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오늘은 과거로 시간여행을 해보려고 합니다. 국립민속박물관 야외 전시물 중에 옛사람들이 살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놓은 곳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구한말의 모습과 1960~1980년대 거리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으로 가족, 친지, 연인과 함께 나들이한다면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으실 겁니다. 자, 그러면 시곗바늘을 한번 거꾸로 돌려볼까요?


경복궁 경내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은 우리 민족의 생활사와 관련된 방대한 민속자료를 상설 전시공간과 야외 전시공간으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우리 민족 고유의 생활양식, 풍속, 관습 등을 조사·연구하고 생활 민속 유물을 수집·보존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 전통문화를 보급·선양하며 국제 문화 속에서 한국 문화를 부각하고자 설립되었죠. 이곳을 찾는 방법은 [국립민속박물관 누리집]에 잘 나와 있으니 참고하세요.

국립민속박물관 입구 풍경


국립민속박물관은 1945년 11월 8일 한국 민속학의 선구자인 송석하(宋錫夏)의 수장품을 중심으로 서울시 중구 예장동 2번지에 '국립민족박물관'으로 처음 창립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많은 변화를 거쳤고 1992년 10월 30일 국립중앙박물관 소속에서 문화부 1차 소속 국립민속박물관으로 직제 개편되어 1993년 2월 17일 경복궁 내 건물로 이전 개관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1993년 3월 6일 문화부에서 문화체육부로 소속이 변경되었고, 1998년 2월 28일 문화체육부에서 문화관광부로, 다시 2008년 2월 29일에 문화관광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로 소속이 변경되었습니다. 민족 고유의 시설과 자료는 변함없이 자리를 지켰건만, 정치적 이유로 소속이 계속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 안내도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누리집)


오늘 생각비행이 여러분께 소개할 곳은 '추억의 거리'입니다. 이곳은 구한말과 1970~1980년대 거리 풍경을 실물 크기 그대로 재현해놓은 야외 상설 전시장의 한 부분입니다. 약 1900제곱미터 면적에 기존에 있던 개항기의 전차, 한약방, 포목전을 재정비하고 1970~1980년대 일상 속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다방, 식당, 만화방, 레코드점, 이발소, 양장점, 사진관 등을 똑같이 재현해놓았습니다. 연세 지긋한 분은 이곳에서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으며 어린이들은 옛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체험할 수 있으니 교육 자료로도 가치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제 추억의 거리를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

포목전


포목전은 비단과 포목을 판매하던 상점을 말합니다. 전시창에 기술되어 있는 설명 끝 부분에 '육의전'이라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육의전이란 조선 후기에 정부로부터 특권을 받은 시전(市廛) 중 6개의 큰 시전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육의전의 구성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전'은 하나의 상점을 뜻하는 용어가 아니라 같은 물종을 취급하는 상인들의 단체를 의미합니다. 그들은 정부가 건축한 공랑(公廊)점포에서 영업했는데요, 그 위치를 현재 종로 1, 2가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육의전의 의무는 정부수용품 조달이었습니다. 육의전은 자신들이 취급하는 물종을 다른 상인으로 하여금 거래하지 못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가리켜 금난전권(禁亂廛權)이라고 합니다. 난전은 전안(廛案:숙종 32년부터 실시한 제도로, 시전에서 취급한 물종과 상인의 주소, 성명을 등록한 상행위자 대장)에 등록되지 않은 자나 판매를 허가받지 않은 상품을 성 안에서 판매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결국 육의전은 쉽게 말하면 특권적 어용상인의 단체였던 것이죠.

