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비행은 최근 두 차례에 걸쳐 군 의문사 문제를 들여다보았습니다. 고 김훈 중위 사건에 고 허원근 일병 사건까지 군 의문사 문제가 군사독재 시절에나 있었던 일로 치부해서는 곤란합니다. 지난 9월 26일 강원도 철원에서 진지 공사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던 중 머리에 총상을 입고 사망한 6사단 이 모 상병의 사례도 있으니까요.


출처 - KBS


사고 초기에 국방부는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고 어딘가 딱딱한 물체에 맞고 튕겨 나온 총알인 도비탄에 의한 사망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유족들은 도비탄이란 국방부 발표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사망한 이 상병 몸에 있는 총탄 엑스레이를 봐도 탄두가 모양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비탄일 경우 탄두가 찌그러져 있어야 하고 총상 역시 더 커야 할 텐데 이 상병의 머리에 난 상처는 총알을 그대로 맞았을 때 나타나는 동그란 상처였습니다.


출처 - 헤럴드경제


사태가 커지자 그제야 부랴부랴 특별수사팀을 구성한 국방부는 재조사를 통해 당시 사격장에서 직선거리로 날아온 유탄에 의해 사망했다고 정정합니다. 진지 공사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던 이 상병 일행의 귀로는 사격장 뒤쪽이라 사격 시에는 출입을 통제해야 하는데 사격장 쪽도, 이 상병 쪽도 통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아 젊은이 한 명이 목숨을 잃은 셈입니다. 국방부가 사실을 인정하자 이 상병의 부모는 당시 사격장에 있는 누구의 총알이었는지는 밝히지 않기로 했습니다. 다른 장병이 죄책감에 휩싸여 사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우리 군에서 총기 사고에 의한 장병들의 죽음은 계속 발생하는 일입니다. 철원에서 유탄에 이 상병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경기도 화성에서는 군부대 사격장에서 발사된 것으로 보이는 기관총탄이 인근 플라스틱 제조공장으로 날아드는 아찔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지난 9월 29일 일어난 일이었으나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습니다. 바로 며칠 전에 군 사격장 안전관리에 구멍이 뚫려 사고가 일어났는데도, 군이 이를 제대로 시정하지 않아 또다시 사고가 일어난 사례입니다. 이런 체계 속에서는 군대에서 언제든 의문사가 양산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명박근혜 정권처럼 군 개혁 의지가 없는 정부였더라면 국방부는 버티기에 나서 이 상병의 사례도 의문사로 처리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죠.


출처 - 연합뉴스


군이 자정 능력을 잃었다는 점은 이른바 '공관병 갑질 사건'으로 유명했던 박찬주 대장이 군 검찰의 조사 끝에 결국 무혐의 처분이 내려진 것만 봐도 분명합니다. 수많은 공관병이 위험을 무릅쓰고 제보를 하고 수많은 증거와 증언이 나왔지만 팔이 안으로 굽은 군 검찰은 무혐의 처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갑질을 한 건 맞지만 직권남용을 한 건 아니라는 해괴한 이유입니다. 이는 군 의문사 사건 유족의 주장대로 군 내부의 조직이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보다는 덮어서 은폐하려는 습성을 보인다는 추태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출처 - 뉴스1

 

지난 2일 군인권센터는 갑질 무혐의 처분이 내려진 데 대해 여론이 좋지 않자 군 검찰이 센터로 전화를 걸어 사건 재수사에 착수했음을 알려왔다고 발표했습니다. 또한 군인권센터는 박찬주 대장 수사를 담당한 송광석 국방부 검찰단장을 국방부 장관에게 징계 의뢰할 것이라고도 밝혔습니다. 사실 군의 제 식구 감싸기 행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출처 - 경향신문

 

지난달 30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박 대장이 구속된 뒤 8번 가진 면회 중 4번이 갑질 혐의 공범 관계에 있는 부인 전 모 씨였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현행법은 가족이라 하더라도 공범 간 면회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모의해서 입을 맞추거나 증거를 없앨 우려가 있으니까요. 형집행법 41조와 군 수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군형집행법 42조가 바로 이런 경우 면회를 금하고 있는 조항입니다. 이 때문에 박주민 의원은 "갑질 사건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박 대장과 공범 혐의를 받고 있는 부인 간의 면회를 허용한 것은 군 당국이 증거인멸을 도운 꼴"이라고 지적했죠.

