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사회, 대한민국

 

지난 6월 25일은 한국전쟁 67주년이었습니다. 이 땅의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과 이름 없던 작은 나라를 위해 참전하여 희생한 세계 각국의 영령들을 기리는 날이죠. 한데 그 누구보다도 이분들의 뜻을 기리고 실천해야 할 대한민국 군의 현실은 자랑스럽지 못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한국전쟁 기념일 다음 날인 지난 26일 이한열 기념관에서 군인권센터가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경남 지역 39사단장인 문 소장이 공관병, 운전병 등 병사들을 대상으로 갑질을 일삼은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문 소장의 갑질은 가관이었습니다. 지난 3월 술을 마신 뒤 심야에 공관으로 간부들을 데리고 들어와 공관병에게 술상을 차리라고 지시하고는 공관병의 뺨과 목 부위를 때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취침 중인 병사를 깨워 술상을 차리게 한 것도 심각한 문제이고 비상사태를 대비해야 할 군의 지휘권자가 새벽에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만취한 상태로 병사에게 폭력을 행사했으니 징계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제 식구 감싸기에 바쁜 육사 마피아들은 문 소장이 병사의 뺨에 손을 대긴 했지만 때린 것은 아니라는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며 수사는커녕 징계위원회에 회부조차 하지 않았죠. 


문 소장의 갑질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운전병을 개인 기사처럼 써서 임무와 상관없는 민간인을 만나러 갈 때도 수시로 불러냈습니다. 또한 그는 새벽에 공관 보일러 담당 장병을 불러 보일러 작동 확인을 시키더니 추운 이유가 뭐냐고 따졌습니다. 온도를 올렸으나 원인 파악을 제대로 못 한 장병에게 폭언을 쏟아낸 문 소장은 다음 날 아침에 보일러 담당 장병에게 해안 경계를 보내버리면 정신 차리겠느냐는 위협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 밖에 문 소장은 자신의 대학원 과제를 대신 하라는 지시를 내린다거나 담배를 피울 때 당번병에게 곁에서 재떨이를 들고 있으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이 뿐이 아닙니다. 짜장면 배달을 시켰는데 철가방에 넣어서 가져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기를 공사판 노가다 취급했다며 부하에게 욕설을 퍼부은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애초 저따위 인성으로 어떻게 별을 달았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하지만 이런 심각한 인성의 소유자에 대해 육군본부는 구두경고를 했을 뿐 사실상 아무런 징계를 하지 않아 문제가 심각합니다.


문 소장의 행동을 보면 장군에게 과연 공관병과 당번병, 운전병이 꼭 필요한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직급에 따라 당연히 있는 국가공인 사노비 취급을 받기 때문입니다. 업무상 필요하다면 월급도 많이 받는 장성급이 스스로 필요한 만큼 고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현재의 당번병, 공관병 제도는 아예 없애거나 큰 틀을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아울러 육사끼리 제 식구 허물을 덮어주는 군 내부의 적폐 청산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참고로 미군은 본인 돈으로 고용하는 형태라고 합니다. 왜 국방의 의무를 지는 청년들을 사노비처럼 부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출처 - JTBC


대한민국 남성 중 군대를 갔다 오신 분들 가운데 황당한 사례를 경험하지 않은 분은 거의 없을 겁니다. 징병제를 채택해 국방의 의무를 져야 하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사정상 군대는 애증의 대상입니다. 특히 사회 경험이 적은 젊은이들에게 집단적으로 가해지는 부조리와 갑질의 향연은 이상한 군대 문화를 내재화하여 말도 안 되는 시스템에 젖어 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군대는 원래 다 그래." "군대 더러운 게 어제오늘 일이야?"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 일이 아니라 이번에야말로 군대 내부에 잠재한 부조리의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알베르 카뮈도 말한 바 있습니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이 어리석은 짓이다"라고 말입니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가맹점에 하는 갑질, 교수가 조교에게 하는 갑질, 회사 상사가 부하에게 하는 갑질, 아파트 단지에서 택배 기사들에게 벌이는 갑질 등등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갑질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보도됩니다. 최근 서울 중랑구의 한 아파트 단지 우편함에서 '경비실 에어컨 설치를 반대합니다'라는 내용의 전단 수십 장이 발견되고 벽보가 붙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가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방침을 세우자 이에 반대하는 이들이 행동에 나선 겁니다.

