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 즉 김용균 특조위가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지난해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협력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김용균 씨가 운송설비 점검을 하다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지는 비극이 있었죠. 2016년 서울 구의역 안전문 사고에 이어 2018년에도 이런 사고가 일어나자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비롯해 산업 현장의 안전규제를 대폭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이른바 김용균법이 국회에서 통과하게 되는 계기가 된 사건이기도 합니다.


출처 - SBS


이날 특조위 조사결과 발표에 의하면 고 김용균 씨 사고의 핵심은 발전 5사의 발전정비 사업 외주화와 민영화에 따른 원·하청의 책임 회피와 하청 노동자에게 위험이 집중된 구조였습니다. 특조위는 원청 및 하청은 모두 안전 비용 지출이나 안전 시스템 구축에는 무관심했다며, 김용균 씨 사망사고가 발생하기 전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 설비 개선이 논의됐지만 이뤄지지 않았고, 이처럼 설비 개선이 무시된 건 원·하청의 책임 회피 구조 때문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실제로 특조위 조사에 의하면 원청인 서부발전은 김용균 씨 등 하청 노동자의 작업에 대해 실질적인 지휘 및 감독을 하면서도 하청 소속이라는 이유로 안전에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문제가 된 컨베이어에 대해 사고 11개월 전 원청인 서부발전에 설비개선을 요구했지만 이뤄지지 않았죠. 김용균 씨가 소속됐던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도 사고가 날 위험이 있던 컨베이어 설비에 대해 자사의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방치했고요.


출처 - 오마이뉴스


사고 이후 원·하청 회사들은 김용균 씨가 근무수칙을 위반했기에 사고가 일어났던 것처럼 얘기했지만, 이번 조사 결과 김용균 씨는 작업지침을 충실하게 지켰기 때문에 숨졌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는 이제야 아들이 누명을 벗었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출처 - MBC


가장 어이가 없었던 부분은 원청인 서부발전이 부서별 평가를 위해 만든 문서에서 드러났습니다. 산업재해로 사람이 숨졌을 때 발전사 직원은 –1.5점, 하청 직원은 –1점, 발전시설 건설 노동자가 숨지면 –0.2점이라며 사람 목숨을 3단계로 구분한 지표를 작성해놓은 것이었습니다. 이 지표는 발전소에 널리 퍼져 있었는데 보령화력 발전소는 더 노골적으로 지표 제목부터 ‘신분별’ 감점계수입니다. 본사 직원이 숨지면 12점, 하청 직원이 사망하면 4점을 감점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청직원 3명 목숨을 정직원 1명의 목숨으로 친다는 건데 대체 이걸 작성한 자들은 인간이기는 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정규직 목숨값이 비정규직의 3배라니 현대판 신분제이자 노예제가 아니면 대체 무엇이겠습니까? 김용균법이 시행되고 나서도 발전사에서는 12건의 산업재해가 발생했지만 이 중 6건은 은폐됐습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이 밖에도 특조위는 김용균 씨의 작업이라면 월급이 원래 446만 원이 돼야 하는데 절반인 212만 원을 받았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청업체가 노무비의 절반을 가져갔기 때문인데 이를 통해 하청은 부당한 이익을 늘렸고 원청인 서부발전은 감독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했으며 전력산업의 공공성을 훼손했습니다. 결국 외주화와 민영화가 작업 현장의 위험을 증폭시킨 셈입니다. 더군다나 특조위 조사 과정에서 직원들 사이에 회사 측에 유리한 모범답안이 도는 등 특조위 조사를 원·하청이 집요하게 방해했음도 공표했습니다. 이에 특조위는 산업부와 고용부에 강력한 감사를 요구한 것도 밝혔습니다. 특조위는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발전산업의 외주화와 민영화의 철회가 필요하다고 정부에 권고했습니다.


