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4월 19일, 학생과 시민이 중심이 되어 부정선거로 얼룩진 이승만 정권을 심판한 4.19 혁명. 헌법에 명시된 대한민국 정신의 기둥 중 하나입니다. 민중의 힘으로 독재자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한 역사적 이정표로 기억되는 4.19 혁명은 같은 시기 아시아 국가들의 민주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미국 주도의 냉전에 가담하는 미일상호방위조약 개정에 반대하여 일어난 일본의 안보투쟁과 대만의 민주화운동은 4.19 혁명에 큰 영감을 받은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한 나라의 시위가 다른 나라에 영향을 준 사례를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지구촌이 된 오늘날 전 영역에서 영향을 주고받는 일이 더욱 빈번해졌으니까요. 최근 세계 각국의 시위 현장에서 드러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중문화, 특히 영화의 영향력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은 최근 세계 각국에서 일어난 시위 현장에 영향을 끼친 영화를 주목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한국의 '촛불집회'와

미국의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에 등장한 가면 - 〈브이 포 벤데타〉



출처 - 한겨레


"우리는 상위 1%의 탐욕에 저항하는 99%다"라는 구호와 함께 시작된 '점령하라' 시위는 전 세계적인 운동으로 확산했습니다. 세계 금융자본주의의 심장부인 월스트리트에서 청년들이 행진하며 99퍼센트를 위한 사회를 요구했습니다. 그 가운데 한국인에게 친숙한 가면도 보였습니다. 콧수염 난 하얀 광대 가면은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굴욕적인 외교의 결과 안정성이 담보되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에 수많은 사람이 쓰고 나왔던 바로 그 가면입니다.



출처 - 워너브라더스


한국과 미국, 유럽의 시위 현장에 자주 등장한 이 익숙한 가면의 실체는 바로 '가이 포크스 가면'입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독재사회를 방불케 하는 부패권력에 대항해 시민의 저항과 궐기를 촉구한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주인공인 '브이'가 쓰고 나오는 가면이 바로 그것입니다. 영화의 절정 부분에 1퍼센트의 독재에 반대하는 뜻을 표명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99퍼센트의 시민이 브이 대신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국회의사당 앞을 가득 메우는 장면은 참으로 장관입니다. 그 이후부터 익명의 99퍼센트를 자처하는 시위 현장에서 가이 포크스 가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태국 반쿠데타 시위대의 세 손가락 – 〈헝거게임〉



출처 - 연합뉴스


입헌군주제 국가로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태국은 안타깝게도 쿠데타가 끊이지 않는 나라입니다. 1932년부터 총 19차례 쿠데타가 일어나 12번 성공했다고 하니 올림픽처럼 4년에 한 번 쿠데타가 일어난 꼴입니다. 그런데 지난 5월 태국에 또다시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태국에서 군사쿠데타가 유난히 잦은 이유는 형식적으론 입헌군주제 체제를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군사정권 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태국은 예로부터 주변국의 침략이 잦았기에 군의 위상이 막강합니다. 국군통수권이 국왕에게 있다고는 하나 실질적으로는 국방장관이나 각 군 사령관이 행사하는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더구나 군의 정치 참여를 인정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상원의원의 55퍼센트가 전, 현직 군부 인사라는 점도 입헌군주제의 취지를 무색하게 합니다.

이번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민의 시위에서 지난 18차례의 쿠데타 때와는 다른 모습이 눈에 띄었는데요, 세 손가락을 붙여 하늘로 곧게 드는 행동이 그것입니다. 지난 6월 1일 태국 수도 방콕의 번화가 아속역에 모인 수백 명의 사람이 동시에 세 손가락을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중심으로 모여든 반쿠데타 시위대는 민주주의 회복과 군부 퇴진 같은 구호를 외쳤습니다.



