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비행은 최근 두 차례에 걸쳐 군 의문사 문제를 들여다보았습니다. 고 김훈 중위 사건에 고 허원근 일병 사건까지 군 의문사 문제가 군사독재 시절에나 있었던 일로 치부해서는 곤란합니다. 지난 9월 26일 강원도 철원에서 진지 공사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던 중 머리에 총상을 입고 사망한 6사단 이 모 상병의 사례도 있으니까요.


출처 - KBS


사고 초기에 국방부는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고 어딘가 딱딱한 물체에 맞고 튕겨 나온 총알인 도비탄에 의한 사망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유족들은 도비탄이란 국방부 발표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사망한 이 상병 몸에 있는 총탄 엑스레이를 봐도 탄두가 모양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비탄일 경우 탄두가 찌그러져 있어야 하고 총상 역시 더 커야 할 텐데 이 상병의 머리에 난 상처는 총알을 그대로 맞았을 때 나타나는 동그란 상처였습니다.


출처 - 헤럴드경제


사태가 커지자 그제야 부랴부랴 특별수사팀을 구성한 국방부는 재조사를 통해 당시 사격장에서 직선거리로 날아온 유탄에 의해 사망했다고 정정합니다. 진지 공사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던 이 상병 일행의 귀로는 사격장 뒤쪽이라 사격 시에는 출입을 통제해야 하는데 사격장 쪽도, 이 상병 쪽도 통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아 젊은이 한 명이 목숨을 잃은 셈입니다. 국방부가 사실을 인정하자 이 상병의 부모는 당시 사격장에 있는 누구의 총알이었는지는 밝히지 않기로 했습니다. 다른 장병이 죄책감에 휩싸여 사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우리 군에서 총기 사고에 의한 장병들의 죽음은 계속 발생하는 일입니다. 철원에서 유탄에 이 상병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경기도 화성에서는 군부대 사격장에서 발사된 것으로 보이는 기관총탄이 인근 플라스틱 제조공장으로 날아드는 아찔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지난 9월 29일 일어난 일이었으나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습니다. 바로 며칠 전에 군 사격장 안전관리에 구멍이 뚫려 사고가 일어났는데도, 군이 이를 제대로 시정하지 않아 또다시 사고가 일어난 사례입니다. 이런 체계 속에서는 군대에서 언제든 의문사가 양산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명박근혜 정권처럼 군 개혁 의지가 없는 정부였더라면 국방부는 버티기에 나서 이 상병의 사례도 의문사로 처리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죠.


출처 - 연합뉴스


군이 자정 능력을 잃었다는 점은 이른바 '공관병 갑질 사건'으로 유명했던 박찬주 대장이 군 검찰의 조사 끝에 결국 무혐의 처분이 내려진 것만 봐도 분명합니다. 수많은 공관병이 위험을 무릅쓰고 제보를 하고 수많은 증거와 증언이 나왔지만 팔이 안으로 굽은 군 검찰은 무혐의 처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갑질을 한 건 맞지만 직권남용을 한 건 아니라는 해괴한 이유입니다. 이는 군 의문사 사건 유족의 주장대로 군 내부의 조직이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보다는 덮어서 은폐하려는 습성을 보인다는 추태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출처 - 뉴스1

 

지난 2일 군인권센터는 갑질 무혐의 처분이 내려진 데 대해 여론이 좋지 않자 군 검찰이 센터로 전화를 걸어 사건 재수사에 착수했음을 알려왔다고 발표했습니다. 또한 군인권센터는 박찬주 대장 수사를 담당한 송광석 국방부 검찰단장을 국방부 장관에게 징계 의뢰할 것이라고도 밝혔습니다. 사실 군의 제 식구 감싸기 행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출처 - 경향신문

 

지난달 30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박 대장이 구속된 뒤 8번 가진 면회 중 4번이 갑질 혐의 공범 관계에 있는 부인 전 모 씨였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현행법은 가족이라 하더라도 공범 간 면회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모의해서 입을 맞추거나 증거를 없앨 우려가 있으니까요. 형집행법 41조와 군 수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군형집행법 42조가 바로 이런 경우 면회를 금하고 있는 조항입니다. 이 때문에 박주민 의원은 "갑질 사건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박 대장과 공범 혐의를 받고 있는 부인 간의 면회를 허용한 것은 군 당국이 증거인멸을 도운 꼴"이라고 지적했죠.

