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월 25일은 법의 날입니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법 앞에 평등'이라는 말이 무색한 역사를 살아온 우리는 법에 대해 할 말이 많습니다. 권력의 횡보를 막고 폭력의 지배를 배제하고 인권을 옹호하며 공공복지를 증진하려면 무엇보다 법적 질서가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지난 3월 10일 대한민국 국민의 이름으로 국정농단으로 한국 사회를 문란케 한 현직 대통령을 파면한 역사적 결단은 의미가 큽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주문으로 3개월여 탄핵심판 절차가 마무리됐습니다. 권력의 정점에 있던 대통령이 법적 절차에 의해 구속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법치주의의 원칙을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싶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최순실로 대표되는 비선과 현직 지도부의 결탁으로 대한민국 사회를 어지럽히던 일부 세력이 법의 철퇴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습니다. 국정농단 이후 이어지는 사건들을 보면 준법정신, 법의 존엄성 이전에 법에 미안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일투성이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 노컷뉴스


우선 국정농단의 핵심이자 이 사태로 가장 오랜 기간 수사를 받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구속영장 기각이 있었습니다. 박영수 특검 당시 영장이 기각되어 국정농단의 마지막 보스는 박근혜도 최순실도 아닌 우병우가 아닌가 하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죠. 보강 수사로 수많은 자료를 모아 영장을 재청구했을 땐 100퍼센트 구속영장이 발부될 것으로 검찰이 호언장담했습니다. 물론 국민도 그렇게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4월 12일 서울중앙지법 권순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구속영장을 기각했습니다. 혐의와 관련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겁니다.


출처 - 노컷뉴스


우병우가 혐의를 잘 감춰서 그러한가 했는데, 밝혀진 이야기를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정황이 보입니다. 지난 13일 사정 당국에 따르면 검찰이 청구한 우병우 구속영장의 분량은 20쪽 정도였습니다. 검찰이 특수본을 세워 우병우의 범죄를 밝히겠다고 호언장담했으나 정작 특검 때보다 범죄 사실 분량을 3분의 1로 줄여 영장 청구를 했기에 검찰의 제 식구 봐주기라는 질타가 쏟아졌죠.

 

출처 - 경향신문

 

검찰이 우병우를 손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현 검찰총장을 비롯해 국정농단 당시 수천 번 전화 통화를 했던 검찰 수뇌부가 물귀신처럼 함께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일 겁니다. 박영수 특검이 우병우 일가가 가족회사의 자금을 횡령한 사실을 확인하고 자료를 넘겼으나 검찰이 이를 뭉갠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법의 칼날이 누구 앞에선 무뎌지고 누구 앞에선 날카로워진다면 '법 앞에 평등'이라는 헌법 정신이 훼손됨은 명명백백합니다.


출처 - 뉴스1


법의 정신을 짓밟는 것은 검찰만이 아닙니다.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파문도 유야무야 지나가는 중이죠.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법원 수뇌부가 법관들의 사법개혁을 논의하는 국제인권법연구회를 탄압했고 이른바 진보 성향의 법관들을 대상으로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죠. 문체부의 문화계 인사를 대상으로 한 블랙리스트가 사실로 드러나 사회적 충격이 컸는데, 공명정대한 법 집행을 해야 할 법원 안에서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이 컸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사건의 배후로 의심받는 양승태 대법원장이 직접 임명한 진상조사위원회는 꼬리 자르기를 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대한 부당한 압력은 일부 인정했지만 법원 블랙리스트와 관련해서는 조사 자체가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내놨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제기한 판사들이 블랙리스트 파일이 든 것으로 추정되는 법원행정처 컴퓨터 조사를 요구했으나 응하지 않았고 이후 이 컴퓨터의 파일이 대거 삭제됐다는 진술까지 나왔습니다.


법의 날을 맞이해 묻고 싶습니다. 법과 관련된 종사자들이 과연 대한민국 국민에게 법을 계몽할 자격이 있습니까? 검찰과 법원의 부끄러운 자화상만 드러나는 법의 날이 아닌가 합니다.

