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오늘은 우리 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와 압제에 항거하여 만세시위를 펼친 역사를 기념하는 제95주년 삼일절입니다.

2014년 삼일절을 맞이하여 3.1운동의 의미를 독립운동(민족혁명)이라는 좁은 의미로 이해할 게 아니라 민주혁명으로서 그 진정한 의미를 되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관련 기사: 찬란한 '3·1 혁명', 누가 '3·1 운동'으로 바꿨나). "1919년 3월 1일부터 국내외 각지에서 일어난 독립선언과 만세시위는 민중의 힘으로 주권재민의 근대국민국가 수립과 일제 식민통치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한 민족·민주혁명이었다"는 주장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3.1운동을 3.1혁명으로 복권해야 한다는 주장을 오늘 이 자리에서 논의하려는 게 아닙니다. 수많은 선열이 흘린 핏값을 토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헌법 제1조를 얻었습니다.

제1조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95주년 삼일절을 맞이하며 과연 헌법의 근본정신이 이 시대에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수많은 국민의 희생으로 대한민국의 평화와 안정이 유지되고 있건만, 정작 국가가 국민의 권익을 보장하지는 못할망정 죄 없는 시민을 간첩으로 내모는 일이 지금 이 땅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국가가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는 만행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23년 만에 무죄 판결.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 사건을 잘 아실 겁니다. 이 사건은 1991년 명지대생이었던 강경대가 시위 도중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사건에 항의해 분신한 김기설의 유서를 전민련 총무부장이었던 강기훈이 대신 써줬다는 혐의로 구속되어 3년을 복역한 시국사건입니다. 당시 이 사건으로 운동권은 유서까지 대신 써주며 동료의 자살을 종용하는 파렴치한으로 몰렸습니다. 먹이를 물은 듯 주류 언론은 연일 맹공을 퍼부었고, 이 때문에 민심이 돌아서기도 했습니다. 

물론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은 조작이었습니다. 깨어 있는 시민사회와 일부 언론은 사건 초기부터 유서 대필이 검찰의 조작이라는 의혹을 제기해왔습니다. 6명의 대통령을 거치는 오랜 시간 동안 20대 피고인은 어느덧 50대가 되었고, 30대 변호인은 60대가 되었습니다. 그간 유서를 대신 써주며 동료의 분신자살을 방조한 범죄자라는 누명을 감내해야 했던 강기훈에게 드디어 무죄 판결이 났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말을 굳게 믿는다." 이 말은 무죄 판결을 받은 김용판이 기자들에 둘러싸여 의기양양하게 읊조린 말이다. "이 사건으로 삶이 뒤틀린 수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다. 이 판결로 그분들의 아픔에 위안이 되길 바란다." 이 말은 '유서대필 사건'의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강기훈의 소감이다.


1991년 12월 4일 서울형사지법의 유죄선고가 있은 지 만 23년 만입니다. 재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0부(권기훈 부장판사)는 13일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3년에 자격정지 1년 6월을 선고받았던 강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날 법정 안은 숙연했고 박수 소리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출처 - 중앙일보

강씨의 변호인단은 “재판부가 검찰의 무리한 추론은 받아들여 ‘운동권은 목적을 위해 유서를 대신 써주기도 하는 집단’이라는 엄청난 편견을 합리화시켜줌으로써 그동안 대필 여부를 두고 사실관계로 두터던 사건을 정말로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만들고 말았다.”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상식의 승리‘라는 드레퓌스 사건 당시 조르쥬 클레망소의 말대로 ’상식의 승리‘를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며 항소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과거 강 씨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항소와 상고를 기각했던 사법부의 사과는 없었으며, 검찰 역시 아무런 사과의 뜻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상식의 승리를 믿고 23년간 함께 싸워준 변호인만이 무죄 판결이 난 선고의 최후 변론에서 “진실 만세!”로 끝을 맺었을 뿐입니다. 이번 무죄 판결에 목이 메었다는 이석태 변호사의 인터뷰를 함께 보시죠.

출처 – 오마이뉴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는 말이 자꾸 등장하는데요, 증거조작과 마녀사냥에 의한 인권탄압의 대표적인 사건인 드레퓌스 사건에 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삼일절을 맞이하여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정리해보겠습니다.


나는 고발한다!

제목 : 가족의 저녁식사
“우리 오늘은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지 맙시다.”
“이야기하지 말자고 했잖아!”
출처 – 르 피가로

선거철 우리나라 밥상머리 상황같이 꽤 친숙한 모습입니다. 19세기 말 프랑스를 양분하여 극한으로 대립하게 했던 드레퓌스 사건 당시 신문에 실린 만평입니다. 

1894년 10월 참모본부에 근무하던 포병대위 드레퓌스는 어느 날 갑자기 독일대사관에 군사정보를 팔았다는 혐의로 체포됩니다. 비공개로 진행된 군법회의 끝에 간첩 혐의로 종신유형이 선고됩니다. 이때 재판부가 유죄판결을 내린 근거는 파리의 독일대사관에서 몰래 빼내온 정보 서류의 필적이 드레퓌스의 필적과 비슷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외에는 별다른 증거가 없었음에도 당시 프랑스 군부, 보수 가톨릭 교회, 수구 언론은 일제히 유대인인 드레퓌스를 비난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결국 드레퓌스는 프랑스령 기아나의 한 섬으로 유배를 당합니다.

2년 후 군 정보국에서 근무한 피카르 중령의 중대한 발견으로 문제가 부각됩니다. 간첩 사건의 진범이 드레퓌스가 아닌 에스테라지 소령이었다는 겁니다. 피카르 중령이 우연히 당시 문건을 열람한 결과 독일대사관에 팔려간 프랑스 기밀문서의 필적이 에스테라지의 필적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피카르 중령은 이 조사 결과를 상부에 알리고 드레퓌스의 재심을 요구하지만, 군 상층부는 그를 한직으로 좌천시켜 쫓아내고 재심 요구를 무시합니다. 제국주의가 시작되던 시기에 가톨릭과 보수세력은 자국 군대의 위신과 국가의 질서가 일개 유대인에 의해 교란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고 판단한 겁니다. 

이에 따라 진범인 에스테라지는 오히려 존재치도 않는 유대인 비밀조직으로부터 프랑스를 구한 영웅으로 무죄를 선고받고, 피카르 중령은 좌천도 모자라 군사기밀누설죄로 체포됩니다. 그 후 드레퓌스의 형도 에스테라지를 고발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이미 종결된 사건이라며 이를 묵살합니다.

출처 - 위키피디아

"대통령 각하, 저는 진실을 말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정식으로 재판을 담당한 사법부가 만천하에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제가 진실을 밝히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제 의무는 말을 하는 겁니다. 저는 역사의 공범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만일 제가 공범자가 된다면, 앞으로 제가 보낼 밤들은 유령이 가득한 밤이 될 겁니다."

