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6일 윤석열 정부는 여성가족부 폐지 등을 담은 정부조직 개편안을 확정했습니다. 개편안에는 국가보훈처를 국가보훈부로 승격하고 외교부 장관 소속으로 재외동포청을 신설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국가보훈부와 재외동포청 관련 내용은 더불어민주당 역시 공감하고 있는 바라 문제가 없지만 뜨거운 감자는 여성가족부 폐지였습니다.

 

출처 - SBS

 

국회 다수당이자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여가부 폐지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정부 조직 개편안은 여가부를 폐지하고 보건복지부 산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신설해 관련 기능을 이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사실상 수장을 장관에서 본부장으로 격하하는 셈이죠.

 

출처 - 한겨레

 

여가부 폐지를 우려하는 야당이 다수당이기에 이번 정부조직 개편안이 원안 그대로 통과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만 만에 하나 통과가 된다면 여가부는 2000년 김대중 정부 때 출범한 이후 21년 만에 문을 닫게 됩니다. 윤석열 정부는 여가부가 폐지되고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의 수장인 본부장이 되더라도 장관보다는 낮지만 차관보다는 높은 지위를 부여하고 장관급 국무회의에 배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처럼 말이죠. 그리고 여가부가 담당하던 청소년, 가족, 양성평등, 권익증진은 복지부로, 여성고용 기능은 고용노동부로 이관한다는 계획입니다. 정부 측은 그동안 복지부와 고용부의 정책이 여가부의 정책과 중복되는 부분이 있어 국정상 비효율을 초래했기 때문에 오히려 효율적으로 잘 돌아갈 수 있게 된다는 분석을 내놓았는데요, 과연 그럴까요?

 

출처 - MBC

 

정부조직 개편안 보고를 받고 민주당 측은 여가부 장관이 차관급의 본부장으로 격하되면 성범죄 관련 정책 논의 시 국무위원이 아니어서 타 부처와의 교섭력 등 기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최근 벌어진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처럼 여성혐오 범죄와 젠더 갈등이 점점 늘어나는 가운데 여가부를 갑자기 폐지하면 '여성'에 대한 문제를 풀기가 더 어려워지게 된다는 겁니다. UN에서도 성평등 관련 독립 부처의 필요성을 권고하고 있죠. 행정 관련 전문가들 역시 복지부와 여가부 기능을 통합하면 복지 행정 효율성을 추구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여성 권익 증진 등 여성에 초점을 둔 정책은 약화될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기능적 측면을 고려하면 여가부가 복지부 산하가 되는 것이 맞다고 보지만 복지 행정 관점이 아닌 여성에 초점을 맞추면 구체적인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얘깁니다.

 

출처 - 경향신문

 

여성 권리 신장을 위해 자문 역할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권한을 가진 행정기관위원회를 설치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금융위원회나 공정거래위원회처럼 부처가 아니더라도 관련 범죄에 대해 직접적인 제재를 할 수 있는 기구 말입니다. 여가부를 정히 폐지하겠다면 여성 대상 범죄의 경우 경찰이나 검찰과 연계해 강제 수사 및 집행 기능을 가진 여성위원회 같은 기구를 신설해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이번 폐지 개편안은 국정 운영의 필요를 위해라기보다는 정치적 목적이 다분하기 때문에 이런 보완책을 마련할 리 만무합니다.

 

출처 - 한겨레

 

그런 우려 때문일까요? 전국 286개 여성시민사회단체는 지난 10월 4일 성명을 발표해 윤석열 정부의 여가부 폐지를 규탄했습니다. 정치적 위기마다 여가부 폐지를 운운하는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을 규탄한다며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처럼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여가부의 책무와 권한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은 여가부 폐지는 여가부가 정말 필요 없어서라기보다는 과장된 반대 의견을 근거로 내린 정치적 결정이라는 측면이 강하다고 꼬집었습니다. OECD 회원국 중에 여성 전담기구가 있는 곳이 많고 오히려 확대하는 추세인데 우리나라만 역주행하는 건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도 자충수가 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사회를 통합해야 할 정부가 나서서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큽니다.

