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굴곡진 현대사를 온몸으로 맞서며 민주주의와 인권운동에 큰 족적을 남긴 거목이 졌습니다.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지난 10일 오후 향년 97세로 소천했습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으로 군사독재의 가시밭길을 끝끝내 이겨낸 평생 동지이자 한국 사회의 큰 어른이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고 이희호 여사가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군사독재에 대항해 사선을 함께 넘나든 일은 유명합니다. 1971년 독재자 박정희에 맞서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정치인 김대중은 군사정권의 최대 정적이 되었고, 김대중-이희호 두 사람 앞에는 가시밭길이 펼쳐졌습니다. 24시간 계속되는 감시와 도청, 망명과 납치, 구금, 연금 등이 이어지는 생활을 20년 이상 견뎌야 했습니다. 1976년 3.1 구국 선언문 사건으로 남편이 구속되자 이희호 여사는 3년 가까이 석방투쟁을 벌입니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박종철의 아버지 박정기, 이한열의 어머니 배은심 등과 함께 군사독재에 맞서다 투옥된 가족들을 모아 양심수가족협의회, 현재의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었다는 것 말고도 고 이희호 이사장의 업적은 정말 많습니다.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전쟁 때문에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그곳에서 친구 김정례 등과 함께 대한여자청년단을 결성했습니다. 여성의 권익을 찾아주자는 취지의 여성운동으로 시작되었으나 전쟁통이다보니 군경원호 활동에 치중하게 되어 다른 길을 모색했다고 하죠. 고 이희호 이사장은 여성 교육운동가 황신덕,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 등 젊은 여성 지도자들과 함께 1952년 11월 여성문제연구원 창립에 나서 여성의 인권과 법적 권리를 도모하는 데 몰두했습니다. 당시 회장까지 맡아 남녀차별 법조항 철폐에 주력했죠.

 

출처 - 한겨레

 

미국 유학 후에는 YWCA 총무를 맡아 그곳에서 가정법 개정 운동에 박차를 가합니다. 그때 나온 캠페인이 '혼인신고를 합시다'였습니다. 당시 많은 여성이 자식을 낳고 살다가 젊고 많이 배운 후처가 혼인신고를 먼저 해버리는 바람에 빈손으로 쫓겨나는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후 축첩 반대 운동과 남녀차별적 내용이 담긴 가족법 개정 운동으로 발전해 최종적으로 호주제 폐지로 이어졌다고 하죠.


출처 - 《사랑의 승자》

 

생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가 나름대로 페미니스트적 관점과 행동을 실천할 수 있었던 건 아내의 조언 덕이었다" "아내의 내조는 정말 값진 것이다. 아내가 없었다면 내가 오늘날 무엇이 됐을지 상상할 수도 없다"라고 할만큼 이희호 이사장의 역할은 컸습니다. 

 

출처 - 여성신문

 

이희호-김대중 부부가 살던 동교동 집 앞에는 1980년대에 이미 김대중, 이희호, 김홍일의 문패가 걸려 있었습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 후 안착한 동교동 자택에도 김대중, 이희호라는 문패가 나란히 걸려 있었죠. 문패는 부부인 두 사람이 서로를 존중하고 온전히 동등하다는 증표였습니다.


출처 - 여성신문


여성의 권리에 관심이 많았던 이희호 이사장이 영부인이 되며 행정부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여성가족부의 모태가 되는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출범했고, 장관들 임명장 수여식 때는 부부가 동반해서 임명장을 받는 새로운 관행이 생겨났습니다. 영부인으로서 독자적으로 해외순방을 가기도 했고 대통령을 대신해 유엔 아동특별총회에 참석, 의장국으로 임시회의를 주재하고 영어로 기조연설을 하는 등 다방면에 다재다능함을 보였습니다.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후에는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을 맡아 남편과 평생을 함께해온 한반도 평화를 위한 활동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지난 10일 별세한 이희호 이사장은 생전에 유언장을 작성했으며 11일 발표문을 통해 공개되었습니다. 그는 유언을 통해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동교동 사저를 대통령 사저 기념관으로 사용하고 노벨평화상 상금은 대통령 기념사업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라는 말씀도 남겼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고 이희호 이사장의 장례는 김대중 평화센터와 장례위원회 주관하에 사회장으로 치러집니다. 사회장 명칭은 '여성지도자 영부인 이희호 여사 사회장'으로 명명되었습니다. 장례위원회 고문으로 여야 5당 대표를 청해 모두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마지막까지 사회통합을 바랐던 고인의 뜻을 존중했기 때문일까요. 오는 14일(금요일) 생전에 장로를 지냈던 신촌 창천교회에서 장례예배를 치른 뒤 국립현충원에서 남편 고 김대중 대통령 곁에 안장될 예정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출처 - 데일리투데이

