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면 전승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던 커제는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바둑 대결에서 3연패를 당하고 끝내 눈물을 흘렸습니다. 바둑 세계 랭킹 1위였던 중국의 커제가 인공지능에 패하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이러다가 인류사에서 인공지능에게 승리한 마지막 인간이 이세돌이 되는 거 아니냐는 얘기까지 돌았습니다.



출처 - 아주경제


커제의 완패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지금까지 인간 바둑 기사들이 쌓은 전체 기보가 16만여 개에 머무르는 반면 알파고는 이번 커제와의 대국에 임하면서 일부러 인간 기보 데이터를 빼고 인공지능끼리의 대국으로 3000만 개 이상의 기보를 축적한 상태였습니다. 짧은 시간에 알파고가 압도적인 성과를 올린 것은 인간의 지력과 비교 자체를 불허하는 자기 학습 덕분입니다. 커제에게 완승한 인공지능의 압도적인 기량을 보면서 이젠 정말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서막이 올랐다는 생각을 하는 분이 많으실 겁니다.


물론 인공지능은 특정한 분야에 국한해서만 그 성능을 선보이기 시작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그 발전 속도는 무섭죠. 레이 커즈와일이 2045년 기술적 특이점이 오면 인공지능은 더 이상 인간이 감히 도달할 수 없는 차원으로 도약하리라 예측했는데 벌써 수긍할 만한 일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인간이 쌓아놓은 데이터를 토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때때로 섬뜩한 일도 벌어집니다. 인공지능이 인간들의 편견까지 학습하기 때문입니다.



출처 - 서울신문


글로브(GloVe)라는 유명한 AI 알고리즘을 활용해 연구를 진행한 미국 프린스턴 대학 연구팀은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인공지능이 인간 언어를 학습하는 동안 사회적 편견까지 덩달아 학습할 수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글로브는 인터넷상에 퍼져 있는 텍스트들을 분석하고 인간 언어를 이해하는 딥러닝 AI 알고리즘입니다. 이 알고리즘은 인터넷에 올라온 글의 통계적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인간의 중간 개입 없이 텍스트를 스스로 학습하고 각 단어 사이의 의미적 연결성을 스스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출처 - 한겨레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생성해놓은 텍스트를 기반으로 학습한 이 인공지능이 인종차별이라는 인간의 편견까지 학습하기 시작한 겁니다. 예를 들어 유쾌함(pleasant), 불쾌함(unpleasant)의 두 그룹으로 단어를 분류하는 실험에서 꽃은 유쾌함으로, 벌레는 불쾌함으로 분류했습니다. 이런 실험을 인간에게까지 연장해보니 흔히 백인 이름으로 쓰이는 에밀리나 맷은 유쾌함으로 분류했는데 흑인에게 주로 쓰이는 이름인 에보니, 자말은 불쾌함으로 분류했다고 합니다. 이는 인공지능이 인간 언어를 학습하면서 부정적인 편견까지 그대로 학습했음을 방증합니다.



출처 - 로봇뉴스


사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닙니다. 이보다 먼저 마이크로소프트의 트위터 AI 테이(Tay)는 인터넷에 확산된 인간 언어 습관을 학습하고 이를 공유하는 인공지능이 있었습니다. 테이가 막상 작동을 시작하자 사용자들의 질문에 백인우월주의, 흑인 비하, 대량학살 옹호 등을 일삼아 마이크로소프트가 황급히 서비스 자체를 종료해버린 적이 있습니다.



출처 - 위키피디아


인간의 언어를 중심으로 한 문제는 인공지능 연구에서 큰 화두 중 하나입니다. 2017년 현재 전 세계 295가지 언어로 총 4400만 건 이상의 기사가 공개된 위키피디아에도 그런 문제가 있었습니다. 위키피디아는 기본적으로 그 기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직접 작성과 수정을 하고 있지만, 방대한 규모 때문에 기사 편집 작업의 일부를 자동화된 소프트웨어, 이른바 봇(Bot)이 담당하게 하여 효율을 높이고 있습니다. 양적으로 봇은 인간의 0.1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위키피디아 전체 편집 작업의 15퍼센트 정도를 담당할 정도로 뛰어난 작업 효율을 자랑합니다.


