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에 이어 2019년에도 미투운동은 계속되었습니다. 조금씩 진전되고 있긴 하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습니다. 다음 달이면 한국 미투운동이 본격화한 시발점이 된 서지현 검사의 미투 폭로 2주년이 됩니다. 서지현 검사는 JTBC 뉴스룸에 출연하여 안태근을 시작으로 검찰 조직 내 성폭력의 실상을 고발했습니다. 뒤이어 연출가 이윤택, 노벨 문학상 단골 후보로 거론되던 고은, 유력 대선 후보였던 안희정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미투 폭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일부는 처벌받고 일부는 법망을 빠져나가기도 했습니다. 미투운동이 우리 사회의 인식을 진일보시킨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미투 폭로가 있을 때마다 가해자 개인의 문제로 대할 뿐 성폭력의 문제를 사회구조의 문제로 보는 인식은 여전히 낮은 수준입니다.


출처 - 한겨레


대표적인 예는 진짜 미투와 가짜 미투를 남성들의 기준에서 판별하려 드는 것입니다. 피해자의 나이, 출신 평소 행동, 성폭력 전후로 보인 태도 등을 기준으로 소위 '피해자다움'을 감별하려는 것이죠. 일반인은 물론 범죄를 판결해야 할 판사, 검사, 변호사에 이르기까지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이런 잣대로 순결한 피해자인 여성과 소위 꽃뱀으로 피해자들 사이를 갈라치기하고 사회적 낙인을 찍습니다. 이런 행위를 통해 2차 가해가 이어집니다.


출처 - KBS


성폭력만큼이나 2차 가해가 고통스럽다는 건 미투운동에 동참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목소리입니다. 2017년 5월 체육계에서 첫 미투 폭로를 한 이경희 리듬체조 국가대표 코치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대한체조협회 김 모 전무이사를 성추행과 강간미수 혐의로 고소했는데 수사 과정에서 검찰에게서 받은 조사가 자동차 안에서 성폭력을 당한 경험을 재현해보라는 등 인격 침해적인 것투성이였다고 하죠. 이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본격적인 감사와 수사가 시작되자 가해자는 물론 체육계 주변인들로부터 각종 음해를 당하기 시작합니다. 두 사람이 원래 연인 사이였고 결혼까지 생각하는 깊은 사이이지 않았냐는 겁니다.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입니다. 이경희 코치는 2019년에 이르러서야 2차 가해에 대해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승소를 합니다. 판결은 벌금 300만 원의 약식명령. 액수가 크지 않아 몇 년간 감내한 고통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지만 가해자가 잘못하고 자신에게 잘못이 없다는 걸 인정받은 것만으로도 올림픽 금메달을 딴 기분이라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2차 가해가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범죄이며, 올해부터 불법 영상물 피해자 대신 정부가 삭제 비용을 대고 이 비용을 가해자와 유포자들에게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은 큰 진전이었습니다.


출처 - 한겨레


하지만 사회구조적인 여성혐오와 차별은 여전합니다. 이전에 생각비행에서도 여러 사례를 든 바 있죠. 젊은 남성들을 중심으로 요즘은 오히려 남성이 역차별을 당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데, 사례와 통계를 보면 사실이 아닙니다.



남성 역차별? 여성이라 차별당하는 구조적 현실이 더 문제다! : https://ideas0419.com/998



학교, 학과, 학점이 같아도 여성 소득은 남성의 82.6%에 불과하며, 심지어 여성이 더 우수한 성적을 거둬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입사에 탈락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습니다. 업계 전체가 사상 검증을 하듯 페미니즘을 검열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3년 전 김자연 성우가 자신의 SNS에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올렸다는 이유로 넥슨 게임에서 퇴출당한 적 있는데요, 3년이 지난 지금도 게임 업계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아르카나라는 게임의 일러스트레이터가 3년 전 김자연 성우 지지글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일러스트 작업에서 퇴출당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이 게임 회사는 사회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작가 리스트를 언급해 게임 업계 내에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의심을 샀죠. 자신들은 그저 업계 내 리딩 컴퍼니인 넥슨의 사례를 따랐을 뿐이라면서 말입니다. 게임 업계 내에서는 외주 일러스트 등의 작업을 하는 여성에게는 SNS 사용 유무 등을 체크하며 사실상 여성주의에 대한 검열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업계 특성상 남성 소비자의 비율이 높기 때문인 듯한데, 일부 극렬 소비자의 입장만을 대변할 경우 그 업계나 장르 자체가 점점 좁아지며 도태될 수 있으니 업계와 소비자의 자성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공공 부문은 좀 나아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지난 11일 전남도청 여성 공직자들의 승진이 불공정하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전남도 공무원 직급별, 성별 분포 자료에 따르면 4급 공무원 99명 가운데 여성은 7.1%인 7명입니다. 3급은 19명 중 1명, 2급과 1급은 아예 없습니다. 여성이 공무원 성별 채용률의 56%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여성 합격자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인데 어째서 고위직은 남성이 독점하고 있는 걸까요? 능력과 자질 대신 조직 내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관행과 문화라는 이름으로 굳어져서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출처 - 한겨레


교육계에서는 서울교대 집단 성희롱 사건으로 연루돼 서울시교육청이 중, 경징계 처분을 내린 현직 교사 4명과 임용대기자 7명 등 11명이 처분이 과하다면서 전원 재심을 신청했습니다. 이들은 서울교대 재학 시절 단톡방 등에서 여학생 외모를 품평하고 성희롱 발언을 해 징계를 받았습니다. 심지어 한 현직 교사는 겉모습이 예쁘고 성숙한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애는 따로 챙겨 먹는다는 입에 담기도 더러운 말을 서슴지 않았다고 하죠. 매일 아이들을 대면하는 교사의 인식이 이 모양이니 학급 남아들이 뭘 보고 배우겠습니까?