 

파란만장하고 힘겨운 고난을 이겨내고 위대한 업적을 쌓은 이희호 여사의 영면을 기원합니다. 그분의 뜻을 이어나가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입니다.

시작한 지 일주일인데 역대 최대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극장가를 뜨겁게 달군 〈어벤져스:엔드게임〉 얘기가 아닙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유한국당 해산 청원 얘깁니다. 자유한국당 정당해산 청원은 시작된 지 8일 만인 지난 4월 30일 오전 100만 명을 돌파했으며, 오후에는 12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120만 명은 조두순의 출소를 막아달라는 청원으로 청와대 청원 게시판이 열린 이후로 사상 최다 청원 게시물 기록이었죠. 그런데 자유한국당 정당해산 청원의 파죽지세는 계속 이어져 지난 5월 1일 16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이대로라면 200만 명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무시무시한 흥행세 때문에 누리꾼들은 자유한국당이 끝장난다는 의미에서 〈자유한국당:엔드게임〉 청원 게시판 절찬 상영중이라며 조소하고 있습니다.

 

출처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자유한국당 정당해산 청원(청와대 청원 게시판) :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79682

 

국민들이 분노에 찬 청원을 이어가고 있는 까닭은 당연히 자유한국당에 있습니다. 선거제 개편과 공수처 법안 등의 패스트트랙과 민생 법안 처리 등을 방해하고 국회법까지 어겨가며 동물국회를 만들어버린 자유한국당에 대한 부정 여론이 폭발한 것이죠. 이번 패스트트랙의 경우 생각비행이 여러 번 말씀드렸다시피 지지 정당, 연령을 가리지 않고 국민 대다수가 찬성하는 법안입니다. 그런데도 자유한국당은 자기네 지지자들의 의견까지 묵살하며 국회를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모욕감은 자유한국당이 국회 회의장을 점거하고 밤샘 극한 대치 끝에 폭력 시위로 부상자가 속출하면서 극에 달했습니다. 일명 '빠루'라는 노루발못뽑이(쇠지렛대), 쇠망치까지 등장하는 극한 몸싸움이 벌어지며 동물 국회로 전락했습니다. 그전까지 31만 명에 불과했던 자유한국당 정당해산 청원이 불붙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였습니다.


출처 - JTBC


하지만 눈에 확연히 보이는 여론 지표조차 무시하고 눈을 돌리는 자유한국당의 발악은 여전합니다. 이른바 '박근혜 키즈'로 불리는 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자유한국당 정당해산 청원이 여론조작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가 그렇지 않다는 청와대의 반박 자료를 보고 바로 수긍했습니다. 반면 자유한국당의 나경원 원내대표는 청와대 청원이 민주주의 타락을 부추기고 있다며 조작 여부가 의심이 간다고 아직도 주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근거는 없습니다.


출처 - 국민일보


청와대 청원으로 정당이 해산될 일은 없겠죠. 실제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입니다. 행정부인 청와대가 입법부인 국회의원들의 정당을 해산에 개입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원칙에도 어긋납니다. 이 때문에 자유한국당은 의미없는 짓이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론의 향방을 파악하는 일은 무척 중요합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과거 발언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이유입니다.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이라도 해야 나쁜 정치가 망한다"는 말을 기억하실 겁니다.


출처 - 국민일보


나는 이기는 길이 무엇인지, 또 지는 길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반드시 이기는 길도 있고, 또한 지는 길도 있다. 이기는 길은 모든 사람이 공개적으로 정부에 옳은 소리로 비판해야 하겠지만, 그렇게 못하는 사람은 투표를 해서 나쁜 정당에 투표를 하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쁜 신문을 보지 않고, 또 집회에 나가고 하면 힘이 커진다. 작게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된다. 하려고 하면 너무 많다.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다.


