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감동을 전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요? 이런 고민을 하는 분들을 위해 생각비행은 《설득의 스토리텔링》을 출간하고 블로그에 설득이나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연관된 기사를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좀 흥미로운 접근으로 여러분께 '설득의 비밀'을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201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다 부문 후보로 올라(12개 부문) 알짜배기 4개 부문(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의 상을 석권한 영화 <킹스 스피치>는 설득의 비밀을 알려주는 유쾌한 영화입니다. 1939년 세기의 로맨스라는 스캔들을 일으키며 왕위를 포기한 형 에드워드 8세 때문에 버티(조지 6세)는 본의 아니게 왕위에 오릅니다. 왕으로서 권력을 가지고 명예를 누리게 되었으나, 한편으로 책임감과 사명감을 짊어진 그가 두려워하는 게 있었으니 다름 아닌 '마이크'였죠. 버티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마이크 앞에만 서면 말을 더듬는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잘해보려고 무던히 노력하지만, 점점 국왕의 자리를 버겁다고 느낍니다. 그를 지켜보는 아내 엘리자베스 왕비와 수많은 백성도 애가 타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버티가 왕위에 오른 시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한 위험천만한 시대였습니다. 불안한 정세 속에서 자신들을 이끌어줄 좋은 지도자를 원하는 국민을 위해 그는 아내의 소개로 괴짜 언어 치료사인 라이오넬 로그를 만납니다. 삐걱거리는 첫 만남 이후 두 사람은 예전과 다른 기상천외한 치료법으로 말더듬증을 극복하고자 도전합니다. 영화는 이 과정을 보여주면서 남을 설득하고 이끌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자신감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자신감이란 자신을 인정하고 긍정하는 마음에서 비롯합니다. 버티는 어린 시절부터 엄혹한 부왕을 향한 두려움과 무슨 일이든 자기보다 더 잘하는 형(에드워드 8세)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렸습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엄혹한 시절에 그는 왕족으로서 사명감과 책임감을 통감하고 다방면으로 노력합니다. 하지만 재능이 있어도 그것을 을 제대로 풀어놓지 못하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법이죠. 트라우마가 되어 버린 어린 시절의 두려움과 열등감 때문에 버티는 줄곧 자신을 인정하지 못했고, 그 결과 수많은 대중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 하고 말문이 막히는 말더듬증에 시달립니다. 말로 백성과 소통해야 하는 왕으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었죠.



이에 괴짜 언어 치료사인 라이오넬이 내놓은 치료법은 유머와 위트로 버티의 긴장을 풀어주고 칭찬으로 자신감을 북돋워 주면서 친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왕으로서 항상 수직적 관계 속에 살다 보니 친구가 없는 조지 6세를 "버티"라고 부르며 라이오넬은 '평등'한 관계에서만 우러나올 수 있는 '소통'을 이야기합니다.
《설득의 스토리텔링》의 저자 이안 커러더스도 성공적인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비법으로 자신감을 꼽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당신에게서 권위가 보이지 않는다면 청중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거들먹거리며 거만하게 행동하라는 뜻이 아니다. 이 기회를 빌려 당신이 가진 기량을 자신감 있게 발휘하라는 말이다. 

그러니 다음번에 사람들 앞에 서게 되면 기억하라. 그들은 무언가 듣고 싶어 한다.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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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오넬은 버티와 소통하며 말더듬증을 치료하고 나아가 백성과 친근한 벗이 되어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조지 6세의 아버지인 조지 5세는 백성과의 평등한 관계와 소통을 중요시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백성은 곧 나를 일컫는다."