 

출처 - YTN

 

작년 우리나라 강력범죄 피해자 중 85.8%가 여성입니다. 폭력과 살인에 노출된 피해자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뜻이죠. 여가부가 있는 현재도 이에 대한 대처가 적극적이지 않았는데 여가부가 사라지면 대체 어떻게 될까요. 복지부가 아무리 선의를 갖고 있다고 해도 여가부가 복지부 산하가 된다면 다른 복지 정책에서 후순위로 밀리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출처 - MBC

 

외신들 역시 윤석열 정부의 여가부 폐지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여가부 폐지 소식과 관련해 《텔레그래프》는 한국이 OECD 국가 중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크다고 보도했고 《가디언》은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하는 '성 격차 지수(Global Gender Gap Index·GGI)' 순위에서 조사 대상 국가 146개국 중 한국은 99위를 기록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출처 - 여성신문

 

WEF는 2006년부터 세계 각국의 성평등 상황을 교육·건강·경제·정치 등 부문별 여성과 남성 격차를 지수로 환산해 순위를 발표해왔습니다. 국가 내 여성과 남성 간의 격차만 보고 평가하는데요, 한국의 성 격차 지수는 0.689(1에 가까울수록 평등)로 146개국 중 99위로 지난해 발표와 비교해 0.002점 상승했고 순위도 3계단 도약했으나 여전히 하위권입니다. 우리나라에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윤석열과 국민의힘의 주장과 대치되는 상황이죠. 여가부를 폐지하면 여권이 더 신장된다는 생각은 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건지 모르겠군요.

 

출처 - 한겨레

 

이 모든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오히려 윤석열 정부의 개편안을 두둔했습니다. 여성 문제를 가장 민감하게 다뤄야 하는 부처의 장관이 말이죠. 김현숙 여가부 장관 지난 10월 10일 여성계를 대상으로 정부조직개편안과 관련한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이때 여가부 폐지에 찬성하는 여성단체만 초청하고 반대 의견을 내는 단체는 부르지도 않아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죠. 결국 지난 10월 20일 김현숙 장관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여가부 폐지에 반대해온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단체연합, YWCA연합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소비자연합, 전문직여성 한국연맹 등과 간담회를 진행했습니다만, 이상하게도 비공개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출처 - 뉴스1

 

김현숙 장관과 간담회를 마친 후 6개 여성단체 대표들은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민원실 앞에서 여가부 폐지를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여가부 폐지를 전제로 한 의례적인 설명회"였다고 비판했습니다. 아울러 간담회 개최 명목이 '의견 청취'였지만 여성단체들은 한목소리로 "우리 의견을 듣는 자리가 아니었다"라고고 강조했습니다. 이들 단체는 여가부와의 협의를 통해 개정안을 철회하는 것은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향후 법 개정을 위한 국회 논의 과정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한편 지난 10월 15일 서울 도심에서는 195개 여성, 시민, 노동, 사회단체 주최로 여성가족부 폐지안 규탄 전국 집중 집회가 열렸습니다. 윤석열이 대선 때부터 여성 인권을 정쟁의 도구로 삼고 국민을 기망해온 것과 급기야 여가부를 폐지하기로 한 것을 규탄하는 자리였습니다. 윤석열이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여가부 폐지는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인정하다시피 '이대남'의 지지를 얻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컸죠. 일부 의견을 국민 전체의 의견인 것처럼 침소봉대하다 여가부 폐지까지 이르렀습니다. 

 

출처 - 한국여성의전화

 

2022년 10월 4일 전국 286개 여성시민사회단체가 연대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여성가족부 폐지'에 반대하고 여성가족부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국내외를 불문하고 결집하여 정부와 국민의힘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면서 "수만 명의 개인, 전국 643개 여성시민사회단체, 116개 국제시민사회단체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 직후 '여성가족부 폐지' 반대 입장을 밝혔고, 이후 더 다양한 주체들과 함께하며 대응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출처 - 뉴스1

 

지난 10월 25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의 여성가족부 등 소관기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여가부 폐지에 반대하는 손팻말을 내걸었습니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여가부 폐지에 반대하는 손팻말을 내걸고 김현숙 장관의 퇴장을 요구했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이에 반발하며 국정감사가 시작되지도 못한 채 감사가 중지되기도 했죠. 국민을 갈라치기해 이익을 취하려는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전면 투쟁을 부르고 있습니다. 세계적 망신 자초하는 이들의 만행을 묵과해선 안 될 일입니다.