출처 - 뉴스1


태국 반 쿠데타 시위대가 왼손 검지, 중지, 약지 이 세 손가락을 붙여 번쩍 들어 올린 몸짓은 영화 〈헝거게임〉에 나옵니다. 주인공 캣니스는 12개국을 식민지로 거느린 독재국 판엠의 식민체제를 무너뜨리는 구심점이 되는데요, 이때 12개 식민지 시민이 캣니스를 지지하며 제국주의 독재자인 판엠의 국왕을 규탄하는 의미로 이런 행동을 취합니다. 태국 반 쿠데타 시위대는 군부의 야욕에 반대하는 의미로 이 동작을 가져다 썼습니다. 이런 행동은 시위대 사이에 빠르게 퍼져나가 군부는 이런 몸짓을 한 채 침묵시위하는 사람마저 체포해 갈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홍콩 우산혁명으로 드러난 민주주의 요구 – 〈변호인〉



출처 - 뉴시스


경찰의 최루탄과 물대포를 우산으로 막아내는 시위대의 모습에서 이름을 따온 홍콩의 우산혁명. 홍콩의 우산혁명의 발단은 행정장관 선출 방식 때문이었습니다. 일국양제라는 이름으로 영국의 홍콩 반환 후에도 중국 본토와는 다른 체제를 유지해온 홍콩이지만 중국 중앙정부의 간섭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중국 중앙정부가 약속했던 홍콩의 행정수반인 행정장관 선거를 직선제가 아닌 친중국계 선거인단을 통해 간접선거로 시행하겠다고 발표합니다. 전두환의 체육관 선거 같은 폭거에 대항하여 수많은 홍콩 시민이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섭니다. 체육관 선거로 얼룩진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직선제 쟁취를 추구한 면, 17세 학생인 조슈아 웡이 이 혁명의 중심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1980년대 민주화 요구 운동과 닮은 점이 많습니다. 실제로 홍콩 시민의 상당수가 한국 영화를 보고 영감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부림사건'을 모티프로 제작되어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변호인>이 바로 그것입니다.




부림사건(釜林事件)은 부산의 학림 사건이라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입니다. 전두환, 노태우의 신군부 정권 초기인 1981년 9월 공안 당국이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 22명을 영장 없이 체포해 불법 감금하고 고문해 기소한 사건을 의미합니다.

 

군부독재 시절 인권을 유린당한 한 학생의 변호를 맡으며 인간적인 변호사로 변모하는 모습을 생생히 그려낸 영화 <변호인>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직선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군부에 맞선 홍콩 시민의 눈에는 영화의 상황이 자신들의 현재 모습과 겹쳐 보였나 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영화 '변호인'을 보고 한국 국민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쟁취했는지를 알았어요. 민주화를 위해 희생을 치른 한국 국민이 홍콩의 민주화를 더 많이 지원해주길 바랍니다." 30일(현지시간) 홍콩정부청사 부근 타마르공원에서 만난 도리아 허는 기자가 한국에서 왔다고 소개하자 한국과 홍콩의 민주화 과정이 유사하다며 반가움을 표했다. 도심 점거 시위를 주도하는 시민단체 '센트럴을 점령하라(Occupy Central)'의 회원인 그는 '변호인'이 홍콩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다고 전했다. 실제 최근 집회에서 일부 연설자들이 영화 변호인을 언급하며 홍콩 시민이 독재정권에 저항한 한국 국민처럼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할 각오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기사가 현지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르포> 홍콩시위대 "한국처럼 민주화 위한 희생 각오"(연합뉴스)


영화 <변호인>은 홍콩 개봉 첫 주에는 흥행 성적이 저조했으나 위와 같은 입소문을 타며 셋째 주에 홍콩 박스오피스 6위에 오르는 상승세를 탔습니다. 인터뷰한 저 시민뿐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상에서도 <변호인>이라는 영화에 드러난 한국인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에 큰 영감을 받았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습니다.



