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사이트 폐쇄를 요청하는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사람들의 열화와 같은 참여로 한 달간 23만 명이 넘는 사람이 이 청원에 동의했습니다.


출처 – 청와대 청원 게시판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사이트 폐쇄를 요청합니다 :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113699

 

그동안 알려진 일베의 해악은 노골적인 지역감정 조장과 여성 혐오, 노무현 전 대통령 같은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모욕, 가짜뉴스 양산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생각비행도 일베의 행태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출처 – 일간베스트 저장소

인터넷 사이트 일베, 어떻게 봐야 하나? : http://ideas0419.com/439


청와대의 답변 기준인 20만 명을 넘겼기에 지난 3월 23일 청와대 Live를 통한 답변이 있었습니다. 정혜승 뉴미디어 비서관과 김형연 법무비서관이 나와서 답변했는데요, 김형연 법무비서관의 말에 의하면 정부가 일베를 폐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출처 – 청와대 유튜브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음란물이나 사행성 정보를 비롯해 비방 목적의 명예훼손 등 불법 정보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후 방송통신위원회가 해당 정보의 처리 거부, 정지 또는 제한을 명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개별 게시물 단위로 판단하지만 개별 정보의 집합체인 웹사이트 자체를 불법정보로 판단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습니다. 헌법재판소에서 김일성 찬양 글이 게시된 한총련 사이트를 폐쇄한 조치가 정당하냐는 문제 제기에 대해 계속 지워도 대량으로 반복해 게시하는 현실에서 폐쇄 말고 적당한 대안이 없다며 합헌이 다수 의견이었죠. 이에 견주어 보자면 일베도 폐쇄할 수 있다는 것이 법리적 판단입니다.


보통 불법 정보가 70퍼센트에 달하면 사이트를 폐쇄하거나 접속을 차단하는데 음란 사이트인 소라넷이나 불법 도박 사이트들이 여기 해당했습니다. 일베가 저지른 성적 모욕, 폭력 위협, 명예 훼손, 성범죄 모의와 인증 등 숱한 사회적 물의를 감안할 때 사이트 폐쇄 기준에 이르렀는지 고려해봐야 합니다. 지난 5년간 제재 건수가 가장 많은 사이트가 일베였음은 물론 해마다 1위 제재 대상도 일베입니다.


출처 – MBC 유튜브


일베가 문제가 많은 건 인정하지만 사이트 자체를 폐쇄하는 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존재합니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중요한 국정 철학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헌법이 규정하듯이 모든 국민은 표현의 자유를 갖는 동시에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됩니다. 일베의 극우적 성향이 문제라기보다는 노골적으로 패륜적이고 여성이나 노인, 동성애자 등 소수자 혐오가 매우 심각한 측면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죠. 김치녀, 맘충, 틀딱충, 똥꼬충 등 약자를 비하하는 용어들도 일베에서 퍼진 추한 표현이었습니다.

 

출처 - 오마이TV


게다가 외국 사례를 봐도 이런 혐오 사이트들이 표현에 그치지 않고 직접적인 행동을 선동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개인 단위의 성적 모욕, 폭력 위협, 성범죄 모의와 인증 등도 셀 수 없고, 단식 중인 세월호 유족 앞에서 폭식집회라는 어이없는 짓을 벌이는 일베의 해악을 똑똑히 본 바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나치와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유럽은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면서도 소수자에 대한 폭압과 차별, 혐오에 대해서는 국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단죄하고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매우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는 미국도 정부가 나서지 않을 뿐 민간의 자율적 규제는 엄격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각종 혐오와 차별이 비등해지고 있지만 차별과 혐오에 대한 법 조항이 구체적으로 없는 형편입니다. 이 때문에 유엔을 비롯해 국제사회에서 관련 제도를 만들고 정비하라는 권고를 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일베 폐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015년에 맞은 제35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은 박근혜 정부에 의한 분열 그 자체였습니다. 보훈처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여전히 거부했고, 마땅히 참석해야 할 박근혜 대통령은 기념식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참석한 여야 대표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가운데 정부 대표로 온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침묵했습니다. 한편 광주를 찾은 여당 대표 김무성은 물벼락을 맞았으며 야당 대표 문재인은 야유와 비난을 받았습니다. 군부 독재에 맞서 분연히 일어선 민주 시민의 정의로운 항쟁이 정부의 조직적인 방해와 여야 정치권의 무능과 혼탁으로 자꾸 그 정신이 퇴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비행은 5.18 민중항쟁의 의미를 잊지 않기 위해 여러 차례 5.18에 대해 언급한 바 있습니다.

