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우스다코타주에 유명한 바위산이 있습니다. 좌에서 우로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에이브러햄 링컨 등 미국 역대 대통령 4명의 얼굴이 조각돼 있죠. 미국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꼽히지만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성지였던 러시모어산에 지금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환경 파괴 행위를 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북한에는 이런 큰바위 얼굴이 많습니다. 금강산 바위 곳곳에 김일성과 김정일 얼굴을 새겼고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붉고 흉한 흔적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뿐인가요? 북한 지역엔 김일성 부자의 동상도 많습니다. 북한 전역에 수천 개는 된다고 하죠.

 

 

그런데 울산시가 이런 큰바위 얼굴을 좋게 봤나 봅니다. 기업가의 도전 정신을 기리겠다며 40m 높이의 기업인 얼굴 조각상 건립을 추진했기 때문입니다. 조각상 건립에 투입 예정인 세금은 자그마치 250억 원입니다. 부지 매입비 50억 원과 조각상 설계 제작 설치비에 200억을 잡았다고 합니다.

 

출처 - 울산시

 

울산시는 '위대한 기업인 조형물 건립' 예산 등을 포함한 총 284억 원 규모의 제2회 추경예산안을 시의회에 제출했습니다. 당연히 사업 적절성을 두고 논란이 일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울산시당은 "최근 가스, 전기 등 공공요금이 폭등했고 물가도 급등하고 있다"며 "추경예산은 당장 시급을 요하는 사업을 반영하도록 하는 것인데 제2차 추경예산 284억 원 중 전체에 88% 이상이 흉상 건립을 위한 예산"이라며 "이것이 당장 시급을 요하는 사안이라 할 수 있는 것인가" 하고 되물었습니다. 위대한 기업인 조형물 예산 때문인지, 나머지 34억 추경안마저 제대로 사용하려고 추경한 게 맞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출처 - MBC

 

울산시는 국내 대표 그룹 창업주인 현대그룹 고 정주형 회장, 롯데그룹 신격호 전 회장 등의 얼굴 조각상으로 랜드마크를 만들어 '기업하기 좋은 도시' 이미지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북한의 김일성-김정일 부자처럼 우상화하자는 건 아닐 덴데, 후보에 오른 국내 그룹 회장들조차 저 돈으로 울산에 있는 기업들을 도우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출처 - 페이스북

 

울산시에 이어 경북에서도 조형물 설치 논란이 거셉니다. 경북 칠곡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이승만, 트루먼 전 한미 대통령의 동상이 새벽에 기습 설치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경북도지사가 민간단체인 '이승만, 트루먼 동상건립추진 모임'의 건의를 받아들여 성사된 일이라고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우리 군과 UN군의 군통수권자였던 두 전직 대통령의 정신을 바르게 평가하고 계승하기 위해 세웠다는 취지인데요, 4.19 단체와 민족문제연구소는 헌법정신뿐만 아니라 4.19정신에 위배되는 것으로 공공터에 독재자의 동상을 함부로 세워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출처 - MBC

 

이승만·트루먼 전 대통령 동상의 기습 설치에 대해서는 이해가 엇갈립니다. 이승만처럼 평가가 극단적으로 나뉘는 인물의 동상이 전국에 6개나 있죠. 백보 양보해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의 경우 한국전쟁 당시 군통수권자였다는 상징성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겠죠. 반면 미국 대통령인 트루먼의 동상은 임진각에 이미 있습니다. 6.25 참전을 결정한 트루먼에 대해 한국인으로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수도 있겠으나, 그런 기준이라면 한국전쟁을 치른 한국은 전적지마다 트루먼 대통령, 맥아더 장군 등의 동상을 수도 없이 세워야 하지 않을까요? 동상이 아니어도 고마움을 전하는 방법은 다양할 것입니다. 있는 동상 관리를 잘하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고요. 다행히 울산 기업가 흉상은 울산시의회의 예산 삭감으로 제동이 걸렸다고 합니다. 울산시가 요청한 추경예산안 250억 원 중 부지 매입비 50억 원을 제외한 기업인 흉상 설치 사업비 200억 원을 전액 삭감했습니다. 시의회는 삭감 사유로 "기념사업인 만큼 시민이 공감하는 명품 사업으로 추진하기 위한 절차와 시기 등을 고려했다"고 합니다. 흉상 건립 자체를 엎지 않은 터라 다시 추진될 여지를 남긴 것은 아쉬운 대목이지만, 일단 불필요한 세금 낭비를 중단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출처 - MBC