 

출처 - JTBC

 

이와 같이 군의 적폐는 군 의문사 같은 문제만이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군 사이버사령부 여론조작 활동에 관여한 혐의를 받은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 11일 새벽 구속되었죠. 검찰은 사이버사령관 등에게 여권을 지지하고 야권을 비난하는 정치관여 활동을 지시한 혐의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바 있습니다. 또한 사이버사령부가 댓글 공작에 투입할 군무원을 추가 채용할 당시 특정 지역 출신을 배제하도록 하는 등의 직권 남용 혐의도 적용했습니다. 김 전 장관은 계속 의혹을 부인해왔으나 법원이 주요 혐의인 정치관여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입니다. 

 

출처 - JTBC

 

JTBC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이 사이버사 인력을 늘리라고 지시한 문건은 비단 2012년에만 발견되는 게 아닙니다. 2010년 12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그리고 2012년 그리고 3월 이때 국방부 사이버사령부 문건에서 'BH' 또 'VIP' 같은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 때문에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이 사이버사령부 인력구성 그리고 또 댓글활동 내역을 지속적으로 보고받았다,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김 전 장관이 검찰 조사에서 댓글부대 운영에 대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시 등의 혐의를 일부 인정했기 때문에 향후 청와대 관계자들에 대한 소환조사를 통해서 김 전 장관이 직접 대면보고를 했는지 혹은 청와대 관련 수석실을 통해서 간접 보고를 받았는지 이런 부분들이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서 밝혀질 것으로 보입니다. 대한민국의 안위를 책임져야 할 군이 특정 세력을 위해 정치활동을 펼쳤고, 이러한 일을 국방부 장관이란 사람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까지 했으니 얼마나 심각한 일입니까? 군 적폐의 끝이 과연 어디일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출처 - 이재명SNS-일요신문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군 사이버사 여론 공작 개입 혐의 등으로 구속되자 청와대 온라인 청원 등으로 출국금지 여론이 일기도 했으나 출국금지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12일부터 15일까지 마이 빈트 모하메드 알 칼리파 바레인 문화 장관의 초청 강연을 위해 두바이로 출국하는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은 정치보복"이라며 "과거에 집중하면 미래 대비 못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최근 불거지는 자신을 향한 검찰 수사 향방에 대해 불쾌함을 드러낸 것이죠.  

 

이에 대해 이재명 성남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당신이 갈 곳은 바레인이 아니라 박근혜 옆"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아울러 “도둑퇴치가 도둑에겐 보복으로 보일 수 있지만 선량한 이웃에겐 상식의 회복일 뿐"이라며 "권력이 있었다는 이유로, 권력을 이용한 범죄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던 구시대는 이제 박근혜와 당신으로 마감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행여나 해외에 눌러앉지 마시고 다녀오신 후 검찰 수사 잘 받으십시오"라고 글을 마무리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명박근혜 정권 동안 군의 부패가 심각합니다. 연이어 터져 나오는 각종 문제 때문에 군 검찰을 해체하고 민간 검찰이 그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여론도 거셉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군 의문사 의혹은 여전하다"면서 "군의 태도를 보면 고루한 뭔가를 지켜야 한다는 데 집착하며 늘 방어적으로 대응한다. 주요 사건에 대해 군 발표를 믿지 못하고 불신이 계속되는 상황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라고 주문한 바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초기에 밝힌 의지대로 군에 대한 대대적인 혁신과 개혁에 나서 주길 바랍니다. 군의 적폐청산은 군 자체적으로 해낼 수 없다는 증거가 차고도 넘치니 말입니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 구속에 이어 MB 단죄가 대한민국군의 적폐를 청산하는 시발점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난번 소개했던 김훈 중위 사건은 19년 만에 순직으로 인정되었지만, 죽음 자체는 의문사인 채로 남아 있습니다. 김훈 중위 사건이 장교의 의문사 사건으로 가장 유명한 사례였다면 허원근 일병 사건은 병사의 의문사 사건 중 가장 유명한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허원근 일병은 1984년 강원도 7사단 GOP 전방소대의 폐유류고 뒤에서 가슴 2발, 머리 1발의 총상을 입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7사단은 자체 조사를 했다고 하는데 M-16 소총으로 오른쪽 가슴과 왼쪽 가슴을 쏘고 마지막에는 오른쪽 눈썹에 밀착해 사격한 자살로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당연히 유족들은 반발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게 당연합니다. 공기총이 아니라 군의 제식 소총을 밀착하고 쐈는데 3발을 쏠 동안 사람이 죽지 않고 흔들림 없이 겨눴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됩니다. 게다가 허원근 일병이 죽은 날은 첫 정기휴가 전날이었습니다. 복무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첫 휴가를 기다리는 심정이 어떤지 아실 겁니다. 그런데 첫 정기휴가 전날에 A급 군복까지 다려놓았는데 별다른 동기도 없이 자살했다? 이게 말이 될까요?