죽물전


플라스틱 제품이 나오자 죽제품을 찾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었다는 설명이 인상적입니다. 중국과 태국 상품이 전통적인 국산 죽제품을 내몬 양상을 보면 전 세계에서 값싼 상품이 유통되는 오늘날의 모습과 다르지 않군요. 요즘은 중국산이 없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공산품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지 않습니까? 일전에 MBC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아보기>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관심이 있는 분은 꼭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양태전


양태전은 갓을 전문적으로 거래하는 상점을 말합니다. '양태'는 '갓양태'와 같은 말입니다. 우리 속담에 "양탯값도 못 버는 놈"이라는 표현이 있는데요, '제 밥벌이를 못하여 장가도 못 들 녀석'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이 갓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재미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도로가 잘 포장되어 있지 않았던 조선 후기에 신분이 높고 재력이 있는 사람은 비 올 때 나막신을 신었습니다. 나막신이 흙길에서 얼마나 유용했을지 그 유용성에 조금 의구심이 들긴 하지만 세를 과시하는 용도로는 확실한 기능이 있지 않았을까 싶군요. 구멍이 숭숭 뚫린 짚신에 비하면 버선발이 덜 젖기는 했겠지만 우산조차 없던 시절에 나막신이 적절한 비 대비책은 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빗길에 어딘가로 행차하려면 가마를 타지 않는 이상 발 젖을 각오는 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한약방


개항기 한약방의 모습을 재현한 모습이라고 합니다. 서랍이 많은 전통 가구에 각종 약재가 빼곡히 들어찬 모습은 요즘 한약방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듯합니다. 지금도 약재를 써는 작두를 흔히 볼 수 있지요. 예전엔 한약방이 약국이기도 하고 병원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진료는 의사에게 받고 약 조제는 약사가 하는 식으로 분리되었지만 예전 약방의 풍경은 사뭇 달랐겠지요.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허준>에서 의술이 뛰어난 의원집에 환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풍경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요, 오늘날 을지로에 해당하는 구리개에서 이런 모습이 다반사였겠지요.

자, 이제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1970~1980년대 풍경으로 눈을 돌려보겠습니다.



30대 중반 이후 세대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거리 풍경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름보일러가 없던 시절 월동 대비는 연탄을 들여놓는 일부터 시작하곤 했습니다. 행여 연탄이 비에 젖을까 비닐로 덮고 문단속을 철저히 하던 시절의 추억이 아련하군요. 연탄 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얼마나 많습니까? 눈길에 넘어지지 말라고 아침이면 연탄을 깨서 길가에 흩뿌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라면은 꼭 구공탄에 끓여야 제맛이었죠? 이런 추억 때문인지 안도현 시인은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를 썼습니다. 연탄을 소재로 쓴 안도현 시인의 작품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두루 실려 있습니다. 그래서 '연탄 시인'이라는 별명도 있지요. 다음 작품은 아주 유명해서 여러분도 다 아실 겁니다.

너에게 묻는다
                           _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흔하디흔한 연탄재에서 이런 깊은 감성을 찾아낸 시인의 마음이 연탄불만큼 따뜻합니다. 최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의원인 도종환 시인의 시와 산문을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16종의 중학교 교과서에서 빼도록 출판사들에 권고한 사실이 밝혀져 문인단체의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안도현 시인이 "도종환 시인의 시를 중학교 교과서에서 추방시켜야 한다면 저의 작품들도 교과서에서 모조리 빼주기 바랍니다"라고 심경을 밝히기도 했더군요. 문학작품은 동시대의 기억을 공유하는 소중한 문화적 자산입니다. 그런데 정치적인 잣대를 들이밀어 교과서를 함부로 재단해서야 되겠습니까? '자유민주주의'를 들먹이며 역사교과서를 운운했던 일부 역사가들과 이번 문학작품 배제 권고로 물의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국립민속박물관 내 '추억의 거리'를 둘러보며 인생공부부터 다시 하기 바랍니다.


구멍가게나 이발관이 옛 모습 그대로 재현되어 있군요.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담배부터 이발 도구 등이 그 시절 모습 그대로 남아 있네요. 벽에 붙은 각종 상품 광고까지 똑같습니다. 학교는 반공교육에 앞장섰고 전국 어디를 가든지 간첩신고 번호와 반공 표어 하나쯤은 붙어 있었죠.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복덕방(福德房)은 부동산중개업과 부동산중개업소를 지칭하는 용어로 우리 사회에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복덕방이란 용어가 주역에서 말하는 '생기복덕'에서 기인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복과 덕을 가져다주는 곳이라는 말에서 유래했으니 참 정겹지 않습니까? 1970~1980년대 시절 복덕방은 물물교환이 일어나는 장터이자 정보를 주고받는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복덕방 벽에는 이런저런 전단이 늘 붙어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요즘 부동산중개소를 보면 어떤 물건이 얼마라는 식의 정보만 나열되어 있는데요, 이와 비교하면 예전의 복덕방은 그 이름처럼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었죠. 복덕방 가게 문을 골대로 삼아 축구를 하다 주인아저씨에게 혼나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분도 계실 듯합니다.