 

현대 사회에서 잘 만든 조형물은 뜻깊은 랜드마크가 됩니다. 광화문 한복판에 있는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등 좋은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잘못 만든 조형물은 돈만 들어간 흉물이 될 수 있습니다. 다부동전적기념관에는 지금 5m 높이의 장막을 친 상태입니다. 높이 4m 20cm, 중량 3t짜리 청동 이승만, 트루먼 대통령 동상이 그 안에 가려져 있습니다. 새벽에 기습적으로 세운 것도 문제인데 설립 일정을 공개하지도 않고 있다니 기가 막힙니다. 반대하는 사람들과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당당하지 못해 숨겨두는 게 동상건립추진 모임이 말하는 두 전직 대통령의 정신인가 봅니다. 

지갑이나 가방 하나가 몇백에서 몇천을 호가하는 비싼 브랜드를 알고 계실 겁니다. 샤넬, 에르메스, 루이뷔통 같은 이른바 '명품' 말입니다. 경제, 시사 유튜브 크리에이터 슈카는 최고의 마케팅 성공 사례로 이런 '명품'을 꼽았습니다. 사치품을 뜻하는 'Luxury'를 한국 수입업체에서 명품으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거든요. 단어를 바꿔 부른 것만으로도 우리는 사치품을 뭔가 장인이 만든 대단히 가치 있는 물건으로 생각하게 됐다는 겁니다. 이런 성공적인 마케팅을 바탕으로 작년 한국은 세계에서 1인당 명품 소비를 가장 많이 한 나라가 됐습니다.

 

출처 - 슈카월드

 

이렇게 성공적으로 개념을 바꾼 마케팅은 '사치품'에만 있지 않습니다. 요즘 '비건'이 각광받고 있죠. 고기를 먹지 않고 우유나 달걀도 먹지 않고, 실크나 가죽처럼 동물에게서 원료를 얻는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를 비건이라고 합니다. 극단적인 기후 변화의 시대에 환경 보호에 관심을 두고 친환경 삶의 방식으로 바꿔나가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시대인 만큼 사람들이 왜 '비건'에 열광하는지 이유를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문제는 이런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관련 상품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난다는 겁니다. 일단 상품에 '비건'이란 이름이 붙으면 죄다 비싸집니다. 그중엔 심지어 친환경이 아닌 경우도 허다합니다.

 

출처 - 패션엔

 

비건 레더, 페이크 퍼, 비건 치즈 같은 말을 요즘 자주 들어보셨죠? 비건 레더는 동물의 가죽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소재를 사용해 가죽 느낌을 낸 제품을 말합니다. 식물을 이용해 동물을 죽이지 않고 친환경적인 가죽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시겠죠. 네, 물론 그런 제품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건 레더에는 합성 가죽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과거 '레자'라고 부르며 싸구려 가짜 가죽으로 취급되던 것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동물 가죽을 쓰지 않았다고 '비건 레더'라는 프레임을 뒤집어쓰고 고가 친환경 제품으로 과대 포장되고 있어 문제입니다. 합성 가죽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폴리염화비닐(PVC)이 주요 소재입니다. 제조와 폐기 과정에서 다이옥신을 방출하는데 인간이 만들어낸 화학물질 중 가장 발암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죠. 