"나는 궁극적 승리에 대해 조금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더욱 강력한 신념으로 거듭 말합니다. 진실이 행군하고 있으며 아무도 그 길을 막을 수 없음을! 진실이 지하에 묻히면 자라납니다. 그리고 무서운 폭발력을 축적합니다. 이것이 폭발하는 날에는 세상 모든 것을 휩쓸어버립니다."

_<나는 고발한다!> 중에서 

이때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대문호인 에밀 졸라가 행동에 나섭니다. 그는 문학 신문 《로로르(L'Aurore)》에 그 유명한 <나는 고발한다!>란 제목으로 대통령에게 공개편지를 보냅니다. 이를 통해 에밀 졸라는 죄 없는 드레퓌스에게 종신유배를 선고한 법정과 진범인 에스테라지에게 무죄를 선고한 법정을 고발하고, 재심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에밀 졸라의 용기 있는 행동은 프랑스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뜻있는 인사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얻습니다. 미국의 문호 마크 트웨인은 에밀 졸라에게 깊은 존경과 찬사를 보내며 진실을 감추는 군인과 성직자들을 비판했습니다.

결국 드레퓌스 찬·반파로 프랑스 사회는 양분되어 극한 대립에 돌입합니다. 이 와중에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던 법원이 재심을 열었지만 드레퓌스를 종신유배에서 10년형으로 감형하는 데 그칩니다. 재심으로 진실이 승리할 것으로 믿었던 세계 각국의 인사들은 다시 의기투합하여 드레퓌스 구명 운동에 나섭니다.

결국 세계 여론에 떠밀린 프랑스 정부는 드레퓌스를 특별사면하게 됩니다. 무죄가 아닌 특별사면 형식이어서 불만의 목소리가 드높았지만, 몸이 쇠약해진 드레퓌스는 이를 일단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사건이 벌어진 지 10년 만인 1904년에 형의 도움으로 새로운 증거를 첨부해 재심을 청구하고 피카르 중령과 함께 최고재판소에서 무죄와 함께 복권을 선고받습니다.

이후 건강상 이유로 전역했던 드레퓌스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현역으로 복귀하여 베르덩 전투 등 큰 전투에 참가하여 세운 공훈으로 레지옹도뇌르 훈장까지 받습니다. 자신에게 온갖 누명과 고난을 안긴 조국을 위해 희생하여 다시금 큰 공을 세우다니 대단한 사람임이 틀림없습니다.


미국판 드레퓌스 사건, 사코와 반제티 사건

출처 - 위키피디아

안타깝게도 드레퓌스와 유사한 처지에 놓였던 이는 강기훈만이 아니었습니다. 이탈리아계 이민이었던 미국의 사코와 반제티도 누명을 썼으나 드레퓌스 사건처럼 행복한 결말이 아니라 비극으로 끝나 안타까움을 남겼습니다.

1920년 4월, 매사추세츠주(州) 사우스브레인트리에서 제화공장(製靴工場)의 회계담당 직원과 수위(守衛)가 두 명의 남자에게 사살되고 종업원의 급료를 탈취당했다. 경찰은 이탈리아계(系)의 이민(移民)인 N.사코와 B.반제티를 용의자로서 체포, 이듬해 5월부터 재판이 열렸다. 두 사람 모두 무죄를 주장하여 7년에 걸친 법정 투쟁이 전개되었으나, 용의자들이 외국 이민이라는 것, 제1차 세계대전 중 징병을 기피했다는 것, 무정부주의자라는 것 등이 사람들의 편견과 반감을 샀다. 또 당시의 미국사회가 외국 이민을 좌익분자로 보는 경향도 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였다. 그리하여 많은 의혹이 남겨진 채 1927년 4월에 사형을 선고하였고, 재심(再審)을 요구하는 세계 여론도 아랑곳없이 그 해 8월에 처형되고 말았다. 그런데 1959년에 진짜 범인이 판명되어, 이는 미국 재판사상 하나의 큰 오점으로 기록되고 있다.


유대인이었던 드레퓌스처럼 사코와 반제티 역시 이탈리아 이민자라는 사실로 공격을 받았고, 무정부주의자로서 징병을 거부했던 점 때문에 애국심이 부족하다며 법정은 물론 대중의 질타를 받았습니다. 이에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세계의 지성들이 항의 서한을 보내고 호소문을 발표했지만, 미국은 사형선고를 내린 지 4달 만에 형을 집행하고 맙니다. 결국 사코와 반제티는 누명을 쓴 채 전기의자에서 목숨을 잃고 맙니다. 50년이 지난 후에야 그들의 무죄 사실이 입증되어 복권되지만, 그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죠.

출처 - 위키피디아

드레퓌스 사건이 강기훈 사건과 겹쳐 보인다면, 사코 반제티 사건은 사법살인이었던 인혁당 사건과 겹쳐 보입니다. 역사는 장소를 옮겨가며 반복되는 걸까요? 아니, 장소조차 바뀌지 않고 반복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군부독재 시절 정권의 편의에 따라 간첩을 만들어내던 때와 마찬가지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의혹 사건에서 드러나듯이 무고한 시민을 간첩으로 만들기 위해 증거마저 조작하는 오늘날 검찰의 행태를 보면 말입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김요한 기자는 “‘간첩’과 ‘증거조작’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 ‘유우성이 간첩이냐’와 ‘국정원이 증거를 조작했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유우성이 간첩이든 아니든 수사기관은 증거를 조작해서는 안 된다”며 “검찰도 정치권도 언론조차도 ‘사실이 무엇인가’보다는 ‘누구 편에 유리한가’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고 비판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수사기관이 직접 증거자료를, 그것도 외국의 공문서를 위조해 법원을 속이려 했다면 이는 대한민국 사법체계의 근간을 뒤흔들어 놓을 만한 일이며, 검찰 자체가 문을 닫아야 할 만큼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권도 언론도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를 애써 꺼리는 듯한 분위기”여서 “사안의 본질은 어디 가고 여느 때처럼 곁가지 공방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드레퓌스, 사코, 반제티, 강기훈, 그리고 어쩌면 유우성.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드레퓌스 사건이 회자하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우리 모두의 관심과 목소리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합니다. 국가폭력, 언론을 통한 여론조작 문제를 좌시할 수 없습니다. 진실을 진실이라고 말하는 데 왜 용기가 필요하다면 이런 상황 자체가 비상식이 상식이 되어버린 형국을 방증합니다. (관련 자료: 국정원·검찰 '증거 조작' 의혹에도 '눈뜬장님' 행세하는 '불량 언론'! )


박근혜 정부 1년, 무엇을 남겼나?

