《일성록》이 영조, 정조의 시기를 빠짐없이 기록하여 국정에 도움을 주었던 것과 같이, 5.18광주민주화운동 개인 기록물 또한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상황을 각자의 시선으로 빠짐없이 기록했고, 당시 발간된 신문을 스크랩하여 모은 귀중한 사료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런 기록을 토대로 신문과 방송이 날조한 어이없는 기록이 아닌, 광주 시민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사실을 왜곡 없이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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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 거주한 조영춘 할아버지의 가계부. (출처 : 연합뉴스)


세계기록유산까지는 아니어도 개인 기록이 귀중한 사료로 인정되는 사례는 또 있습니다. 1957년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54년간 가계부를 쓴 80대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전파를 타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는데요, 조영춘 할아버지는 낮에는 농사일을 하고 밤이면 가계부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들고나는 돈의 목록을 아주 꼼꼼히 적어놓은 할아버지의 가계부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선 할아버지의 가계부를 분석하면 한국의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된다고 합니다. 1957년과 비교하면 쌀값은 47배 오른 것으로 확인되었고, 강아지는 200배, 소주는 154배 오른 것으로 각각 확인되었습니다. 이처럼 오랜 시간 기록한 할아버지의 가계부는 한국 농촌 가구의 서민 물가 변천사를 확인할 수 있는 기초자료일 뿐 아니라 역사적인 사료적 가치가 뛰어난 소중한 기록물이 되었습니다. 할아버지 덕분에 1세기가 지난 후의 후손이 1950년대 후반부터 2011년도의 물가를 알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이렇듯 여러분이 작성하는 일기, 편지, 트위터나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남기는 글도 충분히 의미 있는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기록물은 다양한 방식으로 후대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이나 감정, 그리고 사회의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둘 적어서 남긴다면, 그런 기록이 모여 후대에 의미 있는 문화콘텐츠가 되지 않을까요?

기록의 가치를 훼손하는 이명박 정부의 어이없는 행태


지금껏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 조상은 기록에 대한 중요성을 알고, 후세에 큰 도움을 주기 위해 많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 결과 훌륭한 기록문화유산을 보유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선조의 기록정신을 잘 계승하고 있을까요? 어이없게도 지난 2010년 7월, 정부는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의 개정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 내용의 주요 골자는 "보존기간 1년에서 3년 이하 기록물 평가 및 폐기 시 기록물평가심의회의 심의를 생략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현재 정부기록물은 중요도에 따라 보존기간이 1·3·5·10·30년·준영구·영구 등 7단계로 나뉩니다. 모든 기록물을 폐기할 땐 ▲생산부서 의견 조회 ▲기록물 관리 전문요원 심사 ▲기록물평가심의회의(외부 전문가 2명 포함) 심의 등 세 단계를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보존연한이 3년인 기록물을 무조건 폐기하는 게 아니라 심의를 거쳐 결정하게끔 되어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에서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을 준비한 저의는 무엇일까요? 같은 시기에 터졌던 민간인 사찰 논란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난 2010년 6월, 《PD수첩》은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자윤리지원관실에서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내용의 탐사보도를 방영한 바 있습니다. 전직 은행원이었던 김종익 씨는 명예퇴직 후 사업체의 대표로 있었는데요, 2008년 인터넷에 떠도는 동영상을 자신의 블로그에 링크했다는 이유로 공직자윤리지원관실의 조사를 받아 사업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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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을 손쉽게 폐기할 수 있다면 당연히 진실도 왜곡될 수 있다. (사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공직자윤리지원관실의 사찰에 대한 내용은 기록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공직자윤리지원관실에서 경찰서로 직접 수사 의뢰 공문을 보냈다고 하는데요, 만약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개정되어 자의적인 폐기가 가능해진다면, 이런 진실을 밝힐 기록조차 쉽게 사라지는 것입니다. 김종익 씨와 같은 억울한 사람이 더 많이 생기겠죠.