 

출처 - Pinatex / Bolt Threads

 

한 물건을 오래 쓰는 것은 친환경적 삶의 방법입니다. 그런데 합성 가죽은 내구성이 진짜 가죽에 비해 확연히 떨어집니다. 수십년을 사용할 수 있는 진짜 가죽 제품과 달리 인조 가죽 제품은 자주 바꿔야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렇게 되니 비건의 애초 의도 중 하나인 환경 보호와 상관없이 쓰레기가 양산되는 문제가 생깁니다. PVC 같은 재료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비건 레더도 있긴 있습니다. 파인애플 줄기 섬유질로 만든 비건 가죽, 버섯 균사체를 활용해 만든 비건 가죽 같은 제품은 비건이란 자향점을 제대로 추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비건 치즈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지난 2012년 피자 업계에 모조 치즈 논란이 있었던 사실을 기억하시는지요? 이 때문에 59피자는 자기네 피자에 100% 자연산 치즈가 들어간다고 광고를 해야 했습니다. 모조 치즈는 우유로 만들지 않는데요, 팜유 등 식물성 기름에 전분 등을 넣어 치즈와 유사한 맛과 식감을 내죠. 당시엔 이를 가짜 치즈, 모조 치즈, 식용유 치즈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현재 시점으로 보면 모조 치즈가 비건 치즈의 일종인 셈입니다. 지금은 비건 치즈를 넣은 피자나 햄버거가 아무런 문제 없이 판매되고 있는 상황이고요.

 

출처 - 59피자

 

원가를 낮추기 위해 모조 치즈를 일반 치즈로 속여 판 10여 년 전 사건과 지금의 비건 치즈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겠죠. 요즘 나오는 비건 치즈 제품들은 코코넛 오일, 캐슈너트 오일 같은 고가의 식물성 오일에 단백질과 유기질 등의 성분을 추가해 영양까지 자연산 치즈와 비슷하게 구현한다고 하니까요.

 

출처 - 비건 치즈 아머드 프레시

 

하지만 비건 레더가 됐든, 비건 치즈가 됐든 제품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달라진 것은 이미지와 프레이밍에 따른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예전엔 나쁜 것으로 취급됐던 것이 지금은 좋은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죠. '그린(Green)'이 처음에는 좋은 의미로 등장했지만 곧 그런 제품의 양산으로 쓰레기만 더 만들어 내는 '그린 워싱(Greenwashing)'과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시대가 변해 사람들의 가치관이 변해서이기도 하고 그런 사람들의 생각 변화에 편승한 마케팅의 승리이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비건’이 유행하고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는 사실입니다. 이제는 진짜로 동물을 보호하고 환경을 생각하며 소비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한 생명체로 환경을 신경 쓴다면 비건 제품을 구매하기 전에 진정으로 비건의 가치를 제대로 추구하고 있는 제품인지 꼼꼼히 따져봐야겠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 1년을 넘겼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놨던 공약 가운데 이행한 것도 있고 진행 중인 것도 있고 파기한 것도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청년들을 위한 공약을 여럿 내놨는데요, 그중 '청년도약계좌'가 이번 달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근로나 사업 소득이 있는 청년들이 중장기적으로 재산을 형성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돕겠다는 취지입니다. 취지로만 보면 좋은 정책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실효성과 관련하여 다양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출처 - YTN

 

청년도약계좌는 개인 소득 6000만 원 이하의 19~34살 청년을 대상으로 매달 최대 70만 원을 내면 납입 금액에 비례해 정부가 기여금을 지원하는 금융 상품입니다. 이자 소득은 비과세 혜택을 주고 만기 5년이 끝나면 5000만 원 안팎의 목돈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고 하죠. 만기 전 중도 해지할 경우에는 특별중도해지 요건에 해당하지 않으면 그간 낸 돈만 돌려받고 정부 기여금과 비과세 혜택은 지원받을 수 없습니다.

 

출처 - 국민의힘

출처 - SBS Biz

 

특별중도해지 요건은 사망, 해외이주, 천재지변, 사업장의 폐업 등입니다. 언뜻 보면 목돈 마련에 도움이 될 것 같지만, 과연 청년들이 수십만 원에 달하는 돈을 5년간 꼬박꼬박 넣기가 쉬울까요? 지금처럼 고물가 고금리가 장기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요즘 청년들 사이에서 '무지출 챌린지'나 '거지방'이 회자하고 있습니다. 이런 신조어가 생기는 것은 그만큼 청년들의 삶이 팍팍하다는 증거입니다. 필수적인 생계비마저 줄이는 마당에 과연 중도 해지 없이 만기 5년을 버틸 청년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출처 - 카카오톡