출처 - 뉴시스


지난 16일 대구의 대표 놀이공원인 이월드에서는 한 아르바이트생이 근무 중 롤러코스터에 다리가 끼어 한쪽 다리를 잃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대구 달서구청은 사람 다리가 잘린 사건에도 안전검사자료 공개가 불가하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이월드와 법리적 다툼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겁니다. 정보 공개 청구도 이월드의 의견청취를 받아야 가능한지 살필 수 있다며 답변을 피했는데요. 시민단체들은 공익 앞에서 지자체가 업체 눈치를 보며 자료 공개를 거부하는 것 자체가 사고를 은폐하려 드는 것이라며 일제히 비난했습니다. 달서구청이 이월드에 대한 관리, 감독 부실 혹은 유착을 숨기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는 이유입니다.


출처 - 미디어오늘


김용균법이 시행되었다지만 하청, 아르바이트의 처우는 현실적으로 변한 게 없습니다. 빈익빈 부익부는 돈뿐만이 아니라 안전에서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돈과 안전으로 나뉜 대한민국은 점점 계급제가 공고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출처 -경향신문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기 전에 죽음의 외주화를 멈춰야 합니다. 이대로 둔다면 그 죽음이 결국은 나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파가 절정이었던 지난 주말 뉴스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리신 분들 많으실 겁니다. 지난 8일 이른 아침 서울로 향하던 KTX 열차가 탈선하는 사고가 났기 때문이지요. 지난 12일 공개된 관제 녹취록을 보면 기장이 교신을 통해 사고사실을 알렸는데 강릉역 관제사가 믿기지 않는 듯 여러 차례 되묻는 등 상당히 긴박했던 상황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열차가 탈선하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천만다행으로 사망자는 없었습니다. 승객 15명과 역무원 1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열차는 45시간 동안 운행이 중지되었습니다. 고속철도 탈선사고 하면 1998년 독일 에세데 참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사망자가 103명이나 되는 대형 사고였죠. 또한 2013년 스페인 열차 참사로 2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일도 있습니다. 이런 사례를 보면 이번 KTX 탈선사고에서 사망자가 1명도 없었다는 것은 실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사고를 조사한 뒤 국토부는 선로의 방향을 결정하는 선로전환기 2대의 케이블이 잘못 연결돼 있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서울로 향하던 열차가 정상 진행하기 위해선 선로전환기가 선로 왼쪽에 확실히 붙어야 하는데 사고 당시 틈이 벌어진 채 어중간하게 놓여 있었기 때문에 KTX가 탈선한 것으로 원인이 파악되었죠. 그런데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났듯이 코레일은 이 선로전환기가 고장 났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으나 손을 쓸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장치와 상황실을 연결하는 회선이 거꾸로 연결돼 있었던 탓에 엉뚱한 옆 선로만 점검했기 때문입니다. 코레일 상황실에는 고장 난 선로가 정상으로, 정상인 선로가 고장으로 표시되었고 문제 상황이 발생하자 현실과 정반대로 탈선한 선로가 정상이니 일단 그쪽으로 열차를 통과시키자는 판단을 한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황당한 점은 회선이 작년 강릉선이 개통되기 전부터 잘못 연결된 상태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선로전환기가 오작동하지 않았을 뿐이었죠. 그러니까 여태껏 사고가 나지 않은 게 신기한 상황일 따름입니다.


출처 - KBS


열차 탈선사고로 문제가 불거지자 KTX 강릉선 개통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 일정에 맞추려고 졸속으로 진행했기 때문이 아내냐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2년 전 강릉선 건설 중 30미터 높이로 짓고 있던 교량이 추운 날씨 탓에 철강 자재가 수축하며 지상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뿐이 아닙니다. 강릉선 공사는 부실시공과 비리로 얼룩졌죠. 당시 철도시설공단 임원들이 하청업체의 뇌물을 챙기다 징역형을 받았고 사정 당국에 발견된 부실시공과 납품 불량만도 수십 건이 넘었습니다. 이번 선로전환기도 해당 업체가 설계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한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터질 때부터 평창 동계올림픽과 관련된 이권 사업이 최순실의 잇속을 채워주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많았죠.