김훈 중위 때처럼 약 20여 년을 기다린 유족들은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재조사로 술에 취한 허 일병의 상관이 총을 쏴 그를 살해했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날 밤 술판을 벌인 선임하사와 중대장이 말다툼을 시작했고 선임하사가 내무반으로 와 병사들에게 화풀이하다가 행정반 입구 근처 있던 M16 소총을 들고 술에 취한 채 병사들을 위협했다고 합니다. 이에 말리던 병사들과 승강이를 벌이다 발사된 총알에 허 일병이 맞았다는 겁니다. 사건이 터지자 중대장, 대대장 등은 은폐 시도를 합니다. 그러고는 허 일병이 자살했다고 허위 보고를 하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허원근은 복무 중 중대 간부들이 규정을 어기고 술을 마신 것이 발단이 되어 상관인 노○○(19소초 선임하사)가 발사한 총탄과 나머지 2발의 총탄(주체는 불확정)을 맞고 사망에 이르렀고, 중대 간부들은 허원근이 최초 총격으로 쓰러졌을 때 구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자신들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자살로 위장하였는 바, 허원근의 사망은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에 의하여 사망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토대로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되었음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2심 재판부는 이를 뒤집고 맙니다. 희박한 가능성이긴 하지만 특정 자세를 취하면 소총으로 자살할 수도 있다는 황당한 이유에서였습니다. 2015년 마지막 3심에서 대법원은 허 일병의 사인을 알 수 없다고 최종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군의 부실수사를 인정해 유족들에게 3억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출처 - 한겨레


사건 당시 40대였던 허 일병의 아버지는 이제 70대가 되었습니다. 아들이 없는 30년을 의문사 해결을 위해 싸우고 또 싸운 그는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르겠으면 판결을 내리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보상금이고 위로금이고 다 필요 없다고 토로합니다. 

 

그렇습니다. 허 일병의 아버지는 돈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전두환 시절 벌어진 군 의문사라서 육군 수사관에게서 더 이상 들쑤시면 생명에 지장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협박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다 독재정권이 막을 내리자 또다시 농성에 나섭니다. 진실을 규명해달라는 요구였죠.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20년의 세월은 평범한 농부를 법의학과 법학에 능통하게 만들었습니다. 2004년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요구하며 추운 겨울을 거리에서 났으나 국회 법사위는 이 법안을 두 차례나 반려해 폐기했습니다. 그때 법사위원장이 지금 국정농단으로 구속된 김기춘이었습니다. 법사위원장이던 시절 김기춘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하기도 했죠.

 

출처 - 연합뉴스


허 일병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처럼 진실이 파묻힌 채 죽음을 맞이하는 젊은이가 더는 생기지 않도록 검시관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검시를 행할 자의 자격 및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안을 다시 한 번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일명 허원근법으로 2005년 발의됐으나 2008년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폐기된 법안이죠.

