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법원 "방응모 전 조선일보 사장, 친일파 맞다"
(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01222_0007011269&cID=10203&pID=10200, 뉴시스 )

방응모 전 《조선일보》 사장의 친일인명사전 등재를 막기 위해 소송을 걸었던 《조선일보》 명예회장 방우영이 일부 승소했습니다. 승소인데 친일파가 맞다니 무슨 소리냐고요? 재판부가 일부 승소 판결을 한 건 단 하나의 혐의에 대해서만이었기 때문입니다.

"1944년 조선항공업 창립발기인으로 활동한 부분에 대해 친일행위로 판단한 부분을 취소하지만 나머지 활동에 대해서는 친일 행위로 인정된다"

1933년 《조선일보》 사장으로 취임한 방응모는 국민총력조선연맹과 조선임전보국단 등에서 이사직을 맡으며 친일활동을 했죠. 국민총력조선연맹은 중일전쟁 이후 일본이 조선 민중에 대한 강력한 통제와 후방 활동 등을 처리하기 위해 만든 관변단체입니다. 또한 이름만 보아도 알 수 있다시피 조선임전보국단은 '전쟁에 대한 임전태세를 확립하여 보국하자'라는 취지를 담은 친일어용단체입니다. 태평양전쟁 지원과 일본의 황민화 교육에 선도적 역할을 했던 곳이죠.

그뿐입니까? 1937년 경성방송국 시국강연에서는 "일본제국은 극동 평화를 확립시키려 한다"는 내용의 강연을 하고, 1938년 조선총독부의 언론통제정책에 협조하기 위해 조직된 조선춘추회의 발기인 겸 간사로 활동하기도 했다죠.

이런 곳의 요직을 맡으며 활발한 활동을 했음에도 친일파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행위는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만큼 뻔뻔한 일이 아닐까요?

아무튼 《조선일보》 명예회장 방우영의 이 '일부 승소'로 그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친일 활동에 대해서는 속칭 제대로 '인증'한 꼴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이 정부 들어 그들이 특히나 웅변하던 '법치주의', 법원의 공신력으로 말이죠.

첫눈이 내렸지만 휴일 잘 보내셨는지 여쭙기가 무서운 주말이었습니다. 23일 군인 두 명과 민간인 두 명의 목숨을 앗아간 연평도 포격전의 상처는 다 아물지도 못했고, 28일 일요일부터 시작된 한미연합훈련 시에는 북측에서 또 한 번 포성이 들려와 또다시 대피령이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소리로만 그치고 대피령도 곧 해제되었지만요.

주말 동안 인터넷에서 재밌지만 의미심장한 사진들을 보았습니다. 23일 연평도 포격전을 처음으로 알린 연합뉴스의 사진을 원본으로 좌우,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색감과 프레임 등을 바꿔버린 1면 사진들입니다. 《경향신문》《한겨레》《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등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일간지와 원본이 된 《연합뉴스》의 사진이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네요.

원본과 비교하자면 《한겨레》의 경우 원본보다 다소 연기가 덜해 보이고, 《중앙일보》의 경우는 마치 핵전쟁이라도 일어난 거 같아 보입니다. 사실 언론사도 기업으로서의 속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자사 신문의 구독자 취향을 현실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다는 점을 압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언론사별로 편집 기조라는 게 존재한다는 것도요.
그럼에도 이런 중대한 사건까지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현실만을 보려 하고 또 그런 현실만을 골라 의도적으로 보여주려는 일에 언론이 앞장서는 행태는 최소한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요?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노출한 프레임을 통해 그 의도대로 현실이 확대, 재구축 되도록 하는 행위가 과연 언론과 기자의 본분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는 사태 해결을 위한 객관적인 현실 파악에도 혼란을 주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위 사진뿐 아니라 각 언론사의 기사 역시 각자 자기 입장을 대변하기 급급한 글이 대부분이었죠.