<킹스 스피치>에는 왕족뿐 아니라 그 시대를 대표하는 다른 위인도 여럿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인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끌고 영국을 지켜낸 의회의 수장 윈스턴 처칠이 있군요. 영화 속에서 처칠은 아직 수상이 되기 전의 모습입니다. 처칠은 선천적인 구강 구조 탓에 말을 잘하게 되기까지 각고의 노력을 해왔다는 경험담을 들려주며 조지 6세의 힘을 북돋아 줍니다. 역사상 위대한 연설가 중에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처칠조차 누군가를 말로 설득하는 일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설득의 스토리텔링》의 저자는 다양한 영화를 예로 들어 '설득의 비밀'을 이야기하는데요, <킹스 스피치>라는 영화를 예상했던 걸까요? 본문에 이런 내용이 있거든요. ^^

경영진은 술 취한 사람이 몸을 가누기 위해 술집 카운터에 몸을 기대듯 파워포인트를 사용한다. 세상이 불안하게 느껴질 때 파워포인트로 짠 거창한 계획이 그들을 받쳐주는 지지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만약 처칠이 요즘 시대에 태어나서 자랐더라면 노트북을 불살라버렸을 것이고, 파워포인트의 슬라이드에는 다음과 같은 말만 적었을 것이다.

나의 제안

-  피
-  땀
-  눈물

나는 당신이 파워포인트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진 않는다. 하지만 다음번에 파워포인트를 사용할 때는 이렇게 해 보라. 사진이나 그래프를 보여 주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것이다. 파워포인트는 그런 용도로는 아주 제격이다. 그 외에는 사용하지 마라. 특히 문자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파워포인트를 사용하지 마라. 입이 있지 않은가? 문자로 전달할 것이라면 차라리 말로 표현하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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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 스피치>라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절에 오늘날 파워포인트와 같은 소통의 도구는 무엇이었을까요? 다름 아닌 '마이크'였을 겁니다. 조지 5세는 왕족이 앞으로 이 앞에서 연기하는 광대가 되어야 한다고 열변합니다만, 버티로서는 그 앞에 서기만 하면 말을 더듬게 되는 공포의 대상일 뿐이었죠.

하지만 버티는 마지막 연설을 시작하면서 '기술'이 '설득'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담아 진정성 있는 호소를 하지 않는다면 마이크를 거쳐 라디오에서 울려 퍼지는 그의 목소리는 그저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설득을 도와주는 파워포인트라는 도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슬라이드를 현란한 기교로 채워서 다른 이의 눈을 현혹하더라도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킹스 스피치>는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는 행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무엇을 전달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영화입니다.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이나 면접을 앞두고 계신 분들이라면 이 영화를 보시고 그 감흥을 《설득의 스토리텔링》으로 재정리하시길 권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달라질 테니까요!  



킹스 스피치
감독 톰 후퍼 (2010 / 오스트레일리아,영국,미국)
출연 콜린 퍼스,제프리 러시,헬레나 본햄 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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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의 피해 상황으로 세계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 유일의 피폭국인 일본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싫겠지만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상황은 시간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습니다. 천재인 대지진에 도쿄전력, 일본 정부의 무능력과 실책이란 인재까지 더해져 발생한 상황이라 보는 이를 더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도움을 받기로 한 이상 모쪼록 일본에 살고 계시는 분들께 더는 큰 피해가 일어나지 않기를 빕니다.

요즘 각 언론의 헤드라인을 유심히 살펴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이번 일본의 대재앙과 관련해 대지진과 쓰나미, 원자력발전소 멜트다운 위험 문제 옆에는 꼭 주식시장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망자가 수만 명을 헤아리게 될지도 모를 '일본 전후 최대의 위기'라는 이 사태를 다루면서 국제적인 주식시장에 대한 기사와 국내 증시에 관한 내용을 함께 다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날 주식시장은 단순히 경제적 지표뿐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 세계에서 한 국가가 안전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평가하는 경제적 척도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원래부터 주식(증권)은 극단적인 위험으로부터 큰 이익을 취하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할 목적으로 만든 것이니까요.


