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소개했던 김훈 중위 사건은 19년 만에 순직으로 인정되었지만, 죽음 자체는 의문사인 채로 남아 있습니다. 김훈 중위 사건이 장교의 의문사 사건으로 가장 유명한 사례였다면 허원근 일병 사건은 병사의 의문사 사건 중 가장 유명한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허원근 일병은 1984년 강원도 7사단 GOP 전방소대의 폐유류고 뒤에서 가슴 2발, 머리 1발의 총상을 입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7사단은 자체 조사를 했다고 하는데 M-16 소총으로 오른쪽 가슴과 왼쪽 가슴을 쏘고 마지막에는 오른쪽 눈썹에 밀착해 사격한 자살로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당연히 유족들은 반발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게 당연합니다. 공기총이 아니라 군의 제식 소총을 밀착하고 쐈는데 3발을 쏠 동안 사람이 죽지 않고 흔들림 없이 겨눴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됩니다. 게다가 허원근 일병이 죽은 날은 첫 정기휴가 전날이었습니다. 복무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첫 휴가를 기다리는 심정이 어떤지 아실 겁니다. 그런데 첫 정기휴가 전날에 A급 군복까지 다려놓았는데 별다른 동기도 없이 자살했다? 이게 말이 될까요?


김훈 중위 때처럼 약 20여 년을 기다린 유족들은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재조사로 술에 취한 허 일병의 상관이 총을 쏴 그를 살해했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날 밤 술판을 벌인 선임하사와 중대장이 말다툼을 시작했고 선임하사가 내무반으로 와 병사들에게 화풀이하다가 행정반 입구 근처 있던 M16 소총을 들고 술에 취한 채 병사들을 위협했다고 합니다. 이에 말리던 병사들과 승강이를 벌이다 발사된 총알에 허 일병이 맞았다는 겁니다. 사건이 터지자 중대장, 대대장 등은 은폐 시도를 합니다. 그러고는 허 일병이 자살했다고 허위 보고를 하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허원근은 복무 중 중대 간부들이 규정을 어기고 술을 마신 것이 발단이 되어 상관인 노○○(19소초 선임하사)가 발사한 총탄과 나머지 2발의 총탄(주체는 불확정)을 맞고 사망에 이르렀고, 중대 간부들은 허원근이 최초 총격으로 쓰러졌을 때 구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자신들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자살로 위장하였는 바, 허원근의 사망은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에 의하여 사망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토대로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되었음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2심 재판부는 이를 뒤집고 맙니다. 희박한 가능성이긴 하지만 특정 자세를 취하면 소총으로 자살할 수도 있다는 황당한 이유에서였습니다. 2015년 마지막 3심에서 대법원은 허 일병의 사인을 알 수 없다고 최종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군의 부실수사를 인정해 유족들에게 3억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출처 - 한겨레


사건 당시 40대였던 허 일병의 아버지는 이제 70대가 되었습니다. 아들이 없는 30년을 의문사 해결을 위해 싸우고 또 싸운 그는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르겠으면 판결을 내리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보상금이고 위로금이고 다 필요 없다고 토로합니다. 

 

그렇습니다. 허 일병의 아버지는 돈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전두환 시절 벌어진 군 의문사라서 육군 수사관에게서 더 이상 들쑤시면 생명에 지장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협박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다 독재정권이 막을 내리자 또다시 농성에 나섭니다. 진실을 규명해달라는 요구였죠.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20년의 세월은 평범한 농부를 법의학과 법학에 능통하게 만들었습니다. 2004년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요구하며 추운 겨울을 거리에서 났으나 국회 법사위는 이 법안을 두 차례나 반려해 폐기했습니다. 그때 법사위원장이 지금 국정농단으로 구속된 김기춘이었습니다. 법사위원장이던 시절 김기춘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하기도 했죠.

 

출처 - 연합뉴스


허 일병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처럼 진실이 파묻힌 채 죽음을 맞이하는 젊은이가 더는 생기지 않도록 검시관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검시를 행할 자의 자격 및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안을 다시 한 번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일명 허원근법으로 2005년 발의됐으나 2008년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폐기된 법안이죠.

 

그러다 2015년 9월 대법원이 자·타살 규명이 어렵다는 판결을 내리자 허 일병의 아버지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재심청구를 합니다. 하지만 2016년 12월 말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재심청구가 기각되었습니다. 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다한 허 일병의 아버지는 국민권익위원회에 허 일병의 순직 처리를 해달라는 민원을 넣었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1년여의 조사를 거쳐 허 일병의 사망 원인과 상관없이 공무 중 사망했다면 순직으로 인정하라며 순직 권고를 합니다. 이에 따라 2017년 4월 국방부에서 사망심사를 진행하여 고 허원근 일병 사망 33년 만인 지난 5월에 순직을 인정했습니다.