 

출처 – 네이버 웹툰


남녀노소 쉽게 읽을 수 있는 웹툰이 때론 우리 생각의 사각지대를 메워주곤 합니다. 네이버의 수/토 웹툰인 〈나는 귀머거리다〉(라일라)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청각장애인인 작가 라일라는 어린 시절부터 대학생활에 이르기까지 귀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비장애인과 다르게 느낄 수 있었던 면면을 재밌게 표현하여 공감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수어'에 대해 연재하고 있는데요, 수어에 외국어는 물론 사투리, 나아가 에스페란토 같은 국제수화가 따로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비장애인들이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 이런 시도가 비장애인들로 하여금 장애인의 삶을 생각하고 배려하게 해주는 작은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 스타벅스 유튜브


생활 속에서 장애인을 배려하는 서비스도 조금씩 확산하는 추세입니다. 식사 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찾아가는 스타벅스 매장에는 '사이렌 오더'라는 게 있습니다. 스타벅스의 앱 서비스인데요, 스타벅스 앱에서 커피를 주문하면 접수, 음료 제조, 그리고 픽업까지 모두 때에 맞춰 알려주기 때문에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비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이 모든 과정을 일일이 다 알려주고 볼 필요가 있나 싶겠지만, 청각장애인에게는 정말 편리한 서비스입니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자기 차례가 언제 돌아올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사이렌 오더를 이용하면 픽업대를 보면서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고, 매장에서 무선호출기를 받는 수고로움도 없어집니다. 청각장애인의 일상에서 보면 우리가 배려해야 할 부분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출처 - 국립국어원



국립국어원 한국수어사전 : http://sldict.korean.go.kr



국립국어원은 장애인의 날인 오늘(4월 20일)부터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온라인 한국수어사전에서 손가락 모양으로 단어 뜻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수형 검색 기능을 제공한다고 밝혔습니다. 여태까지는 한글로만 수어를 찾을 수 있어 실제 이용자인 청각장애인들이 수어로 사전을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컸습니다. 이런 미진한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국립국어원은 의견 보내기 기능을 추가했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 조선일보


우리 사회가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간극을 조금씩 좁혀가곤 있지만 여러모로 부족한 현실입니다. 특히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사회적 편견이 문제입니다. 

 

사이렌 오더로 호평을 받은 스타벅스는 2007년부터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손잡고 체계적인 장애인 바리스타를 양성해 현재 190여 명의 장애인이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청각장애인이 물을 떠주자 옆의 비장애인에게 아이가 마실 거니 당신이 다시 떠달라며 장애인을 마치 전염병자 취급을 하거나, 술 취한 아저씨가 자기 말을 무시한다며 청각장애인 바리스타에게 뜨거운 커피잔을 던지는 등 안하무인의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하죠. 이런 어이없는 사례를 볼 때마다 우리 사회의 인권감수성이 너무 낮은 것이 아닌가 싶어 안타깝습니다.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장애인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장애인등급제 폐지를 공약으로 발표한 대선 후보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 1명에 불과합니다. 장애인등급제는 장애인을 소득과 중증, 경증 등 의학적 판단에 따라 1~6등급으로 나눠 복지 서비스를 차등지원하는 제도입니다. 중증장애인이어도 인프라가 좋을 경우 공공서비스가 필요 없을 수도 있고 경증장애인이라도 처한 환경에 따라 더 많은 서비스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필요 없는 곳에 과잉 서비스가 되는 곳도 있고 절실히 필요한데 등급 때문에 지원을 못 받는 경우도 생깁니다. 

 

선진국은 장애 서비스를 우리나라 같이 의학적 등급이 아닌 개인의 필요와 욕구에 따라 분류하여 시행합니다. 필요한 곳에 적합한 복지를 제공하는 세심한 서비스가 우리 사회에도 필요합니다. 박근혜도 대통령 후보 시절 장애등급제 폐지를 약속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국정을 농단하며 기업들로부터는 돈을 챙기면서도 예산 핑계를 대며 장애인등급제 폐지 공약을 공수표를 날려버렸죠.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려면 이번 대선에서 각 후보들의 복지 관련 공약을 꼼꼼히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또한 후보들이 자신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인지, 각자의 평소 인권감수성이 어떠한지까지 아울러 따져보시길 바랍니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애인이 불편함 없이 살 수 있는 사회, 그것이 진정한 국격의 기준이 아닐까 싶습니다.