"선생님, 메갈이죠?"
"선생님도 페미나치 아니에요?"

 

20대 여성 교사 세 명 중 두 명이 학교에서 페미니즘 백래시에 해당하는 조롱이나 공격을 경험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피해를 보고도 과반이 2차 가해 등을 우려해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출처 - 한국일보

 

지난 9월 9일 발표된 <학교 내 페미니즘 백래시와 성희롱 성폭력에 대한 교사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교사의 34.2%(여성 37.5%, 남성 19.6%)가, 20대 여성 교사 중에서는 66.7%가 최근 3년간 백래시(페미니즘에 대한 보복성 공격)를 당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같은 여성 교사라도 연령대가 낮을수록 백래시 피해 경험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는데요, 백래시 가해자는 다수가 학생이었으며(66.7%), 그 뒤로 동료 교사, 학교 관리자 순이었습니다. 

 

출처 - 교육희망

 

사람들의 왜곡된 성인지, 언론의 클릭 장사를 위한 여성혐오 가짜뉴스 기사, 이대남(20대 남성)이 표가 될 것 같으니 젠더 갈등을 부추기며 이들을 두둔해온 정치권 등 우리 사회에서 백래시가 해악을 끼치는 데는 다양한 요인이 있습니다. 지난여름 올림픽 9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한 우리나라 여자 양궁의 스타인 안산 선수를 둘러싼 페미 논란만 봐도 이를 알 수 있죠. 

 

출처 - 연합뉴스

 

어떤 누리꾼이 왜 그렇게 머리를 자르냐고 물었는데요, 이에 대해 안산 선수가 그게 편해서라는 답을 달았습니다. 대수롭지 않은 문답이었죠. 그런데 갑자기 남초 커뮤니티에서 안산이 페미인 증거 찾기 놀이가 벌어졌습니다.

출처 - KBS

 

'숏컷 머리'가 페미의 증거라는 억지부터 '여대 출신'인 것도 페미의 증거이고 '마마무라는 가수를 좋아하는 것'도 페미의 증거라고 우기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SNS에 '웅앵웅'과 '오조오억년' 등의 표현을 쓴 것을 두고 페미의 증거라고 들이대기도 했죠. 이런 반지성주의적인 행태에 많은 국민이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면서 안산 선수를 응원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안산 선수는 무사히 결승전을 마치고 3관왕이 되었죠. 그러나 도쿄올림픽이 끝난 지금까지 젠더 갈등을 기반으로 하여 페미니스트를 낙인찍는 행위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출처 - 제민일보

 

전문가들은 이런 낙인찍기가 놀이처럼 퍼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언론이 일부 남성들에게 잘못된 효능감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일전의 '남혐 손가락 논란'을 생각해봅시다. 이제는 존재하지도 않는 메갈리아의 손가락을 가져와 그때의 메갈들이 업계 곳곳에서 페미니즘 사상을 퍼뜨리려고 암약한다고 우기는 주장을 언론은 마치 진짜인 것처럼 선정적인 보도를 일삼았습니다. 이 때문에 GS리테일은 사과하고 포스터를 삭제했고 스타벅스 역시 손가락에 대한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이들 기업이 정말 페미니즘을 유포하려고 이런 광고를 했을까요? 그럴 리 없습니다. 영리 기업으로서 불필요한 논란을 속히 잠재우기 위해 사과문을 올렸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이른바 '남혐 손가락'이라고 우기던 이들에게 자기들의 논리가 옳았기 때문에 기업들이 굴복했다는 효능감을 준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온갖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남혐 손가락'을 찾아 죄다 낙인찍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놀이가 아니라 '사이버 테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출처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이런 반지성주의적 태도는 사람을 하찮은 음모론에 빠지게 합니다. 지난 5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교사 집단 또는 그보다 더 큰 단체로 추정되는 단체가 은밀하게 자신들의 정치적인 사상(페미니즘)을 학생들에게 주입하고자 최소 4년 이상을 암약하고 있었다는 정보를 확인"했다며 "사건의 진위 여부, 만약 참이라면 그 전말을 밝히고 관계자들을 강력히 처벌할 것"을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페미니스트 단체가 일루미나티라도 되는 걸까요? 정부가 모르는 사이에 수년을 암약하며 사람들의 정신을 좌지우지하다니요? 애초 이 정보의 최초 발신지는 국내 최대 규모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의 야구갤러리였습니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페미니즘 백래시를 위해 또 가짜뉴스로 선동하는구나 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음모론 성격의 청원이 하루 만에 청와대 답변 기준인 20만 명의 동의를 받았고 최종적으로 31만 4254명의 동의를 얻었습니다. 

