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가을비가 마치 장맛비처럼 내리는 아침입니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아침저녁으로 기온 차가 더 심해지겠지요. 날씨가 추워질수록 사람의 온기가 그립습니다. 지난 추억으로 지나간 사람이든, 지금 만나는 사람이든,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그립습니다. 산이 갈색으로 물들고 거리에 플라타너스 잎이 말라 떨어지는 때면 사람이 더욱 그립습니다. 옷을 두껍게 입을수록, 체온의 소중함을 느낄수록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커지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있다면, 아무리 가까운 곳에 있어도 마음의 그리움이 사뭇 커지는 계절입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사람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일은 삶의 가장 큰 부분 중 하나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일은 행복입니다. 약속한 장소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일은 즐거움입니다. 황지우 시인의 얘기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약속 장소에서 기다려본 사람은 압니다. 그 사람이 남자이든 여자이든 누군가를 기다리는 건 설레는 일입니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 내가 미리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시적 화자는 약속 장소에 먼저 나가 기다립니다. 약속 장소로 다가오는 모든 발걸음 소리가 기다리는 대상으로 느껴져 가슴이 떨립니다. 바람에 흩날려 거리에서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러한 느낌은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처럼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감정입니다. 바로 설레는 마음이죠.

약속 시간이 다가올수록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라는 시인의 표현처럼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시간은 점점 가까워집니다. 오기로 약속한 대상을 시적 화자가 기다립니다. 누군가 문을 열면 그 사람일까 기대합니다. 한 사람 또 한 사람 들어올 때마다 “너였다가 / 너였다가 /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고 이내 문이 닫힙니다. 기다림의 기대가 무너질 때 설렘은 아픔으로 바뀝니다.
 
그러다 시적 화자의 마음이 “사랑하는 이여”라는 부분에서 바뀝니다. 수동적으로 더 기다리지 않고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갑니다.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는 반어적 표현에서 시적 화자의 의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약속 장소를 떠나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행위가 현실에서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지난 시간 속으로, 지난 추억 속으로 그 사람을 찾아갑니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시간과 추억으로 가는 시간도 길어집니다.

마침내 추억의 시간이 기대의 시간으로 다시 바뀝니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라는 표현에서 느낄 수 있듯, '설렘'에서 '애림'으로 바뀌었던 시적 화자의 심경이 다시 '기대감'으로 변화합니다. 이제는 기다리는 시간이 크게 상관없습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처럼 그 사람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적 화자가 다가가는 만큼 기다리는 대상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느새 기다리는 행위가 만나러 가는 행위와 같아집니다. 가슴의 쿵쿵거림은 사랑하는 이를 향한 설렘으로 더욱 커집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는 표현처럼 그동안 마냥 기다리던 수동적 행위가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능동적 행위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쿵쿵거리는 가슴으로 여러분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니면 쿵쿵거리는 가슴으로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습니까?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만큼 설레고, 애리고, 다시 설레는 감정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은 없겠지요. 깊어가는 가을, 연필로 꾹꾹 눌러 편지를 쓰시기 바랍니다. 앞서 소개한 시인의 마음처럼 '기다림'의 행위를 '만나러 가는 행위'로 바꾸어줄 소중한 도구가 될 테니까요.

황지우

195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광주일고를 거쳐 서울대 인문대 미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연혁(沿革)>이 입선하고, 《문학과지성》에 <대답 없는 날들을 위하여> 등을 발표하며 시단에 등장했다. 하우저의《예술사의 철학》 등을 번역하며 《시와 경제》 동인으로도 참가했다. 
첫 시집이자 제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는 전통적 시 관념을 부수면서 기호, 만화, 사진, 다양한 서체 등을 사용하여 풍자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또한 《나는 너다》에는 화엄(華嚴)과 마르크스주의적 시가 들어 있는데, 이는 스님인 형과 노동운동가인 동생에게 바치는 헌시다. 
다른 예술에도 관심이 많아 1995년에 아마추어 진흙조각전을 열기도 하고, 미술이나 연극의 평론을 쓰기도 했다. 1991년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게눈 속의 연꽃》은 초월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노래했으며,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는 생의 회한을 가득 담은 시로 대중가사와 같은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시집이다. 여기에 실린 <뼈아픈 후회>로 김소월문학상을 받았고, 같은 시집으로 제1회 백석문학상을 받았다.
시집으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나는 너다》《게눈 속의 연꽃》《저물면서 빛나는 바다》《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등이 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추석 명절을 보낸 가을, 유난히 고향이 그립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에게 시골의 고향은 그림이나 영화 또는 여행에서 본 인상적인 장면처럼 아련하기만 합니다. 방학 때 친척을 찾아 시골에서 논 추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고향 하면 앞에 강이나 바다가 있고 뒤엔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을 떠올리지 않을까요?