 

출처 - 내일신문


세월호 참사 3주기인 지난 4월 16일, 이전과 다른 애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설치된 정부 합동 분향소와 인천가족공원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 등지가 노란 리본을 달고 노란 조화를 든 시민 2만여 명으로 붐볐기 때문입니다. 국가적 참사를 추모하는 물결이 당연한 것 아니냐 싶으시겠지만, 사실 그동안은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죠.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지우기에 열을 내던 1년 전 2주기 추모 행사에는 2500명이 참석했을 뿐이었으니까요. 그때와 비교하면 3주기 행사 참석 인원은 족히 10배 규모로 늘었습니다.


출처 - MBN


국내 추모 물결만큼이나 해외에서도 세월호 희생자를 애도하는 이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일본 피겨 스케이팅 대표 선수였던 안도 미키는 자신의 SNS에 "같은 하늘 아래서 2014~2017년 4월 16일을 기억한다. 유족들이 미소를 찾길 바란다. 일본에서 기도를"이라는 글과 함께 노란 리본을 올렸습니다. 안도 미키는 세월호 참사 당시 피해자들을 위해 1000달러를 기부한 바 있고 매년 4월 16일에 꼬박꼬박 추모해왔다고 합니다.


출처 - 국민일보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밴드 중 하나인 콜드플레이도 지난 16일 내한 공연 중에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했습니다. 10만여 관객 앞에 노란 리본을 착용하고 무대에 오른 콜드플레이는 공연 두 번째 곡으로 자신들의 1집 수록곡 〈Yellow〉를 불렀습니다. 세월호의 노란 리본을 염두에 둔 선곡이었죠. 관객의 야광 팔찌가 노란색으로 빛나고 전광판에 노란 리본이 띄워져 자연스레 추모 분위기가 연출되었습니다. 콜드플레이 멤버들과 관객들은 10초간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했습니다.


출처 - 뉴시스


이후 콜드플레이는 한국인을 위로하는 마음을 담아 부르겠다며 〈Fix You〉를 불러주었습니다. 그리고 지난겨울 박근혜 탄핵을 부르짖는 현장에서 즐겨 불리던 히트곡 〈Viva La Vida〉가 흘러나오자 관객들은 한국 특유의 떼창으로 화답했습니다. 이 노래는 프랑스 대혁명으로 단두대 앞에 선 루이 16세의 시점을 가사로 쓴 혁명 찬가이기에 뜻깊은 점이 있죠.


출처 - 뉴스핌


이렇게 국내외에서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가운데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는, 과거 속에 사는 구시대 인물들도 없진 않았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덮으려 했던 박근혜의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 홍준표는 유일하게 세월호 3주기 추모식에 참석하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는 다른 대선 후보들이 세월호 3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진실 규명을 약속할 때 3년이나 우려 먹었으면 많이 했다는 망언으로 세월호 유가족의 마음을 후벼팠습니다.  말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출처 – 뉴스1


한편 지난 16일 세월호 참사 유족인 김영오 씨의 SNS에 한 누리꾼은 어묵으로 리본 형태를 만들어 보내며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한 짓" "4·16 오뎅데이 오늘은 오뎅 먹는 날" "애 살아 있을 때 교육비 한 푼 안주다 죽으니 찾아와 애비 행세" 같은 메시지를 보내 국민의 공분을 샀습니다. 지난 3년간 세월호 유족을 모욕하고 괴롭힌 일베 등 극우 커뮤니티 회원의 소행이 아닌가 싶은데요, 자신들의 악행을 깨닫지 못하고 구시대의 미몽에 빠져 사는 모습이 한심스럽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3주기에 앞서 세월호 인양이 완료되었습니다. 육상 거치도 무사히 끝나 참사 1098일 만에 세월호 선내 수색이 시작되었죠. 수색 첫날 신발, 가방, 의류, 구명조끼 등 총 18점이 나왔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 이제 시작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세월호 희생자 추모와 안전사회를 위한 시설 조성은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구속된 박근혜는 세월호 7시간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 중이고 그 후임이 되겠다며 나온 대선 후보라는 사람은 망언을 일삼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대통령이 선출되어 세월호 4주기에는 모든 진실이 낱낱이 밝혀지고 우리 사회의 안전 의식도 더 높아지길 빕니다. 그때야말로 세월호 희생자들이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지 않을까요?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

