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 장의 사진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람들 앞에 무릎 꿇고 읍소하는 장애인 학생 부모들의 사진이었습니다. 서울 강서구 옛 공진초등학교 폐교부지에 설립 예정이던 장애아동을 위한 특수학교(가칭 서진학교)가 들어서는 것에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장애학생들의 부모들이 학교 설립을 허락해달라며 절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일부 주민들은 같이 무릎을 꿇었지만 다른 주민들은 장애학생들의 읍소에도 쇼하는 것이라며 마음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장애학생의 부모들이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읍소한 이유는 특수학교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교육부에 따르면 특수교육 대상자는 10년 사이에 2만 5412명으로 40퍼센트 넘게 늘었는데, 같은 기간 전국 특수학교는 143개에서 170개로 18.9퍼센트 느는 데 그쳤습니다. 특수학교 대상자는 2만 명이 늘었는데 특수학교 정원은 2000명으로 겨우 10분의 1 수준만 늘어난 겁니다.


출처 - 세계일보


지역주민들이 동네에 특수학교가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는 장애인 시설이 생기면 집값, 땅값이 떨어진다며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반발로 특수학교 신설이 좌절되면서 서울의 경우 52개 자치구 중 특수학교가 한 곳도 없는 지역이 8곳이나 됩니다. 특수학교가 없는 지역의 장애학생들은 다른 지역 특수학교로 다닐 수밖에 없는데, 이럴 경우 통학 거리와 시간이 늘어납니다. 비장애인 아이라도 등교시키는 데 애를 먹기 마련인데, 장애인 아이를 다른 지역의 학교에 보내려면 아이와 부모 모두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로 인한 스트레스 역시 비장애인 아이와 부모보다 훨씬 더 심하죠.

 

출처 - 경향신문

 

이렇게라도 특수학교에 등교라도 시킬 수 있는 가정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라는 게 헬조선의 현실입니다. 서울의 경우 특수학교 설립이 무산되는 경우가 너무 많아 대상자의 3분의 1도 안 되는 장애아동만이 특수학교에 다닐 수 있는 형편입니다. 한 학교에 장애아동들이 집중되는 과밀화로 벌어지는 학교 내의 문제까지 포함하면 특수학교와 관련된 문제는 정말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출처 - 경향신문


지역주민들이 혐오시설로 생각하는 특수학교가 세워지면 과연 지역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지고 집값이 내려갈까요? 조사 결과에 의하면 특수학교 설립과 집값은 별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부산대 연구팀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특수학교 설립과 23개 특수학교 지역 집값을 분석한 결과 16개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지역에 특수학교가 들어와 오히려 긍정적 영향이 나타난 곳이 2개교가 있었습니다. 한편 부정적 영향을 미친 학교는 7개교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조사한 지역의 70퍼센트에 해당하는 특수학교가 집값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으니, 지역주민들의 걱정은 지나친 면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YTN


중요한 점은 특수학교가 지역 내에 들어오느냐는 것이 아니라 특수학교와 지역사회가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가입니다. 마포구에 자리한 한국우진학교는 지역주민들과 5년여의 갈등 끝에 설립되었는데요, 오랜 갈등 끝에 얻은 답은 지역사회와 더불어 사는 것이었습니다. 학교 안에 있는 수영장 등 편의시설을 주민들에게도 개방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만든 겁니다. 개교 17년째를 맞은 지금 지역주민과 학부모 모두 만족도가 높다고 합니다. 5년여의 갈등이 무색하게 주변의 집값도 오히려 올랐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지난 13일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특수학교 설립은 장애학생들의 교육권 확보를 위해 양보할 수 없는 선택이며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면서 향후 5년간 특수학교 18개를 신설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조희연 서울특별시 교육감도 특수학교는 헌법적 권리로 양보할 수 없으며 설립이 교육청의 책무라고 못 박았습니다. 천부인권까지 들먹일 필요 없이 민주주의 공화국인 우리나라는 헌법 아래 모든 사람이 평등하며 동등한 권리가 있습니다. 지역주민이라 하더라도 이를 막을 수는 없는 겁니다. 앞으로 장애학생들을 위해 그 부모들이 무릎을 꿇는 일이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이해의 폭을 넓히고 같이 힘을 모아야겠습니다.

