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알콩달콩 살아가는 일상을 보여주는 예능 〈효리네 민박2〉에서 제주 4.3 사건이 언급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민박집 손님 중 자매가 제주 4.3 사건 유적지인 너븐숭이 4.3 기념관을 방문하는 모습이 그려졌고, 이 얘기를 듣자 이효리는 제주도는 아픔이 있는 땅이라며 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생각비행은 제주 해군기지 반대를 위한 기사와 4.3 사건의 시대적 아픔을 다룬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는 기사에서 〈지슬〉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출처 - JTBC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반대 24] 4.3은 말한다: http://ideas0419.com/434 

제주 4.3의 시대적 아픔을 다룬 영화와 다큐 : http://ideas0419.com/463

 

현재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4월 3일은 4.3 희생자 추념일입니다.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를 기점으로,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독선거, 단독정부를 반대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제주 주민이 희생된 뼈아픈 사건입니다.


출처 - TBS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제주 4.3 사건 70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2일, 제주 4.3 사건이 5.18 광주를 예고한 독재자의 폭압이 아니었나 하고 지적했습니다. 계엄령을 선포하고 피해 지역을 고립시켜 역사 속에 묻어버렸다는 점에서 두 사건은 닮은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추미애 대표는 제주 4.3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찾아서 완결짓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역사가 걸린 문제라고 밝혔습니다.


출처 - 뉴스1


사실 제주 4.3 사건은 아직도 미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군사정권기에는 폭동으로 인식됐고 그 잘못된 인식이 오랜 시간 사람들의 뇌리를 지배했습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제주 4.3 사건 특별법을 제정한 뒤 노무현 정부가 4.3 사건 진상보고서를 내고 2014년 국가추념일로 지정함으로써 일부 바로잡히긴 했습니다. 하지만 4.3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공청회를 서울에서 열기까지 50년이란 세월이 걸렸습니다. 4.3을 금기어로 삼고 이념으로 가두고 피해자 입에 재갈을 물려 하늘과 땅이 아는 사실을 절대로 말하지 못하게 한 일들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희생자에 대한 정당한 배상과 보상, 수형인에 대한 명예회복은 여전히 미진한 상황입니다. 민간인 학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단죄 또한 다 이루지는 못한 상태죠.


출처 - 연합뉴스


제주 4.3 사건 해결은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입니다. 2일 현재 청와대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제주 4.3 사건 추도식 행사 참석 여부에 대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추념사 초안을 막판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대선 공약이었던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 배상과 보상을 통한 국가의 책임 인정 등이 대거 포함될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올해는 가지 못하지만 내년에는 대통령 자격으로 참석해 제주의 한과 눈물을 함께 나누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은 제주 4.3 평화공원 추념광장에서 엄수된 제70주년 4.3 추념식에 참석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제주의 봄을 알리고 싶습니다"라는 말로 추념사를 시작하여 "4.3의 완전한 해결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겠다"고 밝히고 "오늘 추념식이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이 되길 기원한다"는 희망을 피력했습니다. 그리고 "제주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는 말로 끝을 맺었습니다. 오늘을 기점으로 제주 4.3 사건의 진상을 국가 차원에서 제대로 규명하고 희생자에 대한 정당한 배상과 보상, 수형인에 대한 명예회복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테러라고 하지 말자. 민주화 운동이다." 이 말이 끔찍한 의미로 쓰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한 2014년이었습니다. 신은미 토크 콘서트 테러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한 고등학생의 비행(非行)을 마치 도시락 폭탄을 일제의 심장을 향해 던진 윤봉길 의사라도 되는 양 추켜올리며 일베와 극우 인사들이 내뱉었던 저 말은, 2014년에 군사독재의 망령과 공안정치의 부활도 모자라 마침내 백색테러까지 부활했음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았습니다. 