출처 - MBC


최근 들어 계속 발생하는 KTX 관련 사고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공기업 선진화라는 미명하에 진행된 대규모 인력 감축과 민영화입니다. 철도는 공공성을 띠어야 하는 대표적인 교통수단이지만 기술 인력과 운영 인력을 감축하고 외주로 돌리기 바빴습니다. 일반인도 집에서 리모컨 건전지를 바꿀 때는 플러스, 마이너스 극을 확인합니다. 그러니 안전과 직결되는 선로전환기의 설계, 시공, 점검 이 모든 과정이 엉망으로 진행되는 황당한 일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현장 인력과 운영 인력이 충분히 확보되었다면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는지도 모릅니다.


출처 - 한겨레


이번 KTX 탈선 사고로 드러난 열차 운행의 다른 문제점은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의 업무 이원화입니다. 열차 운행과 선로 유지·보수는 코레일이, 선로 시공과 소유권은 철도시설공단이 맡고 있죠. 이 때문에 탈선 사고의 책임 소재를 놓고 두 기관이 서로 떠넘기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원래 하나였던 철도공사가 둘로 쪼개진 것도 궁극적으로 철도 민영화를 위한 밑작업이었죠. 철도 사업에 민영 회사가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시설과 운영을 분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작업의 시작은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KTX 승무원 대량해고 및 비정규직화였습니다.


출처 - 뉴스1


이번 탈선사고 당시 200여 명에 달하는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승무원은 딱 1명이었습니다. KTX가 개통되던 해 코레일이 인건비 절감을 이유로 승무원을 무더기로 해고하고 비정규직으로 돌린 결과가 바로 이것입니다. 전문성이 떨어지고 그나마 전문성이 떨어지는 사람조차 턱없이 모자라는 실정인 겁니다. 철도의 수익성 향상은 역세권 개발이나 복합환승센터, 돈 낼 가치가 있는 운행 상품 개발 등 경영의 묘를 발휘해 타개할 일이지, 안전을 외주화하여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번 사고의 책임을 지고 오영식 코레일 사장이 사퇴했습니다. KTX 해직 승무원 문제 같은 노사문제와 SR 통폐합 등에서 성과를 냈지만 기본 중의 기본인 안전문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수도권 시민들이 KT 화재로 디지털 난민이 되어 눈이 멀고 귀가 막히는 경험을 한 지 2주밖에 되지 않은 상황인데, 이번에는 시민의 발이어야 할 열차에서 대형 참사가 일어날 뻔했으니, 참 많은 고민이 듭니다. 

 

출처 - JTBC

 

촛불시민은 문재인 정부에 양극화 해소, 청년 일자리 창출 등을 국정 운영의 최우선 과제로 요구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국민의 염원을 받들어 노동을 존중하는 사회를 약속하고 출범했습니다. 노동소득 분배를 통한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인상,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노동 시간을 줄이는 주 52시간 근무제 등을 약속한 것도 그 때문이었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문재인 정부가 가운데 가장 비판을 많이 받는 부분이 바로 노동정책입니다. 최저임금 속도조절을 이야기하는 것이나 양대 노총의 반발을 무릅쓰고 탄력근로제를 확대하려는 움직임 등을 보면 문재인 정부가 초심을 유지하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출처 - 경향신문

 

지난 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여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고 현장에는 '풀코드'라고 하는 비상시 기계를 멈추는 장치가 있었습니다. 풀코드를 작동시킬 한 명만 더 있었더라도 김용균 씨는 죽지 않았을 겁니다. 서로의 안전을 지킬 '2인 1조 근무'는 강제 조항이 아니었습니다. 노동조합은 줄곧 2인 1조 근무를 요구했지만 회사는 단순 업무라며 이를 무시했습니다. 생각비행은 <풍등으로 인한 저유소 화재, 문제는 안전불감증이야!>라는 기사에서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번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다양한 징조가 있었습니다. 현장 노동자들은 컨베이어벨트 작동 상태를 살피고 정비 부서에 이상 여부를 알리는 작업이 위험하다고 계속 주장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노동자의 요구를 회사가 무시한 탓에 결국 안타까운 사고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을 돌아보게 하는 사건, 사고가 연이어 터지고 있습니다. 이를 무시한다면 대형 참사를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출처 - 《갑의 횡포, 을의 일터