 

출처 - 울산매일

 

그런데 경비실 에어컨 반대 추진자들의 전단과 벽보 내용에 대해 "말 같지도 않은 이유들로 인간임을 포기하지 말라"며 에어컨 설치를 찬성하는 의견을 개진하는 글을 붙인 주민도 있었습니다. "단 한번이라도 여러분께서 쓴 글이 경비아저씨들께 그리고 글을 읽는 주민들에게 어떤 상처를 줄지 생각해 보셨느냐"면서 "경비 아저씨들도 누군가의 남편이고 누군가의 아버지"이며 "그늘 하나 없는 주차장 한 가운데 덩그러니 있는 경비실에 지금까지 에어컨 한대 없었다는 것이 더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주민은 "공기 오염이 걱정되신다면 댁에서 하루 종일 켜두시는 선풍기 끄시고, 수명 단축이 걱정되신다면 운동을 하시고, 지구가 뜨거워지는 것이 걱정이라면 분리수거 잘 지켜달라"고 충고했습니다.

 

출처 - 세계일보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이 대기업의 '갑질' 규제를 위해 행동에 나섰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위아, 그리고 피자업계 선두권인 미스터피자가 그 대상입니다. 현대위아는 2013년부터 3년 동안 최저가 낙찰을 받은 하도급업체에 24차례에 걸쳐 납품 단가를 일방적으로 깎은 혐의가 드러났습니다. 이런 갑질로 현대위아는 연 매출 7조 원대에 달하는 회사로 성장했는데요,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위아를 검찰에 고발하고, 3억 60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습니다.

 

한편 박근혜 정부에 의해 좌천됐다가 문재인 정부에 의해 부활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첫 수사 대상으로 미스터피자를 지목했습니다. 미스터피자는 정우현 회장의 친인척이 관여한 업체를 중간에 끼워 넣어 프랜차이즈 가맹점에 비싼 값으로 치즈를 강매한 의혹을 받고 있죠. 지난 지난 21일 미스터피자 본사를 압수수색한 검찰은 회장 자서전 강매, 비자금 조성, 본사 책임의 광고비를 가맹점에 떠넘긴 의혹 등 다각적인 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정우현 회장은 지난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방배동 사옥에서 기자 회견을 열어 사과한 뒤 회장직을 사퇴했습니다.

 

출처 - 시사포커스

 

패션잡화 브랜드 CM을 운영하는 성주디앤디의 김성주 공동 대표이사 또한 올해 초 하도급업체들의 납품 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당해 갑질 논란이 일자 최근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았죠. 그리고 20대 여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은 최호식 호식이두마리치킨 회장 또한 직을 내려놓았습니다. 6월 들어 3명의 오너가 추문 및 갑질 논란으로 줄줄이 물러난 셈이 되었습니다. 

 

 

하청사회, 대한민국

 

우리 사회에서 갑이 사회적 부를 움켜쥐게 된 까닭은 을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을 쥐어짜 가로챘기 때문입니다. 갑질이 가능한 이유는 '하청'이라는 특수한 계약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원래 하청(subcontract)이란 일의 일부 혹은 전부를 위탁받는 상호계약이며, ‘갑’과 ‘을’도 계약거래 당사자 양쪽을 일컫는 명칭일 뿐입니다. 그러나 양자가 평등하거나 대등하지 않기에, 대개 계약은 일거리를 주는 원청인 갑에게 유리한 반면 일거리를 받는 하청인 을에게는 불리합니다. 이 때문에 흔히 갑은 우위에 있는 자로, 을은 지위가 낮은 자로 인식되죠. 생각비행이 최근 출간한 책, 《하청사회》의 내용 일부를 소개하면서 문제점을 고민해보겠습니다.


