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가을비가 마치 장맛비처럼 내리는 아침입니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아침저녁으로 기온 차가 더 심해지겠지요. 날씨가 추워질수록 사람의 온기가 그립습니다. 지난 추억으로 지나간 사람이든, 지금 만나는 사람이든,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그립습니다. 산이 갈색으로 물들고 거리에 플라타너스 잎이 말라 떨어지는 때면 사람이 더욱 그립습니다. 옷을 두껍게 입을수록, 체온의 소중함을 느낄수록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커지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있다면, 아무리 가까운 곳에 있어도 마음의 그리움이 사뭇 커지는 계절입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사람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일은 삶의 가장 큰 부분 중 하나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일은 행복입니다. 약속한 장소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일은 즐거움입니다. 황지우 시인의 얘기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약속 장소에서 기다려본 사람은 압니다. 그 사람이 남자이든 여자이든 누군가를 기다리는 건 설레는 일입니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 내가 미리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시적 화자는 약속 장소에 먼저 나가 기다립니다. 약속 장소로 다가오는 모든 발걸음 소리가 기다리는 대상으로 느껴져 가슴이 떨립니다. 바람에 흩날려 거리에서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러한 느낌은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처럼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감정입니다. 바로 설레는 마음이죠.

약속 시간이 다가올수록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라는 시인의 표현처럼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시간은 점점 가까워집니다. 오기로 약속한 대상을 시적 화자가 기다립니다. 누군가 문을 열면 그 사람일까 기대합니다. 한 사람 또 한 사람 들어올 때마다 “너였다가 / 너였다가 /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고 이내 문이 닫힙니다. 기다림의 기대가 무너질 때 설렘은 아픔으로 바뀝니다.
 
그러다 시적 화자의 마음이 “사랑하는 이여”라는 부분에서 바뀝니다. 수동적으로 더 기다리지 않고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갑니다.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는 반어적 표현에서 시적 화자의 의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약속 장소를 떠나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행위가 현실에서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지난 시간 속으로, 지난 추억 속으로 그 사람을 찾아갑니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시간과 추억으로 가는 시간도 길어집니다.

마침내 추억의 시간이 기대의 시간으로 다시 바뀝니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라는 표현에서 느낄 수 있듯, '설렘'에서 '애림'으로 바뀌었던 시적 화자의 심경이 다시 '기대감'으로 변화합니다. 이제는 기다리는 시간이 크게 상관없습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처럼 그 사람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적 화자가 다가가는 만큼 기다리는 대상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느새 기다리는 행위가 만나러 가는 행위와 같아집니다. 가슴의 쿵쿵거림은 사랑하는 이를 향한 설렘으로 더욱 커집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는 표현처럼 그동안 마냥 기다리던 수동적 행위가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능동적 행위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쿵쿵거리는 가슴으로 여러분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니면 쿵쿵거리는 가슴으로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습니까?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만큼 설레고, 애리고, 다시 설레는 감정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은 없겠지요. 깊어가는 가을, 연필로 꾹꾹 눌러 편지를 쓰시기 바랍니다. 앞서 소개한 시인의 마음처럼 '기다림'의 행위를 '만나러 가는 행위'로 바꾸어줄 소중한 도구가 될 테니까요.

