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달력에 20일이 빨갛게 표기되어 있어 '어? 무슨 날이지?' 하고 생각한 분들 계실 겁니다. 탄핵 없이 박근혜가 대통령이었다면 원래 대선일은 12월 20일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SNS에서는 박근혜의 차기 대통령으로 김무성이나 반기문이 당선되는 패러디 뉴스를 올린 분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죠. 국정농단을 좌시하지 않고 우리나라 국민은 촛불을 들고 추운 겨울을 거리에서 싸웠습니다. 그 결과 법치와 민주주의에 의거한 대통령 탄핵이 이뤄졌고, 장미 대선으로 문재인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촛불 시민은 독일 에버트 인권상을 받았고 《이코노미스트》지는 2017년 올해의 국가로 프랑스와 함께 대한민국을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유튜브


국정농단의 여파로 촛불집회에 직접 참여한 시민들이 늘어 우리의 정치 현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인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 주목을 받은 한 해였습니다. 지난해 〈무현: 두 도시 이야기〉에 이어 올해는 좀 더 세련되게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가 다큐 영화 사상 최단 기록으로 100만 관객을 넘어서며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대통령 당선 이전의 문재인 후보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부분이 있었다는 얘기가 나와 관심을 끌기도 했죠.


출처 - JTBC


독특한 다큐 영화도 나왔습니다. 촛불을 가로막고 박근혜를 지키겠다고 튀어나온 일군의 사람들을 보셨을 겁니다. 이른바 '박사모'들로 자칭 태극기 집회라는 걸 주도한 사람들이죠. 이 사람들이 대체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를 관조하는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도 개봉했습니다. 이 다큐는 청주에 의관을 갖추고 박정희 사진에 절을 하는 한 할아버지 농부와 울산에 살며 박정희에 관한 것에 둘러싸여 사는 한 부부의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그러면서 이들이 왜 저러는지, 어떤 감성과 생각으로 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것인지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쫓아갑니다.

 

정치, 사회 이슈를 다룬 다큐멘터리는 고발하는 성격을 띠기 쉬운데, 〈미스 프레지던트〉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해부하는 데 주력하는 독특한 영화입니다. 일정한 거리 두기를 통해 현상과 인물을 객관적으로 조명하여 관객이 각자 판단하기를 권하는 연출을 택했습니다. 이 때문인지 촛불 시민들에게서는 박사모를 미화하는 영화라고 비판받고, 박사모들에게서는 박사모를 비하하는 영화라고 하여 양쪽에서 비판을 받은 다큐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탄핵 1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때 그 사람들은 무엇이었나를 각자 나름대로 생각해볼 만한 이야깃거리를 주는 영화이니 흥미로운 건 사실입니다.


출처 - 유튜브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적폐인 굴욕적인 12.28 위안부 합의 때문인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영화도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바로 〈아이 캔 스피크〉입니다. 2007년 2월 미국 하원의회 공개 청문회에서 김군자 할머니와 함께 일본의 만행을 증언한 이용수 할머니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입니다. 연말 영화제에서 이용수 할머니 역을 맡은 나문희 배우가 연이어 수상하고 있을 정도로 재미와 메시지를 둘 다 잡은 수작이었죠. 이용수 할머니는 올해 열린 한미정상회담 당시 청와대에 초청되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포옹을 하기도 해 박근혜의 위안부 합의가 언어도단이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출처 - 유튜브


하지만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앞에 또 한 분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돌아가시기도 했습니다. 송신도 할머니는 외국에 거주한 마지막 한국인 위안부 피해 생존자셨기에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송신도 할머니는 일본에 사는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로는 유일하게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던 분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1993년 처음 소송을 제기해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패소가 확정되기까지 10년간 법정에서 싸웠습니다. "재판에 졌지만 내 마음은 지지 않아!" 하고 외친 송신도 할머니의 이 10년에 걸친 재판은 〈다이빙벨〉의 공동감독이기도 했던 안해룡 감독의 2007년작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라는 다큐 영화로 개봉한 바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자원봉사자들과 아픔을 딛고 씩씩하게 싸우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을 받지 못한 채 돌아가셔서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이 밖에도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이루어낸 1987년 6월 항쟁을 영화화한 〈1987〉 등 개봉을 앞둔 실화 영화도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연휴에 어떤 영화를 보셨나요? 2017년이 지나기 전에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를 찾아보며 우리가 어떤 시간을 지나왔나 되돌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2018년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에도 제격이라고 생각합니다.