 

그러다 2015년 9월 대법원이 자·타살 규명이 어렵다는 판결을 내리자 허 일병의 아버지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재심청구를 합니다. 하지만 2016년 12월 말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재심청구가 기각되었습니다. 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다한 허 일병의 아버지는 국민권익위원회에 허 일병의 순직 처리를 해달라는 민원을 넣었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1년여의 조사를 거쳐 허 일병의 사망 원인과 상관없이 공무 중 사망했다면 순직으로 인정하라며 순직 권고를 합니다. 이에 따라 2017년 4월 국방부에서 사망심사를 진행하여 고 허원근 일병 사망 33년 만인 지난 5월에 순직을 인정했습니다.


출처 - 한겨레


우리나라에서 한국전쟁 이후 군 사망자는 공식적으로 6만 명에 달합니다. 베트남전에서 전사한 5000명을 제외하고도 말입니다. 이는 한국에서 전쟁을 하지 않아도 매년 1000여 명의 군인이 죽어 나간다는 얘깁니다. 이라크전쟁 9년간 미군 사망자가 연평균 900명이었다죠. 전쟁 없는 평시에 대한민국군에서 더 많은 군인이 죽었다는 의미가 되니 참으로 기가 막히는 노릇 아닙니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죽고, 맞아서 죽고, 교통사고로 죽고 산사태로 죽고, 눈사태로 죽고, 홍수로 죽고, 일사병으로 죽고,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등 갖가지 이유로 죽는 군인이 이렇게나 많다는 건 우리나라 군과 시스템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민주정권 시기인 1998~2005년 사이에도 173명이나 죽었습니다. 아직 갈길이 멉니다. 군 적폐 개혁만이 군 의문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지난 5일 오전 11시 30분 미국 텍사스주 서덜랜드 스프링스에 있는 제1침례교회에서 교인들이 예배를 드리던 중 방탄조끼를 입은 한 사내가 나타나 AR-15 소총을 난사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26명의 신자가 숨지고 20명 이상이 다쳤습니다. 언론은 마을 공동체의 중심지였던 교회가 주민 360여 명 가운데 7퍼센트가 숨지는 텍사스주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현장으로 변모했다고 전했습니다. 지난 10월 초 추석 연휴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테러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이런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돌아가신 분들과 유족들에게 어떻게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19년 전에 일어난 총기 관련 의문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촛불의 힘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집단 중 하나인 군에도 변화의 움직임을 일으키고 있죠. 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군 인권 문제에 관심을 두고 군 의문사를 진지하게 대하고 있습니다. 새정부의 국정과제로 국방개혁을 표방하고 장병들의 인권보호를 강화해나가기로 함에 따라 국가인권위원회 안에 '군인권보호관'을 신설하고 군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런 움직임의 일환이었는지 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지난 5월 26일 군 의문사 장병들 어머니들의 사연을 다룬 연극 〈이등병의 엄마〉를 관람했습니다. 역대 영부인과는 다는 행보를 보인 것이죠. 김정숙 여사가 관람한 연극은 선임병의 상습 구타와 가혹 행위로 사망한 한 병사의 죽음을 군이 자살로 은폐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내 머리에 총을 대서 실험해주기 바란다. 나는 내 몸을 내 자식한테 바친다!"

 

출처 - SBS

 

19년 전 김훈 중위의 의문사를 규명하라며 어머니는 절규했습니다. 그간 정권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군은 김훈 중위의 죽음을 계속 자살로 규정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 변화의 움직임이 있었죠.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후보자 신분이던 6월 26일 군 의문사 유가족과 면담한 이후 7월 20일 국방컨벤션에서 '군 의문사 관련 유가족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송 장관은 이 자리에서 군 의문사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한편 명확한 진상규명을 통해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회복과 인권증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습니다.

