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걸린 허원근 일병 순직 인정, 그래도 갈길 멀다

지난번 소개했던 김훈 중위 사건은 19년 만에 순직으로 인정되었지만, 죽음 자체는 의문사인 채로 남아 있습니다. 김훈 중위 사건이 장교의 의문사 사건으로 가장 유명한 사례였다면 허원근 일병 사건은 병사의 의문사 사건 중 가장 유명한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허원근 일병은 1984년 강원도 7사단 GOP 전방소대의 폐유류고 뒤에서 가슴 2발, 머리 1발의 총상을 입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7사단은 자체 조사를 했다고 하는데 M-16 소총으로 오른쪽 가슴과 왼쪽 가슴을 쏘고 마지막에는 오른쪽 눈썹에 밀착해 사격한 자살로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당연히 유족들은 반발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게 당연합니다. 공기총이 아니라 군의 제식 소총을 밀착하고 쐈는데 3발을 쏠 동안 사람이 죽지 않고 흔들림 없이 겨눴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됩니다. 게다가 허원근 일병이 죽은 날은 첫 정기휴가 전날이었습니다. 복무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첫 휴가를 기다리는 심정이 어떤지 아실 겁니다. 그런데 첫 정기휴가 전날에 A급 군복까지 다려놓았는데 별다른 동기도 없이 자살했다? 이게 말이 될까요?


김훈 중위 때처럼 약 20여 년을 기다린 유족들은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재조사로 술에 취한 허 일병의 상관이 총을 쏴 그를 살해했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날 밤 술판을 벌인 선임하사와 중대장이 말다툼을 시작했고 선임하사가 내무반으로 와 병사들에게 화풀이하다가 행정반 입구 근처 있던 M16 소총을 들고 술에 취한 채 병사들을 위협했다고 합니다. 이에 말리던 병사들과 승강이를 벌이다 발사된 총알에 허 일병이 맞았다는 겁니다. 사건이 터지자 중대장, 대대장 등은 은폐 시도를 합니다. 그러고는 허 일병이 자살했다고 허위 보고를 하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허원근은 복무 중 중대 간부들이 규정을 어기고 술을 마신 것이 발단이 되어 상관인 노○○(19소초 선임하사)가 발사한 총탄과 나머지 2발의 총탄(주체는 불확정)을 맞고 사망에 이르렀고, 중대 간부들은 허원근이 최초 총격으로 쓰러졌을 때 구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자신들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자살로 위장하였는 바, 허원근의 사망은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에 의하여 사망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토대로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되었음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2심 재판부는 이를 뒤집고 맙니다. 희박한 가능성이긴 하지만 특정 자세를 취하면 소총으로 자살할 수도 있다는 황당한 이유에서였습니다. 2015년 마지막 3심에서 대법원은 허 일병의 사인을 알 수 없다고 최종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군의 부실수사를 인정해 유족들에게 3억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출처 - 한겨레


사건 당시 40대였던 허 일병의 아버지는 이제 70대가 되었습니다. 아들이 없는 30년을 의문사 해결을 위해 싸우고 또 싸운 그는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르겠으면 판결을 내리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보상금이고 위로금이고 다 필요 없다고 토로합니다. 

 

그렇습니다. 허 일병의 아버지는 돈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전두환 시절 벌어진 군 의문사라서 육군 수사관에게서 더 이상 들쑤시면 생명에 지장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협박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다 독재정권이 막을 내리자 또다시 농성에 나섭니다. 진실을 규명해달라는 요구였죠.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20년의 세월은 평범한 농부를 법의학과 법학에 능통하게 만들었습니다. 2004년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요구하며 추운 겨울을 거리에서 났으나 국회 법사위는 이 법안을 두 차례나 반려해 폐기했습니다. 그때 법사위원장이 지금 국정농단으로 구속된 김기춘이었습니다. 법사위원장이던 시절 김기춘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하기도 했죠.

 

출처 - 연합뉴스


허 일병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처럼 진실이 파묻힌 채 죽음을 맞이하는 젊은이가 더는 생기지 않도록 검시관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검시를 행할 자의 자격 및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안을 다시 한 번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일명 허원근법으로 2005년 발의됐으나 2008년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폐기된 법안이죠.

 

그러다 2015년 9월 대법원이 자·타살 규명이 어렵다는 판결을 내리자 허 일병의 아버지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재심청구를 합니다. 하지만 2016년 12월 말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재심청구가 기각되었습니다. 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다한 허 일병의 아버지는 국민권익위원회에 허 일병의 순직 처리를 해달라는 민원을 넣었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1년여의 조사를 거쳐 허 일병의 사망 원인과 상관없이 공무 중 사망했다면 순직으로 인정하라며 순직 권고를 합니다. 이에 따라 2017년 4월 국방부에서 사망심사를 진행하여 고 허원근 일병 사망 33년 만인 지난 5월에 순직을 인정했습니다.


출처 - 한겨레


우리나라에서 한국전쟁 이후 군 사망자는 공식적으로 6만 명에 달합니다. 베트남전에서 전사한 5000명을 제외하고도 말입니다. 이는 한국에서 전쟁을 하지 않아도 매년 1000여 명의 군인이 죽어 나간다는 얘깁니다. 이라크전쟁 9년간 미군 사망자가 연평균 900명이었다죠. 전쟁 없는 평시에 대한민국군에서 더 많은 군인이 죽었다는 의미가 되니 참으로 기가 막히는 노릇 아닙니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죽고, 맞아서 죽고, 교통사고로 죽고 산사태로 죽고, 눈사태로 죽고, 홍수로 죽고, 일사병으로 죽고,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등 갖가지 이유로 죽는 군인이 이렇게나 많다는 건 우리나라 군과 시스템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민주정권 시기인 1998~2005년 사이에도 173명이나 죽었습니다. 아직 갈길이 멉니다. 군 적폐 개혁만이 군 의문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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