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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하청사회, 갑과 을은 어떻게 재생산되는가?

by 생각비행 2017. 6. 28.

갑질사회, 대한민국

 

지난 6월 25일은 한국전쟁 67주년이었습니다. 이 땅의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과 이름 없던 작은 나라를 위해 참전하여 희생한 세계 각국의 영령들을 기리는 날이죠. 한데 그 누구보다도 이분들의 뜻을 기리고 실천해야 할 대한민국 군의 현실은 자랑스럽지 못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한국전쟁 기념일 다음 날인 지난 26일 이한열 기념관에서 군인권센터가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경남 지역 39사단장인 문 소장이 공관병, 운전병 등 병사들을 대상으로 갑질을 일삼은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문 소장의 갑질은 가관이었습니다. 지난 3월 술을 마신 뒤 심야에 공관으로 간부들을 데리고 들어와 공관병에게 술상을 차리라고 지시하고는 공관병의 뺨과 목 부위를 때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취침 중인 병사를 깨워 술상을 차리게 한 것도 심각한 문제이고 비상사태를 대비해야 할 군의 지휘권자가 새벽에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만취한 상태로 병사에게 폭력을 행사했으니 징계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제 식구 감싸기에 바쁜 육사 마피아들은 문 소장이 병사의 뺨에 손을 대긴 했지만 때린 것은 아니라는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며 수사는커녕 징계위원회에 회부조차 하지 않았죠. 


문 소장의 갑질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운전병을 개인 기사처럼 써서 임무와 상관없는 민간인을 만나러 갈 때도 수시로 불러냈습니다. 또한 그는 새벽에 공관 보일러 담당 장병을 불러 보일러 작동 확인을 시키더니 추운 이유가 뭐냐고 따졌습니다. 온도를 올렸으나 원인 파악을 제대로 못 한 장병에게 폭언을 쏟아낸 문 소장은 다음 날 아침에 보일러 담당 장병에게 해안 경계를 보내버리면 정신 차리겠느냐는 위협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 밖에 문 소장은 자신의 대학원 과제를 대신 하라는 지시를 내린다거나 담배를 피울 때 당번병에게 곁에서 재떨이를 들고 있으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이 뿐이 아닙니다. 짜장면 배달을 시켰는데 철가방에 넣어서 가져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기를 공사판 노가다 취급했다며 부하에게 욕설을 퍼부은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애초 저따위 인성으로 어떻게 별을 달았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하지만 이런 심각한 인성의 소유자에 대해 육군본부는 구두경고를 했을 뿐 사실상 아무런 징계를 하지 않아 문제가 심각합니다.


문 소장의 행동을 보면 장군에게 과연 공관병과 당번병, 운전병이 꼭 필요한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직급에 따라 당연히 있는 국가공인 사노비 취급을 받기 때문입니다. 업무상 필요하다면 월급도 많이 받는 장성급이 스스로 필요한 만큼 고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현재의 당번병, 공관병 제도는 아예 없애거나 큰 틀을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아울러 육사끼리 제 식구 허물을 덮어주는 군 내부의 적폐 청산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참고로 미군은 본인 돈으로 고용하는 형태라고 합니다. 왜 국방의 의무를 지는 청년들을 사노비처럼 부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출처 - JTBC


대한민국 남성 중 군대를 갔다 오신 분들 가운데 황당한 사례를 경험하지 않은 분은 거의 없을 겁니다. 징병제를 채택해 국방의 의무를 져야 하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사정상 군대는 애증의 대상입니다. 특히 사회 경험이 적은 젊은이들에게 집단적으로 가해지는 부조리와 갑질의 향연은 이상한 군대 문화를 내재화하여 말도 안 되는 시스템에 젖어 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군대는 원래 다 그래." "군대 더러운 게 어제오늘 일이야?"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 일이 아니라 이번에야말로 군대 내부에 잠재한 부조리의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알베르 카뮈도 말한 바 있습니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이 어리석은 짓이다"라고 말입니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가맹점에 하는 갑질, 교수가 조교에게 하는 갑질, 회사 상사가 부하에게 하는 갑질, 아파트 단지에서 택배 기사들에게 벌이는 갑질 등등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갑질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보도됩니다. 최근 서울 중랑구의 한 아파트 단지 우편함에서 '경비실 에어컨 설치를 반대합니다'라는 내용의 전단 수십 장이 발견되고 벽보가 붙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가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방침을 세우자 이에 반대하는 이들이 행동에 나선 겁니다.