출처 - 한국일보


언론의 경우 진일보한 면도 있습니다. KBS 9시 뉴스를 진행하는 메인 앵커로 40대 여성 기자가 발탁되었죠. KBS 9시 뉴스 앵커를 여성 기자가 맡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MBC와 SBS가 일찌감치 메인 앵커로 여성 기자들을 발탁했던 것과 달리 KBS는 중년 남성 앵커와 젊은 여성 아나운서 조합을 고수했던 과거의 전례를 비추어볼 때 변화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면도 많습니다. 광주MBC 라디오 프로그램의 사례처럼 여성을 외모로 품평하고 미투를 우습게 여기는 말투를 여과 없이 공중파에서 내뱉는 일도 있었으니까요. 진행자가 여성 트로트 가수들 몸매를 품평하더니 미투에 걸리지 않는 선에서 자신이 한 번쯤 만져보겠다는 소리를 낯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했습니다. 같이 있던 진행자도 사실상 동조했고요.


출처 - 한겨레


기술 발달에 따라 점점 인공지능이 사회에서 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는데요, 그런 인공지능조차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감점을 합니다. 아마존은 2014년부터 개발해 온 AI 채용 프로그램을 폐기했다고 하죠. 프로그램이 경력 10년 이상 남성 지원자 서류만 후보로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 채용 프로그램이 여성이라는 단어 자체를 감점 요소로 분류하기 시작한 겁니다. 지난 10년간 회사가 수집한 이력서 패턴을 AI가 학습한 결과를 토대로 지원자들의 서류를 심사하니 남성 비율이 높은 IT 업계의 현실이 그대로 반영되게 된 겁니다. 아무리 AI라고 해도 무에서 창조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들이 의식적으로 쌓아온 사회 시스템을 데이터의 원천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입사에 AI를 도입하기 시작한 기업들이 있는데요, 기술이 중립적이고 객관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올해 세계은행이 발표한 〈여성, 비즈니스 그리고 법〉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에게 경제적, 법적 권리를 동등하게 보장하는 나라는 187개국 중 단 6개국뿐이라고 합니다. 벨기에, 덴마크, 프랑스, 라트비아, 룩셈부르크, 스웨덴이 그런 나라입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100점 만점 기준에 전체 평균 74.71점으로 여성이 누리는 권리는 남성의 4분의 3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한국은 전체 평균보다는 높았지만 50위권 안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세계경제포럼의 세계 성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체 153개국 중 108위에 머물러 성 격차가 큰 국가에 속했습니다. 다행히 작년보다는 7계단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세계경제포럼은 세계 성 격차 해소에 99.5년이 걸린다고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남녀평등을 이루기가 이토록 어려운 일일까요? 우선 현실 인식부터 바꿔야 합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있습니다만 100년씩이나 기다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남녀가 정말로 평등해지는 날이 속히 오길 기대합니다.

한샘 성추행 사건, 현대카드 성추행 사건, 성심병원 간호사 노출 강요, 유니세프 회장의 성추행 발언에 이르기까지 올 한해 우리나라에서 분야를 가리지 않고 내로라하는 기업들에서 성범죄가 연이어 터져 나왔습니다. 몰래카메라나 리벤지 포르노, 도촬로 인한 범죄도 만연했습니다. 성적인 욕구나 변태성 때문에 이런 범죄가 일어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권력 혹은 직급을 이용한 성범죄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몰카 역시 나는 몰래 훔쳐보는데 도촬 당하는 사람은 그 사실을 모른다는 미묘한 우월감과 권력감의 발현이라고도 하죠. 크리스마스, 송년회, 신년회 등 회식과 모임이 빼곡한 요즘 여성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겁니다. 한샘이나 현대카드는 그나마 이름 있는 대기업이니 문제도 되고 기사도 나옵니다. 반면 규모가 작은 기업에서 이뤄지는 성범죄는 훨씬 심각하더라도 징계는커녕 뭘 잘못했는지조차 인식을 못 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출처 - JTBC


이런 성범죄가 우리나라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처는 우리나라와 판이하죠. 아카데미상을 수두룩하게 따낸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은 올해 그간 있었던 성범죄가 드러나며 퇴출당했습니다. 자기가 세운 영화사 와인스타인 컴퍼니에서 쫓겨난 건 물론이고 영화사마저 매각되어 사라지게 될 전망입니다. 거물 제작자라는 권력을 이용하여 할리우드 여배우들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것까진 우리나라 대기업들과 같지만 그 대가는 자신이 평생 일군 회사에서 쫓겨날 정도로 혹독합니다. 그러니 우리나라도 누구든 성범죄를 저지르면 혹독한 처벌을 피할 수 없도록 변화되어야 합니다. 관련 법안 등도 개선해야겠죠. 성범죄에 민감한 사회로 변화하는 것이 오히려 서로 안심할 수 있는 사회가 되는 지름길입니다.