박근혜 정부 출범 1년을 맞은 지난 25일, 여러 시민사회 단체가 한목소리로 민주주의와 민생 후퇴를 지적하고,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을 지킬 것을 촉구했습니다. 참여연대와 경실련 등 10개 시민단체는 기자회견에서 "지난 1년간 표현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권리는 공권력에 의해 위축됐고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으로 민주주의가 공격당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실로 그렇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걸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은 사실상 폐기 또는 변질했습니다. 최근 박 대통령이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선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마저 사라졌습니다.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노조탄압, 민영화 정책 등의 실정을 반성하기는커녕 정부가 앞장서 대선개입 사건 수사에 지속적인 압력을 가한 사실이 속속 증명되고 있으며, 민영화 반대를 외친 철도파업 행위를 탄압하기 위해 정부가 여론 조작과 허위사실 유포 같은 치졸한 행위마저 서슴지 않았음이 보도되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1년을 돌아보면 '이명박 정권 6년차'라는 세간의 비판이 아주 틀린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최시중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삼는 등 측근 인사를 요직에 앉혀 제왕적 통치의 기반을 굳히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박 대통령도 ‘친박’ 인사로 분류되는 이경재 전 새누리당 의원, 정수장학회 장학생 출신인 김원배 목원대 총장, 김병호 전 새누리당 의원을 각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문화방송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에 앉히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국제적인 저널리스트 단체인 '국경 없는 기자회'는 매년 세계언론자유지수 순위를 발표합니다. 세계 각국·지역 보도의 자유도에 순위를 매김으로써 검열 상황, 제도장치, 투명성, 인프라 등의 항목으로 세계 180개국·지역을 채점해왔습니다. 지난 2월 12일에 발표한 '세계언론자유지수 순위 2014'에서 한국은 57위를 기록했습니다.

출처 - 국경없는 기자회

우리나라 언론자유지수 순위는 노무현 정부에서 최고 31위(2006년)까지 기록했지만 이명박 정부 때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했습니다((2011년: 42위, 2012년: 44위, 2013년: 50위). 아시다시피 2009년 역대 최하위인 69위까지 떨어진 적도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미네르바 사건, PD수첩 등에 대한 검찰의 무리한 수사 등이 순위에 영향을 주었죠.

언론의 자유가 위축되자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유래 없이 언론사 총파업 같은 행동이 일어나기도 했으나 이번 2014년 결과 순위가 알려주듯이 정권의 언론장악 환경은 큰 변화가 없어 보입니다. 생각비행은 지금까지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중요하게 여겨 관련 기사를 꾸준히 발행해왔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정리해서 보여드립니다.
 
- 헌법재판소의 미디어법 기각과 언론 재벌의 독과점
- 언론은 진실만을 전하고 있는가?
- 맷값 최철원 선생과 PD수첩 무죄 판결
- 이 시대의 폭로 저널리즘? '위키리크스'
- <PD수첩> <시사매거진 2580>과 같은 '탐사보도'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법원 "방응모 전 조선일보 사장, 친일파 맞다"
- 한국의 탐사보도 - MBC가 제작한 탐사보도 프로그램
- PD수첩이 사라진다면 무한도전도 위험합니다
- 검사와 스폰서 사건에서 발견한 탐사보도의 가치
- 중요한 사회문제를 덮어버린 서태지-이지아 가십기사
- 다시 기억해야 할 5.18 광주민주화운동, 신군부의 독재와 언론·방송의 굴종사
- [서울디지털포럼 참관기] 위키리크스로 돌아보는 탐사보도의 역사와 현황
-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사회 변화의 씨앗 있다
- 《PD수첩》 무죄판결로 살피는 탐사보도의 가치
- 《경향신문》 창간 65주년 기념 MB氏 불통강령 단독입수!
- 1퍼센트의, 1퍼센트에 의한, 1퍼센트를 위한 종편 개국
- 리영희 선생 1주기에 돌아본 한국 언론의 현실
- 1퍼센트를 위한 종편을 넘어 SNS에서 대안을 찾자
- 질질 끄는 미디어렙법 처리, 누구를 위한 정치 놀음인가?
- <뉴스타파> <제대로 뉴스데스크>에서 대안언론의 가능성을 보다
-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념하며 표현의 자유를 다시 돌아보다
- <천안함 프로젝트>,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95주년 삼일절을 맞이하여 헌법의 근본정신을 이야기하면서 이런저런 말씀을 많이 드렸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있지만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 지난 2013년 촛불시민과 누리꾼이 주축이 되어 발표한 선언문을 게재하는 것으로 이만 인사 올립니다.

<촛불시민·누리꾼 3차 시국선언문>
 
- 우리는 헌법과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국민저항권을 발동한다 -
 
대한민국의 근본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국가의 근본 질서를 규정하는 헌법이 특정 세력에 의해 처참하게 유린당하고 있으며, 민주주의의 토대를 이루는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분립마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법과 민주주의가 무너진 결과 대한민국은 정의와 진실과 원칙이 짓밟히고 거짓과 음모와 술수가 판치는 삼류 국가로 전락했다.
 
대한민국을 이렇게 치욕스럽게 만든 주범은 1219 부정선거의 주범 국정원과 경찰 그리고 새누리당이며, 이러한 범죄 행위에 대한 최고 책임자는 이명박과 박근혜이다. 우리는 이승만 독재와 3.15 부정선거에 저항한 4.19 시민혁명의 숭고한 정신을 기억하고 있다. 또한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에 굴복하지 않은 유구한 민주화 투쟁과 80년 5월 광주의 민중항쟁 그리고 86년 6월 민주항쟁에 바친 피와 죽음의 역사를 잊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장구한 세월 동안 민주열사와 애국시민들의 희생을 바쳐 쟁취한 민주주의가 국정원과 경찰 그리고 새누리당에 의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에 심각한 위기감을 느낀 종교계를 필두로 대학 교수와 청년 학생 그리고 수백 개 시민단체와 일반 시민들 그리고 고등학생들까지 나서서 국정원의 개혁과 박근혜의 책임 있는 결단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은 반성과 사죄는커녕 오히려 적반하장 격으로 민주주의의 회복을 요구하는 선량한 시민을 종북좌파 세력으로 매도하며 제2의 유신독재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향후 어떤 선거도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어 마침내 우리의 민주주의는 무덤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고 있는 반역의 무리들에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경고한다. 일제강점기의 국권 회복을 위한 독립열사들과 민주화를 위한 시민들의 저항과 투쟁의 역사를 부정하고, 친일 종속적인 망언, 망동으로 민족정신을 훼손하는 자들은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갈 자격이 없다. 민족 분단의 비극과 모순을 극복할 의지도 능력도 없이 선량한 시민들을 향해 종북좌파 운운하며 시대착오적 매카시즘에 편승하여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 급급한 세력에게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박정희에서 박근혜로 이어지는 독재정권을 옹호하는 자들이 더 이상 민주주의를 능멸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반드시 이러한 반역의 무리들을 척결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회복하고 지켜나갈 것이다.
 
우리는 헌법 파괴와 국기문란의 주범인 박근혜 정권을 향해 엄숙하고도 강력하게 선언한다.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근본 원리는 국민의 뜻을 왜곡하지 않는 선거의 공정성을 지키는 데 있다. 하지만 지난 대통령 선거는 국정원과 경찰 그리고 새누리당의 야합과 음모 속에 부정하게 진행되었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는 헌법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무시하고 국기를 문란하게 한 범죄 행위이다. 더구나 위의 세 집단은 자신들의 범죄 행위를 가리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과 범법 행위를 무차별적으로 자행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같은 국기문란 세력을 진압하고 이들의 역사적 과오를 바로잡을 권리와 책임을 통감한다. 이에 우리는 대한민국의 헌법을 수호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국민 저항권을 발동한다.우리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은 행동 강령을 선포한다.
 