출처 - 트위터


한 트위터 이용자가 남긴 민주화가 선거의 결과가 아니냐며 그들도 그런 선거를 하고 싶다며 남긴 글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홍콩 우산혁명이 한국 영화 <변호인>에 영감을 받았다고 하지만, 퇴행하는 한국의 민주주의 상황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문화가 국경을 뛰어넘어 다른 사회에 끼치는 순기능과 역기능을 생각할 때, 지금 현재 한국의 상황이 주변국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 고민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더 많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변호인>의 명대사를 인용합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지난 9월 2일 금요일, 광우병 보도와 관련하여 왜곡·과장 보도 혐의로 기소되었던 《PD수첩》 제작진 5명이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대법원은 "《PD수첩》의 보도내용에 허위사실이 있음을 확인했지만 그 내용이 공공성을 근거로 한 보도이기 때문에 명예훼손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3년에 걸친 길고 긴 법정공방이 깔끔하게 마무리된 순간이었습니다. 

《PD수첩》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대법원은 “정부 또는 국가기관의 정책 결정이나 업무 수행과 관련된 사항은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며 “이러한 감시와 비판은 이를 주요 임무로 하는 언론보도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될 때 정상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감시와 비판에 관한 한 성역이 없으며 언론보도의 자유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증명한 중요한 판결이었습니다.

광우병 보도 논란과 《PD수첩》재판

광우병 보도 논란은 2008년 4월 《PD수첩》이 방영한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방송에서 《PD수첩》은 미국 도축장의 '다우너 소(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하는 소)'를 도축하는 모습과 인간광우병 환자로 추정하는 여성의 이야기, 그리고 한국인이 광우병 쇠고기를 섭취할 경우 인간광우병에 걸릴 위험성이 높다고 보도했습니다. 

방송의 파장은 컸습니다. 방송이 공개될 즈음 이명박 정부는 한미 쇠고기협상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고 부위 대부분을 자유롭게 수입할 수 있도록 합의한 바 있습니다. 2008년 5월 5일 그 합의문이 공개되었는데요, 이에 대해 축산농가의 반대가 거셌고, 광우병의 위험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우려 또한 컸습니다. 무엇보다 광우병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는 상황에서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탓에 각계 각층으로부터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협상 타결 직후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됐다"고 말하였고, 협상 관련 논란이 일기 시작하자 "소비자 선택의 문제"라는 무책임한 발언을 했습니다. 결국 5월 초 청계광장 앞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렸습니다. 광우병 촛불집회의 시작이었죠. 일부 연예인이 미니홈피에 광우병에 대한 의견을 내어 눈길을 끌었고, 몇몇 웹툰 작가는 만화로 광우병에 대한 위험성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시민이 거리로 나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서명운동(100만 명 이상이 참여했음)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광우병에 대한 시민의 공포가 반영된 웹툰, 포스터, 로고


민심에 놀란 정부는 농림수산식품부와 보건복지가족부 주도로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설명회를 하는 등 움직임을 보였으나 애초 쇠고기 협상에 반대했던 국민의 뜻과 달라 촛불집회를 더욱 확산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런 와중에 《PD수첩》의 탐사보도는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불 끄기에 나선 당황한 정부는 민동석 전 농업통상정책관, 정운천 전 농식품부 장관이 명예훼손으로 《PD수첩》을 고발한 뒤 제작진 전원을 체포하여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출처: 경향신문



2008년 7월 농림수산식품부가 《PD수첩》을 상대로 낸 정정 반론보도 청구소송에서 사법부는 《PD수첩》이 일부 잘못된 보도내용에 대해 정정 및 반론보도를 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이에 대해 《PD수첩》은 재판부의 자의적인 판단이라며 항소했습니다. 하지만 항소심에서도 비슷한 판결이 나왔습니다. 재판부는 《PD수첩》이 농림수산식품부가 제기한 7가지 내용을 정정 또는 반론보도해야 한다며 한국인은 광우병에 걸릴 위험이 크다는 것과,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도 정부가 대처할 수 없다는 부분, 정부가 광우병 위험을 모르거나 은폐한다는 3가지 내용은 정정보도해야 하며, 정부가 특정위험물질(SRM) 수입을 허용한 것처럼 보도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반론보도를 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이 결정에 대해 《PD수첩》 제작진은 다시금 항소했습니다.