 

8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여름휴가는 잘 다녀오셨는지요. 사정상 올해 휴가 계획을 세우지 못하셨던 분들이나 외출이 어려운 분들, 마지막 주말을 집에서 보내는 분들을 위해 유익한 정보를 알려드릴까 합니다. 우리나라는 여름부터 늦가을까지는 영화제의 계절이지요. 깊어가는 가을에 추수하듯 명작들을 거둬내는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부터 한여름 장마 속에서도 마니아층의 발길을 끄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이르기까지 좋은 영화제가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EBS에서 주최하는 EIDF는 조금 특이한 영화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주제로 한 영화제라 그렇기도 하지만 영화제 기간 내내 따끈따끈한 상영작을 영화관이 아닌 집에서도 편하게 시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EBS국제다큐영화제 누리집


EBS국제다큐영화제(EIDF, EBS International Documentary Festival)는 2004년 '변혁의 아시아'라는 주제로 시작되어 올해 11회를 맞이한 중견 영화제입니다. 그간 세상과 진실 그리고 희망에 대한 세계 각국의 다큐멘터리를 소개해왔습니다. 올해는 이스라엘 특별전을 마련했다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폭격하는 사건 등으로 다수의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보이콧을 선언해 개막 직전 이스라엘 특별전이 취소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EIDF에는 흥미로운 작품이 많습니다. 올해는 '다큐, 희망을 말하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Hope Lies Within US', 즉 희망과 공존이라는 다큐멘터리의 근본정신을 통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되새기자는 의미의 주제 아래 EIDF 2014가 진행 중입니다.





EIDF가 여느 영화제와 다른 점은 영화제임에도 EBS를 통해 상영 작품을 TV와 인터넷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화제 기간 내내 EBS 채널로 하루 평균 9시간 방송되고 방송이 끝난 후 일주일 동안 인터넷으로 다시보기를 지원합니다. 그러니 표를 사려고 전쟁을 벌이지 않아도, 시간 맞춰 TV 앞에 앉아 있지 않아도 집에서 편안히 영화제를 즐길 수 있다는 얘깁니다.



 

출처 - EBS국제다큐영화제 누리집


올해는 총 82개국에서 781편이 출품되었고, 그중 23개국 50편을 상영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총 38편을 TV로 방영 후 인터넷 다시보기를 지원한다고 하는군요. 회원 가입이나 프로그램 설치를 할 필요도 없이 TV 방영이 끝났다면 다시보기 페이지에서 본편 버튼을 클릭하기만 하면 바로 고화질로 볼 수 있습니다(TV 방영 시간이 아직 지나지 않았으면 본편 다시보기를 해도 예고편만 나옵니다).



EIDF 홈페이지 : http://www.eidf.org


EIDF 극장 예매 시간표 : http://www.eidf.org/kr/schedule/screeningSc01


EIDF TV방송 편성표 : http://www.eidf.org/kr/schedule/tvSchedule


EIDF 2014 상영작 다시보기 : http://www.eidf.org/kr/archive/movieList



지난 25일부터 시작된 EIDF는 오늘까지(8월 31일) 열립니다. 영화관 관람을 원하신다면 위 극장 예매 시간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BS스페이스, 상명대학교, 서울역사박물관, 인디스페이스, KU시네마테크, 롯데시네마 누리꿈(상암)에서 의미 있는 다큐영화를 보실 수 있습니다. 생각비행이 다큐멘터리 몇 편을 추천해드립니다.


 



CERN: 세상을 바꾼 60년(다시보기)


과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뉴스를 통해 그 이름은 들어봤을 겁니다. 신의 입자로 널리 알려진 '힉스 입자'를 발견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 관한 다큐멘터리입니다. 힉스 입자를 예견했던 피터 힉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죠. 신의 입자를 발견해 현대 우주론의 마지막 조각을 맞춘 곳이 바로 CERN입니다. 이 연구에 사용된 도구는 거대 강입자 가속기(LHC)였습니다. 다큐멘터리는 CERN에서 일하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이 일의 의미와 보람에 대해 생생한 의견을 들려줍니다. 신의 입자를 밝혀낸 LHC의 전모를 볼 수 있다는 점도 놓칠 수 없는 관람 포인트입니다.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다시보기)


제86회 아카데미상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아 이미 유명세에 오른 음악 다큐멘터리입니다. 평소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지만 노래 실력만큼은 진짜 스타 가수들 못지않은 백업 가수들을 조망한 다큐멘터리로 그들의 삶과 인생역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비록 조연으로 밀려났지만 롤링 스톤즈, 마이클 잭슨, 스티비 원더, 앨튼 존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세계 최고의 가수들이 즐비하게 등장하기 때문에 팝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더 재밌게 볼 수 있을 겁니다.