그런데 옥스퍼드 대학교가 2001년부터 2010년까지의 위키피디아 편집 이력을 분석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봇끼리 서로의 편집 작업을 삭제하는 싸움을 벌이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사람이라면 자기가 작성한 글이 반복해서 삭제되고 반려된다면 그 이유를 알아보고 토의를 통해 타당한 결론을 도출했겠지만, 당시 봇에는 이런 기능이 없었습니다. 이론적으로 봇끼리는 편집을 두고 싸움이 일어나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연구 결과 이 싸움은 여러 가지 언어를 관통하는 주제에 대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한 기사의 특정 단어에 대해 링크가 있다면 봇끼리 영문 정보 링크가 정답이다, 일문 정보 링크가 정답이다를 두고 싸운 겁니다. 언어의 차이가 맹점이 되어 예상치 못한 사태가 일어난 것이죠. 다행히 이런 현상은 2013년 다른 언어 간 링크를 보조하는 위키데이터가 세워진 후 사라졌다고 합니다.



출처 - 이데일리


옥스퍼드 대학교의 연구 결과 언어에 따른 봇의 행동 경향 차이도 드러났습니다. 이는 각각의 봇이나 봇이 동작하는 환경의 이면에 인간 설계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입니다. 인공물인 인공지능이 인간 문화를 체현하고 있다는 것이죠. 인류 역사 속에 나타나는 신화를 보면 늘 인간은 조물주인 신을 닮아가려고 합니다. 인공지능이 자신의 조물주인 인간을 닮아가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인공지능 기술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일자리가 사라지지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실제로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사라질 일자리에 대한 다양한 분석 자료가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감소하는 일자리를 걱정하여 연대해야 할 대상을 경쟁자로 생각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기존 일자리를 다소 감소시킬 수 있겠으나, 그와 반대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여지도 함께 존재합니다.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공포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인공지능 같은 유행에 함몰되어 기계화 기술의 등장으로 우리의 고용 형태가 악화되고 있다는, 하청사회의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존의 일자리 파이가 줄고 그 줄어든 파이를 차지하기 위해 '을들'은 서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결국 문제는 개인이 해결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는 세력이 우리 사회의 '갑들'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상세한 내용은 생각비행이 펴낸 책, 《하청사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삶을 위협할까 걱정하기 이전에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과 기업의 문제를 더 근본적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앞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편견을 학습했다는 사실을 통해서 우리가 성찰해야 할 대목은 인공지능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문화 속에 있는 차별 혹은 추악한 욕망에 대한 경계가 아닐까 합니다.

 

'갑'을 더 부자로 만들어주는 기술을 만들지, '을'을 자유롭고 풍요하게 만들어주는 기술을 만들지는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의 문제입니다. 우리 속에 내재한 편견을 깨고 화합하는 세상을 위해 노력한다면 인공지능에 의해 내 일자리가 사라질 것을 고민하는 일은 줄어들 겁니다. 인공지능 같은 신기술에 대한 걱정보다 우리에게 시급한 일은 하청사회를 살아가는 '을들'의 단단한 연대가 아닐까 합니다. 인공지능 기술이 지속가능한 갑질의 조건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2016년을 마무리하며 크리에이티브 시각디자인 집단인 버틀러 잉크(Beutler Ink)에서 한 해 동안 벌어진 전 세계 사건, 사고를 한 장의 그림에 담았습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이미 보신 분들도 계실 텐데요, 이 그림은 16세기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명화인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을 패러디하여 제작된 것입니다. 그림 안에는 탐욕스러운 트럼프 당선부터 카스트로, 데이비드 보위, 프린스 등 우리 곁을 떠난 명사들에 대한 추모도 담겨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과연 어떻게 표현되었을까요? 삼성 갤럭시노트7 폭발 사건이 조그맣게 실려 있을 뿐입니다. (그림에 노란색 상자로 표시해두었으니 그림을 클릭해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림 그리는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세계인을 깜짝 놀라게 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장면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군요.  

 

출처 - Beutler Ink.com


2016년은 우리나라나 전 세계적으로 정말 '격동의 해'라는 말이 어울리는 해였습니다. 훗날 역사가들에겐 흥미진진할 장면일지 모르겠으나 '지금'을 사는 우리에겐 더없이 고된 한 해였죠. 굵직한 사건만 훑어봐도 이렇습니다.

 

 1월 북한 4차 핵실험

 2월 개성공단 폐쇄

 3월 이세돌 vs 알파고 대국

 4월 총선으로 16년 만에 여소야대 및 3당 체제 형성

 5월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사건

 6월 브렉시트

 7월 영남권 진도 5 규모 지진

 8월 브라질 대통령 탄핵 및 갤럭시노트7 폭발 사건

 9월 이화여대 정유라 특혜 의혹

10월 최순실 국정농단 / JTBC 태블릿 PC 특종

11월 카스트로 사망 /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12월 박근혜 대통령 퇴진 100만 촛불집회 / 탄핵 가결 / 송박영신


이미 일어난 일들이긴 합니다만 정치, 사회, 경제적인 이슈부터 자연재해와 세계적인 사건에 이르기까지 이 많은 일이 대체 어떻게 한 해 동안 다 일어날 수 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훗날 2016년 역사를 공부해야 할 아이들이 이 시기를 과연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집니다.