1488년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희망봉을 발견하고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 항로를 개척함으로써 유럽과 동양 사이에 직접 무역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른바 대항해 시대의 서막인데요. 이로써 유럽 사람들은 동양의 금은보화와 진귀한 물자를 배로 싣고 유럽으로 되돌아가 되파는 해상무역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바다'라는 대자연이었습니다. 개척 항로 무역을 통한 이익은 태풍을 비롯한 예상할 수 없는 천재지변을 극복해야만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해적선의 약탈까지 염두에 둬야 했습니다. 성공하기만 하면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지만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걸어도 안전을 보장하기 힘든 위험천만한 성공률 때문에 사람들은 '고위험 고수익'이라는 극단적 투기성 무역을 위해 주식 형태의 증서를 발행함으로써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증권의 시작이지요.

이런 동서양 해상무역이 나날이 발전하자 1602년 마침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설립되었습니다. 그러니 세계 증권시장의 역사는 이제 400년이 조금 넘는 셈이군요.


유럽에서 시작되었으나 현재 세계경제와 주식시장의 중심은 미국, 그중에서도 월스트리트라고 할 수 있죠. 250여 년 전 뉴욕 월스트리트를 따라 맨해튼 쪽에 유럽에서 들어오는 수입품을 하역하는 선착장이 있었는데, 물품 대신 송장(invoice)을 근거로 거래가 이뤄졌습니다. 화폐가 없던 시절이라 은으로 만든 막대를 사용해 거래를 시작했는데 이것이 곧 뉴욕 증시의 시작이라고 하는군요. 이 전통에 따라 아직도 뉴욕증시는 주가를 소수점이 아닌 1/8단위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대항해 시대와 마찬가지로 다른 세계끼리의 무역이 주식의 시초가 되었네요.

그리고 1789년 미국 정부는 남북전쟁 비용을 조달하고자 최초로 정부채권을 발행했고 뒤이어 은행·보험사들이 거래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천재지변에 이어서 이번에는 전쟁이라니 주식의 역사에서 위험성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인 듯합니다. 하지만 이런 위험성은 결국 투기로 말미암은 고공비행 끝에 1929년 주가 폭락과 더불어 대공황을 유발합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 셈이지만 이때부터 미국에 증권감독원이 생겨 주식시장에 증시 안정을 위한 제대로 된 규정과 감독기관이 등장했습니다.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1930년 일제강점기에 '취인소'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우리나라 증권시장은 해방 이후 1956년 현대적인 의미의 증권거래소를 개장했지만, 상장회사도 투자자도 여력이 거의 없던 시절인지라 거래는 미미했습니다. 그러다가 1960년대 말 자본시장 육성에 관한 특별법과 1970년대에 들어서 투자신탁회사가 설립되어 기관투자자의 시대가 시작되었고, 기업공개촉진법의 반강제적인 도입으로 1970년대 말부터 상장기업이 비약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국제화 단계에서 삐끗하게 되어 1997년 IMF 사태가 터졌죠. 이를 극복하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코스피(KOSPI) 지수가 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유럽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 우리나라든 원인이 무엇이건, 과열 후 폭락 그리고 재조정은 주식시장에서 거치지 않을 수 없는 단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더구나 국가 간의 주식시장은 점점 더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이렇듯 역사적으로 주식은 시작부터 위험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과연 이번 일본 대지진과 주가 위기가 세계 경제와 주식 역사 속에 어떤 족적을 남기게 될까요? 부디 대재앙을 이용해 폭리를 취하려는 간사한 세력이 나타나지 않기만 바랄 뿐입니다.

 

매그니튜드 8.8 규모로 일본을 강타한 후쿠시마 대지진과 쓰나미로 피해가 끊이질 않는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후쿠시마 핵발전소 1호기의 외부 건물이 폭발하여 파손되고 한때 멜트다운의 위험성까지 거론되며 방사선 누출 위험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번 지진 피해로 사망·실종자가 1700명을 넘었고, 원전 현장에 있던 3명은 방사선 피폭이 확인된 상태라고 합니다. 다행히 건강에 이상은 없어 보이는 상태라고 하네요. 