누가 애런 슈워츠를 죽였는가?(다시보기)


블로그나 SNS를 자주 쓰는 분들이라면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CCL)' 'RSS' '레딧' 등의 용어가 익숙하실 텐데요, 이 모두를 만드는데 공통적으로 이름을 올린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 26살의 천재 해커 애런 슈워츠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2013년 1월 자택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기 때문이지요. 미국 정부의 정보통신 제도에 반기를 들고 인터넷 사용자의 권리 옹호에 힘썼던 그의 일대기를 그린 이 다큐멘터리는 현대 정보통신 이면에 숨겨진 통제와 권위의 구조를 파헤칩니다. 그리고 기존 체제에 저항하다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린 애런 슈워츠가 제기한 문제의식을 꼼꼼히 되새기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국정원 대선 개입, 간첩 조작, 민간인 사찰 등에서 드러났듯이, 국가기관에 의한 국민의 감시와 통제가 일상적인 현시점에 함께 보시면 좋을 다큐멘터리로 생각해 추천합니다.



지난 금요일, MBC에서 <개천에서 용 찾기>라는 제목으로 짧은 다큐멘터리를 방영했습니다.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절에 우리 부모님 세대는 가난의 대물림을 끊으려고 억척스럽게 자식들을 공부시켰습니다. 그 시절 가난하게 살기 싫다던 청춘들이 공부 혹은 사업으로 자수성가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개천에서 용 났다'라며 본보기로 삼고, 그들처럼 성공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20세기를 지나 어느새 21세기에 접어들었습니다. 보릿고개를 걱정하던 한국은 OECD 회원국이 되었고, 얼마 전에는 G20 의장국이 될 정도로 부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지금도 가난이란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너무 변해버린 걸까요? 이제는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을 실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마저 사라져버린 '무한경쟁' 사회에서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을 다시금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전엔 개천에서 용 났다는데...

1950년대 이전에 한국은 어수선한 해방정국을 맞이합니다. 사회는 좌와 우로 나뉘어 대립했으며, 깊게 팬 이념 갈등으로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마저 경험합니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전국은 초토화되었습니다. 기간시설이 모두 파괴되었으며 전쟁고아와 과부가 넘쳐났습니다.

한국전쟁으로 큰 시련을 겪은 한국은 1960~1970년대를 거치며 빠른 속도로 성장했습니다. 수출주도형 경제개발 정책으로 외화를 벌어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급성장에 따른 폐해도 뒤따랐습니다. 노동자를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 풍토가 조성되고,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독재정권은 폭력으로 국민을 억압하며 공포를 조장했습니다.

부모의 희생, 1960~70년대 어려운 시절, 가난,개천에서 용난다

어려운 시절, 한국 사회에서 부모의 희생으로 용이 나오는 일은 적지 않았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를 거쳤지만 학업에 힘을 쏟아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과 사업에 뛰어들어 자수성가하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1974년 사법시험을 통과하여 변호사가 되었다가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이 된 고 노무현 대통령도 그중에 한 사람이죠.

사법고시생의 합격수기, 명문대 입학수기, 개천에서 용난다, 서울대 수석합격

1980년대 학업 신화. 여러움 속에서 공부에 매진함으로 영광을 누린 사람들의 미담이 뉴스에 곧잘 소개되곤 했다.


이후 1980년대에도 신화는 이어집니다. 학생들은 사법고시생의 합격수기, 명문대 입학수기(특히 서울대)를 읽고 희망을 키웠습니다. 그 때문인지 사법고시 합격자 발표일이나 대학입시 합격자 발표일이면 뉴스에선 '개천에서 용이 된' 사람들을 찾아 보도하곤 했습니다. 과외를 받지 않고 교과서로만 공부해서 서울대에 수석 합격했다는 신화가 해마다 이어졌지요.