 

출처 - JTBC

 

이와 같이 군의 적폐는 군 의문사 같은 문제만이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군 사이버사령부 여론조작 활동에 관여한 혐의를 받은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 11일 새벽 구속되었죠. 검찰은 사이버사령관 등에게 여권을 지지하고 야권을 비난하는 정치관여 활동을 지시한 혐의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바 있습니다. 또한 사이버사령부가 댓글 공작에 투입할 군무원을 추가 채용할 당시 특정 지역 출신을 배제하도록 하는 등의 직권 남용 혐의도 적용했습니다. 김 전 장관은 계속 의혹을 부인해왔으나 법원이 주요 혐의인 정치관여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입니다. 

 

출처 - JTBC

 

JTBC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이 사이버사 인력을 늘리라고 지시한 문건은 비단 2012년에만 발견되는 게 아닙니다. 2010년 12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그리고 2012년 그리고 3월 이때 국방부 사이버사령부 문건에서 'BH' 또 'VIP' 같은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 때문에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이 사이버사령부 인력구성 그리고 또 댓글활동 내역을 지속적으로 보고받았다,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김 전 장관이 검찰 조사에서 댓글부대 운영에 대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시 등의 혐의를 일부 인정했기 때문에 향후 청와대 관계자들에 대한 소환조사를 통해서 김 전 장관이 직접 대면보고를 했는지 혹은 청와대 관련 수석실을 통해서 간접 보고를 받았는지 이런 부분들이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서 밝혀질 것으로 보입니다. 대한민국의 안위를 책임져야 할 군이 특정 세력을 위해 정치활동을 펼쳤고, 이러한 일을 국방부 장관이란 사람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까지 했으니 얼마나 심각한 일입니까? 군 적폐의 끝이 과연 어디일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출처 - 이재명SNS-일요신문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군 사이버사 여론 공작 개입 혐의 등으로 구속되자 청와대 온라인 청원 등으로 출국금지 여론이 일기도 했으나 출국금지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12일부터 15일까지 마이 빈트 모하메드 알 칼리파 바레인 문화 장관의 초청 강연을 위해 두바이로 출국하는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은 정치보복"이라며 "과거에 집중하면 미래 대비 못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최근 불거지는 자신을 향한 검찰 수사 향방에 대해 불쾌함을 드러낸 것이죠.  

 

이에 대해 이재명 성남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당신이 갈 곳은 바레인이 아니라 박근혜 옆"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아울러 “도둑퇴치가 도둑에겐 보복으로 보일 수 있지만 선량한 이웃에겐 상식의 회복일 뿐"이라며 "권력이 있었다는 이유로, 권력을 이용한 범죄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던 구시대는 이제 박근혜와 당신으로 마감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행여나 해외에 눌러앉지 마시고 다녀오신 후 검찰 수사 잘 받으십시오"라고 글을 마무리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명박근혜 정권 동안 군의 부패가 심각합니다. 연이어 터져 나오는 각종 문제 때문에 군 검찰을 해체하고 민간 검찰이 그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여론도 거셉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군 의문사 의혹은 여전하다"면서 "군의 태도를 보면 고루한 뭔가를 지켜야 한다는 데 집착하며 늘 방어적으로 대응한다. 주요 사건에 대해 군 발표를 믿지 못하고 불신이 계속되는 상황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라고 주문한 바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초기에 밝힌 의지대로 군에 대한 대대적인 혁신과 개혁에 나서 주길 바랍니다. 군의 적폐청산은 군 자체적으로 해낼 수 없다는 증거가 차고도 넘치니 말입니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 구속에 이어 MB 단죄가 대한민국군의 적폐를 청산하는 시발점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난 5일 오전 11시 30분 미국 텍사스주 서덜랜드 스프링스에 있는 제1침례교회에서 교인들이 예배를 드리던 중 방탄조끼를 입은 한 사내가 나타나 AR-15 소총을 난사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26명의 신자가 숨지고 20명 이상이 다쳤습니다. 언론은 마을 공동체의 중심지였던 교회가 주민 360여 명 가운데 7퍼센트가 숨지는 텍사스주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현장으로 변모했다고 전했습니다. 지난 10월 초 추석 연휴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테러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이런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돌아가신 분들과 유족들에게 어떻게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19년 전에 일어난 총기 관련 의문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촛불의 힘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집단 중 하나인 군에도 변화의 움직임을 일으키고 있죠. 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군 인권 문제에 관심을 두고 군 의문사를 진지하게 대하고 있습니다. 새정부의 국정과제로 국방개혁을 표방하고 장병들의 인권보호를 강화해나가기로 함에 따라 국가인권위원회 안에 '군인권보호관'을 신설하고 군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런 움직임의 일환이었는지 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지난 5월 26일 군 의문사 장병들 어머니들의 사연을 다룬 연극 〈이등병의 엄마〉를 관람했습니다. 역대 영부인과는 다는 행보를 보인 것이죠. 김정숙 여사가 관람한 연극은 선임병의 상습 구타와 가혹 행위로 사망한 한 병사의 죽음을 군이 자살로 은폐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내 머리에 총을 대서 실험해주기 바란다. 나는 내 몸을 내 자식한테 바친다!"