황지우

195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광주일고를 거쳐 서울대 인문대 미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연혁(沿革)>이 입선하고, 《문학과지성》에 <대답 없는 날들을 위하여> 등을 발표하며 시단에 등장했다. 하우저의《예술사의 철학》 등을 번역하며 《시와 경제》 동인으로도 참가했다. 
첫 시집이자 제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는 전통적 시 관념을 부수면서 기호, 만화, 사진, 다양한 서체 등을 사용하여 풍자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또한 《나는 너다》에는 화엄(華嚴)과 마르크스주의적 시가 들어 있는데, 이는 스님인 형과 노동운동가인 동생에게 바치는 헌시다. 
다른 예술에도 관심이 많아 1995년에 아마추어 진흙조각전을 열기도 하고, 미술이나 연극의 평론을 쓰기도 했다. 1991년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게눈 속의 연꽃》은 초월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노래했으며,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는 생의 회한을 가득 담은 시로 대중가사와 같은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시집이다. 여기에 실린 <뼈아픈 후회>로 김소월문학상을 받았고, 같은 시집으로 제1회 백석문학상을 받았다.
시집으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나는 너다》《게눈 속의 연꽃》《저물면서 빛나는 바다》《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등이 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3명의 주요 대통령 후보가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복지와 경제민주화’입니다. 세 후보 역시 이와 관련된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동안 정치권이 외면하던 복지와 경제민주화 정책이 이렇게 이슈가 된 까닭은 지난 시절 국민에게 희생만 강요한 성장 위주 정책이 더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른 정치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어야 하건만 지금까지의 정치는 절망만 확인시켜주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정권은 바뀌어도 대다수 국민의 삶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갈수록 삶의 질은 떨어지고 미래는 암울하기만 합니다. 이젠 정치인들의 희망 섞인 말에 잠시 기대했다가 이내 절망을 재확인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

누구의 입김인가 이 안개는 
살찐 死者들의 입김이지, 이 안개는
꼭꼭 숨어라 친구들이어
머리카락 보인다 이웃들이어
그리하여 잠들라
낮의 일과 불투명한 노력들은
우리들 자신의 몫이 못 되고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이
허락되기 어렵다 하더라도
피곤과 우울은 우리의 것이다!
편히 잠들라 내 이웃들이어
각성은 눈뜨면 못 쓰고
잠조차 뿌리내릴 수 없는 
아, 이땅의 가난한 영혼이
뜬눈으로 그대의 잠을 지키고 있다.

이미 많이 가진 자들이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몰려다닙니다. 온갖 행패를 부리지만 누구 하나 말리질 못합니다. 오히려 말리려는 이웃들만 피해를 보고 다칩니다. 그들에겐 법이 소용없고, 경찰도 검찰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수사하던 검찰은 그들의 회사 임원으로 옷을 갈아입고, 공무원은 돈으로 매수됐습니다. 광고의 달콤함에 빠져버린 언론은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급급하고 정치인들 역시 눈치만 살피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많은 사람이 절망하고 아파하고 있지만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없어 답답하기만 합니다. 오늘 대한민국의 모습입니다.


1978년에 출간된《나는 별아저씨》에 실린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 이라는 시 속의 사회와 오늘날 1퍼센트가 지배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다르지 않습니다. “누구의 입김인가 이 안개는 / 살찐 死者들의 입김이지, 이 안개는 / 꼭꼭 숨어라 친구들이어 머리카락 보인다 이웃들이어”라는 표현에 드러났듯이 ‘살찐 死者들의 입김’은 안개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안개는 마을을 뒤덮습니다. 그 안개에 갇히면 죽습니다. 死者의 입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자는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숨기를 권합니다. 
死者는 보통 死者가 아닙니다. 살찐 사자입니다. 지금도 살찐 死者가 대한민국의 99퍼센트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낮의 일과 불투명한 노력들은 / 우리들 자신의 몫이 못 되고 /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이 / 허락되기 어렵다 하더라도 / 피곤과 우울은 우리의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노동자의 몫이 부족한 나라, 밝은 미래가 오리라는 불확실성 속에서 과연 노력이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은 나라, 99퍼센트가 꿈꾸는 희망이 1퍼센트의 희망에 무참히 짓밟히는 나라에서 힘없는 이웃과 친구들에게 남은 것은 ‘피곤과 우울’뿐입니다. 

살찐 死者들이 1퍼센트가 돼서 99퍼센트에게 절망을 안기고 있지만 ‘너희도 희망을 가지면 우리처럼 될 수 있어’ 하고 언론이, 공권력이, 정치가들이 거짓을 근사하게 포장하는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이 발표된 1970년대 말을 지나 수십 년이 흘렀건만 2012년 오늘도 이런 거짓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99퍼센트의 희망을 품은, 우울함과 피곤함에 지친 이들이 서로의 어깨를 안으며 서로 지켜내고 있습니다. “편히 잠들라 내 이웃들이어 / 각성은 눈뜨면 못 쓰고 / 잠조차 뿌리내릴 수 없는 / 아, 이땅의 가난한 영혼이 / 뜬눈으로 그대의 잠을 지키고 있다”는 정현종 시인의 표현처럼 이 땅의 가난한 영혼이 뜬눈으로 살찐 死者로부터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키고 있습니다.
 