하나,우리는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헌법과 민주주의를 파괴한 세력을 바로잡기 위한 무기한 투쟁에 돌입한다.
 
하나,국정원과 경찰의 부정선거 연루자는 국민 앞에 사죄하고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하며, 부정선거를 주도한 국정원은 즉각 해체하고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새로운 국가 기관으로 거듭날 것을 촉구한다.
 
하나,국정원과 경찰 그리고 새누리당이 공모한 부정선거의 최대 수혜자이자 최고 책임자인 박근혜는 모든 책임을 지고 즉각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하나,우리 촛불 민주시민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전복하는 세력에 맞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는 그날까지 어떠한 위협이나 억압에도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맞서 싸울 것임을 독립열사와 민주열사 앞에 맹세한다.
 
2013년 10월 5일
촛불시민·누리꾼 일동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저희는 이명박 정부하에서 정치적 압박 및 제작 방해, 언론 및 방송의 자율성 훼손 등으로 표현의 자유가 심히 위협받고, 탐사보도가 점차 설 자리가 없어지는 현실에 대해 수차례에 걸쳐 우려를 표명한 바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최근 벌어진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 중단 사태는 소비자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침해할 뿐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심각한 위협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으로 군, 정부, 보수 세력의 의견과 다른 의사 표현을 억압하고 막으려는 의도가 농후한 조처로 보입니다.  

이명박 정부하에서 <MB의 추억><남영동1985> 같은 영화가 개봉되었던 사실을 생각하면,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 중단 사태에 청와대나 국정원 같은 국가 권력 기관이 개입하지 않았겠느냐는 대중의 의혹 제기는 단순한 가능성을 넘어서는 듯한 인상을 남깁니다.

2013년 9월 10일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의 보도채널 <뉴스타파>가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 중단 사태를 보도하면서 우리 사회의 '소통의 부재'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습니다. 천안함 사건을 들여다보면 현재 한국 사회의 현실이 보입니다.


과거 천안함 사건은 '안보'와 '보안'을 핑계로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된 바 있습니다. 군의 기밀주의는 안보상업주의를 부추겼고,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언론과 방송은 천안함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려 하기보다는, 북한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추측성 보도를 일삼았습니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사건을 안보 세력과 보수 세력을 결집시키는 계기로 활용했고, 정부를 비판하는 대중과 진보 세력을 종북 세력으로 규정하고 공안 정국을 조성하여 공권력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탄압하는 정치적 행보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언어의 배반 -  좌파, 좌빨

《언어의 배반》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언어학자와 정치학자 권력에 중독된 언어를 말하다'라는 부제에서 드러나듯이, 이 책은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 중에 본래 의미를 왜곡하고 편견을 조장하는 용어를 '언어의 배반' 사례로 규정합니다. 두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이 현실을 호도하고 가짜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를 분석합니다.

언어의 배반 사례 중 대표적인 예가 '좌파' 또는 '좌빨'이 아닐까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천안함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려는 이들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죄다 '종북좌파'로 규정되고 마니까요. 2010년 4월 21일에 43개 보수단체가 모여서 만든 '4대강 살리기 국민연합' 출범식에서 보수 세력은 천안함 사건을 기회로 좌파 세력을 일소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 바 있습니다. 천안함 침몰 민군합동조사단의 보고서에 의문을 제기하며 천안함 좌초설을 주장한 신상철 민간위원에 대해 해군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일도 있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비이성적인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언어의 배반》이라는 책이 일말의 해답을 주는 것 같습니다.

좌파 또는 좌빨이라는 말이 한국에 들어와 권력 투쟁의 굴곡을 겪으면서, 오늘날에 와서는 이념을 구분하는 말이라기보다 자기가 싫어하고 무너뜨리고 싶은 사람들을 싸잡아 부르는 말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 제가 느끼는 더 큰 문제는 좌빨이라는 용어가 언어사회학적으로 참이 아닐 뿐 아니라 기득권 세력의 배타적 폭력성과 일방주의까지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 

좌우를 구분하는 것은 또한 시대와 국가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보존하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또 바꾸고자 하는 가치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주로 유럽에서는 민족주의나 국가주의가 우파이지만,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를 겪은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좌파의 가치가 된 경우도 과거에는 있었습니다. 프랑스혁명에서 좌파의 기원을 만들어냈던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는 오늘날 보수로 치부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보수 우파가 친미적이거나 친일적인 것도 특이합니다. 또한 미국에서는 자유주의가 진보로 간주되지만, 한국에서는 보수로 분류될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이념의 상대성으로 인해 보수와 진보를 획일적으로 재단하기는 어렵지만, 특정한 시대의 특정한 나라로 좁혀서 보면 조금 명확해집니다. …… 

소련의 붕괴와 신자유주의의 득세로 세계적으로 좌파는 퇴조하고 있는데 유독 한국에서 이념 논쟁이 거센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이 정말 한국에서는 좌파가 세력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그건 아니지요. 언어에 숨은 권력이 만든 가짜 이념 논쟁 때문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나 북한과의 화해를 이야기해도 좌빨, 먹거리에 대한 불안에서 출발한 촛불집회도 좌빨, 천안함 사건에 대한 의문점만 제기해도 좌빨, 민주나 노동조합, 또는 환경이라는 단어만 들어가도 좌빨이라고 단정해 버립니다. 인터넷 검색창에 빨갱이라고 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관련 검색어로 나오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입니다. 그 획일성과 거친 단죄는 가히 공포스러울 정도입니다.
_《언어의 배반》 본문 중에서

 
천안함 사건의 실체, 여전히 오리무중?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 지 3년이 지났습니다. 대한민국 해군은 천안함 사건을 '2010. 3. 26(금) 21:22분 경 백령도 서남방 2.5Km 해상에서 경계 임무수행 중이던 해군 제2함대사 소속 천안함(PCC-722)이 북한 잠수정의 기습 어뢰공격으로 침몰하여, 승조원 104명 중 46명이 전사하고 58명이 구조된 「국가 안보차원의 중대한 사태」'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출처: 대한민국 해군)

그러나 천안함 사건을 알리는 군의 태도는 초기부터 국민의 불신을 야기함으로써 도리어 우리 사회에 안보 위협과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켰습니다. 선택적으로 제시하는 정보에 상식적인 반론조차 허용하지 않는 국방부의 폐쇄성에 많은 국민이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고, 이에 당황한 국방부는 천안함 사건을 국가의 안보 위기인 양 침소봉대하는 우를 범했습니다.     