 

지난 3월 10일 대통령 박근혜를 국민의 이름으로 파면한 날, 생각비행이 한 권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10년 차 초등교사가 학교의 폐쇄적인 문화, 수직적이고 억압적인 교사와 학생의 관계, 다른 집단에 비해 교사 집단에 ‘이상한 사람’이 많은 이유, 교육계 전반의 무능과 폭력성 등의 문제를 면밀히 살피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합리적인 의문과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교육 문제는 복잡하고 실타래처럼 얽혀 있습니다. 해결하기가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교사가, 교사의 이름으로, 교사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매일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선생님'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이 숱한 고민의 한 축을 떠안으려 하지 않고서, 산적한 교육의 문제가 저절로 풀리길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교실과 학교 현장에서 경험한 사례를 중심으로 대한민국 교육계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더 많은 사람과 고민을 나누기 위해 2016년 4월부터 《딴지일보》에 저자가 인기리에 연재했던 글을 다듬고 보완하여 책으로 엮었습니다.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라는 10년 차 초등교사의 미스터리 추적기는 재미있을 뿐 아니라 귀담아들을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 '보통 사람'이 '이상한 선생'으로 변하는 이유


여느 직장이나 조직에 비해 교사 집단에 이상한 사람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교직이라는 직업 자체를 지원하는 사람들로부터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넉넉하진 않지만 고정적인 수입에 비교적 여유 있는 휴가를 즐기며 안정된 삶을 꾸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교직을 찾는다. 그렇다면 안정성을 추구하는 욕구가 큰 사람들 사이에 어떤 특성이 발견되는가? 아니면 교사들이 처한 직업 환경의 특수성이 이상한 교사를 양산하는가?


학창 시절, 교사들에게 크게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교사 개개인은 대체로 평범한 사람들이다. 대체로 학교에서 중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고, 선생님이나 부모님 말씀을 충실히 따르는 축에 속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무난히 학교를 졸업하고, 착실하게 임용시험을 준비해 교사가 된다. 소득 수준, 생활양식, 교양 수준도 평범함에 가깝다. 상류층은 아니지만, 딱히 현재의 상황을 뒤엎어야 할 필요가 있는 사회경제적 계층도 아니다. 이들은 학생 신분으로 학교를 다니다 선생으로 학교에 취직하기 때문에 평생 학교가 바라는 도덕적 가치판단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서 '양심을 어기는 것'과 '관습을 위반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온몸으로 느끼며 기존 세력과 마찰을 빚기에는, 너무 착하게 순리대로 살아온 '보통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보통 사람들'은 사회 주류의 가치관, 체제의 속성을 충실히 반영한다. 과거 한국 사회는 (현재보다 더욱) 차별, 권위, 폭력에 무감각했다. 공부 못하는 아이, 가난한 집 아이를 차별하는 것이 당연했고, 교사의 권위와 폭력은 당연한 것을 넘어 '도덕적'인 것이었다.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한없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과거 교사들의 면면은, 그들 딴에는 나름의 도덕적 가치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학교는 사회에서 가장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기관 중 하나인데, 어떻게 학교에서 그토록 많은 교사가 비리와 악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의문은 이렇게 풀린다. 즉 당대의 '보통 사람들'인 교사가, 당대의 가장 보편적인 도덕적 가치를 집약적으로 실현해내는 곳이 학교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의 나긋한 성품 자체를 잘못으로 볼 순 없지만, 사회심리학자의 연구에서 드러나듯이 판이 이상하게 짜이면 가장 위험한 존재로 변모하는 이들이 바로 이 '보통 사람들'이다. 이들은 맹목적으로 체제에 순응해 본인이 의식하지도 못한 채 악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 모난 데 없는 성격, 주위 환경과 충돌하지 않으려는 속성이 맹목과 무비판으로 이어지는 길의 윤활유가 되기도 한다. 유대인을 강제수용소로 보낸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폴 티베츠, 베트남에서 500명을 학살한 윌리엄 콜리, 프랑스 공화국의 사형 집행인 아나톨 데블레가 그러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의 극적인 반전이 학교, 군대, 감옥을 비롯한 특정 공간에서 자주 표출되는 것은 그 조직의 구조가 가진 극적인 단순함, 폐쇄성, 그리고 권위 때문이다. 군대에는 계급이 있고, 경찰과 교도관들에게는 법의 집행자라는 권위가 주어진다. 오늘날 학교는 과거와 달리 권위와 폭력을 행사하기 쉽지 않은 환경으로 변모하긴 했으나 교사에게는 여전히 학생들을 평가할 권한이 주어져 있다. 교사는 평가 기준을 설정하고, 시험문제를 내고,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권한으로 지금도 여전히 학생에게 절대적 권력을 행사한다.