오늘 소개할 〈참깨를 털면서〉라는 시를 쓴 김준태 시인은 전라남도 해남 출신입니다. 그는 "살구꽃이 피고, 보리꽃이 피고, 봄마다 뜸북새가 울고, 여름마다 물꼬싸움이 찾아들고, 매미가 울고, 가을엔 저녁노을처럼 들기러기가 내려앉는 곳. 뿐이랴, 논밭들이 헐떡거리는 들판 건너 바다도 보이는 곳. 그곳이 나의 고향이다" 하고 자신의 고향을 소개합니다.

시인의 말마따나 고향은 우리가 돌아가고 싶은 편안함을 주고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곳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성장 일변도인 정부와 지자체의 개발 논리 앞에서 전국의 고향은 위태롭습니다. 댐을 만들어 수몰되거나, 공장이 들어선다고 파헤쳐지거나,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고층 아파트가 세워지거나, 항구를 만든다고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어린 시절 뛰어놀던 산과 들과 강과 해변이 추억으로만 남을 위기에 처한 곳도 많습니다. 4대강 공사로, 해군기지 건설로, 간척사업 등으로 지금 이 시간에도 아름다운 우리의 고향이 훼손되고 있습니다.

참깨를 털면서

산그늘 내린 밭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世上事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都市에서 십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번만 기분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世上事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에서 표현되어 있듯이 시인은 도시생활에서 돌아와 오랜만에 참깨를 터는 작업을 하며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都市에서 십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기가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라고 심경을 직접 드러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휘파람불며 참깨를 털어내는 손자에게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되느니라” 하며 가볍게 일러주십니다.

‘참깨 털기’가 도시생활에 익숙한 손자에게는 큰 즐거움이겠지만, 할머니에게는 해마다 돌아오는 일상생활입니다.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며 참깨를 텁니다. 깨가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젊은 손자는 해지기 전에 집에 가려고 빨리 털어내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선지 할머니는 귀여운 손자에게 가벼운 꾸중을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지금도 흔합니다. 농촌의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농촌의 삶을 막연히 즐겁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마치 조선 시대 윤선도처럼 가난하지만 낭만적인 생활을 하고 왔다는 식으로 농촌생활을 '쉼'과 '재미'가 있는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하지만 윤선도가 자연과 어촌의 평화로운 풍경을 노래하며 즐기는 동안 보길도 주민은 일상의 힘겨움을 온몸으로 견뎌야 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도시에서 농촌으로 '체험'을 하러 내려가는 사람들에겐 그곳의 일상이 재미로 다가올 수 있겠지만 논밭에서 땀 흘리는 현지인들로서는 일상을 재미로 국한하여 말할 수는 없겠지요. 젊은 손자의 모습과 농촌을 문화체험의 현장 정도로 생각하는 요즘 도시인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김준태 시인이 <참깨를 털면서>를 발표한 1970년대는 농촌에서 많은 젊은이가 빠져나와 도시로 이주하던 때였습니다. 농촌에서 젊은이를 찾아보기 어렵고 노인들만 남은 곳이 허다했습니다. 누군가는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파헤치고 개발 논리를 내세워 고향을 배반하고 팔아먹기도 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런 일이 지금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김준태 시인은 《참깨를 털면서》라는 시집 후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아, 사람들아. 고향을 잊어먹거나 고향을 배반하거나, 고향을 뒷발로 차버리거나, 고향을 올라타고 말채찍을 휘두르는 사람들아. 고향! 이제 우리는 고향을 찾아가야 할 것 같다. 고향을 깊이 어루만져야 할 것 같고, 고향을 사방팔방으로 입맞추어야 할 것 같고, 고향을 노래해야 할 것 같고 고향을 울어주어야 할 것 같고, 아주 우리가 진짜로 고향이 돼버려야 할 것 같다. 사람들아, 오 사람들아. 이제 우리는 저마다 고향이 되어서 기실 천지간이 온통 고향으로 둘둘 뭉쳐졌으면 환장하게 좋을 것 같다.
몇 주먹 더 털어놓자면, 사람들아, 나의 고향은 나의 宇宙다. 나의 고향은 나의 敎科書요, 바이블이요, 눈알이요, 망원렌즈요, 배꼽이요, 귓구멍이요, 속옷이요, 머슴이요, 스승이요, 보리밥이요, 天國이요, 개똥이요, 구정물통이다. 요컨대 나의 고향은 나의 모든 것이다. 나의 未來다.