미궁에 빠진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 지 벌써 3년이 흘렀습니다. 그사이 대한민국 국방부는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를, 대한민국 정부는 《천안함 피격사건 백서》를 내놓았습니다. 국방부와 대한민국 정부의 보고서는 국민의 의혹을 불식시킬 정도로 객관적인 사실을 담고 있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각종 보고서가 나오자마자 일부 과학자 그룹에서 천한함 사건의 보고서 내용이 과학적 사실을 담보하지 못한다며 의혹을 제기했으니까요.

생각비행은 과학 분야를 계속 다뤄온 전문 출판사가 아닙니다. 과학적 연구를 하는 단체는 더더구나 아닙니다. 그럼에도 천안함 사건으로 상징되는 군 관련 정보의 왜곡,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적 분위기, 안보상업주의를 유포하는 보수 언론 및 방송의 그늘이 우리 사회에 막대한 해악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군과 정부의 발표를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

이에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의 머리말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과연 이 보고서가 천안함 사건의 실체를 명백히 밝혔는지, 국민의 오해를 온전히 해소할 수 있었는지, 그렇지 못하다면 과학자와 국민은 어떤 의혹을 여전히 제기하고 있는지 하나하나 확인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 머리말

2010년 3월 26일 천안함이 북한 잠수함정의 기습적인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하고, 우리 해군 장병 46명이 산화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였습니다.
국방부는 천안함의 침몰원인과 행위자를 명백하게 규명하기 위하여 3월 31일 민·군 합동조사단을 구성하였습니다. 민·군 합동조사단은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민간 전문가와 함께 외국 전문가까지도 참여시켜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2010년 5월 31일 최문순 국회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천안함 관련 민군합동조사단 명단을 제출받은 뒤 작성한 보도자료를 보면, "민 ․ 군 합동조사단의 지휘부 및 조사요원은 총 47명이며, 조사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인원을 제외하고 순수 조사 활동에 참여한 인원은 47명으로 민간인 25명, 군인 22명임. 이외에 외국 전문조사팀은 미국 15명, 호주 3명, 스웨덴 4명, 영국 2명이고 국회 추천 전문요원은 3명“이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문순 국회의원은 
"외국 전문조사팀 명단은 제출되지 않았고, 검토해 본 결과, 민간인으로 분류되는 인원 중 상당수는 국방과학연구원, 국과수 등 국방부나 정부 기관에 포함된 인사로 이번 천안함 사건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에서 조사를 할 민간위원으로 분류하기는 어렵"다고 평가했습니다.   

2010년 6월 7일 《참세상》은 박선원 미국 부르킹스 연구소 초빙연구원(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이 7일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에 출연해 “해외에서 온 국제적인 전문가들이 참여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다국적 조사의 결과는 아니”라며 “한국 정부의 조사 결과고 국제 전문가들은 이것에 대해서 기술적 자문만 한 것이기 때문에 철저히 한국의 독자적인 조사결과로 평가받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를 다른 측면에서 뒷받침하는 《주간경향》 기사도 있었습니다. 천안함 사건 1주기가 지나서 작성된 2011년 3월 29일 기사(
천안함, 외국 조사단 역할은 '들러리'? )를 보면, 정부가 천안함 침몰 사건을 규명하기 위해 국제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를 하겠다며 미국, 영국, 스웨덴, 호주와 합의각서를 체결했으나 해외조사단이 들러리를 선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 것이지요.

(출처: 주간경향)

 

국방부 조사본부 관계자는 “해외조사팀과 합조단은 서로 토의하고 조사를 하면서 정보를 공유했다. 해외조사팀이 열심히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합조단에 민간위원으로 참여했던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는 “해외조사팀에는 천안함 사건 관련 정보가 많이 없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신 대표는 “해외조사팀은 들러리였다. 합조단 시나리오에 해외 전문가가 참여했다는 것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라며 “지난해 4월 말 중간보고가 있었는데, 한국·미국·영국 팀만 발표를 했다. 왜 호주·스웨덴 조사팀은 발표를 안 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봤다. 그들이 ‘우리들은 의미있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대답하더라. 알고 보니 천안함 항로, 엔진 관련 정보, 천안함 속력 등 기본적인 정보가 전혀 공유되어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스웨덴이 최종보고서에 조건을 단 이유가 이 때문이라는 것. 이에 대해 당시 합조단 단장을 맡았던 윤덕용 카이스트 명예교수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합조단에는 북한 잠수함이 공격했다는 것을 분석한 정보분석팀이 있었다”면서 “이 정보분석팀에 스웨덴 팀이 참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 서명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출처: 《주간경향》


2010년 5월 25일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천안함 침몰 조사과정의 6가지 문제점>이라는 10쪽 분량의 보도자료에서 "조사단의 구성, 활동 방향, 명단 등이 공개되지 않아 실제적으로 ‘민간’이 어느 정도 조사단에 포함되어 있는지 조사단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전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국민들은 그들의 입만을 바라보고 있는 실정. 조사단의 정체가 불분명한데 그들이 내놓은 조사결과를 믿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조사단의 명단을 밝히는 것이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일이 아님이 분명하고, 그들의 명단을 공개했을 때 그들이 언론에 시달릴 것을 우려해서 명단을 공개할 수 없다고 하는 국방장관의 설명은 전혀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보면 "민·군 합동조사단은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민간 전문가와 함께 외국 전문가까지도 참여시켜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라는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 첫 내용부터 국민의 의혹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머리말의 다음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민·군 합동조사단은 서해 사건현장에서 숙식을 함께 하면서 험난한 기상과 조류 등 악조건 속에서도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조사 활동을 실시하여 천안함이 북한의 소형 잠수함정에서 발사된 어뢰에 의해 침몰되었음을 밝혀내고 5월 20일 이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합조단의 발표 이후 2010년 5월 21일 당시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가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한 내용을 보시죠. 지금 돌아보면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천안함 침몰을 북한의 소행임을 전제하고 이야기하는 김무성 원내대표조차 군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으나 이후 천안함 사건 관련자는 오히려 줄줄이 진급했습니다.

5월 20일 합조단 발표 현장에서 황원동 중장은 외신기자가 왜 공격을 막을 수 없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북한 잠수함의) 기지 이탈을 식별했지만 우리 영해까지 침범해서 도발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충분한 대처를 못했다는 황당한 답변을 합니다.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결정적 증거라며 내세운 어뢰 추진체는 천안함 침몰의 원인에 대한 의혹을 불식시키기는커녕 증거 차제의 신빙성에 대한 의문과 천안함 사건의 실체를 둘러싼 의구심만 증폭시켰습니다.

2012년 7월 22일 《미디어오늘》은 "천안함이 북한 잠수함이 쏜 1번 어뢰에 피격됐을 가능성이 0.000,,,0001%에 불과하다고 밝혀 반향을 일으켰던 재미 잠수함 전문가 안수명 박사가 민군 합동조사단의 천안함 보고서에 대해 “비양심적이며 과학적으로 수긍할 증거가 하나도 없다”고 혹평했다"는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기사 원문: 미잠수함 전문가 “천안함 보고서 비양심적…상상초월”)

민·군 합동조사단은 6월 14일 유엔 안보리에 조사결과를 설명하였으며, 그 결과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규탄’하는 의장성명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사건을 유엔 안보리 논의에 회부하면서 북한 책임을 분명히 하고, 결의안 채택을 목표로 치열한 외교전을 벌였습니다. .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책임론을 수용하지 않고, 북한도 유엔 외교전에 뛰어들면서 이명박 정부의 주장은 한계에 부닥쳤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주요국은 천안함 침몰을 '공격(attack)'이라고 규정하고 비난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공격 주체를 밝히지 않은, 참으로 이상한 의장성명을 채택하는 데 합의합니다.