 

12일 저녁에 후쿠시마 동쪽 근해에서 또다시 강진이 발생하는 등 피해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일본에 계신 모든 분이 안전하시기를 빌며 더는 피해가 없기를 기원합니다. 이런 대재앙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구호 인력, 물자, 의료 물품과 의사... 하나같이 중요한 것들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황을 주시하는 '침착함'과 피해 복구 '의지'가 아닐까요? 사람들이 공황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일이 모든 구호 활동의 출발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일어난 9.11 사태 당시 뉴욕 시장 루돌프 줄리아니는 당황하는 시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상으로 돌아가라."

 

많은 시민이 침착하게 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일본에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아낌없는 노력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생각비행은 책과 관련이 있는 작가의 사례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슬램덩크>를 필두로 <베가본드>, <리얼> 등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걸작 만화책을 출간한 일본 만화가 이노우에 다케히코(井上雄彦)의 <Smile> 연작입니다. 그는 가끔 자신의 트위터에 <Smile>이란 제목으로 작품을 올리곤 했는데요, 제목 그대로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다양한 필치로 그린 연작입니다. 그런 그가 지난 3월 11일 지진이 일어난 후부터 사람들이 침착함을 되찾고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하고자 <Smile>이란 제목으로 사람들이 웃는 얼굴을 끊임없이 그려서 올리고 있습니다.

 ⓒ Inoue Takehiko, All rights reserved.

2011년 3월 13일 0시 현재 <Smile 57>까지 올라왔습니다. 지진이 일어난 뒤 12일부터 "기도합니다(祈る)"라는 트윗과 함께 <Smile 34>가 시작되었으니 하루 만에 24장, 지금껏 그린 작품만큼의 분량을 하루만에 그려낸 셈입니다. 자연의 힘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대재앙 속에서도 많은 사람이 미소 띤 얼굴을 보면서 침착함과 희망을 되찾길 바라는 작가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그려내는 한 장 한 장의 미소에서 느껴지는 푸근함이 일본 사회에 큰 힘이 되길 바랍니다. 여태까지 게재된 <Smile> 연작은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트위터(@inouetake)해쉬 태그 #prayforjapan #tsunami 등으로 검색이 가능합니다.
 
 
한편 20세기 말에 <슬램 덩크>를 연재했던 일본 최대의 만화잡지 《점프》를 비롯해 주간지 대부분이 차질없이 이번 주 출간을 완수하고자 사력을 다하고 있다는군요. 임원들은 긴박하게 인쇄소 상황을 파악하는 등 무슨 일이 있어도 책을 낸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 문화의 저력이기도 한 만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한결같은 일상을 전해주는 데 일익을 담당하겠죠. 대지진으로 충격에 빠진 국민이 돌아가야 할 그 일상으로 말입니다. 출판 대국인 일본 출판 관계자들의 저력과 강철같은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정말 문자 그대로 자신이 맡은 바에 목숨을 거는 분들의 책임감에 고개를 숙이게 되는군요.
 
 
p.s 일본 지진 당일 전화와 휴대전화, 문자 등은 불통이 된 곳이 많았으나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건재해서 긴급대피, 정보교환, 실종자 찾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으로 정보를 교류하는 비상통신수단으로 급부상했다고 합니다. 2011년은 중동 민주화 물결부터 일본 대지진에 이르기까지 극한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소셜네트워크의 위력을 극명하게 느낄 수 있는 한 해인 것 같습니다.