여기는 다방입니다. 들어갈 수 없는 가게도 있는 반면 다방은 내부를 공개하고 있어서 들어가 앉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팥빙수 200원, 쌍화차 200원, 커피 150원, 위스키티 300원, 꿀차 150원이면 언제쯤 시절의 물가인지 궁금하군요. 음료를 판매하지는 않으니 미리 준비해서 다방에 둘러앉아 옛 추억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전쟁과 평화>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군요. 이 영화는 1956년에 킹 비더(King Vidor) 감독이 제작했고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멜 페러(Mel Ferrer), 헨리 폰다(Henry Fonda) 등이 열연했지요. 1977년 컬러판으로 재편집되었는데요, 상영시간이 무려 208분에 달합니다.


<스타워스> <슈퍼맨> <카사블랑카> <고고 얄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불후의 명작 영화 포스터가 색이 바랜 모습으로 재현되어 있습니다. 참 꼼꼼하게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볼거리가 더 풍성해지는 '추억의 거리'에 또 하나의 명물이 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우리네 삶에서 먹을거리를 파는 가게를 빼놓을 수 없지요. 아니나 다를까 정겨운 국밥집을 재현해놓았더군요.


지금도 장사를 하는 곳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하게 잘 재현해놓았더군요. 들어가서 좀 더 가까이서 자세히 볼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이렇게 옛 모습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만화가 왜 그리도 재미있었을까요? 꿈과 희망이 자라는 곳이 곧 만화방이 아니었나 싶네요. 여기 전시된 만화는 제가 어린 시절 보던 만화보다 더 이전의 만화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만화를 실물로 보려면 부천에 있는 [한국만화박물관]을 방문해보시기 바랍니다.     


여기는 학교입니다. "학교종이 땡땡땡~" 노래에 나오는 수업종이 바깥에 달려 있네요. 교실을 보니 겨울에 도시락을 난로 위에 올려두고 데워서 먹던 모습까지 잘 재현해놓았군요. 요즘 아이들이 초록색 나무책상과 걸상을 알 리 없지요. 책상 한가운데에 선을 그어놓고 넘어오면 모두 자기 것이라고 우기던 시절도 그립습니다.  


마지막으로 보여드릴 곳은 의상실입니다. 동네마다 양장점과 의상실이 하나쯤은 있었습니다. 참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옛날 옷도 나름대로 세련된 멋이 있는 것 같습니다. 패션은 돌고 돌기 때문일까요? 사진으로 보셔서 아시겠지만 '추억의 거리'는 아이들과 함께 가면 더없이 좋은 곳입니다. 부모님이 예전에 어떻게 살았는지를 설명해주고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이만한 배움터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돌아오는 주말에 '추억의 거리'로 나들이 계획을 세워보시면 어떨까요?

일본이 연일 헛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조작한 말도 안 되는 교과서 출판을 허락하고 사용 비율을 올리겠다고 하지 않나, 극우 신문의 서울 지국장은 독도를 양보하라고 하질 않나, 일본 국가 차원에서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격분한 대한민국 일각에선 현재 진행하고 있는 일본 돕기 성금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고, 모 자치단체는 모았던 성금을 다시 되돌려주었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도움을 받았으면 고마워해야 하는 입장에서 어이없는 행태를 보이고 있으니 많은 시민이 실망하는 건 당연합니다.

대지진을 겪은 이후 최악의 원전 사태에 이르기까지 무척이나 답답한 일본이지만, 한편으론 부러운 점도 있습니다. 일본 문화의 저력을 이끌어내는 출판문화가 그것입니다. 다양한 문화 현상을 폭넓게 담아내는 잡지의 현황을 보노라면 정말로 부럽기 그지없는데요, 생각비행은 일본에서 유명한 한 스포츠 잡지에 주목했습니다. 요즘 한창 야구장이 들썩들썩하잖습니까.