글을 마무리하며 《참깨를 털면서》의 발문을 쓴 조태일 시인과 천상병 시인의 일화를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조태일은 김준태의 시를 읽고 자신보다 인생의 연륜이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다가 보내온 약력을 보고 대학교 초년생이라는 사실에 놀랐다고 합니다. 그 뒤 김준태는 중앙의 발표지면을 통해 좋은 시를 맹렬히 발표합니다. 하루는 《창작과비평》에 실린 김준태의 <감꽃> 등의 시를 읽고 천상병 시인이 조태일 시인을 찾아왔습니다. 

감꽃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대낮부터 청진동 막걸릿집으로 조태일을 데려간 천상병 시인은 백 원어치의 막걸리를 이 세상에서 남에게 사는 처음이자 마지막 술이라며 권했다고 합니다. 김준태의 좋은 시를 읽고 매우 기쁘다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오늘 여러분도 옛동무를 만나 고향의 추억을 나눠보시기 바랍니다.

김준태

1948년 해남에서 태어나 조선대학교 사범대학 독어과를 졸업했다. 1969년 월간 《시인》지로 등단했다. 베트남전쟁에 1년 동안 참전했으며 13년간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이후 11년간 전남일보, 광주매일 편집국, PBC광주평화방송 시사자키, 5·18구속자 회장, 민족문학작가회의 부이사장, 한국문학평화포럼 부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조선대학교 문창과 초빙교수로, 광주 금란로에 작은 학교 <금남로리케이온>을 마련하여 교육과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시집 《참깨를 털면서》《나는 하느님을 보았다》《국밥과 희망》《아아 광주여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칼과 흙》《지평선에 서서》, 소설 〈오르페우스는 죽지 않았다〉 외 액자소설 88편, 통일시해설집 《백두산아 훨훨 날아라》, 세계문학기행집《세계문학의 거장을 만나다》, 평전《명노근 평전》 베트남전쟁소설《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등이 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말랐던 땅에 촉촉이 비가 내렸습니다. 답답했던 마음도 조금은 풀리는 듯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비 한 방울이 절실한 실정입니다. 말로만 상생을 외치는 대기업과 정치권의 외침 속에서 중소기업과 서민의 삶은 언론조차 외면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겠다며 혁명을 외치던 세대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요? 가끔 4.19 혁명 때, 1980년대 민주화운동 때, 군사정권 이후에 왜 이 사회를 바르게 바꾸지 못했는지 원망스러운 마음도 듭니다.

젊은 날 답답한 현실 속에서 미래를 이야기하며 무엇인가 바꿀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이들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4.19 혁명 시대와 1980년대 민주화운동 시절에 거리를 메웠던 이들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먹고살기에 팍팍한 일상을 하루하루 견디는 기성세대가 되어 지금 현실을 더욱 목마르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요? 이러한 원망은 곧 '나'를 향하는 화살이 되어 비수처럼 가슴을 찌릅니다. 세상을 향해 큰소리 한번 치지 못하는 나를 향해 날아옵니다.