2009년 12월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PD수첩》의 조능희 CP, 김보슬 PD, 김 모 작가에게는 징역 3년을, 송 모 PD와 이 모 PD에게는 각각 징역 2년을 구형했습니다. 이에 대해 《PD수첩》 변호인단은 "비판보도를 했다고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사법주의 판결에 대해 《PD수첩》 제작진과 변호인단은 검찰이 쇠고기 협상단 등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PD수첩》제작진을 기소한 사건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2010년 1월 20일 재판이 열렸는데요, 법원은 《PD수첩》 제작진 전원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다우너 소, 아레사 빈슨 허위 번역,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의 모든 혐의를 부정했고, 《PD수첩》의 SRM 수입 보도 판결에 대해서도 허위 보도가 아니라며 《PD수첩》 제작진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2010년 12월 3일 검찰의 항소로 열린 2심 공판에서도 법원은 《PD수첩》제작진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재판부는  다우너 소가 광우병에 걸렸다는 부분, 미국인 아레사 빈슨의 사망원인이 광우병이란 부분, 한국인의 MM형 유전자와 광우병의 관계 등에서 일부 허위사실이 인정되나 명예를 훼손하거나 업무를 방해하려는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언론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한 우리 헌법에 비춰볼 때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2011년 9월 2일 대법원은 기소된 《PD수첩》 제작진 5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대법원은 "보도내용 중 일부가 객관적 사실과 다른 허위사실의 적시에 해당하지만, 국민 먹거리와 관련된 정부 정책에 대한 여론 형성에 이바지할 수 있는 공공성 있는 사안을 보도 대상으로 한 데다, 보도내용이 공직자인 피해자의 명예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고 악의적인 공격으로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명예훼손의 죄책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정정보도에 대한 내용도 추가되었습니다. 대법원은 다우너 소가 광우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보도, 아레사 빈슨의 사망원인이 광우병이라는 보도, 대한민국 국민이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더 크다는 보도에 대해선 허위사실을 확정하고 이에 대해 "우리 국민이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더 크다는 보도" 부분은 정정보도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이명박 정부의 새빨간 거짓말

최근 위키리크스가 미국 외교 전문을 공개했습니다. 그 안에는 한국과 관련된 내용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이 국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미국 쇠고기 수입과 관련하여 이명박 정부가 국민을 속였음이 백일하에 드러났습니다. 먼저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외교 전문의 내용을 보시죠.

출처 : 한겨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습니다. 이상득 당시 국회부의장은 이명박 대통령을 ‘뼛속까지(to the core) 친미·친일’이라고 표현하며 미국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까지 이야기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게다가 전여옥 의원이 했던 말은 더 가관입니다. 한국민들이 중국인 유학생의 난동 사태보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 더 격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친한 친구나 가족과의 싸움이 가장 심각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이명박 정부와 여당의 친미적 행보에 대해 미국은 호의적 반응을 보였습니다. 미국 외교 관계자들은 외교 전문에서 이 대통령에 대해 '유머 감각이 뛰어난 쾌활한 교섭 대상자'(2008년 2월 21일), '우리(미국)와 함께 헌신적으로 일하는 강한 친미주의자'(2009년 9월 24일), '사실상 모든 주요 문제에 미국을 지원하는 성향'(2009년 11월 5일)을 지녔다고 평가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미국 측과 만나 쇠고기 시장을 조속히 개방하겠다고 약속했음이 위키리크스에 의해 폭로되었다는 점입니다.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하여 어떠한 ‘사전협상’도 없었다고 했던 이명박 정부의 해명이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에 초청받기 위해 부시 미 대통령에게 쇠고기 협상을 갖다 바쳤습니다. 더구나 개방을 약속한 뒤 4월 총선을 고려해 그 이후에 공식 조인하자고 했으며,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은 타결 후에 주한 미 대사를 만나 수입재개를 6월 재보선 이후로 연기해 달라는 요청까지 했다고 합니다. (관련 기사:  <위키리크스> "MB, 방미전 쇠고기 개방 약속")

