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이제 곧 10월의 마지막 날이 옵니다. 그날이 되면 라디오에선 어김없이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란 노래가 하루에도 몇 번씩 전파를 탑니다. 그리고 그날 밤엔 무슨 까닭인지 술을 마셔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그리움을 담은 노랫말 때문이겠지요. 

10월의 마지막 밤이 오는 길목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마음을 노래한 유하의 시를 읽었습니다. 언어 기교가 뛰어나지만 그 때문에 무게감이 좀 떨어진다는 느낌을 주는 시인 유하, 하지만 그의 시에는 ‘끌림’이 있습니다. 아마도 최근 시인들이 쓴 시들이 읽기에 어려움이 있는 반면 시인 유하의 작품은 파격적인 면이 있으면서도 어렵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당신

오늘밤 나는 비 맞는 여치처럼 고통스럽다
라고 쓰다가, 너무 엄살 같아서 지운다

하지만 고통이여, 무심한 대지에서 칭얼대는 억새풀
마침내 푸른빛을 얻어내듯, 내 엄살이 없었다면
넌 아마 날 알아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열매의 엄살인 꽃봉오리와
내 삶의 엄살인 당신,

난 오늘밤, 우주의 거대한 엄살인 별빛을 보며
피마자는 왜 제 몸을 쥐어짜 기름이 되는지
호박잎은 왜 넓은 가슴인지를 생각한다

입술을 달싹여 무언가 말하려다,
이내 그만두는 밑둥만 남은 팽나무 하나

얼마나 많은 엄살의 강을 건넌 것일까

누군가를 사랑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입니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것입니다. 연애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아니 연애가 쉽다는 사실을, 아니 연애는 어렵지도 쉽지도 않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연애는 쉬울 수도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연애를 ‘밀당’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연애는 쉽다거나 어렵다거나 하는 말을 하기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연애는 바로 ‘사랑’을 사이에 둔 남녀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첫눈에 서로 반해서 사랑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미워하는 감정 혹은 무관심에서 시작하여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랑을 키워 연애합니다.

“오늘밤 나는 비 맞는 여치처럼 고통스럽다 / 라고 쓰다가, 너무 엄살 같아서 지운다”는 내용을 보면 아마도 이 시의 시적 자아는 글을 쓰는 시인 자신인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아픔으로 ‘비 맞는 여치처럼’ 고통스럽다고 하다가 다시 지웁니다. 사랑의 슬픔은 일반적인 고통과 다르기 때문이지요. 그러다가 이내 시인은 “하지만 고통이여, 무심한 대지에서 칭얼대는 억새풀”이라고 다시 말합니다. 여치의 울음에서 억새풀이 부딪히며 내는 칭얼거림으로 소리의 확장에 따라 시인의 슬픔도 커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슬픔의 증폭은 사랑의 전술입니다. “마침내 푸른빛을 얻어내듯, 내 엄살이 없었다면 / 넌 아마 날 알아보지도 못했을 것이다”라는 표현을 보면 억새의 칭얼거림이 푸른 억새의 모습을 완성하듯 시인의 엄살은 사랑하는 ‘당신’에게 자신을 각인시키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이 작업은 성공했습니다.  비 맞은 여치 같은, 억새의 칭얼거림 같은 시인의 모습은 시인을 알아보게 했으니까요.

사실 시인 유하는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보통 연애가 잘 안 풀리는 건, 에고라는 함정에 빠지기 때문이에요. 우린 대개 상대방에 집중하기보단, 자기 자신에 더 관심이 가 있기 일쑤이지요. 물론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정작 스스로를 더 사랑한다는 점이 문제예요. 바로 그 때문에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무리한 행동이 돌출할 수밖에 없는 것이구요”
― 진이정 발문, <유하, 오래 오래 뒤돌아보는>, 《세상의 모든 저녁》 중에서

이 말은 젊은 나이의 유하, 아니 김병준이라는 본명을 가진 평범한 남성이 친한 선배인 진이정에게 한 말입니다. 시인은 자잘한 연애 경험을 많이 한 사람이고 그래서 실연도 많이 한 사람입니다. 많은 연애 경험으로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정작 스스로를 더 사랑한다는 점”이 연애가 안 풀리는 이유라는 결론까지 내립니다.