출처 - 한겨레


사회 각계각층에서 목소리를 내고 폭로를 한 덕분에 그나마 여러 대책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9월 디지털 성범죄와 전면전을 선포했죠. 우선 인격 살인에 해당하는 디지털 성범죄인 몰카, 리벤지 포르노 피해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불법 영상촬영물 삭제를 국가가 지원하는 법안이 발의되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이 대표 발의한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국가가 유포된 몰카 삭제를 위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해 신속하게 성폭력 피해자를 구제하겠다는 취지입니다. 그간 피해자들이 수백만 원의 사비를 들여 온라인 정보 삭제 대행업체를 이용하던 것이 현실이었죠.


출처 - 한국일보


이와 함께 개인영상정보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앞으로 화장실, 탈의실 등 사생활 침해 우려가 큰 곳엔 영상촬영기기 설치가 금지됩니다. 고정되는 CCTV 같은 것은 물론이고 스마트폰, 스마트워치 등등 웨어러블 기기로 포함됩니다. 이를 위반할 경우 5000만 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업무 목적으로 촬영할 경우 반드시 촬영 사실을 표시해서 누구나 촬영 사실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자신도 모르게 찍힌 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될 경우 촬영자나 게시자에게 열람, 삭제 요청을 할 수 있습니다.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거부할 경우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그런데 여전히 발목을 잡는 인간들이 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을 위한 예산을 자유한국당이 절반으로 삭감해버렸습니다. 이들은 과연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출처 - 헤럴드경제


성범죄에 민감해지는 분위기라서 그런지 '이러다가 이제 성관계 할 때 각서라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식의 농담을 하는 분들도 계신데요, 이런 말조차 앞으로는 조심해야 합니다. 합의 각서를 쓰고 성관계를 했더라도 협박한 정황이 있다면 강간이라는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죠. 서울고법은 19일 물리적인 폭행이 아니더라도 협박의 정도가 상당하면 합의 각서를 썼더라도 강간에 해당한다며 가해자에게 징역 4년과 8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명했습니다. 1심에서는 성관계가 성립하려면 가해자의 폭행과 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의 것이어야 한다며 이 부분에 무죄 판결을 내렸는데, 2심에서 이 부분을 파기한 것이죠. 이 판결은 우리에게 아주 간단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성관계에 앞서 각서 같은 걸 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라는 겁니다.


출처 - 한겨레


친절은 감정이 아니라 태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 미소를 보인다고 호감이 있다고 착각해선 안 됩니다. 기분이 더러워도 상사 앞에서는, 손님 앞에서는 웃는 낯을 유지해야 하는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은 모두 '고객 만족'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친절'을 강요당하는 감정노동자들의 현실은 외면하지요. 자신의 감정과 요구되는 감정이 다를 때 일어나는 감정부조화는 스트레스로 작용합니다. 그러니 고강도의 감정노동을 개인의 성격이나 품성으로 치부하며 손쉽게 처리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아울러 자신을 대신할 다른 사람이 많으니 일단 참고 지내보자 하는 식의 대응으로는 노동자 자신의 삶도, 사회의 변화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한국 사회에서 감정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한 전쟁터에서 무분별하게 착취되고 있습니다. 구조적 병폐로 자리를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생활 속의 적폐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군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일부 기업은 '고객대응 매뉴얼'을 마련하여 만일의 사태를 예방하기도 합니다. 아울러 우리 사회가 감정노동자에게 과도한 친절을 강요하거나 직장 안에서 직급 혹은 권력 관계를 이용한 성추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는 문화가 확산되어야 합니다. 이 땅의 감정노동자와 성범죄 피해자들이 바로 우리의 이웃이고 가족이니까요. 실효성 있는 법 개정과 인식의 전환을 통해 생활 적폐를 하나씩 제거해가야 하겠습니다.

 

일요일 저녁 <개그콘서트>가 시청자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면 요즘 금, 토 저녁은 드라마 <미생>이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케이블 드라마라는 핸디캡을 훌쩍 뛰어넘은 만듦새와 막장 요소나 사랑 타령 없는 현실감 있는 전개가 큰 장점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원작인 웹툰 <미생>부터 드라마 <미생>을 관통하는 가장 큰 장점은 직장에서 노동자가 겪는 고뇌와 일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배우들임에도 캐릭터에 딱 맞는 훌륭한 연기를 선보여 드라마 <미생>을 보며 시청자가 공감하게 하는 한편 배우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기사화될 정도입니다.

 

특히 장그래, 안영이, 장백기, 한석율 등 사회 초년생이 자신의 처지에서 겪는 직장과 일의 의미는 남다른 면이 있습니다. 직장 생활을 좀 오래하신 분들이라면 이들의 실수를 보며 옛날 자신의 모습을 반추하기도 하고 흐뭇한 미소를 보내기도 하실 겁니다. 때로는 아, 저거 진짜 위험한데... 저러면 안되는데... 싶은 부분도 있을 줄 압니다. 

 

오늘은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들이 직장에서 겪은 일들을 어떻게 하면 더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지 저희가 출간한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 설명서》 내용과 연관 지어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출처 – TVN 드라마 미생



시말서, 장백기처럼 쓰다간 큰코다친다


자타공인의 엘리트로서 사수인 강 대리에게 인정받고 주인공인 장그래처럼 주목받으며 일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해 고민이 많은 장백기. 완벽주의적인 모습과 달리 지난 에피소드에서는 술을 마시고 지각해서 동기인 한석율에게 대출을 부탁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는 법. 장백기는 사수인 강 대리에게 걸려 혼쭐이 납니다. 지각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철강팀 상사는 장백기에게 시말서를 써오라고 불호령을 내립니다.