구린 게 많은 이명박 정부로서는 탐사보도로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알린 《PD수첩》이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입니다. 이후 이명박 정권하에서 진행된 '탐사보도 죽이기' 과정을 보면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고, 국민의 눈과 귀를 막으려는 어처구니 없는 시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PD수첩》 옥죄기로 탐사보도를 억압하다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알린 탐사보도를 시작으로 《PD수첩》은 가혹한 여정을 밟아야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하에서 검찰은 제작진을 강제 체포했고, 《PD수첩》작가의 이메일을 공개하는 등 인권 침해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PD수첩》은 촌철살인의 탐사보도로 많은 이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럴 때마다 《PD수첩》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을 간단히 정리했습니다.

광우병 쇠고기 관련
- 제작진 강제 연행 (檢, ‘PD수첩’ 제작진 또 체포)
-《PD수첩》 작가 이메일 공개 (검찰 《PD수첩》 작가 이메일 공개…"'막걸리 보안법' 공안 사건인가")
- 대법원의 무죄 판결에도 사과한 《PD수첩》(《PD수첩》무죄 MBC ‘이상한 사과’)

검사와 스폰서 관련
- 최승호 PD를 비롯한 《PD수첩》제작진 좌천 (《PD수첩》 제작진 좌천, MBC 보복인사 논란>)

4대강 사업 의혹
- 김재철 사장이 사규위반을 이유로 방송보류 지시(MBC 김재철 사장 "'《PD수첩》 4대강 비밀팀', 방송 보류하라" 지시(종합))
- 8월 24일 방영되었음. (MBC PD수첩 ‘4대강 수심 6m의 비밀’ 방영 이후)

한강르네상스 관련
- 오세훈 시장 관련장면 모두 삭제관련(MBC 노조 PD수첩 외압설 제기 “오세훈 시장 관련장면 모두 삭제해야만 했다”)

이명박 대통령 무릎 기도 사건
-《PD수첩》 부장, 무릎 기도 사건에 대한 입막음 지시('MB 무릎 기도사건' 보도 PD수첩 '입막음')

경악스러운 《PD수첩》의 현재 상황
-《PD수첩》 한 PD의 노트북에는 '훔쳐보지 마세요, 제발. 고맙습니다'가 적혀있다. 그런데 이 문구는 독일어다. 이 글을 못 읽어서인지 《PD수첩》김철진 팀장의 PD 사찰은 계속되고 있다. 믿지 못하겠다면 요즘 시사교양국 곳곳에 증설된 CCTV 화면만 분석해 봐도 안다. 《PD수첩》의 팀장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PD, 작가, AD의 책상을 열어보고 노트북의 내용을 뒤적이는지. 그래서 요즘 《PD수첩》에는 굳게 잠긴 서랍이 많다. (7월 19일 MBC 노보에 실린 글)

탐사보도의 탈출구, 비영리 저널리즘

지금까지 상황을 살펴보면 《PD수첩》 제작진이 처한 상황은 시급합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PD수첩》은 영리병원 문제, 한강 개발의 문제점, 재벌가 일감 몰아주기 같은 굵직굵직한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라고 할 만합니다.

권력에 대해 성역 없는 감시를 해야 하는 언론의 역할을 생각할 때 탐사보도의 가치는 빛을 발합니다. 탐사보도를 통해 억울한 사건이나 은폐·조작된 사건들이 제대로 알려짐으로써 사회를 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하에서 탐사보도는 설 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신문사나 방송사도 점차 탐사보도를 홀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주요 광고주인 대기업이나 정치권력을 가진 자들과 마찰을 빚기 때문입니다. 자본에 굴종하면 언론사와 방송사는 눈치를 보면서 결국 탐사보도를 축소하게 됩니다.

미국과 유럽의 비영리 저널리즘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해외에선 '비영리 저널리즘(Non-profit news 또는 Philanthrojournalism)'이라는 방식이 등장했습니다. 전통 미디어에서 외면받는 탐사보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비영리 저널리즘은 광고나 구독료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독지가나 재단의 기부를 통해 비판적 탐사보도를 생산합니다. 이들은 광고주 눈치를 볼 필요가 없으니 독자의 흥미를 이끌어내고자 노력하지 않고 비판적이고 심층적인 보도에 힘씁니다.