반드시 지는 길이 있다. 탄압을 해도 ‘무섭다’ ‘귀찮다’ ‘내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해 행동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지고 망한다. 모든 사람이 나쁜 정치를 거부하면 나쁜 정치는 망한다. 보고만 있고 눈치만 살피면 악이 승리한다.


16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아무것도 몰라서, 청원 하나로 진짜 정당이 해산되리라고 생각해서 이런 일에 참여하는 게 아닙니다.국민은 불의한 정치를 향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의견을 전달하고 있는 겁니다. 일부 전문가들이 이 청원을 디지털 촛불이라고 부르는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자유한국당은 장외 투쟁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그럴수록 여론은 안 좋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자유한국당이 서울광장에서 열겠다던 시위를 불허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자유한국당은 삭발투쟁에 나설 여성 당원 10명을 구한다는 공문을 내보내어 시대착오적이고 성차별적인 인식을 드러냈죠. 촛불집회 맞불집회처럼 더불어민주당 해산청원을 올렸지만 흥행세는 〈자한당: 엔드게임〉의 10분의 1에 불과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29일 마감인 〈자한당: 엔드게임〉의 결말과 최종 흥행 스코어는 어떻게 될까요? 〈어벤져스: 엔드게임〉보다 더 흥미진진한 〈자한당: 엔드게임〉의 결말 좀 누가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리콴유(이광요) 싱가포르 전 총리가 서거했습니다. 그는 건국의 아버지이자 식민지였던 작은 나라 싱가포르를 GDP 6만 달러의 경제 대국으로 키워낸 국부로 추앙받기도 합니다만, 실상 일당독재의 정치적 행보로 동아시아 민주주의를 저해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이승만, 박정희를 바라보는 시선이 엇갈리는 것처럼 리콴유 전 총리를 향한 양극단의 시선이 공존합니다.

 

싱가포르는 우리나라와 교류가 활발했는데요, 실제로 리콴유는 생전에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호감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편 동아시아 정치사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척점에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리콴유의 삶과 싱가포르의 미래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경제대국 싱가포르의 아버지


중국에서 태어난 리콴유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쳐들어오자 정치인으로서 눈을 뜹니다. 종전 후 변호사로 활동하다 인민행동당을 창당하고 1959년 자치의회 의석 43석 중 41석을 석권하며 싱가포르 자치정부를 이끌었죠. 이후 1991년까지 30년 넘게 총리직을 수행했고 2011년까지 다른 직책을 맡으며 실질적으로 싱가포르를 통치했습니다. 그러니 사실상 반세기 동안 싱가포르의 역사를 쓰고 통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출처 - 파이낸셜뉴스


동남아시아의 아주 작은 나라에 불과했던 싱가포르를 살리기 위해 리콴유 전 총리는 유교를 바탕으로 한 수직적인 권위주의 통치를 국가의 바탕으로 삼고 인재 양성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다방면에서 철저히 국가주도의 계획경제를 구사했지요. 국가 규모가 작은 덕에 통제가 용이했고 오랜 기간 단 하나의 정권이 지속해서 정책을 이어나갔기에 과거 아시아의 4대 용 중에서 가장 큰 경제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싱가포르의 GDP는 무려 5만 달러가 넘어가고, 실업률은 2퍼센트 미만, 공무원 청렴도는 세계 수위를 자랑합니다. 이뿐 아니라 주택의 85퍼센트를 주택개발청에서 공급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세계의 자유 무역항으로 이름이 높았고 현재는 아시아의 금융 중심지로 발돋움했습니다. 물론 전자, 조선 등 제조 산업의 역량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이처럼 리콴유가 일군 싱가포르의 국력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 정치인들로서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일당독재의 독재자


"우리는 재판 없이도 사람들을 단속할 수 있어야 한다. 공산주의자든, 맹목적 애국주의자든, 종교적 극단주의자든. 이를 해내지 못하면 국가는 파멸에 이를 것이다."