하지만 <당신>이란 시에서 이러한 깨달음은 무의미합니다. 자신의 고통스러운 엄살로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으니까요. “열매의 엄살인 꽃봉오리와 / 내 삶의 엄살인 당신,”이란 표현을 보면 ‘엄살이 사랑의 대상, 가장 중요한 삶 자체’가 됩니다. 꽃이 피면 열매를 맺지만 꽃은 곧 떨어지겠지요. 꽃이 시들어가면 열매는 익어갑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지요. “열매의 엄살인 꽃봉오리”에서 바로 이어지는 “내 삶의 엄살인 당신”을 위해 시적 자아는 희생할 수도 혹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유부단한 시인은 “난 오늘밤, 우주의 거대한 엄살인 별빛을 보며 / 피마자는 왜 제 몸을 쥐어짜 기름이 되는지 / 호박잎은 왜 넓은 가슴인지를 생각한다”에서 보이듯이 고민에 빠지고 맙니다. 연애가 잘 안 풀리는 이유가 ‘상대방을 사랑하기보다 스스로를 더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을 더 사랑했던 시인은 더욱 고민에 빠집니다. 우주가 별빛을 내기 위해 어둠으로 희생하는 것을 보며, 자신을 쥐어짜 기름을 만드는 피마자를 생각하고 호박꽃이 호박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지켜보며 이 둘의 사랑을 감싸주는 넓은 가슴을 가진 호박잎을 생각합니다. 아마도 시인은 ‘당신’에게 보내는 엄살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고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때문인지 “입술을 달싹여 무언가 말하려다, / 이내 그만두는 밑둥만 남은 팽나무 하나”처럼 무엇인가를 말하려 하면서도 ‘당신’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아마도 시인이 더 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아무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가지도, 잎사귀도, 몸통도 모두 주고 이제 겨우 밑둥만 남았으니까요.

그러면서 “얼마나 많은 엄살의 강을 건넌 것일까” 하고 회상하면서 지나온 시간 동안 사랑했던 ‘당신’과 ‘당신’들을 떠올립니다. 많은 연애는  동시에 많은 실연을 동반합니다. 이러한 반복적인 경험도 연애의 기쁨과 아픔을 완벽하게 소화하지는 못합니다. 다만 다음 사랑을 만나기 위한 초석이 될 뿐입니다. “시인의 간절한 비원이 담긴 그 시집도 목석 같은 그녀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결과 잃은 것은 사랑이요, 얻은 건 시집이었으니”라고 진이정은 유하의 실연을 대신 발문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사랑과 실연을 반복합니다. 이러한 반복 속에서 상처는 경험이 되고 경험은 더 많은 사랑을 위한 밑거름이 됩니다. 사랑의 결과를 딱히 무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서로의 방식대로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을 수는 있을 겁니다. 사랑하는 이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10월의 마지막 밤을 준비하는 건 어떠신지요? 혹은 흘러간 사랑을 생각하며 추억에 잠겨 보내는 시간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유하

영화감독이자 시인으로 본명은 김병준이다. 1963년 전북 고창군 상하면 하나대 마을에서 출생하여 세종대 영문과와 동국대 대학원 영화과를 졸업했다. 1988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공모에 당선하면서 시단에 나왔다. 시집으로는 《무림일기》《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세상의 모든 저녁》《세운상가 키드의 사랑》《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이소룡 세대에 바친다》《재즈를 재미있게 듣는 법》 등이 있다. 그는 1990년 영화 < 시인 구보씨의 하루>로 영화감독으로 데뷔했으며 연출한 작품으로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하울링><쌍화점><비열한 거리> 등이 있다. 1996년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으로 제15회 김수영문학상을 받았다.