타벨은 록펠러의 삶을 조사하면서 한 개인 안에 선과 악이 공존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록펠러를 오직 선한 존재나 혹은 악하기만 한 존재로 한정하는 일은 전기적인 죄악 그 자체였다. 타벨은 록펠러의 생을 연대기적으로 기술하면서 때로 인정사정없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지만, 그의 사업적 성취를 선이나 악이라는 감상적인 틀에 맞춰 왜곡하는 오류를 범하지는 않았다. 타벨은 록펠러에 대해 쓴 책의 마지막 장 제목을 '실로 대단한 스탠더드 오일 The Legitimate Greatness of the Standard Oil Company'이라고 붙이기도 했다.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 어떻게 한 명의 저널리스트가 독점재벌 스탠더드 오일을 쓰러뜨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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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비행이 출간한 책《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에 나온 위 내용처럼 저널리즘과 저널리스트가 견지해야 하는 기본 중의 기본은 사실에 입각한 정확한 정보 전달이 아닐까요? 그것을 토대로 토론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건 바로 독자들의 몫일 겁니다. 그러니 적어도 독자를 현혹하는 일이 그들의 임무는 아니겠지요. 특정 계층의 나팔수라 불리기 싫다면, 우리나라 언론은 냉정함을 지키며 한 번쯤 초심으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휴일
에 인터넷을 하다가 재밌고 생각해 볼만한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연애가 들어가는 드라마를 보며 빼놓을 수 없는 바로 그 단어, ''와 '그녀'에 관한 이야기죠.

'그녀'가 국적불명의 단어라는 것 아시나요?
( http://www.kormedi.com/news/culture/korealanguage/1198998_3007.html, KorMedi 뉴스 )

원래 우리나라 말에 그녀란 말은 없었고 성별 구분 없이 라는 3인칭 대명사를 두루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영어 쉬She를 번역한 일본어 카노죠彼女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우리 말에 그녀라는 국적불명의 단어가 생겼다고 합니다.

상당수 국어학자가 그녀를 퇴출하고자 노력했고 그 결과 많은 신문사에서 그녀라는 표현을 될 수 있으면 쓰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는 신문에서 자주 볼 수 있던 그와 그녀의 구분이 언젠가부터 그로 통일되어 가는 것 같네요.

일본어의 잔재와 영어가 범람하는 지금 세상에 바르고 고운 우리 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특히 글로 책을 만드는 저희 생각비행 같은 출판사 입장에서는 더더욱 말이죠. ^_^

다만 여기서 현실과의 괴리가 생기는 일이 문제일 겁니다. 기사에도 실린 국립국어원의 입장을 인용해보겠습니다.

국립국어원은 ‘’라는 대명사 홀로 남녀를 공통적으로 지칭함을 인정하면서도 ‘그녀’라는 말이 쓰이고 있는 현실 속의 풍경을 무시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국립국어원이 발간한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그’는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아닌 사람을 가리키는 삼인칭 대명사, 주로 남자를 가리킬 때 쓴다고 돼 있다. ‘그녀’는 주로 글에서, 앞에서 이미 이야기한 여자를 가리키는 삼인칭 대명사로 돼 있다.

국립국어원의 답변: ‘그’와 ‘그녀’의 쓰임을 모두 인정할 수 있다. 다만 ‘그’는 남성대명사, ‘그녀’는 여성대명사와 같은 대립구조로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아닌 사람을 가리킬 때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지 않고 삼인칭 대명사 ‘그’를 쓸 수 있다. 다만 남자를 가리킬 때 ‘그’가 많이 쓰이고 있으며 ‘그녀’는 사전 뜻풀이에 나오는 대로 주로 ‘글’에서 앞에서 이미 말한 여자를 가리킬 때 쓰인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단어 하나에서도 첨예하게 드러나는군요.^_^;; 아무래도 언어는 언중을 따라가게 되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실제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올라 있듯 그녀가 틀린 말이라거나 국어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말 바로 세우기를 염원하는 지식인들은 "그녀라고 쓴 문장 어디에든 그를 대체해 넣어보면 하나도 문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이런 경우를 한 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얼마 전에 모 일간지에 난 동성애 반대 광고로 유명세를 치른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생각해 볼까요? 이 드라마에는 이성 커플도 나오고 동성 커플도 나옵니다. 이때 모든 대명사를 올바르게 그로 통일했다고 하면 이런 문장이 나올 수 있습니다.

"어제 가 키스했다."

©SBS. All rights reserved

여태까지 흔히 있었던 드라마를 떠올린다면 주인공 남녀 커플의 키스라고 바로 떠올릴 수 있겠지만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남남 커플의 키스도 등장하는 드라마라면 한 문장으로는 어느 커플이 키스를 했는지 알 수가 없게 됩니다. 현재로서는 뉘앙스도 미묘해지죠. 이상윤(남)과 남상미(여)가 키스를 했다는 건지 이상우(남)와 송창의(남)가 키스를 했다는 건지 말입니다.