 

생각비행이 출간한 책 《갑의 횡포, 을의 일터》의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하청사회의 문제 혹은 하청사회라는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하청사회가 작동하는데 필요한 거시적 구조화와 미시적 개인화라는 문제를 함께 다루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갑과 을의 위계를 재생산하는 보이지 않는 구조와 제도, 갑과 을이라는 지위를 재생산하는 주체의 태도와 문화에 대한 고찰이 필요합니다. 외주를 받는 하청업체는 대개 영세합니다. 하지만 전문가의 관점에서 보면 실무에 가장 능한 업체이며, 그 구성원이야말로 그 분야의 진정한 전문가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그런 그들을 우리 사회는 일거리를 받는 '을'이라고 부르며 홀대하고 있습니다. 갑이 을에게 주는 외주를 맡기는 업무는 위험이 크고 사회적으로 그리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일거리가 대부분입니다. 이들은 전문가다운 대접을 받지도 못한 채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책임을 뒤집어쓰고 맙니다.

출처 - 《공자, 이게 인(仁)이다!

 

우리는 분절화되고 개인화된 관계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를 바람직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갑과 을, 원청과 하청 사이에 책임 있는 관계와 연대의 끈을 다시 형성해야 합니다. 갑과 을의 불평등이 가속화되는 하청사회는 결코 지속될 수 없으며 또 지속되어서도 안 됩니다. 이를 위해 현실에 눈감기보다 현실을 똑바로 보기 위해 눈을 부릅떠야 합니다. 을들이 하청사회를 유지하는 보이지 않는 힘, 특히 갑의 지대추구행위와 외주화를 모든 시민이 알아채고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다면 긍정적인 변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2019년도 최저임금이 진통 끝에 2018년 대비 10.9% 오른 8350원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을 달성하겠다던 대선 공약을 지키기가 사실상 어려워졌다며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대표적인 최저임금 적용 업종인 편의점을 비롯한 소상공인들은 발표 직후 최저임금 인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불복 선언을 하기도 했죠. 최저임금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알바를 비롯한 젊은이들은 환영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2년 연속 두자릿수로 오른 최저임금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 큰 자영업자들이 많은가 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처음에는 인건비 상승을 감당할 수 없다며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지역별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달라고 요구하며 심야영업 중단 및 심야에 물건값에 할증을 붙여 파는 식의 강력한 단체 행동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혔죠. 하지만 여론이 좋지 않았고 편의점주와 알바라는 을과 을의 전쟁이라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자 편의점주들은 비판의 무게중심을 옮겼습니다. 공동휴업 등 단체행동을 하는 대신 카드 수수료 문제, 근접 출점, 가맹수수료 인하 등의 요구조건을 꺼내든 겁니다. 그러면서 을과 을의 싸움을 절대 원치 않는다며 정부와 가맹본부 쪽에 정당하게 공을 넘기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적절한 판단이었습니다. 편의점 업계의 가장 큰 문제는 최저임금이 아니라 편의점주들이 어찌할 수 없는 갑들의 문제였기 때문이죠. 을과 을의 전쟁으로 번질 뻔한 문제를 진짜 문제인 갑에게 돌리는 데 성공한 셈입니다. 편의점 왕국인 일본은 편의점주들이 노동조합으로 연대해 가맹본부와 수수료 요율 등을 매년 협상한다고 하죠.


출처 - KBS


편의점을 비롯해 프랜차이즈 가맹 사업자들이 힘든 이유는 편의점 업주들이 성토하는 그대로입니다. 가맹본부가 가져가는 높은 비율의 가맹수수료와 건물 임대료가 가장 큰 지출을 차지합니다. 알바생들의 인건비는 5명을 교대로 근무시킨다 해도 이보다 부담이 낮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그간 편의점주들이 최저임금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까닭은 가맹수수료와 임대료는 자신들이 낮추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인건비는 절감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약자가 더욱 약한 상대에게 피해를 돌리는 을의 전쟁으로 번지곤 했던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출처 - KBS


사실 편의점 업계는 장기불황이라는 말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은 매출이 미미하게 상승하거나 오히려 떨어지기도 했는데, 편의점 업계만 10.9%라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으니까요. 문제는 이로 인해 가맹본부는 엄청난 이익을 보는 반면 편의점주들의 실질적인 이익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겁니다.