출처 – TVN 드라마 미생


여기서 잠깐. 드라마 <미생>뿐 아니라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심심찮게 대면하는 문서가 바로 시말서입니다. 시말서는 말 그대로 일의 시작(始)과 끝(末)을 적은 글(書)입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쓰는 경위서와 같은 개념인데, 직장에선 일반적으로 반성문의 의미가 강합니다. 사실 시말서의 범위는 무척 넓습니다. 드라마 미생의 장백기처럼 지각 같은 소소한 일에 시말서를 쓰라고 하는가 하면, 규정위반 등 경고장이 나갈 수도 있는 일임에도 시말서를 쓰라고 할 수도 있고, 중징계감인 일을 봐주는 차원에서 시말서로 갈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말서 처분 자체는 쓰는 사람에게 큰 불이익이 없습니다. 주의나 경고 같은 처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말서 쓰는 일 자체를 우습게 봤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시말서가 누적되면 인사고과가 나빠집니다. 당연히 승진에도 불리합니다. 또한 시말서가 누적되면 징계수위가 높아질 가능성도 그만큼 커집니다.


시말서는 형사사건으로 치자면 일종의 자백이자 진술서에 해당합니다. 크든 작든 어떤 사실을 자신이 저질렀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행위인 것이죠. 언론 기사나 뉴스에서 보신 적이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자백 한 번 잘못했다거나 진술서 한 번 잘못 썼다가 모든 죄를 옴팡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억울한 일이 시말서 한 번 잘못 썼다가 직장생활에서 실제로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앞서 말씀드린 바처럼 시말서는 그 범위가 굉장히 넓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이유에서 시말서를 쓰는 것인지 분명히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자기 잘못 이상으로 처벌받을 빌미를 남기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만약 큰 사건에 연루되어 쓰는 시말서라면 표현에 따라 법적 처벌까지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시말서를 잘 쓸 수 있을까요?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 설명서》의 저자는 이렇게 조언합니다. 

 

우선 회사가 원하는 시말서는 '확실하게'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것을 단단히 약속하는 시말서입니다. 경위가 복잡하거나 당사자가 구체적인 내용을 부인할 수도 있는 일인 경우 회사는 시말서를 사실관계에 대한 '증거'로 활용하고자 하기 때문에 되도록 자세하게 경위를 적고 구체적인 내용을 시인하는 시말서를 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회사가 원하는 대로 적었다가 나중에 큰 곤란을 겪을 수 있고, 너무 방어적으로만 썼다가 회사에 밉보이거나 반성의 기미가 없다며 더 무거운 징계 처분으로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


먼저 잘못한 일에 비해 시말서 정도로 끝나는 게 다행이다 싶은 상황인 경우 그 잘못이 시말서를 썼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말서를 신중하게 아주 잘 써야 합니다. 남들이 이해해줄 만한 불가피한 사정이나 있을 수 있는 실수에 대해 강조하는 편이 좋습니다. 물론 구체적인 경위를 쓰도록 하되 명백한 사실을 중심으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입장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는 부분은 어느 정도 자신의 입장에서 정리하는 게 좋습니다. 단, 시말서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비록 이런저런 사정으로 어쩌다 보니 이런 일들이 생겼지만 결과적으로 심려를 끼쳐 드리게 되어 매우 죄송하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성실하게 역량을 발휘하는 믿음직한 직원으로 인정받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같은 미사여구로 마무리해줘야 합니다. 무조건 사실을 부인하거나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좀 억울한 면이 있더라도 잘못한 게 전혀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결과적으로 죄송하다’라는 표현 정도는 넣어주는 편이 좋습니다. (…)


어떤 경우는 잘못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시말서를 쓰라고 하는 상황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시말서 작성을 거부할 수도 있지만 이로 인해 일이 커질 수도 있기 때문에 시말서를 제출하되 ‘이런저런 사유로 이 문제는 본인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점을 분명히 표현해야 합니다. 물론 무작정 잘못을 부인하는 자세보다는 자세한 사실관계를 적고 근거를 대면서 설명하는 편이 바람직합니다. 그리고 불쾌한 감정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나 강한 어조보다는 객관적인 표현과 겸손한 어조를 유지하는 게 좋습니다. 역시 마지막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결과적으로 심려를 끼쳐 드리게 되어 매우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라는 표현으로 마무리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억울한 상황에서도 다른 이들을 배려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고, 이런 점은 향후에 징계와 관련한 법적 분쟁이 생길 때에도 근로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 설명서》 232~234쪽

36. 시말서를 쓰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중에서

 

드라마 미생의 장백기처럼 단순 지각으로 시말서를 쓰는 경우라면 간결히 반성문 성격으로 쓰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책에 나온 표현과 어조를 숙지하여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적어도 자기 잘못이 아닌 일로 나중에 억울한 상황이 벌어지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요.



직장내 성희롱 대처,

안영이 같은 상황에선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사실을 직접 표현하라


자원팀 마 부장은 남자 직원들에게 폭언을 일삼고 여자 직원들에게는 성희롱 조의 언어폭력을 일삼아 직장에서 공공의 적으로 통합니다. 마 부장의 눈에는 여자인 주제에 우수한 안영이가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보고하러 오면 분내 난다, 하이힐 시끄럽다, 시집이나 가겠냐 등등 여성성을 무시하는 발언을 내뱉곤 합니다. 지난 에피소드에서 마 부장은 경쟁사인 삼정의 팀장과 안영이가 마치 사귀기라도 했던 것처럼 성희롱 조의 말을 꺼냅니다. 이때 안영이는 정색하고 “업무와 상관없는 말씀이십니다”라고 대답하고 나가죠.