메일함에 쇼핑몰마다 보내온 밸런타인데이 초콜릿 행사 메일이 그득 쌓이고, 거리의 편의점마다 각양각색의 초콜릿을 진열해둔 걸 보니 올해도 그 시즌이 왔음을 느낍니다.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며 사랑을 고백하는 밸런타인데이는 언제 어디서부터 온 걸까요?

이날은 군기문란 우려와 더 많은 남자의 입대를 위해 결혼을 금지한 로마제국의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의 명령을 어기고 군인들의 혼배성사를 집전했다가 순교했다는 성 발렌티누스(발렌타인)를 기리는 날로 시작했다고도 하고, 서양에서 겨울이 지나고 새들이 다시 날아와 교미를 시작하는 날이 2월 14일이라고 믿은 데서 유래했다고도 합니다. 초콜릿을 전하는 관습은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었다고도 하네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현대적 의미의 밸런타인데이의 유래는 비교적 명확합니다. 바로 기업의 상술, 즉 마케팅의 일환이었지요. 혈액형 점을 퍼뜨린 나라답다고나 할까요?

1936년 일본 고베의 한 제과업체가 발렌타인 초콜릿 광고를 시작하자 '밸런타인데이=초콜릿을 선물하는 날'이란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고, 한국 사람들도 어린 시절 많이 먹었던 '밀크캬라멜'을 만든 모리나가 제과가 1960년 즈음 이를 여성들에게 초콜릿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한 데서 현대의 밸런타인데이가 유래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여자가 먼저 사랑을 고백하는 건 사회적 분위기로 볼 때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2월 14일, 이날 하루만큼은 여자도 자유롭게 사랑고백을 해보자'라는 의도였겠지요. 물론 그 방법은 '달콤한 초콜릿으로!'라는 문구를 껴서요.^_^;; 1970년대에 접어들며 이 캠페인은 일본에서 하나의 풍습으로 정착합니다. 그런 문화가 우리나라로 건너오게 된 거죠.

유래를 살펴보면 밸런타인데이가 상술에서 비롯했다는 비판도 많은 날이지만, 꼭 그렇게만 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요. 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서로 즐거워할 수 있다면, 평소 소심한 분들이 자기 마음을 고백할 계기가 된다면, 발렌타인데이도 꽤 괜찮은 날이 아닐까 싶군요.

올해 밸런타인데이에 선물 계획 82.1%(http://www.acrofan.com/ko-kr/consumer/news/20110208/00000025, 아크로팬)

실제로 올해 밸런타인데이에 선물할 계획이 있다는 사람은 82.1퍼센트였고,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가 사람들과의 관계 유지 및 개선에 효과적이라는 긍정적이라는 인식이 많았습니다. 2010년 밸런타인데이에 선물한 응답자의 64.4퍼센트가 관계 유지 및 개선에 효과적이었다고 응답했고요. 올해 선물을 전달할 소비자들도 관계 유지 및 개선에 대한 기대치가 76.7퍼센트로 높게 나타나, 밸런타인데이가 긍정적인 사회분위기 조성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초콜릿을 선물로 고르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호감을 전달하는 특별한 날에 특별한 의미가 담긴 초콜릿을 선물하는 것은 어떠신가요? 생각비행이 제안하는 상품은 바로 공정무역 초콜릿, 일명 착한 초콜릿입니다. 가난한 카카오 농가에 제대로 된 대가를 돌려주는 착한 소비라면 기업의 상술을 배제하면서도 진심 어린 호감을 전달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_^

사회적기업이란 무엇일까요?(http://ideas0419.com/79)

이전에 사회적기업을 소개하는 포스트를 올렸지만 여전히 막막하다고 느끼는 분도 분명히 계실 겁니다. 요즘 사회적기업이 회자하고 있지만, 공정무역이나 착한 소비처럼 평소에 쉽게 접하는 얘기는 아닐 테니까요. 그런 분들을 위해 사회적기업들의 상품을 취급하는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그루'나 '아름다운 커피'처럼 공정무역을 하는 사회적기업에서 만든 초콜릿들을 모아 발렌타인 기획상품 코너를 만들었네요. 여성들 사이에 주원앓이 신드롬을 일으켰던 〈시크릿 가든〉의 현빈처럼 멋진 그 이름, '밸런타인데이 사회지도층의 선택 - 이로운 초콜릿'입니다.