출처 - 유튜브

 


이 많은 사건, 사고 속에서 우리가 이뤄낸 것 역시 작지 않습니다. 국민의 힘으로 국회를 움직여 대통령 탄핵 가결을 이끌어낸 일은 하나의 쾌거이자 세계인에게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영국 BBC는 100만 명 이상이 모인 대규모 시위를 평화롭게 진행한 대한민국 시민의 힘에 놀라워했습니다. 폭력으로 권력을 뒤집어엎는 피의 혁명이 아니라 평화와 비폭력의 방법으로 국민이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그 대리자인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뜻을 받들게 하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교과서와도 같은 모습을 거시적으로 실현해냈기 때문입니다.


출처 - JTBC


이 때문일까요? 2016년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는 '군주민수(君舟民水)'였습니다. 《교수신문》은 전국의 교수 611명을 대상으로 지난 20일부터 22일까지 이메일로 설문조사를 진행해 2016년 한 해를 규정할 사자성어를 뽑았다고 밝혔는데요, '군주민수'란 《순자》의 왕제 편에 나오는 말로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君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 君以此思危 則危將焉而不至矣)."는 뜻입니다.

 

이 사자성어를 추천한 육영수 중앙대 역사학 교수는 좀 더 전복적인 추천 사유를 덧붙였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군주가 배고 백성은 물이란 비유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개념이라는 거죠. 유가사상에 입각한 전국시대의 지식인인 순자가 지배자에게 민본주의를 훈수하는 제왕학에서 파생됐기 때문입니다. 민주공화국에서는 더 이상 무조건 존경받아야 하는 군주도 없고 그 자리에 그냥 가만히 있는 착하고 어린 백성도 없으니 이 사자성어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번역해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민주공화국에서 권력자는 국민의 힘을 대리하는 선출직 공무원일 뿐임을 잊어선 안 될 이유입니다.



이 밖에도 '역천자망(逆天者亡)' '노적성해(露積成海)' '빙공영사(憑公營私)' '인중승천(人衆勝天)' 등 민주주의 원칙과 재권주민의 의미를 밝히고 공적인 일을 빙자해 사익을 챙긴 이들에 대한 비판이 어린 사자성어가 후보에 올랐다고 합니다.

 

출처 - 뉴시스

 

2016년 12월 31일 서울 광화문을 비롯한 도심에 시민 110만 명이 운집해 '송박영신' 촛불집회를 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 박근혜 정권이 물러나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길 바란다는 염원이 10차 촛불집회까지 누적인원 1000만 명의 시민이 촛불을 든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출처 - YTN

 

2017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2017년은 최순실-박근혜, 그리고 그 부역자들을 엄벌에 처하고 세월호를 비롯한 숱한 의혹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생각비행 독자 여러분의 행복을 빕니다. 저희도 사회에 필요한 책을 펴내면서 힘차게 날아오르겠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수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 사이에 이뤄진 세기의 대결이 1승 4패로 막을 내렸습니다. 마치 월드컵을 보는 듯한 기분으로 인간 대표인 이세돌을 응원하신 분이 많으셨을 줄 압니다. 호언장담하던 이세돌의 예상과 달리 알파고가 4승을 올린 결과에 대해 '인공지능이 여기까지 성큼 다가왔구나' 하고 놀라신 분들도 계실 테고, 바둑을 둔다는 것의 의미와 그 아름다움을 살린 인간 이세돌의 1승에 감동하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아무튼 세기의 대결에 쏠린 관심을 배경으로 인공지능이 인간 사회에 끼치게 될 영향력에 대한 담론과 기사도 부쩍 많아졌습니다.


출처 - 허핑턴포스트


박근혜 정권은 창조경제란 이름으로 이번엔 인공지능에 숟가락을 얹었습니다. 이른바 '한국형' 알파고를 만든다며 5년간 3조 5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겁니다.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는 우선 올해 300억 원을 투입해 지능정보기술 연구소를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SK텔레콤, KT, 네이버 등과 함께 설립한다고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5일 국무회의에서 인공지능 중심의 4차 산업혁명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현상이라며 인공지능을 자신이 직접 챙기겠다고까지 언급했습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챙긴다고 '한국형' 알파고를 만들 수 있을까요?