 

 

출처 -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

 

 

▶ 바보 양성소 교대, 이상한 학교의 커리큘럼

 

교대 졸업생 중 한 명으로서 저자는, 교대에서 보낸 4년간의 시간이 예비교사로서 자신을 성장시키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건전한 비판의식을 갖춘 성인으로 성장하는 데 방해 요소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교대는 1학점을 받기 위해 한 달은 리코더, 한 달은 피아노, 한 달은 클래식 듣기 식으로 학생들을 내몬다. 이런 주먹구구식 커리큘럼은 교수들 자리 챙겨주기 외에는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넓고 얇게 배우는 대부분의 방법적 내용은 실제 교육 현장과 연계되지 않는다. 교대에서 아무리 피아노로 애국가 반주하기를 연습해봤자 학교 현장에는 피아노 자체가 없고, 지루함을 참아가며 몇 단원의 성취 기준 따위를 달달 외운들, 현장에 나오면 무용지물이 된다. 많은 교대생이 '우리는 졸업해서 초등교사가 안 되면 고등학교 졸업자와 다르지 않다'고 한탄하는 이유가 이런 현실에서 기인한다. 수많은 예비교사가 리코더를 불고, 뜀틀을 넘고, 학습 모형과 초등학교 성취 기준 등을 외워가며 4년을 보내지만, 대학 졸업자로서 전공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도 없고 성취감을 맛볼 수 없는 환경 속에 존재한다.


반면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와 수학·과학 성취도 추이변화 국제비교 연구(TIMSS)에서 늘 우수한 결과를 보이는 성공적인 핀란드 교육의 이면에는 '철저한 교사 교육'이 있다. 단순 비교는 어렵더라도 주목해서 봐야 할 지점은 분명히 있다. 핀란드에서는 정규학교 교사가 되려면 반드시 석사학위를 취득해야 한다. 학급 담임교사(초등교사)는 모두 교육학을 전공하고, 교육학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쓴다. 과목 전담교사(중학교, 고등학교 교사)는 해당 과목의 석사학위를 취득 후, 별도로 교육대학의 교사 교육과정을 거친다. 또한 핀란드의 예비 초등교사들은 ‘교육학’을 중심으로 공부한다. 한국의 교대 커리큘럼과 임용고사가 '교육과정' 중심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아울러 핀란드 교사 양성 과정은 현장 실습을 중요시한다. 핀란드의 예비교사들은 실습 전문학교에서, 실습을 전담하는 교사에게 최소 6~9개월 정도 현장 교육을 받는다. 한국의 예비교사들이 4년간 통틀어 1~2개월 정도의 교생실습을, 별다른 기준 없이 배정된 교실에서 하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교대에서 배운 내용, 임용시험을 준비하며 공부한 내용이 현장과 연계되지 않으니, 신규 1~2년 차 내내 헤매고, 상처받고, 소진되다가 3년 차쯤에 방전되어 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무엇보다 핀란드에는 임용고사가 없다.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부터 확실하게 뽑고, 철저히 교육해서 교육학의 전문가로 양성한다. 핀란드 교사들은 현장에서 전문가로서의 자율성을 인정받고(교과서도 스스로 선정할 만큼), 공무원으로서의 지위를 보장받는다. 교사들의 노동조합 가입률이 95퍼센트를 넘고, 공익에 기여한다는 자부심과 신뢰 속에 직업 만족도 또한 대단히 높다. 반면 한국에서는 교대생 대부분이 임용고사를 보기 위해 유명 강사에게 강의를 듣는다. 강의비, 교재비, 자료 복사비 등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어째서 대한민국은 초, 중, 고등학교는 물론이고 국가에서 설립한 교사 양성 대학의 학생들마저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가?