일본 유명 스포츠 잡지, 넘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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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스포츠 잡지 Number(넘버)


일본에는 정말로 다양한 잡지가 있습니다. 스포츠, 만화, 패션, 요리 등 그 분야는 실로 전 방위적인데요, 생각비행이 특히 주목한 잡지는 《Number》(이하 《넘버》)라는 스포츠지입니다. 《넘버》는 1980년에 창간되어 모든 종류의 스포츠를 두루 다룹니다. 야구, 축구, 배구, 농구와 같은 인기 구기 종목은 기본이고, 수영, 레이싱, 격투기(이종격투기, 프로레슬링에 이르기까지 다루지 않는 종목이 없을 정도죠.

이 잡지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특집기사입니다. 스포츠계에서 특별한 이슈가 생길 때마다 꽤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양질의 사진과 깊이 있는 내용의 기사로 내용을 꾸밉니다. 유명 선수가 은퇴하는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분량의 기사를 쏟아냅니다. 위에 보이는 특집기사는 2008년에 은퇴한 노모 히데오(野茂 英雄)를 향한 《넘버》 편집진의 열정과 회한이 담긴 특별호입니다. 여기에는 선수 시절부터 은퇴에 이르기까지 노모 히데오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양질의 기사를 낼 수 있는 이유는 1980년부터 쌓아온 《넘버》의 자료(사진과 기사)가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묻혀버린 한국 스포츠 잡지의 자존심, SPORTS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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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포츠 잡지 SPORTS 2.0


과연 한국에 일본의 《넘버》와 견줄만한 잡지가 없었을까요? 아닙니다. 있었습니다. 아주 훌륭한 잡지가 있었죠.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SPORTS 2.0》(이하 《스포츠2.0》)이라는 훌륭한 잡지가 있었습니다. 일본의 《넘버》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잡지였습니다. 《스포츠2.0》도 《넘버》와 같이 버라이어티하게 스포츠를 전 방위적으로 다뤘습니다. 구기 종목은 물론이요, 스노보드를 비롯한 익스트림 스포츠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은 분야의 스포츠도 소개하던 잡지였습니다.

위 사진은 황선홍 감독과 홍명보 감독을 다룬 《스포츠2.0》의 특집기사입니다. 2002년 이후 월드컵 스타들이 빠진 축구팀의 세대교체와 당시 한국 축구의 미래를 다룬 대담이었죠. 이러한 특집기사는 하루하루 발행하는 신문에서 다루기는 쉽지 않습니다. 잡지 형식은 《스포츠2.0》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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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2.0의 훌륭했던 기획 기사들.


잡지 구성을 한번 살펴볼까요? <시대가 그들을 불렀다>라는 야구 특집기사가 있군요. 여기엔 한국 야구를 주름잡았던 선수와 팀에 대한 소개를 담은 기사가 있습니다. 불사조 박철순, 연습생 신화 장종훈, 거포 이승엽처럼 1982년 프로야구 개막부터 2006년까지 최고의 선수와 팀을 돌아보는 기사입니다. 올해는 프로야구 3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인데요, 《스포츠2.0》이 지금도 나오고 있다면 그냥 넘어가진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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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2.0은 인종, 국적을 초월해 다양한 스포츠인들을 만났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스포츠2.0》은 다양한 주제로 스포츠의 여러 분야를 다뤘습니다. 잡지 표지는 한국인뿐 아니라 세계 유명 선수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미국 농구의 간판스타인 코비 브라이언트, 브라질 최고의 축구 선수인 호나우지뉴,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데릭 지터에 이르는 면면을 볼 수 있었죠. 생각비행이 기억하는 인상적인 표지는 일본 야구의 원로 장훈과 이승엽이 함께 포즈를 취한 사진입니다. 일본에 진출한 이승엽 선수와 일본 야구의 원로 장훈 씨가 함께 나눈 대담이 특별기사로 실렸거든요.