벌여놓고 수습 안 하는 '한국형' 타령은 인제 그만

 

미래부의 인공지능 사업 육성 발표에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았습니다. 당연합니다. 지난 이명박 정권은 강물에 국민의 혈세를 흘려보내더니 이번 정부의 눈먼 돈은 인공지능이냐는 성토입니다. 기초과학을 무시하는 한국의 풍토와 이미 벌어진 선진국과의 격차 등을 놓고 볼 때 한국형 알파고는 총선을 의식한 박근혜 정권의 냄비 정책일 뿐이니까요. 한마디로 진정성이 없습니다. 과학 분야는 하나의 연구 과업을 끈기 있게 기다려 결과가 쌓여야 발전이 있습니다. 정치권의 포퓰리즘 정책에 따라 단기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예산 집행으로 무슨 발전을 볼 수 있겠습니까? 실제로 정부가 주도해 '한국형 ○○'를 만들겠다고 했던 것 중에 제대로 진행되고 있거나 결과를 낸 것이 있습니까?

 

출처 - 경향신문


2004년 마이크로소프트(MS)의 영향력을 줄이고 공개 소프트웨어 기반의 안정적 프로그램 개발을 지원하겠다는 취지로 '한국형 리눅스'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부요(BOOYO)'를 개발했습니다. 제대로 된 리눅스라면 공개하는 게 맞습니다. 카피레프트를 기반으로 하는 리눅스 중에 성능 좋은 게 널렸죠. 하지만 현재 부요를 쓰는 사람은 전무합니다.

 

이명박 정부는 2010년 세계 4대 곡물 유통기업인 카길처럼 안정적 곡물 확보를 위해 '한국형 카길' 사업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곡물 유통망 확보조차 못 하고 2014년에 사업을 접었습니다. 남은 건 사진 박은 공직자들과 눈먼 돈에 달려든 장사꾼들뿐입니다.

 

2011년 지식경제부는 구글 안드로이드에 대항할 수 있는 '한국형 모바일 운영체계'를 개발하겠다고 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이라면 5년이 지난 지금 한국형 모바일 OS가 있기나 한 건지 존재조차 모르실 정도로 의미 없는 사업이었습니다.


출처 - 미디어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튜브 최다 조회수 신기록을 경신할 때 숟가락을 올렸던 '한국형 유튜브' 사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래부 주도로 2013년 말부터 진행되어 10억 원의 예산을 들여 만든 결과물인 'K-ContentBank', 기억하십니까?

 

현실이 이렇다 보니 정부가 주도하는 '한국형 ○○'은 전문가들 사이에 그냥 구림, 개악의 대명사로 전락했습니다. 현실인식 없이 전문가들의 분석과 판단을 무시한 채 정부가 정했으니 기업은 따르라는 독재 정권 시절 관치 사업의 잔재가 아직도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21세기 첨단 산업의 총아라는 인공지능이 우리나라에서, 그것도 정부 주도 사업으로 나올 수가 있다고 보십니까? 그런데 박근혜 정권의 '한국형 인공지능' 숟가락 얹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출처 - 연합뉴스


미래부 제2차관은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 승리한 제4국장에서 서비스산업발전법이 통과된다면 우리도 인공지능 개발에 속도를 붙일 수 있다는 해괴한 소리를 떠벌였습니다. 서비스산업발전법은 박근혜가 국회에 처리를 요구한 경제 개악 3법 중 하나로 의료, 보건, 교육 등 공공의 영역을 사실상 민영화하자는 악법입니다. 인공지능과 하등 상관없는 악법까지 끌어와 숟가락 올리는 해괴망측함만큼은 박근혜식 창조경제의 모범을 보여주는 것 같네요.

 

출처 - 미디어오늘



연구보다 체면부터 차리는 한국 과학계


지난 13일 한국파스퇴르연구소는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과학 현실을 폄하했다는 이유로 미국의 유명 암센터 교수 출신인 하킴 자바라 연구소장을 해임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경력도 업적도 상관없이 한국 과학 현실을 부정적으로 인터뷰하여 한국 과학계의 체면을 실추시켰다는 어이없는 이유를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과연 하킴 소장이 악의를 가지고 없는 사실을 만들어가며 인터뷰를 한 걸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출처 - 네이처




하킴 소장은 《네이처》의 구직활동 안내서 코너에 <SOUTH KOREA>라는 제목으로 인터뷰를 했습니다. "논문조작으로 세계 유명 저널 편집자들이 한국의 연구자들이 결점이 있다고 판단해 논문 게재가 어렵고, 학연, 지연 문화로 인해 연구과제 선정 및 정부 지원금에 공정성, 투명성이 부족하고 외국인의 과제 수탁에 어렵다, 한국사람들은 '한국에 오면 너의 조건을 들어줄게'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사전에 반드시 문서화 필요" 등의 발언을 했습니다.