 

김훈 중위 유족은 7월 25일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게 김훈 중위 사망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서를 보냈습니다. 김훈 중위 어머니의 절규가 울려 퍼진 지 19년 만인 지난 8월의 마지막 날. 국방부는 김훈 중위의 순직을 인정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군 의문사 중 대표적 사례로 알려진 김훈 중위의 순직이 인정됨에 따라 다른 군 의문사 문제에도 서광이 비칠까 기대가 모이고 있습니다.


 

출처 - 중앙일보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은 1998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 경비중대 소대장이었던 고 김훈 중위가 GP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숨진 채 발견된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군 수사당국은 사건을 자살로 결론 내리고 서둘러 덮으려 했지만 타살 의혹이 끊이지 않았죠. 자살할 동기가 없었을 뿐 아니라 사건 현장에 남은 정황 증거들이 자살이라 하기엔 앞뒤가 맞지 않는 것투성이였기 때문입니다. 김훈 중위 사건이 자살이나 사고가 아닌 군 의문사가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건 현장에는 김훈 중위의 손목시계와 현장의 지뢰 박스 등이 부서져 있어 김훈 중위가 사망 직전 누군가와 격투를 벌인 것이 아니냐는 의심도 있었습니다. 또한 김훈 중위의 왼손에서 화약흔이 발견된 점도 타살 의혹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2012년 국민권익위원회는 국방부와 다시 검증에 나섰는데, 김훈 중위의 사망 당시 사격 자세로 권총 발사 실험을 해본 결과 12명 중 11명이 오른손에서 화약흔이 나왔죠. 일각에서는 김훈 중위 소속 부대 일부 장병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군 GP를 오가는 불법적인 교류행위를 저질러 이를 뿌리 뽑으려다 살해됐을 수도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다음 영화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 같다고요? 네, 맞습니다.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인 박찬욱의 출세작인 〈공동경비구역 JSA〉의 모티프가 된 의혹이기에 그렇습니다. 2004년에는 김희철 감독의 다큐멘터리 〈진실의 문〉으로 또다시 군 의문사의 대표적 사례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김훈 중위의 죽음을 명확한 근거도 없이 자살로 만드는 과정에서 나타난 국가 권력의 인권유린과 이에 동조하는 비양심적 지식인, 언론, 사법부를 고발함과 아울러 사건의 당사자이면서도 끝까지 침묵한 주한 미군의 존재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현실은 픽션을 뛰어넘는다고 했던가요. 숨진 김훈 중위의 아버지는 예비역 중장이었습니다. 평생을 군에 몸 바쳐 복무하고 대를 이어 군인이 된 자랑스러운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죽었는데, 왜 죽었는지 알 수도 없고 초동수사는 엉망진창이며 그저 사건을 덮어버리려고만 하는 군을 보며 아버지인 김척 씨는 정말 억장이 무너졌을 겁니다. 그 이후 20년 동안 사건의 진상규명과 아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자신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군을 상대로 길고 긴 싸움을 해야만 했습니다.


김훈 중위와 같은 육사 출신 동기들의 정신적 충격도 컸습니다. 김훈 중위의 의문사가 국방부에 의해 자살로 결정지어지자 육사52기 장교 33명이 5년 차 전역을 선택하고 군을 나와버렸습니다. 육사 출신 장교 중 5년 차 전역을 택하는 사람은 평균 10명이 채 안 된다고 하는데, 동기의 죽음에 대한 군의 처사에 얼마나 진절머리가 났으면 집단 전역을 택했나 싶습니다. 군의 엉터리 수사로 생겨난 의문사는 한 가족을 끝없는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고, 앞날이 창창한 33명의 장료가 집단 전역하는 사태를 초래함으로써 스스로의 전력까지 낮추는 결과를 낳은 셈입니다.