 

출처 – EBSi


다시 기억해야 할 5.18 광주민주화운동, 신군부의 독재와 언론·방송의 굴종사

http://ideas0419.com/145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념하며 표현의 자유를 다시 돌아보다

http://ideas0419.com/354

 

군사 독재 정권의 후계자와 그 조력자들로 이루어진 현 정부의 조직적인 방해나 여당의 기회주의와 야당의 무능은 질리도록 보아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일베를 중심으로 급격히 증가한 5.18 희화화와 모욕은 다른 의미에서 대한민국 사회의 근간을 흔들고 있습니다. 일베가 게시글이나 이미지 합성으로 5.18의 역사적 의미를 왜곡하고 희생자와 유족을 모욕하는 일은 이미 악명 높습니다. 하지만 일베의 주장은 명백히 사실이 아닙니다. 당시 외신만 살펴봐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튜브


그런데도 한 일베 회원은 5.18 희생자의 관을 '홍어 택배'에 빗대어 표현하는 반인륜적 명예훼손을 저질러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받은 일도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생각비행은 우리 사회에 파문을 일으킨 일베를 어떻게 봐야 할지 분석한 적도 있습니다.

 

인터넷 사이트 일베, 어떻게 봐야 하나? : http://ideas0419.com/439

 

우리 사회에서 일베의 활동은 도가 지나쳐 점입가경입니다. 바로 어제 2015년 5월 18일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왔습니다. 일베가 제35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행사장에도 침투해 있었습니다. 일베의 한 회원은 자원활동가 복장을 하고 자원활동가 표찰을 든 채 이른바 일베 손동작을 인증했습니다.

 


출처 - 아시아경제



이는 독일로 치자면 종전기념일에 아우슈비츠 수용소 안에서 치러지는 유대인 학살 추모 행사장에서 자원봉사 복장을 한 채 '88' 혹은 '18'을 인증한 셈입니다. 욕이냐고요? 아닙니다. 88과 18은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극우인 네오 나치의 은어입니다. 생각비행이 최근에 출간한 책, 《알고나 까자 ―독일 사회를 통해 본 대한민국》을 통해 이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암호는 '88'이다. '하일 히틀러Heil Hitler'의 앞 글자인 HH에서 H가 알파벳 순서상 여덟 번째이기 때문에 88은 곧 '하일 히틀러'가 되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18'도 있는데, 앞의 이유와 마찬가지로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의 A와 H를 숫자로 표현한 것이다. 또 다른 유명한 암호로 '14단어(14Words)'가 있다. 이는 “We must secure the existence of our people and a future for white children(우리는 백인 민족의 존립과 백인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이라는 문장의 단어 수를 의미한다. 또 RAHOWA라고 RAcial HOly WAr(인종적 성전)의 앞 글자를 딴 단어도 있다.

 



《알고나 까자 ―독일 사회를 통해 본 대한민국》 (김동석 | 생각비행) 21쪽  05 네오나치의 암호

 

전후 청산과 사죄의 모범이 되는 나라이자 이제 유럽의 리더로 우뚝 선 독일. 하지만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는 네오나치. 독일과 네오나치의 사정을 통해 우리나라와 일베 등 극우의 관계를 엿보는 일은 교훈이 되지 않을까요?


《알고나 까자》의 저자는 네오나치가 눈에 띄게 폭력적으로 대두하기 시작한 시기를, 독일이 통일되고 경제적 불균형이 심화되기 시작한 때로 보고 있습니다.

 

이들의 지역 기반은 구동독 지역인데, 독일 통일 이후 폭력이 심화되었다는 이야기는 이들의 움직임이 통일 이후 불어닥친 경제적 불균형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동독인은 그들의 문제를 내부에서 찾아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소수의 네오나치들은 현실을 직시하기보다 2차 대전 때 방식처럼 '남의 탓', 즉 외국인과 사회적 소수자 혹은 좌파 정치가들에게 화를 풀어버리는 얄팍한 방식을 택했다.

이들이 분노를 해소하는 방식은 군중 심리에 의거해 작동하는 것이 분명히 보인다. 네오나치들은 서로 모여서 자신들의 사상에 대한 복종심을 강화한다. 이때 범죄자는 자신이 매우 칭송받을 만한 행동을 했다고 확신하는데, 그 확신은 동료들의 지지를 받을수록 더욱 자연스러워진다. 이들의 행위를 법적으로 처벌하시는 쉬우나 심리적으로는 그들의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설득하기는 굉장히 힘들다. 이 부분이 정말 어렵고도 가장 중요한 문제다.

여기에 어설픈 사상가 한둘이 가세해 자기합리화에 걸맞은 학문적 용어들을 보태주면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당위성에 더해 자부심까지 갖게 되며, 사상이 종교로 변해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순교로 받아들이는 상황까지 오게 된다.

 

《알고나 까자 ―독일 사회를 통해 본 대한민국》 (김동석 | 생각비행) 16쪽  03. 네오나치의 규모


IMF와 외환위기로 인한 경제 붕괴와 양극화, 남의 탓을 하기 위해 찾아낸 상대적 약자인 여성에 대한 혐오, 민주화 좌파 세력에 대한 증오와 테러, 군중 심리와 또래 집단끼리의 관계에 집착하는 10대를 중심으로 한 일베가 인기를 끄는 이유를 네오나치의 성립에 기대어서 보면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여기에 극우 언론과 극우 논객들의 부추김까지, 극우파의 대두는 서로 통하는 면이 있나 봅니다.