유엔 안보리 의장 성명서(2010. 7. 9)

1. 안보리는 2010년 6월 4일자 대한민국(한국) 주 유엔대사 명의 안보리 의장 앞 서한(S/2010/281) 및 2010년 6월 8일자 조선 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주 유엔대사 명의 안보리 의장 앞 서한(S/2010/294)에 유의한다.

2. 안보리는 2010년 3월 26일 한국 해군함정 천안함의 침몰과 이에 따른 비극적인 46명의 인명 손실을 초래한 공격을 개탄한다.

3. 안보리는 이러한 사건이 역내 및 역외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4. 안보리는 인명의 손실과 부상을 개탄하며, 희생자와 유족 그리고 한국 국민과 정부에 대해 깊은 위로와 애도를 표명하고, 유엔 헌장 및 여타 모든 국제법 관련 규정에 따라 이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하여 이번 사건 책임자에 대해 적절하고 평화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

5. 안보리는 북한이 천안함 침몰의 책임이 있다는 결론을 내린 한국 주도하에 5개국이 참여 한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에 비춰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

6. 안보리는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하는 북한의 반응, 그리고 여타 관련 국가들의 반응에 유의한다.

7. 이에 따라 안보리는 천안함 침몰을 초래한 공격을 규탄한다.

8. 안보리는 앞으로 한국에 대해, 또는 역내에서, 이러한 공격이나 적대행위를 방지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9. 안보리는 한국이 자제를 발휘한 것을 환영하고, 한반도와 동북아 전체에서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10. 안보리는 한국 정전협정의 완전한 준수를 촉구하고, 분쟁을 회피하고 상황 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적절한 경로를 통해 직접 대화와 협상을 가급적 조속히 재개하기 위해 평화적 수단으로 한반도의 현안들을 해결할 것을 권장한다.

11. 안보리는 모든 유엔 회원국들이 유엔 헌장의 목적과 원칙을 지지하는 것이 중요함을 재확인한다.

-출처: 《천안함 백서》

안보리 의장성명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천안함이 북한의 공격에 의해 침몰했음을 국제사회에서 공인받겠다던 이명박 정부의 유엔 외교가 물거품이 됐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의도하지 않은 '북한의 입장'이 반영된 조항마저 채택되고 말았습니다. 공동성명 초안 6항에 있는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하는 북한의 반응, 그리고 여타 관련 국가들의 반응에 유의한다"는 문구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명박 정부로서는 참으로 맥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정도의 의장성명을 이끌어내기까지 사실상 참으로 어려운 외교적 노력이 있었다는 뒷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2010년 7월 11일 《연합뉴스》는 <유엔 안보리 '천안함 의장성명' 뒷얘기>라는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Attack을 넣는게 가장 어려워" = 우리 외교당국이 안보리 문안협상에서 가장 주력했던 것은 attack(공격)이라는 표현을 넣는 작업이었다는 후문이다. 이는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는 핵심어라는 판단에 따라 필사적인 로비전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또 condemn(규탄)이라는 단어도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인해 협상과정에서 상당히 어려움을 겪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안보리 문안협상은 그야말로 언어공학(language engineering)으로 부를만 하다"며 "한문장 한문장이 엄청나게 어려운 협상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시사점은 매우 큽니다. '언어공학'이 빚어낸 의장성명이라니, 참 이이가 없지 않습니까? 천안함 사건의 실체는 증발된 채 이명박 정부를 비롯한 각국이 저마다의 실익을 챙기기 위해 어떤 협상을 했을지 동북아 정세를 둘러싼 저간의 사정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조작극이라고 비난하면서 대남위협의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도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에 대해 자신들의 입장에 따라 사실과 다른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등 무책임한 언행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북한은 천안함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해 자신들도 조사단을 파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방부와 정부는 가해자가 진상 규명에 참여할 수 없다는 논리와 더불어 군사 기밀 누설 방지 차원에서 이를 거부했습니다. 궁색하기 짝이 없는 대응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찰은 범인을 대동하고 사건 현장에 나가 사건의 경위와 살해 방법 등을 상세히 재현하고 이를 기록합니다. 국방부와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침몰의 원인이 북한 어뢰 공격에 의한 것임이 분명하고 이를 증명할 수 있었다면 북한의 만행을 만천하에 공개할 좋은 기회를 왜 마다했을까요? 앞서 살펴본 안보리 의장성명의 문구를 '언어공학'적으로 '마사지'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조차 없었을 텐데요. 돌아보면 대한민국 국방부와 정부가 천안함 사건을 참으로 이상하게 풀어내려 했다는 의혹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국방부는 우리 국민과 국제사회에 천안함 피격사건의 진실을 올바르게 알려 불필요한 오해와 의혹이 해소될 수 있도록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와 입증 자료들을 수록한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를 한글과 영문으로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보고서는 개요, 침몰요인 판단 결과, 분야별 세부분석 결과, 결론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구체적인 조사 내용과 판단 결과는 부록에 수록하였습니다. 민·군 합동조사단은 침몰의 원인을 규명하는데 있어서 선입견을 배제하기 위해 모든 침몰 가능 요인을 망라하여 조사한 전 과정을 서술하였으며, 300개 이상의 각종 그림과 도표를 활용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하였습니다.
특히 4개 국가와 국내 12개 민간연구기관 및 군의 총 73명의 전문가가 과학수사·함정구조·폭발물·정보 분석 등 다양한 분야의 조사 및 보고서 작성에 적극 참여하였고, 보고서 내용에 전원이 동의하여 국제적으로 검증된 자료가 되었습니다.
본 보고서는 어뢰 공격으로 침몰된 군함의 선체를 인양하여 조사한 세계 최초의 보고서로서, 결정적 증거물(Smoking gun)인 어뢰 추진체를 수거하고 폭약성분까지 검출한 것은 어떠한 은밀한 공격행위도 증거로 남는다는 사실을 북한과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북한이 도발을 자행하지 못하도록 엄중히 경고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를 둘러싼 다양한 의문은 다음 방송, 기사 및 강연회 내용을 들어보시고 직접 판단해보시기 바랍니다. 저희는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천안함 합조단에 조작 주도한 인물 있었다"고 주장하며 정부의 천안함 조사 결과에 과학적인 오류를 지적해온 서재정 미 존스홉킨스대 교수(정치학)와 이승헌 버지니아대 교수(물리학)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국방부와 정부가 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걸까요? 미국 시민권자라서 이들에게는 종북좌파의 딱지를 붙이지 못하는 걸까요? 아니면 국방부와 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김어준의 뉴욕타임스 136회] 제1부 알기 쉬운 천안함의 진실