김척 씨는 1999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대법원은 2006년 군 당국에 부실한 초동 수사의 책임이 있다며 유가족에게 정신적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군 당국이 현장 조사와 보존을 소홀히하고 주요 증거를 확보하지 않았으며 소대원들의 알리바이 조사도 형식적으로 했다고 지적하면서 책임을 물었습니다. 이 판결을 한 주심 재판관이 바로 김영란법의 김영란 전 대법관이기도 합니다. 이 판결을 토대로 2012년 국민권익위원회가 국방부와 위의 권총 실험을 하고 김훈 중위의 순직 처리를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국방부는 계속 시간을 끌다가 5년이 지난 2017년 8월에 이르러서야 순직 처리를 해주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20여 년간 고통을 감내하며 아들의 명예회복에 매달린 김척 씨는 이 결정을 듣고 "군 당국이 아들의 순직을 인정하지 않아 오랜 세월 고통을 겪었다"면서 "잘못이 있다면 그것을 인정하는 게 국민의 군대"라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그는 군 사건 수사에 민간 전문가를 포함한 제3의 기관이 참가할 수 있도록 하여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군 의문사도 세상에 알리고 공론화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겠죠. 예비역 장성의 아들에 대한 처우가 이럴진대 장삼이사의 아들들의 억울한 죽음은 오죽했겠나 싶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TV


갈 곳을 잃고 경기도 벽제의 육군 부대 컨테이너에 보관되어 있던 김훈 중위의 유골함은 20여 년 만에 제자리인 국립묘지로 돌아갔습니다. 고(故) 김훈 중위 안장식이 지난 10월 28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렸습니다. 이날 안장식에서 어머니 신선범 여사는 고 김훈 중위를 떠나보내며 영정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출처 - 뉴스1

 

수많은 군 의문사를 생각하면 이제 겨우 하나의 사례가 풀렸을 뿐입니다. 군 의문사는 군 자체의 개혁이 없이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더 많은 국민의 관심이 절실합니다. 뒤늦게 생각비행이 김훈 중위 순직 인정 소식을 다시 공유하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에서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의 삶을 그려낸 영화 <명량>이 1500만 관객을 넘어 한국 영화 흥행 역사를 다시 쓰고 있습니다. 생각비행은 일전에 이순신 장군께 진짜로 본받아야 할 리더십은 극한의 난전 속에서도 지휘관이 최전선에서 솔선수범하며 최대한 병사들이 살아서 돌아올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참 군인의 면모를 뒤따라야 할 군이 온갖 비리와 봐주기, 사건·사고로 추잡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 터진 윤 일병 살인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국민은 군을 향한 신뢰를 거뒀습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어디다 팔아먹었는지조차 모를 인면수심의 군을 과연 어떻게, 어디서부터 손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성인 남성에게 군역의 의무를 부과한 대한민국은 장병의 안전을 책임져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군은 병사들의 무사귀환을 책임지기는커녕 군 복무 중 사망한 장병과 유가족을 또 한 번 죽이는 법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출처 - 이데일리



군 의문사 시신 화장 법안 추진, 증거 인멸 위한 초석인가?


박근혜 정부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기치로 내걸어 사람들의 실소를 자아냈습니다. 국방부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정부 보고 자료로 '장기 미인수 영현처리 육군 추진 계획'이라는 것을 마련했습니다. 이 때문에 국방부가 장기 미인수 시신에 대해 강제 화장 처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출처 - 미디어오늘


복무 중이던 군인이 사망하면 군은 수사를 통해 이유를 밝히고 유가족에게 알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때 유가족이 그 수사 결과에 동의하지 못한다고 밝히면 군 의문사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현재 군은 수사 결과와 다른 이유로 숨졌다는 입증 책임을 수사당국이 아닌 유족이 지게 하고 있습니다. 군 조직은 문제 발생 시 부대가 해체되거나 고인과 같이 복무한 병사나 간부가 뿔뿔이 흩어지거나 하는 문제가 있고,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내부고발의 피해를 두려워해 사전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채 흐지부지되는 사례가 빈번합니다. 무엇보다 군 내 수사는 국가 안보를 빌미로 매우 폐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보 접근에도 제한이 많습니다.


이런 현실 때문에 지금까지 진실이 규명되지 못하고 수사가 종결되지도 않은 채 의문사 상태로 군 안치소에 상당한 유골이 모셔져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유골은 43년, 시신 상태로 냉동고에 15년간 계신 분도 있습니다. 그 긴 시간을 유가족은 지옥 같은 삶을 살았겠죠.