 

출처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논란이 지속되자 교육부는 경찰청에 청원 내용 관련 사실관계 조사를 요청했습니다. 두 달 동안 수사했으나 피의자도 피해자도 존재하지 않는 사건이었습니다. 경찰은 청원인이 올린 웹사이트 내 게시물 작성자의 닉네임 중 경상북도 소재 한 초등학교의 이름이 포함된 것을 확인하고 학교 관계자와 담당 교육청 등을 조사했지만 피해를 본 학생은 없었습니다. 선생님 메갈이냐고 놀려대는 아이들이 정말로 이런 단체가 암약하고 있었다면 옳다구나 하고 교육부나 경찰에 신고를 했을 텐데 접수된 피해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죠. 애초 존재하지 않는 사실을 그저 그렇게 믿고 싶어서 소설을 썼다는 얘깁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전교조가 배후네, 좌파들이 빼돌렸네 하며 음모론에서 헤어나오질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출처 - OBS

출처 - MBC

 

정치권과 언론, 기업 등이 지나칠 정도로 이대남의 눈치를 보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 이익이 크진 않습니다. 애초 20~30대 유권자들은 정치권이 페미니즘 이슈를 다루는 행태 자체를 불쾌하게 여겼습니다. 남성들조차 정치권이 남녀 갈등을 너무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여성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국민의힘의 경우 대선 후보들이 여성을 아예 유권자가 아닌 양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죠.

 

출처 - KBS

 

20대 여성은 같은 세대 남성보다 사회 참여에 적극적인 유일한 세대로 조사되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성평등한 정치 대표성 확보 방안 연구>에 따르면 사회 참여를 시위, 집회 참여와 정당 가입 등 전통적 참여와 해시태그, 청원 링크 공유 등 온라인 참여로 나눠 분석한 결과 대부분의 세대에서는 남성이 여성보다 전통적 참여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집회나 시위에 남자들이 더 많이 나갔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유일하게 20대에서는 이 집회나 시위 같은 전통적인 정치 참여에서조차 남성보다 여성 참여가 더 많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최근 선거에서 젊은 여성일수록 정치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내는데 정치권은 음모론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대남만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방 안에서 꼼짝도 안 하고 손가락 모양이나 헤어스타일을 찾아다닐 시간에 남성을 위한 정책을 생각하고 집회에 참여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 정작 자신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지름길이 아닐까요? 페미니즘 백래시를 그만두고 공격해야 할 대상을 명확히 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남성의 일자리와 부를 뺏는 자들은 여성이 아니라 당신보다 위에 있는 남성일 테고, 당신의 군 생활을 괴롭게 한 건 여성이 아니라 당신의 선임이었던 남성과 국방부였을 테니까요.

 

출처 - 디지틀조선TV

 

성추행으로 시작된 보궐선거가 성차별로 문제를 키웠는데, 그 주체가 정치권이라는 게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여성 정책이 성차별 극복을 위한 방책이 아닌 편향된 혜택이란 시각과 지금 세대 여성에 대한 차별 수위가 낮아지면서 남성이 되레 차별받게 되었다는 논리. 여성 할당제를 폐지하고 군 가산점제를 부활시키면 젊은 남성들의 권익이 향상될까요? 이에 호응하는 이대남이 많을수록 문제 개선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불필요한 젠더 갈등만 유발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때입니다. 

 

출처 - 백악관

 

청년실업처럼 우리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던 다른 나라에서는 갈등을 부각하기보다 대안을 마련하는 실용적인 접근을 했다는 점을 유의해서 봐야 합니다. 유럽연합은 청년보장제도(Youth guarantee)를 채택해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을 도왔고,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가 청년 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부처별로 정책조정위원회를 꾸렸습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제45대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 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번 선거에 처음으로 참여했고 결과에 실망했을 수 있는 젊은이들에게 저는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절대 냉소에 빠지지 마십시오. 변화를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라며 희망을 얘기했습니다. 