출처 - KBS


편의점주 대다수가 근접 출점을 막아달라고 요구할 정도로 편의점 자체가 너무 많아지는 현상도 문제입니다. 인구가 우리의 두 배인 편의점 왕국 일본의 전국 편의점 수가 5만 5395개 수준인데 우리나라는 4만 192개 수준으로 인구에 비해 편의점 수가 너무 많은 편입니다. 

 

가맹본부 입장에서는 편의점 수가 많아지면 만하질수록 수수료 수익이 늘어나니 좋겠죠. 하지만 편의점주 입장에서는 편의점끼리 과다한 경쟁을 하게 된다면 자신들의 파이가 줄어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는 가맹본부가 편의점 매출액의 30~40%를 가져가는 정률제 계약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런 조건 때문에 가맹본부는 편의점들의 매출 신장을 지원하기보다 전체 편의점 수를 늘리려 합니다. 편의점끼리 제살 깎아먹기 경쟁을 하고 있는데도 이를 신경쓰지 않는 것이죠.


출처 - 머니투데이


최근 가맹점주들 사이에서는 가맹본부가 수수료를 인하하고 신규 점포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맹본부는 현재 이익률이 낮아 수수료율을 손보기가 난망하다는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가맹본부가 낮다고 한 이익률이 수천억입니다. 일례로 BGF리테일의 경우 2016년 오너 일가의 배당금이 180억 원이었을 정도입니다. 오너와 주주는 본부에서 배당을, 본부는 편의점주들에게 수수료를, 편의점주들은 알바들의 최저시급을 빨아먹는 구조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MBC


이와 동시에 편의점주들에게 큰 문제는 건물 임대료입니다. 일부 보수 언론은 최저임금이 18년 동안 4배 올랐다고 호들갑을 떱니다. 하지만 건물주가 받는 월평균 월세는 10년 사이에 6배나 올랐습니다. '갓물주'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닙니다. 갑들의 지나친 이익 추구로 인해 치명타를 입는 건 언제나 을들이라는 소립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런 사태를 초래한 범인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국회입니다. 이 모든 사태의 요인을 막거나 완화할 수 있었던 상가임대차보호법 등 100여 건의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원 법률이 일하지 않는 국회에 쌓여 처리가 미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회는 말로만 민생 민생 하지 말고 어서 법안들을 처리해 실제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 바랍니다.

 

출처 - 경향신문

 

아울러 편의점주, 자영업자들도 진짜 요구를 해야 하는 대상을 혼동하지 말길 바랍니다. 을과의 전쟁에 열을 올리지 말고 연대를 통해 갑에게 정당한 요구를 하며 실질적인 답을 찾야야 합니다. 가맹본부와 건물주, 나아가 이 돈이 집중되는 재벌 오너 일가도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을과의 상생을 적극적으로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지난 6월 19일 ‘2018 경향포럼’에서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와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 등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은 지대추구 행위가 불평등을 심화시켜 결국 공동체를 붕괴시킨다면서 정부의 과감하고 직접적인 개입을 주문했습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날 기조강연을 통해 "타인을 착취해 이익을 얻는 것이 지대추구 행위"라면서 "기업의 시장지배력이 지나치게 강해지면서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민주주의까지 약화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생각비행이 출간한 책, 《갑의 횡포, 을의 일터》가 바로 이러한 문제를 다룹니다. 갑이 많은 사회적 부를 움켜쥐게 된 까닭은 을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을 쥐어짜내 가로챘기 때문입니다. 양극화가 심화된 대한민국이란 ‘하청사회’는 극소수의 갑만 이익을 챙기고 대다수의 을은 희생을 당하게끔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하청사회는 막다른 골목으로 을들을 내몰고 상호 변절을 강요하는 사회이기도 합니다. 성과를 내야 하는 일터에서 살아가는 을의 눈에는 옆의 을이 동료라기보다는 경쟁자로 보일 뿐이죠.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상황에서 을들은 협동보다 생존을 우선적인 가치로 생각하게 됩니다. 최저임금을 둘러싸고 을과 을들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 2018년 대한민국의 현실을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화병(Hwabyeong), 재벌(Chaebol)에 이어 갑질(Gapjil)도 영어사전에 등재될 것 같습니다. 땅콩회항 사건으로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조현아에 이어 동생 조현민의 갑질이 지난 14일 미국 《뉴욕타임스》에 기사로 났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화병을 유발하는 경제 시스템의 근원이 재벌이고 갑질을 하는 것도 재벌이니 세계화된 단어의 근간에 재벌이 있는 셈입니다.



