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알콩달콩 살아가는 일상을 보여주는 예능 〈효리네 민박2〉에서 제주 4.3 사건이 언급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민박집 손님 중 자매가 제주 4.3 사건 유적지인 너븐숭이 4.3 기념관을 방문하는 모습이 그려졌고, 이 얘기를 듣자 이효리는 제주도는 아픔이 있는 땅이라며 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생각비행은 제주 해군기지 반대를 위한 기사와 4.3 사건의 시대적 아픔을 다룬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는 기사에서 〈지슬〉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출처 - JTBC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반대 24] 4.3은 말한다: http://ideas0419.com/434 

제주 4.3의 시대적 아픔을 다룬 영화와 다큐 : http://ideas0419.com/463

 

현재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4월 3일은 4.3 희생자 추념일입니다.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를 기점으로,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독선거, 단독정부를 반대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제주 주민이 희생된 뼈아픈 사건입니다.


출처 - TBS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제주 4.3 사건 70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2일, 제주 4.3 사건이 5.18 광주를 예고한 독재자의 폭압이 아니었나 하고 지적했습니다. 계엄령을 선포하고 피해 지역을 고립시켜 역사 속에 묻어버렸다는 점에서 두 사건은 닮은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추미애 대표는 제주 4.3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찾아서 완결짓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역사가 걸린 문제라고 밝혔습니다.


출처 - 뉴스1


사실 제주 4.3 사건은 아직도 미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군사정권기에는 폭동으로 인식됐고 그 잘못된 인식이 오랜 시간 사람들의 뇌리를 지배했습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제주 4.3 사건 특별법을 제정한 뒤 노무현 정부가 4.3 사건 진상보고서를 내고 2014년 국가추념일로 지정함으로써 일부 바로잡히긴 했습니다. 하지만 4.3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공청회를 서울에서 열기까지 50년이란 세월이 걸렸습니다. 4.3을 금기어로 삼고 이념으로 가두고 피해자 입에 재갈을 물려 하늘과 땅이 아는 사실을 절대로 말하지 못하게 한 일들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희생자에 대한 정당한 배상과 보상, 수형인에 대한 명예회복은 여전히 미진한 상황입니다. 민간인 학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단죄 또한 다 이루지는 못한 상태죠.


출처 - 연합뉴스


제주 4.3 사건 해결은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입니다. 2일 현재 청와대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제주 4.3 사건 추도식 행사 참석 여부에 대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추념사 초안을 막판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대선 공약이었던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 배상과 보상을 통한 국가의 책임 인정 등이 대거 포함될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올해는 가지 못하지만 내년에는 대통령 자격으로 참석해 제주의 한과 눈물을 함께 나누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은 제주 4.3 평화공원 추념광장에서 엄수된 제70주년 4.3 추념식에 참석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제주의 봄을 알리고 싶습니다"라는 말로 추념사를 시작하여 "4.3의 완전한 해결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겠다"고 밝히고 "오늘 추념식이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이 되길 기원한다"는 희망을 피력했습니다. 그리고 "제주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는 말로 끝을 맺었습니다. 오늘을 기점으로 제주 4.3 사건의 진상을 국가 차원에서 제대로 규명하고 희생자에 대한 정당한 배상과 보상, 수형인에 대한 명예회복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2014년 4월 3일은 첫 국가기념일로 치러진 제66돌 4.3희생자추념일이었습니다. 제주4.3사건으로 희생된 분들의 넋을 달래는 4.3희생자추념식은 이전까지는 자치단체에서 치렀습니다. 70년이 다 된 지금 국가기념일이 되었다는 건 다행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통합진보당 도당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4.3희생자 추념일'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한 일은 뒤늦게나마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잘못을 사죄하고 반성한다는 의미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통진당은 "오늘 진행된 제66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은 과연 국가가 봉행하는 추념식과 자치단체에서 봉행하는 위령제의 차이가 무엇인지 전혀 구분이 안가는 행사였다"며 "오히려 기존 위령제보다 못한 국가추념행사였다"고 혹평했다. 통진당은 "국가의 이름으로 봉행되는 4.3희생자추념은 분명한 반성과 더불어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분명한 다짐이 있어야 한다"며 "오늘 추념식에서 국무총리는 '제주는 이제 아픔을 말끔히 씻었다'는 말로, 알맹이 없는 4.3의 전국화와 세계화를 추진하겠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출처 - SBS