 

출처 - MBC

 

우리의 현실을 들여다봅시다. 일자리와 소득, 주거 등 사회·경제적 문제는 20대만의 이슈가 아닙니다. 이런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특정 세력을 향한 적대감을 드러내어 사회의 균열을 유발하는 정치인을 믿지 마시길 당부합니다. 정치는 희망을 희망을 이야기하고 정책으로 이를 실현해야 합니다. 벨 훅스는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란 책에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장내기 위한 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은 생생하게 살아서 숨쉬고 있다. 비록 대중 기반의 운동 역량은 갖추지 못했지만 그러한 방향으로 운동을 새롭게 시작하는 게 우리의 첫번째 목표다. 우리 삶에서 페미니즘 운동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선구적인 페미니즘 이론은 우리가 살아가는 자리, 우리의 현재를 고심하게끔 끊임없이 생산되고 재생산되어야 한다. 여성과 남성은 젠더 평등이라는 목표에 있어 큰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자유를 향한 이러한 전진은 더 멀리 나갈 힘을 줄 것이다. 우리는 용감하게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고, 페미니즘 원칙들이 우리의 공적 사적 삶의 모든 영역을 아우를 미래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페미니즘 정치의 목표는 지배를 종식하여 우리가 있는 그대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게끔 우리를 해방하는 것이다. 얼마든지 정의를 사랑하고,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말이다.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페미니즘은 기존 남성 중심 사회에 도전했습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별 구분에서 벗어나 약자를 위한 정치를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페미니즘은 여성 인권 향상에 국한된 사고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사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인식을 근거로 이제 우리가 정치인들에게 물을 때입니다. "누구를 위한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가?"라고 말입니다.

4.7 재보궐선거의 여파로 다시 한번 여성 징집과 연관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여성도 징병 대상에 포함시켜 주십시오' 청원은 이미 15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습니다. 국방부는 사회적 합의가 먼저라고 선을 그었습니다만, 이 논란은 다른 청원으로 이어졌습니다. '여성징병 대신에 소년병 징집을 검토해 주십시오'라는 청원입니다. 한국전쟁 때도 학도병이 있었던 걸 감안해 병력 자원이 부족하다면 중고등학생도 징집하라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출처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이 청원을 올린 이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정신이 온전한 상태가 아닌 건 분명합니다. 지구 어딘가에서 갈등과 내전 등의 상황에 내몰려 죽어가고 있을 소년병 문제를 생각한다면, 국내의 젠더 이슈와 관련하여 자극적으로 소비되어서는 안 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청원에 대해 동의를 주도하는 남초 커뮤니티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페미가 역풍을 맞게 하려는 것이죠.

 

출처 - 부산일보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인 한국에 살면서 병역 의무와 관련하여 억울함을 느끼는 남성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군복무를 마친 분들이라면 국방부와 군대가 사람을 어떻게 굴리는지 경험하셨을 테니 긴말이 필요 없겠지요. "군대 갈 땐 국가의 아들, 사고 날 땐 당신의 아들"이라는 분노 섞인 표현이 괜히 나온 건 아니겠죠. 또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 가운데에는 일본군과 군부독재를 거치며 군대에서 유래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전히 군대에서 학습되는 것들도 많고요. 하지만 군대 내에서는 국가를 위한 다는 명분으로, 제대한 뒤에는 조직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치장되곤 합니다. 사실 이런 문제는 군대를 정상화하자거나 입대를 보이콧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국가와 국방부를 상대로 싸워야 할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그런데 소년병 징집 청원을 들먹이며 여성도 군대 가라는 식으로 싸움의 방향을 잘못 잡으니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죠.