 

지난 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 <청년미래의 삶을 위한 자산 실태 및 대응방안>에 따르면 청년들의 평균 부채 규모가 지난 2012년 3405만 원에서 2021년 8455만 원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보고서는 20%가 넘는 청년들이 연소득의 세 배 이상 빚을 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출처 - 노컷뉴스

 

KDI의 보고서 <금리인상에 따른 청년층의 부채상환 부담 증가와 시사점>에서는 최근 기준금리 1%p 인상에 따른 20대의 연간 소비 감소폭은 약 29만 9000원으로 60대 이상의 8.4배에 달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빚은 늘었는데 쓸 돈이 적은 것이 현재 청년들의 상황입니다. 앞서 문재인 정부에서 출시했던 2년 만기의 청년희망적금은 연 최고 9.3%의 금리 혜택으로 당초 예상인 38만 명의 무려 8배에 가까운 286만 8000명의 가입자가 몰렸습니다. 그런데 이조차도 출시 1년 만에 가입 인원 15%가 해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청년도약계좌는 만기가 3년이나 더 길고 납입 금액도 더 많습니다. 중도 해지하는 사례가 더욱 많을 것이 불 보듯 뻔합니다.

 

출처 - YTN

 

청년도약계좌의 성과는 많은 가입자를 내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이 5년 만기까지 적금을 잘 부어 목돈을 마련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중도 해지를 막는 방안을 제대로 마련해야겠죠. 금융위원회는 예적금담보부대출의 가산금리를 조정해 계좌 유지를 지원한다는 방침입니다. 예적금담보부대출은 예금 가입자가 급하게 돈이 필요할 경우 예금에 있는 돈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겁니다. 예적금담보부대출 이자는 기준 금리에 은행이 자체적으로 붙이는 가산금리를 더해 산정되는데 금융위는 청년도약계좌에 적용될 가산금리를 다른 상품보다 낮게 조정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중도 해지를 막을 수 있을까요? 실질적인 대책이라 하기엔 너무 약하네요. 청년이라도 급전이 필요한 일은 언제든 생길 수 있습니다. 결혼이나 출산, 주택 구매 같은 특정한 상황이 아니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청년도약계좌의 특별중도해지 요건에 생애 첫 주택 구매는 포함돼 있지만 '결혼'이나 '출산' 같은 사항이 없습니다. 청년도약계좌가 실질적인 도움이 되려면 일단 특별중도해지 요건을 확대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출처 - 뉴시스

 

이 밖에 중도해지를 방지할 방안은 뭐가 있을까요? 정확히는 아직 없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내걸은 공약이고 정부 출범 1년이 지난 현시점에 출시를 며칠 앞둔 공약이지만, 중도 해지를 방지하기 위한 <청년 자산 형성 정책 평가 및 개선 방향>이란 주제의 연구 용역 결과조차 청년도약계좌 출시 이후에 나올 전망입니다. 용역의 결과를 당장 적용하지도 못할 판이네요. 5년이 지나 5000만 원의 목돈 마련에 성공할 청년이 얼마나 될까요? 가능한 많은 청년이 성공하길 바라지만, 정작 필요한 청년들은 도중에 떨어져 나가고 넉넉한 사람의 주머니만 채우게 될까 봐 걱정스럽습니다.

지난달 31일 오전에 들어온 긴급재난문자로 수많은 국민이 깜짝 놀랐습니다.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도 깜짝 놀라 마음을 쓸어내려야 했죠. 그들은 내용을 캡처해서 지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벽 6시 40분경, 재난문자에 깜짝 놀라 깨신 분이 많으셨을 텐데요. 이른 아침부터 고민이 많으셨겠죠? 출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전전긍긍한 분도 계셨을 줄 압니다. '긴급재난문자'라면서 '왜' 대피하라는 건지, '어디로', '어떻게' 대피하라는 건지, 중요한 내용을 쏙 뺀 채로 내용이 들어와 많은 사람들이 혼란에 빠졌습니다. 뉴스를 찾아봐도 라디오를 들어봐도 특별한 얘기도 없어 대체 무슨 일인지 몰라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죠.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게 실제 상황이었다면 어땠을지 간담이 서늘했습니다.