 

출처 - 주권방송



백색테러의 기원,

프랑스대혁명부터 제주 4.3사건까지


백색테러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암살, 파괴 등을 수단으로 하는 테러의 일종으로, 그 행위를 저지른 주체가 극우나 우파인 경우를 지칭합니다. 프랑스대혁명 중 혁명파에 가한 왕당파의 보복에서 이 말이 유래했는데요, 프랑스 왕가의 상징이 흰 백합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백색테러는 위정자가 체제에 저항하는 이들에게 가하는 탄압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죠. 현대에는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에 대한 탄압을 지칭하는 용어로도 사용합니다. 미국의 악명 높은 인종차별 단체 KKK단이 현존하는 대표적 백색테러단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출처 - 유튜브


어떻게 보면 백색테러의 부활은 감히 이 땅에 서북청년단이란 백색테러단체를 재건하겠다는 소리가 공공연하게 나오면서부터 예견된 일일지도 모릅니다. 해방 직후 결성된 서북청년단은 경찰을 도와 좌익 색출 업무를 하고 좌익 세력에 대한 테러를 주도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백색테러 중 하나인 제주 4.3사건 당시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한 토벌대의 상당수가 서북청년단이었고, 백범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도 서북청년단 정회원으로 활동한 바 있습니다. 그들은 공공연한 인터뷰에서 이승만을 찬양하며 한국에 우파는 있지만 극우가 없다며, 네오나치 같은 극우가 한국에도 필요하다는 헛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토크 콘서트에서 자행된 백색테러


이런 시류 속에서 백색테러가 부활했습니다. 2014년 12월 10일, 전북 익산에서 열린 신은미 황선 토크 콘서트 현장에 사제 폭탄을 투척한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놀랍게도 테러범은 19세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출처 - 미디어오늘


테러의 시작은 시쳇말로 '중2병' 걸린 한 소년의 인터넷 허세인 줄 알았습니다. 자주 가던 사이트에서 한 학생은 자신이 구한 인화물질들의 사진을 찍어 올리며 "신은미 폭사당했다고 들리면 난줄알아라"라고 썼습니다. 사람들은 관심병이 도진 이가 왔구나 싶어 폭발물이 그렇게 쉽게 만들어질 것 같으냐며 무시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신은미 황선 토크 콘서트에서 폭발물 테러가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오군(18)은 강연 도중 뜬금없이 말을 끊으며 "북한이 지상낙원이라고 하셨죠?"라고 묻습니다. 그런 소릴 한 적이 없는 강연자들은 부정했지만, 오군은 끈질기게 강연을 방해하여 사람들에게 제지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오군은 준비해온 냄비에 불을 붙여 던졌고, 폭발로 토크 콘서트장은 아수라장으로 돌변했습니다. 맨 앞에 있던 분이 순간적으로 냄비를 손으로 쳐 바닥으로 떨어뜨려 인명 피해가 나지는 않았으나 폭발물을 사람이 정통으로 맞았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출처 - 유튜브


오군은 현장에서 더 난동을 피우다 체포되었는데 당시 황산 1리터를 소지하고 있었다고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폭발물 테러로 화상을 입은 사람들이 나왔고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오군은 경찰서에서도 자신의 행위를 자랑스러워하며 수갑 찬 사진을 인증샷으로 인터넷에 올리기까지 했습니다. 명백한 백색테러라는 얘기지요.

 

한국 사회의 극단적인 양극화와 역행적인 정치 상황과 맞물려 축적된 상호 간의 증오가 결국 이런 형태로 터지고 만 것입니다. 적어도 민주화 이후에는 사라졌던 백색테러가 부활했다는 것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죽여도 괜찮다고 하는 사회 해체적인 선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14년 세월호 사건이 사회 안전에 대한 근본을, 농협 인출 사태가 경제 안전에 대한 근본을 뒤흔들었다면, 이번 백색테러는 자신이 믿고 지지하는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근본을 뒤흔든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대한민국은 극단의 분기점에 서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박근혜 정부의 테러 대응방식

―테러범은 열사로 추앙받고, 피해자는 종북으로 검찰 소환당해


우리 사회에 설사 적색테러가 일어났다 한들 다르지 않습니다. 백색이든 적색이든,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해하려는 행각은 대한민국에서 단죄된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테러 없는 사회, 최소한의 사회 안정을 위한 당연한 조치겠지요.