 

 

리로이 존스의 지적대로 노예 생활이 길어지면 노예들끼리는 쇠사슬을 자랑거리로 삼습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자신을 구속하는 압제자를 상대로 사슬을 끊어내려고 싸우는 게 정상인데도 말이죠. 이처럼 '내가 군복무를 하니 너도 군복무를 해야 한다는 식의 병역 의무 논란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누구나 흔들리며 페미니스트가 된다》의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성들이 성평등을 외칠 때마다 남성들이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얘기가 바로 '군대' 문제이다. 군복무는 기간이 정해져 있는 반면 성차별을 평생에 걸쳐 일어나는 문제인데, 이둘을 과연 대등한 문제로 볼 수 있을까? 과연 여성이 군대에 의무적으로 가게 된다고 한들 성차별 문제가 해소될 수 있을까? 나는 아닐 거라고 본다. (중략) 평등해지기 위해서는 여성이 남성과 똑같아져야 하는 것도, 특별한 배려를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남성이 기준이 되는 시스템을 다른 측면에서 바로보고 이를 해체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더 큰 피해를 보고 있다는 현실적인 판단 위에서 남성들이 억울함을 주장하는 편이 옳다고 봅니다. 이는 남성이 피해를 보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핵심은 우리 사회가 지극히 남성을 '기본값'으로 놓고 있는 남성 중심주의 사회이며 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모두에게 유익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비단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지금의 세계가 여성 착취의 기반 위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출처 - MBC

 

현실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지난 4월 초 하나은행에서 벌어진 말도 안 되는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하나은행 지점장이 대출 상담을 한 여성 고객을 식당으로 불러 술을 따르라고 강요했던 사건 말입니다. 상담을 해주겠다는 얘기에 여성은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서 혹시라도 대출 승인이 될까 싶어 기뻐하며 나갔다고 하죠. 그런데 지점장은 횟집에서 고객에게 반말로 술을 따르고 마시라고 강요했습니다. 어처구니없게도 지점장은 여성 고객을 접대부로 쓰려고 했던 겁니다. 여러 정황상 그 지점장은 대출을 미끼로 한두 번 여성 고객을 농락했던 게 아닐 겁니다. 일이 커지자 지점장은 자기 부인까지 앞세워 용서를 빌게 했습니다. 비겁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죠.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운 상황에서 생계를 위해 대출에 기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한둘이 아니겠지요. 그런데 같은 고객인데 접대부 취급을 받는 일은 거의 여성에게만 일어납니다. 이런 사회가 과연 정상적일까요?

 

출처 - KBS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장경훈 하나카드 사장이 공식 회의 자리에서 "카드는 룸살롱 여자가 아닌 같이 살 아내를 고르는 일"이라는 발언을 해서 논란이 일자 결국 물러난 일 말입니다. 하나은행과 하나카드 사건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낮은 성인지 감수성과 미흡한 인권 의식을 가진 남성들이 권력과 위계를 이용하여 여성을 희롱하고 농락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건만 우리 사회는 이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남성 중심주의 사회라는 것입니다.

 

출처 - JTBC

 

지난 3월 논란이 불거진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은 또 어떻습니까? 동아제약은 면접 자리에서 여성 지원자에게 여자는 군대 안 갔다 왔으니 남자들보다 월급을 적게 받아야 한다고 운운했습니다. 이 질문은 공통 질문도 아니었고 직무와도 관계가 없었는데 왜 이 질문을 굳이 여성 면접자만 받아야 했을까요? 이로 인해 불매 운동이 불거지자 동아제약은 인사팀장을 보직 해임하고 정직 3개월 처분을 내렸다고 하죠. 그저 면접관 개인의 일탈로 꼬리를 자른 겁니다.

 

출처 - 뉴스1

 

반면 성추행 가해자들과 2차 가해자들은 잘 먹고 잘 삽니다. 안희정 전 지사에게 성폭행 피해를 당한 김지은 씨를 모욕하는 댓글로 벌금형이 확정된 안희정 전 지사의 측근은 서울 송파구 정무직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죠. 올해 1월부터 송파구 정책연구단 팀장, 6급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판결까지 나온 성폭행범을 비호하고 본인 또한 2차 가해로 벌금형으로 유죄를 받았는데 민간 기업도 아닌 공무원으로 다시 일할 수 있다니 기가 막힙니다. 상황이 이러니 아무리 선량한 남성이 많다고 한들 여성들이 이 사회에서 기본적으로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요? 방어운전을 잘하는 운전자가 도로에 많다 해도 몇몇 난폭 운전자들 때문에 움츠러드는 경험은 다들 해보셨을 줄 압니다. 그러니 대부분의 남성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쉬쉬하며 넘길 일이 아니라 구조적인 진단과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이 아닐까요? 