이처럼 기록물의 자의적 폐기는 후대에 엉뚱한 결과를 남길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국가기록관리위 출신의 한 인사는 “보존기한이 지나도 더 남겨둬야 할 기록물들이 많은데 공무원들이 입맛대로 문서를 폐기하겠다는 것”이라며 시행령 개정을 비판했습니다. 다행히도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의 개정은 철회되었습니다만, 역사의 기록을 함부로 폐기하려는 일부 권력층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큰 위기감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 기사에서 《조선왕조실록》만 보더라도 실록의 근간이 되는 사초는 왕이라도 건드릴 수 없었으며, 실록을 편찬한 사람들의 이름을 남겨 실록 저술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화성성역의궤》는 몇 명의 인부와 몇 개의 돌을 썼는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세세한 기록을 빠짐없이 남겨놓았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기록정신을 남긴 선조의 마음가짐을 후대에 올바르게 전하고, 기록의 가치를 훼손하려는 이들과 맞서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를 튼튼하게 하는 힘이 되리라고 봅니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지난 5월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제10차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회의에서 한국의 일성록(日省錄)》(국보 153호)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록물’(등재명: 인권기록유산- 1980년 5월 18일 군사정권에 대항해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항쟁 관련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 목록에 등재되었습니다. 이로써 한국은 총 9건의 세계 문화유산을 보유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은 기록을 꼼꼼히 남기고 이를 후대에 전하기 위한 작업에 힘을 쏟았습니다. 이번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일성록》은 1752년 조선 영조 28년부터 경술국치가 일어난 1910년 순종 4년까지 국왕의 동정과 국정 제반 사항을 기록한 일기체 형식의 연대기입니다. 《일성록》은 《조선왕조실록》과는 달리 후대 임금이 열람하고 참조할 수 있어 국정 운영에 도움을 주는 소중한 자료였습니다. 실록 편찬 시 참고하는 사초의 경우 취사선택과 첨삭이 이루어진 반면 《일성록》은 하루하루의 일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기 때문에 기록유산으로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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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성역의궤 - 출처 : 네이트 한국학


이뿐이 아닙니다. 2007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나 강탈된 지 145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儀軌)의 사료적 가치는 실로 대단합니다. 화성이 무너진다 해도 다시 지을 수 있을 정도로 온갖 정보를 수록한 《화성성역의궤》,  왕실의 전통과 의식을 언제든 참고하고 재연할 수 있도록 전반적인 기록을 담은 외규장각 의궤는 세계인들이 보고 깜짝놀라는 훌륭한 문화유산입니다.

생각비행은 몇 차례 주말비행 소식에서 145년 만에 한국 땅을 밟은 외규장각 의궤 전시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책을 펴내는 출판사로서 기록 유산에 관한 내용을 독자들께 좀 더 자세히 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오늘은 과연 세계기록문화유산은 무엇이고, 어떻게 등재되는지,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은 어떠한 것이 있는지 등을 찬찬히 소개하려 합니다. 그리고 이런 찬란한 유산을 남긴 우리 조상의 지혜와 꼼꼼한 기록정신을 되새겨보고,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지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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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상징

일반적으로 '유산'이라고 하면 대부분 금전적인 것들을 떠올리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유산의 형태는 매우 다양합니다. 예를 한번 들어볼까요?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평원, 이집트의 피라미드, 호주의 산호초, 남미의 바로크 성당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이 인류의 유산입니다. 한국에는 아시다시피 해인사장경판전, 창덕궁,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조선왕릉 등이 유명한 문화유산이죠. 이처럼 자연과 문화, 혹은 정신적 유산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 되는 소중한 자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유산’이라는 개념은 곳곳에 산재한 유산이 특정 소재지와 상관없이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를 보존하고 후대에 제대로 물려주자는 의도에서 나왔습니다. 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산을 유네스코가 발굴 및 보호, 보존하고자 1972년 세계문화 및 자연 유산 보호 협약(Convention concerning the Protection of the World Cultural and Natural Heritage; 약칭 ‘세계유산협약’)을 채택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계유산으로 인정받으려면 세계유산 협약이 규정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녀야 하는데, 특성에 따라 자연유산, 문화유산, 복합유산으로 분류합니다. 간단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세계유산의 정의

◎ 문화유산
   - 기념물 : 기념물, 건축물, 기념 조각 및 회화, 고고 유물 및 구조물, 금석문, 혈거 유적지 및 혼합유적지 가운데 역사, 예술, 학문적으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는 유산
   - 건조물군: 독립되었거나 또는 이어져있는 구조물들로서 역사상, 미술상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는 유산
   - 유적지: 인공의 소산 또는 인공과 자연의 결합의 소산 및 고고 유적을 포함한 구역에서 역사상, 관상상, 민족학상 또는 인류학상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는 유산

◎ 자연유산
   - 무기적 또는 생물학적 생성물들로부터 이룩된 자연의 기념물로서 관상상 또는 과학상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는 것.
   - 지질학적 및 지문학(地文學)적 생성물과 이와 함께 위협에 처해 있는 동물 및 생물의 종의 생식지 및 자생지로서 특히 일정구역에서 과학상, 보존상, 미관상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는 것
   - 과학, 보존, 자연미의 시각에서 볼 때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주는 정확히 드러난 자연지역이나 자연유적지

