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에서 생산한 문건이 쌓여 있는 일명 마법의 캐비닛이 청와대에서 발견되어 정국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지난 20일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에 따르면 7월 14일 민정비서관실에서 이전 정부에서 작성한 문건이 발견된 후 민정 총무비서관실에서 일제 점검을 시행했는데, 현재 국정상황실과 안보실 등에서 다량의 문건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간 발견된 전체 문건의 규모만도 약 2000여 건으로 마치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캐비닛이 문서를 마구 쏟아내는 수준입니다.


출처 – 〈브루스 올마이티〉, 유니버설 스튜디오

 

이 문건들은 2014년 3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작성된 것들로, 당시 민정수석은 법꾸라지 우병우였습니다. 당시 박근혜 정부가 은밀히 지원한 치부도 다수 적혀 있는 것으로 파악되어 이후 국정농단 및 우병우 재판에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 많은 문서 중에는 '삼성물산 합병안에 대한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방향'이라는 문건도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에 개입할 것인지, 정부가 개입한다면 의결권 방향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관한 내용과 더불어 정부가 대기업을 지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위원 구성을 신중히 하고 관계 부처가 한목소리로 대응해야 한다는 표현도 들어 있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삼성을 위해 국민연금 의결권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죠. 

출처 - 경향신문

 

또한 '국민연금 의결권 관련 조사'라는 문건에는 삼성 경영권 승계 국면을 기회로 활용, 경영권 승계 국면에서 삼성이 뭘 필요로 하는지 파악이라는 대목이 나와 박근혜가 국민연금의결권 등을 이용해 이재용 삼성 그룹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도왔을 것이라는 정황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국정농단 재판과 관련해 박근혜가 이재용으로부터 경영권 승계 작업을 도와달라는 부정 청탁을 했느냐는 사실과 더불어 뇌물 298억 원을 받은 혐의가 가장 쟁점이 되는 부분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는 발견된 이전 정부의 문건 중 국정농단과 관련해 범죄 사실과 상관 있는 문건들의 사본을 특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출처 - JTBC


이번에 발견된 문건을 통해 박근혜 정권이 세월호와 관련해 천인공노할 지시를 내린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박근혜 정권의 무능함과 무책임이 고스란히 드러났던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박근혜 정권의 청와대는 세월호 특조위를 무력화하라는 명시적 지시를 내렸음이 이번 수석비서관 회의 정리 문건을 통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언론과 협조해 세월호 유가족 개개인의 일탈 행위 등을 부각하여 세월호 특조위 자체를 무력화하라는 비열한 주문도 서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심증은 당시에도 있었지만 세월호 특조위를 청와대가 앞장서서 무력화하려 했다는 구체적 정황이 드러난 건 이번 문서가 처음입니다.


보수논객 육성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내용이 담긴 문건도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박근혜 정권에서 편향된 특정 이념 확산을 직접적으로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부분입니다. 또한 카카오톡 검색 기능과 관련해 좌편향적인 자동연관 검색어 논란이 있으니 이를 개선토록 하라는 주문도 보입니다. 참 별것을 다 집적거렸구나 싶은 대목입니다.


자신들 편에 서지 않는 지자체에 대해 직접적 보복을 불사하는 문건도 나왔습니다. '중앙정부, 서울시 간 갈등 쟁점 점검 및 대응방안'이란 문건에는 서울시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정부가 무조건 반대한다는 프레임이 작동하지 않도록 하면서 서울시 계획을 부당하다고 몰아가야 하며, 박원순 서울시장이 청년 수당 지급을 강행하면 지방교부세 감액 등 불이익 조치를 하라고 지시하는 문건도 발견되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 모든 문서가 우병우가 민정비서관, 민정수석일 당시 생산된 것들이어서 국정농단 사건을 교묘히 빠져나갔던 법꾸라지 우병우를 이번에는 감옥에 집어넣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현재 우병우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잡아떼고 있습니다. 이에 특검은 청와대 캐비넷 문건을 작성한 전직 행정관들을 이재용 재판에 증인으로 불렀습니다. 삼성 승계를 비롯한 문건들을 상부의 지시로 청와대 행정관들이 작성한 것일 테니 이번에 우병우의 직권 남용 사실과 박근혜,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도운 혐의가 드러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래선지 박근혜, 최순실 변호인은 캐비넷 문건을 검찰이 기습적으로 증거로 제출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법이죠. 

 

한편 국정농단의 수괴인 박근혜를 따르던 자유한국당은 캐비넷 문건에 대해 대통령기록물을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공개했다며 브리핑을 한 대변인을 고발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나타난 문건들이 대통령기록물인지 불분명할 뿐더러 대통령기록물에 속한다 하더라도 지정기록물을 제외하고는 열람이 가능합니다. 지정기록물은 국회의 인준과 법원의 영장이 있어야만 볼 수 있죠. 그런데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대통령 지정기록물의 목록까지 지정기록물로 지정하는 해괴한 짓을 해놓은 바람에 캐비닛 문건이 지정기록물인지 아닌지도 현재로선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지정기록물의 지정은 문서 생산 당시 대통령이 각 문서마다 개별적으로 이관하기 전에 보존기간을 정하는 방식으로 하게 돼 있으므로 그런 요건이 갖춰지지 않은 캐비닛 문건은 지정기록물이 아니라는 전문가 의견이 있는 만큼, 황교안의 꼼수는 스스로의 발등을 찍은 셈이 되어버렸습니다.