출처 – TVN 드라마 <미생>



직장 내 성희롱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여성의 입장에서 직접 맞닥뜨릴 경우 대처하기가 어려운 문제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성추행하는 위계에 의한 성추행이 부쩍 뉴스에 나고 있습니다. 신체 접촉과 같은 무거운 성추행이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만, 가벼운 성희롱의 경우에도 현명하게 대처하려면 어떻게 하는 편이 좋을까요?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 설명서》 저자는 이렇게 조언합니다.


가벼운 성희롱이더라도 불쾌감이 느껴졌다면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자신의 감정만 전달하는 것이 좋습니다. 웃으면서 "왜 이러세요~ 이러지 마세요~" 한다거나 정색하면서 "성희롱으로 고발할 거예요!" 하는 방식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웃으면서 대꾸하면 가해자들이 피해자가 불쾌해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좋으면서 그런다'고 생각하며 점점 더 심한 성희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정색하며 대응할 때는 직장 안에서 이런저런 불리한 상황에 처해질 가능성이 많아집니다.

 

따라서 웃거나 정색하지 않고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의사를 전달하되 고발하겠다는 말을 하거나 잘못했다는 것을 직접 지적하면 가해자가 매우 불쾌하게 여기고 불이익을 주려 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이런 행동을 당하니 기분이 언짢다'라고 자신의 감정만 전달하는 편이 가장 좋습니다.


피해자 입장에서 지속되는 성희롱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거나 가해자에 대한 조치 등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상황이라면, 기록을 남기고 회사 내 고총처리기구나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게 좋습니다. 이와 함께 가해자에게는 이메일이나 내용증명을 보내는 편이 좋습니다. 사업주가 가해자이거나 회사 내에서 적정한 처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외부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일단은 법적 조치보다는 회사 내에서 원만하게 문제가 해결되는 방법을 먼저 찾는 편이 좋습니다. 법적 분쟁 형태로 넘어가게 되면 이제는 '가해자'를 상대로 하는 싸움이 아니라 '회사'가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한 것을 문제 삼는 모양새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회사가 가해자를 보호하려 들고 오히려 피해자를 상대로 적극적인 대응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고용노동부나 인권위원회에 진정 고발을 접수하거나 민형사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설명서》 249~350쪽

54. 회사에서 성희롱을 당했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중에서




웹툰 미생의 뒷이야기,

회사가 산업재해 처리를 해주지 않으려고 한다면?


[특별5부작] 미생 – 사석 : http://webtoon.daum.net/webtoon/viewer/27410


드라마 <미생>의 시작과 함께 원작인 웹툰 <미생>도 특별 5부작이 연재되었습니다. 현재 완결된 이 에피소드는 오 차장의 대리 시절 뒷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요. 본편에서 등장했던 검은 넥타이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오 차장의 직속 상사가 과로로 사망했는데 회사는 산업재해 처리를 꺼립니다.

출처 – 다음 웹툰 미생


대표적인 과로사회인 한국이지만 그로 인한 폐해는 오롯이 개인이 지고 있습니다. 일에만 매달리다 보면 가족은커녕 자기 몸조차 돌보지 못하게 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산업재해를 당한 것도 억울한데, 산재는 신청과 증명 모두 노동자가 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노동 관련 법 개정에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산재 신청은 근로자가 하는 것이고 업무상 재해 사실을 주장하고 입증하는 것도 근로자가 해야 합니다. 근로복지공단이 신청한 내용에 대해 '조사'를 하기는 하지만 보험급여를 지급하는 입장이고 예산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산재 인정이 되도록 발 벗고 나서서 조사하거나 근로자에게 도움이 되는 증거를 찾아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근로자 주장에 허위 사실은 없는지, 입증이 부족하거나 객관적이지 못한 건 아닌지를 확인하는 데 더 적극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재해를 당한 근로자는 스스로 입증을 해야 하는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설명서》 421~422쪽

69. 회사에서 산재 신청을 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중에서


산재를 증명하려면 정황이나 자료가 충분히 필요한데 의학적 입증뿐 아니라 실제 업무와의 연관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회사가 보유한 자료가 필요합니다. 고로 산재는 회사의 협조 없이 규명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어지간해서는 산재 신청을 해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회사 이미지가 나빠지거나 경영상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하거나 재해 근로자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등의 사유로 비협조적이거나 방해하는 행동을 취할 수 있습니다. 특히 건설업 같은 경우 재해율이 공사 입찰을 받는 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산재 승인이 나지 않게끔 조장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동료에게 압력을 가해 진술서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재의 경우 처음부터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시길 권합니다.