밸런타인데이 사회지도층의 선택 이로운 초콜릿(http://www.erounmall.com/app/planning/plan_tpl/001003021/351, 이로운몰)

오늘 정오까지 주문한 상품에 한해 14일까지 도착한다고 하니 구매할 의향이 있는 분이라면 서두르셔야겠어요.^_^
착한 소비를 하고 싶지만 혹시 위 상품의 구성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직접 고르고 싶은 분들께서는 다음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고용을 위해 빵을 굽는 착한 기업_사회적기업을 아시나요?(http://blog.erounmall.com/8522, 이로운몰)

사회적기업, 소셜 비즈니스 바로 알기(http://ideas0419.com/89)

위 블로그는 정부인증 사회적기업과 정부인증은 받지 않았지만 사회적기업 활동을 하는 여러 기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빵을 팔기 위해 고용하는 게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빵을 파는” 착한 기업인 사회적기업들이죠. 해당업체 선정 뒷이야기처럼 사회적기업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도 알 수 있으니 꼭 한번 살펴보세요. 사회적기업에 어떤 업체들이 있고, 어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지도 간략하게나마 알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 가게로 유명한 희망제작소 박원순 변호사의 아름다운 커피도 입점해있네요.


아름다운 커피(http://www.beautifulcoffee.com/)의 정직한 초콜릿은 우리나라에 공정무역을 알린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적기업이라 그런지 홈플러스 같은 대형마트와 일부 편의점 등 일반 유통매장에서도 판다고 하니 위 인터넷 쇼핑몰 행사를 놓친 분들은 그쪽을 찾아보시죠. 혹시 동네 마트나 편의점에서 찾을 수 없다면 서울에서는 아름다운커피 동숭동사무실에서 구매할 수 있다고 하니 070-8859-7163으로 문의하시면 될 듯합니다.

비록 상술에서 시작된 날이라도 우리는 상술에 놀아나지 않는 현명한 소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제3세계 농가에 정당한 대가를 돌려주는 착한 소비를 할 수 있습니다. 초콜릿에 그런 깨끗한 마음을 담아 상대에게 선물하는 셈이니 일석삼조가 아닐까요!

어떠신가요? 이번 밸런타인데이에 착한 소비로 자신의 진심을 전해보심은. ^_^

PS. 화이트데이 역시 기원을 살펴보면 여러 설이 있지만 일본 제과회사의 기업마케팅에서 유래한 듯합니다. 이건 성 발렌타인처럼 범세계적으로 끌어다 쓸 옛날이야기도 없어요. '2월14일=밸런타인데이=초콜릿'이라는 생각이 정착되어 수입이 짭짤해지니 마시멜로 회사에서 이를 원용해 한달 뒤인 3월14일에는 남자들이 하얀 마시멜로로 보답하자는 캠페인을 전개해서 정착된 것이 화이트데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밸런타인데이는 꽤 여러 나라에서 행해지고 있지만, 남자가 보답하는 화이트데이는 한국·일본·대만 정도만이 챙기고 있다고 하네요.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주는 여성분들은 공식(?)적으로 보답 받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에 살고 계신 셈이니 나중에 이자 톡톡히 쳐서 화이트데이 챙기시길 빕니다. ^_^

휴일
에 인터넷을 하다가 재밌고 생각해 볼만한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연애가 들어가는 드라마를 보며 빼놓을 수 없는 바로 그 단어, ''와 '그녀'에 관한 이야기죠.