 

출처 - SBS

 

19년 전 김훈 중위의 의문사를 규명하라며 어머니는 절규했습니다. 그간 정권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군은 김훈 중위의 죽음을 계속 자살로 규정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 변화의 움직임이 있었죠.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후보자 신분이던 6월 26일 군 의문사 유가족과 면담한 이후 7월 20일 국방컨벤션에서 '군 의문사 관련 유가족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송 장관은 이 자리에서 군 의문사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한편 명확한 진상규명을 통해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회복과 인권증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습니다.

 

김훈 중위 유족은 7월 25일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게 김훈 중위 사망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서를 보냈습니다. 김훈 중위 어머니의 절규가 울려 퍼진 지 19년 만인 지난 8월의 마지막 날. 국방부는 김훈 중위의 순직을 인정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군 의문사 중 대표적 사례로 알려진 김훈 중위의 순직이 인정됨에 따라 다른 군 의문사 문제에도 서광이 비칠까 기대가 모이고 있습니다.


 

출처 - 중앙일보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은 1998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 경비중대 소대장이었던 고 김훈 중위가 GP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숨진 채 발견된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군 수사당국은 사건을 자살로 결론 내리고 서둘러 덮으려 했지만 타살 의혹이 끊이지 않았죠. 자살할 동기가 없었을 뿐 아니라 사건 현장에 남은 정황 증거들이 자살이라 하기엔 앞뒤가 맞지 않는 것투성이였기 때문입니다. 김훈 중위 사건이 자살이나 사고가 아닌 군 의문사가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건 현장에는 김훈 중위의 손목시계와 현장의 지뢰 박스 등이 부서져 있어 김훈 중위가 사망 직전 누군가와 격투를 벌인 것이 아니냐는 의심도 있었습니다. 또한 김훈 중위의 왼손에서 화약흔이 발견된 점도 타살 의혹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2012년 국민권익위원회는 국방부와 다시 검증에 나섰는데, 김훈 중위의 사망 당시 사격 자세로 권총 발사 실험을 해본 결과 12명 중 11명이 오른손에서 화약흔이 나왔죠. 일각에서는 김훈 중위 소속 부대 일부 장병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군 GP를 오가는 불법적인 교류행위를 저질러 이를 뿌리 뽑으려다 살해됐을 수도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다음 영화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 같다고요? 네, 맞습니다.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인 박찬욱의 출세작인 〈공동경비구역 JSA〉의 모티프가 된 의혹이기에 그렇습니다. 2004년에는 김희철 감독의 다큐멘터리 〈진실의 문〉으로 또다시 군 의문사의 대표적 사례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김훈 중위의 죽음을 명확한 근거도 없이 자살로 만드는 과정에서 나타난 국가 권력의 인권유린과 이에 동조하는 비양심적 지식인, 언론, 사법부를 고발함과 아울러 사건의 당사자이면서도 끝까지 침묵한 주한 미군의 존재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현실은 픽션을 뛰어넘는다고 했던가요. 숨진 김훈 중위의 아버지는 예비역 중장이었습니다. 평생을 군에 몸 바쳐 복무하고 대를 이어 군인이 된 자랑스러운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죽었는데, 왜 죽었는지 알 수도 없고 초동수사는 엉망진창이며 그저 사건을 덮어버리려고만 하는 군을 보며 아버지인 김척 씨는 정말 억장이 무너졌을 겁니다. 그 이후 20년 동안 사건의 진상규명과 아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자신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군을 상대로 길고 긴 싸움을 해야만 했습니다.