정부가 우선 정비하기로 했던 제주4.3사건 유적 19곳 가운데 11곳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여기에 6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지만 정부 지원은 2010년부터 끊겼습니다. 이제야 국가기념일로 제정되었지만 첫 추념식에 박근혜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중요한 자리에 참석하지 않고 대체 대통령이 무엇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습니다. 이날 정부대표로 참석한 정홍원 국무총리는 뜬금없이 이제 제주의 아픔이 말끔히 씻겼다는 발언으로 빈축을 샀습니다.

역사적 아픔을 아직 씻어내지 못한 제주로 3박 4일 동안 수학여행을 다녀온 학생들은 정작 이날이 무슨 날인지 알지 못합니다. 4월 3일이 무슨 날인지 아느냐고 묻자 식목일? (수학여행에서) 집에 돌아가는 날? 잘 몰라요. 라는 답변을 했습니다. 반쪽짜리 국가기념일에 젊은이들에게 점점 잊히는 제주4.3사건... 아쉬운 마음에 이번 주말에 제주4.3사건을 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하자는 의미에서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소개합니다.


<레드 헌트>, 제주도판 홀로코스트를 폭로하다

출처 – 조성봉 감독의 유튜브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 대학살은 나치나 일제에 의해서만 자행된 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남단 제주도에서 수많은 양민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미 군정 치하이던 1948년 4월 3일, 남조선노동당이 일으킨 무장봉기를 군과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제주도민 최소 3만 명이 죽음을 당한 참혹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5월 10일 남한은 단독 총선거를 앞두고 있었고, 사회적으로 민감한 때에 일어난 사건을 미 군정은 좌익 공산분자들이 일으킨 폭동으로 규정했습니다. 그 뒤로 제주4.3사건의 실체는 은폐됐습니다. 오랜 침묵의 틀을 깨고 조성봉 감독은 <레드 헌트>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대중에게 진실을 이야기했습니다.

1996년에 공개된 <레드 헌트>는 1992년 북제주군 조천읍 구좌면의 한 굴에서 11구의 시체가 발견된 사건부터 다룹니다. 조성봉 감독은 이들은 굴 밖에서 토벌대가 피운 연기 때문에 질식해서 죽었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이후 다큐멘터리는 제주4.3사건의 본질을 미 군정 보고서, 당시 신문 보도, 연구자들의 학술적 설명, 목격자 인터뷰, 다양한 자료화면을 동원해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하여 결국 다큐멘터리의 제목처럼 제주4.3사건의 진실이 빨갱이 사냥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된 민간인 학살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레드 헌트>의 앞길은 부침이 심했습니다. 1997년 이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려던 인권영화제의 서준식 집행위원장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에 의해 이 다큐멘터리가 국가의 존립, 안정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이적표현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판시가 나와, 제주4.3사건의 진실 규명과 표현의 자유를 재확인한 중요한 선례로 남게 되었습니다.