시인은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면서도 그 희망이 현실에서 이루어진다고 확신하지는 못합니다. 현실의 희망이 피곤과 우울로 끝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희망을 잃은 이웃들이 편히 잠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믿고 싶기에 시인은 死者의 입김을 피하라고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소리칩니다.

시인은 이 시의 제목처럼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을 이야기하며, 거짓을 쓰러트리는 진실의 힘을 꿈꾸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정현종 시인은 시를 마무리하면서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기 위해 말없이 현실의 벽과 싸우고 있는 '가난한 영혼'이 우울하고 피곤한 이웃의 밤을 지키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거짓 희망을 직접 쓰러트리지 못하는 현실이 못내 답답하지만, 시인의 얘기처럼 거짓 희망에 맞서서 끊임없이 싸우는 이들이 있기에 우울하고 피곤한 몸을 누이며 희망을 꿈꿔봅니다.

이제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정치 이벤트인 만큼 많고 많은 말이 우리를 현혹합니다. 서민 경제를 살리겠다느니,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이룩하겠다느니, 대선 후보자들과 주변 인물들이 세상을 뒤바꿀 것처럼 쏟아내는 말의 홍수에 시달릴 지경입니다. 우리는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말과 행동의 간극을 보며 마음의 진실함을 확인합니다. 99퍼센트의 국민에게 희망을 주겠다고 모두 한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이때에 지키지 못할 사람의 약속에는 속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생각해서 스스로 무엇이 옳은지 분별하는 눈을 키워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정현종
193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재학 시절 대학신문인 《연세춘추》에 발표한 시가 연세대 국문과 박두진 교수의 눈에 띄어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등장했다. 1966년에는 황동규, 박이도, 김화영, 김주연, 김현 등과 함께 동인지 《사계》를 결성하여 활동했다. 1970∼1973년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로, 1975∼1977년에는 《중앙일보》 월간부에서 일했으며, 1977년 신문사를 퇴직한 뒤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부임해서 시 창작 강의를 했다. 1982년부터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에 정년퇴임 했다.
저서로는 시집 《사물의 꿈》《나는 별아저씨》《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한 꽃송이》《세상의 나무들》《갈증이며 샘물인》《견딜 수 없네》 등이 있다. 시선집《고통의 축제》《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이슬》 등이 있으며 시론집《숨과 꿈》과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충만한 힘》 등 다수의 번역서가 있다. 한국문학작가상, 연암문학상, 이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경암학술상(예술부문) 등을 수상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도종환 민주통합당 의원이 있었습니다. 국회의원 도종환보다 시인 도종환으로 훨씬 유명한 그가 세간의 이슈로 떠오른 계기는 편향적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잣대 때문이었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국회의원 신분이 된 도종환 시인의 작품을 ‘정치적 중립성’을 이유로 중학교 교과서에서 삭제하도록 해당 교과서 출판사에 권고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교육평가원의 이러한 삭제 권고의 근거로 “교과서 심사 원칙은 교육의 중립성 유지를 위해 현존 인물(현역 정치인 포함)에 관한 내용을 제외하는 것이었음”이라고 밝혔습니다만, 이러한 주장은 어처구니가 없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박원순 서울시장의 수필 <아무나 가져가도 좋소>도 빠져야 하고, 안철수 교수가 대선에 뛰어드는 순간 <내 삶의 가치>라는 수필도 교과서에서 빼야 할 겁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실제로는 편향적인 교과서 심사원칙을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연 정치가의 기준을 정당에 관련된 인물이나 투표로 선출된 사람으로만 한정할 수 있을까요? 대표적인 뉴라이트 인사로 박근혜 대선캠프에 속한 박효종 교수는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의 공동저자입니다. 그는 5․16 군사 쿠데타를 혁명이라고 떠들고 다닙니다. 정치적 이슈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김동길 교수의 <우리가 이 땅에 사는 이유>라는 글도 교과서 버젓이 실려 있습니다. 한국교육평가원의 기준이 공정하다면 이들의 글은 교과서에 왜 실릴 수 있을까요?