[김어준의 뉴욕타임스 198] 천안함 조사, 산수조차 틀렸다

천안함, 불편한 진실을 말하다 : 신상철 강연회

[이털남2-309회] 성접대 의혹 / 천안함 막전막후 (29분 부터)

라디오 반민특위 13회 - 천안함,진실에 가장 가까운 남자

[추적60분]  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

[프레시안] 천안함 합조단에 조작 주도한 인물 있었다

이제 보고서 머리말의 마지막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본 보고서는 이번 천안함 사태를 거울삼아 다시는 북한의 기습적 도발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우리 국민의 확고한 안보의식과 안보문제에는 어떤 개인·집단적 이해도 개입될 수 없음을 일깨워 주는 데 기여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본 보고서는 군사비밀 내용이 제외되었고, 과학적·객관적으로 입증하는 것을 우선시해야 하기 때문에 전문용어들을 쉽게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음을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금번에 발간한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가 천안함 피격사건의 진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동안 제기되어 왔던 모든 오해와 의혹이 해소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평소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일반 국민들과 국내외 학자 및 언론인 모두에게 유용한 자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010년 9월
민·군 합동조사단

한 건의 보고서로 천안함 사건의 실체를 규명했다고 생각하는 대한민국 정부와 국방부의 시각이 참 일천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화와 소통입니다. 〈천안함 프로젝트〉가 바로 이 점을 문제삼았습니다. 의문은 곧 소통의 시작이라는 것이지요. 

천안함 사건 발생 후 3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1200톤급의 해군 초계함이 두 동강 난 채 침몰하고 46명의 젊은 장병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수색에 참여했던 한주호 준위와 98금양호 선원 9명도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우리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북한을 무조건 경계하던 국민의 시각과 안보의식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일방적으로 북한을 미워하게 만들려 했던 대한민국 국방부가 자처한 일입니다. 더구나 우리 군의 부실한 위기대응 체계로 말미암아 국민의 신뢰는 허물어졌습니다. 안보상업주의에 휘둘리지 않는 국민이 많아졌습니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소행이라는 정부의 공식발표가 있었으나 이를 둘러싼 진실 공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부의 발표를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할 일이 아니라 국민이 믿고 신뢰할 수 있도록 분명한 증거를 제시하는 일에 대한민국 국방부와 정부가 나서기 바랍니다.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많은 국민을 종북좌파로 규정하고 입을 틀어막으려 하지 말기 바랍니다. 천안함 사건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확인할 수 있는 바로미터입니다. 진실이 규명될 때까지 천안함 사건을 잊어서는 안 될 이유겠지요.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저희는 지난해 11월 이명박 정부의 특혜 속에서 개국한 종편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국내 언론·방송계의 문제를 연이어 다뤘습니다. 

 
지난 9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만 3년간 공백 상태였던 '미디어렙법(방송광고판매대행 등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됨에 따라 이 법안이 향후 방송광고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이 제출한 미디어렙법 수정안은 찬성 150표, 반대 61표, 기권 12표로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새누리당의 미디어렙법 수정안 골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 종합편성채널의 렙 위탁 3년 유예(승인기준)
- 공영방송(MBC포함) 공영렙 지정
- 민영 미디어렙 최대 지분 40페선트 이하 허용 및 지주회사 출자 금지
- 중소방송에 대한 연계판매(과거 5년간 평균 매출액이상)

이로써 지금처럼 광고를 자유롭게 수주할 수 있는 종편 채널은 특혜를 계속 누리게 되었고, 미디어렙을 통하지 않고 언론사를 상대해야 하는 기업은 곤란해졌습니다. 종편은 출범부터 1퍼센트 이하의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지상파와 비교해 70퍼센트 수준의 광고비를 요구한 까닭에 많은 기업이 곤욕을 치렀습니다. 이번 미디어렙법 통과로 말미암아 앞으로 2년 이상 이런 상황이 이어질 전망입니다.

대한민국 국민 1퍼센트도 보지 않는 종편이 단 1퍼센트에 해당하는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며 움직이는 사이에 기존 언론·방송 매체들은 이명박 정부에 휘둘리면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초기부터 낙하산 인사로 KBS, MBC, YTN을 장악한 다음 정부의 입장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차단하고 방송인들을 억압했습니다. 언론·방송의 공공성을 훼손하는 움직임에 반대하고 옳은 목소리를 내고자 노력했던 뜻있는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대기발령과 해직뿐이었습니다. 또한 정부의 정책에 비판적인 언론 매체는 정부기관의 광고를 수주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언론과 방송이 탄압을 받으며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을 때 대안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났습니다. 인터넷 라디오 방송인 <나는 꼼수다>의 영향으로 해직 기자들이 힘을 모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대안언론의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지요. 지금은 <뉴스타파>와 <제대로 뉴스데스크>가 국민의 눈과 귀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명박 정부가 언론·방송을 어떻게 탄압했는지 그 과정을 다시 돌아보면서, 대안언론의 필요성과 미래를 고민해보겠습니다.


방통위 출범으로 드러난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 의지

2008년 2월 말 방송통신위원회가 출범했습니다.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를 모델로 삼아 발족한 이 기구는 대통령 직속기구로서 방송·통신, 주파수 연구 및 관리와 연관된 각종 정책을 수립하고 심의·의결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방송통신위원회는 시작부터 매우 시끄러웠습니다. 방송, 통신 등의 정책을 수립하는 기구가 대통령 직속 기구라는 것 자체가 언론인들로서는 독립성을 훼손하는 정부의 언론 장악 시도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방송통신위원회는 KBS, EBS의 의결기구인 이사회와 MBC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원 이사를 추천할 권한이 있었습니다. 이는 곧 간접적으로 KBS, EBS, MBC를 지배할 힘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더군다나 방송통신위원장으로 내정된 최시중―2012년 초까지 방송통신위원장으로 활동―은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언론장악에 가장 큰 힘을 보탤 사람이라고 알려진 상황이었습니다. 

출처: 미디어오늘

방송통신위원회 설립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임명을 시작으로 이명박 정부의 언론·방송 장악은 발동이 걸렸습니다. 우선 국가기간방송법을 통해 KBS를 장악했습니다. 국가기간방송법은 국회에 국영방송 인사 선임과 예산편성의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인데요, 예산과 인사를 통해 KBS를 장악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를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일어나면서 이명박 정부의 방송 장악 의지는 더욱 확고했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연주 KBS 사장을 배임 혐의로 기소해 물러나게 한 다음 이병순 사장을 영입했고, MBC는 방송문화진흥회를 압박하여 엄기영 사장을 퇴진하게 하고 후임으로 김재철 사장을 영입합니다. 또한 방송통신위원장 최시중은 YTN에 압력을 넣어 이명박 캠프에서 언론특보로 활동했던 구본홍을 사장으로 내정하기도 했지요.