출처 - 미디어오늘


박근혜, 이재용, 우병우 등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들 때문에 미궁으로 빠질 뻔한 국정농단 재판에 탄력이 붙게 되어 다행입니다. 국정농단의 주범들이 최종 판결을 받아 죗값을 치르고 부정한 방법으로 취한 이득을 모조리 토해내게 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닙니다. 국정농단 세력의 꼼수가 통하지 않도록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때입니다.

 

공천개입 녹취록 파문, 무엇을 남겼나?

 

박근혜 대통령에겐 '선거의 여왕'이라는 수사가 따라다녔습니다. 2004년부터 2012년 총선까지는 그런 별명이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진박, 친박, 비박 타령을 하다 4.13 총선을 말아먹은 새누리당의 친박 핵심인 최경환 의원과 윤상현 의원 그리고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인 현기환의 녹취록이 폭로된 이후의 상황은 어떨까요? 국민의 대표를 뽑는 총선 과정에서 당의 힘이 가장 강력하게 발휘되는 공천에 친박 세력이 의도적으로 개입했으며 그 흑막에 박근혜 대통령이 있었다는 내용이 알려진 이후 말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는 국정원의 불법적인 비호를 받았고, 이젠 자신이 속한 당의 선거에까지 부정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정상적인 국정 운영 이외에는 너무나도 유능하고 바쁜 대통령입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 봐도 제대로 치른 선거가 없다시피 하니 '선거의 여왕'이라는 수사는 허울에 불과할 뿐이로군요. 
 

출처 – 중도일보

 

지난 1월 친이계인 김성회 의원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자신의 원 지역구를 되찾아오겠다며 화성갑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예비후보 등록을 했죠. 그런데 2월 3일 갑자기 화성갑에서 화성을로 예비후보 등록지를 변경했습니다. 이후 화성병이 신설되자 그쪽으로 출마 지역구를 옮겼다가 최종적으로는 경선에서 탈락했습니다. 총선 출마가 대입 눈치 보기 작전도 아니고, 출마 선언의 명분조차 무색해지는 변덕을 보였는데요.

 

출처 - 한겨레

 

그 이유가 지난번에 공개된 녹취록으로 드러났죠. 친박의 핵심인 윤상현-최경환 새누리당 의원이 화성갑에 친박계의 맏형인 서청원 의원이 출마할 것이니 자신의 계파가 아닌 친이계 김성회 의원더러 지역구를 바꾸라고 종용했던 것입니다. 친박계의 맏형 격인 분이 출마하는 지역구를 두고 공천 경쟁을 벌이면 친박계의 모양새가 빠진다는 얘깁니다. 그 당시 친박이 얼마나 오만했으면 공천에 대해 공식적인 권한이 없는 평의원 두 명조차 저런 말을 했을까요? 호가호위란 말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상황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출처 - 뉴스타워

 

녹취록에 의하면 최경환 의원은 "세상을 무리하게 살면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잖아"라며 공천해줄 테니 지역구를 바꾸라고 압박했으며, 자신들이 도와준다고 반복하며 김성회 의원을 안심시켰습니다. 롯데에서 50억을 받아서 그런지 몰라도 기세가 등등했습니다. 롯데 수사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용두사미 수사가 된 것도 최경환 의원이 '전화를 돌려서' 그런 게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윤상현 의원은 최경환 의원보다 먼저 김성회 의원에게 전화해 "까불면 안 된다니까. 대통령 뜻을 얘기해준 거 아니냐"며 지역구를 바꾸도록 종용했습니다. 새누리당 경선도 어차피 자신들, 친박들이 친박 브랜드로, 대통령의 사람들로 만드는 거라며 친박 실세들을 통한 공천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형(김성회 의원)에 대해 별의별 것을 다 가지고 있다며 지역구를 바꾸지 않을 경우 약점을 폭로하거나 사정기관을 동원할 수 있음을 암시하기도 했죠.

 

이처럼 친박의 실세라는 사람들이 약속했으나 김성회 의원은 공천에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뒷공작은 차치하고 약속을 얼마나 휴지 조각처럼 여기는지 드러나는군요.