김훈 중위와 같은 육사 출신 동기들의 정신적 충격도 컸습니다. 김훈 중위의 의문사가 국방부에 의해 자살로 결정지어지자 육사52기 장교 33명이 5년 차 전역을 선택하고 군을 나와버렸습니다. 육사 출신 장교 중 5년 차 전역을 택하는 사람은 평균 10명이 채 안 된다고 하는데, 동기의 죽음에 대한 군의 처사에 얼마나 진절머리가 났으면 집단 전역을 택했나 싶습니다. 군의 엉터리 수사로 생겨난 의문사는 한 가족을 끝없는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고, 앞날이 창창한 33명의 장료가 집단 전역하는 사태를 초래함으로써 스스로의 전력까지 낮추는 결과를 낳은 셈입니다.


김척 씨는 1999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대법원은 2006년 군 당국에 부실한 초동 수사의 책임이 있다며 유가족에게 정신적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군 당국이 현장 조사와 보존을 소홀히하고 주요 증거를 확보하지 않았으며 소대원들의 알리바이 조사도 형식적으로 했다고 지적하면서 책임을 물었습니다. 이 판결을 한 주심 재판관이 바로 김영란법의 김영란 전 대법관이기도 합니다. 이 판결을 토대로 2012년 국민권익위원회가 국방부와 위의 권총 실험을 하고 김훈 중위의 순직 처리를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국방부는 계속 시간을 끌다가 5년이 지난 2017년 8월에 이르러서야 순직 처리를 해주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20여 년간 고통을 감내하며 아들의 명예회복에 매달린 김척 씨는 이 결정을 듣고 "군 당국이 아들의 순직을 인정하지 않아 오랜 세월 고통을 겪었다"면서 "잘못이 있다면 그것을 인정하는 게 국민의 군대"라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그는 군 사건 수사에 민간 전문가를 포함한 제3의 기관이 참가할 수 있도록 하여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군 의문사도 세상에 알리고 공론화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겠죠. 예비역 장성의 아들에 대한 처우가 이럴진대 장삼이사의 아들들의 억울한 죽음은 오죽했겠나 싶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TV


갈 곳을 잃고 경기도 벽제의 육군 부대 컨테이너에 보관되어 있던 김훈 중위의 유골함은 20여 년 만에 제자리인 국립묘지로 돌아갔습니다. 고(故) 김훈 중위 안장식이 지난 10월 28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렸습니다. 이날 안장식에서 어머니 신선범 여사는 고 김훈 중위를 떠나보내며 영정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출처 - 뉴스1

 

수많은 군 의문사를 생각하면 이제 겨우 하나의 사례가 풀렸을 뿐입니다. 군 의문사는 군 자체의 개혁이 없이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더 많은 국민의 관심이 절실합니다. 뒤늦게 생각비행이 김훈 중위 순직 인정 소식을 다시 공유하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갑질사회, 대한민국

 

지난 6월 25일은 한국전쟁 67주년이었습니다. 이 땅의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과 이름 없던 작은 나라를 위해 참전하여 희생한 세계 각국의 영령들을 기리는 날이죠. 한데 그 누구보다도 이분들의 뜻을 기리고 실천해야 할 대한민국 군의 현실은 자랑스럽지 못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한국전쟁 기념일 다음 날인 지난 26일 이한열 기념관에서 군인권센터가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경남 지역 39사단장인 문 소장이 공관병, 운전병 등 병사들을 대상으로 갑질을 일삼은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문 소장의 갑질은 가관이었습니다. 지난 3월 술을 마신 뒤 심야에 공관으로 간부들을 데리고 들어와 공관병에게 술상을 차리라고 지시하고는 공관병의 뺨과 목 부위를 때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취침 중인 병사를 깨워 술상을 차리게 한 것도 심각한 문제이고 비상사태를 대비해야 할 군의 지휘권자가 새벽에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만취한 상태로 병사에게 폭력을 행사했으니 징계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제 식구 감싸기에 바쁜 육사 마피아들은 문 소장이 병사의 뺨에 손을 대긴 했지만 때린 것은 아니라는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며 수사는커녕 징계위원회에 회부조차 하지 않았죠. 