종점

종점에서 버스를 내려 걸어오다
―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골목을 채운 아이들 육이오 노랠 듣는다.
구름은 북으로 기울고 새들은 낮게 나는데
우리 누이들 단발머리 풀풀 고무줄 할 때
양지쪽에 기계충독 오른 머릴 쪼이며
― 원수에 하나꺼지 쳐서 무찔러
쪼그려 앉아 따라 부르던 노래
지금도 도깨비 시장 리어카 끄는 서상사 아저씨
짧은 여름밤은 전쟁 얘기로 흥겨웁고
멋진 군인이 되고파 주먹을 쥐게 하더니
아직도 유월이면 이 증오의 노랫소리 들리고
장마전선은 내일도 걷히지 않으리라 한다.
그땐 어찌하여 말해주지 않았을까.
일방적인 증오가 애국심이 아니라는 것쯤
폭력의 언어와 내용없는 적개심만으로
글짓기 대회 그리기 대회의 상들을 타게 하고
그것은 통일의 방법도 뭣도 못된다는 것쯤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을까.
전쟁은 신나는 일도 스릴과 써스펜스도
아니라는 것쯤 왜 가르치지 못했던 것일까.
어둠은 쉬이 오고 곤청색 산들을 끌며
비구름은 지평선을 넘는데
벽 돌담 아래에 아이들은 모여든다.

도종환 시인의 <종점>이란 작품에서 “일방적인 증오가 애국심이 아니라는 것쯤/폭력의 언어와 내용없는 적개심만으로/글짓기 대회 그리기 대회의 상들을 타게 하고/그것은 통일의 방법도 뭣도 못된다는 것쯤/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을까”라는 구절이 가슴에 남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은 생각하는 힘을 키우기보다는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사실 지금 사회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세대가 이런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고스란히 받은 이들입니다. 지금도 교육현장에서 이러한 주입식 교육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잘 알고 있던 도종환 시인은 오랫동안 학생을 가르쳐왔고 바른 교육을 정립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왔습니다. 적어도 그는 <종점>이라는 시에서 지적한 일방적인 증오심을 키우는 교육, 적개심을 일으키는 교육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나는 민중이니 민족이니 역사니 하는 것을 먼 곳에서 찾지 않는다.
식민지 시절에 앗기우며 한 세월을 보낸 할아버지, 태평양전쟁 말기 남양군도에 징병으로 끌려가 돌아가신 큰아버지, 그 큰아버지와도 싸웠을 군대에 배속되어 분단의 전쟁을 치른 아버지, 소금장수, 이발쟁이, 날품팔이, 농사군 형제들, 언청이, 못난이 누이들,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와 내 이웃의 삶 속에는 생생한 역사와 삶의 아리고 한스러운 흔적들이 흉터처럼 박히어 있기 때문이다.
역사와 민중은 내 가까운 피붙이와 내 자신 속에서 늘 꿈틀거리고 있다. 이 모든 동시대인들의 삶에 몇 발작 비켜서서 자학하고 탄식하며 오만함 속에 또한 신비한 체험 속에만 빠져서 반성문 같은 시, 변명 같은 시만 쓰고 있을 수는 없었다.
시는 삶 속에, 이 땅 위에 튼튼히 뿌리를 박는 서정과 용기이어야 하리라 믿는다.
분단시대 약소민족의 아들로 태어나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 ‘우리가 분노해야 할 것’ ‘우리가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들 속에 서서 튼튼한 시를 쓰고 싶었다."
-《고두미 마을에서》 후기 중에서


시인 도종환은 첫 시집 《고두미 마을에서》의 후기에서 말하는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 ‘우리가 분노해야 할 것’ ‘우리가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에 관한 시를 충실하게 써왔습니다. 전교조가 사회의 이슈로 떠올라 시끄러웠던 때에 전교조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시를 썼고, 사회의 벽이 느껴질 때는 그 벽을 타고 넘을 수 있는 시를 썼습니다.
 