출처 - 뉴욕타임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차녀인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광고회사 직원에게 물병을 집어 던지고 얼굴을 향해 물을 뿌린 이른바 물벼락 갑질이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이후 추가로 공개된 녹취록을 들어보면 단순히 욕을 하거나 화를 내는 정도가 아니라 분노조절장애 이상의 정신장애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악을 쓰며 괴성을 지릅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그간 다양한 채널로 대한항공 조씨 집안의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갑질 행태가 터져 나왔죠. 첫째인 조현아는 땅콩회항으로 유명인이 되었고, 셋째인 차녀 조현민은 이번 물벼락 갑질뿐 아니라 다른 갑질도 드러났으며, 둘째인 아들 조원태는 차선 위반으로 단속하려던 경찰을 치고 달아나다 시민들에게 붙잡힌 바 있습니다. 그는 아기를 안고 있는 70대 할머니를 밀치고 폭언한 혐의로 입건되기도 했죠. 이처럼 자식들이 콩가루 집안임을 입증했는데, 그들의 부모라고 멀쩡할 리 있겠습니까? 삼 남매의 어머니인 조양호 회장의 부인은 더 한다는 폭로가 이어졌습니다. 입에 아주 욕을 달고 살며 사람들을 무시한다고 합니다.


출처 - 한겨레


재벌 일가의 갑질에 분노한 국민들은 한진그룹 소유인 대한항공에서 '대한'을 회수하고 한진항공이라고 하게 하자거나, 조현민을 처벌해달라고 하는 청원을 청와대 누리집에 올리는 등 사회적 단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더 분노하게 하는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조씨 일가가 재벌이라는 배경을 이용해 온갖 불법을 저지른 정황이 드러난 것이죠. 물벼락 갑질의 조현민은 외국 국적인데도 대한항공 자회사인 진에어의 이사를 5년 동안 맡아 불법 의혹이 제기되었죠. 국내 항공법상 외국 국적자는 이사를 맡을 수 없다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불법 행위가 확인될 경우 조현민의 상속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출처 - JTBC


또한 항공사 오너 일가라는 점을 이용해 해외에서 여러 물품을 들여오며 공항 세관의 눈을 피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죠. 오너 일가의 짐을 마치 승무원들의 짐인 것처럼 나눠 들고나와 대한항공 운영사무실을 통해 공항 밖으로 빼낸 건데요. 대한항공은 이를 관행이었다며 사실상 인정했습니다. 세관을 거치지 않는 건 엄연한 관세법 위반인데 이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세관 직원들에게 무료항공권이나 좌석 업그레이드 등 편의를 제공했다는 제보도 나왔습니다. 

 

심지어는 총수 일가의 화물을 항공기 부품으로 속여서 들여온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조양호는 카메라 부품과 와인, 부인인 이명희는 가구, 조현민의 경우는 애완견용 특정 브랜드 사료를 그런 식으로 반입했다고 합니다. 현행법상 수입 신고를 하지 않거나 신고를 했더라도 실제 다른 물건을 들여오면 밀수죄에 해당합니다. 원가가 5억 원 이상이면 무기징역도 가능한 중죄이며 벌금형 없이 반드시 징역형에 해당합니다. 게다가 오너 일가가 이랬으니 업무상 배임에 해당할 수도 있습니다.