 

출처 - MBC

 

여성 혐오 반달리즘의 한 형태는 지난 3월 세종대 철학과 온라인 수업에 난입한 외부 남성들의 분탕질에서도 드러났습니다. 보겸의 '보이루'가 여성혐오 표현이라는 논문을 쓴 윤지선 교수의 강의였습니다. 신 남성연대라는 유튜브를 비롯해 일베 등 여성 혐오에 사로잡힌 남성들이 온라인 수업에 침입해 온갖 욕설과 여성 혐오 용어를 쏟아내며 수업을 난장판으로 만들었습니다. 경찰은 모욕, 업무방해,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온라인 수업을 이용한 여성 혐오적인 반달리즘이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도 똑같이 벌어졌던 터라 걱정이 더 커집니다.

 

출처 – 노컷뉴스

 

여기에 더해 '허버허버, 오조오억개' 등 SNS에서 쓰이던 용어들을 갑자기 '남혐 용어'로 규정하며 공격하는 모습을 보면 대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건지 눈앞이 막막해집니다. '김치녀, 된장녀' 등은 명확하게 여성을 비하하는 의미로 쓰기 위해 일베에서 생겨난 용어이지만, '허버허버'는 2019년부터 쓰인 신조어로 당시 중앙일보 네이버 블로그 포스트에서는 해당 단어가 '급히'라는 뜻의 영단어 'Hubba-hubba'에서 유래했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오조오억개' 역시 한 팬이 아이돌 멤버를 찬양하는 댓글에서 발전한 것이고요.

 

출처 - JTBC

 

전문가들은 극단적인 혐오에 기반한 젠더 갈등이 청년 세대의 잘못된 공정성 문제와 연결돼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 공정성은 사회의 모든 것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능력 지상주의를 추구하는 것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애초 남성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등하게 돌려놓자는 움직임은 남성들로서는 당연히 누려왔던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당연해지지 않는 세상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치 노예제도가 사라지자 자신들의 재산을 국가가 강탈해갔다고 분노하던 노예 주인들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기울어진 운동장 시절의 잣대로 공정성을 주장하면서 군복무 문제를 젠더 갈등으로 비화시키는 측면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잘못된 공정성 문제로 인한 갈등은 여성을 넘어 성소수자, 장애인, 저학력자,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해 점점 더 퍼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론을 비롯한 정치권은 이 갈등을 해결하기는커녕 논란을 부추기는 실정입니다. 돈과 권력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없는 자인 우리는 각자의 사슬 자랑은 그만하고 '사슬을 끊기 위한 연대'를 시작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여성 혐오와 젠더 갈등을 넘어 '약자를 위한 연대'로 말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성 소수자에 대한 인권 의식이 어느 수준인지 명확히 드러난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강제 전역 조치를 당한 변희수 하사와 숙명여대 입학을 스스로 포기한 한 트렌스젠더가 그 사례였죠.


출처 - 뉴시스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했다는 이유로 군에서 강제 전역을 당한 변희수 하사가 지난 10일 법원에서 정식으로 여성임을 인정받았습니다. 청주지방법원에서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별을 정정하는 법적 허가를 받은 겁니다. 법원 결정문 내용을 보면 변 하사의 성장 과정, 호르몬 치료와 수술을 받게 된 과정, 수술 결과의 비가역성, 어린 시절부터 군인이 되고 싶어 했던 점, 앞으로도 복무를 희망하는 점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인정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뉴스1


문제는 국방부가 고환 및 음경 결손 등을 이유로 변희수 하사를 강제 전역시켜버렸다는 점입니다. 변 하사는 이에 불복하여 현재 행정소송 중이죠. 남성, 여성이라는 구분을 떠나 같이 군 복무했던 전우들의 신망이 두텁고, 앞으로 함께 복무하게 될 여군 역시 아무 문제가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는데도, 국방부는 막무가내였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법원은 육군 참모총장에게 성별 정정 신청에 대한 법원 판단이 나오지 않은 시점에 변희수 하사를 남성으로 규정하고 장제 전역시키는 건 부당하다며 전역심사위원회를 연기하고 적어도 성별 정정에 대한 법적 판단이 나올 때까지는 기다리는 게 바르다고 권고했지만, 국방부는 다른 국가 기관의 권고를 모두 무시하고 강제 전역 결정을 내렸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TV