그렇게 사회의 부조리를 정면으로 대면했던 시인 도종환은 이제 국회의원 도종환이 되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정치와 관련 없는 시인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더 힘든 정치인생을 겪어야 할지 모릅니다. 그의 시를 읽으며 자랐던 우리는 이제 시인 도종환이 아닌 정치인 도종환의 모습을 지켜볼 것입니다.

이번에 시인 도종환의 시를 교과서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했던 한국교육평가원의 판단은 정치인 도종환이 쓴 <담쟁이>의 일부분을 문재인이 대선에 참여하면서 인용했고, 정치인 도종환이 문재인 대선 캠프에 합류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담쟁이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이던 2004년에 문학사상사가 펴낸 《나를 매혹시킨 한 편의 시》라는 책에서 함석헌 선생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가 “삶 전체를 돌아보게 하는 화두가 되었고, 살아가면서 풀어가야 할 과제가 되었다”면서 “인생의 지표가 된 이 시를 매일 아침 새롭게 가슴에 새긴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측근 비리가 연이어 터져 나오는 요즘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아니'하며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알뜰한 유혹 물리치게 되는/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로 끝나는 함석헌 선생의 시를 아직도 이명박 대통령이 인생의 지표로 삼고 있는지 의심스럽군요.
  
정치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많은 사람에게 밝힌다는 것은 그 시의 상징적 무게를 등에 업는 것과 같습니다. 새누리당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과 김문수 경기지사는 윤동주의 <서시>를,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를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정치가는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거짓과 진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고들 합니다만, 시의 상징성을 등에 업으려 하는 정치가에게 '시어'는 오만한 거짓을 드러내는 진실의 현미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윤동주의 <서시>중에서)”는 시인의 표현에 맞게 살고 있는지 성찰해야 하며, “숨죽여 흐느끼며/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타는 목마름으로/타는 목마름으로/민주주의여 만세(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중에서)”라는 외침을 과연 실천할 수 있는지 그들은 되물어야 할 겁니다.

2012년은 정치의 해입니다. 많은 사람의 눈과 귀가 정치가의 언행에 쏠려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말과 행동에 책임지는 정치가가 그립습니다. 정치 세력을 따라 호가호위하려는 언론이나 검찰 등 권력층의 행동은 이 더위에 국민을 더 짜증 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도종환
1954년 청주에서 출생하여 충북대 사대 국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77년 청산고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교사의 길과 시인의 길을 함께 걸어오다 1989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되고 투옥되었으며, 1998년 해직 10년 만에 덕산중학교로 복직하여 교사로 재직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청주지부장, 장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충북지회 문학위원회 위원장, 제4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을 지내다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회 위원을 거쳐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제19대 국회의원이 되어 활동하고 있다.

제8회 신동엽 창작기금, 제7회 민족예술상, 2006년 올해의 예술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받았으며 2006년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시집으로 《고두미 마을에서》《접시꽃 당신》《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부드러운 직선》《슬픔의 뿌리》《해인으로 가는 길》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모과》《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사람은 누구나 꽃이다》《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마음의 쉼표》 등이 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오늘은 노동자의 권리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많은 직장인이 근로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가 부당하게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거나 징계를 당하곤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몰라 어영부영 시간만 보내다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신세를 한탄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많은 근로자가 자신에게 그런 부당한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늘 사건은 예상치 못할 때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근로자의 권리를 이해하는 일은 자신을 보호할 최소한의 대비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각비행 편집자 중 한 명도 예전에 외국계 출판사에 다니다 속한 부서가 6개월 후에 사라지는 바람에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고 퇴사한 경험이 있습니다. 부당한 해고를 당했지만 나중에야 근로자의 권리를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꽤 오래전의 일이긴 하지만 그때의 충격이 《입사부터 퇴사까지 직장인이 꼭 알아야 할 노동법》을 기획하고 출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근로자의 권리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전태일 열사입니다. 김남주 시인은 전태일과 그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생각하며 <고난의 길>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고난의 길