MBC 시사교양국의 간판이자 한국 탐사보도의 상징인 <PD수첩>의 안위가 심상치 않습니다. 아니, 건국 이래 한 해도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던 한국경제처럼, 권력층의 치부를 드러내고 비리를 치열하게 파고드는 <PD수첩>이 한시도 위험하지 않았던 적이 없을 겁니다. 그렇더라도 최근 MBC의 행보를 보면 이번 정권 들어 <PD수첩>과 같은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더 위험에 빠진 건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MBC PD수첩 ‘수난시대’(http://www.journalist.or.kr/news/articleView.html?idxno=25521, 기자협회보)

"<무한도전> 김태호 PD를 '1년 됐다'고 다른 데로 보내면?" [인터뷰] 최승호 PD "비판 저널리즘 질식 시스템이 갖춰졌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10303221627, 프레시안)

‘PD수첩’, MB무릎기도사건 끝내 불방(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1739404, 노컷뉴스)

스폰서 검사를 폭로하여 2010년 올해의 PD상을 받은 최승호 PD를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인사이동하더니, 지난 8일 생생 이슈 코너에 방영하려 했던 '이명박 대통령 조찬기도회 무릎기도사건'은 시사교양국장 지시로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본격적으로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가 아닌가 의심될 정도입니다.

사실을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언론은 그 존재가치가 무색합니다. 그래서 현대 저널리즘에서 탐사보도에 바탕을 둔 '폭로'는 사실을 알리는 데 꼭 필요한 수단이죠.

폭로 - 사실을 보도하는 저널리즘의 가치

잡지 연재 초기에 스탠더드 오일을 폭로하는 기사에 대한 찬사가 꾸준히 이어졌다. 타벨은 헨리 데마레스트 로이드에게 받은 찬사에 답장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께서 제가 하는 일이 바람직한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니 참으로 기쁩니다. 저는 양쪽의 입장을 치우치지 않게 파악하려고 노력했고 어느 한 쪽의 입장에 동조하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제가 가진 목적을 끝까지 고수하려 합니다. 언제나 사실을 말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요." _360p

아이다미네르바타벨어떻게한명의저널리스트가독점재벌스탠더드오일? 상세보기

그런 의미에서 <PD수첩> PD들의 인사이동 조치는 물론이고, 이명박 대통령 조찬기도회 무릎기도사건의 중지를 명령한 시사교양국장은 스스로 언론의 본령을 훼손한 셈입니다.

'나는 정치에 관심 없어, 따분한 시사 프로그램도 관심 없어, 그렇게 밤늦게 하는 시청률도 안 나오는 프로그램을 누가 본다고... 난 <무한도전>이랑 <나는 가수다>만 보면 돼'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만, 나만..."이라고 외쳤다가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역사가 말해줍니다.

그들이 처음 왔을 때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으므로.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그 다음에 그들이 유태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므로.

마침내 그들이 나에게 들이닥쳤을 때
나를 위해 항변해 줄 사람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 마르틴 니뮐러

Ahlul Bayt 뉴스 에이전시에 따르면 2011년 3월 4일자로 압둘라 사우디아라비아 왕이 골드만 삭스를 통해서 페이스북을 170조 원에 현금으로 사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대체 왜 석유로 잘 먹고 잘사는 사우디 국왕이 뜬금없이 페이스북을 천문학적인 현금으로 사겠다고 한 걸까요? 그 이유는 지금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중동 민주화 혁명을 분쇄하기 위해섭니다. 페이스북 같은 SNS를 중심으로 혁명세력이 결집하고 혁명주도 페이지에서 정보를 공유하는 행위를 막아 혁명세력을 뿌리 뽑겠다는 생각이지요.

'석유'와 '페이스북'과 '혁명', 그리고 '민주화'. 이처럼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일도 가만히 따져보면 연쇄적인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우리나라에서 <PD수첩>이 사라지면 다음에는 전국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이 위험해질지 모릅니다. 아니 위험해진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작년부터 <PD수첩>과 <무한도전>의 PD들이 '세트로 묶여' 위협받아 왔으니까요. 딱딱한 저널리즘으로 '진실'을 지키는 일이 결국은 온 국민의 피로를 풀어주는 '웃음'을 지키는 일 아닐까요?

그러니 여러분, <무한도전>을 사랑한다면 <PD수첩>을 지켜내도록 힘을 모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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