조성봉 감독은 이후로도 제주도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고 강정 해군기지 건설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다룬 다큐멘터리 <구럼비–바람이 분다>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조성봉 감독이 페이스북에 제주도와 자신의 깊은 인연을 이야기한 내용을 2013년 4월 4일 기사로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관련 기사: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반대 24] 4.3은 말한다)

<비념>, 4.3과 강정으로 반복되는 역사의 비극

출처 – 전주국제영화제 유튜브

제주시 애월읍 납읍에 살고 있는 강상희 할머니는 4.3으로 남편을 잃었습니다. 2013년 해군기지 문제로 떠들썩했던 강정마을의 시위 현장에는 '4.3의 원혼이 통곡한다' 같은 글귀가 적힌 수많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시간은 다르지만 제주4.3 사건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문제가 큰 맥락에서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주얼 아티스트인 임흥순 감독이 2년 4개월 동안 담아낸 제주의 모습, <비념>은 4.3사건부터 강정마을까지 제주도에서 현재 진행형인 슬픔을 카메라에 오롯이 담아냅니다. 제주도의 생활 모습과 풍경 곳곳을 담아내어 제주도가 아름다운 관광지임과 동시에 현대사의 비극으로 만들어진 큰 무덤임을 묵묵히 풀어냅니다. <비념>은 주장하는 영화라기보다 은유와 상징을 통해 다가가는 영화입니다. 제주도 사람이 일생을 통해 겪은 제주도의 풍경을 통해 말이지요.


<지슬>, 세계가 인정한 제주4.3사건 영화

출처 – Daum 영화

2003년 고 노무현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국가권력에 의해 대규모 희생이 이뤄졌음을 인정하고 제주도민에게 공식으로 사과한 지 10년 만에 나온 영화 <지슬>은 제주4.3사건으로 희생된 분들의 넋을 위로하는 제의적 성격의 영화입니다. 제주도 말로 감자를 뜻하는 말인 '지슬'은 제주도 출신 감독인 오멸이 제주 사람들과 함께 찍은 지역 밀착형 영화입니다. 그 때문인지 제주4.3사건이라는 비극을 다루면서도 역사성만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흑백화면 속에 대단한 영상미와 해학을 담아내고 있는 걸작입니다.

<지슬>은 제주 주민과 토벌군이라는 이분법적 대결 구도에서 벗어나 그날을 살아야만 했던 모든 사람의 모습을 하나하나 세심히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의 구성조차 제사를 연상시켜 좌·우익을 가리지 않고 제주4.3사건으로 희생된 모두의 원혼을 달래는 씻김굿이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습니다. 인류애적인 감성은 만국 공통인지 그해 1월 세계 최대의 독립영화 페스티벌인 제29회 선댄스영화제에서 한국영화로는 최초로 최고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습니다.


끝나지 않은 그날, 제주 4.3

4월 3일은 이토록 가슴 아픈 날이건만 그날의 일을 여전히 폭동으로 규정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것도 사회 중추부에 말입니다.

출처 - 노컷뉴스

제주 4.3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3일 66주년 희생자 추념식이 첫 정부 주관행사로 치러진 가운데 법원내부통신망에 4.3을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으로 규정한 글이 올라와 파문이 일고 있다. 3일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법원내부통신망인 코트넷에는 '폭동을 항쟁이라 부르는 기막히고 비통한 현실'이라는 제목이 글이 게시됐다.