'그녀'가 국적불명의 단어라는 것 아시나요?
( http://www.kormedi.com/news/culture/korealanguage/1198998_3007.html, KorMedi 뉴스 )

원래 우리나라 말에 그녀란 말은 없었고 성별 구분 없이 라는 3인칭 대명사를 두루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영어 쉬She를 번역한 일본어 카노죠彼女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우리 말에 그녀라는 국적불명의 단어가 생겼다고 합니다.

상당수 국어학자가 그녀를 퇴출하고자 노력했고 그 결과 많은 신문사에서 그녀라는 표현을 될 수 있으면 쓰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는 신문에서 자주 볼 수 있던 그와 그녀의 구분이 언젠가부터 그로 통일되어 가는 것 같네요.

일본어의 잔재와 영어가 범람하는 지금 세상에 바르고 고운 우리 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특히 글로 책을 만드는 저희 생각비행 같은 출판사 입장에서는 더더욱 말이죠. ^_^

다만 여기서 현실과의 괴리가 생기는 일이 문제일 겁니다. 기사에도 실린 국립국어원의 입장을 인용해보겠습니다.

국립국어원은 ‘’라는 대명사 홀로 남녀를 공통적으로 지칭함을 인정하면서도 ‘그녀’라는 말이 쓰이고 있는 현실 속의 풍경을 무시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국립국어원이 발간한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그’는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아닌 사람을 가리키는 삼인칭 대명사, 주로 남자를 가리킬 때 쓴다고 돼 있다. ‘그녀’는 주로 글에서, 앞에서 이미 이야기한 여자를 가리키는 삼인칭 대명사로 돼 있다.

국립국어원의 답변: ‘그’와 ‘그녀’의 쓰임을 모두 인정할 수 있다. 다만 ‘그’는 남성대명사, ‘그녀’는 여성대명사와 같은 대립구조로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아닌 사람을 가리킬 때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지 않고 삼인칭 대명사 ‘그’를 쓸 수 있다. 다만 남자를 가리킬 때 ‘그’가 많이 쓰이고 있으며 ‘그녀’는 사전 뜻풀이에 나오는 대로 주로 ‘글’에서 앞에서 이미 말한 여자를 가리킬 때 쓰인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단어 하나에서도 첨예하게 드러나는군요.^_^;; 아무래도 언어는 언중을 따라가게 되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실제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올라 있듯 그녀가 틀린 말이라거나 국어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말 바로 세우기를 염원하는 지식인들은 "그녀라고 쓴 문장 어디에든 그를 대체해 넣어보면 하나도 문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이런 경우를 한 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얼마 전에 모 일간지에 난 동성애 반대 광고로 유명세를 치른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생각해 볼까요? 이 드라마에는 이성 커플도 나오고 동성 커플도 나옵니다. 이때 모든 대명사를 올바르게 그로 통일했다고 하면 이런 문장이 나올 수 있습니다.

"어제 가 키스했다."

©SBS. All rights reserved

여태까지 흔히 있었던 드라마를 떠올린다면 주인공 남녀 커플의 키스라고 바로 떠올릴 수 있겠지만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남남 커플의 키스도 등장하는 드라마라면 한 문장으로는 어느 커플이 키스를 했는지 알 수가 없게 됩니다. 현재로서는 뉘앙스도 미묘해지죠. 이상윤(남)과 남상미(여)가 키스를 했다는 건지 이상우(남)와 송창의(남)가 키스를 했다는 건지 말입니다.

©SBS. All rights reserved

이런 현상은 사회가 다변화할수록 가속화할 것입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다양해지고 사랑의 형태도 다양해지면서 대명사 하나로는 그 뜻이 명확하지 않은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는 그와 그녀뿐 아니라 모든 단어에 점차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현실이상 사이에서 연애만큼 복잡한 그녀의 사정, 무엇이  정답일까요? 생각해볼 문제라고 봅니다.

* 이는 생각비행 출판사 전체가 아닌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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