어머니가 아들을 낳고 아들이 어머니를 낳았습니다
이소선 여사가 그 어머니고
전태일 열사가 그 아들입니다

나는 혹사의 노역장으로 노동자를 내모는 자본의 세계에 살면서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아들에 그 어머니를 본 적이 없습니다
상복을 입고
불에 타 죽은 아들의 사진을 껴안고 오열하는 이 여인이 그 어머니인가
목놓아 흐느끼는 모습이
험한 세상에 자식을 빼앗기고
가파른 인생을 사는 우리네 어머니들과 꼭 닮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여
자식의 죽음으로 다시 태어난 천만 노동자의 어머니여
나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자식이 굴리다 굴리다 힘에 겨워 못다 굴린 삶의 무게를
그 무게를 머리에 이고 당신이 걸었던 고난의 길을
그 길의 시작과 끝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길에는 끝이 있습니다 나도 가렵니다
자본의 무게에 짓눌린 노동자의 틈에 끼여 어깨동무하고
당신이 지금 걷고 있는 그 길을 함께 가렵니다
노동자가 여는 해방의 길이 인류해방의 길과 맞닿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한테 배워서

평화시장 노동자였던 전태일은 근로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근로기준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법을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최소한의 근로 조건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 분노하여 1969년 6월 평화시장 최초의 노동운동 조직인 '바보회'를 만들어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의 내용과 근로조건의 부당함을 알리는 한편 근로실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사용자들의 방해로 성사되지 못하고 전태일은 평화시장에서 일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맙니다. 그 후 1970년 9월 재단사로 평화시장에 다시 돌아온 전태일은 바보회를 발전시킨 '삼동친목회'를 만듭니다. 그러고는 또다시 노동실태를 조사하는 설문지를 만들어 90명의 서명을 받아 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합니다.

이런 사실이 《경향신문》에 실려 사람들의 관심을 받자 전태일과 삼동친목회 회원들은 임금과 노동시간,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노동조합을 결성하기 위해 사업주 대표들과 협의를 벌입니다만, 일이 확대되기를 싫어했던 박정희 정부의 약속 위반으로 번번이 실패하고 맙니다. 또한 사용자들은 삼동친목회를 빨갱이 조직으로 몰아 근로자들로 하여금 노동운동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방해했습니다. 

전태일과 삼동친목회 회원들은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이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무능한 법임을 고발하는 뜻에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하기로 하고 평화시장 앞에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입니다. 사용자들과 경찰의 방해로 시위가 끝나려 할 때 전태일은 온몸에 석유를 끼얹고 불을 붙인 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평화시장 앞을 내달렸습니다. 그는 끝까지 “정부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다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온 어머니 이소선에게 전태일은 “어머니,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주세요”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납니다. 그 후 이소선 여사는 ‘노동자의 어머니’로서 노동운동에 투신하여 노동운동가의 길을 걷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 정도의 권리나마 누리고 있는 것은 전태일 열사와 그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의 희생 덕분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세상이 조금 달라졌다고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한다면 노동자의 현실은 더 열악해지고 전태일 열사가 죽음으로 알리려고 했던 노동자의 권리는 이 땅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고 전태일 열사의 동상 앞에 놓인 이소선 여사의 영정사진