 

출처 - JTBC

 

북한이 우주발사체를 발사하겠다는 정보는 이전부터 알 수 있었으나 행정안전부와 서울시의 원활하지 못한 소통이 문제였고, 여기에 더해 허술한 재난문자 운영 상태까지 드러나버렸습니다. 경계경보 발령 시각은 오전 6시 32분, 서울시가 재난문자를 발송한 시각은 오전 6시 41분이었습니다. 10분 가까이 발송이 지체되었을 뿐 아니라 정작 중요한 정보는 빠져 있었습니다. 합동참모본부는 오전 6시 29분 북한이 발사한 우주발사체를 확인하고 행안부 중앙민방위경보통제센터로 관련 내용을 전달했다고 하죠. 행안부의 지령방송에는 '현재 시각, 백령면 대청면에 실제 경계경보 발령. 경보 미수신 지역은 자체적으로 실제 경계경보 발령'이라는 내용이 담겼다고 하는데요, 서울시는 문자 발송 전에 '경보 미수신 지역'에 서울 지역이 해당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행안부 중앙통제소에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소식에 공무원들도 공황이 왔을 수도 있겠죠. 실제 상황이라는데 행안부든 서울시든 담당자의 입장에선 혼돈의 도가니였겠죠. 긴급 상황이라고 판단해 10분 늦었지만 재난문자를 일단 내보낸 담당자의 고충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적인 공감과는 별도로 정부 기관 간에 제대로 된 소통이 되지 않은 점, 연락을 주고받을 의무가 있는 담당관들이 업무를 소홀히 한 점, 이를 책임지고 감독해야 할 고위 공무원들의 기강 해이는 해결해야 할 문제로 지적할 수밖에 없습니다.

 

출처 - YTN

 

이번 문자 사태에서 놀라웠던 점은 위기 상황 시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재난문자 내용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그동안 재난문자를 발송하지 않았던가요? 오세훈 서울시장은 "시민 혼선을 막고 신속하고 정확한 안내를 위해 경보 체계, 안내 문구와 대피 방법 등을 더 다듬어 정부와 협조해 발전시켜 나가겠다"며 "이번 일로 혼선을 빚은 점은 거듭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재난문자를 이번 일로 처음 쓴 것도 아니고 코로나19 상황으로 몇 년째 사용하고 있었으니까요. 오 시장의 발언만 놓고 본다면 여태껏 제대로 된 기준 없이 재난문자를 발송했다는 얘기 아닙니까? 

 

출처 - 굿모닝충청

 

심지어 북한은 며칠 전부터 군사위성 발사를 예고했습니다. 항행 안전과 관련한 국제해사기구(IMO) 결의에 따라 지정 조정국인 일본 정부에도 사전 통보된 상황이었습니다. 한미 군당국의 정보자산을 통해 발사 준비 단계부터 실시간 감시가 이뤄지고 있었던 상황에서 이 난리가 났는데, 사전통보 없이 미사일을 발사하기라도 한다면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기 두렵습니다. 한국인뿐 아니라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나 혹은 관광 온 외국인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몰라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실제로 이날 각종 행사에 참여하기로 했던 외국 국빈들과 바이어들이 깜짝 놀라 행사 참가를 연달아 취소했다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위기 관리는 경제적 이익과 직결되는 중요한 사항입니다.

 

출처 - JTBC

 

같은 시각 일본 오키나와현이 발송한 경보 문자에는 "미사일 발사. 북한에서 미사일이 발사된 것으로 보입니다. 건물 안 또는 지하로 대피하십시오"라고 경보가 발령된 상황과 대피 안내와 관련된 정보가 제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북한이 발사체를 쏘아 올리고 불과 2분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일본보다 훨씬 잘했다는 소릴 듣던 위기 관리와 메시지 발신은 1년 새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재난 상황에 대한 신속하고 정확한 기준을 정립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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