신화의 파괴, 개천에선 사라진 용 전설

시간은 흘러 21세기가 되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G20 의장국으로 행사를 치를 정도로 한국은 세계에서 인정받는 경제 대국이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잘사는 나라'가 된 것이죠. 세계는 한류에 열광하고,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한국을 배운다는 명목으로 많은 산업 연수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언제부턴가 경쟁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잘 포착한 방송사는 너도나도 경쟁 구도의 프로그램을 양산하며 인기를 구가합니다. <슈퍼스타K> <위대한 탄생> <프로젝트 런어웨이> <나는 가수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사람들은 치열한 경쟁을 즐깁니다. 이런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는 까닭은 과거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신화가 사회 속에서 그 의미를 잃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비주류 경제학자인 장하준 교수는 선진국들의 성장 신화 속에 숨겨진 은밀한 역사를 분석하고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책을 저술합니다. 선진국들이 현재 개발도상국과 후진국에 강요하는 정책과 제도가 과거 자신들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채택했던 정책이나 제도와는 얼마나 거리가 먼 것인지, 따라서 후진국들에 대한 그들의 '설교'가 얼마나 위선적인 경우가 잦은지를 보여줍니다. 

국가 간의 상황만 그런 게 아닙니다. 한국 사회에서 먼저 상류 사회로 올라간 이들은 뒤따르는 사람들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습니다. '개천에서 용 나는' 신화가 사라진 이유에는 동일한 출발점이 사라져버린 사회적 배경이 깔려 있습니다.

개천에서 용나기 힘든 사회, 불평등한 사회구조

개천에서 용 나는 신화가 사라졌다. 출발선이 달라진 사회구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과외를 받지 않고 자력으로 명문대에 합격하는 '학력 신화'가 깨진 원인은, 소위 스카이(SKY)라고 부르는 대학 입학생들의 대부분이 부모의 재력을 바탕으로 공부한 명문 고등학교 출신들이라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같은 출발선에서 공부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선행 교육을 받고 출발하는 부잣집 아이와 과외는 고사하고 밥걱정을 해야 하는 학생 사이에 경제적 간격이 너무나 커져 버렸습니다. 
 
동일한 출발점에서 시작하는 바람직한 경쟁은 발전을 이끌 수 있지만, 엄청난 차이를 시작점으로 하는 불평등한 경쟁은 상대적 박탈감을 심화하며 희망 없는 사회를 만들어 버립니다. 이는 곧 발전과는 거리가 먼, 사회적 정체와 양극화를 촉발합니다.

개천에서 다시 용이 나게 하려면

예전처럼 빈번하진 않지만 아주 드물게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일을 볼 수 있습니다. 예전보다 사회적 경쟁은 더 심해지고 출발점마저 완벽히 달라진 사회에서 여전히 '용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말로 특별한 사람이라서 그런 일을 해낸 걸까요? 찬찬히 살펴보면 그들이 알게 모르게 주변에서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개천에서 용 찾기> 다큐멘터리는 돈이 없어서 친구 집을 전전하며 학교를 다녀야 했던 어떤 학생의 상황을 전합니다. 그 학생은 선생님의 도움으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주거가 안정되자 학생은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서울의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에서 우린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출발선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애초에 출발선에서 뒤처졌던 학생들이 그나마 다른 학생들과 같은 출발선상으로 옮겨올 수 있었던 것이죠.

주변의 도움, 사회적기업, 도움을 받아 용이 된 학생들

주변에서 도움을 받아 보통 학생들과 같은 출발선상에서 노력하여 '용'이 된 학생들.


생각비행은 그동안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동력으로 '사회적기업'에 주목해왔습니다. 지난번에 소개해 드렸던 '대안공간'이나 《사회적기업 창업 교과서》에서 소개한 일본의 대표적인 사회적기업 프로젝트인 '토키와장'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싶습니다. 상업성에 연연하지 않고, 신인작가에게 갤러리와 작업공간을 무상으로 빌려주어 기성작가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대안공간. 신인 만화작가들을 위해 작업 및 주거 공간을 빌려주고, 그들의 활동을 코치해주고 출판계와 다리를 놓아주는 토키와장 프로젝트. 이 두 사례는 사회적으로 약자이고 뒤처진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정상적인 위치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발판으로서 훌륭한 역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시골의사' 박경철 씨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회적 기회를 공정하게 만들어야 교육이 바뀐다고 말이죠. 그렇습니다. 현재 한국의 교육은 기회를 공정하게 제공하지 않은 채, 경쟁만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쟁구도 속에서 교육받은 학생들은 사회에 나와 또다시 경쟁하고, '공정한 기회'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배려 없이, 경쟁만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라야 하는 사회에선 비극이 끊이지 않는 법입니다. 얼마 전에 일어난 카이스트 연쇄 자살 사태는 과도한 경쟁에 내몰린 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비극적인 결말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다시 '개천에서 용이 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모두의 출발점을 똑같게 해주면 됩니다. 예전처럼 모두 가난해지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게 똑같이 나눠주자는 얘기도 아닙니다. 있는 사람이 먼저 십시일반하는 마음으로 약자를 돕고 배려하는 문화를 형성하자는 의도입니다. 정부가 먼저 그런 역할을 주도하고, 민간에선 사회적기업이 그 역할을 맡을 수 있습니다. 