 

출처 - 울산매일

 

그런데 경비실 에어컨 반대 추진자들의 전단과 벽보 내용에 대해 "말 같지도 않은 이유들로 인간임을 포기하지 말라"며 에어컨 설치를 찬성하는 의견을 개진하는 글을 붙인 주민도 있었습니다. "단 한번이라도 여러분께서 쓴 글이 경비아저씨들께 그리고 글을 읽는 주민들에게 어떤 상처를 줄지 생각해 보셨느냐"면서 "경비 아저씨들도 누군가의 남편이고 누군가의 아버지"이며 "그늘 하나 없는 주차장 한 가운데 덩그러니 있는 경비실에 지금까지 에어컨 한대 없었다는 것이 더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주민은 "공기 오염이 걱정되신다면 댁에서 하루 종일 켜두시는 선풍기 끄시고, 수명 단축이 걱정되신다면 운동을 하시고, 지구가 뜨거워지는 것이 걱정이라면 분리수거 잘 지켜달라"고 충고했습니다.

 

출처 - 세계일보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이 대기업의 '갑질' 규제를 위해 행동에 나섰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위아, 그리고 피자업계 선두권인 미스터피자가 그 대상입니다. 현대위아는 2013년부터 3년 동안 최저가 낙찰을 받은 하도급업체에 24차례에 걸쳐 납품 단가를 일방적으로 깎은 혐의가 드러났습니다. 이런 갑질로 현대위아는 연 매출 7조 원대에 달하는 회사로 성장했는데요,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위아를 검찰에 고발하고, 3억 60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습니다.

 

한편 박근혜 정부에 의해 좌천됐다가 문재인 정부에 의해 부활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첫 수사 대상으로 미스터피자를 지목했습니다. 미스터피자는 정우현 회장의 친인척이 관여한 업체를 중간에 끼워 넣어 프랜차이즈 가맹점에 비싼 값으로 치즈를 강매한 의혹을 받고 있죠. 지난 지난 21일 미스터피자 본사를 압수수색한 검찰은 회장 자서전 강매, 비자금 조성, 본사 책임의 광고비를 가맹점에 떠넘긴 의혹 등 다각적인 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정우현 회장은 지난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방배동 사옥에서 기자 회견을 열어 사과한 뒤 회장직을 사퇴했습니다.

 

출처 - 시사포커스

 

패션잡화 브랜드 CM을 운영하는 성주디앤디의 김성주 공동 대표이사 또한 올해 초 하도급업체들의 납품 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당해 갑질 논란이 일자 최근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았죠. 그리고 20대 여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은 최호식 호식이두마리치킨 회장 또한 직을 내려놓았습니다. 6월 들어 3명의 오너가 추문 및 갑질 논란으로 줄줄이 물러난 셈이 되었습니다. 

 

 

하청사회, 대한민국

 

우리 사회에서 갑이 사회적 부를 움켜쥐게 된 까닭은 을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을 쥐어짜 가로챘기 때문입니다. 갑질이 가능한 이유는 '하청'이라는 특수한 계약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원래 하청(subcontract)이란 일의 일부 혹은 전부를 위탁받는 상호계약이며, ‘갑’과 ‘을’도 계약거래 당사자 양쪽을 일컫는 명칭일 뿐입니다. 그러나 양자가 평등하거나 대등하지 않기에, 대개 계약은 일거리를 주는 원청인 갑에게 유리한 반면 일거리를 받는 하청인 을에게는 불리합니다. 이 때문에 흔히 갑은 우위에 있는 자로, 을은 지위가 낮은 자로 인식되죠. 생각비행이 최근 출간한 책, 《하청사회》의 내용 일부를 소개하면서 문제점을 고민해보겠습니다.


계약 조건상 유리한 위치에 있는 갑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을에게 부당행위를 합니다. 원청과 하청 사이에 널리 알려진 부당행위 또는 '불공정 하도급거래'에는 "납품단가 후려치기, 기술 탈취, 구두발주, 하도급대금 부당감액 등"이 있습니다. '갑질'은 단지 갑이 '우위에 서는 것'만이 아니라 하위에 있는 을을 '밟고 서는 것'을 포함합니다. 갑은 갑질을 통해 스스로의 우월한 지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궁극적으로 더 많은 지대 또는 이익을 추구하게 됩니다.

출처 - 《하청사회》


하청사회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갑은 계속해서 갑의 위치를, 을은 계속해서 을의 위치를 유지해야 하죠. 달리 말하면, 갑과 을의 불평등한 관계가 지속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하청사회는 존속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갑은 어떻게 해야 계속해서 갑이 될 수 있을까요? 갑의 지위를 견고하게 지키거나 더욱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갑과 을 사이의 불평등이 점차 줄어든다면 갑으로서의 특권과 특혜도 점차 약화되겠죠. 따라서 갑은 불평등을 심화시키되 그에 따르는 을들의 불만을 무마해야 합니다. '낙수효과 이론'은 그 핵심 전략이었습니다. 