계약 조건상 유리한 위치에 있는 갑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을에게 부당행위를 합니다. 원청과 하청 사이에 널리 알려진 부당행위 또는 '불공정 하도급거래'에는 "납품단가 후려치기, 기술 탈취, 구두발주, 하도급대금 부당감액 등"이 있습니다. '갑질'은 단지 갑이 '우위에 서는 것'만이 아니라 하위에 있는 을을 '밟고 서는 것'을 포함합니다. 갑은 갑질을 통해 스스로의 우월한 지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궁극적으로 더 많은 지대 또는 이익을 추구하게 됩니다.

출처 - 《하청사회》


하청사회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갑은 계속해서 갑의 위치를, 을은 계속해서 을의 위치를 유지해야 하죠. 달리 말하면, 갑과 을의 불평등한 관계가 지속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하청사회는 존속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갑은 어떻게 해야 계속해서 갑이 될 수 있을까요? 갑의 지위를 견고하게 지키거나 더욱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갑과 을 사이의 불평등이 점차 줄어든다면 갑으로서의 특권과 특혜도 점차 약화되겠죠. 따라서 갑은 불평등을 심화시키되 그에 따르는 을들의 불만을 무마해야 합니다. '낙수효과 이론'은 그 핵심 전략이었습니다. 

 

위 그림이 표현하고 있듯이 낙수효과란 고소득층의 소득 증대가 소비 및 투자 확대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저소득층의 소득도 증가하는 효과를 가리킵니다. 낙수효과 이론의 지지자들은 고소득층이나 대기업의 수중에 먼저 돈을 채우면 중력의 법칙에 따라 가난한 사람에게도 그 혜택이 흘러내려 온다고 설명해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그림처럼 '부자 감세'는 부유층의 지출 증가와 투자 증가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을에게 돌아갈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예언합니다.

출처 - 《하청사회》

 

과연 낙수효과로 빠른 경제성장의 선순환을 이루게 될까요? 갑들은 낙수효과를 반복해서 말하지만 실제로는 낙수효과를 차단하거나 지연하면서 갑의 위치를 확고히 지켜왔습니다. 경제학자들 또한 낙수효과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부자들은 감면된 세금만큼의 현금을 재투자하며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금을 확보하거나 자산에 투자했을 뿐이죠. 2016년 5대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370조 원으로 10년 만에 약 3배나 증가했습니다. 사내유보금이 많다는 것은 기업이 이익을 남긴 뒤 투자를 하지 않은 채 그저 '곳간'에 차곡차곡 채워놓는다는 의미입니다.

 

출처 - 《하청사회》

 

갑들은 '낙수효과'를 얘기하면서 을들의 불만을 억눌러왔습니다. 그러는 사이 경제의 선순환은커녕 빈부의 차가 날로 확대되고, 가난한 사람들이 갈수록 더 많은 빚을 떠안는 악순환이 이어졌죠. 위의 그림을 살펴보시죠. 맨 위 칸의 와인잔 3개의 크기가 각기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 사이에 화살표를 넣으면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도급을 주고받는 하청관계가 그려집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어갈수록 맨 위 칸의 와인 양이 줄어드는데, 이것이 전형적인 도급관계, 즉 외주 혹은 하청관계에 있는 갑과 을의 처지를 설명해줍니다. 와인의 양은 외주 단계를 거칠수록 줄어드는데, 줄어든 양으로 아래 잔을 채워야 하는 을로서는 인력 활용도를 극대화하거나 서로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죠.


화물 운송의 다단계 하청구조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화물운전기사들은 2003년, 2008년, 2012년에 파업한 이력이 있습니다. 거듭된 화물연대 파업의 근본 원인으로, 화주와 운송회사, 운송노동자로 연결되는 화물운송의 다단계 하청구조를 꼽습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화물운송노동자가 제대로 운임을 받지 못하고 피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출처 - 《하청사회》

 