김광규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는 이런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가/부끄럽지 않은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0대의 순수함와 열정은 어디로 갔는지 혁명을 두려워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나이가 되어 현실을 외면하는 '나'를 보게 합니다.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미래를 꿈꾸기보다 노후를 걱정하고 변화를 바라기보다 개인의 안녕만 바라는 부끄러운 일상을 돌아보게 됩니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나이보다 생각이 더 늙어버린 것은 아닌지, 건방지게 세상을 다 안다는 듯이 살고 있지는 않은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향해 욕만 하는 것은 아닌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읽으며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을 붐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 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우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철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 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우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잎 흔들며
우리는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김광규 시인의 가장 큰 특징은 '일상어'를 구사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말하는 언어를 그대로 시로 옮겨 표현하기 때문에 뜻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역시 일상적 언어를 사용하고 특별한 비유법을 쓰지 않아 편하게 읽을 수 있고 시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이 시를 읽고 있으면 순수했던 젊은 날의 기억과 현실에서 타협하는 지금 나 자신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겹칩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겠지요. 

시는 보이는 표현도 중요하지만 읽으면서 느끼는 내면의 일렁임이 있을 때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시는 시간이 지나도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줍니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는 1979년 처녀시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벌써 31년이 지났습니다. 1990년 성탄절에 친구한테서 선물로 받은 시선집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서 이 시를 읽고난 이후 김광규 시인의 시집을 모두 사서 읽었습니다.

김광규 시인의 시는 현실의 뒤틀린 모습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의 이기주의와 속물근성을 단순화하여 보여줍니다. 그래서 읽는 사람에게 '찔림'을 느끼게 합니다. <나>라는 시에서 시인은 상황에 따라 아들, 아버지, 동생, 형, 남편, 오빠, 조카, 아저씨, 제자, 선생, 납세자, 예비군, 친구, 적, 환자, 손님, 주인이 되는 자신의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지금 여기 있는 '나'는 누구냐고 말이지요. 현대 철학은 근대적 주체가 아닌 '관계적 주체'를 이야기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여러 역할 속에서 진정한 '나'는 누구인지 성찰하고 있습니다. <버스를 탄 사람들>이란 시에서는 대학가에서 최루탄 냄새가 나는 젊은이들이 올라타도 아무말 하지 않는 시민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평범한 시민이라 할지라도 그저 실없는 구경꾼이나 행인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름은 모르지만 낯익은 그들에게서 동지애를 느끼고 있는 시인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보이는 게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시인의 통찰을 엿볼 수 있습니다.

김광규 시인은 언제나 현실을 직시하며 주변 인물들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러면서 잊고 지내는 모습과 현실의 뒤틀린 모습을 이야기를 하듯 표현합니다. <나의 자식에게> 라는 시에서 " 위험한 곳에는 아예 가지 말고/의심받을 짓은 안 하는 것이 좋다고/ 돌아가신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중략).../지진이 일어나는 날은 /집에만 있는 것도 위험하고/아무 짓을 한해도 의심받는다/조용히 사는 죄악을 피해/ 나는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하겠다/평온하게 살지 마라/무슨 짓인가 해라/아무리 부끄러운 흔적이라도/무엇인가 남겨라"라고 말하며 현실을 외면하고 사는 삶이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현실은 언제나 올바르지 않을 수 있으며, 그른 것을 보고만 있어도 죄악이 됩니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세상을 바꾸겠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과연 바뀐 세상이 왔을 때 살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어쩌면 많은 사람이 운동경기의 구경꾼으로 세상을 관망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운동경기에서 반칙이 일어날 때 심판이 올바른 판단을 하지 않는다면 구경꾼들은 소리를 지르고 야유를 보냅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구경꾼입니까? 아닙니까?
공정하지 못한 세상을 향해 소리를 지를 준비가 됐습니까?

김광규

1941년 1월 7일 종로구 통인동에서 태어났다. 서울중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및 동대학원 독문과를 졸업했다. 괴테 인스티투트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서독으로 유학가서 뮌헨대학교에서 수학했고 현재 한양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1975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했으며 첫 시집《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으로 제1회 녹원문학상을, 1983년 두 번째 시집 《아니다 그렇지 않다》로 김수영문학상을, 다섯 번째 시집 《아니리》로 제4회 편운문학상을, 2003년 여덟 번째 시집 《처음 만나던 때》로 제11회 대산문학상을, 2007년 아홉 번째 시집 《시간의 부드러운 손》으로 제19회 이산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 시집 《크낙산의 마음》《좀팽이처럼》《물길》《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하루 또 하루》, 시선집으로《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누군가를 위하여》, 산문집으로《육성과 가성》《천천히 올라가는 계단》《육성과 가성》, 번역서로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하인리히 하이네 시선《로렐라이》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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