좌익이란 소릴 들은 한 명의 대통령이 국가를 대표해 제주4.3사건의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공식 사과한 후, 우익이란 소릴 듣는 한 명의 대통령의 재임 기간에 4.3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음에도, 사람들의 인식은 그리 나아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주도의 4월 3일이 더 이상 슬프지 않을 날은 언제쯤 올까요? 답답한 현실입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어제는 제주 4.3사건 65주년 추념일이었습니다. 1949~1954년 당시 공권력에 의해 제주도민 3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무고한 시민이 '빨갱이'로 몰려 피를 흘려야 했던 역사적 비극의 상처가 아물기도 않았는데, 오늘날 대한민국 도처에서 무고한 시민이 어려움을 겪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제주 4.3항쟁 65주년을 보내며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통령 후보자 시절에 제주도민을 위한 공약을 발표했습니다. 제주 4.3사건의 완전한 해결을 약속하면서 4.3 추모기념일 지정, 피해자 생계비 지원, 유가족 의료 복지 확대, 유적지 복원 정비 등의 공약을 포함시켰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진정으로 약속을 지킬 마음이 있었다면 제주 4.3 희생자 65주기 위령제에 참석해 무고한 시민의 죽음에 애도의 뜻을 표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재임 기간 내내 제주 4.3사건에 무관심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박근혜 대통령은 위령제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뉴스를 보니 제주 4.3사건을 다룬 독립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 2>를 관람한 관객이 7만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지슬>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4관왕에 이어 2012 올해의 독립영화상, 제29회 선댄스영화제 한국영화 최초 심사위원 대상, 제19회 브졸아시아국제영화제 한국영화 최초 황금수레바퀴상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상을 많이 받았거나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많은 시민이 이 영화에 관심을 보이는 건 아닐 겁니다. 지난해에 용산 참사를 다룬 문제작 <두 개의 문>을 대하는 시민의 관심이 뜨거웠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부 이래로 심화된 국가폭력과 인권유린의 상황이 <지슬>과 같은 문제의식을 담은 영화를 주목하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 이닐까 하고 추측해봅니다.

제주 4.3사건을 바라보는 정부의 인식은 인권의 가치를 가늠하는 지표였습니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 국민화합 차원에서 진상규명과 보상을 위해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설치되었습니다. 진상규명위원회는 그로부터 3년 뒤 정부 차원의 보고서를 채택합니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 4·3사건과 관련해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가 차원의 잘못을 공식적으로 사과합니다.


제주4·3사건 희생자 위령제 추도사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제주도민과 4·3 유가족 여러분,
우리는 오늘, 58년 전 분단과 냉전이 불러온 불행한 역사 속에서 무고하게 희생당한 분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이 자리에 함께 모였습니다. 저는 먼저, 깊은 애도의 마음으로 4·3 영령들을 추모하며 삼가 명복을빕니다. 오랜 세월 말로 다 할 수 없는 억울함을 가슴에 감추고 고통을 견디어 오신 유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국가권력이 불법하게 행사되었던 잘못에 대해서 제주도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제주도민과 유가족 여러분,
2년 반 전, 저는 4·3사건 진상조사 결과 보고를 받고,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대표하여 여러분께 사과를 드린 바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이 보내주신 박수와 눈물을 저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늘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정부는 그동안 희생자의 명예회복과 추모사업 등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지난달에도 2,800여 명을 4·3 희생자로 추가 인정했고, 이곳 4·3평화공원 조성을 적극 지원하고 있습니다. 유해와 유적지를 발굴하는 일도 지속적으로 지원해 나갈 것입니다. 이제 4·3사건위원회가 건의한 정부의 사과와 명예회복, 추모사업 등은 나름대로 상당한 진전이 이뤄진 것 같습니다. 아직도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만, 이에 대해서는 국민적인 공감대를 넓혀가면서 가능한 일 하나하나를 점진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4·3사건을 제대로 알리고, 무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나가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자랑스런 역사이든 부끄러운 역사이든,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밝히고 정리해 나가야 합니다. 특히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잘못은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국가권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합법적으로 행사되어야 하고, 일탈에 대한 책임은 특별히 무겁게 다뤄져야 합니다. 또한 용서와 화해를 말하기 전에 억울하게 고통받은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자 의무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국가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확보되고 그 위에서 우리 국민들이 함께 상생하고 통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도 과거사 정리 작업이 미래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사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갈등의 걸림돌을 지금껏 넘어서지 못했던 것입니다. 누구를 벌하고, 무엇을 빼앗자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사실은 사실대로 분명하게 밝히고, 억울한 누명과 맺힌 한을 풀어주고,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함께 다짐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통해서 우리 국민이 하나가 되는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날의 역사를 하나하나 매듭지어갈 때, 그 매듭은 미래를 향해 내딛는 새로운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제주도민 여러분,
제주도는 대한민국의 보배입니다. 우리 국민은 물론 세계인이 사랑하는 평화의 섬, 번영의 섬으로 힘차게 도약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주도가 반드시 해낼 것이라고 믿습니다. 도민 여러분은 폐허를 딛고 아름다운 섬을 재건해냈고, 그 어느 지역보다 높은 자치역량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주민 스스로 결의해서 항상 중앙정부가 기대하는 이상의 높은 성과를 이루어오셨습니다.
여러분이 앞장서 나아가는 만큼 정부도 열심히 성원하고 힘껏 밀어드리겠습니다. 함께 힘을 모아 풍요롭고 활력 넘치는 제주를 만들어 나갑시다. 이 평화의 섬을 통해 한국과 동북아의 평화, 나아가서는 세계의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들어 갑시다.