위 표를 보시죠. 40ft(freight ton, 운임톤) 컨테이너로 부산―서울 구간을 왕복 운송하기 위해서는 우선 수출입업체(화주)가 대형 운송회사에 123만 원을 지급해야 합니다. 대형 운송회사는 이 가운데 27만 원가량을 가져가고, 운송 업무를 알선업체에 맡기게 되죠. 알선업체는 수수료 명목으로 운임의 약 10퍼센트인 10만 원가량을 챙기고, 이를 다시 영세 운송사나 소규모 알선업체에 넘깁니다. 이 과정에서 이들도 10퍼센트 정도에 해당하는 8만 원을 수수료를 챙깁니다. 결국 실제로 운반 업무를 맡는 화물 노동자가 받는 운임은 최종적으로 78만 원으로, 수입업체(화주)가 지불하는 돈의 63퍼센트에 불과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부당한 구조를 파타해야 하건만 이 시대의 을들은 성과주체로서 성공도 실패도 모두 자신의 선택이고 책임이라 믿으며 끊임없이 앞만 보고 내달리게 됩니다. 을들은 학교나 회사 같은 조직에서 성적이나 성과로 서열을 매기는 무한경쟁 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집단 전체가 그저 맹목적으로 앞으로만 내달리다가 절벽에 떨어져 죽고 마는 아프리카의 스프링폭스라는 산양들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을'이 옆에 있는 다른 '을들'을 마주 보고 함께 조직을 이루거나 연대한다면, 그래서 을들이 질주를 멈춘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때 하청사회는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려울 겁니다. 《하청사회》의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하청사회로 변모한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분절화되고 개인화된 관계를 어떻게 청산하고, 원청과 하청 사이의 책임 있는 관계와 연대의 끈을 어떻게 형성할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갑질사회와 하청사회를 살아가는 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최근 언론, 방송을 통해 보도되는 갑들의 행패를 더는 좌시하지 않고 을들의 단단한 연대를 통해 갑들이 만든 시스템의 부조리를 하나하나 바꿔나가야 합니다. 서두에서 인용했던 카뮈의 말을 다시 언급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이 어리석은 짓이다."

 

대한민국 소방공무원의 현실

 

지난 21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박남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시·도 소방본부와 소방학교 24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소방공무원 7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소방공무원 근무여건 개선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제시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근무하면서 한 번 이상 부상당한 사람은 124명으로 18퍼센트에 달했습니다. 그중에 '본인이 치료비를 부담했다'고 응답한 소방관이 약 80퍼센트(99명)에 달했습니다.

 

출처 - 한국일보

 

화재 현장의 최일선에서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지는 소방공무원들이 치료비를 본인 부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복잡한 신청 절차'가 27퍼센트로 가장 많았고, '공상처리 기준부재'가 26퍼센트로 뒤를 이었습니다. 그리고 '행정평가상 불이익'(17%), '부족한 보상'(10%) 등도 주요한 이유였습니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는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 작전에 필요한 안전장비까지 본인 부담으로 구매해서 쓰고 있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전쟁에 나가는 군인이 무기를 직접 사서 쓰는 것과 다름없는 현실인데요, 왜 소방관들이 안전장비를 직접 사서 써야 했을까요? 통계 자료를 보면 현장활동 중에 위험을 유발하는 장비 관련 요인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안전장비의 노후화입니다. 무려 45퍼센트가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다음으로 안전장비의 수량부족이 30퍼센트로 뒤를 이었습니다. 실제로 조사에 참여한 소방공무원 가운데 무려 37퍼센트가 자비로 안전장비를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고 하니 대한민국 소방공무원의 현실이 암담합니다.

 

 

최근 5년간 순직한 소방관보다 자살한 소방관이 더 많아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순직한 소방관이 33명, 자살한 소방관은 35명으로 자살한 소방관이 순직 소방관의 수보다 많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자살자 35건 중 과반이 넘는 19건(54%)이 우울증 등 신변비관으로 숨졌으며, 가정불화가 10건(29%) 등이었습니다. 이는 위험하고 불규칙한 근무환경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지난 9월 17일 경기방송 <유연채의 시사999>라는 프로그램에서 박남춘 의원이 이 문제를 잘 다뤘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 경기방송

 

소방관의 업무 특성상 위험 직군으로 분류돼 보험료 할증을 요구받거나 아예 보험가입을 거부당하는 사례도 빈번합니다. 시간외수당, 안전장구, 부상 치료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서 어떻게 일선에 있는 소방관들에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소방공무원을 위한 정책적 보험과 세밀한 공상처리 기준을 마련하는 작업이 시급합니다. 또한 우울증, 불면증, 스트레스로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는 소방공무원들을 위해 소방전문병원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치유센터 설립 등도 검토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국민안전처가 나서기 바랍니다.