비영리 저널리즘은 2005년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생겨났습니다. 프로퍼블리카라는 비영리 저널리즘 매체는 2년 연속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프로퍼블리카는 의료진의 반강제적인 안락사 사건을 심층취재하여 진실을 밝혀냈고, 금융회사들이 어떻게 부동산 거품을 조장해 고객에게 손실을 입히고 금융위기를 초래했는지에 관해서도 심층취재했습니다. 이 두 건의 탐사보도는 프로퍼블리카에 퓰리쳐상의 영예를 안겼습니다.

한국에선 아직 비영리 저널리즘이라 할 만한 언론이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몇 년 전부터 UCC를 이용하여 사회의 이면을 실시간으로 전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몇몇 분이 힘을 모아 소규모 방송국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아직 심층적인 탐사보도 같은 결과물을 내놓지는 못했지만, 현장의 상황을 어느 언론보다 빠르고 객관적으로 전달하여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PD수첩》과 같은 탐사보도가 설 자리를 잃고 있는 마당에 비영리 저널리즘에 대해 연구하고 이를 실현할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언론의 정화를 위해 힘쓰는 여러 단체가 있으니 힘을 합쳐 기금을 조성하여 비영리 저널리즘을 구현할 통로를 만들면 어떨까요? 지금 우리 사회엔 탐사보도가 더 늘어나야 합니다. 이번 대법원 무죄판결로 《PD수첩》이 '우리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로서 성역 없는 탐사보도를 통해 사회를 정화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PD수첩》을 비롯한 다양한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힘을 얻어 당당히 취재하고 국민의 눈과 귀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을 기대합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지난번에 탐사보도의 개념과 역사에 대해 짧게나마 소개했습니다. 어떻게 도움이 되셨는지 모르겠네요. ^^ 지난 포스팅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탐사보도 관련 기사는 연재물로 기획했습니다. 처음에는 탐사보도라는 장르의 개념을, 그다음으로는 탐사보도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여러분께 소개하기로 약속드렸죠.


그래서 이번에는 한국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한국에는 3개의 지상파 방송이 있는데요, 방송국마다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장수하는 프로그램이 있는가 하면, 아쉽게도 사라지는 프로그램도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연재할 포스팅은 방송사마다 장수하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아울러 주요 사건도 함께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오래 방송되지 못하고 사라진 프로그램도 추후에 다룰 예정입니다.)

오늘 소개할 방송사는 MBC입니다. MBC는 정말 많은 탐사보도 프로그램를 제작하고 방영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주목해서 소개하려는 프로그램은 <PD수첩>과 <시사매거진 2580><불만제로> 입니다.

<PD수첩>

<PD수첩>은 1990년 5월 8일 <피코 아줌마 열 받았다>편을 시작으로 처음 전파를 탄 MBC의 간판격 탐사보도 프로그램입니다. 1980년대 말, 많은 시민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함께 등장한 기념비적인 탐사보도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90년부터 방영한 탐사보도 프로그램이다 보니 여러 가지 사건·사고를 직접 취재하여 방영했습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볼 때 <PD수첩> 스스로 이야기하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목격자'라는 말과 부합하는 면이 있는 듯하군요.

지금까지 <PD수첩>이 방영한 탐사보도 가운데 사회에 영향을 끼친 내용이 무척 많습니다. 황우석 교수  줄기세포 논란, 촛불집회의 효시가 된 효순이·미선이 사건, 사이비 종교 문제, 지도층 인사들의 비리, 고위인사들의 한국 국적 포기와 같은 굵직굵직한 사회의 부조리를 밝혀 시청자들에게 널리 알렸습니다. 특히 효순이· 미선이 사건을 다룬 방송은 국민이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게 한 기념비적인 방송이었다고 얘기할 수 있겠죠. 그 밖에도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간 동포들이 살고 있는 우토로 철거에 대한 탐사보도는, 국내에서 우토로 살리기 운동을 촉발하는 데 큰 영향을 주기도 했었죠.