산재 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입증이 불명확한 상황인 데다 회사 역시 비협조적인 상태라면 전문가를 찾아 방법을 논의하는 편이 좋습니다. 덜컥 접수부터 해버리는 것보다는 충분히 입증 자료를 준비한 후 접수하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할 때 충분한 입증을 통해 주장하지 않으면 승인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또한 최초 신청 단계에서 허술한 준비로 승인을 받지 못하면 이후 불복을 제기할 때 결과를 바꾸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산재 신청은 처음부터 충실한 준비를 거쳐 신중하게 제기해야 합니다.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설명서》 423

69. 회사에서 산재 신청을 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중에서

 

어떻게 해야 산재로 인정되는지, 업무상 질병에 대한 구체적인 인정 기준은 어떻게 되는지 등의 세부 사항은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설명서》  부록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 다음 웹툰 미생


웹툰 <미생> 특별편에서 과로로 죽은 오 차장의 직속 상사는 산재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대신 회사는 위로금이란 명목으로 산재 보상금을 털어버렸죠. 지급하는 금액이 같더라도 회사 차원에서는 산재로 인정되는 것보다는 위로금을 주는 쪽이 이익이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제목과 마찬가지로 '미생'인 우리의 절대다수는 어딘가에서 노동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자의 권리를 명시한 노동법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아는 것이 힘입니다. 그리고 뭉치면 더 커집니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이 두 가지 아닐까요?

 

 

정규직 집단해고 OECD 34개국 중 4번째로 쉽다

 

지난 12월 4일자 《한겨레》에 우리나라 정규직의 실태를 다룬 기사가 났습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서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다"며 고용 유연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여론몰이를 하고 있는 이때에 아주 적절한 기사를 기획해서 낸 것이죠.

 

기사 내용에 따르면 법과 제도상으로 우리나라의 정규직에 대한 정리해고는 쉬운 편에 속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에 용역을 맡겨 발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노동시장 지표 비교연구〉 보고서(2013년)를 보면 정규직 집단해고는 34개국 중 4번째로 쉬운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합니다. 

 

  

출처 - 한겨레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법에서 보장된 정리해고뿐 아니라 명예퇴직, 권고사직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해고를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올해 4월 케이티(KT)는 지난해 적자를 이유로 8300명을 명예퇴직시킨 바 있습니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모두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불리하게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나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있으나 마나 한 조항이라는 게 노동계의 평가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런 상황에서 드라마 <미생>, 영화 <카트>에서 극명하게 다뤄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등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위한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입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는 지난 2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제4차 전체회의를 열고 노동시장 이중구조, 임금·근로시간·정년연장, 파트너십 구축 등에 대한 14개 세부 과제를 확정·발표했습니다.

 

세부 과제를 살펴보면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제로 △원하청,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등 동반성장 방안 △비정규 고용 규제 및 차별 시정 제도 개선 △노동이동성, 고용·임금·근무방식 등 노동시장 활성화 방안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또한 임금·근로시간·정년연장 등에 대해서는 △통상임금 제도 개선 방안 △실근로시간 단축 연착륙을 위한 법제도 정비 △정년연장 연착륙을 위한 임금제도 등 개선 방안 등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아울러 노사정 파트너십 구축과 관련해 △노사정위는 향후 노동기본권 사각지대 해소 △비조직부문 대표성 강화 △중앙·지역·업종별 사회적 대화 활성화 등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노사정위는 이번에 확정한 세부 과제를 바탕으로 19일까지 큰 틀에서 노사정 기본 합의안을 내겠다고 했습니다. 2015년에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주요 현안들에 대해 한꺼번에 논의를 시작하자는 노사정 합의를 이루어내겠다는 의도입니다. 이에 노사정위가 1월 19일 제5차 전체회의를 열어 노동시장구조 개선을 위한 기본방향 합의 문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하니 어떤 변화가 있을지 유의해서 살펴야 하겠습니다.


과거 남양유업 사태로 폭발한 '갑'의 횡포 때문인지 켜켜이 쌓인 분노가 사회적으로 표출되는 일이 빈번합니다. 분노한 '을'들의 제보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최근 갑의 횡포에 따른 성희롱, 성폭력 문제를 보도하는 언론 기사를 자주 접합니다. 국가기관과 공직자부터 사기업 임원에 이르기까지 이 시대에 갑질이 만연합니다. 

 

최근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골프장 캐디의 가슴을 만져 물의를 일으킨 뒤 "손녀 같아서" 그랬다며 치졸한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성희롱이나 성폭력이 남성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성적 본능 때문에 일어나는 우발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의외로 많습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벌어지는 성희롱과 성폭력 사건의 대부분은 우발적인 판단 착오로 발생하는 문제라기보다는 힘, 즉 구조적인 권력의 문제로 파악하는 편이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왜 이 지경일까? 일부 주장처럼 '남자의 성 욕구는 본능적'이고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강해서'일까? 그렇다면 그 본능적 욕구는 왜 늘 높고 강한 사람이 낮고 약한 사람을 대할 때만 발동할까? 한국 남자들이 다른 인종이나 민족의 남자들보다 진화가 덜 된 미개한 인종집단일까? 게다가, 최근엔 여성 상관이나 직장 상사, 혹은 교사들이 남자 신입사원이나 학생들을 성추행하는 사건들도 늘고 있다. 지위가 높아지면 여성 성호르몬이 남성 성호르몬으로 바뀌고 남성적 성 욕구가 생기는 놀라운 '생물학적 변화'가 발생하는 것일까?


[표창원의 단도직입]'성(性) 갑질'을 멈추게 하라(경향신문)


우리 사회에서 권력 구조상 상위에 있는 사람이 힘과 신분을 앞세워 발생하는 성희롱이나 성범죄가 비일비재한 현실입니다. 사회적 '갑질'도 이와 같은 구조에서 기인합니다. 만일 박희태 전 국회의장 옆에 있던 여성이 대통령의 측근이었다면 감히 손가락이나 델 수 있었겠습니까? 힘없고 하소연할 데 없는 사람들이 성희롱과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 정규직 되고 싶으면 벗으라는 현실

 

 

출처 - 쌤앤파커스


최근 출판계에서도 어이없는 성범죄가 불거져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대표작으로 《이기는 습관》 《가슴 뛰는 삶》 《세상에 너를 소리쳐》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등 매년 베스트셀러를 쏟아내며 성장한 쌤앤파커스 출판사는 최근 발생한 성추행 문제로 며칠간 언론에 오르내렸습니다.

