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가려면 올레길을 지나야 합니다.
바다에 닿기 전에 먼저 만나는 사람들.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날 오후, 동네 어귀 팽나무 아래 정자에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동생과 더위를 나고 있습니다.
아이들 곁에는 진짜 옛 장군이 들었을 법한 창과 방패를 지닌 장수풍뎅이가 놓여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장수풍뎅이여서 모조품이 아닐까 싶어 물었습니다.
“어디서……?”
밭에서 따온 마늘을 다듬고 있던 아이들 엄마가 마늘을 든 손으로 가리킵니다.
뒷산, 오름입니다. 그곳엔 많다는 얘기인 듯합니다.
바다로 가던 걸음을 멈추고 동구(洞口) 정자에 털썩 주저앉아 아이들과 놉니다.
아이들의 노는 소리를 들으며 더위를 식힙니다.
가려던 바다를 잊고 마시던 커피를 펜에 찍어 아이들을 그려봅니다.
바다에서 건너왔을까. 오름에서 내려왔을까.
시원한 바람이 우리 곁을 스쳐 갑니다.
벌렁 누워 한참을 잔 것 같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지? 여행객인가 봐…….”
뭐, 이런 소리에 깼습니다.
수박 한 조각을 건네옵니다.
덥석 받습니다.
그냥 올 수 없어 앞 구멍가게에서 1.5리터짜리 음료수를 사 동구 정자에 놓고 옵니다.
바다를 가지 않아도 될 듯한 어느 무덥던 날의 오후입니다.


오동명, 오동명 기자, 오동명의 인생사계,제주도, 생각비행, 도서출판 생각비행, 돌판화, 인생사계, 달력 만들기, 고양이, 연이, 고양이 연이, 길고양이, 길고양이 연이, 소중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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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바다산책 때 어제 본 무동연인을 같은 바닷가에서 만났습니다. 아주 오래 전 갓난 아들의 겨드랑이에 두 손을 넣고 들어주던 장난을 이번엔 그들이 바닷가에서 즐기고 있었습니다. 두 달 전 서울에 올라가서 중간고사 준비하느라 애쓰고 있는 다 큰 아들을 들어 안아주려 했더니, 피하더군요.
“남세스럽게….”

허락했다 해도 아마 들어주지 못했을 겁니다. 몸무게는 나만 못하지만 머리 하나는 더 크게 훌쩍 자란 아들을 이 짧은 팔로는 이젠 들 순 없을 테니까요. 젊은 연인이 부러워서 다시 어제처럼 힐끔 남상거립니다. 그들의 시간이 한없이 부러워서 또 어제처럼 힐끗 기웃거립니다. 지난 시간들, 지나가버린 것들을 힐끔거리고 힐끗거리는 거겠지요.

쉬라는 여자의 말이 들려옵니다. 땅에 발을 딛는 여자의 몸이 불편해보입니다. 처음엔 균형을 잡지 못해 기웃하는 줄 알았습니다. 이제 가자며 다시 목말을 태우는 남자, 그리고 다시 목에 안기는 여자. 무심코 그들을 따라갑니다.

이제 쉬어, 걷다 다시 내려놓을 때도 여자는 스스로 몸을 가누질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가자, 또 이 말이 들려옵니다. 이제 쉬어, 이제 가자, 이 말이 참 정겹습니다. 다시 무동이 되는 여자와 말이 되어주는 남자.

남들보다 불편하기에, 남들의 기준에 부족하기에 더 하나가 되고 있구나. 더는 따라가질 못하고 그들을 멀찌감치 보냅니다. 눈앞에서 사라진 어여쁜 그들을 마음에 오래오래 두고 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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