 

출처 - 한겨레


그렇다면 독일은 이 네오나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요? 우선 독일은 정부 차원에서 강력한 규제를 합니다. 2차 대전 이후 독일은 민족주의 혹은 극우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나치 깃발인 하켄 크로이츠가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독일 국기가 집밖에 걸려 있어도 경찰이 찾아올 정도였다고 하죠. 인종차별을 처벌할 법적 근거도 있기 때문에 조치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점점 더 교묘해지는 극우세력을 억누를 수 있을까요? 정말 제목 그대로 알고나 깝시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2012년 튀링엔 지방에서 네오나치가 일으킨 테러에 희생당한 이들을 기리는 추모식에 참석하여 "우리나라에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부끄러운 줄 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부끄럽다면 이를 고치려는 노력을 하면 된다. 물론 그 노력은 힘들다. 그리고 단기간에 되는 것도 아니다.



독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문구 중의 하나가 "Kein Ort Fur Neonazis(네오나치를 위한 자리는 없다)"이다. 버스에도 지하철에도 길가에도 흔하게 붙어 있다. 지역 커뮤니티 형식으로 작은 조직들이 네오나치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는 것이다. 모여서 시위를 하거나 홍보를 하기도 한다.

그 외에 네오나치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지원해주는 엑시트 도이칠란트Exit Deutschland라는 단체도 있다. 극우 그룹에서 나오려다가 신체적 위협이나 협박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주로 그런 일을 해결해준다.


《알고나 까자 ―독일 사회를 통해 본 대한민국》 28쪽  08. 극우와 작별하는 법


극우가 잘못된 것이며 이 사회에 발붙일 수 없음을 시민사회 차원에서 공고히 하고 극우 세력에서 빠져 나오고 싶은 사람들에겐 협력을 아끼지 않는 성숙한 의식이 독일의 대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엑시트 도이칠란트의 '오퍼레이션 트로얀 티셔츠 운동'처럼 기발한 아이디어로 이들에게 손을 내밀기도 했습니다.

 

2011년 8월 네오나치들이 주최한 음악 축제 현장에서 엑시트 도이칠란트는 해골이 그려진 티셔츠를 네오나치들에게 무료로 나눠줬다. 해골 프린트에는 과격한 네오나치 찬양 문구와 나치 문양이 들어가 있었다. 극우파들은 신나서 그 티셔츠를 입고 음악 축제를 즐겼다. 그리고 네오나치들은 각자 자기 집에 돌아와 그 땀에 절은 티셔츠를 빨았다. 그랬더니 티셔츠 위에 새겨져 있던 해골 프린트와 네오나치 찬양 문구들은 깨끗이 씻겨 내려가고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문구가 드러났다.


“네 티셔츠가 한 것을 너도 할 수 있어. 우리가 도와줄게 – 엑시트 도이칠란트”


《알고나 까자 ―독일 사회를 통해 본 대한민국》29~30쪽

 

결국 네오나치나 일베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대부분도 사회적 약자이기에 오히려 다른 약자들을 공격하는 것으로 잠시나마 강자가 된 기분을 느껴보는 가련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입니다.

 

극우 성향의 단체나 커뮤니티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 독일, 미국, 세계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들이 절대 사회적 강자가 아니면서 강자의 방식을 빌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사회적 강자들이 동조해주면 정말로 히틀러가 다시 세상에 나오는 것이지만 다행히 현대 사회는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이들의 행동은 자신들이 현재 소수자로서 혹은 사회적 약자로서 핍박받는다는 사실을 이상한 방식으로 인정하는 것일 뿐이다. 그들도 인정받고 잘하고 싶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보다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많고, 세상은 나를 알아주지 않기에 그것이 불만인 것이다. 과도한 경쟁을 불러오는 자본주의에도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알고나 까자 ― 독일 사회를 통해 본 대한민국》 30쪽  08. 극우와 작별하는 법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독일 사회와 달리, 사회적 강자들이 은근히 일베와 같은 무리를 부추기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더 위태로운 상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는 한층 더 씁쓸하고 맥빠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이었습니다. E. H. 카는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로 파악했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잊지 말자고 한목소리로 외쳤던 세월호 참사 1주기에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시간이 흘러도 잊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과 빨리 잊고 자신의 본분을 다하자고 외치는 사람들은 분명히 다릅니다. 과거 2차 대전 당시 많은 이들을 학살한 나치의 수뇌부를 단죄하기 위해 아직도 찾고 있는 독일과, 과거의 치부를 미화하려는 몇몇 잘못된 사람들이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한국, 딱 그만큼이 두 사회의 차이점일지 모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