다시 한 번 4·3 영령들을 추모하며,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이 행사를 지켜보면서 그 엄청난 고통과 분노가 시간이 흐르면서 돌이켜볼 수 있는 역사가 되고 또 그 역사의 마당에서 진행되는 공연을 보면서 앞으로 또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면 이것이 제주도의 새로운 하나의 문화로서 자리잡고 그것이 우리 모든 국민들에게 이제는 분노와 불신과 증오가 아니라 사랑과 믿음, 그리고 화해를 가르쳐주는 그런 아주 중요한 상징물이 될 것이라는 그런 기대를 가지게 됐습니다. 함께 노력합시다. 감사합니다.

 

제주 4.3사건을 바라보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진전된 시각을 이명박 정부는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명박 정부 들어 국가폭력은 점점 수위를 높여갔고, 5년간 인권이 유린되는 일이 수없이 발생했지요. 용산 철거농성장 현장을 경찰이 폭력적으로 진압하면서 시작된 국가권력의 인권 유린은 쌍용차 농성장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반대 투쟁현장에서 그 정점을 찍었습니다. 용산참사의 비극은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을 통해 세간에 널리 알려졌고, 얼마 전 개봉한 다큐멘터리 <비념>은 제주 4.3사건부터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과정에서 일어나는 공권력의 폭력에 주목합니다.

 

 

<비념>은 제주 4·3사건과 강정마을 문제를 함께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입니다. 임흥순 감독은 제주 4.3사건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현재 진행형의 사건임을 강정의 현실에 주목하며 다양한 은유와 상징으로 이를 형상화해냅니다. <비념>의 배급과 마케팅을 맡고 있는 (주)인디스토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임흥순 감독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제주섬을 오가며 마음을 벼리고, 2년 4개월 동안 카메라에 제주 구석구석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 묻힌 역사와 기억들과 나무와 돌과 바람과 숲을 담았다. 관객들은 ‘비념’을 통해 바람 한점, 돌멩이 하나에도 제주섬의 오랜 한숨과 깊은 설움이 서려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국가권력이 앞세우는 폭력에 국민이 저항하기란 무척 힘든 일입니다. 그럼에도 폭력의 희생자와 연대하는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이 존재합니다. 누군가는 일상을 포기하고 현장에 머물며 투쟁의 삶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란 바로 그런 연대의 결과물이기도 한 것이지요. <레드 헌트>는 1996년 제작된 다큐멘터리로 제주 4.3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만든 조성봉 감독님이 어제 페이스북으로 이런 글을 쓰셨더군요.

 

돌아보면, 2011년 4월3일 강정에 온 이유도 강정마을회관에서 <레드헌트2>를 상영하기 위해서 였다. 물론 요청으로.
 
Red-Hunt는 두편을 만들었다.
레드헌트1은 '빨갱이 사냥', 레드헌트2는 '국가범죄'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둘 다 4.3항쟁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1 Red-Hunt1 -빨갱이 사냥

뭐..국가보안법에 걸렸던 영광스런 다큐이니 관련 이야기를 다할려면 끝도 없다. 책한권은 쓰야 한다. 몇가지만.....
 