리콴유 전 총리는 공개적으로 아시아인에겐 민주주의가 맞지 않고 유교적 가부장제에 기반한 권위주의 독재체제가 알맞다고 주장하며 이를 현실에 관철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존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호감을 표했겠지요. 리콴유의 한결같은 의지와 실행력이 오늘날 부강한 싱가포르의 초석이 되었겠지만, 정치·사회적으로 부작용 또한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컸습니다.


싱가포르의 미래를 위해 일찍이 인재양성에 힘썼는데 엘리트 교육 위주로 흐르다보니 살인적인 경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싱가포르는 학생들의 전국 석차를 일간지에 게재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이 때문에 수험철이 되면 자살하는 청소년이 폭증해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지요.


공무원 청렴도가 높고 부패지수가 낮은 것은 좋은 점이나 국가가 국민을 매로 다스리는 방식, 이른바 태형이 아직까지 존재합니다. 사행집행 역시 굉장히 많은 편입니다. 이 때문에 세계 인권단체들이 해마다 문제를 제기하기도 합니다. 소금물에 절여 위력이 배가된 1.2미터짜리 등나무 몽둥이로 태형을 가한다는 건 국가의 권위를 국민에게 내보임으로써 자발적 굴종을 강요하는 어이없는 행태에 다름 아닙니다. 

 

엄격한 공권력을 바탕으로 한 감시와 형벌 때문에 싱가포르 안에서는 치안이 잘 유지된다지만, 해외에서 싱가포르 국민들의 억눌린 감정이 폭발해 여행지에서 갖은 추행과 문제를 야기하는 것으로도 악명이 높지요. 이런 이중성은 국민을 국가의 부품으로 여기고 효율의 극단을 추구한 결과입니다. 2012년 통계에서 싱가포르는 경제적 부유함에도 불구하고 국민행복지수가 세계 꼴찌였습니다.

 

출처 - 세계일보

 

갤럽은 지난 20일 유엔이 정한 '세계 행복의 날(International Day of Happiness)'을 맞아 행복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긍정경험지수(Positive Experience Index)'를 발표했습니다. 2014년 한 해 동안 143개국에 걸쳐 국가당 15세 이상 남녀 1000여 명을 대상으로 면접, 전화 인터뷰를 통해 자료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 조사에서 한국인의 긍정경험지수는 100점 만점에 59점으로 지난해 94위에서 24단계나 떨어진 118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반면 싱가포르는 100점 만점에 80점으로 11위에 해당합니다. 2012년 국민행복지수가 세계 꼴찌였던 싱가포르가 2015년에는 행복의 수준이 세계 11위 수준으로 상승했으니 상전벽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네요.

 

하지만 싱가포르의 언론자유지수는 세계 바닥권입니다. 국경없는기자회(RSF)가 세계 각국의 언론자유 정도를 확인하는 지표로 발표하는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우리나라는 2012년과 2013년 연속 50위, 2014년 57위, 2015년 60위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언론자유지수가 50위였던 시절 싱가포르의 언론자유지수는 149위였습니다. 2015년 현재 싱가포르의 언론자유지수는 세계 180개국 중 153위에 해당합니다.

 

출처 - 국경없는기자회

 

싱가포르의 언론사는 TV와 신문을 가리지 않고 대주주가 국영 투자업체이기 때문에 주요 언론 전부가 정부가 운영하는 거대 공기업의 지배를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니 정부 비판이나 언론 자유가 지켜지기 어려운 상황이죠. 외신의 경우 싱가포르 국내에 법정 대리인과 예치금을 두어야 합니다. 공권력을 직접 동원하지 않더라도 명예훼손이나 고소, 고발로 재갈을 물리기 위해서죠.



출처 - 경향신문


리콴유 전 총리의 개인적인 청렴함이 높게 평가되기도 하지만 사실상 싱가포르라는 국가 자체가 리콴유 일가의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싱가포르 최대 기업이자 경제의 중추인 국영 투자회사 테마섹 홀딩스의 시이오(CEO)는 리콴유의 며느리이며 아들 리셴룽은 아버지를 이어 싱가포르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사실상 권력 세습인 것이죠.