 

병력 자원이 줄어가는 마당에 군 복무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고, 능력이 출중한 사람을 단지 '남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쫓아내려고 혈안이 된 국방부는 이런 자기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고환 및 음경 결손 등이 강제 전역의 이유가 된다면, 체력이 떨어지고 늙어서 성 기능에 문제가 온 늙은 장성들부터 강제 전역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시대에 뒤떨어져도 너무 뒤떨어진 군의 남근숭배와 성차별 그리고 여성혐오는 이 시대에 꼭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현재 변희수 하사는 성별 정정이 끝난 후 여군 재입대를 추진 중이라고 하죠. 국방부는 법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는데 관련 규정을 검토하겠다는 말로 시간을 끌고 있는 상황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우리 사회에서 성 소수자에 대한 인권 의식이 어느 수준인지 명확히 드러난 다른 사건은 숙명여대에 입학하기를 원했던 한 트랜스젠더에 학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법적으로 여성으로 성별 정정이 끝난 상태에서 숙명여대 입학을 지원했으나 이번에는 숙명여대 재학 중인 일부 재학생들의 여론에 떠밀려 스스로 입학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대개 법이 가장 나중에 바뀌어 보수적이라고 하지만 일부 대학생들의 트랜스젠더 입학 지원자에 대한 사고는 법원보다도 훨씬 뒤처져 있을 정도로 보수적이었습니다. 2006년 대법원판결 이후 우리 사회에서 트랜스젠더에 의한 법적 성별 정정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2013년부터는 성전환 수술을 받지 않은 성전환자에 대해서도 성별 정정을 허가하는 결정이 7차례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단순히 성기 유무 등 신체 조건을 떠나 개인의 인식이 성 정체성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출처 - 프레시안(조성은)

 

그런데 우리나라 여대의 입학 정책은 법적인 여성만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번 숙명여대 사건은 법 위에 여론이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가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여대가 생겨난 이유가 차별받는 여성의 교육을 위한 장을 마련하려 했던 것이며 여전히 성차별적인 우리 사회에서 여성 교육의 큰 보루로 작용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한편 이번 사건이 언론의 책동으로 트랜스젠더와 여성주의라는 을과 을의 전쟁으로 비화한 측면도 있습니다. 소수의 의견이 언론에 의해 과다 대표되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적어도 '성 소수자를 차별하는 여성주의' 입장에 관해서는 판단이 엇갈렸습니다. 

 

출처 - 프레시안(조성은)

 

여성주의 입장이라면 '스스로 여성이 되기로 한 사람들'에 대해 연대의 뜻을 표명하는 게 맞지 않나 싶죠. 찬반 의견이 나뉜 숙명여대에서 <당신은 존재 자체로 가치있다>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대자보를 통해 트랜스젠더 A 씨의 입학을 환영하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성전환자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향유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문을 서두에 제시하며 A 씨 입학을 지지한 것이죠. 미국, 일본 등 여대가 남아 있는 국가에서 트랜스젠더 입학 정책은 세부 사항이 다를지 몰라도 입학 자체를 막지는 않고 있습니다. 트랜스젠더 여성뿐 아니라 자신을 남성이나 여성이라는 성별 이분법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논바이너리'의 입학도 허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생물학적 여성이지만 자신을 트랜스젠더 남성으로 정체화한 사람의 입학을 허용합니다. 우리보다 여성에 대한 억압이 심하다고 알려진 일본에서조차 여대 입학은 법적 성별이 아닌 개인의 인식을 기준으로 판단하여 허용하고 있죠.


출처 - 뉴시스


법적으로 여성이 된 사람을 차별했다는 점에서 국방부도, 숙명여대도 시대에 맞지 않는 잘못된 판단을 했습니다. 이번 두 사건을 계기로 트랜스젠더뿐 아니라 논바이너리 등 더욱 폭넓은 성 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히 일어나 앞으로 이런 문제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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