출처 - 뉴시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상상을 초월하는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사회 안정이라는 국가의 근본을 생각해야 할 일국의 대통령이 진영 논리를 따라 가해자를 옹호하는 입장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12월 15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테러 사건을 거론하면서 콘서트가 종북 성향이라는 말만 했을 뿐 테러 행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넘겼습니다. 

 

실정법을 위반해 사회 전체에 위기를 야기할 수 있는 가해자의 범법 행위에는 눈을 감은 채 억울한 피해자를 종북몰이했으니 개인으로서는 물론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자각이 전혀 없다고 봐야겠지요. 대통령의 한마디 때문에 테러의 피해자인 신은미, 황선은 오히려 테러를 당해도 마땅한 '종북주의자'로 낙인 찍혔고, 경찰과 검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피해자 두 명을 소환하기에 이릅니다. 출국금지까지 했으니 참 가관입니다.




출처 - 시사in


폭발물 테러를 저지른 오군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일베와 우익 사이에서 열사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사회가 미쳐도 단단히 미쳐 돌아갑니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종북주의자에게는 관대하고 이를 보다 못한 청년에 대해서는 법을 집행하는 게 정상인가"라는 망언을 했습니다. 인터넷 《독립신문》의 신혜식 대표는 테러범인 학생을 위한 모금을 시작했고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엄마부대봉사단 등 때 되면 나오는 보수 단체들도 선처를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오, 애국열사 장하다. 19살 어린 의사가 빨갱이를 척결했다. 헌재 재판관보다도 더 훌륭하다." 이런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사건 당시가 2014년인지 1947년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새누리당 내에서 백색테러를 옹호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차 없이 다 제명해야 한다." “청와대에선 정윤회 건 터져 나오고 우파들은 황산 테러 옹호하고, 일부 우파님들 제발 정신 차리세요. 옹호할 걸 옹호하세요. 어떻게 폭력과 테러를 옹호합니까"라고 비판한 하태경 의원 같은 사람이 있긴 했지만요.

출처 - 헤럴드경제


종편과 언론도 미쳐 돌아가긴 마찬가지였습니다. TV조선 같은 종편은 인터넷 《독립신문》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을 보였고, 《헤럴드경제》는 폭탄 테러범에게 '용감한'이란 수식어를 붙였다가 비난이 빗발치자 부랴부랴 기사 제목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진짜 속내야 어쨌든 최소한 테러는 안 된다 폭력은 안 된다고 말하는 게 언론이 보여야 할 마땅한 모습일 텐데, 퇴행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그런 기대조차 사치인가 봅니다.



사회 안전을 위협하는 테러는 단죄된다는 엄격함을 보여야


지난 2006년 박근혜 대통령이 지원 유세 도중 얼굴에 칼을 맞은 적이 있었습니다. 살짝 베였다고는 하나 이 역시 명백한 테러 행위입니다. 당시 '커터 칼 테러'를 저지른 할머니는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계획대로 되었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줬을 폭발물 테러범에게 과연 어떤 처벌을 내릴까요?

출처 - 위키피디아


위 사진은 아사누마 이네지로 암살 사건 현장을 포착한 사진입니다. 퓰리처상을 받기도 해 유명해졌지요. 이네지로 암살 사건은 일본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대표적인 백색테러 중 하나입니다. 1960년 일본 좌익 정치인인 아사누마 이네지로가 TV 연설회 도중 극우 소년인 야마구치 오토야의 칼에 찔려 살해당해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테러범의 나이는 불과 17세였습니다. 야마구치 오토야는 소년원에서 천황폐하 만세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후 목을 매 자살했습니다. 보수로서는 불리한 상황이었는데도 예상을 깨고 다음 선거에서 우익인 자민당은 과반을 넘겨 압승합니다. 일본의 후진적 정치와 자민당의 장기 집권이 이어지고 있지요. 우리나라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왜 이리도 50년 전 일본과 겹쳐 보일까요. 2015년 새해가 밝았지만, 대한민국의 앞날이 참 암울합니다.