 

출처 – 네이버 웹툰


남녀노소 쉽게 읽을 수 있는 웹툰이 때론 우리 생각의 사각지대를 메워주곤 합니다. 네이버의 수/토 웹툰인 〈나는 귀머거리다〉(라일라)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청각장애인인 작가 라일라는 어린 시절부터 대학생활에 이르기까지 귀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비장애인과 다르게 느낄 수 있었던 면면을 재밌게 표현하여 공감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수어'에 대해 연재하고 있는데요, 수어에 외국어는 물론 사투리, 나아가 에스페란토 같은 국제수화가 따로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비장애인들이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 이런 시도가 비장애인들로 하여금 장애인의 삶을 생각하고 배려하게 해주는 작은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 스타벅스 유튜브


생활 속에서 장애인을 배려하는 서비스도 조금씩 확산하는 추세입니다. 식사 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찾아가는 스타벅스 매장에는 '사이렌 오더'라는 게 있습니다. 스타벅스의 앱 서비스인데요, 스타벅스 앱에서 커피를 주문하면 접수, 음료 제조, 그리고 픽업까지 모두 때에 맞춰 알려주기 때문에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비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이 모든 과정을 일일이 다 알려주고 볼 필요가 있나 싶겠지만, 청각장애인에게는 정말 편리한 서비스입니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자기 차례가 언제 돌아올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사이렌 오더를 이용하면 픽업대를 보면서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고, 매장에서 무선호출기를 받는 수고로움도 없어집니다. 청각장애인의 일상에서 보면 우리가 배려해야 할 부분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출처 - 국립국어원



국립국어원 한국수어사전 : http://sldict.korean.go.kr



국립국어원은 장애인의 날인 오늘(4월 20일)부터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온라인 한국수어사전에서 손가락 모양으로 단어 뜻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수형 검색 기능을 제공한다고 밝혔습니다. 여태까지는 한글로만 수어를 찾을 수 있어 실제 이용자인 청각장애인들이 수어로 사전을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컸습니다. 이런 미진한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국립국어원은 의견 보내기 기능을 추가했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 조선일보


우리 사회가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간극을 조금씩 좁혀가곤 있지만 여러모로 부족한 현실입니다. 특히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사회적 편견이 문제입니다. 

 

사이렌 오더로 호평을 받은 스타벅스는 2007년부터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손잡고 체계적인 장애인 바리스타를 양성해 현재 190여 명의 장애인이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청각장애인이 물을 떠주자 옆의 비장애인에게 아이가 마실 거니 당신이 다시 떠달라며 장애인을 마치 전염병자 취급을 하거나, 술 취한 아저씨가 자기 말을 무시한다며 청각장애인 바리스타에게 뜨거운 커피잔을 던지는 등 안하무인의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하죠. 이런 어이없는 사례를 볼 때마다 우리 사회의 인권감수성이 너무 낮은 것이 아닌가 싶어 안타깝습니다.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장애인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장애인등급제 폐지를 공약으로 발표한 대선 후보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 1명에 불과합니다. 장애인등급제는 장애인을 소득과 중증, 경증 등 의학적 판단에 따라 1~6등급으로 나눠 복지 서비스를 차등지원하는 제도입니다. 중증장애인이어도 인프라가 좋을 경우 공공서비스가 필요 없을 수도 있고 경증장애인이라도 처한 환경에 따라 더 많은 서비스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필요 없는 곳에 과잉 서비스가 되는 곳도 있고 절실히 필요한데 등급 때문에 지원을 못 받는 경우도 생깁니다. 

 

선진국은 장애 서비스를 우리나라 같이 의학적 등급이 아닌 개인의 필요와 욕구에 따라 분류하여 시행합니다. 필요한 곳에 적합한 복지를 제공하는 세심한 서비스가 우리 사회에도 필요합니다. 박근혜도 대통령 후보 시절 장애등급제 폐지를 약속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국정을 농단하며 기업들로부터는 돈을 챙기면서도 예산 핑계를 대며 장애인등급제 폐지 공약을 공수표를 날려버렸죠.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려면 이번 대선에서 각 후보들의 복지 관련 공약을 꼼꼼히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또한 후보들이 자신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인지, 각자의 평소 인권감수성이 어떠한지까지 아울러 따져보시길 바랍니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애인이 불편함 없이 살 수 있는 사회, 그것이 진정한 국격의 기준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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