방송금지 사태가 벌어진 3개의 탐사보도


방송을 위해 늘 현장을 취재하는 <PD수첩>이다 보니 여러 가지 우여곡절도 많았다고 합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세 번의 방송금지 사태였습니다.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직전 방영할 예정이었던 <그래도 농촌을 포기할 수 없다>편은 MBC 사장의 직권으로 방송을 금지한 사례였는데요, 이 때문에 MBC 직원들은 파업을 단행했습니다.

다음으로 만민교회 이단 목사 파문의 경우가 좀 특별합니다. 방송이 나가는 도중 갑자기 끊기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MBC 방송사으로 만민교회 신도들이 난입한 실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광신도들이 MBC 주조종실에 침입해서 기기를 부수는 바람에 방송이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황우석 교수 사태 때는 <PD수첩> 프로그램이 사실상 존폐위기에 놓였습니다. <황우석 신화의 난자의혹>편은 당시 언론 대다수가 '신화'로 일컫는 줄기세포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에 '황우석 열풍'이 불던 대한민국에서는 기업들이 <PD수첩>을 옥죄기 위해 MBC에 광고를 중단하는 사태에 이르렀고, 결국 자본의 힘 앞에서  <PD수첩>은 무기한으로 방송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그런 어려움에도 <PD수첩>은 끝까지 황우석의 줄기세포에 대한 비밀을 파헤쳐 결국 줄기세포가 없다는 진상을 밝혀냈습니다.

여전히 그들은 성역과 금기에 도전하고 있다


최근에도 <PD수첩>은 많은 외압을 받고 있습니다.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던 광우병 파동, 스폰서 검사사건, 4대강 사업과 관련된 탐사보도를 제작 방영하면서 PD가 경찰 조사를 받는 엄청난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PD수첩>의 보도 의지는 변함없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항상 이야기하는 시청자의 파수꾼, 외압과 무력에 굴하지 않는 <PD수첩>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죠. 이러한 의지의 산물일까요? 올해 <PD수첩>이 20주년을 기념하며 시청자들을 초대해 축하 방송을 하기도 했습니다.


<시사매거진 2580>


앞서 <PD수첩>을 소개해 드렸는데요, 이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PD들이 방송을 제작하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기자가 중심이 되어 제작하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바로 <시사매거진 2580>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PD수첩>과 비슷한 시기인 90년대 초(1994년)에 첫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외국인 매춘관광' '화장품 피라미드' 등을 다뤘습니다. <시사매거진 2580>의 첫 방송은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시사프로그램으로, 그것도 심야에 방송되는 프로그램으로  24퍼센트의 시청률을 기록했으니까요.

첫 방송 이후, <시사매거진 2580>은 첫해에만 2개의 상(이달의 프로그램상, 한국방송대상 보도부문 작품상)을 받았습니다. 또한 지존파 7인의 어린 시절 등을 다룬 방송으로 시청률 30퍼센트를 돌파합니다. 시의적절한 내용을 발 빠르게 전달했기 때문에 좋은 출발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최근에 <시사매거진2580>이 폭로한 사건으로 대한민국이 떠들썩했습니다. 재벌 일가인 어느 중견업체 회장이 회사 합병 과정에서 고용승계에서 제외되자 항의하기 위해 1인 시위를 벌인 탱크로리 기사를 야구 방망이로 구타한 사건이었습니다. <시사매거진2580>이 밝힌 내용은 구타 후 발설하지 않는 대가, 즉 맷값으로 2000만 원을 건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방송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른바 재벌의 폭행 사건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맷값 사건이 방영된 후 수많은 언론에서 이 사건을 다뤘습니다. 결국, 최 사장은 경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고 결국에는 구속되었습니다. '맷값 사건 보도'는 재벌이라는 권력을 등에 업고 벌인 파렴치한 행위를 탐사보도로 밝혀내어 시민의 억울함을 풀어준 통쾌한 방송이었습니다.