황우석 사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인터뷰 내용 중에 사실이 아닌 것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하킴 소장의 인터뷰는 한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 소장으로서 한국 과학계의 폐단을 알리고 비판한 것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금을 받는 주제에 감히 한국 과학계에 쓴소리를 하다니 건방지다는 이유로 그는 해임되고 말았죠. 연구나 업적보다 체면과 서열부터 챙기는데, 대체 어떻게 인공지능을 운운하고 과학의 발전을 꾀할 수 있단 말입니까? 큰 업적을 쌓은 외국인 과학자에 대한 처우조차 저런데 국내에서 연구하는 한국인 과학자들의 입장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다양성 말살하는 한국 교육이 알파고를 운운하는 아이러니


딥마인드를 세워 알파고를 만들고 구글에 인수되어 이번 대국까지 성사시킨 데미스 하사비스는 영국 출신 천재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습니다. 올해 갓 마흔을 넘긴 그는 13살에 체스 마스터에 올랐고 세계랭킹 2위였습니다. 그가 인공지능에 눈뜨게 된 계기가 바로 게임이었습니다. 17살에 게임계의 전설적인 거장 피터 몰리뉴와 함께 세계적 히트작인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 테마파크를 공동 개발했습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다니면서 그는 또 한 번 피터 몰리뉴와 함께 블랙 앤 화이트란 게임을 만들죠. 게임 플레이어가 문자 그대로 신이 되어보는 경험을 할 수 있는데 이 게임에는 크리처라는 인공지능으로 작동하는 캐릭터가 나옵니다. 하사비스는 이 게임에서 크리처를 비롯한 다양한 인공지능 프로그래밍을 담당했습니다. 그 이후 사업을 접고 대학으로 돌아간 후 신경과학 연구를 진행합니다. 이후 딥마인드를 창업해 딥러닝 기술을 바탕으로 인공지능 알파고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구글에 5000억 원에 인수되고 수십조 원의 가치를 인정받은 인공지능은 이처럼 게임으로 인해 본격적인 실험의 장을 얻고 개화한 셈입니다.


출처 - 한국일보


이번 이세돌과 알파고 사이에 이뤄진 바둑 대국으로 인해 인공지능이 주목을 받자 우리나라에서는 '코딩 사교육'이란 말부터 튀어나왔습니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해 사라져버릴 일자리 1순위인 대기업 사무직을 위해 사교육을 그렇게 시켜대더니 이제는 코딩을 사교육 하겠답니다.




출처 - KBS


우리나라에서 학부모와 정부가 게임을 탄압하던 것이 바로 어제의 일입니다. '나영이 주치의'라는 프로필로 홍역을 치른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 같은 사람이 게임을 마약으로 낙인 찍었죠. 하지만 알파고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게임이라는 단계가 없었다면 최첨단 인공지능 기술도 나올 수 없었습니다. 게임의 좋고 나쁨을 떠나 아이가 이루고자 하는 무언가를 폭넓게 경험해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곧 창의성의 첫걸음일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은 다양한 경험과 창의성을 존중하고 있습니까?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우리나라에는 앞으로도 이세돌, 김연아 같은 낭중지추 같은 천재들이 등장할 겁니다. 하지만 이들이 창의성과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비뚤어진 사교육으로 내몰리기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장기적인 투자도 비전도 없이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만을 세우는 정부, 수십·수백 조의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도 미래 가치에 투자하거나 작은 기업들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기는커녕 골목상권이나 넘보는 대기업들, 남을 짓밟더라도 제 자식만 잘되면 된다는 획일화된 생각으로 로봇 같은 아이들을 키워내는 것을 교육이라 우기는 부모들. 바로 이런 사람들 때문에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교육 그리고 문화 모든 면에서 점점 더 낙후되고 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대한민국 대통령과 정부는 '한국형 인공지능'을 운운하기에 앞서 한국 사회 진단부터 제대로 해야 할 텐데, 유신시대를 거슬러 일제 식민지 시대로 역사의 시곗바늘을 되돌리려 하는 세력이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고 있으니 걱정이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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