문 소장의 갑질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운전병을 개인 기사처럼 써서 임무와 상관없는 민간인을 만나러 갈 때도 수시로 불러냈습니다. 또한 그는 새벽에 공관 보일러 담당 장병을 불러 보일러 작동 확인을 시키더니 추운 이유가 뭐냐고 따졌습니다. 온도를 올렸으나 원인 파악을 제대로 못 한 장병에게 폭언을 쏟아낸 문 소장은 다음 날 아침에 보일러 담당 장병에게 해안 경계를 보내버리면 정신 차리겠느냐는 위협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 밖에 문 소장은 자신의 대학원 과제를 대신 하라는 지시를 내린다거나 담배를 피울 때 당번병에게 곁에서 재떨이를 들고 있으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이 뿐이 아닙니다. 짜장면 배달을 시켰는데 철가방에 넣어서 가져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기를 공사판 노가다 취급했다며 부하에게 욕설을 퍼부은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애초 저따위 인성으로 어떻게 별을 달았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하지만 이런 심각한 인성의 소유자에 대해 육군본부는 구두경고를 했을 뿐 사실상 아무런 징계를 하지 않아 문제가 심각합니다.


문 소장의 행동을 보면 장군에게 과연 공관병과 당번병, 운전병이 꼭 필요한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직급에 따라 당연히 있는 국가공인 사노비 취급을 받기 때문입니다. 업무상 필요하다면 월급도 많이 받는 장성급이 스스로 필요한 만큼 고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현재의 당번병, 공관병 제도는 아예 없애거나 큰 틀을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아울러 육사끼리 제 식구 허물을 덮어주는 군 내부의 적폐 청산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참고로 미군은 본인 돈으로 고용하는 형태라고 합니다. 왜 국방의 의무를 지는 청년들을 사노비처럼 부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출처 - JTBC


대한민국 남성 중 군대를 갔다 오신 분들 가운데 황당한 사례를 경험하지 않은 분은 거의 없을 겁니다. 징병제를 채택해 국방의 의무를 져야 하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사정상 군대는 애증의 대상입니다. 특히 사회 경험이 적은 젊은이들에게 집단적으로 가해지는 부조리와 갑질의 향연은 이상한 군대 문화를 내재화하여 말도 안 되는 시스템에 젖어 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군대는 원래 다 그래." "군대 더러운 게 어제오늘 일이야?"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 일이 아니라 이번에야말로 군대 내부에 잠재한 부조리의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알베르 카뮈도 말한 바 있습니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이 어리석은 짓이다"라고 말입니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가맹점에 하는 갑질, 교수가 조교에게 하는 갑질, 회사 상사가 부하에게 하는 갑질, 아파트 단지에서 택배 기사들에게 벌이는 갑질 등등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갑질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보도됩니다. 최근 서울 중랑구의 한 아파트 단지 우편함에서 '경비실 에어컨 설치를 반대합니다'라는 내용의 전단 수십 장이 발견되고 벽보가 붙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가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방침을 세우자 이에 반대하는 이들이 행동에 나선 겁니다.

 

출처 - 울산매일

 

그런데 경비실 에어컨 반대 추진자들의 전단과 벽보 내용에 대해 "말 같지도 않은 이유들로 인간임을 포기하지 말라"며 에어컨 설치를 찬성하는 의견을 개진하는 글을 붙인 주민도 있었습니다. "단 한번이라도 여러분께서 쓴 글이 경비아저씨들께 그리고 글을 읽는 주민들에게 어떤 상처를 줄지 생각해 보셨느냐"면서 "경비 아저씨들도 누군가의 남편이고 누군가의 아버지"이며 "그늘 하나 없는 주차장 한 가운데 덩그러니 있는 경비실에 지금까지 에어컨 한대 없었다는 것이 더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주민은 "공기 오염이 걱정되신다면 댁에서 하루 종일 켜두시는 선풍기 끄시고, 수명 단축이 걱정되신다면 운동을 하시고, 지구가 뜨거워지는 것이 걱정이라면 분리수거 잘 지켜달라"고 충고했습니다.