시인 김남주의 시적 주제는 현실의 문제였습니다. 그렇기에 은유나 상징보다는 직설적으로 주제를 드러내는 예리한 육성으로 현실을 노래했습니다. 그가 주로 활동하던 1980년대에 문학의 보편적 주제는 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통일논의와 노동자들의 권익향상 같은 문제였습니다. 시인 김남주는 철저하게 1980년대 상황에 충실했습니다. 그는 시인이기보다 전사로 불리기 원했고 자신이 쓴 시가 부조리한 현실에서 혁명의 도구로 쓰이길 원했습니다. 그는 <나는 나의 시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또한 바라 마지않는다 나의 시가
입에서 입으로 옮겨져 노래가 되고
캄캄한 밤의 귓가에서 밝아지기를
사이사이 이랑 사이 고랑을 타고
쟁기질하는 농부의 들녘에서 울려퍼지기를
때로는 나의 시가 탄광의 굴 속에 묻혀 있다가
때로는 나의 시가 공장의 굴뚝에 숨어 있다가
때를 만나면 이제야 굴욕의 침묵을 깨고
들고일어서는 봉기의 창 끝이 되기를

김남주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시를 사용했습니다. 시가 현실의 문제를 마주하고 해결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시는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지만 어두운 현실조차 미화한다면 아름다움의 진정성은 빛을 잃고 맙니다. 현실의 부조리를 외면하는 시는 아무도 읽지 않는 언어의 낭비입니다.

이런 김남주 시인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는 시가 있습니다. <법 좋아하네>의 한 구절입니다. “이게 법이지요/목에 걸면 그것은/부자들에게는 목걸이가 되고/가난뱅이들에게는 밧줄이 되지요.” 시를 통해 시인은 현실에서 법이 가진 자에게 유리하고 가난한 자의 목을 조이는 밧줄이 되는 현실을 조롱합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그의 표현은 불행하게도 2012년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온갖 비리를 저지르다 심판대에 선 대기업 총수나 정치가들에겐 면죄부를 주는 법, 가진 것 없고 힘없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땐 밧줄로 목을 조이는 법.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끝까지 저항하고 끝까지 행동하며 온몸으로 시를 쓴 이가 바로 시인 김남주입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앞서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둘이면 둘 셋이면 셋 어깨동무하고 가자
투쟁 속에 동지 모아 손을 맞잡고 가자
열이면 열 천이면 천 생사를 같이 하자
둘이라도 떨어져서 가지 말자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 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 주자
고개 너머 마을에서 목마르면 쉬었다 가자
서산낙일 해 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
해 떨어져 어두운 길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 주고
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 주고
가로질러 들판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해방의 길 통일의 길 가시밭 길 하얀 길
가다 못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김남주의 대표작 중 하나인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처럼 이제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세상을 바꿔나가야 합니다. 가졌다고 큰소리치는 세상이 아니라 힘 있다고 국민을 무시하는 세상이 아니라 정당하게 일하고 정당하게 나누는 세상, 힘이 없어도 도와가며 함께 나누는 세상을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요즘 '경제민주화'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경제민주화입니까? 헌법 제119조 1항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2항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이런 법 조항이 제대로 지켜지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런 법이 과연 제대로 지켜지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전태일과 이소선이 앞으로 또 자신의 삶을 불살라야 헌법이 규정한 소득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개인주의가 날로 팽배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이소선과 전태일 모자를 되살려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기업의 목적이 단순한 이윤 추구가 아니라 땀 흘린 노동자가 생존을 위협받지 않고 행복한 경제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기본을 지키는 나라를 만들어야 하니까요. 이를 위해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알고, 법을 깊이 이해하고 자신의 일터를 사랑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김남주
1946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나 1994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전라남도 광주일고에 입학하지만 획일적인 교육을 거부하고 자퇴해 대입검정고시를 거쳐 전남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했다. 대학에서는 3선개헌 반대와 교련반대 운동,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이끌었으며, 1973년 유신반대운동을 하다 반공법 위반으로 투옥되어 2년형을 받고 8개월 만에 풀려났지만 학교에서 제적당한다. 1974년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습작생활을 하다 그해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잿더미> 등을 발표하여 등단했다. 1978년 서울로 올라와 남조선해방전선 준비위원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 1979년 체포되어 15년형을 받고 1988년 12월 가석방됐다. 그는 살아서 "시인이라기보다, 글쟁이라기보다 전사여!,전사"라는 말을 즐겨 말했다. 시집으로 《진혼가》《나의 칼 나의 피》《조국은 하나다》《사상의 거처》등이 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