1.
 
97년 봄이었다. Q채널이라는 케이블방송에서 하는 다큐멘터리영상제가 있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그 때 삼성영상사업단이라고 해서 이들이 운영했다. 아마 지금의 CJ-엔터테인먼트의 모태였을 것이다. 처음부터 이 다큐영상제를 염두에 두고 <레드헌트>를 만들었다. 출품 데드라인 밎춰 제작해서 출품했고,예상대로? 본선에 진출했고 영화제에 참석했지만 상영 당일 취소가 되었다. 4.3이 방송불가 소재라는 게 이유였다. '심의'가 통과되지 않는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다.(중국의 '천안문' 사건을 다룬 외국다큐도 상영취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출품 자체를 자진철회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영화제쪽에서 제시한 타협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레드헌트> 첫부분에 희생자 연령별 성별 수치가 자막으로 나오는데, 이 자막 앞에 "이 수치는 사실과 다를 수도 있고 희생자의 시각에서 제작되었다"라는 별도의 자막을 넣어달라는 게 영화제의 요구였다. 그렇게하면 '심의'도 통과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냉 짐싸서 영화제를 떳다.
 
그 때 영화제 슬로건이 '진실의 눈, 진실의 힘'이었다. 재미난 사실 하나는 나와 교섭한 다큐영상제 쪽 프로그래머가 고려대 사학과를 나온 제주도 출신이었고,그의 부친이 '서북청년단' 출신이었다. 그는 나와 동갑이었다. 몇년 전에 이 친구인터뷰가 '씨네21'에 실렸기에 들여다보니 'CJ-CGV'의 사장이 되어 있었다.
레드헌트에 <서북청년단 '박형요'의 증언>이 있다.

2.
 
97년 가을이었다. 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되었다. 남포동의 아카데미극장에서 첫상영이 있었고 당시 귀빈이었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감독이 <레드헌트>를 보러왔던 기억이 난다. 이후 '인권영화제'에서 상영한 후 부터 '국가보안법'으로 수배 당했고, '베를린영화제'에서 초청이 와서 참석하기 위해 여권 발급 받으러 갔다가 체포되었다. 피해다니다 스스로 찾아간 나의 의도적인 신변정리 차원이었다.
기소 이유가 재미있었다. 북한에서 주장하는 것과 똑같다는 게 이유였다. 북한에서 어떻게 주장하냐고 물으니 '이승만정권과 미군정에 의한 의도적인 학살'이라고 한단다. 그래서 '내 생각과 같네..'했다.
<대정면 남로당책이었던 '이운방'의 증언>

3.

영화 '지슬'은 동광리 학살에 대한 이야기다. 큰넓궤라 부르는 용암동굴로 피신해던 동광사람들의 삶을 흑백으로 담아낸다. '지슬'에선 동굴 속에서의 삶까지만 영화화하지만 <레드헌트>엔 그 이후의 동광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큰넓궤가 토벌군에 의해 공격당하자 동광리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아간 곳은 볼레오름이었다.
 
결국, 볼레오름에서 붙잡힌 동광리 주민들은 다른 마을 주민들과 함께 1월22일 서귀포시 정방폭포 위에서 총살당했다. 정방폭포에서 희생된 86명 가운데 동광리 주민은 40여명으로 알려졌다. 바다와 이어진 정방폭포에서 사람들의 시체가 파도 너머로 떠밀려갔다. 시신을 찾지 못해던 유족들은 후에 심방을 불러 초혼제를 지내고 혼만 불러 '헛묘’만들어 제사를 지낸다.

<동광학살에 대한 증언>
 
4.
 
서귀포 '강정'
해방 후 한반도의 집약적 모순이 폭발적으로 터져나온 곳이 제주도였다.
경제난, 미군정의 지배, 친일파들의 재등장, 남로당의 불법화, 통일된 나라에 대한 염원..등이 당시 남한의 전반적인 상황이었다.