 

출처 - 세계일보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이 대기업의 '갑질' 규제를 위해 행동에 나섰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위아, 그리고 피자업계 선두권인 미스터피자가 그 대상입니다. 현대위아는 2013년부터 3년 동안 최저가 낙찰을 받은 하도급업체에 24차례에 걸쳐 납품 단가를 일방적으로 깎은 혐의가 드러났습니다. 이런 갑질로 현대위아는 연 매출 7조 원대에 달하는 회사로 성장했는데요,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위아를 검찰에 고발하고, 3억 60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습니다.

 

한편 박근혜 정부에 의해 좌천됐다가 문재인 정부에 의해 부활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첫 수사 대상으로 미스터피자를 지목했습니다. 미스터피자는 정우현 회장의 친인척이 관여한 업체를 중간에 끼워 넣어 프랜차이즈 가맹점에 비싼 값으로 치즈를 강매한 의혹을 받고 있죠. 지난 지난 21일 미스터피자 본사를 압수수색한 검찰은 회장 자서전 강매, 비자금 조성, 본사 책임의 광고비를 가맹점에 떠넘긴 의혹 등 다각적인 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정우현 회장은 지난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방배동 사옥에서 기자 회견을 열어 사과한 뒤 회장직을 사퇴했습니다.

 

출처 - 시사포커스

 

패션잡화 브랜드 CM을 운영하는 성주디앤디의 김성주 공동 대표이사 또한 올해 초 하도급업체들의 납품 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당해 갑질 논란이 일자 최근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았죠. 그리고 20대 여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은 최호식 호식이두마리치킨 회장 또한 직을 내려놓았습니다. 6월 들어 3명의 오너가 추문 및 갑질 논란으로 줄줄이 물러난 셈이 되었습니다. 

 

 

하청사회, 대한민국

 

우리 사회에서 갑이 사회적 부를 움켜쥐게 된 까닭은 을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을 쥐어짜 가로챘기 때문입니다. 갑질이 가능한 이유는 '하청'이라는 특수한 계약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원래 하청(subcontract)이란 일의 일부 혹은 전부를 위탁받는 상호계약이며, ‘갑’과 ‘을’도 계약거래 당사자 양쪽을 일컫는 명칭일 뿐입니다. 그러나 양자가 평등하거나 대등하지 않기에, 대개 계약은 일거리를 주는 원청인 갑에게 유리한 반면 일거리를 받는 하청인 을에게는 불리합니다. 이 때문에 흔히 갑은 우위에 있는 자로, 을은 지위가 낮은 자로 인식되죠. 생각비행이 최근 출간한 책, 《하청사회》의 내용 일부를 소개하면서 문제점을 고민해보겠습니다.


계약 조건상 유리한 위치에 있는 갑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을에게 부당행위를 합니다. 원청과 하청 사이에 널리 알려진 부당행위 또는 '불공정 하도급거래'에는 "납품단가 후려치기, 기술 탈취, 구두발주, 하도급대금 부당감액 등"이 있습니다. '갑질'은 단지 갑이 '우위에 서는 것'만이 아니라 하위에 있는 을을 '밟고 서는 것'을 포함합니다. 갑은 갑질을 통해 스스로의 우월한 지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궁극적으로 더 많은 지대 또는 이익을 추구하게 됩니다.

출처 - 《하청사회》


하청사회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갑은 계속해서 갑의 위치를, 을은 계속해서 을의 위치를 유지해야 하죠. 달리 말하면, 갑과 을의 불평등한 관계가 지속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하청사회는 존속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갑은 어떻게 해야 계속해서 갑이 될 수 있을까요? 갑의 지위를 견고하게 지키거나 더욱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갑과 을 사이의 불평등이 점차 줄어든다면 갑으로서의 특권과 특혜도 점차 약화되겠죠. 따라서 갑은 불평등을 심화시키되 그에 따르는 을들의 불만을 무마해야 합니다. '낙수효과 이론'은 그 핵심 전략이었습니다. 

 

위 그림이 표현하고 있듯이 낙수효과란 고소득층의 소득 증대가 소비 및 투자 확대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저소득층의 소득도 증가하는 효과를 가리킵니다. 낙수효과 이론의 지지자들은 고소득층이나 대기업의 수중에 먼저 돈을 채우면 중력의 법칙에 따라 가난한 사람에게도 그 혜택이 흘러내려 온다고 설명해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그림처럼 '부자 감세'는 부유층의 지출 증가와 투자 증가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을에게 돌아갈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예언합니다.