낙하산 사장으로 재갈 물린 언론

이명박 정부는 이렇듯 낙하산 인사로 방송사 사장들을 포진시킨 다음 본격적인 방송 장악 활동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KBS, MBC, YTN에선 정부 시책에 반하는 내용의 기사와 탐사보도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YTN의 자랑, 《돌발영상》이 사라졌습니다. 《돌발영상》은 시사 관련 뉴스 영상을 적절히 편집하여 풍자하는 내용이었는데요, 이명박 정부를 풍자하는 내용을 방영하자 몇 번에 걸쳐 경고를 받다가 이명박 대통령의 멜라민 발언을 꼬집는 영상으로 말미암아 결국 폐지되고 말았습니다.  

문제가 되었던 돌발영상, "어 멜라민이란 말이 없네" 


탐사보도의 강자였던 MBC도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 움직임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광우병 쇠고기를 소재로 다룬<PD수첩>의 피디들이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오랫동안 법정 투쟁을 벌여야 했습니다. 또한 검사와 스폰서 사건을 파헤쳐 검사들의 비리를 다룬 피디는 보직을 변경시켜 탐사보도를 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결국 <PD수첩> 피디 대부분이 물갈이되거나 젊은 피디로 교체되었을 뿐 아니라 간부들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피디들의 노트북을 검사하고 서랍을 뒤지는 어이없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PD수첩> 이외에도 <뉴스 후>를 비롯한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없어지거나 축소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자 YTN과 MBC의 기자와 PD는 파업을 벌여 언론 장악 움직임의 부당함을 알리려 했으나 파업을 주도한 기자와 피디가 해임되는 바람에 YTN과 MBC에서 이명박 정부에 반하는 내용의 기사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대안언론의 가능성을 연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이토록 철저하게 이명박 정부가 언론·방송을 장악하자 몇몇 신문과 언론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했습니다. 정부가 발표하는 내용에 의문을 제기하기는커녕 정부의 정책을 두둔하고 선전하는, 정권의 하수인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마침 <나는 꼼수다>가 인터넷 미디어로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 시사평론가 김용민, 《시사IN》 기자 주진우, 제17대 국회의원 정봉주가 정치·사회 이슈에 관해 이야기하는 팟캐스트 방식으로 시작했습니다. <나는 꼼수다>가 인터넷에 처음 등장했을 때는 큰 반향을 예상하지 못했으나 입소문을 타며 팟캐스트 세계 1위에 오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나는 꼼수다>가 이와 같은 인기를 얻은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스마트폰 사용자의 급증으로 수요가 있었고, 기존 언론에 실망한 국민의 불신도 한몫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꼼수다>가 인기를 얻자 유사한 팟캐스트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꼽사리다><유시민, 노회찬의 저공비행><이슈 털어주는 남자> 등 여러 종류의 팟캐스트가 생겼고 저마다 색깔을 드러내며 다양한 내용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기존 언론·방송이 전해주지 않던 각종 문제를 제대로 알게 되었고, 그런 정보를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를 통해 공유하고 확산시켰습니다. 


대안언론의 등장, <뉴스타파>와 <제대로 뉴스데스크>

다양한 시사 팟캐스트의 등장은 우리 사회에 대안언론의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뉴미디어의 발전으로 비싼 장비나 많은 인력과 엄청난 자본이 없더라도 뉴스 프로그램을 만들고 많은 사람에게 확산할 길이 열렸기 때문이지요. 방송국에서 송출하는 언론 뉴스가 아니라 집이나 작은 스튜디오에서 만든 내용의 뉴스가 많은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가 2012년 사업으로 시작한  <뉴스타파>는  방송기자 출신이 직접 기획 단계부터 취재·편집까지 담당하는 인터넷 언론입니다. 이들은 음성 대신 특기인 영상을 택했습니다. <뉴스타파>에는 YTN <돌발영상>의 노종면 해직기자, 권석재 YTN 촬영기자, 이근행 전 MBC 노조위원장, 변상욱 CBS 대기자, 박대용 춘천문화방송 기자, 박중석 KBS 기자, 미디어몽구 등이 참여했습니다.  

<뉴스타파>는 탐사보도를 지향하며 뉴스를 만들고 있는데요, 첫 회에 방영한 선관위 디도스(DDos) 사건 관련 뉴스는 많은 이가 호평했습니다. 그간 언론에서 제대로 다루지 않았던 선관위 디도스 사건을 꼼꼼하게 취재하여 공중파 방송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뉴스타파 1회

최근에 <뉴스타파>와 유사한 또 하나의 대안언론이 등장했습니다. 최근 총파업을 벌인 MBC 노조 기자조합원들이 만든 <제대로 뉴스데스크>가 바로 그것입니다. <제대로 뉴스데스크>는 그간 언론 통제로 망가졌던 <MBC 뉴스데스크>를 되살린다는 취지로 만든 대안언론입니다. 첫 회에 이명박 대통령 측근비리와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관련된 정수장학회 비리를 다뤄 기존 방송 뉴스에서 볼 수 없었던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 <뉴스타파>와 <제대로 뉴스데스크>가 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각에선 한국판 '애리조나 프로젝트'라고 평가합니다. '애리조나 프로젝트'는 1976년 미국 애리조나 지역의 비리를 캐기 위해 활동했던 <애리조나 리퍼블릭>의 탐사 전문기자 돈 볼스의 활동을 기리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애리조나는 마피아, 공무원, 사법부 등이 얽힌 부패가 심각했는데요, 이를 밝혀내기 위해 노력하던 돈 볼스는 사망에 이르고 맙니다. 이 소식을 들은 미국의 언론인들은 돈 볼스가 생전에 만든 미국탐사보도협회(IRE)를 중심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러고는 6개월 동안 돈 볼스가 하지 못한 취재를 이어나간 결과, 23일간 보도할 수 있는 기사 40건이 마련되어 신문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고 합니다. 

비록 <뉴스타파>와 <제대로 뉴스데스크>가 전국에서 모인 언론·방송인이 결집해서 만든 방송은 아니지만, 해직 언론인들이 자발적으로 완성도 높은 뉴스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애리조나 프로젝트'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기존 미디어의 생리와 다른 형태의 대안언론을 가능케 했습니다. <나는 꼼수다>에 길든 청취자가 언론과 방송을 대하는 새로운 시각을 갖추게 되었기에 두 프로그램이 쉽게 정착할 수 있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대안언론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까요? <뉴스타파>는 보도 내용을 심화하기 위해 신문과의 협력도 모색한다고 합니다. MBC 노동조합은 <제대로 뉴스데스크> 이외에도 기술적인 시스템이 구축되면 <시사매거진 2580> 등의 형식으로 한 주에 여러 차례 뉴스를 방송할 계획이며, 시사교양 피디 10여 명이 <파워피디수첩>을 기획해 동시 다발로 취재하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 어떤 방송을 선보일지 기대해야겠군요. 모쪼록 한겨레 정재권 논설위원의 논설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애리조나 프로젝트 정신의 업그레이드'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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