 

 

한국전쟁 때 쓰던 수통 그대로 사용하는 한국 군의 현실

 

소방공무원의 현실도 기가 막히지만, 대한민국 군대의 현실을 보면 할 말을 잃게 됩니다. 군대 다녀오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한국전쟁 때 쓰던 수통과 베트남전쟁 때 쓰던 군장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러 온 젊은이에게 1~2년 전 것이 아닌 반세기 전 보급품을 지급하는 대한민국 군대의 현실, 과연 어떻게 봐야 할까요? 복잡한 심경을 말로 표현할 길이 없을 겁니다. 그런데 면전에서 "수통이 빵꾸나지 않고 사용만 제대로 할 수 있으면 50년이 됐든 100년이 됐든 무슨 상관이냐?"며 타박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이번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한기호 새누리당 의원이 한 발언인데요, 한 의원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에 육군 장성으로 예편한 국회의원입니다.

출처 - JTBC


한 의원의 발언이 심각한 문제인 이유는, 오래되고 비위생적인 수통을 사용하는 장병들을 위한 예산이 편성되어 노후 수통을 전량 교체할 수 있도록 했는데도 여전히 반세기 전의 헌 수통을 쓰는 현실을 지적하는 상황에서 변명처럼 나온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재는 게 편이라더니 비웃음을 사더라도 국방부 장관의 변명을 대신 해주고 싶었나 봅니다.


이미 예산이 편성되어 새 수통을 사기까지 했는데도 변하지 않은 군대의 현실을 보면 비리와 부정 외엔 달리 생각할 여지가 없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성인 남성이 태반인 우리나라에서 군대가 비리의 온상임은 공공연한 비밀이죠. 이번 국정감사 기간에 터진 사례만 해도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



상수도 보급률 50퍼센트에도 못 미쳐


세계 7대 군사강국. 다음 달 1일로 창군 67주년을 맞는 한국 군의 위상입니다. 세계 10대 무기 생산국이자 병력 규모 등 외형이나 신무기 투자 규모로 봐도 세계 10위 수준이라는 대한민국 군대. 하지만 그 기본이 되는 장병에 대한 처우는 바닥을 기고 있습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한국 군의 실태는 참으로 가관입니다. 반세기가 다 된 모포, 수통을 아직도 사용하고 육군과 해병대, 상수도 보급률은 5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하지요. 지하수나 우물을 쓰고 빗물을 받아 사용하는 곳이 수두룩하다는 얘깁니다. 화장실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재래식 화장실이 1400여 개에 달하며, 군납 식품에선 머리카락, 벌레, 쇳가루 등 불순물이 나오기 일쑵니다.

 

출처 - JTBC


대한민국에서 해킹 사건이 일어나기만 하면 항상 배후로 북한이 지목되는 데 반해 우리 군은 아날로그 방식투성이입니다. 예하 사단 상황장교들은 아직도 무선 통신 내용을 받아 적습니다. 천안함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함장이 휴대폰으로 보고했다는 사실을 잘 아실 겁니다. 군대 내부에서도 간부들은 급한 연락은 휴대폰으로 하기 일쑤입니다. 각종 통신장비가 낡았기 때문입니다. 소대장들이 대놓고 중대장에게 휴대폰으로 보고할 정도니 말 다했죠. 방송에서 <진짜사나이> 같은 프로그램으로 아무리 군대의 기강을 보여주고, 열심히 훈련하는 모습을 보여주어도 대한민국 군의 현실은 동물의 왕국 혹은 정글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병사의 주적은 간부, 병사-지휘관 간 차별 여전해


군 복무를 하신 분이라면 "사병의 주적은 북한이 아니라 간부"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사례만 봐도 사병과 지휘관 사이의 차별이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았습니다.