 

출처 - 한겨레

 

싱가포르의 집단대표선거구제인 GRCs는 여러 선거구를 묶어 하나의 큰 선거구로 만들고 후보가 아닌 정당에 투표를 하는 제도입니다. 득표수가 많은 정당의 후보가 전부 선출되는 방식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돈이 많고 힘이 있는 여당이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리콴유와 리셴룽이 후보로 나온 지역구에 야당은 아예 출마를 하지 않을 정도라고 하며, 그렇게 되면 리콴유와 같이 나온 후보들은 자동적으로 당선이 되는 기형적인 선거 구조입니다. 야당이 있지만 들러리조차 되지 못하는 셈입니다. 야당이 84석 가운데 2석이나(!) 차지해 선전했다는 뉴스가 나오는 판이니 싱가포르의 정치 상황이 어떠한지 이해하시겠지요.



아시아적 가치 논쟁, 리콴유 대 김대중


해외 지면을 통해 아시아적 가치를 논쟁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리콴유의 시각차와 관련된 일화는 유명합니다. 시작은 1994년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3~4월호였습니다. 리콴유는 편집장과의 대담에서 민주주의나 인권이 동아시아에는 적용될 수 없다며 유교에 바탕을 둔 아시아적 가치를 내세웠습니다.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기반으로 한 독재체제가 더 알맞다는 논리였죠. 리콴유는 동아시아 정치경제 체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서구적 가치관의 위선과 체제의 한계를 강조했습니다.


 

출처 - 조선일보


그런데 같은 해 말, 《포린 어페어스》 11~12월호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문화란 운명인가'라는 기고문으로 리콴유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민주주의야말로 동양 전통사상의 이념이며 리콴유는 자신의 독재를 위해 민주주의 거부를 정당화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이후로 리콴유는 1998년 한국이 IMF가 부과한 미국식 조건을 너무 따르는 게 문제라며 서양식 처방이 능사가 아니라는 비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다시 한 번 아시아의 민주주의 사상과 전통을 강조하며 리콴유의 권위주의 통치를 반박했습니다.


두 사람의 정치적 시각을 짧은 지면으로 다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동아시아 정치사에 있어 리콴유와 김대중은 대척점에 서 있는 거인이었음은 분명합니다. 서로 다른 가치를 추구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리콴유 전 총리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이로써 동아시아 정치사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리콴유의 존재가 곧 국가였던 싱가포르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새로운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고 있고, 인민행동당의 일당통치에 반감을 보이는 시민도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빈부격차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지가 관건입니다. 2013년 말에 발생한 이주노동자들의 폭동은 사회적 빈부 격차와 부의 불평등성이 극에 달했음이 드러난 사건이었습니다. 

 

출발부터 성장 과정까지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많은 싱가포르. 리콴유 전 총리의 서거 이후 싱가포르가 어떤 정치적 행보를 이어갈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국민들이 생활 속 문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문화가 있는 날'을 지정·운영 중입니다.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는 영화관, 공연장, 미술관, 박물관, 등 전국의 주요 문화시설을 무료나 할인된 가격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혹시 이런 사실 알고 계셨나요? 

 

출처- 문화가 있는 날 누리집

 

'문화가 있는 날'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밝힌 국정운영 4대기조의 하나인 '문화융성'을 실현하는 방편으로 만들어진 제도 중 하나입니다. 그 취지는 좋았으나 홍보 부족으로 이런 제도가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또한 '문화가 있는 날'을 수요일로 정했는데 평일에 마음 편하게 문화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주말을 '문화가 있는 날'로 지정하면 문화콘텐츠를 주업으로 하는 업체들의 수익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평일로 지정한 것일 텐데요, 제도의 취지와 현실이 동떨어져 있으니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알쏭달쏭하기만 합니다.

 

어쨌든 어제가 새해 들어 첫 '문화가 있는 날'이어서 그런지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이 서울 용산의 한 극장에서 파독광부 및 간호사, 이산가족들과 함께 영화 〈국제시장〉을 관람한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이날 관람에는 김동호 문화융성위원장,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세훈 영화진흥위원장, 영화 스태프 및 가족, 20∼70대 등 세대별 일반 국민 180여 명이 함께 했다고 하는군요.