47년 3월 1일, 3.1절 기념집회 후 가두행진에 대한 미군정경찰의 발포로 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4.3의 전야는 시작된다. 이 때 발포에 항의하여 총파업에 돌입하는데 제주도지사, 경찰들까지 파업에 동참한다. 이로인해 도지사도 육지껏으로 바뀌고 경찰도 육지에서 대규모로 파견되어 들어온다. 서북청년단도 마찬가지다.당시 신문자료엔 서귀포 중문지서 경찰들이 파업에 동참해 파면당했다는 기사가 있다.

4.3 당시 서귀포경찰서장 '김효겸'의 증언은 해방 후 친일파 출신의 인물들이 경찰의 상층부를 구성하는 것에 반대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도 만주군 출신이다. 현재 강정에서 서귀포경찰서장과 경찰들의 활약상?은 익히 알져져 있는 바이다. 그들의 선배가 그러했으니 ....
 
<서귀포경찰서장 '김효겸'의 증언>


#2 Red-Hunt2 -국가범죄

일단 형식이 1편과는 다르다. 나레이션없이 증언만으로 구성했다.
 2편을 만든 이유가 있다. 국보법으로 조사를 받을 때 였다. 담당수사관이 '만든 사람의 의도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지 않았나...그래서 4.3에서 엄청난 학살이 있었다는 말들이 믿기지가 않는다.' 라는 말을 했다. 그래서 '좋다 그러면 또한편만들겠다. 피해자의 증언만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학살당했는지, 이게 왜 국가에 의한 범죄행위였는지 보여주겠다.'..해서 만들게 된 것이다.

다큐의 시작은 광주로부터다. 5.18광주항쟁과 4.3항쟁은 다르지않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한국근현대사에서 민중의 저항과 지배자의 학살은 늘 함께 했다. 외세 또한. 갑오농민혁명, 3.1독립운동, 4.3항쟁, 4.19혁명, 5.18광주가 그랬다.

2편 덕분에 스위스 프리부르그영화제에도 가보고, 내 인생 처음으로 상도 받아보았다. 개근상도 한번 못받았던 내가 다큐멘터리 작품상을 받았다. '영화인회의'와 '영화인협회'가 주관했던 2000년 '한국영화축제'에서 였다.
 
나 같이 운좋은 놈이 또 있을까 싶다. 삼십 중반에 다큐를 시작해,처음 만든 다큐가 국가보안법에 걸려 세상의 주목을 받고, 베를린영화제에도 가고, 후에는 상까지 받았으니...복받은 놈이다.
 
4.3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제주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제주에 4.3에 늘 빚지고 있는 마음이다.
지금 강정에 있는 이유도 그러하다.
 강정해군기지 또한 국가범죄다.
 
2013년 4월 3일, 4.3항쟁 65주년이다.
 죽어간 모든 이들의 넋을 빈다.

 

2011년 여름,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생각비행은 강정마을을 지지방문했습니다. 태풍 무이파가 제주도를 강타해 큰 피해가 발생하는 일을 직접 경험했는데요, 태풍이 몰아치던 날 오후에 강정마을회관에서는 주민과 평화지킴이, 지지방문자들이 한데 모여 <레드 헌트>를 관람했습니다. 한국대학생연합 학생들에게 제주4.3사건의 국가폭력이 강정에서 벌어지는 해군기지 건설의 문제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열정적으로 들려주시던 조성봉 감독님을 기억합니다.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생각비행 블로그에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반대 5] 세계는 제주의 평화를 원한다〉는 기사로 소개한 적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3월 1일 제주 관덕정 앞 광장에서 있었던 제2차 3.1 제주 비무장 평화의 섬 선언대회에서 결의한 선언문을 다시 공유합니다.