출처 – 계간 고대문화

 

장병들이 탑승하는 주력 전차와 장갑차에는 냉방장치가 없어 여름철 내부 최고 온도가 무려 56도까지 치솟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장교들이 타는 지휘관용 장갑차량에는 1000만 원짜리 냉방장치가 빠짐없이 장착되어 있었죠. K1A2 전차 성능 개선 사업에서 합참은 전차에 냉방장치를 장착하기로 최종적으로 결정했지만, 사업 추진 중 갑자기 백지화합니다. 비용 대비 효과와 전술적 운용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를 들먹이면서요. 그렇다면 지휘관용 전차의 냉방장치도 제거함이 마땅할 텐데, 지휘관용은 또 그렇지 않답니다.

 

출처 - 일요서울


장병들은 제대 후 예비군에 편성됩니다. 생업을 두고 길게는 3일간 다시 입소해 훈련을 받아야 하니 사회적으로 이만저만한 낭비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훈련을 빠져선 안 됩니다. 그것도 자비 부담으로 말입니다. 훈련소가 대부분 도심에서 동떨어진 곳에 있다 보니 오가는 교통비만 해도 만만치 않습니다. 예비군 훈련 참가비 평균 비용은 2만 2190원인데 반해 보상비는 겨우 1만 2000원입니다. 그러니까 예비군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1인당 1만 원을 자비 부담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뿐입니까? 자영업 등 생업 전선에서 뛰고 있는 사람이라면 예비군 훈련 기간은 고스란히 손실로 돌아옵니다. 이 때문에 미군은 예비군 훈련 시 계급별로 하루 최고 22만 원에 이르는 보상비를 지급하고 있으며 이스라엘도 10여만 원을 국가가 지급합니다. 대한민국은 국가가 책임을 다하지 않는 상태에서 국방의 의무만을 이토록 손쉽게 요구해도 되는 걸까요? 사회에선 '열정페이' 군대에선 '애국페이', 이를 당연시하는 현실. 이대로 두면 안 됩니다.

 

출처 - 아시아경제


대한민국 군의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만 하면 군은 항상 예산 타령을 합니다. 하지만 사실 군대, 돈 잘 법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육군 일선 부대들이 민간인들을 상대로 숙박, 요식업소 등을 운영하면서 일반 전투병들을 무보수 종업원으로 불법 파견해 100억 원대의 순익을 내고 이를 해당 부대 지휘관 업무추진비로 전용해온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부대 근처의 복지회관 등이 대표적이죠.

 

군 병원 역시 입원한 환자인 장병을 청소나 배식 등에 부려 먹습니다. 군대에서는 이렇게 아파도 손해를 봅니다. 더구나 군 복지회관 부근 소상공인들은 고스란히 피해를 봤습니다. 무보수로 일할 인력이 끊임없이 공급되는 군 복지회관을 상대로 소상공인이 어떻게 경쟁을 할 수 있겠습니까? 불의로 얻은 이익을 장병들에게 돌리기는커녕 높으신 분들끼리 나눠 먹으니 그야말로 '헬조선'의 축소판이랄 수밖에요.



군사기밀 유출, 영관 장교가 최다

 

상황이 이러한데 군사기밀 유출은 병사보다 장교들이 더 많이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최근 5년여간 현역 군인에 의한 군사기밀 유출 사건은 모두 44건 발생했는데, 이 중 영관 장교가 가장 많았습니다. 북한과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8월에는 '일베'를 하는 현역 장교가 군 전술망 화면을 유출해 파문이 일기도 했죠. 이 때문에 스카파로티 한미연합사령관이 직접 보안조사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출처 - KBS


이뿐입니까? 지난 11일 신병 훈련 중 느닷없이 폭발한 수류탄으로 교관인 김 중사가 숨지고, 손 훈련병과 박 중사가 중상을 입었습니다. 이 수류탄은 이미 1년 전 스무 살도 되지 않은 박 훈련병의 목숨을 앗아간 불량 수류탄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지난해 기능시험에서 치명적 결함 판정을 받은 수류탄을 계속 훈련에 사용하고 있었던 겁니다. 30발 중 6발이 손에 들고 있는 상태에서 터져버리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오폭률이 2퍼센트가 아니라 20퍼센트라니 러시안룰렛을 한다 해도 이것보단 살 확률이 높겠습니다. 문제의 수류탄은 현재 군에 25만 발이나 남아 있으나 군은 여전히 이를 내버려두고 있는 실정입니다.