<불만제로>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돈을 주고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받으면서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대부분의 시민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잦았죠. 하지만 요즘은 달라졌습니다. 소비자가 자신의 권리를 찾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돈을 낸 만큼 제값을 따지는 게 당연하다는 점을 이젠 소비자 스스로 느끼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발맞춰 MBC에선 소비자들의 정당한 권익을 찾아주는 탐사보도 방송을 제작하여 방영하고 있습니다. 바로 <불만제로>입니다.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 음식재료를 잘못 쓴 어떤 기업이 망할 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유통기한이 지난 재료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들통 난 사건이었는데요, 그 일이 일어나자 기업 총수가 TV에 나와서 90도로 인사하며 사죄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한동안 그 기업의 제품은 거의 팔리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소비자의 대응이 조금 약한 편이죠. 그런데 인터넷 매체가 발달하면서 문제가 있는 상품에 관한 불만사항을 올리는 사례가 늘었습니다. 그런 불만이 쌓여 점차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자신의 권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불만제로>는 탐사보도 형식으로 많은 불량기업을 폭로하며 그 몫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불만제로는 우선 시민의 여러 가지 불만을 접수합니다. 그리곤 직접 확인 과정을 거치는데요, 그 과정이 상당히 정확하고 과학적입니다. 이를테면 기업의 문제라면 내부 고발자를 인터뷰하고, 몰카를 이용하여 잡입취재를 해서 생생한 증거물을 수집하는 방식이죠.
소비자의 불만사항을 직접 확인하는 실험과 분석을 진행한 다음, 콩트 형식으로 알기 쉽게끔 설명하는 진행방식은 <불만제로>의 큰 장점입니다. 기존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시사적이고 대의적인 내용이 많다면, <불만제로>는 소비자들의 일상적인 삶에서 피부에 와 닿는 내용을 보도한다는 점에서 유익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불만제로>의 가장 큰 특징은 사후관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번 방송으로 끝내지 않고 다시 찾아가 소비자의 불만 내용이 시정되었는지 재차 확인합니다. 시정 조치를 하지 않은 곳은 또다시 고발해서 바로잡도록 했고, 제대로 고친 곳은 그 내용을 시청자에게 당당하게 공개했습니다. 방송에서 소비자들이 바라는 게 무엇인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형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법이 개정되어 <불만제로>가 문제가 있는 기업체를 고발한 다음 그 업체 정보를 게시판에서 알려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방송에서 다룬 기업의 상호를 공개하기 시작했고, 또한 취재 과정에서 우수했던 기업의 상호나 연락처도 공개했습니다. 소비자들이 잘못된 기업에 대해 알고 대처할 수 있도록 한 것이죠.


지금까지 MBC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MBC에서 방송했던 탐사보도 프로그램은 더 있으며, 그 방송이 정말 많은 일을 해냈습니다. 예를 들어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프로그램은 과거에 쉬쉬하고 지나갔던 암울한 과거를 바로잡아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김혜수의 W>는 세계 여러 나라에 눈을 돌려 우리가 뉴스를 통해 미처 보지 못하는 새로운 사실을 전해주었습니다(W를 통해 제 3세계 불우 아동들에 대한 후원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자세히 다룬다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로 많지만, 이 정도로도 여러분이 국내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소중함을 이해하는 데는 충분하리라고 봅니다. 앞으로 다룰 다른 방송사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서 더 많은 정보를 전하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



못다 한 이야기
** MBC의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PD수첩><시사매거진 2580>< 불만제로> 등)은 imbc홈페이지에 회원가입후 무료로 볼 수 있으며 일부는 다운로드까지 가능합니다.
** <PD수첩>의 인기는 코미디 패러디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김현철 씨의 <PD공책>이 바로 그것이죠. ^^
** 현재 <PD수첩>은 많은 고초를 겪었으며, 낮아진 퀄리티로 인해 여러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입니다. 이럴때일수록 따끔한 비판도 좋지만, 따뜻한 지지로 많은 힘을 북돋아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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