 

아시다시피 여성으로서 입지전적인 성과를 이루어낸 박시형 쌤앤파커스 대표는 많은 여성의 롤모델이자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박시형 대표를 롤모델로 삼아 177대 1의 살인적인 경쟁률을 뚫고 쌤앤파커스 마케팅팀 사원으로 취직한 책은탁 씨(@Bookistak)도 언젠가는 박시형 대표 같은 사람이 되기를 꿈꾸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밝지 않았습니다. 쌤앤파커스 출판사의 베스트셀러 제목처럼 안 그래도 힘든 청춘을 아프게 만들기로 작정했는지 쌤앤파커스 출판사는 책은탁 씨를 수습사원 신분으로 무려 17개월 동안이나 일하게 했습니다. 3개월도 6개월도 아닌 17개월 동안 수습사원 신분으로 일을 시키다니 같은 출판계 종사자로서 할 말이 없습니다. 있어서는 안 되는,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쌤앤파커스 출판사는 이 부분에 대해 책은탁 씨에 대한 내부 평가가 엇갈려 재차 수습 기간을 연장하였고 "수습 기간 6개월이 되는 시점부터 정직원과 동일한 급여와 복지를 제공했고, 그와 동일한 업무가 부여되었습니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직원과 똑같은 대우를 해준다면 정직원으로 채용하면 될 일이지 왜 17개월간 수습사원 신분으로 일을 하게 했던 걸까요? 뭔가 잘못을 저지르기만 하면 바로 해고할 수 있도록 하려 했던 건 아닐까요? 기형적이고 비상식적인 대한민국 기업의 현실을 고려하더라도 쌤앤파커스의 이상한 조처를 보면 상식이 있는 출판사인지 의구심이 듭니다.


책은탁 씨가 17개월의 수습기간을 끝내고 정규직 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 인사권자인 상무가 최종 면담격인 술자리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술자리 후 자리를 자신의 오피스텔로 옮긴 상무는 A 씨에게 옷을 벗을 것을 요구하고 침대로 끌고 가 입을 맞췄습니다. 술에 취한 책은탁 씨는 그 시점에서 저항하기 어려웠으나 나중에 뛰쳐나와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정신을 잃었지만 주민의 도움으로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남에게 밝히지 못할 치욕스러운 일을 겪은 뒤 정직원이 되긴 했으나 이런 일이 자신만이 아니었고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가 더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지난해 7월 사내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출처 - 아시아투데이


사실이 공개되자 상무는 회사를 그만뒀지만 책은탁 씨는 내부고발자로 몰려 9월에 쌤앤파커스를 사직하게 되었습니다. 치욕스러운 일을 겪으면서까지 얻어낸 정규직을 말입니다. 사직하면서 이 상무를 성추행으로 고소했지만 서울서부지검은 올해 4월 어이없는 판결을 내립니다. 이 상무가 옷을 벗으라고 요구한 것이나 키스를 한 사실 등은 인정되지만 책은탁 씨가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다며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한 겁니다. 

 

선거에 관여한 것은 인정되지만 선거법 위반은 아니라는 최근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과 똑같은 판결이 아닐 수 없습니다. 피해 당사자가 뛰쳐나와 도망치기까지 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더 저항하라는 걸까요? 성추행 혐의가 분명한데도 어이없는 판정이 나오는 한심한 현실입니다.


쌤앤파커스 출판사는 법원의 무혐의 처분을 기다렸다는 듯이 이 상무를 복직시켰습니다. 책은탁 씨는 재정신청을 했습니다. 그러자 돕겠다는 동료들이 나섰습니다. 그들이 밝힌 이 상무의 추태는 눈 뜨고 못 봐줄 정도입니다.


 

이 출판사의 전 직원 ㄴ씨는 “이 상무는 회식 때마다 여직원들만 한 명씩 이름을 부르며 껴안았고 거부하면 ‘살려면 어쩔 수 없는 거야’라고 했다. 저자와의 룸살롱 접대 자리에도 여직원들을 데리고 나가 블루스까지 추게 했다”고 재정신청을 위한 증인진술서에서 밝혔다. 이 회사는 저자, 유관업체, 타출판사 관계자를 초청한 송년회 때 여직원들을 드레스 등을 입게 한 뒤 각 테이블에 한 명씩 배치했다고 한다. ㄴ씨는 “나도 피해자였다. 한번은 술 취한 채 전화를 해 내가 사는 집 호수까지 대며 ‘술자리에 나오지 않으면 (집으로) 올라가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ㄱ씨의 전 동료 ㄷ씨도 증인진술서에서 “인사권을 가진 이 상무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며 “ㄱ씨의 재정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법원에 출석해 진술하겠다”고 했다.