출처 - 《하청사회》

 

과연 낙수효과로 빠른 경제성장의 선순환을 이루게 될까요? 갑들은 낙수효과를 반복해서 말하지만 실제로는 낙수효과를 차단하거나 지연하면서 갑의 위치를 확고히 지켜왔습니다. 경제학자들 또한 낙수효과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부자들은 감면된 세금만큼의 현금을 재투자하며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금을 확보하거나 자산에 투자했을 뿐이죠. 2016년 5대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370조 원으로 10년 만에 약 3배나 증가했습니다. 사내유보금이 많다는 것은 기업이 이익을 남긴 뒤 투자를 하지 않은 채 그저 '곳간'에 차곡차곡 채워놓는다는 의미입니다.

 

출처 - 《하청사회》

 

갑들은 '낙수효과'를 얘기하면서 을들의 불만을 억눌러왔습니다. 그러는 사이 경제의 선순환은커녕 빈부의 차가 날로 확대되고, 가난한 사람들이 갈수록 더 많은 빚을 떠안는 악순환이 이어졌죠. 위의 그림을 살펴보시죠. 맨 위 칸의 와인잔 3개의 크기가 각기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 사이에 화살표를 넣으면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도급을 주고받는 하청관계가 그려집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어갈수록 맨 위 칸의 와인 양이 줄어드는데, 이것이 전형적인 도급관계, 즉 외주 혹은 하청관계에 있는 갑과 을의 처지를 설명해줍니다. 와인의 양은 외주 단계를 거칠수록 줄어드는데, 줄어든 양으로 아래 잔을 채워야 하는 을로서는 인력 활용도를 극대화하거나 서로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죠.


화물 운송의 다단계 하청구조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화물운전기사들은 2003년, 2008년, 2012년에 파업한 이력이 있습니다. 거듭된 화물연대 파업의 근본 원인으로, 화주와 운송회사, 운송노동자로 연결되는 화물운송의 다단계 하청구조를 꼽습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화물운송노동자가 제대로 운임을 받지 못하고 피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출처 - 《하청사회》

 

위 표를 보시죠. 40ft(freight ton, 운임톤) 컨테이너로 부산―서울 구간을 왕복 운송하기 위해서는 우선 수출입업체(화주)가 대형 운송회사에 123만 원을 지급해야 합니다. 대형 운송회사는 이 가운데 27만 원가량을 가져가고, 운송 업무를 알선업체에 맡기게 되죠. 알선업체는 수수료 명목으로 운임의 약 10퍼센트인 10만 원가량을 챙기고, 이를 다시 영세 운송사나 소규모 알선업체에 넘깁니다. 이 과정에서 이들도 10퍼센트 정도에 해당하는 8만 원을 수수료를 챙깁니다. 결국 실제로 운반 업무를 맡는 화물 노동자가 받는 운임은 최종적으로 78만 원으로, 수입업체(화주)가 지불하는 돈의 63퍼센트에 불과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부당한 구조를 파타해야 하건만 이 시대의 을들은 성과주체로서 성공도 실패도 모두 자신의 선택이고 책임이라 믿으며 끊임없이 앞만 보고 내달리게 됩니다. 을들은 학교나 회사 같은 조직에서 성적이나 성과로 서열을 매기는 무한경쟁 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집단 전체가 그저 맹목적으로 앞으로만 내달리다가 절벽에 떨어져 죽고 마는 아프리카의 스프링폭스라는 산양들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을'이 옆에 있는 다른 '을들'을 마주 보고 함께 조직을 이루거나 연대한다면, 그래서 을들이 질주를 멈춘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때 하청사회는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려울 겁니다. 《하청사회》의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하청사회로 변모한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분절화되고 개인화된 관계를 어떻게 청산하고, 원청과 하청 사이의 책임 있는 관계와 연대의 끈을 어떻게 형성할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갑질사회와 하청사회를 살아가는 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최근 언론, 방송을 통해 보도되는 갑들의 행패를 더는 좌시하지 않고 을들의 단단한 연대를 통해 갑들이 만든 시스템의 부조리를 하나하나 바꿔나가야 합니다. 서두에서 인용했던 카뮈의 말을 다시 언급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이 어리석은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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