'노동개악' 하지 말고 대한미국 군을 개혁하라

 

단 한 번의 국정감사로 온갖 비리로 점철된 군의 모습이 드러났지만, 대한민국 군은 뻔뻔하기 그지 없습니다. 인사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조남풍 재향군인회장은 비리로 채용한 임직원 25명을 취소하라는 보훈처의 명령을 어기고 임용을 강행했으며, 국정감사 출석을 앞두고 해외 출장을 떠나버렸습니다. 육군 대장으로 예편한 조 회장은 보훈처 감사 결과 과거 재향군인회에 790억 원의 손래를 입힌 핵심 인물입니다. 군에 있을 때처럼 자기가 아직도 왕인 줄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출처 - YTN


저희는 <박근혜 정부 방산비리 척결, 말뿐인 추악함>이라는 기사에서 방위산업과 연관된 숱한 비리 의혹의 실태를 다뤘습니다. 또한 부패 척결의 의지가 없는 박근혜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천안함 사건 5주기에 돌아보는 국가 안보>라는 기사를 통해서는 군사력 증강에 투입되는 막대한 예산이 정말로 우리의 안보를 책임질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이때 납품비리로 통영함에 어군탐지기보다 못한 장비가 달려 있었다는 사실을 말씀드린 바 있는데요, 장비 납품비리 혐의로 기소된 전직 해군 간부들에 대해 검찰이 징역 3년 6월에서 징역 12년 등 중형을 구형했다는 보도가 오늘 나왔습니다.

 

군납 비리를 처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행방이 묘연한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때문에 세월호 사고의 진상조차 규명하지 못하는 정권이 과연 방산비리를 제대로 밝힐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에 방산비리 척결을 강조한 이후 합수단은 검사 18명과 군검찰관 9명을 포함해 총 117명의 규모로 운영됐습니다. 군 창설 이후 최대의 방산비리 수사 규모를 자랑했는데요, 방산비리에 연루된 국방 관련 사업 규모가 총 9809억으로 드러난 것으로 보도된 바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에 쏟아부은 혈세가 24조 원에 달합니다. 자원외교로 날린 돈이 40조 원이 넘습니다. 이와 비교하면 합수단의 조사 결과 방산비리로 날린 혈세는 1조 원도 채 안 되니 대한민국 군이 그간 참 깨끗하게(?) 운영되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방산비리 수사가 변죽을 울리는 제대로 된 조사가 아니었다고 보는 편이 맞지 않겠습니까?

 

얼마 전 목함지뢰 두세 발이 남북 간 전쟁 위기 상황을 야기한 상황을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대한민국 군의 설명을 그대로 따른다면 막대한 국방예산을 쏟아부어도 GP 내 북한군의 동향을 파악하기 어렵고, 목함지뢰를 매설하러 내려오는 북한군에 대해 적절한 대응조차 못하는 꼴입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결국 목함지뢰 사건은 대한민국의 국익에 필요한 것은 엄청난 화력을 자랑하는 무기가 아니라 평화를 지향하는 의지라는 사실을 천명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생각비행은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반대 23] 우리 세금을 무기 대신 복지에>라는 기사에서 "평화는 안보/평화 같은 이분법적 도식으로 풀 문제가 아닙니다. 평화와 안보는 상호보완적이고 병행적인 관계입니다. 우리 사회 도처에서 평화를 증진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발점은 군축입니다. 모두가 바라는 평화를 어떻게 이뤄나갈지 앞으로 시민사회와 한국사회가 답을 낼 차례입니다"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앞서 다룬 소방공무원과 대한민국 군의 현실을 통해 국민의 '안전'과 '안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우리의 세금을 어디에 써야 할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남북 화해 분위기 가운데 통일을 지향하는 지도자를 뽑고,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국방예산을 국민의 복지와 안전을 증진하는 비용으로 환원한다면 우리의 삶은 현저히 나아질 수 있습니다. '노동개악'을 하지 않아도 관련된 일자리가 늘어나는 건 당연지사입니다. 후대에게 과연 어떤 세상을 물려주어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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