 

위 그림이 표현하고 있듯이 낙수효과란 고소득층의 소득 증대가 소비 및 투자 확대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저소득층의 소득도 증가하는 효과를 가리킵니다. 낙수효과 이론의 지지자들은 고소득층이나 대기업의 수중에 먼저 돈을 채우면 중력의 법칙에 따라 가난한 사람에게도 그 혜택이 흘러내려 온다고 설명해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그림처럼 '부자 감세'는 부유층의 지출 증가와 투자 증가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을에게 돌아갈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예언합니다.

출처 - 《하청사회》

 

과연 낙수효과로 빠른 경제성장의 선순환을 이루게 될까요? 갑들은 낙수효과를 반복해서 말하지만 실제로는 낙수효과를 차단하거나 지연하면서 갑의 위치를 확고히 지켜왔습니다. 경제학자들 또한 낙수효과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부자들은 감면된 세금만큼의 현금을 재투자하며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금을 확보하거나 자산에 투자했을 뿐이죠. 2016년 5대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370조 원으로 10년 만에 약 3배나 증가했습니다. 사내유보금이 많다는 것은 기업이 이익을 남긴 뒤 투자를 하지 않은 채 그저 '곳간'에 차곡차곡 채워놓는다는 의미입니다.

 

출처 - 《하청사회》

 

갑들은 '낙수효과'를 얘기하면서 을들의 불만을 억눌러왔습니다. 그러는 사이 경제의 선순환은커녕 빈부의 차가 날로 확대되고, 가난한 사람들이 갈수록 더 많은 빚을 떠안는 악순환이 이어졌죠. 위의 그림을 살펴보시죠. 맨 위 칸의 와인잔 3개의 크기가 각기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 사이에 화살표를 넣으면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도급을 주고받는 하청관계가 그려집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어갈수록 맨 위 칸의 와인 양이 줄어드는데, 이것이 전형적인 도급관계, 즉 외주 혹은 하청관계에 있는 갑과 을의 처지를 설명해줍니다. 와인의 양은 외주 단계를 거칠수록 줄어드는데, 줄어든 양으로 아래 잔을 채워야 하는 을로서는 인력 활용도를 극대화하거나 서로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죠.


화물 운송의 다단계 하청구조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화물운전기사들은 2003년, 2008년, 2012년에 파업한 이력이 있습니다. 거듭된 화물연대 파업의 근본 원인으로, 화주와 운송회사, 운송노동자로 연결되는 화물운송의 다단계 하청구조를 꼽습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화물운송노동자가 제대로 운임을 받지 못하고 피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출처 - 《하청사회》

 

위 표를 보시죠. 40ft(freight ton, 운임톤) 컨테이너로 부산―서울 구간을 왕복 운송하기 위해서는 우선 수출입업체(화주)가 대형 운송회사에 123만 원을 지급해야 합니다. 대형 운송회사는 이 가운데 27만 원가량을 가져가고, 운송 업무를 알선업체에 맡기게 되죠. 알선업체는 수수료 명목으로 운임의 약 10퍼센트인 10만 원가량을 챙기고, 이를 다시 영세 운송사나 소규모 알선업체에 넘깁니다. 이 과정에서 이들도 10퍼센트 정도에 해당하는 8만 원을 수수료를 챙깁니다. 결국 실제로 운반 업무를 맡는 화물 노동자가 받는 운임은 최종적으로 78만 원으로, 수입업체(화주)가 지불하는 돈의 63퍼센트에 불과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부당한 구조를 파타해야 하건만 이 시대의 을들은 성과주체로서 성공도 실패도 모두 자신의 선택이고 책임이라 믿으며 끊임없이 앞만 보고 내달리게 됩니다. 을들은 학교나 회사 같은 조직에서 성적이나 성과로 서열을 매기는 무한경쟁 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집단 전체가 그저 맹목적으로 앞으로만 내달리다가 절벽에 떨어져 죽고 마는 아프리카의 스프링폭스라는 산양들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을'이 옆에 있는 다른 '을들'을 마주 보고 함께 조직을 이루거나 연대한다면, 그래서 을들이 질주를 멈춘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때 하청사회는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려울 겁니다. 《하청사회》의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하청사회로 변모한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분절화되고 개인화된 관계를 어떻게 청산하고, 원청과 하청 사이의 책임 있는 관계와 연대의 끈을 어떻게 형성할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갑질사회와 하청사회를 살아가는 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최근 언론, 방송을 통해 보도되는 갑들의 행패를 더는 좌시하지 않고 을들의 단단한 연대를 통해 갑들이 만든 시스템의 부조리를 하나하나 바꿔나가야 합니다. 서두에서 인용했던 카뮈의 말을 다시 언급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이 어리석은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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