사회에 경쟁이 사라지긴 어렵더라도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하는 무지막지한 경쟁이 아니라 각자가 갖춘 능력을 공평한 잣대로 잴 수 있도록 사회적 바탕을 재조절하자는 얘기입니다. 조금만 여유를 갖고 주위를 돌아보며 함께 가는 길을 모색하자는 뜻입니다.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신화의 모델을 만드는 일은 결국 우리의 몫이 아닐까요?





아침 출근길에 모닝 커피와 점심 후 입가심으로 커피 한 잔 즐기시는 분 많으시죠? 커피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공정무역커피라는 말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우리가 무심코 마시고 있지만 이 커피라는 품목은 사실 세계에서 석유 다음으로 거래량이 활발한 품목이라는군요. 가격 폭락이나 폭등도 심한 편이고요. 그래서 대부분 빈민국인 커피 재배 농가는 선진국의 커피 확보를 위한 원조라는 미명하에 종속관계에 놓이게 되었죠. 하루 1달러도 안 되는 돈을 벌기 위해 착취당하는 아이들의 피와 땀이 커피 원두에 가득히 서려 있었던 겁니다. 이 불평등한 무역 구조를 깨뜨리기 위해 유럽에서 공정한 가격으로 거래하여 적정수익을 농가에 돌려주고자 하는 착한 소비가 시작되었는데, 이러한 운동이 바로 공정무역커피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름다운 가게에서 운영하는 아름다운 커피 같은 공정무역커피가 유명하지요.


바로 이렇게 비영리조직과 영리기업의 중간 형태로,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기업을 사회적기업이라고 합니다. 공익적 목적을 추구하는 경제 사업 조직으로, 일반 기업처럼 이윤 극대화가 아닌 사회적 목적 실현을 위해 이윤의 대부분을 재투자하는 사례가 많지요. 우리나라의 사회적기업들도 이윤추구와 함께 일자리 등 사회적 문제 해결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정부는 지속적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사회적기업을 국정과제로 선정하고, 2007년 7월 '사회적기업육성법'을 제정하여 시행했습니다. 이로써 3년만에 501개의 사회적기업이 탄생했고, 1만여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합니다. 기업당 평균 매출액도 8~10억에 이른다고 합니다.

기업이 윤리적인 이윤추구를 하면서도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니 매력적이지 않습니까. 물론 앞서 드린 이야기는 사회적기업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의 사회적기업과 정책은 아직 더 다듬고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사회적기업이 가야 할 길, 그리고 사회적기업으로서 견지해야 할 기업가정신, 창업 과정에 대해 앞으로 생각비행과 함께 고민해주시길 부탁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생각비행에서 진정한 사회적기업은 어떤 것일지 함께 생각해보자는 의미에서 도움이 될 만한 TV 프로그램을 몇 가지 간추려 봤습니다. 주말에 사회적기업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며 교양을 충전하시는 건 어떨런지요. 꿈만 꾸고 있던 창업의 실마리를 발견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요? ^_^

MBC 스페셜
세상을 바꾸는 실험 : 대안 기업가들
제1부 생산자가 행복하면 소비자도 행복하다(2007.10.20) -> 클릭
제2부 윤리가 경쟁력이다(2007.10.27) -> 클릭
제3부 생각의 틀을 깨면 미래가 보인다(2007.11.03) -> 클릭

KBS 스페셜
사회적 기업, 마음을 깨워 세상을 바꾸다(2009.09.13) -> 클릭

KBS 수요기획
보노보, 세상을 바꾸다(2010.09.08) -> 클릭

SBS 특집다큐
더불어 사는 힘, 사회적 기업(2010.11.24) ->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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