이처럼 허무맹랑한 교대의 커리큘럼과 폐쇄적인 학교 구조 속에서 예비교사들은 치열하게 생각하고 고민할 기회가 적다. 이렇게 4년을 보낸 학생들은 '교원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말 뒤에서 위선의 겹을 쌓는다. 초등학교 6학년 사회 교과서에서 '위안부'라는 말이 빠지고, 박정희가 '지속적 경제 성장을 주장하며 유신을 선포했다'고 기술해도 교사는 충실히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 그런 중립적인 교육의 결과는 어떤가? 허술하기 그지없는 사고와 편 가르기의 폭력이 만연한 사회다. 지역주의의 폐단을 가르치지 않고, 계급문제를 논하지 않고, 독재자 박정희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보인 결과가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로 드러난다.


 

▶ 책임지는 교사가 답이다!

 

스스로 고민하는 교사를 만들지 않는 교육, 체제에 무비판적인 '보통 사람'을 양산하는 교사 양성 과정 때문에 무수히 많은 교사가 학교 현장에서 자신을 관리하고 통솔하는 이들의 권위에 순응하거나 집단의 목표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상한 선생으로 전락하고 만다.


보통 사람들이 이상한 선생으로 변모하는 데에는 학교 특유의 폐쇄적인 문화 또한 한몫한다. 일반적으로 교사들은 자기 반 교실 문을 굳게 닫고 여간해서는 공개하지 않는다. 1년에 몇 번 있는 공개 수업은 일상적인 모습이 아닌 경우가 많다. 교사들 간에도 학생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는 세세히 알지 못한다. 다른 교사가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하는지는 다른 상황의 대화 속에서 혹은 학생들이 전해주는 말이나 행동 등을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 교사는 내 학생, 네 학생을 따져가며 교육해서는 안 된다. '교육의 중심을 학생'에 두고 교사들이 서로 배우고, 나누고, 필요하다면 날 선 비판도 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두어야 한다. 수직적이고 억압적인 교사와 학생의 관계, 다른 교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는 폐쇄적인 학교 문화는 이상한 교사들의 횡포에서 학생들을 구해내는 데 엄청난 방해요인이 된다. 그러므로 교사는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뿐 아니라 이웃 학교, 나아가 지역과 국가의 경계까지도 허물어야 한다. 자신이 내는 목소리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교사들은 입 다물고 하라는 대로만 하라'는 교육 당국의 명령에도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 환경은 신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과 특수한 이해관계에 결부된 인간들이 만든다. 그러므로 교사의 권위, 교육 시스템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고 인간이 만든 환경의 부산물에 불과한 것을 절대적 기준인 양 휘둘러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이 증언하듯, 성스러운 장막을 두르고 있던 교실은 그 어떤 곳보다 폭력이 난무하는 장소였다. 난무하던 폭력의 많은 부분이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진화되어 재생산되고 있다. 누구 좋으라고 있는지 모를 성스러운 장막 따위는 이제 걷어내야 한다. 교실에 필요한 건 신의 장막이 아니라 인간들 사이의 신뢰다.