일본의 《넘버》에 결코 뒤지지 않았던 《스포츠2.0》은 아쉽게도 2008년 12월을 끝으로 휴간되었습니다. 사실상 폐간이었죠. 2008년 즈음 한국을 강타한 경제위기와 그로 말미암은 광고 수주 하락이 빚은 일이었습니다. 《스포츠2.0》의 기자들이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습니다만, 복간으로 이어질 수는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한국 야구사의 한 획을 그은 양준혁, 그를 기록할 잡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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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혁 선수

2010년 9월 19일, 한국 야구에서 신(神)이라고 불렸던 사나이의 은퇴식이 있었습니다.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출신 선수로 그야말로 '기록의 사나이'라 할 만한 거포였지요. 그의 기록은 셀 수 없이 많아서 사람들은 그를 신, 즉 양신이라고 불렀습니다.

양준혁 선수의 현역 시절 기록
9년 연속 3할(93~2001년), 16년 연속 세자릿수 안타(93~2008년), 15년 연속 두자릿수 홈런(93~2007년),
골든 글러브 8회(96~98, 2001, 2003, 2004, 2006, 2007),
사이클링 히트(96, 2003), 20홈런-20도루(96,97,99,2007),
타격 1위(93,96,98,01), 최다 안타 1위(96, 98), 타점 1위(94),
장타율 1위(93, 96), 출루율 1위(93,98,2006), 최우수 신인(93)

양준혁 선수의 은퇴 경기는 정말 화려했습니다. 그날 경기가 양준혁 선수 한 개인에게 맞춰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팬이 양신의 은퇴를 보기 위해 경기장에 구름같이 모여들었고, 그분들은 한국 야구의 한 획을 그은 훌륭한 야구선수의 은퇴를 아쉬워했습니다.

이런 대단한 선수의 은퇴를 기념할 만한 특집기사가 나오지 않는다는 현실이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스포츠2.0》과 같은 잡지가 있었다면 《넘버》에 실린 노모 히데오 선수의 은퇴 특집기사보다 훌륭한 특집기사를 볼 수 있지 않았을까요? 한국 야구의 위대한 업적을 이룬 선수를 아무런 특집기사를 담은 잡지 한 권 없이 보낸다는 현실이 서글프네요.

얼마 전에 이북(e-북)과 관련된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힘없고 열악한 상황의 콘텐츠 생산자들은 수익이 없이 지쳐가 줄줄이 사라지고, 결국에 상업적이고 자극적이며 획일화된 콘텐츠만 남게 되리라는 암울한 전망을 담은 내용이었습니다. 일본은 다양한 출판문화를 장려고자 정부가 앞장서 노력하는 반면, 한국은 경제불황으로 출판시장이 어려워지자 어디에 손 벌릴 데 없는 잡지가 줄줄이 폐간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드러났습니다. 이제 자극적이고 상업적인 콘텐츠가 득세하는 세상에서 독보적인 스포츠 잡지 하나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어디다 하소연해야 할까요?

기록은 중요한 가치가 있는 문화영역입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허허벌판을 앞서 지나간 사람의 발자취를 보고 우리는 한 걸음씩 전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록은 위대한 자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선 사람의 실수를 담은 기록은 그와 같은 실수를 다시 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예전보다 두 걸음, 세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창의력을 제공해줍니다.

앞으로 한국에 어떠한 출판물이 새로 나올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일수록 정부가 앞장서서 다양한 문화를 창출하는 출판문화를 고양해야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또한 실질적인 정책이 의미를 지니려면 다양한 문화를 향유하는 소비자가 늘어나야 합니다. 투자와 소비는 결국 함께하는 것이니까요. 최근 들어 한국에게 미운 짓만 골라하는 일본이지만, 이 기사를 작성하는 시간만큼은 그들이 축척한 출판문화가 부럽기만 합니다.

여러분 덕분에 Best에 올랐습니다. 감사합니다. (__)





지난주 김대중 대통령의 연하장 - 평화와 풍요가 온 나라에 이어 신학영 님께서 보내주신 또 하나의 물품을 소개합니다. 세월을 타서 군데군데 해진 봉투지만 가운데 찍힌 빛나는 금박 봉인이 이 편지의 출처를 말하고 있습니다. 네, 대한민국 대통령이 사는 청와대입니다.