출처 – SBS


900명이 넘는 대한항공 직원들이 '대한항공 갑질 불법 비리 제보방'이라는 카카오톡의 오픈 채팅방에서 총수 일가의 갑질과 비리 사례를 공유하며 회사 정상화에 가담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채팅방은 지난 18일 개설되었고 참가자들이 총수 일가와 관련한 폭언 녹취 파일, 갑질·폭력·부당한 업무지시, 강등·퇴사 등 부당 인사, 세관 통과·탈세·비자금, 국토교통부 관련 비리·비위 등을 제보받고 있습니다.

 

출처 - MBN

 

생각비행이 출간한 책 《갑의 횡포, 을의 일터》의 저자는 정당한 경쟁을 회피하는 재벌의 지대추구행위를 비판합니다.

 

 

내가 책에서 지대추구행위의 대상으로 주로 비판하려는 대상은 공공선택론자들이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정부가 아니다. 오히려 시장경쟁을 저해하는 갑의 지대추구행위에 초점을 맞춘다. 즉 시장에서 정당한 경쟁을 통해 형성된 가격이 공공의 이익을 증대하도록 하는 대신, 기득권을 지닌 갑이 부당하게 경쟁을 회피하며 특권과 특혜를 증가시키려는 행위를 비판한다. 달리 말해, 나는 지대추구행위를 보다 넓은 의미로 해석하면서 ‘보이지 않는 손’을 방해하는 ‘보이지 않는 발’이라고 비유한 E. K. 헌트의 이해를 공유하고자 한다.

 

하청사회의 갑은 어느 날 갑자기 그 위치에 서게 된 것이 아니다. 갑의 ‘보이지 않는 발’이 남긴 발자국을 추적해 들어가면 19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사공영호에 따르면, 1960년대 이후 재벌, 정치인, 관료들이 ‘지대추구연합’을 형성하면서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이 이루어졌다. 정부는 재벌을 위해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에 해당하는 저렴한 금리를 제공했으며, 각종 규제를 통해 다른 업체의 진입과 경쟁을 억제하는 지원을 아낌없이 해주었다. 이처럼 오늘날 하청사회의 갑인 재벌과 대기업은 오랜 기간 정부에 의지해 막대한 지대를 획득하면서 성장해왔다. 엄청난 규모로 누적된 지대추구행위가 시간의 흐름에 묻혀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토지나 토지와 유사한 성격의 영역을 선점한 지대추구행위자는 이 ‘보이지 않는 발’을 통해서 경쟁자들을 짓밟은 채 사회에 아무런 경제적 가치를 생산하지 않고 단지 이쪽에서 저쪽으로 소득을 옮길 뿐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독점적으로 지대를 차지하는 데 들인 매몰비용을 회수하려고 하기 때문에 경제적, 사회적 순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지대추구행위가 경쟁의 규범처럼 작동하면 독점적인 지대를 차지하는 갑이 되는 것만이 중요해집니다. 대한민국에서 갑들을 지대추구행위를 통해서 아무런 경제적 가치를 생산하지 않고, 단순히 이쪽에서 저쪽으로 소득의 이전만을 행할 뿐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재벌가의 갑질은 잊을 만하면 돌아오는 막장드라마처럼 등장해 여론의 질타를 받아왔습니다. 한화의 김승연과 그 아들이나, SK 오너 일가의 맷값 폭행 등이 사회적 물의를 빚은 대표적 사례입니다. 그런데도 재벌 일가의 갑질이 계속되는 건 철저한 단죄와 예방 조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경영 능력이 부족하고 윤리의식마저 바닥인 오너 일가가 재벌 기업을 좌지우지하도록 놔두는 건 국가 경제를 생각할 때 큰 문제입니다. 이 악순환을 끊어내는 입법과 단죄가 조속히 마련되길 바랍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