유명 출판사 상무 성추행 사건 뒤늦게 공개… 여직원 “수습 때 오피스텔 데려가 옷 벗으라 요구”(경향신문)


‘살려면 어쩔 수 없는 거야’라는 이 말에 권력과 직위를 통한 갑질의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아픈 청춘을 무려 17개월이나 수습사원으로 일하게 하고 정규직 채용 권한이 있는 인사권자인 이 상무에게 다른 직원들은 모두 을로 보였겠지요. 쌤앤파커스는 법률대리인을 통해 회사는 중립적으로 법대로 하고 있다며 무혐의 처리된 이 상무의 복직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이미 성추행 사실 자체는 모두 인정된 상황인데 여성 대표로서 피해 여성의 어려움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박시형 대표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쌤앤파커스 신입사원 초봉이 3000만 원 수준이라고 자랑하기 바빴습니다. 17개월이나 수습사원 신분으로 일을 시킨 회사의 대표가 말입니다.

출처 – 조선일보


 

난 대학졸업하고 2005년까지 별로 유명하지 않은 출판사 한 곳에서만 20년 동안 편집자로 일했다. 그 사이에 출판사 잘되는 것은 봤어도 편집자가 잘되는 것은 보지 못했다. 운동권 출신이라는 출판사 사장들조차 돈 많이 벌어 직원들에게 적정하게 되돌리기보다는 사옥이나 짓고 자기만 부자가 됐다. 출판계 하면 '박봉'을 떠올리는 직군이 돼버렸다. 이래서야 어떻게 좋은 인재들이 출판에 뛰어들겠는가? 그러니 독자 수준과 동떨어진 책이나 내고 독자들이 외면하니 불법 편법 마케팅이 판을 치고 경영은 악화되고 사장들은 엉뚱한 재테크나 하고 다니게 되는 것이다.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돌리지 않으면 출판계의 미래는 없다고 본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첫 걸음이 직원들의 연봉을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한우의 聽談] '떠오르는 출판권력' 박시형 쌤앤파커스 대표(조선일보)


언론의 보도만으로 본다면 쌤앤파커스는 정말 떠오르는 출판 ‘권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 대표로서 자기 회사에서 벌어진 성추행 당사자를 복직시킨 행위를 보면, 자신이 욕하던 부자 된 운동권 출판사 사장과 전혀 다를 바가 없어보이니까요. 박시형 대표는 성추행 사건이 공개된 이후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어떤 이익을 대가로 성을 요구하는 사람은 당연히 물론, 충분히 거절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그것에 응하는 사람도 징계를 받아야 한다”고요.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해질 정도입니다. 피해자로 나선 사람이 한둘이 아닌 상황에서 어떻게 출판사 대표가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걸까요? 




출처 - 트위터


피해자인 책은탁 씨는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자신의 트위터에 상무가 가해자고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명확히 가리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세월호 유족들이 보상을 마다하고 진실이 명백히 밝혀지기만을 바라는 것처럼요. 책은탁 씨의 바람이 이뤄지려면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지고 재판이 열려 유죄 판결이 내려져야 합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성추행 성희롱의 갑질을 멈춰라!

[성명] 사내 성폭력에 눈감는 출판사 쌤앤파커스는 각성하라

(전국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출판분회)

http://cafe.naver.com/booknodong/2270


사내 성폭력 사건이 불거진 후 전국언론노조 출판분회는 성명을 내고 책은탁 씨를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누리꾼들을 중심으로 사내 성폭력 사건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시민들의 연대 움직임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혜민 스님이나 조국 교수처럼 쌤앤파커스에서 책을 낸 저자들이 이 사건에 대해 공적인 목소리를 내주기 바랍니다. 그들이 저서에서 한 말이 진심이라면 응당 그렇게 해야 마땅한 일입니다.



'성(性) 갑질'이 더 문제인 이유는, 가해 행위가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피해자는 극도로 수치심을 느껴 큰 충격과 긴 후유증에 시달리는 데 반해 신고나 항의 혹은 피해구제 노력을 하기 어렵다는 특성 때문이다. 만약 '성(性) 갑질' 피해 사실을 알리거나 신고할 경우 피해자들을 도와야 할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오히려 숨기고 무마하려 애쓰거나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가하기도 한다. 가해자들은 이런 피해자들의 약점을 너무 잘 알고, 서로 공유하거나 학습하면서 '성(性) 갑질'을 상습적으로 저질러왔다. 이제는 멈춰야 한다. 부끄럽고 안타깝게도 누이와 딸과 손녀를 생각하라며 '갑들에게 반성과 자각'을 호소해 봐야 효과가 없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을 고소한 용감한 골프장 경기진행요원 같은 '을'들의 자기 권리 찾기 노력과 이들의 용기와 노력을 지키고 보호하고 북돋워 주는 국가와 사회의 시스템이 '성(性) 갑질'을 멈추게 해야 한다. '발본색원' '4대 악 척결' 같은 용어는 '성(性) 갑질'에 적용되어야 한다.


[표창원의 단도직입]'성(性) 갑질'을 멈추게 하라(경향신문)


'을'의 신분에 따른 학습된 무기력함을 어쩔 수 없다며 묻어버리면 권력을 이용한 성추행은 끊임없이 반복될 것입니다. 을의 용기 있는 발언과 행동은 물론 그들에게 피해가 돌아가지 않게끔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가해자를 엄하게 벌할 법률 그리고 애초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다양한 예방책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책은탁 씨의 용기 있는 발언과 행동에 상응하는 정의로운 결과가 나오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언론의 보도가 뒤따르자 상무는 사직서를 냈고 박시형 대표가 이를 수리하긴 했습니다. SBS라디오 <한수진의 SBS 전망대>에서 피해자 책은탁 씨와 쌤앤파커스 대표를 인터뷰한 내용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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