다시 한 번 대한민국 대통령을 상징하는 무궁화와 봉황으로 시작하는 편지는 2003년 2월 퇴임을 앞둔 김대중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국민께 드리는 마지막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생각비행의 블로그에 옮겨봅니다.


대 한 민 국  대 통 령



친애하는 신학영님께,

새해 안녕하십니까?

5년의 대통령 임기를 마치면서, 먼저 그간의 성원에 대해 각별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 5년을 돌아보면 참으로 감개무량한 바가 큽니다. 좌절도 있었고 성취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너무도 큰 변화가 이 땅에 일어났습니다. 저는 그 변화 속에서도 특히 우리 국민의 위대한 발전, 그리고 일류국가의 기초를 마련한 것, 이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우리 국민은 세계가 놀라워하는 업적을 이룩해냈습니다.

외환위기를 맞이하자 우리 국민은 '금 모으기'를 전개하여 전 세계를 감동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세계 각국이 앞다투어 한국을 지원하게 만들었습니다. 금융·기업·공공·노사의 4대 개혁을 고통과 희생을 감내하면서 지지하고 적극 협력함으로써 우리 경제는 3년을 앞당겨 IMF 관리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국민은 지식정보화의 열풍을 일으켜 세계적인 IT강국을 만들어냈습니다. 월드컵과 아시아경기대회를 성공시키고 찬란한 응원 문화를 이룩해냈습니다. 관권이나 금권의 개입 없이 가장 공명한 대통령선거를 성공시켰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내고 있습니다. 확고한 안보와 한미동맹의 기본틀을 유지하는 데 소흘하지 않았으며, 긴장완화를 위해 일관되게 노력해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국민은 오랜 소극성과 수동적 자세로부터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큰 변화를 보인 것입니다.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국민적 자신감으로 승화, 발전시킨 것입니다.

존경하는 신학영님,

국민의 정부는 이러한 국민의 저력과 성원에 힘입어 한국이 21세기 일류국가로 도약하는 국운융성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지금 민주인권국가로서 전 세계로부터 인정받고 있습니다.

많은 국제기관들은 한결같이 한국을 경제적 우등생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정보화 등 첨단기술이 크게 발전되었고, 이를 전통산업과 접목시켜 세계적 경쟁력이 있는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과거 50여년에 걸친 900억 달러의 무역수지 누계 적자를 상쇄하고, 이제 흑자 국가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고용보험·산재보험·건강보험·국민연금 등 4대 보험의 틀을 갖추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시행한 것을 비롯해 선진국 수준의 복지체제를 완비했습니다.

또한 앞서 말씀드린 대로, 한반도 긴장을 크게 완화시키고, 이산가족상봉과 경제분야, 문화·관광분야 등에서 남북간의 교류를 증대시키고 있습니다. 남북을 연결하는 철도가 개통되어 한국이 유라시아대륙의 물류중심이 될 날도 머지 않았습니다. 북한 핵문제도 대화를 통해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신학영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중산층과 서민의 생활문제, 농촌문제, 지역간 불균형문제 등 많은 미비한 과제들이 남아있습니다. 국민의 정부가 좀 더 이룩하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하며, 다음 노무현 대통령의 정부에서 이 모든 것이 더한층 개선·발전될 것으로 믿습니다.

저는 위대한 국민 여러분의 현명함과 저력을 믿습니다. 국민의 정부와 더불어 보여준 "하면 된다"는 국민적 자긍심과 일류국가의 기반을 마련한 성과를 유지·발전시켜 나간다면, 국운융성과 모든 국민의 행복한 내일이 머지않아 실현될 것입니다.

앞으로도 저희 내외는 한 시민으로서 민족과 국민의 평화와 발전을 기원하면서 살아가겠습니다. 거듭 그간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부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십시오.