 

팍팍한 경제 사정 때문에 그나마 영화 관람이 가장 쉽게 누릴 수 있는 문화일 텐데요, 역대 대통령들도 종종 영화를 관람하곤 했습니다. 오늘은 역대 대통령이 관람해 유명해진 영화들을 한번 살펴볼까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국제시장〉〈명량〉〈넛잡〉〈뽀로로 슈퍼썰매 대모험〉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국제시장〉을 관람한 박근혜 대통령은 여러 장면에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일전에 박 대통령은 영화를 보지도 않고서 〈국제시장〉에서 황정민, 김윤진이 분한 부부가 부부싸움을 하다가 애국가가 들리자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장면을 마치 본받아야 할 전통이나 미담인 것처럼 얘기해 구설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문화가 있는 날'을 맞이해 영화관을 찾은 박 대통령은 영화 제작 스태프들과 표준계약서를 맺은 점 등을 평가하면서, 문화산업은 창조경제의 핵심인 만큼 제작환경 개선에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윤제균 감독 등에게 감동적이었다며 앞으로 이런 좋은 영화를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고 밝혔습니다.

 

〈국제시장〉은 흥행했는데 영화의 배경이었던 '꽃분이네'가 문을 닫을 처지에 놓였습니다. 오늘 <한겨레> 사설을 보면 "매주 수만명의 관광객이 몰리면서, 가게 주인이 권리금을 3배 가까운 5천만원으로 올려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관광차 들러 사진을 찍는 사람은 많지만 매출이 늘지 않으니 '꽃분이네'는 재계약을 포기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문화산업의 융성이 생각만큼 쉽지 않은 문제라는 점이 여기서도 드러나는군요.  

 

박근혜 대통령은 <국제시장> 외에 1000만 관객을 동원한 또 다른 영화인 <명량>을 보기도 했습니다.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의 충격으로 코너에 몰렸던 정국의 반전을 꾀하며 이순신의 리더십을 통해 국민의 애국심을 건드리려 하는 일종의 정치적 행보가 엿보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에 <뽀로로 슈퍼썰매 대모험> 시사회 기념 애니메이션 산학리더 간담회에 참석해 "뽀로로를 보면서 문화콘텐츠 산업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게 된다, 문화콘텐츠 산업이 우리나라의 새로운 주력 산업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작년 9월 16일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대통령 모독 발언이 도를 넘었다"며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성 발언이 사회의 분열을 가져온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자 이틀 만에(18일) 대검찰청이 미래부, 안행부, 방통위, 경찰청, 포털업체 등과 유관기관 대책회의를 열어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 대응 방안'을 마련했지요.

 

이에 따라 서울중앙지검에 사이버 명예훼손 관련 전담팀이 설치되고 검사 5명과 수사관이 배치되었습니다. 검찰은 포털과 모바일 메신저 사업자들을 대책회의에 모아 놓고 메신저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을 강화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허위사실 유포사범은 벌금형이 아닌 재판 회부를 원칙으로 하고 최초 유포자뿐 아니라 확산시킨 사람까지 엄하게 벌하겠다면서 말이죠.

이런 일련의 조처는 국내 모든 메신저에 대한 검열을 예고했고, 누리꾼들은 자신의 대화 내용이 언제 국가에 의해 털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카카오톡을 중심으로 스마트폰 메신저가 실시간 검열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현실로 드러나자 많은 사용자가 텔레그램으로 사이버 망명을 떠났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어이없는 발언과 검찰의 과잉 충성으로 빚어진 시대의 희극은 "문화콘텐츠 산업이 우리나라의 새로운 주력 산업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겠다"던 대통령 당선인 시절의 약속과 참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 – 〈도가니〉〈워낭소리〉


이명박 전 대통령은 허울뿐인 자원외교로 천문학적인 국고를 낭비한 혐의로 청문회 증인 채택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도가니>와 <워낭소리>를 관람했습니다. 대통령 당선인 시절에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관람하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아니지만 1990년 <야망의 세월>이란 드라마로 그의 기업인 시절 이야기가 그려진 적도 있었지요.


출처 – 다음 영화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2011년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영화 <도가니>의 열기가 국회로 이어져 이른바 '도가니법'이란 성폭력범죄 처벌 특별법 개정이 이뤄졌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장애인에 대한 성범죄의 공소시효가 없어졌습니다.