2014년 4월 3일은 첫 국가기념일로 치러진 제66돌 4.3희생자추념일이었습니다. 제주4.3사건으로 희생된 분들의 넋을 달래는 4.3희생자추념식은 이전까지는 자치단체에서 치렀습니다. 70년이 다 된 지금 국가기념일이 되었다는 건 다행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통합진보당 도당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4.3희생자 추념일'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한 일은 뒤늦게나마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잘못을 사죄하고 반성한다는 의미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통진당은 "오늘 진행된 제66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은 과연 국가가 봉행하는 추념식과 자치단체에서 봉행하는 위령제의 차이가 무엇인지 전혀 구분이 안가는 행사였다"며 "오히려 기존 위령제보다 못한 국가추념행사였다"고 혹평했다. 통진당은 "국가의 이름으로 봉행되는 4.3희생자추념은 분명한 반성과 더불어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분명한 다짐이 있어야 한다"며 "오늘 추념식에서 국무총리는 '제주는 이제 아픔을 말끔히 씻었다'는 말로, 알맹이 없는 4.3의 전국화와 세계화를 추진하겠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출처 - SBS

정부가 우선 정비하기로 했던 제주4.3사건 유적 19곳 가운데 11곳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여기에 6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지만 정부 지원은 2010년부터 끊겼습니다. 이제야 국가기념일로 제정되었지만 첫 추념식에 박근혜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중요한 자리에 참석하지 않고 대체 대통령이 무엇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습니다. 이날 정부대표로 참석한 정홍원 국무총리는 뜬금없이 이제 제주의 아픔이 말끔히 씻겼다는 발언으로 빈축을 샀습니다.

역사적 아픔을 아직 씻어내지 못한 제주로 3박 4일 동안 수학여행을 다녀온 학생들은 정작 이날이 무슨 날인지 알지 못합니다. 4월 3일이 무슨 날인지 아느냐고 묻자 식목일? (수학여행에서) 집에 돌아가는 날? 잘 몰라요. 라는 답변을 했습니다. 반쪽짜리 국가기념일에 젊은이들에게 점점 잊히는 제주4.3사건... 아쉬운 마음에 이번 주말에 제주4.3사건을 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하자는 의미에서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소개합니다.


<레드 헌트>, 제주도판 홀로코스트를 폭로하다

출처 – 조성봉 감독의 유튜브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 대학살은 나치나 일제에 의해서만 자행된 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남단 제주도에서 수많은 양민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미 군정 치하이던 1948년 4월 3일, 남조선노동당이 일으킨 무장봉기를 군과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제주도민 최소 3만 명이 죽음을 당한 참혹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5월 10일 남한은 단독 총선거를 앞두고 있었고, 사회적으로 민감한 때에 일어난 사건을 미 군정은 좌익 공산분자들이 일으킨 폭동으로 규정했습니다. 그 뒤로 제주4.3사건의 실체는 은폐됐습니다. 오랜 침묵의 틀을 깨고 조성봉 감독은 <레드 헌트>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대중에게 진실을 이야기했습니다.

1996년에 공개된 <레드 헌트>는 1992년 북제주군 조천읍 구좌면의 한 굴에서 11구의 시체가 발견된 사건부터 다룹니다. 조성봉 감독은 이들은 굴 밖에서 토벌대가 피운 연기 때문에 질식해서 죽었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이후 다큐멘터리는 제주4.3사건의 본질을 미 군정 보고서, 당시 신문 보도, 연구자들의 학술적 설명, 목격자 인터뷰, 다양한 자료화면을 동원해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하여 결국 다큐멘터리의 제목처럼 제주4.3사건의 진실이 빨갱이 사냥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된 민간인 학살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레드 헌트>의 앞길은 부침이 심했습니다. 1997년 이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려던 인권영화제의 서준식 집행위원장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에 의해 이 다큐멘터리가 국가의 존립, 안정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이적표현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판시가 나와, 제주4.3사건의 진실 규명과 표현의 자유를 재확인한 중요한 선례로 남게 되었습니다.