2003년 2월


대 통 령  김 대 중
             이 희 호




김대중 대통령이 마지막 편지에서 친애하고 존경한다고 말한 대상은 비단 신학영 님만은 아닐 겁니다. 군부독재 시절 그를 죽음의 수렁에서 매번 구해낸 국민, 인간 김대중이 끝까지 믿었던 현명함과 저력을 지닌 위대한 국민,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남긴 메시지라고 믿고 싶어요.^_^

계속해서 여러분의 좋은 사연과 추억이 도착하길 빌며 인사드립니다. 9월의 첫 주말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_^






《사랑의 승자》- 김대중, 빛바랜 사진으로 묻는 오래된 약속
( http://ideas0419.com/2 )

생각비행김대중 전 대통령추억이 담긴 사진이나 물건, 인연을 담은 , 추모의 글 등을 모집합니다. 언론을 통한 기록이 아닌 생생한 독자들의 사진과 사연을 모아 2주기엔 더 멋진 사진집을 엮고 싶습니다.

짧은 사연은 댓글로 남기셔도 좋습니다. 개인적인 인연을 담은 글은 트랙백을 이용하시거나 생각비행으로 원고와 사진을 함께 보내주시면 게재하겠습니다. 우리의 바람이 이뤄질 수 있도록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께서는 다음 포스트를 참조해주세요.

[제안] 김대중 대통령과의 추억들을 모아 보는 건 어떨까요? - 김대중 헌정 사진집 프로젝트( http://ideas0419.com/6 )

(1) 약속의 유효기간 - 오동명 님 ( http://ideas0419.com/9 )
(2) 살아계신 것 같아요. - 이은희 님( http://ideas0419.com/12 )
(3) 평화와 풍요가 온 나라에 - 신학영 님( http://ideas0419.com/14  )
(4) 친애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께 - 신학영 님( http://ideas0419.com/19 )

* 생각비행 블로그에 올리는 이미지 자료는 확인 가능한 대로 출처를 밝히고 있습니다. 출처가 잘못된 경우 알려주시면 수정 조치하겠습니다. 혹시 사용권 협의가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협의하여 조치하겠습니다.


평화와 풍요가 온 나라에

오늘은 생각비행연하장이 도착했습니다^_^

한여름에 웬 연하장이냐고요? 이 연하장은 바로 2003년 1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퇴임을 앞두고 국민들에게 보냈던 연하장이랍니다. 서울에 사시는 신학영 님께서 간직하고 계시다가 저희 생각비행의 김대중 2주기 추모 프로젝트를 위해 보내주셨어요. 무려 두 점이나요. 다른 한 점은 추후에 공개하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_^ 



새해를 맞아 축복의 한해가 되시기를 바라며
평화와 풍요가 온 나라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2003. 1

대통령 김 대 중
          이 희 호


서명과 함께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영부인이셨던 이희호 여사의 성함이 적혀 있네요. 평화도 풍요도 점점 더 남의 나라 얘기 같은 이때, 마음이 따뜻해지는 연하장입니다^_^

특별한 사연은 없다고 하시네요. 서울에서 자영업을 하고 계신데 청와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과 자영업자들의 만남에 참석하신 후 연하장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7년이 넘은 연하장을 여태 고이 간직하고 계신 것만해도 특별한 사연이 아닐까 싶습니다^_^





《사랑의 승자》- 김대중, 빛바랜 사진으로 묻는 오래된 약속( http://ideas0419.com/2 )

생각비행김대중 전 대통령추억이 담긴 사진이나 물건, 인연을 담은 , 추모의 글 등을 모집합니다. 언론을 통한 기록이 아닌 생생한 독자들의 사진과 사연을 모아 2주기엔 더 멋진 사진집을 엮고 싶습니다.

짧은 사연은 댓글로 남기셔도 좋습니다. 개인적인 인연을 담은 글은 트랙백을 이용하시거나 생각비행으로 원고와 사진을 함께 보내주시면 게재하겠습니다. 우리의 바람이 이뤄질 수 있도록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께서는 다음 포스트를 참조해주세요.

[제안] 김대중 대통령과의 추억들을 모아 보는 건 어떨까요? - 김대중 헌정 사진집 프로젝트( http://ideas0419.com/6 )

(1) 약속의 유효기간 - 오동명 님 ( http://ideas0419.com/9 )
(2) 살아계신 것 같아요. - 이은희 님( http://ideas0419.com/12 )
(3) 평화와 풍요가 온 나라에 - 신학영 님( http://ideas0419.com/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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