 

오는 2월 2일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이 출간된다고 합니다. 오늘 《경향신문》 머리기사로 이 전 대통령이 "회고록의 상당 부분을 외교 사안에 할애하면서 자화자찬으로 일관한 반면, 4대강 사업, 자원외교, 광우병 파동 등 재임 중 '내치 실패'에 대해선 대부분 야당과 당시 여당 내 친박계 의원들의 책임으로 돌려 파장이 예상된다"는 내용을 다뤘습니다.

 

2007년 대선을 사흘 앞둔 시점에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BBK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했다"는 발언을 한 연설 동영상이 나왔던 일을 기억하시는지요? 이에 대해 나경원 전 대변인은 "BBK 설립했는데 주어가 빠졌다"는 궤변의 논평을 내놓아 대한민국 국민의 얼을 빼놓았습니다. 과연 이번에 나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는 '주어'가 있을까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왕의 남자〉〈맨발의 기봉이〉〈밀양〉〈화려한 휴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가장 많은 영화를 본 대통령이었습니다. <왕의 남자> <길> <맨발의 기봉이> <밀양> <화려한 휴가> 등 공식적으로 본 영화만 해도 5편이라고 합니다. 

 

출처 – 다음 영화


영화 <왕의 남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언론에 의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공격하는 단어로 많이 쓰였습니다.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 이제는 야인으로 돌아간 유시민 전 의원 등이 '왕의 남자'로 불리는데, 이후 대통령의 최측근이나 실세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진 것 같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고 눈물을 흘려 화제가 된 동시에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김해 봉하마을 출신이지만 정치적으로는 광주의 아들이었습니다.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광주 시민이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테니까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변호인>을 정작 당사자가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군요.


고 김대중 전 대통령 – 〈태극기 휘날리며〉〈왕의 남자〉〈화려한 휴가〉


문화에 대한 감각이 남달라 통 큰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는 영화를 관람한 적이 없었습니다. IMF 외환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시기라 짬을 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재임 전후로는 꽤 많은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정계 은퇴 후 영국을 다녀온 뒤에는 <서편제>를 봤고, 대통령 임기를 마친 뒤에는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화려한 휴가> 등을 관람했습니다. 일본의 사회파 감독인 사카모토 준지의 <케이티(KT)>는 독재자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한 야당 후보 김대중 납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출처 – 다음 영화


한국의 영화정책은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변화를 보이다가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급진전했습니다. 정책의 방향은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죠. 김 전 대통령은 검열 철폐와 문화에 대한 지원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초석을 닦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문화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20여 년간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발돋움한 부산국제영화제를 정치적으로 쥐고 흔들려다 역풍을 맞자 또 오해 타령을 하는 부산시장과 현 정부는 문화정책 면에서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문화정책을 보고 배워야 할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서편제〉


인터넷도 없고 SNS도 없던 시절, 대통령이 본 영화라는 타이틀의 대표적인 예로 통한 영화가 바로 김영삼 전 대통령이 관람한 <서편제>였습니다. 100편 이상의 영화를 찍은 국민 감독 임권택의 작품으로 국악과 한을 다룬 영화적 완성도 또한 훌륭했습니다. 지금과 같은 멀티플렉스 상영관도 없고 관객 집계도 수기로 이루어지던 시절이라 전국 관객 집계가 남아 있지 않지만, 1993년 단성사에서 개봉한 후 196일 동안 서울에서만 100만 관객을 동원하는 저력을 보여주었죠. 한국 영화 최초로 서울 관객 100만을 돌파한 영화였으니 우리나라 최고 흥행 영화라는 얘기가 과언은 아니었겠죠.

 

출처 – 다음 영화


살펴본 바처럼 대통령이 관람한 영화는 당대 최고의 흥행 영화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통령이 봤기 때문에 흥행에 탄력을 받은 것인지 국민이 많이 찾은 영화를 대통령도 본 것인지 선후 관계는 영화마다 다르겠지요.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의 행보에는 일정한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영화와 어떤 대통령을 선호하시는지요? 이번 주말에는 여러분이 투표한 대통령이 선택한 영화를 보면서 추억에 잠겨 보시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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