먹고사는 문제에만 혈안이 되어 있고, 시민의 의무와 권리에 무관심하고, 자신의 계급적 이익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하고, 선동의 먹이가 되고, 민주주의의 원칙을 짓밟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인류가 어렵게 쌓아 올린 민주주의의 가치들을 파괴한다. 그런 사람들을 길러내는 교육은 존재할 필요도 존재할 가치도 없다. 배움이 아이들을 고통스럽게 해서는 안 되지만, 지적 갈망과 가능성을 방임하는 교육이어서도 안 된다. 교육이 사회화와 재생산의 도구로만 기능한다면 학교와 교사는 존재하지 않는 편이 낫다. 학생들은 세계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세계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교사들의 지적 헌신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

 

김현희 

1982년에 대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일반 대학교를 2년쯤 다니다 자퇴했다. 이후 교대에 입학하여 2007년 3월에 초등교사가 되었다. 교사생활 초기에는 주로 고학년 담임을, 최근 몇 년간은 영어교과 전담을 맡아 일했다. 2016년 4월부터 《딴지일보》에 ‘SickAlien’이라는 닉네임으로 학교에 관한 글을 연재했다. 영화 보는 것이 취미인 평범한 한국의 평교사다.

 

 

차례

 

책을 펴내며 | 교사의 책임

 

01 10년 차 초등교사가 푸는 교육계 미스터리
이상한 선생 질량 보존의 법칙 | 내가 만난 이상한 교사

 

02 권력에 취한 교사들
합리적 의심 | 교사의 권력과 권위

 

03 교권 추락은 교사 스스로 만든 역사
교권은 학생으로부터 나온다 |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 교사의 적은 누구인가 | 다시, 이상한 교사

 

04 보통 사람들
권위에 순응하는 사람들 | 위험한 보통 사람들

 

05 교직윤리를 새롭게 정립하자
교직을 바라보는 관점 | 교사의 직업윤리

 

06 관성의 법칙
사례1. “에어컨 좀 틀어주세요!” | 사례2. 배구, 배구, 배구! | 관성의 법칙

 

07 교사의 적은 학부모?
극성맞은 학부모라는 프레임 |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 교감, 교장도 교육 현장으로 나오라 | 학부모는 교육의 협력자

 

08 교사로 산다는 것
“너는 공부 잘해서 좋겠다” | 학교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 교사 S와 교사 B | 아둔함과 사악함

 

09 교대는 바보 양성소
예비교사를 바보로 만드는 커리큘럼 | 왜 교대에는 이상한 교수가 많은가 | 교대가 배출한 교사들 | 2년제 교대를 나온 선생님이 내게 남긴 것

 

10 전교조, 분열이 아닌 확장으로
전교조 조합원이 되기까지 | 개혁은 아래로부터 | 학생의 이익은 교사의 이익과 함께한다 | 연대를 위한 물리적 공간 | 받수 받으며 떠나게 하자

 

11 참을 수 없는 도덕 교과서의 경박함
합리적인 판단 능력 성장을 방해하는 도덕 | 감정과 생각을 강요하는 도덕 | 낡고 불완전한 관념을 강요하는 도덕 | 자기계발, 정신승리, 과도한 긍정을 강요하는 도덕 | 현실과 맥락이 없는 공허한 도덕

 

12 유아 수준의 대통령, 어린이 수준의 학교
대통령의 도덕적 수준 | 도덕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13 급식도 교육이다
폐쇄적인 부서 이기주의와 학교 급식 문제 | 부당한 대우에 시달린 막말 조리종사원들

 

14 관료제 유토피아
무상급식, 복지인가 시혜인가? | 무책임의 윤리, 악마는 디테일 속에 | 마법의 단어: 빨갱이, 종북좌파, 외부세력 | 부실 급식 사태 속 괴물, 관료주의 | 학교운영위원회는 왜 급식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까?

 

15 교사의 지적 헌신 그리고 민주주의
‘융합’, 학습에 늘 효과적인가? | 구체적 조작 활동을 많이 하는 것이 항상 옳은가? | 학생들이 전문가처럼 지식을 ‘융합’ ‘창조’할 수 있을까? | 지식 교육이 필요 없다는 헛소리 | 지식은 끊임없이 변한다 | 지식은 구속이 아닌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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