조성봉 감독은 이후로도 제주도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고 강정 해군기지 건설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다룬 다큐멘터리 <구럼비–바람이 분다>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조성봉 감독이 페이스북에 제주도와 자신의 깊은 인연을 이야기한 내용을 2013년 4월 4일 기사로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관련 기사: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반대 24] 4.3은 말한다)

<비념>, 4.3과 강정으로 반복되는 역사의 비극

출처 – 전주국제영화제 유튜브

제주시 애월읍 납읍에 살고 있는 강상희 할머니는 4.3으로 남편을 잃었습니다. 2013년 해군기지 문제로 떠들썩했던 강정마을의 시위 현장에는 '4.3의 원혼이 통곡한다' 같은 글귀가 적힌 수많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시간은 다르지만 제주4.3 사건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문제가 큰 맥락에서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주얼 아티스트인 임흥순 감독이 2년 4개월 동안 담아낸 제주의 모습, <비념>은 4.3사건부터 강정마을까지 제주도에서 현재 진행형인 슬픔을 카메라에 오롯이 담아냅니다. 제주도의 생활 모습과 풍경 곳곳을 담아내어 제주도가 아름다운 관광지임과 동시에 현대사의 비극으로 만들어진 큰 무덤임을 묵묵히 풀어냅니다. <비념>은 주장하는 영화라기보다 은유와 상징을 통해 다가가는 영화입니다. 제주도 사람이 일생을 통해 겪은 제주도의 풍경을 통해 말이지요.


<지슬>, 세계가 인정한 제주4.3사건 영화

출처 – Daum 영화

2003년 고 노무현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국가권력에 의해 대규모 희생이 이뤄졌음을 인정하고 제주도민에게 공식으로 사과한 지 10년 만에 나온 영화 <지슬>은 제주4.3사건으로 희생된 분들의 넋을 위로하는 제의적 성격의 영화입니다. 제주도 말로 감자를 뜻하는 말인 '지슬'은 제주도 출신 감독인 오멸이 제주 사람들과 함께 찍은 지역 밀착형 영화입니다. 그 때문인지 제주4.3사건이라는 비극을 다루면서도 역사성만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흑백화면 속에 대단한 영상미와 해학을 담아내고 있는 걸작입니다.

<지슬>은 제주 주민과 토벌군이라는 이분법적 대결 구도에서 벗어나 그날을 살아야만 했던 모든 사람의 모습을 하나하나 세심히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의 구성조차 제사를 연상시켜 좌·우익을 가리지 않고 제주4.3사건으로 희생된 모두의 원혼을 달래는 씻김굿이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습니다. 인류애적인 감성은 만국 공통인지 그해 1월 세계 최대의 독립영화 페스티벌인 제29회 선댄스영화제에서 한국영화로는 최초로 최고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습니다.


끝나지 않은 그날, 제주 4.3

4월 3일은 이토록 가슴 아픈 날이건만 그날의 일을 여전히 폭동으로 규정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것도 사회 중추부에 말입니다.

출처 - 노컷뉴스

제주 4.3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3일 66주년 희생자 추념식이 첫 정부 주관행사로 치러진 가운데 법원내부통신망에 4.3을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으로 규정한 글이 올라와 파문이 일고 있다. 3일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법원내부통신망인 코트넷에는 '폭동을 항쟁이라 부르는 기막히고 비통한 현실'이라는 제목이 글이 게시됐다.


좌익이란 소릴 들은 한 명의 대통령이 국가를 대표해 제주4.3사건의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공식 사과한 후, 우익이란 소릴 듣는 한 명의 대통령의 재임 기간에 4.3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음에도, 사람들의 인식은 그리 나아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주도의 4월 3일이 더 이상 슬프지 않을 날은 언제쯤 올까요? 답답한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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