©SBS. All rights reserved

이런 현상은 사회가 다변화할수록 가속화할 것입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다양해지고 사랑의 형태도 다양해지면서 대명사 하나로는 그 뜻이 명확하지 않은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는 그와 그녀뿐 아니라 모든 단어에 점차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현실이상 사이에서 연애만큼 복잡한 그녀의 사정, 무엇이  정답일까요? 생각해볼 문제라고 봅니다.

* 이는 생각비행 출판사 전체가 아닌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수요일 오후 점심 식사 후 졸음이 몰려올 시간에 쉬어가는 의미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하품하는 사진을 올려봅니다^_^

이 사진을 찍으신 오동명 선생님께서는 저서 《사랑의 승자》에 이렇게 적으셨습니다.

사진을 찍고 나면 한 장을 고르기가 힘든 경우가 있다. DJ는 하품하는 표정이 많았고, YS는 옆을 곁눈질하는 모습이, 정주영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많았다. 사람의 습성은 사진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오동명, <하품>, 《사랑의 승자》, 생각비행, 2010, 22~23쪽.

그리고 인터뷰에서 이 하품하는 사진을 독자들이 보아주기를 바라셨죠. 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하품하는 모습이 바로 지금의 피로하고 고단한 한국 민주주의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하시면서요.

《사랑의 승자》의 사진 중 자신이 찍었지만 아 이건 정말 잘 찍었다, 독자들이 꼭 봐줬으면 좋겠다 싶은 사진을 하나만 꼽는다면?

김대중이 하품하는 사진. 하품을 하면서도 시원하게 하는 게 아니라 막 참으려는 거. 생활감이나 인간 김대중이 묻어나서 좋기도 하지만 그 고단함 자체가 그의 인생과 민주주의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본다. 지금 현 정권 하의 한국 민주주의를 생각해 보라. 재수생들을 공장으로 보내야 된다는 소리나 하고. 그 사람이 인권위원장이었다는 게 어이없다. 좀 나아가면 또 되돌아 가려하고. 선배들이 이루어 놓은 걸 답습해서는 안 된다. 자꾸 뒤로 되돌아가려는 바로 이 시점에 김대중의 역할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중앙일보를 박차고 나온 오동명 사진 기자 - 인간 김대중의 친근함을 사진으로 회고하다( http://adish.tistory.com/485 )>

어제 김재철 사장의 독단적인 불방 결정으로 방영 되지 못 했던 PD수첩 <4대강 수심 6m의 비밀> 편이 약간의 수정을 거친 후 겨우 방송되었습니다. 생각비행도 어제 본방을 사수했는데, 다리 좀 뻗을 만 하니까 다시 고단해지는 한국 민주주의가 가엽더라고요. 언론의 본분인 정부 감시는커녕 자청해서 권력의 시녀가 되어가는 신문, 방송사들을 보며 입맛이 씁쓸했습니다. 최후의 보루인 책이 더 힘내어 버텨야겠구나라는 다짐도 해봅니다.

노곤한 오후 잠 깨기 위한 얘기였는데 너무 무거운 얘기를 해버렸네요. 훈훈하게 꽃에 물을 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모습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오늘 비가 와서 그런지 폭염 속에 시들었던 꽃이며 풀들이 되살아 나는 기분이네요^_^


《사랑의 승자》- 김대중, 빛바랜 사진으로 묻는 오래된 약속( http://ideas0419.com/2 )

생각비행김대중 전 대통령추억이 담긴 사진이나 물건, 인연을 담은 , 추모의 글 등을 모집합니다. 언론을 통한 기록이 아닌 생생한 독자들의 사진과 사연을 모아 2주기엔 더 멋진 사진집을 엮고 싶습니다.

짧은 사연은 댓글로 남기셔도 좋습니다. 개인적인 인연을 담은 글은 트랙백을 이용하시거나 생각비행으로 원고와 사진을 함께 보내주시면 게재하겠습니다. 우리의 바람이 이뤄질 수 있도록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께서는 다음 포스트를 참조해주세요.

[제안] 김대중 대통령과의 추억들을 모아 보는 건 어떨까요? - 김대중 헌정 사진집 프로젝트( http://ideas0419.com/6 )

(1) 약속의 유효기간 - 오동명 님 ( http://ideas0419.com/9 )
(2) 살아계신 것 같아요. - 이은희 님( http://ideas0419.com/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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