 

제주도 비무장 평화의 섬 선언문

오늘은 일제의 폭력에 대항해 비폭력 평화적인 방법으로 자주독립국임을 선언하였던 3.1운동 제94주년이 되는 날이다.
또한 66년 전, 제주4・3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3・1절 제28주년 기념식이 2만여 명의 도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던 날이기도 하다.

지금은 제주읍 목관아지가 복원되어 있는 이곳 관덕정에서는, 매년 2월 일제의 강압에 의해 사라졌던 ‘입춘굿놀이’가 행해지고 있다.
이곳 역시 제주도의 역사와 함께한 장소이다.
1901년 이재수 신축항쟁 당시 피비린내 나는 역사적 현장이었고, 제28주년 3․1절 기념식 후 당국의 발포로 6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장소이기도 하다.
1949년에는 제주4・3항쟁의 장두인 이덕구의 시신이 전시되기도 했었다.
제주4・3유족회가 육지부 형무소 등지에서 행방불명된 영령들의 혼백을 모셔와 합동제례를 올린 곳이기도 하다.

‘3월 1일’, 우리가 ‘관덕정’에서 비무장 평화의 섬 선언을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선열들의 뜻을 계승하기 위해서이다.
불의의 폭력에 맞선 선열들의 거룩한 희생을 추모하고, 정의가 수난받는 개탄스런 현실을 타개해 나가기 위해서이다.

제주도는 역사적・현실적으로 외세와 중앙에 휘둘리고 이용당해왔다!

제주도는 대몽항전 시절 몽고에 의해 일본침략의 교두보로 이용되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중・일전쟁에서 중국 폭격을 위한 일본군의 도양지로 사용되었다.
일제 말기에는 제주도 전체를 군사 요새화하여 일촉즉발의 위기가 있기도 했다.
그만큼 제주도는 지정학적인 중요성 때문에 시시때때로 군사기지의 역할을 해왔다.

4・3당시 이승만은 미국이 제주도에 영구적인 기지를 설치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의 오키나와 기지 대신 제주도를 새로운 미군기지로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20여 년 전 모슬포 송악산 공군기지 건설이 좌초된 이후, 정부는 화순과 위미를 타진하다가 현재 강정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제주도는 세계 평화의 섬이다!

지난 2005년, ‘정부는 제주4.3의 비극을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시키며,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했다.
국내외 군사력에 의해 끊임없이 고초를 겪고 희생 당해왔던 제주도가 새로운 평화의 진원지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무장 평화의 섬을 향한 노력은 제주에 해군기지 건설이 추진되면서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대륙과 해양의 교차점에 위치한 제주도가 두 세력 간의 각축장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오히려, 두 세력 간의 완충지로 평화의 전진기지가 되기를 기원한다.
그것은 제주도가 진정한 의미의 ‘비무장 평화의 섬’이 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한다.

그것은, 제주도에 군대나 군사기지도 없는, 전쟁이나 폭력이 없는 평화의 섬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모든 난개발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하여 자연보존과 환경보호를 이뤄내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모든 생명에 대한 테러를 반대하여, 소중한 생명의 자생적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외세나 그 어떤 세력들의 간섭도 미치지 못하는 영세 중립의 자주적 공동체를 이뤄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제주도 비무장 평화의 섬이 갖는 본질이다.

간악한 외세에 저항하고 소중한 제주공동체를 지키고자 했던 선열들의 얼이 서려있는 이곳 관덕정에서 3월 1일 우리는,
전쟁과 폭력의 산물인 멸망과 파괴를 버리고
평화와 상생의 열매인 부활과 복원을 이루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지속적인 실천과 평화적인 노력을 통해 비무장 평화의 섬을 실현해 나갈 것을 다짐한다.
또한 우리의 결심과 실천 의지를 다시 확인하고 제주를 비롯한 전 세계의 양심있는 시민들과 함께 해나갈 것을 천명한다.

2013년 3월 1일
제주도를 비무장 평화의 섬으로 만드는 사람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