◎ 복합유산
   -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특징을 동시에 충족하는 유산


세계기록유산 등재기준

그렇다면 오늘 소개할 세계기록유산의 등재기준은 무엇일까요? 유네스코에 따르면 세계기록유산은 영향력, 시간, 장소, 인물, 주제, 형태, 사회적 가치, 보존 상태, 희귀성 등을 기준으로 선정한다고 하는데요, 기록유산은 일국 문화의 경계를 넘어 세계의 역사에 중요한 영향력을 끼쳐 그 중요성을 인정할만하거나 인류 역사의 특정한 시점에서 세계를 이해하는데 두드러지게 이바지한 경우 선정한다고 합니다. 또한 전 세계 역사와 문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 및 인물들의 삶과 업적에 관련된 기록유산도 있습니다. 향후 기록문화의 중요한 표본이 된 경우, 예를 들면 야자수 나뭇잎 원고와 금박으로 기록된 원고, 근대 미디어 등과 같은 매체로 된 기록유산도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프랑스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가 그러한 사례에 해당합니다).

이와 더불어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회의는 세계기록유산을 아래와 같은 주요 기준을 통해 선정합니다.

★ 주요기준

영향력(Influence): 기록유산이 일국 문화의 경계를 넘어 세계의 역사에 중요한 영향력을 끼쳐 세계적인 중요성을 갖는 경우 ex) 세계 역사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 정치, 종교 서적 등.

시간(Time): 국제적인 일의 중요한 변화의 시기를 현저하게 반영하거나 인류 역사의 특정한 시점에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두드러지게 이바지한 경우 ex) 초기 영화산업의 자료 유산, 독립운동 또는 특정한 시점과 장소의 관습 등과 관련된 내용.

장소(Place): 기록유산이 세계 역사와 문화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던 특정 장소(locality)와 지역(region)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경우 ex) 농업혁명과 산업혁명 기간 동안에 전 세계 여러 지역의 특별히 중요한 장소와 관련되거나, 전 세계 역사에 큰 반향을 일으킨 정치, 사회 종교 운동의 태동을 목격하고 있는 기록유산.

사람(People): 전 세계 역사와 문화에 현저한 기여를 했던 개인 및 사람들의 삶과 업적과 특별한 관련을 갖는 경우.
       대상/주제(Subject/Theme): 세계 역사와 문화의 중요한 주제를 현저하게 다룬 경우.
       ex)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도서관에 있는 Radziwill Chronicle (편년사)사업.
     
       형태 및 스타일(Form and Style): 형태와 스타일에서 중요한 표본이 된 경우.
       ex) 야자수 나뭇잎 원고와 금박으로 써진 원고, 근대 미디어 등.

사회적 가치(Social Value): 하나의 민족 문화를 초월하는 사회적, 문화적 또는 정신적으로 두드러진 가치가 있는 경우.

★ 이차적인 기준(등록보조기준)
     - 원상태로의 보존(Integrity): 특별히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는 경우.
     - 희귀성(Rarity): 독특하고 특별히 진귀한 경우.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기록물

2011년 현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기록물은 총 238건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등록물을 자랑하는 나라는 독일입니다. 무려 13건이 등록된 독일이죠. 그 다음으로 오스트리아가 12건, 러시아가 11건으로 뒤를 잇고 있습니다. 한국은 현재 9건을 등록한 나라로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세계기록유산 등록건수를 자랑합니다. 그 다음으로 중국이 7건으로 뒤따릅니다. 과연 세계가 기록유산으로 인정한 한국의 기록물에는 과연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2회에 걸쳐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을 소개하려 합니다. 오늘은 먼저 조선시대에 간행된 4건의 기록유산을 소개하겠습니다.

1. 훈민정음 (1997년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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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 - 출처 : 위키피디아

오늘날 우리가 쓰는 말과 글자는 '한글'입니다. 조선왕조 4대 임금인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어낸 훌륭한 문화유산이죠. 하지만 이러한 훌륭한 문화유산도 한때는 어디서부터 기원하여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모르던 상황이 있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해례는 보기를 들어서 풀이한다는 뜻)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한글의 기원에 대해선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1940년 안동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어 간송 전형필은 사재를 털이 그 당시 엄청난 가격으로 이를 입수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가치를 그 누구보다도 높게 평가했던 전형필은 한국전쟁 때 이 책을 품에서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머리맡에 두고 잠을 잘 정도였다죠.