 

출처 - 채널A

 

최경환, 윤상현 의원은 공천으로 싸울 필요 없지 않나 싶어서 충고한 거라고 변명했지만,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인 현기환 녹취록이 나오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공천 과정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음이 드러납니다. 김성회 의원은 당시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으로부터도 전화를 받았는데 "가서 (서청원 전) 대표님한테 저한테 얘기했던 거 하고 똑같이 얘기하세요. 대표님 가는 데 안 가겠습니다. 어디로 가실 겁니까, 물어보세요"라고 일방적인 취급을 당합니다. 그러면서 현 수석은 "저하고 약속하고 얘기한 거는 대통령한테 약속한 거랑 똑같은 거"라며 이게 VIP(박근혜 대통령)의 뜻이니 따르라고 합니다. 생각할 시간을 좀 달라고 김성회 의원이 말하자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지금 하라고 꾸지람만 듣습니다. 골목길 가로막고 '삥 뜯는' 것도 아니고 출마하겠다는 의원에게 깡패처럼 특정 지역구에 가라 마라 했으니, 대체 무엇하는 짓거린지 알 수가 없네요.

 

녹취록이 폭로되자 비박계와 야당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선거법 위반 사안이며 선관위와 검찰 수사 의뢰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이죠. 어떻게 보면 진박, 친박, 비박 타령으로 새누리당 총선 참패를 야기한 책임자들이 바로 공천 과정을 조작한 친박계 핵심들이고 이 모든 걸 뒤에서 조정하던 박근혜 대통령일 텐데, 이들은 그 책임조차 회피하려고 합니다. 자신들이 길들여놓은 조직을 이용해서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지난달 27일 새누리당 윤리위원회는 녹취록으로 불거진 친박 공천 개입 의혹을 사실상 다루지 않기로 결론 내렸습니다. 전당 대회 이후로 책임을 미뤄버린 건데 새누리당에 윤리란 게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긴 하지만 각 계파의 이익이 걸려 있는 사안을 이렇게 뭉개고 넘어갈 수 있음을 볼 때, 현재 새누리당이 얼마나 친박계에 의해 장악되어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지점입니다.

 

출처 - 뉴스300

 

선관위는 새누리당이 요청해야 이를 조사할 수 있다는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24일 "비대위 차원에서 고발 의뢰할 생각이 없다며" 친박 총선 공천 개입 녹취록 파문에 대한 조사 의뢰를 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습니다. 친박에 의한 명백한 공천 개입과 불법성이 물증으로 나왔는데도 새누리당의 요청이 없어 조사하지 않는다는 선관위와 쿵짝이 척척 들어맞습니다. 대한민국 선거판, 참 가관이지 않습니까?

 

더불어민주당은 정당 경선이 정당 자율에 의해 진행된다는 이유로 선관위가 명백히 드러난 위법적 상황을 조사하지 않겠다는 것은 앞으로 선거나 공천 과정에서 협박뿐 아니라 금품향응 제공, 자리보전과 같은 온갖 혼탁과 협잡이 난무해도 손을 놓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선거, 특히 자기 동네를 대표할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은 그 나라 민주주의 꽃입니다. 그 꽃밭을 자기 마음대로 휘젓고 꺾는 무뢰배들이 멀쩡히 눈에 보이는 대도 아무 제지를 하지 않는다면 원예사가 과연 꽃밭에 무슨 필요일까요? 선관위의 결단과 날카로운 조사로 녹취록의 흑막과 선거 부정을 밝혀내야 할 것입니다.

 

 

기-승-전-사드

 

출처 - 경향신문

 

그런데 어느 순간 녹취록 보도는 언론과 방송에서 종적을 감췄습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논란이 모든 정치 이슈를 빨아들인 겁니다. 국가 안보 이슈가 대한민국 여론을 양분하는 사이 새누리당의 관심은 오직 8.9 전당대회에 쏠려 있습니다. 지난 6일 계파별로 특정 후보에게 투표하라는 문자메시가 돌면서 이른바 '오더(지시) 정치' 논란이 일었고, 전당대회가 계파의 이전투구 현장으로 변질되는 형국입니다.

 

한편 전당대회 기간 중 새누리당의 핵심 지지 세력인 대구·경북(TK) 민심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되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네 차례 연설회에서 계파 논란과 후보 단일화 등은 주요 이슈로 부각되었지만, 사드 문제를 언급한 후보는 찾기 어려웠으니까요. 이대로라면 새누리당은 사드 문제의 해결책을 내놓지 못할 게 뻔합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가 이에 대해 "국가 최대 현안에 대해 전대에서 제대로 이슈화도 시키지 않는 후보들이 집권 여당 대표의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한 것도 바로 이런 지점이겠죠. 8.9 전당대회를 코앞에 둔 새누리당 친박계의 노골적 '이정현 밀기'가 어떤 결과로 끝이 날지 자못 궁금해지는군요. 

 

생각비행은 지난 2월 〈테러방지법 vs 필리버스터 & 사드(THAAD)〉라는 기사에서 한반도의 사드 배치가 미국의 세계 구상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적어도 우리에게는 실익이 없는 일임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사드는 경제, 외교적으로 파국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고 안보적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돈만 들어가는 국가사업이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사드 배치를 자신의 치적으로 삼고, 북풍으로 선거에 유리한 국면을 조장해보려는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는 선거 승리 외에 국민의 안위에는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방증하는 사례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바란다면 사드 한반도 배치는 절대 불가한 일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데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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