출처 - 한겨레


우리나라에서 한국전쟁 이후 군 사망자는 공식적으로 6만 명에 달합니다. 베트남전에서 전사한 5000명을 제외하고도 말입니다. 이는 한국에서 전쟁을 하지 않아도 매년 1000여 명의 군인이 죽어 나간다는 얘깁니다. 이라크전쟁 9년간 미군 사망자가 연평균 900명이었다죠. 전쟁 없는 평시에 대한민국군에서 더 많은 군인이 죽었다는 의미가 되니 참으로 기가 막히는 노릇 아닙니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죽고, 맞아서 죽고, 교통사고로 죽고 산사태로 죽고, 눈사태로 죽고, 홍수로 죽고, 일사병으로 죽고,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등 갖가지 이유로 죽는 군인이 이렇게나 많다는 건 우리나라 군과 시스템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민주정권 시기인 1998~2005년 사이에도 173명이나 죽었습니다. 아직 갈길이 멉니다. 군 적폐 개혁만이 군 의문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지난 5일 오전 11시 30분 미국 텍사스주 서덜랜드 스프링스에 있는 제1침례교회에서 교인들이 예배를 드리던 중 방탄조끼를 입은 한 사내가 나타나 AR-15 소총을 난사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26명의 신자가 숨지고 20명 이상이 다쳤습니다. 언론은 마을 공동체의 중심지였던 교회가 주민 360여 명 가운데 7퍼센트가 숨지는 텍사스주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현장으로 변모했다고 전했습니다. 지난 10월 초 추석 연휴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테러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이런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돌아가신 분들과 유족들에게 어떻게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19년 전에 일어난 총기 관련 의문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촛불의 힘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집단 중 하나인 군에도 변화의 움직임을 일으키고 있죠. 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군 인권 문제에 관심을 두고 군 의문사를 진지하게 대하고 있습니다. 새정부의 국정과제로 국방개혁을 표방하고 장병들의 인권보호를 강화해나가기로 함에 따라 국가인권위원회 안에 '군인권보호관'을 신설하고 군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런 움직임의 일환이었는지 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지난 5월 26일 군 의문사 장병들 어머니들의 사연을 다룬 연극 〈이등병의 엄마〉를 관람했습니다. 역대 영부인과는 다는 행보를 보인 것이죠. 김정숙 여사가 관람한 연극은 선임병의 상습 구타와 가혹 행위로 사망한 한 병사의 죽음을 군이 자살로 은폐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내 머리에 총을 대서 실험해주기 바란다. 나는 내 몸을 내 자식한테 바친다!"

 

출처 - SBS

 

19년 전 김훈 중위의 의문사를 규명하라며 어머니는 절규했습니다. 그간 정권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군은 김훈 중위의 죽음을 계속 자살로 규정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 변화의 움직임이 있었죠.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후보자 신분이던 6월 26일 군 의문사 유가족과 면담한 이후 7월 20일 국방컨벤션에서 '군 의문사 관련 유가족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송 장관은 이 자리에서 군 의문사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한편 명확한 진상규명을 통해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회복과 인권증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습니다.

 

김훈 중위 유족은 7월 25일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게 김훈 중위 사망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서를 보냈습니다. 김훈 중위 어머니의 절규가 울려 퍼진 지 19년 만인 지난 8월의 마지막 날. 국방부는 김훈 중위의 순직을 인정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군 의문사 중 대표적 사례로 알려진 김훈 중위의 순직이 인정됨에 따라 다른 군 의문사 문제에도 서광이 비칠까 기대가 모이고 있습니다.


 