《훈민정음 해례본》은 전권 33장, 1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정인지 등이 세종의 명을 받아 설명한 한문 해설서이고, 거기에 해례가 붙어 있어서 해례본이라고 부릅니다. 이 책에는 세종대왕의 서문(흔히 이야기하는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그리고 훈민정음 음가 및 운용법을 밝힌 예의편이 제자해, 초성해, 중성해, 종성해, 합자해, 용자해 순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사실 세계의 많은 민족이 고유 언어를 표기하는 문자를 보유하고 있지만, 한글처럼 일정한 시기에 특정한 사람이 독창적으로 문자를 만들고 한 국가의 공용문자로 사용하게 한 일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새로이 만든 문자에 대한 해설을 책으로 출판한 일은 정말로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없지요. 세계 언어학자들은 《훈민정음 해례본》에 나온 문자를 창제한 원리, 문자 사용에 대한 이론적 정연함과 엄정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유네스코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했을 뿐 아니라 문맹 퇴치에 공헌한 사람들에게 '세종대왕상'을 주고 있습니다.

2. 조선왕조실록 (1997년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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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 출처 : 네이트 한국학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왕조의 시조인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시간 순서에 따라 편년체로 기록한 관찬사서입니다. 총 1893권 888책으로 되어 있는 방대한 양의 역사서이자 조선시대 당시 정치, 외교, 군사, 제도, 법률, 경제, 산업, 교통, 통신, 사회, 풍속, 미술, 공예, 종교 등 각 방면의 역사적 사실을 망라하고 있는,  세계적으로 그 유례가 없는 귀중한 역사적 기록물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초 자료 작성에서 실제 편술까지의 편수 간행작업을 직접하였던 사관은 관직의 독립성과 기술에 대한 비밀성을 제도적으로 보장받았습니다. 특히 기초 자료 가운데 사초의 경우, 사관들이 국가의 모든 회의에 빠짐없이 참가하여 왕과 신하들이 국사를 논의하고 처리하는 과정을 사실대로 기록하는 동시에 그 잘잘못 및 인물에 대한 평가, 그리고 기밀사무 등을 직필(빠짐없이 그대로 씀)했다고 합니다. 사초는 사관 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었으며, 심지어 왕까지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은 특별히 설치한 사고(史庫)에 보관했습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실록들이 소실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재출간하거나 보수하여, 20세기초까지 정족산, 태백산, 적상산, 오대산 네 곳의 사고에 각각 1부씩 보관했습니다. 정족산, 태백산 사고본은 1910년 일제가 당시 경성제국대학으로 이관했다가 광복 후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그대로 소장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오대산 사고본은 1913년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관동대지진으로 소실되어 47책만 남아있었는데요. 지난 2006년 한국으로 환수되었습니다. 적상산본은 구황궁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가 한국전쟁 당시 북한이 가져가 현재 김일성종합대학이 소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의 사료적 가치는 매우 큽니다. 25대 군주의 실록이며 472년간의 역사를 수록한 것이기에 한 왕조의 역사적 기록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유산입니다. 또한 실록 안에 수록된 내용은 정치, 사회, 예술 등을 포괄학 있어서 백과전서적 실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점은 《조선왕조실록》이 역사기술에 있어서 진실성과 신빙성이 높은 역사 기록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사관에 대한 독립이 완벽하게 지켜졌고, 비밀 보장이 철저하여 조선시대를 거의 사실대로 볼 수 있는 훌륭한 역사서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디지털화하여 그 내용을 인터넷을 통해 열람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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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승정원일기 (2001년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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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일기 - 출처 : 네이트 한국학

승정원은 조선 정종대에 창설된 기관으로 국가의 모든 기밀을 취급하는 국왕의 비서실과 같은 곳입니다. 《승정원일기》는 1623년(인조1) 3월부터 1894년(고종31) 6월까지 272년간 승정원에서 처리한 국정 기록과 승선원, 궁내부, 비서감, 규장각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1910년(융희 4)까지의 기록으로 총 3243책으로 된 기록물입니다.

《승정원일기》는 조선왕조 최대의 기밀 기록인 동시에 그 사료적 가치는 《조선왕조실록》《일성록》《비변사등록》과 비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을 편찰할 때 기초 자료로 이용되기도 했기 때문에 실록보다 더 사실에 가까운 자료로 평가됩니다. 원본이 단 1부밖에 없어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죠.