군의 폐쇄성을 해체할 대안이 필요한 때


성인 남성 대부분이 군역을 마친 이 나라에서 최근 군대 내 문제로 드러나는 수사 결과를 그대로 믿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군의 추잡한 면모가 세상에 고스란히 드러난 윤 일병 살인사건의 경우도 국방부가 처음 발표한 공식 수사 결과에 따르면 회식 중 취식으로 인한 기도 폐쇄가 그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윤 일병은 구타와 가혹행위 때문에 사망한 사실이 밝혀졌죠.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치사사건의 경우처럼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군사독재 시절의 경찰 발표와 오늘날 군의 발표가 대체 어떻게 다른 건지 모르겠습니다.


 

출처 - 한겨레


대한민국의 군대 내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데 군은 유가족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는커녕 증거 인멸을 법제화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법령 개정 3년 이상 인수 거부 시 화장.' 이 내용만 보면 무연고 시신을 화장하겠다는 내용 같지만, 지금처럼 군 의문사 문제가 비일비재한 상황에서는 진실이 규명될 때까지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유족의 의지에 반해 시신을 화장함으로써 증거를 인멸하겠다는 논리에 불과합니다. 

 

지금도 군은 사건이 터져 수사가 진행되면 유족을 회유하고 협박해 시신을 속히 화장하게 합니다. 고인을 화장하면 순직 처리하여 국가유공자로 지정해주겠다는 꼬드김에 넘어가 유골만 남은 유족의 억울함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바로 그런 유골이 43년째 남아 있다는 겁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의 폭로로 여론이 나빠지자 다급해진 국방부는 처음엔 유가족의 동의를 받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시행 전 관련 방법을 유가족에게 고지하고 6개월 전에 유가족에게 통보하는 식으로 처리하겠다며 발을 뺐습니다. 고지와 통보는 모두 일방적인 행위일 뿐입니다. 유가족에게 기약 없는 통보 편지만 달랑 보내놓고 국방부가 마음대로 시신을 화장해버릴 수도 있는 노릇입니다. 국방부의 발표 내용 어디에도 명시적으로 유가족의 허가와 동의라는 말은 없었습니다.


더구나 기가 막힌 건 이런 인면수심의 법안을 국회가 아닌 국방부 훈령 개정을 통해 처리하려고 준비 중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도무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법안이라 국회에서는 통과되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 국방부 안에서 몰래 해치우려고 했겠지요. 이 법안의 의원 입법을 추진하는 것으로 명시된 백군기 의원은 국방부에서 관련 내용을 보고받은 적은 있지만 법안 발의를 추진한 적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덧붙여 유족 동의 없이 이런 법안이 추진되면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결국 국방부의 해명이 궁색해졌습니다. 정부가 민감한 법률 개정을 추진할 때 흔히 쓰던 꼼수가 제대로 먹히지 않았나 봅니다. 

 

이번 사건은 군의 폐쇄성을 국가 안보라며 방치했을 때 인간성이 과연 얼마나 좀 먹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출처 - 이데일리


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이 사실로 드러나고, 22사단 고성 GOP 총기 난사 사건으로 말미암아 대한민국 군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이후 군인 신분의 자살자가 갑자기 늘어나더니 급기야 윤 일병 살인사건으로 군은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맞았습니다. 여기에 김광진 의원이 국방부가 군 의문사 사병의 시신을 강제 화장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자 국방부는 아연실색해서 군 의문사 입증 책임을 일부 정부가 지겠다는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일시적으로 여론을 잠재우려는 심보인지 아니면 물러설 곳이 없는 군의 상황과 그간 끊임없이 진실을 규명하라고 요구해왔던 의문사 유족들의 노력이 맞물려 결실을 보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극히 당연한 결론이 너무 늦게 나왔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습니다.


현재 군 의문사 사건으로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못한 시신은 18구, 유골은 133구라고 합니다. 이분들이 편안히 영면하실 날은 언제쯤 올까요? 대한민국 군대에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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