출처 - 중앙일보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은 1998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 경비중대 소대장이었던 고 김훈 중위가 GP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숨진 채 발견된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군 수사당국은 사건을 자살로 결론 내리고 서둘러 덮으려 했지만 타살 의혹이 끊이지 않았죠. 자살할 동기가 없었을 뿐 아니라 사건 현장에 남은 정황 증거들이 자살이라 하기엔 앞뒤가 맞지 않는 것투성이였기 때문입니다. 김훈 중위 사건이 자살이나 사고가 아닌 군 의문사가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건 현장에는 김훈 중위의 손목시계와 현장의 지뢰 박스 등이 부서져 있어 김훈 중위가 사망 직전 누군가와 격투를 벌인 것이 아니냐는 의심도 있었습니다. 또한 김훈 중위의 왼손에서 화약흔이 발견된 점도 타살 의혹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2012년 국민권익위원회는 국방부와 다시 검증에 나섰는데, 김훈 중위의 사망 당시 사격 자세로 권총 발사 실험을 해본 결과 12명 중 11명이 오른손에서 화약흔이 나왔죠. 일각에서는 김훈 중위 소속 부대 일부 장병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군 GP를 오가는 불법적인 교류행위를 저질러 이를 뿌리 뽑으려다 살해됐을 수도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다음 영화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 같다고요? 네, 맞습니다.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인 박찬욱의 출세작인 〈공동경비구역 JSA〉의 모티프가 된 의혹이기에 그렇습니다. 2004년에는 김희철 감독의 다큐멘터리 〈진실의 문〉으로 또다시 군 의문사의 대표적 사례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김훈 중위의 죽음을 명확한 근거도 없이 자살로 만드는 과정에서 나타난 국가 권력의 인권유린과 이에 동조하는 비양심적 지식인, 언론, 사법부를 고발함과 아울러 사건의 당사자이면서도 끝까지 침묵한 주한 미군의 존재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현실은 픽션을 뛰어넘는다고 했던가요. 숨진 김훈 중위의 아버지는 예비역 중장이었습니다. 평생을 군에 몸 바쳐 복무하고 대를 이어 군인이 된 자랑스러운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죽었는데, 왜 죽었는지 알 수도 없고 초동수사는 엉망진창이며 그저 사건을 덮어버리려고만 하는 군을 보며 아버지인 김척 씨는 정말 억장이 무너졌을 겁니다. 그 이후 20년 동안 사건의 진상규명과 아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자신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군을 상대로 길고 긴 싸움을 해야만 했습니다.


김훈 중위와 같은 육사 출신 동기들의 정신적 충격도 컸습니다. 김훈 중위의 의문사가 국방부에 의해 자살로 결정지어지자 육사52기 장교 33명이 5년 차 전역을 선택하고 군을 나와버렸습니다. 육사 출신 장교 중 5년 차 전역을 택하는 사람은 평균 10명이 채 안 된다고 하는데, 동기의 죽음에 대한 군의 처사에 얼마나 진절머리가 났으면 집단 전역을 택했나 싶습니다. 군의 엉터리 수사로 생겨난 의문사는 한 가족을 끝없는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고, 앞날이 창창한 33명의 장료가 집단 전역하는 사태를 초래함으로써 스스로의 전력까지 낮추는 결과를 낳은 셈입니다.


김척 씨는 1999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대법원은 2006년 군 당국에 부실한 초동 수사의 책임이 있다며 유가족에게 정신적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군 당국이 현장 조사와 보존을 소홀히하고 주요 증거를 확보하지 않았으며 소대원들의 알리바이 조사도 형식적으로 했다고 지적하면서 책임을 물었습니다. 이 판결을 한 주심 재판관이 바로 김영란법의 김영란 전 대법관이기도 합니다. 이 판결을 토대로 2012년 국민권익위원회가 국방부와 위의 권총 실험을 하고 김훈 중위의 순직 처리를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국방부는 계속 시간을 끌다가 5년이 지난 2017년 8월에 이르러서야 순직 처리를 해주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20여 년간 고통을 감내하며 아들의 명예회복에 매달린 김척 씨는 이 결정을 듣고 "군 당국이 아들의 순직을 인정하지 않아 오랜 세월 고통을 겪었다"면서 "잘못이 있다면 그것을 인정하는 게 국민의 군대"라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그는 군 사건 수사에 민간 전문가를 포함한 제3의 기관이 참가할 수 있도록 하여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군 의문사도 세상에 알리고 공론화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겠죠. 예비역 장성의 아들에 대한 처우가 이럴진대 장삼이사의 아들들의 억울한 죽음은 오죽했겠나 싶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TV


갈 곳을 잃고 경기도 벽제의 육군 부대 컨테이너에 보관되어 있던 김훈 중위의 유골함은 20여 년 만에 제자리인 국립묘지로 돌아갔습니다. 고(故) 김훈 중위 안장식이 지난 10월 28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렸습니다. 이날 안장식에서 어머니 신선범 여사는 고 김훈 중위를 떠나보내며 영정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출처 - 뉴스1

 

수많은 군 의문사를 생각하면 이제 겨우 하나의 사례가 풀렸을 뿐입니다. 군 의문사는 군 자체의 개혁이 없이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더 많은 국민의 관심이 절실합니다. 뒤늦게 생각비행이 김훈 중위 순직 인정 소식을 다시 공유하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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