《승정원일기》의 내용은 국정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사실의 기록으로 啓稟(계품 - 임금에게 아뢰는 내용), 傳旨(전지 - 임금이 관청이나 관리에게 내리는 내용), 請牌(청패 - 임금이 급히 만나야 할 신하가 있을 경우, 승정원에 명하여 패를 써서 입궐하게 하던 제도를 패초라고 하는데, 이것을 임금에게 청하는 것), 請推(청추 - 공무상 잘못이나 죄과가 있는 벼슬아치에 대하여 추문하고 고찰할 것을 청함), 呈辭(정사 - 관원이 사정으로 말미암아 임금에게 사직, 휴직, 휴가 등을 청하는 것), 上疏(상소 - 신하가 왕에게 글로서 자신의 뜻을 전하는 것), 宣諭(선유 - 임금의 가르침과 타이름을 백성들에게 널리 공포 하는 것), 傳敎(전교 - 종교를 널리 전도 하는 것) 등에 관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책의 기록 방식은 한 달을 기준으로 책머리에 월간 경연상황, 내전의 동향을 기록하고 다음으로 승정원의 관리 및 당직자의 표시와 출근실태를 표시하고 마지막에 승정원의 업무현황, 왕 및 내전의 문안, 승정원의 인사관계 등의 내용을 실었습니다.

《승정원일기》는 《중국 25사》(역대 중국 역사서 - 3386책, 약 4000만 자)나 《조선왕조실록》(888책, 5400만 자)보다 더 방대한 세계 최대의 연대 기록물(총 3243책, 글자 수 2억 4250만 자)이자 당대의 정치·경제·국방·사회·문화 등에 대한 생생한 역사를 그대로 기록한 조선시대 1차 사료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현재 《승정원일기》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디지털화한 상태이며 인터넷을 통해 그 내용을 열람할 수 있습니다.

승정원일기 보러가기

4. 조선왕조의궤 (2007년 등재)

	 세계가 인정한 우리의 기록유산, 기록, 기억,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일성록, 5.18 광주민주화운동,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록물, 화성성역의궤, 자연유산, 문화유산, 복합유산, 유네스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세계유산, 세계문화 및 자연 유산 보호 협약, 탁월한 보편적 가치, 세계기록유산 등재기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기록물, 훈민정음, 훈민정음 해례본, 조선왕조실록, 정족산, 태백산, 적상산, 오대산,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의궤

위판조성도감의궤 - 출처 : 네이트 한국학

'의궤'는 조선왕조에서 유교적 원리에 입각한 국가 의례를 중심으로 국가의 중요 행사를 행사 진행 시점에서 당시 사용된 문서를 정해진 격식에 의해 정리하여 작성한 기록물입니다. 같은 유교문화권인 중국, 일본, 베트남 등에서는 의궤의 체계적인 편찬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의궤는 조선시대 600여 년에 걸쳐(1392-1910) 왕실의 주요 행사, 즉 결혼식, 장례식, 연회, 사신영접뿐 아니라, 건축물·왕릉의 조성과 왕실문화활동 등에 대한 기록을 그림으로 남겨놓아 600여 년의 생활상을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희소성이 있습니다.

총 3895여 권의 방대한 분량에 달하는 의궤는 왕실의 주요한 의식이 시기별, 주제별로 정리되어 있어 조선왕조 의식의 변화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의 문화를 비교연구하고 이해할 수 있는 풍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반차도, 도설 등 행사 모습을 묘사한 시각 콘텐츠는 오늘날의 영상자료처럼 당시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생동감 있게 보여줍니다. 예컨대 정조의 능행도(陵幸圖)는 전 여정을 15.4미터에 달하는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형태(시각중심 visual-oriented)의 기록유산은 뛰어난 미술장인과 사관의 공동작업을 통해서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가치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의궤는 장기간에 걸쳐 조선왕조의 주요 의식을 많은 양의 그림과 글로 체계적으로 담고 있으며, 이러한 유형은 동서양 전 세계를 통틀어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매우 뛰어난 기록유산의 가치(outstanding value of documentary heritage)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기록도 훌륭한 기록유산이 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남기는 기록들도 후대에 세계기록유산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며 웃으실 수도 있겠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은 이미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에 병원치료기록, 국회 회의록, 피해자 보상자료 외에 시민의 기록과 증언, 시민이 생산한 성명서, 선언문, 취재수첩, 일기 등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셜네트워크가 날로 힘을 얻는 이 시대에 기록이란 국가나 언론기관만 남기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 남기는 모든 글도 훌륭한 기록물입니다. 한 시대의 궤적을 꿰뚫는 가장 생생한 기록을 지금 여러분이 만들고 계신 겁니다. 다음번 기사에 개인이 남긴 일상의 기록이 훌륭한 문화적 유산이 될 수 있음을 더 자세히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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